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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도의 켈커타와 빈민굴이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아낭 나가르 즉 '환희의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세밀하게 들려주는 다큐형식의 산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을 했던 영화의 원작소설이라는데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인도의 삶이 고스란이 전달되는듯 하다. 가뭄과 병충해로 더이상 농사를 짓지 못해 도시로 떠나와 노숙자와 같은 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식구를 먹여살리기위해 애쓰는 하사리 팔의 이야기와 비참한 아낭 나가르속에서 그들의 삶을 똑같이 살아가며 그들을 도와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려 하는 프랑스신부 폴 랑베르의 두 이야기가 교차하고 있다.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데다 도심속에는 하사리 팔과 같이 가난을 몰고온 수많은 가족들과 노숙자들이 집도 없이 거죽 한장만으로 몇이나 되는 식구들이 한데 뭉쳐 잠을 자며 추위와 더위를 고스란이 다 겪어내며 산다. 게다가 먹을것도 없어 쓰레기를 뒤져야하는 그들의 삶은 더이상 비참할수가 없을거 같지만 갑작스러운 더위와 추위로 병에 걸리거나 창녀가 되는등의 더욱더 모진 시련이 늘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것만 같다. 아낭 나가르는 한술 더떠 갖가지 병을 가진 사람들이 죽을때만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화장실도 없어 길게 줄을 서야 하고 또랑에서 멱을 감는등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당할수 없을거 같은 최악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서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특이하게도 인도인들은 가진게 없어도 그들이 믿는 신에게 거르지 않고 의식을 올린다. 그래서인지 가진 돈을 모두 소비하고 급기야 피를 팔던 하사리 팔은 동향의 친구를 만나 인력거를 끄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피골이 상접한 그에게 인력거를 끄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며 또한 경찰들에게 찔러줘야 하는 뇌물 또한 만만치 않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가난한 이런 나라에도 가는곳마다 뇌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요금을 떼이기도 하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는 손님을 만나 곤궁에 처하기도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무사히 빠져나오기도 하는등 인도의 삶이란 정말로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루벌어 하루사는 그들이 공동 파업을 감행할정도로 자신들이 당하는 부당함에 항거할줄도 안다.
폴 랑베르 신부는 환희의 도시속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하며 그들에게 호감을 이끌어 친구가 되어가고 끔찍한 죽음에 놓인 사람들을 돕다가 그렇게 끔찍한 고통속에서조차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것을 배우게 된다. 모두가 꺼리는 나환자조차 받아들이며 테레사 수녀와 함께 그들을 위한 이동수용소를 세우기 위해 힘쓰고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그들에게서 삶의 기적을 느끼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콜레라에 걸리고 옴이 옮겨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치루면서도 그는 한번도 편안한 곳에서 치유받기를 희망하지 않고 자기보다 더 처참하게 살아가는 인도인처럼 대접받기를 원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희망이 보여야할거 같은데 홍수와 태풍등의 피해를 입어도 무지가 더할수 없이 비참해지는 환희의 도시의 모습에 그저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런데 그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행하며 그들을 위한 축제 또한 거르지 않고 즐기는 그네들의 모습속에서는 그야말로 그들에게만은 그곳이 환희의 도시일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고 만다. 하사리 팔과 폴 랑베르의 랑데부를 내내 기대했는데 결국엔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지고 마지막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뼈를 팔아서까지 지참금을 마련해 딸을 시집보내려 하는 하사리 팔의 모습에서 우둔함과 무지함 보다는 자신의 사명을 마침내 다 하고 가는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장 장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인도의 이야기는 결코 편안하고 쉽게 읽을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끔찍하고 비참하기 이를데 없는 삶속에서도 서로가 모른척 하지 않고 위로하고 도와가며 꿋꿋하게 웃으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속에서 지금 모두가 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는 이 세상이 오히려 더 끔찍한곳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치열한 삶을 살다간 하사리 팔의 역사와 그들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은 폴랑베르와 같은 사람들의 역사가 만들어낸 그 도시에 나 또한 발자국을 디디고 도움의 손길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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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니 TV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오버랩 됩니다. SBS의 '힐링 캠프'입니다. 게스트는 연예인 차인표씨입니다. 인도에 자원봉사를 다녀왔던 이야깁니다. 원래는 그의 아내 신애라씨가 갈 예정이었으나 여의치못하게 되자 차인표씨에게 의뢰가 들어왔답니다. 그 때만해도 나눔과 베풂이 마음에 들어오기 전이었던 그는 모든 자원종사자들이 자비를 들여서 오가는데, 그는 그 일을 주관하는 단체에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주문했답니다. 그 이유는 본인의 인기를 이용해서 사진이나 찍고 홍보를 해보겠다는 의도일 것이라는 혼자만의 판단이었답니다. 어쨌든 그 단체에선 항공권을 구입해줬고, 예정일이 되자 인도로 향했습니다. 인도에 도착하기전 주관하는 단체의 리더가 차인표씨에게 부탁을 하더랍니다. 가게 되면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게 될텐데, 그저 그 아이들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만 해줘도 그 아이들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차인표씨는 '뭐 그 정도 쯤이야'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6~7살 쯤 되는 사내아이가 먼저 악수를 청합니다. 차인표씨가 그 손을 잡으며 부탁받은 그 멘트를 날리려던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내적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을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그 소년을 향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소년의 손과 눈빛을 통해 들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는 음성은 나의 삶에 크나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006년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무대는 바로 그 인도땅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영화 제작이 되었지요(1992년.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 저자는 캘거타에 간 어느 날, 인력거를 타고 3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집도 없이 길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곳은 아니러니 하게도 '환희의 도시'라는 뜻의 아낭 나가르라는 슬럼가였습니다. 저자는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양의 부유한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용기와 사랑, 나눔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걸 소유한 듯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도시에서 성자(聖者)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랍니다.
'환희의 도시'에서는 테레사 수녀뿐 아니라 프랑스 신부인 폴 랑베르처럼 그들의 고단하고 피폐한 삶에 동참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료기구는 커녕 기본적인 약과 주사제만 있어도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환자들이 그저 죽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탄탄대로의 의학과정을 마친 미국 플로리다 출신 젊은 의사는 그가 학교에서 미처 익히지 못한 병과 환자들을 위해 땀을 흘립니다. 물론 그 역시 자원봉사자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가난과 궁핌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저자 도미니크 라피에르는 이 대서사시를 쓰기 위해 그들과 함께 수개 월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합니다. 이 점이 저자의 열정과 진실성을 나타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듭니다. 자료 조사와 몇 차례 현지 답사 정도로 쓴 글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거처한 오두막은 가로 2미터 세로 1미터의 초라한 방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쪽방 수준입니다. 환기도 되지 않고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 방. 쥐와 지네가 들들끓었고 소나기가 내릴 때마다 물과 오물이 넘쳐 들어옵니다. 저자는 결핵환자들, 나환자들, 거세 당한 사람들과도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일상을 이해합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그 시간속에서 그는 이렇게 소회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면 조그만 호의에도 신에게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을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작품에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중심 인물인 인도의 서른 세살 농부 하사리 팔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하사리는 동부 벵골지방의 방쿨리 도시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합니다. 그리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꿈과 희망을 키워가던 하사리의 아버지를 포함한 그의 가족들은 대지주들의 농간으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땅과 집을 모두 뺏기게 됩니다.
어떡하든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땅을 소작해야했지요.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주고 나면 쭉정이 밖에 남지 않을 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충해와 가뭄으로 결국 하사리는 캘거타로 무작정 상경을 합니다. 집도 절도 없습니다. 하사리처럼 고향을 떠나온 다른 가족들처럼 역앞에서 노숙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매혈(賣血)을 해서 가족들의 끼니를 때웁니다. 하루에 바나나 한 쪽만 먹어도 감지덕지한 삶이 이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력거를 끌게 됩니다. 대단한 발전이지요.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체력으로 달리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하사리의 딸이 초경을 치루고 결혼을 하게 될 나이가 되었군요. 신부의 지참금 문제가 매우 심각하군요. 정부에서 아무리 규제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하사리는 뼈를 판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돈을 빌립니다. 인도의 인체 골격 시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 갖고는 매우 부족합니다.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체 골격은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거액의 가격표가 매겨진 후 서구사회로 건너갑니다. 물론 뼈를 제공하는 것은 사후에 처리됩니다. 완성 처리된 골격에 붙여지는 가격표에 비해선 거의 푼돈이나 다름 없는 돈을 받고 뼈까지 팔아야하는 참담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사리는 힘들게 딸을 결혼시키고 난 후 그간의 쇠약해진 몸에서 그나마 붙어 있던 생명력이 떠나갑니다. 하사리의 뼈는 계약서대로 이행됩니다.
인도라는 나라.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이해하기 힘든다는 부분은 밝음과 어두움 모두에 있습니다. 어두움은 과연 그 나라엔 정부의 행정력이라는 것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피아와 같은 암흑세력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엔 언급이 안되었지만 달라이 라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 동부의 오리사 주를 방문했답니다. 최근 부족민 사이의 빈부격차로 지역에서 갈등과 내란이 급증했습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그 지역 국회의원을 만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을 적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이미 부족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물질적 원조를 목표로 하는, 충분한 기금을 가진 정부 프로젝트와 법적 장치가 이미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부패 때문에 그 프로그램이 원래 도우려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도는 세게에서 이슬람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이슬람교도의 본거지입니다. 그리고 인도에는 수백만 의 시크교(15세기 인도에서 힌두교 신앙과 이슬람 신비 사상이 결합되어 탄생한 종교)신자와 기독교인이 있고, 상당히 많은 자이나고, 불교, 조르아스터교, 유대교 공동체도 있습니다. 인도에는 민족적 종교적 소수자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도 없다 합니다. 게다가 오늘날 인도에서는 수백 가지의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도 언어상의 문제로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인도인들의 모습이 종종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분쟁이나 갈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가진 것에 감사" 를 마음에 담습니다. 작품에 그려지는 하층 인도인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거의 귀족같은 일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글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과연 그럴까? 설마?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삶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마음이 나오는지 경이로울 따릅니다. 앞서 언급드린 프랑스 신부 랑베르가 어느 인도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사람을 접대하는 데 극진했다. 랑베르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온 식구가 뛰어나와서는 벵골 사람들이 끔찍이도 좋아하는 온갖 사탕과 차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그를 대접하는 데 식량을 써 버려 며칠 먹을 그들의 양식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럼 현재 '환희의 도시'의 현주소는 어떨까요? 책과 영화로 소개된 이후 '환희의 도시' 까지는 아니더라고 '희망의 도시'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에서 그들을 돕고 있는 상조회의 회원이 7,000명이 넘어 섰다고 합니다(지금은 더 늘어났겠지요). 물론 모두 인도가 아닌 타국 사람들입니다. 무료진료소, 허약한 어린이들을 위한 회관, 산원(産院), 노인과 극빈자들을 위한 무료 급여소,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소, 성인을 위한 가내 공장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예방접종과 결핵 조기 발견 계획도 수립됩니다. 이어서 벵골 지역에서도 가장 빈곤하고 뒤처진 지역의 관개와 우물 파기, 무료 진료소 설립이 추진됩니다. 인도에서도 최하의 생활을 하루하루 이어가던 이곳 '환희의 도시'는 보석상과 고리대금업자들이 들어서고 사무원들과 공무원들, 상인들의 거주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주거시설이 철거되고 빌딩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다시 떠나야 하는 가슴 아픈 문제가 나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을 주고자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더욱 좋은 소식이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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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모든 것을 사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들의 문화도 나에게 색다르게 다가오고 그들의 환경이나 자연도 많이 알지 못한다. 인도의 이야기는 책보다는 영화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인도 이야기가 나온 웃기는 코믹영화 <세얼간이>를 보면서 사실 인도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의 생각은 앞으로 인도 많이 사랑하자였다. 특히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영화를 보면서 빈민가가 나왔고 그들의 환경을 알게 되었다. 저런 환경에서 어찌 살까? 같이 씻고 빨래를 하는 모습에서 참 환경이 열악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여튼 생각이 무척이나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책 『시티 오브 조이』를 읽게 되면서 왜? 옛날이 생각 안 난거지? 이 책의 주 무대가 인도인데 말이다. 이 책은 영화로 나온 작품이다.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주인공 그런데 그 지역이 인도라는 것을 잃어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인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패트릭 스웨이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니어커를 끌던 주인공도 말이다. 나의 기억으로 많은 것이 생각나지 않아 아쉬웠지만 책을 읽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워낙에 책과 영화를 같이 하지 않기에 말이다.
저자인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위대함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저자는 이들의 삶속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책에서도 그들의 삶의 장소가 나오지만 아주 작은 방에서 더위와 싸우고 빈곤과 싸우면서 그들을 지켜본다는 자체만으로 저자는 책을 출간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자는 그들 속에서 책을 출간했고 그들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도움되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특히 여러 질병속에서 노출 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살았다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물론 그 곳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알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박수를 보내냐고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곳에서 못 살 것 같아서 박수를 보내는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주 많이 행복하고 이 삶에 감사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많이 가난 했던 하사리 팔은 가난과 홍수와 가뭄, 결혼으로 고양에서 피신을 해서 그나마 먹고 살 방침으로 도시로 오게 된다. 그 도시는 환희의 도시인 '아낭 나가르’는 인도 캘커타에서 가장 빈곤한 빈민굴이다. 거기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곳 인 줄 알고 오게 되는데 그곳은 완전 빈민굴이라 인구는 70만 명이나 되는데도 우물과 샘은 겨우 10여 개밖에 되지 않았고, 주민 2천 500명당 변소가 하나뿐일 정도로 비인간적인 곳이다. 그 속에서 돈 없고 빽없는 하사리 가족은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자게 되고 다리 밑에서 자게 된다. 덥고 잘 것도 없고 일도 없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동냥하고 구걸하는 모습에서 참 가슴이 아팠고 살기 위해 버린 음식을 주워야하는 환경에 가슴이 아팠다. 특히나 하사리가 피라도 팔아서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사는 장면에서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다. 한마디로 뼈라도 깎아 파는 사람들도 이었다고 하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 거기에 힘든 인력거를 끌어서 먹고 사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젖을 것 같다. 있는 놈들에게 빼앗기는 그런 없는 사람들의 굴욕이라고 해야 하나 인간의 완전 가난의 최하위를 보여주는 그런 책이다.
프랑스인 신부 폴 랑베르는 그 곳인 환희의 도시에 온다. 그들의 어려움을 구제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들 속에 들어와 그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인간의 가난의 끝은 어디인가? 가난한 사람은 아파도 약고 없고 그냥 기도만이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작은 정 하나가 그들에게는 큰 사랑으로 온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 사람들의 종교가 힌두교 인데도 그곳에서 신부님의 교리를 전하면서도 그들 속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그들을 지키게 된다. 아픈 이들에게 주사도 약, 주사조차도 제대로 없다는 그들의 현실이 많이 속상했다. 그들을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들은 랑베르에게 작지만 큰 보답을 준다. 작은 감동이 큰 감동으로 전해져 온다. 테레사수녀님이나 의사, 간호사 인력거꾼 그들의 만들어내는 이 이야기는 많은 힐링이 전해져 온다. 어떻게 저리 가난하단 말인가? 인간에게 저런 치욕과 저런 아픔을 주다니 돈이란 게 무엇인가? 삶이 란 게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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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가난하다는 말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해 하면서 주문을 걸고 살 것이다. 그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풀어 나갈지 아마 기대를 하고 읽어도 될 것이다. 가난하지만 그들을 위해 누군가가 도와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희망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도 인간이기에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를 보면 도와주는 마음에서 눈물도 난다. 누군가가 죽어야 그 사람의 직업을 자기가 가진다는 아픔에서 나는 배부른 소리로 이 직업이 안맞아 하면서 탓한 것에 자책을 한다. 이제부터 모든 일에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하고 최선을 다해서 살 것이다. 이 책의 영화는 어릴 적에 본 <킬링필드>, <미션>과 같이 영화감독 롤랑 조페의 휴머니즘 3부작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그 만큼 사회에 많은 이슈를 전해준 영화였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앞으로 이런 여러 가지 질병이나 기아로 아파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지금의 인도는 그래도 좋아져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들이 질병과 기아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가심이 아프다. 제발 모두다 걱정없이 잘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p24 혹 여기 이 것이 틀린 건 아닌지요? 농사는 그 어느 해보다 잘 될 성싶었다. 추수전에 때를 맞춰서 비가 내렸으므로 팔 가족은 양수기를 빌릴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양수기를 빌리는 데는 한 시간에 6루피나 들었던 것이다. 정말 행운이었다!
여기서 추수가 아니고 모내기 아닌가요? 추수전에는 비가 내리면 아니되거든요?? 한번 검토해 주세요...우리나라 사람은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니 말입니다.
p173 페이지 6째줄에 갑자기 따음표가 생겼어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간호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x) 나이가 들어 보이는 간호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o) 제가 더 틀린 글자가 많은데 그냥 이야기해보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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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소설] 시티 오브 조이 / 도미니크 라피에르 / 이재형 /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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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랑은 위대해요. 사랑은 나를 희생하는 거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를 기꺼이 버리는 사랑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제가 위대한 사랑을 하지는 못해도 사랑을 생각하며, 바라며, 느끼며 살고는 싶어요. 이 소설속 이야기처럼요.
불행은 또 다른 더 큰 재난만을 낳는 법이다. 석탄을 물로 씻어 낸다고 해서 색깔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가난이란 아무리 다른 색깔로 미화시켜도 여전히 가난인 것이다. - 19쪽
병이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끔직한 저주였다. - 21쪽
이 책은 영화로 먼저 나왔어요. 잠시 먼저 나온 게 아니라 아주아주 오래전에 나왔어요. 제가 이 책을 들고다니며 읽었더니 많은 분들이 '어, 나 이 영화 봤는데.'라고 하더라고요. 500쪽이 넘는 분량이라 참 오래도 들고다녔네요. 다 읽느라고 힘들었지만 읽는 내내 책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좋은 책은 두고두고 아껴가며 읽잖아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오랜 시간 읽으며 사랑과 희망을 오래오래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어요. ![]()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정말 행복하구나. 불평하지 말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저는 이야기속 주인공처럼 밥을 굶진 않잖아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혈을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늘 제 현실에 불만을 가졌어요.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한다고 불평하며 살았어요. 퇴근시간이 늦어서 책읽을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했고, 학력 때문에 대기업에 못 들어간다고 불평했고, 잘나지 못해서 싱글이라고 불평했어요. 모든 이유를 남에게서 찾았어요. 책읽을 시간이 모자란 이유는 퇴근시간이 늦기 때문이고, 대기업에 못 들어간 이유는 학력 때문이고, 학력이 낮은 이유는 가난한 부모 때문이고, 잘나지 못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라며 못난 불평을 하며 살았어요. 이 '비인간적인 도시' 또한 미친 도시였다. 의학 보고서에 의하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무 망설임 없이 매주일 혈액은행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 다 젊은 나이에 죽어 갔다. - 82쪽 하지만 저는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제 집은 아니지만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이 괴롭히진 않으니까요. 어쩌면 행복이라는 건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소설속 주인공처럼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 처럼요. 내가 행복해지는 기준을 조금만 낮추는 것,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가능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높은 기준을 만들어놓고 '나는 불행하다'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이제는 조금만 더 낮추려고요.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 어렵지 않아요. 소설속 주인공이 처음 인력거를 끌게 되었을 때의 감격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 인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처음 읽었어요. 에세이는 읽어본 적이 있지만 소설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인도라는 나라의 배경에 대해서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정치적 종교적 갈증이 존재하는 나라, 간디와 같은 성자가 있지만 정치적으로 부패한 나라, 인공위성도 만들었지만 국민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황소가 끄는 수레가 아니면 꼼짝할 수 없는 나라 인도. 아직 가보지 못했고 접해보지 못해서 더 신비한 나라에요. 특히나 부패한 정치인은 소설속에도 잘 나와있는데요, 생계를 담보로 파업하는 인력거군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정말이지 때려주고 싶었어요. ㅠㅠ 두 번째 빌린 돈으로 첫 번째 돈을 갚고 세 번째 빌린 돈으로 두 번째 돈을 갚고 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이런 일들은 농부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결국 그들은 자기네들의 땅을 잃고 있는 셈이었다. - 192쪽 인도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택시를 하루종일 몰아도 사납금을 내고나면 나면 남는 건 최저임금도 안 되는 택시기사나 소설속 인력거꾼이나 똑같았어요. 카드돌려막기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자들과 소설속 농부들이 똑같았어요. 결국 모든 원인은 정치인들의 부패니까요. ![]()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희망을 봤어요.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요. 나의 행복을 위해 욕심을 부리지 말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요. 행복의 기준을 약간만 버려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요. 가난해서 빚에 허덕이고 먹을 게 부족해도 자기보다 더 가난한 자를 위해 장례를 치뤄주는 소설속 인력거꾼들처럼요. 손꾸락버튼 눌러주셔서 고맙습니다. ^^ #nahabook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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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질만큼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인도의 캘커타..빈민가와 무질서, 매춘, 전염병 등이 난무하는 곳...이곳에는 온갖 가난한 자들이 다 모여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굶주림에 지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생활한다.
3년간 몰아친 가뭄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서 온갖 일을 다 찾아다닌다. 피와 심지어 뼈까지 사고 파는 사람들, 그것들을 팔아 가족들에게 줄 양식을 구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무 망설임 없이 매주일 혈액은행의 문을 두드려 거의 다 젊은 나이에 빈혈로 죽어가기도 한다.
변변한 의료 시설이 없어서, 치료보다는 절단이 더 쉽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의 신을 위한 축제를 열기도 하고 자신의 가족을 위해 힘든 일을 묵묵히 참아내며 희망을 품으며 살아간다.
'환희의 도시'는 손바닥만한 마당 주위에 지어진 사각형 나지막한 집들과 빨간색 지붕을 한 집..노동자 촌, 인구밀도가 1평방킬로미터 당 13만명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나병과 결핵, 이질, 온갖 영양실조로 평균 수명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경제적 곤란이 극심한 지역이다. 인구 70만명에 우물샘은 겨우 10여개..차도에 바싹 붙어 있는 거무스름한 물이 나오는 소화전에서 세수를 한다. 인력거를 끄는 사람들은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지만 인력거의 손잡이를 잡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하사리는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일을 하지만 행복을 느낀다. 인력거를 끌며 갖은 고생을 하는 하사리의 모습, 그리고 딸을 위해 지참금을 마련하여 제대로 된 결혼을 시키고 싶어하는 모습, 인도는 지참금이 없으면 중풍환자나 맹인, 나환자에게 시집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인디라 간디는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와 같은 관습을 여러 차례 금지시킨 바 있지만 그래도 그토록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습이 가진 무서운 영향력이리라. 하사리는 결국 딸의 지참금 마련을 위해 자기 뼈를 팔게 되며 결국 딸의 결혼식 날 숨을 거둔다.
'환희의 도시'에 거처를 마련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려고 온 폴 랑베르 신부는 구멍 난 기와로 덮여있는 집에서 인도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빈민촌에서 쓰는 말 을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도를 드린다. "아낭 나가르의 예수여, 이 빈민굴이 그 이름에 어울리도록 진정한 "환희의 도시'가 되도록 해 주소서." 랑베르는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 근육은 눈에 띄게 야위였고 몸무게가 수 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랑베르는 대부분의 아낭 나가르주민들과 다를바가 없게 된다. 나환자 촌에서 음식 대접을 받은 랑베르 모습이 떠오른다. 문드러진 손과 진물나는 모습들 앞에서 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으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눈앞에 선해서 내용을 읽은 것뿐인 나 역시 속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랑베르는 이 상황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사랑한 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그리고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나환자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 글의 끝에서 랑베르는 인도 내무부에서 귀화 증명서를 받고 인도 시민이 된다.
죽어가는 여인에게 약을 공급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랑베르의 모습, 나환자 수용소를 세우려는 계획을 테레사 수녀에게 말하며 기뻐하는 모습, 테레사 수녀와 함께 나환자를 돌보는 모습은 가히 존경스럽다. 사람이라기보다 신에 가까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이라면 정말이지 상상도 못할 일들일 것이다. 나같았으면 아마도 단 하루도 못살고 환희의 도시를 탈출했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감수한 봉사와 나눔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환희의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환희의 도시'는 이 책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생활수준은 놀랄만큼 향상되었고 사회 의료 시설도 들어와 있으며 직업 훈련소, 무료 급식소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환희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쉽사리 포기하거나 절망스러워하지 않았다. 가난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 나눔,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기쁨..그들은 가슴속에 늘 기적 같은 희망을 바라고 살아가기에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웃을 수 있었고 그 희망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고 빛났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도 그들을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눈다면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기적 같은 일들은 더이상 기적이 아닐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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