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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지로 만든 책이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잘 쥐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 생태, 공동체적 삶에 관심이 많아지다보니 이러한 꾸밈없는 재생지 서적을 보면 직접적 이득을 취한 것 마냥 기쁨이 일렁인다. 재활용을 생각해서 표지에 코팅도 하지 않았다는 출판사 의중을 읽으니 배시시 웃음도 난다. 출판사 이름에서 흙냄새가 날 것 같은 친근함도 든다. "교육공동체 벗". 공동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 단어에 스윽 붙어 한 컷에 담겨보려는 주인공의 친구처럼 '벗'이란 글자까지 달라붙어 있으니 왠지 든든하고 따뜻하다.
책의 종이 종류부터 출판사 이름까지, 모두 자연과 인간의 냄새가 난다. 이 책 속에 담긴 글들이 예측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경쟁시대, 석유시대가 끝나고나면 우린 어떻게 살아갈까? 아마 그 생각까지 하는 사람은 얼마 안될 것이다. 아침에 눈 겨우 뜨고 하루를 '버텨내는' 현대인들에겐 지금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도 빠듯하다. 내가 죽고 한참 뒤의 삶까지 내다볼 여력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하며 산다. "왜 사는가?",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 숨이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생물학적 생존에도 별 관심이 없는데 이런 고차원적인 질문들은 더욱 할 마음이 없다. 더 머리 복잡하게 만들기 싫을테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왜 이런 질문들에 짓눌리는지, 결코 물질적인 것들에 벗어날 자신도 없지만 위 질문들의 답을 좇아 생각하다보면 결론은 항상 '그래, 자연이야. 함께 하는 삶이야.'로 나버린다. 앎(생각)과 삶(실천)이 일치하지 않는 나의 용기 없음에 부끄러워 어디가서 말도 못할거면서 혼자 세상의 고민을 다해본 것마냥 무거운 표정을 짓고 앉아있다. 혹시나 누가 물어보면 실천도 못할 거면서 왜 그딴 생각하냐는 핀잔 들을까봐 이 생각과 결론들을 머릿 속에만 꼭꼭 동여매둔다. 매듭이 언제 풀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아직 용기가 없다. 그래서 여기 책에 글을 쓴 청소년들의 생각과 삶 앞에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심지어 초라해보이기까지 했다. 하필 내가 선생이니 더 그럴 수밖에.
제도권교육에선 그래도 교사라는 자리가 학생보다는 힘이 있는 입장인지라 학생들에게 동등한 교육의 주체로 수평적 시선을 던진기보다 '감히'라는 부릅뜬 시선을 던지며 학생들을 윽박지르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 스스로 죄책감은 가진다는 사실이다. 아이들도 인격체이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 즉 앎은 확고히 가지고 있으나 삶에서 나는 실천을 보여주지 못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보는 것이 미안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거해 제도권 학교를 벗어난 17명(팀) 청소년들의 고함이 내 귓속에서 자꾸만 쟁쟁거린다.
머릿말을 읽을때까지만해도 불편했다. 과연 학교가 '교육불가능' 지경까지 이르렀나라는 의문에서 더 나아가 반감까지 들어 미간이 찌푸려졌다.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레 극단적으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신랄한 비판만 퍼붓겠구나 싶었다. 더구나 아이들이 쓴 글이라면 그들의 입장에서 '학교'란 존재에 대해 결코 좋은 소리 나올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난 지금, 위의 생각을 가졌던 저 순간마저 부끄럽다. 저런 생각 속엔 '아이들은 미성숙하다. 그러니 현실보다 이상적인 말밖에 할 수 없다.'라는 선입견이 깔려있었고 이미 나도 학교를 비호하고 싶어하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음을 보여주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름 아이들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며 사는 축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이 위선이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내 생각을 누가 알아채기라도 할까봐 얼른 생각의 두껑을 닫고 특징없는 군중 속에 숨어는 자세를 취한다.
이 책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에 단지 '대견하다', '기특하다'라는 말따위는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겉칭찬 속에도 '너희들이 감히 그런 생각까지 해?'라는 생각이 깔려있어야 나오는 말일 것이다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미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을 그들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들이 나같은 어른보다 훨씬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당당해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위선을 떨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대단하고 기특하고 훌륭하다. 그런데 그들이 부탁하는 것이니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그만하련다. 단, 그들의 글솜씨만큼은 정말 칭찬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나, 싶을정도로 17개의 글이 하나같이 백일장 대회 나가면 수상감의 글들이다. 깜짝 놀랐다. 이런 유려한 글솜씨가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한층 생생하게 전달해줄 수 있었다.
부제에 '교과서에 없는 세상을 만나다'라고 되어 있다. 그들이 만난 세상은 온실을 걷어낸 냉혹한 현실이었고 우리의 삶 그 자체였다. 10대이지만 조금 일찍 현실을 보았고 거기서 분노했으며 분노를 연대와 참여를 통해 함께 했다. 어른들이 '소영웅주의'에 빠졌다고 폄훼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런 어려운 단어따윈 모른다. 단지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가슴이 하라는대로, 손을 잡았고 참여했을 뿐이다. 기득권이 만든 패러다임에 갇혀 당장 내 일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못할만큼 복잡하고 바쁘게 만들어놓은 매트릭스 속에서 우리는 앞만 보고 경쟁에서 이기는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누가 쓰러지고 있고 부당하게 파괴되고 있는지 다른 사람 다른 지역을 향해 시선 한번 돌리기엔, 또는 귀를 한번 열기엔 짬이 없는 '내 코가 석자'인 현실이라서.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직 새 눈과 새 귀를 가져서 그런지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그래서 가던 길 멈추고 그들의 다친 상처에 안부를 묻는다.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등을 토닥인다. 무시무시한 포크레인과 대기업과 싸우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고압전류로 마을이 사라질 운명에 처한 밀양 송전탑 사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에게 곤봉과 해고를 휘두른 쌍용차 사태 등 혹시나 여기에 관심을 표하면 종북세력으로 묶이는 팍팍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대단한 용기를 보여준다. (이런 표현, 그들은 싫어할테지만.)
뭘 몰라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알게 되니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알고나면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럴 것 같아서 미리 정보를 차단하고 사는데, 무관심이란 무기로 자신을 변명하며 내 일만 챙기면 사는데말이다. 답은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린다. 더디가도 함께 가야하는 게 맞다. 더디가야 함께 갈 수 있고 생태가 원활히 순환할 수도 있다. 교환경제가 만들어 가고 있는 효율이 어쩜 폐허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여기 한 녀석의 말처럼 우린 다시 자급자족, 자립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그나마 폐허를 향한 맹질주를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그 생각에 동의한다. 구체적인 실천이 안되고 있지만.
이 글들을 읽으며 다양성, 공동체, 자연주의 이런 미래지향적 단어들이 떠올랐다. 내용들에서도 흙냄새가 났다. 그들이 외친 외면하지 않을 권리, 이는 삶의 주체이기에 외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제도 교육 안에서 나의 역할이 한정적이겠지만, 심적으로 이들을 지지한다. 그들의 방식과 생각에 모두 동의하고 전적 지지를 표하는 것까진 용기없는 어른이라 주저하지만 이 아이들이 미래를 조금이라도 희망으로 유턴시킬 수 있는 밀알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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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지 않을 권리。청소년이 바라본 교과서 밖의 '현실'
"기특하다"고 하는 시선도 거부한다. 대신 이 책의 필자들은 말한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 학생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대해서 무관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에겐 우리의 삶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에 대해 외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책의 구성; 책의 구성은 사회, 환경, 교육을 중심으로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자가 학부모나 필자와 같은 학생신분이라면 사회, 환경 분야보다 교육에 더 관심이 갈 것 같다. 기자, 학자, 교사의 시선이 아닌 학생 그들의 시선으로 비춰본 교과서 밖의 현실의 교육은 어떤 모습일까.
책의 내용; 3부 대안을 찾아 나서다. 부분이 바로 교육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현재 공교육의 문제점과 제대화된 교육이 오히려 넓고 포괄적인 열린 교육을 방해할 뿐 아니라 어느 부분을 수정하는 차원을 넘어선 시각으로 보인다. 대안학교, 공교육 거부(대학 입학거부), 농사 유학 등 학교밖에서 진정한 수업(?)을 받고 있는 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져 있어 구체적이라 몰입도가 상당하다.
추천이유; 1,2부의 내용 역시 사회, 환경부분은 학생들의 문제 뿐아니라 인류가 함께 고민되어야 할 부분으로 교사, 학부모, 학생이라는 '신분'을 떠나 모두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적합한 도서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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