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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성숙'과 '배움'을 성찰하는 인문 학자와 매일 사춘기 아이들과 마주하는 정신과 의사, 일본의 두 지성이 들려주는 '아이와 부모', '양육과 교육' 이야기. 성찰과 근원적 대안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대담집.
이 시대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출산의 원인은? 아이가 문제일까, 부모가 문제일까?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우치다 타츠루와 나코시 야스후미는 병든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이며, 아이 문제의 99%는 어른의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모성애란 환상일 뿐, 그러니 부모로서의 훈련이 필요하고, 부모를 역할로서 받아들이라는 것. 일본 사회의 폐해가 만든 어긋난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병든 어른들을 양산했으며, 병든 어른들의 미성숙한 커뮤니케이션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토론은 최악의 교육법, 지성은 곧 정서, 뇌보다 신체가 중요하다 등, 뻔하고 진부한 자녀 교육에 대한 노하우가 아니라, 의외의 각도에서 부모와 아이의 문제를 조망하는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며 깊이 있는 대화가 돋보이는 책.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본의 가정과 사회, 가족과 어른들의 모습에서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게 됩니다. 부모와 아이, 가정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과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일깨워 주는 교육적이고 철학적인 담론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깨우침을 얻게 된답니다.
이제 슬슬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사고를 치지는 않는지, 혹시 나쁜 길로 가진 않을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게 되잖아요~ 흔히 아이의 성공은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의 손에 달렸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렇게 아이에게 엄마의 하루를 바치다 보면 어느새 양육을 넘어 엄마의 ‘희생’이 되기 시작하면 엄마, 아이 둘 다 곧 지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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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중학교..
과연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
그리고 지금
14세의 아이를 두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접한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라는 책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또 아직은 어린 나의 자녀의 교육관을 잡아 줄 수 있는 도움이 될 듯 하다.
어릴때나, 14세나, 18세나, 대학생때나, 성인이 되나
가장 중요한건 대화..이다..
특히..자아의 완성이 되는 14세의 경우에는 누구를 만나 어떠 대화를 했는지가
자아 완성의 중요한 부분이 되지 않나 싶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생각하는 우리의 아이들을 가진 부모에게
꼭 14세가 아니더라도 추천하고 싶은..
그런 잔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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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나이때, 나의 부모님은 날 이해해주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부모가 되면 내 아이를 잘 이해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난 도통 요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 왜 저럴까 싶고.. 난 땐 안그랬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중학생 아이를 둔 것은 아니다.... 다만 주변에 어린 학생들이 많다보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야한다. 잘 들어주야한다..무수히 많은 좋은 이야기들이 티비와 책에서 쏟아져 나온다..막상 그 상황이 되면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고....화도 내고.. 내가 경험한 상황을을 되짚어가며 그들을 이해하려 했던 내가 지칠 때 쯤...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나와 그들은 다르다..다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나의 어릴 적을 생각하기만 하면 안되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본인의 신체적,정신적 변화에 혼란을 겪고, 아이들도 어른들고 서로 갈들과 해결을 겪으면서 성장해나갈 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교육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예전에 대학교 때 배웠던 교육심리, 상담심리를 생각하게 되는데... 어려운 이론적인 이야가기 아닌 현실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소개가 책을 읽기 쉽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른스럽고 성숙해있다. 내가 하는 말을 생각보다 잘 기억하고 담아두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민감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갈 순 없다.
아이들마나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부모는 자기 아이의 주변변화나 생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해야한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해서도 안되고 일방적으로 이야기만 해서도 안된다.. 막상 사춘기의 아이를 키울 때 쯤 되면 다시 이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중학교 교사인 언니에게 선물로 줘야할 듯... 선생님은 제 2의 부모라는 말이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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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제목을 보고 문듯 생각난생각 " 난 14세 아이가 없는걸? "
일단 읽어 보자는 심보로~ 술술 읽어 나갔다...
역시나.. 우리 아이에게는 당장 소용이 없지만, 울 딸인 초원이가 14세가 되었을때
한번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이 책에 대한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행동을 하는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
요즘 같이 아이 교육에 대해서 높은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조금 더 낳은 아이가 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좋은 참고 도서 인 것 같다~
참고로 무조건 적인 주입이 아닌 우리 아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갖는
모든 부모들이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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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서문에서 '어떻게 시장으로부터 학교 교육을 지킬 것인가?'를 늘 고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번역서라도 한국에서 요구하는 것은 한국에 이런 주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닌가 추론한다. 그는 교육이란 사람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극복하고 충실하고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범용성(汎用性)'이 높은 '사는 힘'을 익히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기업을 위한 공장이 아니라고.
본문에서는 나코시 야스후미(정신과의사이자 평론가)와의 대화를 통해 교육과 사회에 대해 익숙한 주장들도 있지만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의견들도 많다. 전체를 읽으며 그들의 통찰력과 비판정신에 동의하고 수긍하는 부분이 많았다. 몇가지만 간단히 얘기해 보자면,
<부모가 병에 걸렸다> 아이들도 행동하는 방식을 부모로부터 학습한 것이다....... 주위에 정신적으로 병이 든 아이들을 보면 엄마와의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아이들은 이래저래 신호를 보내고 있는 데도 엄마가 그것을 무시하지요...... 부모는 자기가 수신하고 싶지 않은 신호는 선택적으로 무시하거든요...... 아이가 발신하는 메시지 가운데는 아직 아이 자신도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모르는 잡다한 웅성거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를 내가 원하는 기준에 맞춰 '그래서 맞다는 거야 틀리다는 거야, 좋아 안좋아?' 하는 식으로 얼른 결론을 내려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스스로도 정확히 인지못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엄마에게 설명하겠는가?
<14세는 자신의 신체에 위화감을 갖는 나이> ......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신체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그 때 어떻게 조정을 해나가는가, 거기에 인간이 성숙하는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14세 무렵은 정신 연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가는데 신체는 여전히 아이인 상태에요. 읽고 있는 글이나 책을 보면 엄청난데 밖에서 보면 완전 까까머리 중학생..... 그러나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알게 될 때 그 위화감이 차츰 완화되어 가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 또한 모성은 환상이고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성애라는 것은 일종의 연기역할이고 그렇기에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으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통한 가정교육이 기본이라고 얘기한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다가올 부모들에게 많은 점을 상기시켜 주고 편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곧 14세가 될 아들을 둔 나에게도 그랬다고 할 수 있다. 아이를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나의 틀에서 해석하려 하지 말고 아이의 도움을 청하는 메시지를 잘 수신해 보자. 내면의 모순을 지니고 성장해 가는 나이이니 연습을 통해 모성의 역할을 하려고 애쓰며 가족내에서의 일상을 소중하게 다루자.
어떤 이에게는 뻔한 메시지일 수 있는가? 뻔하더라도 꼭 한번 읽고 생각해 보라고 감히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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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엄마에게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라는 제목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책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우라나라 단어로 된 일본어를 읽고 있는 듯 매끄럽게 읽어지지가 않았다. 문장읽기에 집중하다 내용을 계속 흘려버린 듯 다 읽고서도 남는 것이 없다. 독서통신 교육 교재로 받은거라 한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두번째 읽으면 좀 다르게 읽어질지 모르겠다.
두번째 읽고나서
문장은 여전히 낯설었다. 대화체다 보니 일본적인 표현들은 여전히 거슬리고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에겐 역시 우리나라 말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두번째가 되니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문학자들의 어려운 용어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 보이는 내용들이 참 좋다. 곁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육아서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가족이란 무엇인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것 같다.
이 책은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 교수님과 사춘기 아이들에 대한 풍부한 임상 사례를 가지고 있는 나코시 야스후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대담집이다.
책의 거의 말미에 편집자가 '대답이 아직도 안 나왔나요?' '어디가 닭이고 어디가 달걀인지 가르쳐 주세요'라며 재촉하는데 그런 사고방식이 안된다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픽 하고 웃어버렸다. 그때쯤 나도 도대체 결론은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이 글머리에 나온든, 글의 끝에 나오든 요약되어 제시되는 것에 익숙한 나는 두 지식인의 이야기가 흐르는 물처럼 죽 이어지기만 하는 것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코시 선생님이 아이들의 경우 여러가지 이야기를 듣고, 그 전체에서 전하고 싶은것을 포착하는데 부모들은 '결국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요?'하고 이야기를 100분의 1로 정리해 버리고 만다고, 그 말은 곧 그것밖에 듣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했을때 나는 남편과 나와의 대화를 생각하면서 격하게 동감했다. 남편이 내 이야기를 한문장으로 요약해버리면 항상 답답하고 서운한 느낌이었는데 결국 나도 이야기를 정리하고 요약하는데 익숙한 것이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나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한마디로 단순화 시켜버리지는 않았을까? 아이는 허탈함과 이해받지 못한 답답함을 가지고 나와의 대화를 마무리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화의 시작은 상대방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는것에서 시작하고, 미묘한 표정, 근육의 움직임, 혹은 공기의 흐름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는 거라는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말하는 것만 기다리느라, 자기의사를 똑바로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아이가 익혔으면 해서 아이가 발신하는 많은 신호를 무시하기도 했었다.
우치다 선생님은 가족끼리 대화할 때의 기본은 '배 안 고파? 밥 있는데'라든지 '목욕 할래? 물 받아 놨어.' 또는 '안 졸려? 이불 깔아 놨어.' 이런 생리적인 쾌락의 제공과 불쾌함의 제거에 있다고 한다. 이런게 안되면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 하는 최저한의 욕구를 가족 구성원이 제공할수 있으면 그 가족은 기본적으로 좋은 가족이라고 한다.
가족은 상대가 신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현하는 다양한 신호를 읽으면서도 어떤 거리랄지 절도를 갖춘 공간으로서 기능을 하는곳이어야 하는데 요즘은 감정을 모조리 상대방에게 내던지는 집이거나 서로에게 완전히 무관심해져서 개인의 영역만을 지키며 접촉하지 않으려는 집이되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집은 과연 어느쪽일까?
아이에게 너무 손대지 않기를 아이를 믿고 뒤로 물러나서 보고 있기를 권한다. 가정교육이란 일상생활이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생할에 대한 감각을 자기안에 가지고 있도록 해주면 나머지는 아이스스로 배우고 자라나는 것일까..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아이가 '있어야 할 그리고 그래야 할' 모습도 제시하지 않고 방임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는가? 이런 의문들에 얼마간의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했는데 나에게는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멪음까지 생각해보는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책속에서 - 16 페이지 '주저앉다'라는 말은 무도용어로, 원래는 공포와 긴장이 너무 심한 나머지 발바닥이 바닥에 달라붙어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넓게는 '어떤 대상이나 문맥에 의식이 고착해서 더 이상 넓은 프레임 워크로 전환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것'도 의미한다. 즉, 너무 무서운 나머지 얼어붙는 것도, 자신의 좁은 식견으로 넓은 세계를 판단하는 것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대양을 모르는 것도 다 '주저앉음'의 여러 양태이다.
- 31 페이지 비평하는 입장의 근본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주 냉혹하게 현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어딘가 무의식적으로 사태가 점점 나빠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 50 페이지 미움이라든지 화라든지 '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원념은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매우 관계가 깊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애증극이에요. 하지만 그들이 부모를 죽이는 것은 그게 원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적인 관계가 전혀 움트고 있지 않았어요. 혹은 발달하지 않았어요. 인간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를 죽일 수 있는 겁니다.
- 55 페이지 '상대방을 투명하게 만드는' 감각은 아마 외국보다 일본이 훨씬 뚜렷해서 현대 일본 가정이 기묘한 상황으로 유지되는 한 가지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59 페이지 부모는 자기가 수신하고 싶지 않은 신호는 선택적으로 무시하거든요. 부모 자시니 허용 가능한 메시지만을 수신하는 셈이지요. 자신에게 불리한 신호는 자동적으로 단순한 '소음'으로 변환되어서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의 소리로서 귀에 와 닿지 앟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투명'한 존재로 만드는 매너를, 아이들은 자신들을 태연하게 '투명'한 존재로 만든 부모로부터 배우는 게 아닐까요.
- 60 페이지 '광기가 심한 사람은 발병하지 않는다.'
- 61 페이지 신체와 정신이 딱 평형 상태를 유지한 채로 체계가 잡혀서 광기로 나타나는....... 그렇습니다. 그런 거에요. 그 상태에서 딱 균형이 잡혀 버리죠. 전형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기로 하죠, 저는 지금 제가 운영하는 쿨리닉에 찾아오는 어머니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물론 말이 통할 때는 그 이야기의 전체에서 제가 전하고 싶은 것을 아이가 포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렇게 해 보렴'하고 가벼운 결론이라도 말하고는 '그밖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니?'라고 물어도 아이는 '아뇨, 오늘은 이것으로 됐어요'라고 말해요. 아아의 경우에는 말이죠. 그런데 부모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결국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요?'하고, 이야기를 100분의 1로 정리해 버리고 말아요, 이 말은 곧 그것밖에 듣지 안았다는 뜻이에요.
- 216 페이지 가정교육이라는 게 바꿔 말하면 일상생활이라는 거에요. 천에 주름을 잡는 일이 필요하다면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어느 샌가 반드시 주름이 잡히지요. 주름이 바르다고 말들 하는데 몇 번이고 몊 번이고 잡지 않으면 안 잡혀요. '가족은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먹읍시다'하고 아무도 필사적으로 말하지 않지요. 하지만 그것이 가정교육의 첫걸음이에요.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거나, 같은 시간에 목욕을 한다거나, 같은 시간에 밥을 먹는다거나, 잠을 잘 때는 반드시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는 것. 이런 당연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역시 일상생활이 없으면 가정교육을 할 수 없습니다. 가정교육이 없으면 커뮤니케이션도 성립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도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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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모들에게 일본의 두 지성이 들려주는 '아이와 부모' 이야기 모성은 환상, 부모는 역할이다!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우치다 타츠루 · 나코시 야스후미 지음, 박동섭 옮김 / 2013 / 에듀니티
끊임없이 '성숙'과 '배움'을 성찰하는 인문 학자와 매일 사춘기 아이들과 마주하는 정신과 의사, 일본의 두 지성이 들려주는 '아이와 부모', '양육과 교육' 이야기. 성찰과 근원적 대안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대담집
사실 대담집은.. 대화 사이사이의 의미를 더욱 헤아려야하기에 일부러 선택하지는 않는 편이고 인문 학자의 글은.. 일상의 그것보다는 한 차원 높고 깊게, 혹은 어렵게 풀어간다는 선입견이 있기에 인문 학자와 정신과 의사의 대담집이란.. 시작부터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우치다 선생님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은 이런 부담스러운 마음을 눈 녹듯이 녹여주며 "자 한번 읽어봐~" 하며 어루만져 주는 듯 했다.
이게 무슨말일지? '한국을 무시하나?' 싶어 순간 발끈하는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이것은 한국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학교 교육은 시장 원리에 종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말하는 '시장 원리'란 '학교는 아이들에게 시장이 요규하는 지식과 기술과 행동 방식을 가르쳐야 하는 곳이다'라는 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이 있으면 학교에서는 영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컴퓨터 지식이 필요하다면 컴퓨터를 가르쳐야 하고, 금융 지식이 필요하다면 금융 공학을 가르쳐야 하고, 요양 기술이 필요하다면 요양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등등. 이렇게만 말하면 꽤 합리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시장의 요청'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요청'이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은 논리입니다. (p.7)
지금, 일본 가족의 병적증상! 두 저자는 '일본인 전체의 심리적인 미성숙'을 원인으로 지적하며 말한다.
'미성숙'은 '병적'인 양태를 취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는 병이 아닙니다. 성숙하면 되니까요. 일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성숙'이라는것이 아마 이 책을 통해 저희들이 이끌어 낸 실천적 결론이 아니었나 합니다. 일본 사회는 사람을 성숙하게 이끌기 위한 교육 과정이 없고, 이를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중략) '어른'은 매사를 자신의 개인적인 기준에 기초해서 판단하고 그 책음을 혼자 떠맡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어른이 아닌 사람들'의 부주의나 날림 공사를 묵묵히 치우고 정리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니까 그만큼 '여분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른'을 키우기 위한 교육 시스템이 현재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p.12-13)
'한국이나 일본이나 교육이 직면한 위기 구조는 똑같다' 는 것을 알고 조금은 위로 받았다는 우치다 선생님!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편안하게, 그러나 집중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 '옮긴이의 말'까지 어느 하나 흘려보낼 것이 없는, 모두 새겨야 할 글들로 가득찬 책임을 느꼈다.
주위에서 정신적으로 병이 든 아이들을 보면 엄마와의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아이들은 이래저래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엄마가 그것을 무시하지요. 그런데 그 아이에게 있는 '승인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은 부모가 반응을 합니다. 성적이 좋다든지 스포츠를 잘한다든지 하는 부분 말이에요. 한데, 아이가 의기소침해 있다거나 괴로워하는 마음을 전하는 신호에는 반응하지 않아요. 이런 메시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데 실패했다는 무언의 비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부모는 자기가 수신하고 싶지 않은 신호는 선택적으로 무시하거든요. 부모 자신이 허용 가능한 메시지만을 수신하는 셈이지요. 자신에게 불리한 신호는 자동적으로 단순한 '소음'으로 변환되어서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의 소리로서 귀에 와 닿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선택적으로 '투명'한 존재로 만드는 매너를, 아이들은 자신들을 태연하게 '투명'한 존재로 만든 부모로부터 배우는게 아닐까요.(P.59)
부모가 '승인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반응을 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되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결국 부모가 못했다는 무언의 비난때문이라니.. 정말 '무언'의 그 느낌이었던것 같다. 그러한 불필요한 생각때문에 아이의 '신호'가 '소음'으로 변하고 있다면.. 생각해보면 참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다.
그것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토론이란 교육방법에 대해서..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성숙한 어른'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부모 외의 '어른'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중요한 얘기를 해준다.
'안다'와 부합한다'는 다르지요. 자주 댄스에 비유하곤 하는데 스텝이 맞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어떤 스텝을 밟았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고, 다음에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있다는 거예요. '부합한다'는 것은 그런 거지요. 지금까지의 일을 안다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이 생겨서 동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p.131)
꼭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관계에서 이렇게 '부합'하는, '동조'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텝이 딱딱 맞는것처럼..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좋지만 나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어보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스텝을 그냥 맞출 수 없는것처럼 ㅎㅎ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데 왜 이 책의 제목은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는데 후반부에 가면 사춘기 아이들이 심리를 재미있게 드러내주고 결론내어준다.
'신체는 아이인데', '까까머리 중학생인 주제에' 하는 그 부분, 그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뿐이에요. 거기에 어긋남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알알준다면, '어긋남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이 한 단계 위의 차원으로 밀려 올라가서 그 자체가 고찰과 기술의 대상이 되죠. 그때까지는 '가상 세계의 나'와 '몸둥이를 가진 실제 나'가 분열하고 있었지요.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가상 세계에서 어른이 되어 있는 나'이니까 주위의 우둔한 인간들에 대해 증오하고 경말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자신이 아직 아이라는 사실이 주는 괴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하지만 자신과 똑같은 종류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친구를 만나면 '괴리라는 현상 그 자체'를 기술하거나, 고찰하거나, 혹은 그 사실에 웃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져요. 그때 '괴리라는 현상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는 '나'는 이미 '가상 세계의 나'도 아니고, '몸뚱이의 나'도 아니지요. '제3의 나'가 거기에 출현합니다. 중립적인 화자랄까, 제3장라고 해야할까, 한 발 거리를 두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화자예요. 이렇게 되면 까까머리 중학생인 자신에게도 익숙해질 수 있게 된다고 해야 하나, 용납이 되는 거지요. '뭐 어때, 까까머리 중학생이 사드를 읽으면'하고, '그럴수도 있지' 하고요. (p,168-169)
* 사드 : 가학성 변태 성욕자의 화신처럼 알려졌으나 19세기 말의 독일 의학자들과 20세기의 초현실주의자ㆍ실존주의자들의 노력으로, 묵살되었던 그의 문학에 새로운 평가가 내려지고 이미 고전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의 작품엔 인간의 자유나 악의 문제가 철저히 추구되고, 성 본능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이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얘기해주고 있다.
'나'라는 화분안의 흙은 어떤 흙일가?
<14세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는
"아이에게 그렇게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해주세요~"를 수없이 말해주는 육아서와 달리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 해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때로는 이 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 몇번이고 다시 읽고 생각하기를 반복해야 할 정도였으나 이해하고 나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이렇게 하지 마세요'에는 엄청나게 무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되기도 하고..
좋은 거니까 하는 것도 좋지만 안좋은 그 어떤것의 중요함을 깨닫고 실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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