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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용카드가 연체되었습니다. 연체 금액 납부를 안내 받으시려면 1번” 유난히도 어눌한 발음이 나의 비웃음을 샀다. 또 시작인 모양이다.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한 보이스피싱. 초창기에는 늘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외국인이라고 하기도 뭐한 조선족을 끼고 이루어졌었다. 그러잖아도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존재하던 부정적인 반응이 증폭돼 경멸 수준에 이르기 시작한다.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두를 대해야 한다 등의 명제는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당위성을 상실하고야 만다. 오늘날 조선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족을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한다. 그렇지만 완전히 타자라고 여기기는 뭐하다. 그들이 분명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것을 더 많이 닮긴 했지만 어쨌건 그들은 우리와 어렵잖게 의사소통을 한다. 때로는 조선족이 중국인보다 더 악랄하다고들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말을 무기로 감쪽같이 우리를 속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들이 조선족이라서는 아닐 거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도 나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느 집단에나 비슷한 비유로 존재하기 마련인 것들을 우리는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 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답하기가 쉽지 않거늘 하물며 집단에 관한 질문이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선족에 대해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체성이 우리의 슬픈 역사와 깊은 연결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강을 건너 대륙으로 진출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패망 이후 현실 도피적인 이동은 인구의 숱한 이동 중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 시점에 대한 고찰은 중요하다. 조선족에 대한 정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조선족은 비교적 최근에 이동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보면 좋을 듯했다. 실제로 그들은 이동은 했지만 북한을 자신의 조국으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했다. 대부분이 북쪽 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머무는 객체가 아니었다. 일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시절에는 저항의 주체로서 힘을 보탰다. 특히 중국공산당 쪽에 동조하는 입장을 많이 보였는데, 여기에는 토지에 대한 인정이라는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타지에서의 버거운 생활에 내가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토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했다.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 힘겹게 일하고 겨우겨우 먹고 살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국민당에 대한 두려움이나 반감 역시 토지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힘들게 가지게 된 토지다. 패권을 쥔 세력이 바뀌면 또 다시 무일푼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공산당 측에 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발발 시에도 중국공산당의 관점을 많이 받아들였다. 미제 침략에 대항하고 있는 북한 측을 ‘선’이라 해석했고, 적지 않은 수가 북한을 위해 직접 목숨 바쳐 싸웠다. 오늘날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중국에 정착한 조선인을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사용된 정치적인 용어다. 중국공산당의 이와 같은 결정과 함께 조국으로 남과 북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해야만 했던 조선족동포들의 문제는 표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양상을 지니게 된다. 그렇지만 중국 국적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이 100% 중국인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 정부의 일원화 정책 하에서 국적과는 별개로 조선족은 차별을 당한다. 중국 사회의 일원이면서도 타자일 수밖에 없는, 복잡한 그들의 태생은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계”라는 둥 “동포”라는 둥 우리와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안간힘을 쓴다. 반대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외면하기 바쁘다. 불운했던 역사로 인해 조국을 떠나 생활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잊혀졌다. 스스로를 조선인으로 생각한다는 그들이지만 조선(비록 남과 북으로 나뉘긴 했지만)은 그들을 조선인으로 인정치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린 달라져야 한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경제력 한 가지만을 가지고 막연히 사람을 재는 행동을 더는 못할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음을 기억한다면 조선족 문제에 대한 접근 역시 조금 더 수월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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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보다 능동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국민당군에 쫓긴 중국공산당세력의 회생의 배경엔 조선인의 막대한 영향과 희생이 있는줄 이제야 알았다. 책들.. 마오 미완의 파시즘 장준하평전 북한현대사 문익환평전 아리랑-김산 운남소수민족의 제의와신화 대쥬신을 찾아서 아리랑 - 조정래 백록원 마오의제국 페이지137 한반도분단 구조화과정3단계 꼭 알아야할 것 같다. 서중석교수님 책의 전신같다. 한반도의 분단은 크게 3단계 과정을 거쳐 구조화됐다. 1단계는 해방후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꼐 위도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된 것을 말한다. 당시의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 따라 연합국이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우해 편의에 따라 잠정적.임의적으로 나눈 것이었다. 2단계는 해방 이후 3년 동안 미소 갈 갈등이 노정되고 남북한 간에도 타협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1948년 8월과 9월 남북한이 각각 단독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잠정적.임의적 경계선이었던 38선이 행정적.정치적 분단선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3단계는 6.25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간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에 된 결과로서 38도선 대신 새로이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분단된 것이다. 페이지136에서 당시 38선이 페인트로만 된걸 보면 좀 이상할 것이다. 인민군 제4사단 제18연대는 서울을 3일만에 점령했다 주로 연변지역 출신이었다. 인민군 18연대는 서울을 3일만에 점령하는데 선봉부대 역할을 했다. 제6사단은 개성과 남한 서남부를 점령하는데 참여했다. 토지의 무상분배가 동북지역에 정착한 가난한 조선인 농민들을 위해 중국공산당이 베푼 시혜라면 조선인들이 국공내전에 적극 참군 참전하고 나선 것은 그에 대한 보답인 셈이다. 조선인부대는 당시 북한군 중 전투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아마 조선인부대가 없었다면 김일성이 남침을 연기했거나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동북아상황의 중심에 있던 연변의 조선민족은 토지소유권을 부여받은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50년대 중반 중국공산당이 농업합작사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조선족동포들은 개개인이 소유한 토지를 합작사에 넘겨야했다 조선족동포들은 당시까지 견지하고 있던 다중 조국관을 버리고 유일한 조국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다. 이렇게 뛰어난 전투력과 정신을 가진 연변조선족 특히 우리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미아리를 넘어 서울에 진군한 북한군은 북한에 살던 사람들이 아닌 연변조선민족이 만든 군부대였다. 페이지47에서 맥아더장군의 일반명령 제1호인 38선을 구획한 조치도 알고보면 일본대본영에서 기획한 것이라는것 . 베이징올림픽때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나올때 아나운서가 저들은 중국인이라고 몇번이나 말한것이나 백두산근처의 공항을 조선족이 있던 곳에서 다른곳으로 이동해 조선족의 반발을 산 것이나 장개석이 조선족을 박대한 것이나 모택동이 조선족을 포용한 것이나 모두 이민족을 중화로 흡수하기 위한 수작인데 우리는 속고있었던 것이다. 조선족이 북한을 진정한 조국으로 생각하게 했던 배경도 이 책엔 자세히 나온다. 우리는 70-8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세웠는데 이것도 마지막 황제 '푸이'를 만주국의 황제로 세울때 일본이 만주국의 발전을 위해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세운게 그 모태인걸 모르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1949년 9월21일 북평을 수도로 정하고 그 명칭을 북경으로 고쳤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국민당정부세력에 의해 최악의 순간까지 밀렸던 중국공산당 세력은 결국 조선인들의 목숨을 마다않고 전투에 임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북한이 후방기지로서 역할해준데 힘입어 1847년 대반격을 취할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까지 조선인들의 역할은 타의 추증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를 이책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조선민족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할까 그들의 역사를 어떻게 고찰하냐기보단 어떻게하면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이 과연 한국을 그들의 진정한 조국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게끔 포용정책을 세우느냐가 문제가 아닐까 다시 한 번 세울수 있게할 수 있는 시금석을 제시한 책이라 생각한다. 주변이 시끄러워 제대로 그들의 정체성과 현재 우리의 자세에 대해 잘 적으려고했는데 두서없이 쓴 것 같아 아쉽다 다음엔 좀 조용한 곳에서 써야겠다.
불편한 것은 교육의 결과로 사람들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편함이 작용한 측면이 클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조선족을 현실성 있게 받아들이고 왜 받아들여야하고 그들의 아픔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이해하는데 결정적 답을 주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시대정신이 오롯이 녹아있다. 예전 식당에서 몽고인은 몇백만도 안되는데 그들에게 비자를 자유롭게 줌으로써 국가가 얻는 이득이 대단하다는걸 중앙일보사설을 통해 읽었다. 이 책에서도 조선족이 당면한 중국내 소수민족으로서의 박해와 이념갈등등 우리가 생각하지못한 부분에서 다양한 갈등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동포들이다. 몽고정책에서도 그랬듯이 자원이 아닌 핏줄에 관한 동질성적인측면에서 그들을 포용해야하며 핵심은 조선동포정책이다. 여타 재외동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한국 입출국과 한국내에서의 활동을 자유롭게하는 것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한 조선족동포들의 불평불만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공감대를 확장하는 것이다.
얼마전 내가 쓴 글 하나만 끼워넣고 마칠까한다 잘보았다.
제목-이상한 나라
어릴적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는 만화를 저녁마다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폴일행이 비눗방울 나라에 가니 비눗방울 인간들이 자신들의 비눗물로 방울을 만들어 폴일행과 싸우고 있는 대마왕을 눈축제에서 큰 조각상을 만들듯 정성들여 작업을 하는걸 보고 놀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선조들이 비눗방울을 거대하게 만들어 대마왕을 물리쳤기에 대마왕은 버섯돌이를 시켜 그들에게 세뇌를해 그 능력을 비눗방울 장식하는데 쓰이게했단다. 그리고 버섯돌이의 바늘공격으로 비눗방울 인간들은 해체되는 공격을 받고 폴이 가져온 시험관으로 도망친후 다시 조상들이 사용했던 능력을 되살려 대마왕을 물리치고 비눗방울 나라에 평화를 찾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대중은 복잡한 논리보다는 호감이 가는 이미지에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한다고 했던가 사람을 지배하는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다. 만일 현재 한국대통령당선후 중국의 사신격인 중국대사의 승인이 있어야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기분이 어떨까 또 500년후 후손들이 이런 사실을 드라마로 만들어 자랑스러워한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이들까 조선은 고려와 달리 500년내내 스스로 중국에 굴종적인 자세로 살아왔고 세자의 지명도 중국사신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고 왕위도 천자의 허락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자랑스러운가 물론 이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왜곡하려거나 숨기려는 의도는 없다. 단지 어느민족이든지 영웅을 미화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풍토는 있어도 부끄러운 역사를 억지로 끄집어내어 미화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모르는 나라는 한류 대장금을 만든 대한민국뿐이다. 나는 싸워서 이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정신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영혼이 없는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고 영혼이 없는 삶은 노예의 삶일 뿐이다. 그 한가운데에 대장금이 보인다. 저거 괜한 소리하는 작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속으로 생각해보시길 일제시대 순사에게 아부하는 장면과 대장금에서 명나라 사신에게 아부하는 장면을 볼때의 감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자 눈으로는 하늘을 보면서 이상을 추구하되, 발은 땅에 딛고 현실을 다룰줄 알아야 한다. 생각이 얕은 사람은 처음 단맛에 속아, 속에 숨어 있는 해독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기]에 "은나라는 오랑캐의 나라" 은나라의 시조인 설 楔,卨의 어머니가 두 사람과 같이 목욕하러 갔다가 현조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주워 삼켜 임신을해서 설을 낳았다고한다. 이 신화는 만주족의 신화와 일치한다. "은나라가 부여와 습속이 거의 같아서 흰색을 숭상했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군대를 일으킬 때 점을 쳤고 부여는 은나라 역법을 사용했다." 이는 은나라 멸망이후 잔존세력들이 만주로 유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2004년 국사교과서에 실린글중 이런글이 있다. 송시열은 "오로지 우리 동방은 기자 이후로 이미 예의의 나라가 되었으나 지난 왕조인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오랑캐의 풍속이 다 변화하지는 않았고 기자께서 동쪽으로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었으니 오랑캐가 바뀌어 중국인이 되었고 드디어 동쪽이 주나라가 되었습니다." 송시열의 주장은 '중국의 속국인 기자조선이 한반도 역사의 출발'이라는 현대 중국정부의 동북공정 주장과 일치한다. 웅녀가 여인으로 변한건 여국 즉 여진을 의미하고 기자는 은나라의 제후국인 기국을 의미한다. [요사]에 "요나라(거란족)는 조선의 옛 땅에서 유래했으며, 고조선과 같은 팔조금법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쓰고 있다. 우리는 입으로는 동북공정을 배척하지만 손발은 동북공정에 순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건 아닐까 입에 밥이 들어가야 성인군자도 생명을 유지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상을 추구할 수 있듯 한류도 그 연장선상이라해도 대장금은 좀 지나치다. 예전 태국관광을 갔을때 쇼를보았다 태국,한국,중국,일본의 전통춤이었는데 태국춤은 처음보는것이라 마냥 신기했고 일본과 중국전통춤은 방송에서 몇초씩 몇번 잠깐 본 흔적만있기에 그런가보다했다 헌데 한국전통춤 부채춤이나 북춤을 보면 영 엉성하고 무슨 전통춤인지 짬뽕춤인지 '참 만드느라 고생했네'라는 느낌밖에 안들었다.
대장금에서 조선최고실권자가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가 벌벌기는 명나라사신 지금으로 말하면 외교부 국장쯤되는 사람에게 조선최고의 요리책임자가 '중국요리의 진수인 만안전석입니다,' 하고 아뢸때 자부심이 느껴지는가 물론 그 사람 나름대로는 잘한다고 뽐내는 것이겠지만 중국요리전문가가 봤을때는 짬뽕이라고 느끼겠는가 대단하다고 느끼겠는가 또 별볼일없는 자신의 명나라 벼슬아치에게 조선궁중의 내노라하는 실세들이 벌벌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웃지는 않았을까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자랑스러워한다.
한류 잘나간다고? 중국은 이미 만주, 이어도, 태권도, 한글, 아리랑, 단군신화도 모두 자기것이라 도장찍고 다음엔 뭘찍을까 궁리중인데.. 내 생각엔 다음번 대상은 아마 북한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없다고 착각한다.
언제 KBS에서 한국천문연구소 소장님께서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국의 어린이가 우주인을 만나......" 그러자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왜 백인아이만 우주인을 만나야합니까 한국의 우주과학기술이 발전하여 한국의 아이가 우주인과 만난다는게 뭐가 이상합니까."하자 갑자기 청중들은 숙연해졌고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끝까지 경청하고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 글도 그런 티핑포인트 같은 글연설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아무나 문자해독이 가능하다. 터키의 국부 무스파타 케말 아타튀르크도 국민의 문맹을 께쳤고 모택동의 가장 큰 치적도 문맹퇴치였지만 고대에 문자는 특권계층에게만 허용되었다. 지금 갑골문중 반만해독이 되었는데 내용을보면 요즘 점집에서하는 이야기 내용과 똑같다고 한다. 은나라의 갑골문보다 더 오래된게 발해만에서 발견되었다니 갑골문의 탄생지는 동이족의 영역에 있다. 예를들자면 東자는 동쪽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우리말 동여매다의 동이 東이 된게 이젠 정설이 되었다. 갑골문은 즉 상형문자는 사제계급의 문자란 뜻이고 예를들자면 경북 왜관이란 지명도 임진왜란때 낙동강을 따라 보급품을 전달하며 왜군이 짐을 푼 곳이라하여 그렇게 지명이 붙여졌고 그곳에서 활약한 장수가 남명 조식선생의 문하에 있던 곽재우인데 그와 싸운부대가 승려 에케이부대다 그 시절 승려이외에는 문자를 아는 이들이 희박했기에 문화재 구별능력이 문자를 아는 승려들에게 있었기에 전장에 대거 투입된 것이다. 이렇듯 고대문자는 사제들의 전유물이었다. 또 [사기]에는 염제 신농씨가 은나라보다 훨씬 앞선 삼황오제시대의 인물로 그의 후계 치우가 구려족(동이)의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이족의 역사는 은-기국-고조선,숙신-동이,부여,선비-전연(모용씨),북위,고구려-요(거란),고려로 이어진다. 은나라도 기국(은나라의 제후국)에서 동이족을 거쳐 한민족의 관계로 성립이된다. 은나라의 상징동물은 해태였다. 우린 아직도 이런 역사를 잊은채 이데올로기에만 연연해 있다. 두어개만 들어보자. 영화 '수상한 그녀'-이건 핵심이 '젊은이들아 너희들이 철없이 놀 수 있는건 우리아버지 박정희대통령 덕분이다'가 핵심이다. 즉 현박근혜대통령에 대한 용비어천가인 것이다. 이해가 안되면 파독광부부분만이라도 다시보자. 심리학에서 A란 사람이 평생 B란 물건만 끼고 살면 B란 물건만 봐도 A란 사람이 생각난다. 박정희대통령도 거북선과 충무공을 평생끼고 사셨기에 은연중 충무공과 박정희대통령이 연결이된다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명량' 정말 연기잘하는 황정민씨의 [국제시장]도 '수상한그녀'의 연장이 아닐까 사람들을 집단으로 이끌어가는 관념 즉, 수단인 이데올로기도 좋지만 역사도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노력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정신차리자 자랑스러운 한류도 앞으론 정신차리고 만들자. 우리 어릴적엔 놀러갈데라곤 창경원밖에 없었다 동물원,놀이공원등 언젠가 다시 옛 고궁의 모습을 찾는다고 벗나무를 뽑네 안뽑네 논쟁하던 기억이 들리고 나도 어색하지만 입에 붙은 창경원이란말 창경궁으로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버스,지하철,각종표지판,안내문등 모조리 창경궁으로 고치자 어느덧 창경궁이란 명칭이 터줏대감자리를 다시 찾았다. 아직 가능성은 있다. 한류, 정신차리고 만들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법. 정신차리고 터줏대감자리를 다시찾자 다시 찾은후 지금 있었던 왈가왈부는 깔끔하게 잊어버리자
누가 소중화사상을 만들고 중국에 굽신거리는 사대사상을 만들어 만주와 한반도의 혈연적 관계를 단절시켰을까 가장 통탄할 것은 정도전이다. 그는 목은 이색의 문인으로 고려말기에 재상의 반열에 있었으면서 나라를 팔아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스승을 해치고 벗을 죽인것이다. 그뿐인가 고려가 이미 망했는데도 왕씨의 종친들을 없애려는 책문까지 올렸다. 왕씨들을 자연도에 귀양보낸다는 말로 속이고 큰 배 한척에 가득 태워 바다에 띄우고서 헤엄치는 사람을 시켜 배밑에 구멍을 파 가라앉게 하였다.
오랑캐- 불함산은 주로 요서나 몽골지역에서 이용한 것으로 붉은산 (태양이 비치는 밝은산)의 다른 표현인데 오락산,오환산과 같은 의미로 민족의 기원과 관련된 성산을 뜻한다. 오랑캐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불함산은 황금의 산인 '알타이산'의 다른 표현으로 항상 옮겨다녀야 하는 유목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알타이산의 모습과 흡사한 산들에 붙인 명칭이다. 고로 우랄,알타이어를 쓰는 사람들은 모두 오랑캐인것이다. 즉.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오랑캐는 남한산성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포위한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말로 모두 오랑캐의 후손인데 우리가 잘못인식한데서 나온 오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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