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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운명의 사람'은 이상하게도 나쓰메 소세키 소설 같다. 바라는 것은 어떻게 해도 얻어지지 않으며 행여 운좋게 얻게되더라도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상실의 순간을 또한 맞닥뜨려야 한다. '운명의 사람'은 이런 걸 보여주는데 이건 소세키 소설에 자주 흐르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운명의 사람'에 담겨진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운명처럼 정해진 상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붉은 실로 연결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운명의 사람'이라는 게 있을까? 사랑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가슴에 압정처럼 박아지던 사춘기 무렵에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거라 여겼다.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과도 같이 말이다. 나이가 들고보니 이제서야 왜 로미오와 줄리엣이 십대의 나이인 줄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직 사랑 하나에 죽고 살수 있는 건 그 나이 대만이 가능해서가 아닐까 싶다. 비슷한 이야기인 우리나라 이몽룡과 성춘향도 십대인 것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감정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질 수 있는 건 십대에 한정되는 얘기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리학자 뉴튼이 그랬던가, 십대는 정욕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그만큼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기에 그것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십대들이란 빨간 깃발을 보고 흥분해서 달려드는 소들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운명의 사람'이라는 것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살면서 우리는 조금씩 마음 속에 그리고 있던 완벽한 이상형의 모습을 조금씩 깎거나 덧칠해서 내 한계 안에서 타협 가능한 선으로까지 만들어간다. 삶은 어차피 나를 깎아 세상에 맞추는 타협의 과정이다. 사랑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또 하나있다. 사랑이란 어디까지나 두 명이 맞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운명의 상대가 찾아왔다고 해도 그것이 오로지 내 일방에만 그렇다면 적게는 짝사랑이요 크게는 스토킹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기다리고 있는 건, 실패 끝에 퍼마시게 되는 폭음이거나 철창행이라는 결말이다.
그래, 맞아. 나기사는 작은 형이 자신을 봐주길 바라고, 작은 형은 마리 씨가 봐주길 원한다. 그렇다면 큰형 부부는 서로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 것 같았다. 서로 마주 봐야 할 두 사람이 제대로 마주 보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이 세상에는 흔하지 않다. 그래도 드물게는 제대로 마주 보며 사는 부부도 있다.(p. 151)
그걸 이 소설은 이렇게 표현한다. 때로는 이런 식으로도 말한다.
이 세상 갈등의 대부분은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조합이나 배분에 착오가 생겨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이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주어지기 때문에 세상은 늘 삐걱거리며 불균형한 게 아닐까? 어떻게 해야 그 각각이 '제대로 된 조합'을 이룰 수 있을까? (p. 90)
그러니 우리는 더욱 타협적이 된다. 주인공 아키오가 한 때 그의 부인이었으나 영원히 못 잊을 사람에게로 떠나가버린 나즈나에게 하는 충고 그대로다.
'너도 나도 기억력은 안 좋잖아. 그래서 사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한 번쯤 우리의 그 결점을 우리 인생에서 의미 있는 걸로 바꾼다고 해도 벌 같은 거 안 받을 거야"(p. 141)
소설을 읽고나면 과연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운명의 짝이 나타나길 기다려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 건가 다시금 되묻게 된다. 주인공 아키오는 후자를 택했다. 그러다 전자를 택한 나즈나로 부터 상처를 받아야 했다. 소설 내내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을 겪는데 그것은 나즈나로 부터 받은 상처가 육체적 고통으로 변한 것에 다름아니었다. 나즈나는 전자를 택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정말 한심하고 못미더운 사내인 줄 잘 알지만, 거기다 전처로 부터 칼로 찔리기까지 하지만, 어린 새가 처음에 본 존재를 평생 엄마로 믿고 살듯이 한번 마음에 새겨진 존재의 나이테를 쉽사리 지우지 못한다. 결국 고통 이는 원래 아키오와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나기사도 마찬가지다. 아키오가 나기사와 결혼하지 못했던 것은 나기사가 그의 작은 형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터 나기사는 내내 운명의 사람으로 알고 고백했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내 사고로 죽는다. 그 작은 형이 나기사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 것은 그 역시도 운명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형수였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금단의 사랑인 걸 알지만 그는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신을 사랑하다 죽어버린 여인의 장례식장에서도 그가 애틋한 시선을 내던지고 있는 쪽은 나기사가 아닌 형수다. 여기서 후자의 사랑을 하는 쪽은 아키오 뿐이다. 아키오를 제외한 모두는 자신이 찾은 운명의 상대를 향해 자신의 전부마저 내던지며 무모하게 돌진하고 있다. 그런데 소설이 진행될 수록 변하는 건 아키오다. 나즈나와 나기사의 사랑과 상처를 경험하면서 그는 서서히 '운명의 상대'를 믿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라이시 가즈후미는 '운명의 상대'를 더 지지하는 것 같지만 물론 소설에서 내내 보여주는 바와도 같이 그 길이 그리 쉬운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은 우리에게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순전히 우리에게 내맡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길도 희생과 고통이 따르는 길인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그 고통과 희생을 무릎 쓸 각오가 선택에 결부되므로 그 최종 결정의 버튼을 슬며시 우리 손에 쥐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당신이 바라는 사랑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는 사랑의 모습을 막연히 품고 있는 사람이 참 많겠지만 이 소설을 통하여 한번쯤 다시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심하면서도 건조한 문체인 듯 하지만 놀랍게도 마음의 한 구석을 저미게 만드는 말들이 참 많아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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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 영화 <접속> 중에서 -
사랑이라는 걸 처음 꿈꾸기 시작했을 때, "이 사람이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운명의 짝이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 사람이 운명의 짝인지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떻게든 알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심장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뛰었습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그 사람 뒤로 후광이 비쳤다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그를 본 순간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정지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만약 세상에 이런 일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질리가 없다고 혼자 이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버릴 수 있는 것인지 몰랐어." -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중에서 -
그러다 알았습니다. 첫 눈에 알아보는 운명의 짝도 있지만, 옆에 있어도 그 운명을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 사랑만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이것은 뼈아픈 교훈이었습니다. 사랑에 풍덩 빠져들려고만 했지, 만들어갈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를 보내버린 뒤, 나타나지도 않는 인연을 기다리느라 어느새 풋풋한 사랑을 할 나이가 훌쩍 지나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모두 철저하게 찾지 않았을 뿐이야.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한 사람은 모두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니까." - <운명의 사람>, 153 -
그런데 사랑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은 운명의 짝을 못 만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운명인줄 착각하고 빠져들다 그 운명에 된통 걷어차이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만화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사람들이 100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 살다보면 운명 같은 사랑도 빛이 바래고, 열병 같은 사랑도 식어진다는 것, 그것은 이미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최대 천적은 '시간'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운명의 사람>은 제목이 다소 클래식(?)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다분히 '현실적'입니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운명의 사람>은 평단으로부터 "남녀 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잘 다룬 작품이다. 남녀 관계에 도사리고 있는 역학의 문제를 본인만의 독특한 설정과 참신한 문장으로 제대로 표현해낸 수작"이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남성 작가도 이런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이 책에는 2편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랑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이고, 두 번째 사랑은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잘난 가족들 틈에서 열등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한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주인공 아키오는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운명 같이 찾아온 여인을 만납니다. 술집에서 일하는 나즈나는 아키오를 보고 감이 딱 왔다고 말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아버지가 그 모양이라서 난 정식으로 남자를 사귀면 절대 바람피우지 않는 사람과 사귀겠다고 다짐했어요. 또 내가 일하는 곳이 그런 곳이라서 남자들 생리를 잘 알거든요. 그런데 아키오 짱을 보는 순간 '앗, 찾았다' 하고 감이 딱 왔어요." 둘은 그렇게 만나 결혼까지 합니다. 아키오는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집안과의 인연도 끊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이 삐끄덕거리기 시작합니다. 아키오를 보고 감이 딱 왔다고 했던 나즈나에게 사실 다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옛 연인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나즈나, 어느새 나즈나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아키오. 불행히도 그들은 서로에게 운명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부부로 인연을 맺었지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는 서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키오는 나즈나와의 문제로 골치를 앓느라 운명의 사람을 옆에 두고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즈나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풍덩 빠져들지는 않았지만, 그 운명의 사랑에 서서히 물들어갑니다.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는 약혼자가 있지만, 몇 년 전 인연을 맺었던 유부남 구로키와 다시 만남을 갖고 있는 한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주인공 미하루의 사랑은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미하루는 어떤 소설가의 글을 떠올립니다. "이 세상엔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정의, 다른 하나는 바로 드라마이다"(224).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드라마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약혼한 후 구로키와 다시 만난 것은 분명 큰 이유가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두 남자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미하루는 결혼식 전날, 구로키의 집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다소 변태적인 형태의 섹스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날이면 구로키가 "습관"처럼 케이크를 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하루는 온몸이 떨릴 만큼 놀랍니다(291). 열병처럼 들떠 사랑을 고백하지도 않고, 자신을 흔들지도 않는 그 남자가 줄곧 자신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있을 때는 절대로 모른다. 헤어져봐야 아는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 영화 <사랑을 놓치다> 중에서 - <운명의 사람>은 두 편의 결말이 독특합니다.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운명의 사랑은 반드시 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그 상대를 열심히 찾으라"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그런데 왜 두 편의 사랑 이야기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라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끝냈을까요? 정말 소중한 것은 잃어버렸을 때 비로서 알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열심히 증거를 찾지 않으면 결국 사랑을 놓친 후에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면서도 그 사람이 운명인줄 몰랐던 아키오도, 온몸을 전율시키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그 사람이 운명인줄 몰랐던 미하루도 그것이 운명이라는 '증거'를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몰랐을 뿐입니다. 뒤늦게 서로가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키오는 또다른 운명으로 사랑을 잃어야 했고, 미하루의 사랑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인생은, 죽기 직전 마지막 하루라도 좋으니까, 그런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하면 성공한 거야. 말하고 보니 보물찾기랑 비슷하네." - <운명의 사람>, 153 -
운명의 짝은 분명히 있을까요? 그 사람이 운명의 짝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운명의 사람>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것은 보물찾기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그 '증거'를 열심히 찾으라고 합니다. 철저하게 찾는다면 확실한 증거를 '반드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운명적인 사랑은 환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른들은 찾아봐야 별 사람 없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상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터무니 없는 욕심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헛된 꿈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려는 보호본능 때문에 우리의 눈이 어두워져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아직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 믿고 있다면, 먼 곳만 쳐다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너무 늦은 깨달음으로 사랑을 잃은 후에 아파하는 일이 없도록, 주변부터 샅샅이 살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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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나라누 히토. only you 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번역자는 운명의 사람이라고 제목을 달았는 데 , 우리말 기준으로 보면 원제목과는 조금 뭔가 다를 수도 있다. 운명보단 진정한 ONLY YOU가 더 맞는 거 같다.
두가지 예기. 첫째 조금 경솔할 지도 모르는 아키오와 나즈사 의 결혼. 아키오는 정략결혼에 지쳐 나즈사는 자기를 버린 사랑남 , 신이치를 잊지 못해 아키오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자기를 위로해 주던 6살 연상,33살, 이혼녀 도키와 결혼하지만 폐암으로 죽는다. 주변의 인물들, 각기 제각각이다.
아키오의 동창인 나기사는 형을 좋아하지만 , 형은 자기 친형수를 좋아하고 아키오 나즈사를 좋아 하지만 나즈사는 신이치를 좋아하고... 동상이몽이다.
전에 MBC에서 일요일 아침 미혼 남녀 5명씩 나와 좋아하는 상대방을 찾는 프로가 생각난다. 사랑의 작대기... 과연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평생을 살 수 있나, 지금 살고 있나에 대한 물음표를 가볍게 던진다.... 글나 세상에서 사랑도 공부도 운동도 내가 맘에 드는 것 만 할 수 있나? 압도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할 수는 없다. 두번째 예기는 현실적인 결혼과 속궁합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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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이 진짜 내 운영의 짝일까?" 책표지의 글귀처럼 이렇게 누군가에게 물어서 시원스럽고 명쾌하게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운명이 사람,,,책제목이 참으로 여심을 끌어 일으킨다. 이책은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고 , <다빈치> 선정 올해의 연애소설 베스트10 이라고 해서 왠지 말랑말랑한 러브스토리가 숨어 있을 것 같고 어렵게 돌고 돌아 진정한 내 사랑, 운명의 사람을 찾았을 것만 같은 느낌을 팍팍 주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의 느낌은 조금은 허망하고 쓸쓸했다.
너무나 정면으로 남녀간의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고 있어서 이것인 현실일까? 라는 생각마저 들면서 먹먹하기까지 하다
[ 운명이 사람]책 제목아래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너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 라는 두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너 ]는 우쓰기 가분이라는 축복받은 집에서 태어나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 같은 남들이 보기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실제로 두 형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자신의 능력때문에 한 마리 미운오리 같은 자신을 늘 열등감과 무기력감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고 살아온 아키오가 있다. 스포츠 용품 회사에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던 25살의 아키오는 우연히 회식으로 찾은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즈나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어려서부터 정해진 약혼녀가 있는 아키오는 강력하게 반대하는 부모님의 맞서 사랑을 선택하여 가족들과의 소식을 끊으면서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하고 고작 2년도 채 되기전에 아내 나즈나는 갑자기 옛남자를 잊을 수 없다며 3개월이나 각방을 쓰고. 나중에는 집을 나가버린다. 형수를 사랑하는 둘째형, 둘째형을 짝사랑하는 전 약혼녀,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전애인이 전부라는 아내 나즈나,,,아직은 젋은 나이인 서른셋에 결혼, 암, 유산, 이혼, 전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6살난 연상의 이혼녀 도카이.. 이 중편에 속하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운명의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만났다 하더라도 제짝이 아니거나 ,이미 다른사람의 짝이거나 , 사랑의 짝대기가 이렇게도 그 각각이 제대로 된 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책 읽는 내내 너무 답답하고 화나고..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 나자 인생의 절반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몸 저 깊은 곳에서 움켜쥐고 있던 진실이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173) 는 글을 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은 잃어봐야 가슴 절절이 깨닫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증거가 있을 거야" "증거?" "응,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했을 때는, 이 사람이 틀림없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거야. " "그게 정말이야?" "아마도. 생각해봐.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그 사람인지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자신의 상대를 착각하고 있는 거잖아." "그게 아니야. 모두 철저하게 찾지 않았을 뿐이야.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한 사람은 모두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니까."- 152
" 결혼이란 건 일단 지금의 자신이 영이라고 생각할 때 하는 거야. 그런 게 결혼이야," - 258
이책을 읽고 생각해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운명의 짝은 분명히 있다" 고 말하는것 같지만 ,두편의 주인공들은 운명의 짝을 너무 늦게 발견하거나 , 찾았지만 잃어버렸다. 진실한 사랑을 찾는 감동적인 연애소설이라고 적혀 있지만 말랑말랑한 러브스토리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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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나 자신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래서 막연함이 싫어 그리고, 항상 일관성있는 엔딩이 싫어서 "운명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책은 되도록 피한다. 그런데, 이번 시라이시 가즈후미 작가의 <운명의 사람>은 읽게 되었다. 바로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단어가 다른 사랑을 다룬 소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난 두편의 중편소설이 합해진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였고, 또다른 한편은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였다. 두 작품은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다른 방식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후 안정적인 사랑을 원하던 아키오라는 남자를 다룬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와 달리,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는 갑자기 등장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리는 여자 미하루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두 이야기는 주인공도 다르고 꽤 다른 방식의 이야기였지만, 어느정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감정에 흔들리는 여자,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 이런 구도를 가진 두 전혀 다른 이야기는 열린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에서 아키오는 훌륭한 출신의 가문에도 불구하고 형제들과는 달리 평범한 자신에게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도 열등감을 갖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즈나가 떠나가는 와중에도 단 한마디도 없이 그냥 기다린다. 하지만 결국 그의 우유부단한 성격은 스스로를 머뭇거리고 멀어져 가는 사랑에 손을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 뭐 결국 스스로가 책임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는 하지만 읽는 내내 아키오의 열등감은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는 세이지라는 남자 친구를 둔 미하루에게 또다른 남자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새로 등장한 남자는 몇년전 알게 된 구로키였다. 솔직히 그 둘의 관계는 유부남의 불륜으로 사랑이라기 보다 육체적 탐욕에 가까웠다. 그러나 미하루는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흔히 속궁합도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듯히 미하루는 구로키가 주는 탐욕을 버릴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미하루는 많은 고통과 갈등을 통해 결국 답을 찾아내기는 한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이 전혀 다른 주인공에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주인공 모두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명확히 선택하지 못했다는 우유부단함을 갖는다. 이런 모습은 솔직히 나에게 꽤 와닿았다. 나역시 사랑앞엣 이런 모습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소위 정이라는 단어때문에 질질 끌기도 하고, 떠나가는 사랑을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꽤 동질감을 느꼈고 반대로 그래서 더 답답했다. 운명이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앞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양보하는 그런 바보같은 행동은 이번 사랑이 운명의 사랑이냐 아니냐를 앞서 꽤 사랑을 망치는 일임을 알수 있었다. 연애 소설을 주로 잘 안 읽은 나이지만, 이번 작품은 꽤 만족스러웠고,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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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재간되었다. 세부적인 변경 사항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담긴 두 편의 중편소설 제목이 바뀌었다. 제목 및 표지가 바뀐 것과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전 것이 더 마음에 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변함없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운명의 사람에 대한 의문과 이야기는 더 만족스럽다.
사실 두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된 책인 줄 몰랐다. 첫 편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를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상상하는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금은 황당했는데 차분히 되짚어보면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의문과 여운으로 남는다. 그것은 귀족 출신 아키오의 열등감과 사랑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결혼이 가족들과의 불화를 가져오지만 그 선택을 밀고 나갈 정도의 열정과 뚝심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삐거덕거리는 결혼에 대한 그의 선택은 우유부단하다. 거기에 직장상사이자 상담가로 등장한 도카이 씨는 은연중에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가능성이 아내 나즈나와의 결혼을 더 흔들어놓는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아키오지만.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의 첫 장면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남자 친구 세이지가 있는데 다른 남자 구로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주인공 미하루의 연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육체적 욕망에 의한 관계처럼 비쳐졌던 미하루와 구로키의 관계는 강한 절제와 인내가 없으면 결코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는 끝난다. 열린 결말로 독자에게 상상할 공간을 남겨놓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두 중편 속 주인공의 성별은 각각 다르다. 첫 편은 남자고, 다음 편은 여자다. 이런 설정이 의도적인 것 같다. 아키오의 사랑이 굉장히 안정 추구적이라면 미하루의 사랑은 감성적이다. 아키오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을 다룬다면 미하루는 이미 그 열정의 감정에 빠져 있다.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섹스가 주는 강렬함과 구로키가 주는 열정에 푹 빠져 있다, 아키오가 한 발 나가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미하루는 이미 모두 경험한 후 빠져나가려고 한다. 빠져나오는 것이 감정의 문제라면 쉽지 않다. 이 둘에게 감정을 벗어나는 방법은 비슷하다. 한 명은 죽음이고, 다른 한 명은 떠남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사람이 정말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일상의 감정을 공유한다고 그 사람이 운명의 사람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카이나 구로키와의 일상이 지속된다고 해서 그것이 운명의 사람은 아니다. 끌린다는 것만으로 정의하기는 더 어렵다. 사랑의 지속 가능 시간이 불과 몇 개월에 불과하다는 정보에 의하면 아키오와 미하루의 사랑도 그 시효는 분명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영원히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도 바로 그들의 죽음 때문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좀더 비낭만적으로 표현하면 그들의 사랑은 우리나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사랑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 사랑이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간결하게 만들고 좁혀 놓았는데 더 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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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전에는 나도 운명이란걸 믿었다. 그랬기에 누군가 이상형을 묻거나 어떤 사람이 좋은지 묻는말에 구체적인 답변을 할수없었고 늘 나랑 느낌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막연한 말로 뭉뚱그려 대답하고 했는데 실상은 나역시 내가 어떤사람을 원하고 기다리고 있는 지 몰랐던것 같다 내 운명의 짝을 만나면 바로 알아보리라는 뭔지 모를 확신이 있었기에 그런 느낌이 없는 이성에게는 관심을 끊다시피한 나의 고지식함은 결국 노처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고 더 이상 물러설곳이 없을 즈음에 지금의 신랑을 만났으니..어찌보면 떠밀려서 한 결혼이라고 지금도 농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주는 의미가 더 와닿기도 하는것이 정말 과연 운명의 사람은 있는것일까?나 역시 궁금하기에 책을 읽기전부터 내용에 대한 관심은 클수밖에 없었다.
재벌집 아들로 태어나 너무 뛰어난 가족틈들에서 늘 자신감을 잃은 채 살아가는 자신이 싫기만한 주인공이 결국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가정의 첫눈에 느낌이 온 여자와의 결혼을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그녀의 첫사랑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녀의 방황은 시작되고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역시 한없이 방황하면서 운명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현실속에서 누구나 하는 고민이고 흔히 볼수있는 모습이기에 깊은 공감을 얻는 부분이다. 우리모두는 늘 내 운명의 상대는 누구일지가 궁금하고 지금의 상대가 운명의 짝이 맞는건지 아니면 진짜 운명의 상대를 만날것이기에 지금의 상대는 그저 스쳐보내야하는건지가 궁금하기만 하지만 알수 있는 방법은 없다. 주인공 역시 가족을 등지고서 결혼한 상대가 운명의 짝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배신은 뼈아프게 다가오고 그녀가 곧 그 선택을 후회하며 자신에게 돌아올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선 그 정도로 확신을 가지는 그가 믿음직하게도 보이지만 결국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은 다른 누군가도 아닌 자신이 책임져야할 부분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늘 곁에 있으면서 위로와 상담을 해주던 사람과의 결합은 읽는 사람들에겐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이지만 주인공에게는 뜻밖의 사건과도 같은 일인듯...이런걸 보면 만난 순간 한눈에 알아보는 운명의 상대란 과연 있는것인지... 첫눈에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온 상대와의 결혼생활에도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평생을 함께하는것에 있어서 첫느낌이란 얼마나 정확한것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나 방황하는 아내를 말없이 지켜보는 시선에서 성숙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지금 내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회의가 들때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 결국 운명의 상대란 첫눈에 알아보는 게 아니라 곁에 있으면서 서로 조금씩 동화되고 닮아가는 사람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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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사람'이라는 제목과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문구에 홀려 소설을 읽었다. 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되었던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와 같은 작품이다. 이 책이 절판되고 <운명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복간되어 나왔다.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책은 처음 접하지만 이 사람이 쓴 <운명의 사람>은 어떤 연애소설일까 궁금해 하면서 책을 읽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표지에 그려진 것과 같은 남녀의 운명은 비오는 날 우산을 쓴 것과 같다. 왜 진실한 사랑을 찾는 소설에 남녀가 우산을 썼을까? 라는 궁금증을 책을 펼치자마자 '아' 하고 와 닿았던 것처럼 이 책은 연애소설이지만, 로맨스 소설에서 나올법한 멋진 주인공들은 나오지 않는다.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양이 많고,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얇은 두 편의 중편소설이 담겼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와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의 이야기는 색깔이 비슷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유부단한, 혹은 한 사람과 오랫동안 사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예상했던 스토리와 달리 운명의 짝을 찾아나가는 스토리가 정반대의 이야기라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면 집중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장래의 꿈이나 목표를 향해 끈질기게 노력할 수 있고 취미나 오락에 열중할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할 게 없을 대는 정말 좋아하는 자신을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은 최종적으로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 p.112
"결혼이란 건 일단 지금의 자신이 영이라고 생각할 때 하는거야. 나나 그 여자처럼 뭔가를 바꾸려고 한다거나 다른 사람이 되려고 생각해서 하면 절대 안 돼. 그런 게 결혼이야. " -p.258
더불어 일본 소설의 문화적인 차이도 크게 느꼈던 작품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을 누군가의 품에서 위로받는 것. 평소 나의 생각과 너무나 차이가 큰 작품이라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사랑의 색깔에는 다채로운 경우의 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설이다. 누군가에는 이 소설이 잊을 수 없는 좋은 소설이겠지만 나에게는 브라운관에서 하는 '사랑과 전쟁'에 나와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우유부단했고, 무책임하게 들렸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후에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 더 다른 느낌일까? 예전만큼 사랑에 환상을 집어 넣지 않지만 결혼을 하지 않는 지금 누군가와의 사랑에 다른 이와 함께 느낌은 도저히 용서해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주인공들의 인생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운명의 사람>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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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스토리에 묘한 결말….
어쩐지 아쉬운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소재를 주제로 내세웠지만 정작 '도쿄타워'보다 사랑의 농밀함도 덜했고, '널 지키기위해 꿈을 꾼다'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란 느낌이랄까. 화끈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큼 조금 더 파워풀해도 괜찮지 않았나 싶다.
'미인은 이 사람하고 안 되면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법이야.'
만약 이 책에 제시된, 주인공들이 나누었던 사랑이 정말 운명이라면. 운명은 너무나 멋없고 초라하며 보잘것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인생을 전부 사용하거나, 하던 일을 내팽겨치고 찾으러 갈 만큼 값진 것도 아니다.
'운명의 짝은 분명히 있다!' 라며 책을 고를때 봤던 그 위풍당당하던 문구는, 책을 다 읽고 덮으며 다시 한 번 문구를 볼 때엔 왠지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이 세상엔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정의, 다른 하나는 바로 드라마이다.'
소설 자체의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띄게 독특하며 아름다운 묘사나 문장도 상당히 많았으며. 연애소설답게 복잡하게 얽히고 섥혔으나 마무리엔 비교적 모두가 만족하는 결말을 보여주는 등. 이야기꾼의 역량은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긴 소설을 눈을 뗄 틈도 없이 읽어내릴 수 있던 것도 작가의 엄청난 필력이 크게 한 몫했을 것이다.
느낌으로만 보자면 일본의 귀욤뮈소 같은 느낌?
재미는 충분히 있었지만, 운명은 확실히 있다! 라는 답을 원하고 책을 집어든 독자에겐 조금 아쉬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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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전작을 하고픈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 읽고 그냥 "전작은 무슨, 되면 보는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라는 작가가 돼 버렸다. 사실, 내가 전작하고자 하는 작가가 있으면 웬만해선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 그러고보면 나에겐 그 작가의 첫작품이 무지 중요하다. 첫 작품에서 과감하게 별다섯을 받는 작가라면 나는 그 후의 작품들이 줄줄이 나를 실망시키고 질이 떨어진다고 해도 전작을 해 버린다. (아니,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첫작품에서 오~ 하는 약간의 감탄이 있었다면 그 후의 작품들을 괜찮은 작품들만 띄엄띄엄 찾아 보게 된다는 거다.
각설하고 시라이시 가즈후미는 심리묘사가 탁월해서 요시다슈이치와 약간 비슷한 면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뭐랄까....... 요시다 슈이치가 다양한 방면의 글로 그 필력을 펼쳐나간다면, 시라이시 가즈후미는 연애소설에 그 탁월한 감성을 뛰어나게 표현한다는 거다. 게다가 여자들의 그 톡톡 건드리는 심리는 그야말로 극찬을 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요시다 슈이치가 여자인줄 알았듯, 이 작가 역시도 여자인줄 알았다. 뭐 알겠는가. 대충 일본작가 이름들 들어보니 여잔지 남잔지 짐작이 안가는걸. 요즘에서야 일본소설들이 판을 치고, 웬만하면 여자고, 남자고 구분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어떤경우엔 역시 헷갈리는 때가 많다. 특히나, 시라이시 가즈후미 같은 경우는 100% 여자인줄 알았다.
오죽하면, 역자인 김해용님마져 그런생각을 했을까나? 그런데, 첫부분을 읽고 나오키상을 부자간이 전부 수상했다는 글을 읽고 엥? 하고 만거다. 남자였던게야. 이런 이런...... 근데도 어쩌면 이렇게 여자들의 심리묘사를 잘 하는 거지? 진심 그랬던 거다.
이제껏 읽었던 서너권의 책이 거의 여자가 주인공이었고, 이별에 대한 아픔과 사랑에 대한 심리가 어쩜이리도 잘 표현했냐며 감탄했던 난 뭔가? 하는 멍 스러움이 찾아왔었다. 뭐 딱히 배신감까진 아니래도 여튼...... 전생에 여자분이셨나 이랬다는........
아, 세설이 너무 길다. 책 얘기를 해야하는데...... 근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너무 실망을 해 버려서 진심 나오키 상이 뭔 상이래? 이런 의심이 들고 말았다. 이책으로 나오키상을 탔다고 하는데, 당최 그전 책들보다 훨 못하구만 왜 이 책으로 상을 받았을까나? 의심스러운 거다. 심리묘사야 늘 해왔던 부분이고, 특별히 이번 책이 나았던 것도 아닌거 같은데...... 나는 이 책이 아쉽기만 하구만, 게다가 이 책 읽고 일본 연애소설에 이젠 질려버렸구만..... 왜 이 책이 특별한지 답을 못 찾고 있다.
1편의 남자주인공을 내세운 점은 간만에 새롭긴 했지만, 내용이 너무 뻔했고 2편의 결혼 날 잡고 애인이 아닌 예전 불륜으로 만났던 남자를 다시 만나 감정을 나누는건 이젠 그냥 뻔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다. 이제, 그냥 일본소설들의 툭하면 불륜이거나,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랑 원나잇 내지는 만나는 거나, 다 지겹다. 당최 그런 내용이 아니면 이야기가 안되는 걸까?
늘 왜 바람으로 시작해서, 바람으로 끝나는 건가?
그래, 물론 소재가 다가 아니니까...... 그 속에 든 심리를 파고 들고, 이야기의 깊이나 맥을 찾아 가야 하는거니까... 근데도 진심 나는 이제 이런 스토리에 질려버렸다. 그 누가 썼던간에..... 이제는 일본연애소설의 이런 스토리가 싫다. 지겹다. 정녕 요시다 슈이치나 에쿠니 가오리, 혹은 요시모토 바나나가 썼다고 해도 이랬을까? 라고 묻는다면..... 글쎄.... 일 수도 있겠지만, 이젠 그냥 제발 좀 제대로 된 연인의 이야기를 해주면 싶은 바램이 있다. 둘만이 사랑하면서도 얼마든지 서로의 감정에 대한 심리묘사는 할 수 있는거 같은데... 꼭 바람피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건 아닌거 같은데 말이지.......
이젠 일본연애소설의 소재에 물리고, 뻔한 스토리에 물리고, 그 지겹도록 잔잔함에 물려버린거 같다.
(뭐, 이렇게 피토하게 난리쳐 놓고도 결국 일본소설을 찾아 곧 허덕이고 말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당분간 시라이시 가즈후미 작가는 바이바이 하는걸로...... 그냥, 전작은 없었던 얘기로....... 당신의 심리묘사, 탁월하지만 지금은 그 탁월함이 맘에 안든다는거. 이젠 일본연애소설이 질린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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