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 학당의 패러디>(출처: 나무위키)
철학이 꼭 어렵고 무거울 필요가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철학은 그저 '생각의 틀'일 뿐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이상)'를 추구하였기 때문에 저 하늘끝 닿는 곳에 '생각의 틀'을 올려놓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을 뿐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다. 모든 판단 기준은 저 하늘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며 인간의 이성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란 그림의 중앙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며 플라톤은 손꼬락을 하늘을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펴서 앞으로 뻗었다. 각각 '이상(理想)'과 '이성(理性)'을 나타낸다.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대해 나불나불 댄 것이 바로 철학일 뿐이다.
물론 이 책을 포함해서 '철학책'은 상당히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설명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되어서 어려울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기도 싫어서 어려울 수 있다. 뭐, 둘 다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면 '쉬운 철학책'은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몇 가지 물음에 답해보길 바란다. "당신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면 몇 문장으로 가능한가?" 가령, 미모에 자신있다고 "난 미인입니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자신을 모두 표현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좋아하는 음식은 ○○○입니다."라고 한 문장에 모두 담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도 자신의 '생각의 틀'을 설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결코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기에 주절주절 늘어놓기도 하고,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면서 나불댄다. 그래서 쭉 읽다보면 결국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구나' 싶은 '결론'이 내려지는데, 다 읽고 나면 화가 나기 일쑤다. 결국 '이 말 한 마디 하려고 그렇게 길고 복잡하게 설명한 거야?' 그러면서 말이다. 철학자들도 나름 최선을 다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그게 500쪽이 넘고 1000쪽에 육박하기도 한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과 다른 나를 '설명'하려면 말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설명을 모두 암기해야 하는걸까? 철학에 해박한 분들을 보면 나불나불 잘도 지껄인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다 외웠나 싶기도 하는데, 조금만 공을 들여 여러 철학책을 살펴보면 분명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한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는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걸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걸 한 마디로 설명하면, 철학교수들도 누구누구의 철학을 잘 모른다는 말이 된다. 또는 '철학에 정답이 있을 턱이 없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철학교수님들을 비꼬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분명 그분들은 해박하기 그지 없지만 그들이 표현하는 '철학' 또한 주절주절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이야기를 '그때그때 다르게' 설명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 '철학'을 외울 필요는 전혀 없으시다.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지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언제나 그저 '참고대상'일 뿐이다.
만약, 위대한 철학자의 '생각의 틀'을 곧이곧대로 따라하게 되면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화'처럼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피타고라스 학파'는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며, 수 가운데서도 유독 '자연수'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던 학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넓이가 2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자연수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은 한 청년이 공공연하게 세상에 '자연수가 아닌 수'가 있다는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자 끝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해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생각의 틀'에 갇혀버린 개인이나 집단이 종종 벌이는 행태이며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철학자의 사상이라도, 그 사상은 결코 '고정불변'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나만의 '철학(생각의 틀)'이 필요한 법이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참고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들의 '생각의 틀(철학)'도 참고하면서 '나의 철학'을 갈고 다듬어야 한다. 이때 바람직한 철학으로 다듬기 위해서는 언제나 '유연한 생각'을 해야 한다. 올곧은 성향을 자랑하는 '대쪽같은 철학'을 고집할 생각은 말고 이리저리 휘기도 하고 꺾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문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필요한 책이다. 예를 들어, 에피쿠로스 학파가 무엇을 주장했든 '참고'만 하면 된다. 나의 금욕적인 성향 때문에 '쾌락주의자'의 설명이 불편하다면 '세상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넘어가면 된다. 반대로 나는 제멋대로인 성향을 갖고 있는데 '쾌락을 즐겨라'라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너무 맘에 들었다고 한다면 좀 더 깊이 읽어보길 바란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은 '윤리도덕적인 가치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맘껏 즐겨라'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다 '방탕한 생활'은 금물이라고도 말했다. 자기자신을 해치는 짓도 결코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쾌락은 과연 바람직한 것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인지 살펴보면 된다. 이렇게 '나의 철학(생각의 틀)'이 확고한 분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철학자들'이 수록되어 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꼴랑 여섯 개밖에 수록되어 있어서 참 아쉬웠다.
이처럼 철학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철학책은 나의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에 많이많이 읽을수록 좋다. 그럼에도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묻길 바란다. "외국어도 아니고 한국어로 적혀 있는데 왜 읽어도 모르니?"라고 말이다.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돌은 던지지 말고(((((" )난 늘 옳은쪽(오른쪽)으로 피하지~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
|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서양의 주요 철학 사조나 철학가들의 사상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현실에 적응시켜보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루고 있는 대상은 모두 6명으로, 각각의 사조나 철학자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 그 특징을 짚어내고 있다. 일견 철학이 우리들의 일상과 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살면서 의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철학하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던지는 질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모두 6개의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는 목차에서, 가장 먼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다루고 있다. 흔히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쾌락주의’와 연결시켜 논하고 있지만, 저자는 에피쿠로스가 주장하는 쾌락을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쾌락과는 구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인간의 본성에 근거해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을 가져온다고 주장’했으며, 에피쿠로스가 이야기하는 쾌락은 ‘극단적인 욕망 추구’에 반대하고 ‘자족과 평점심’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쾌락’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정작 그가 말하는 핵심 내용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해 동시대에 활동했던 ‘스토아 학파’의 경우 ‘금욕주의’로 대표되는 철학 사조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은 이성적 절제를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현실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지혜와 윤리적 삶에 기반한 자연과 일치된 삶’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에픽테토스는 자유에 대해서 ‘누구나 무엇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혹은 구속되지 않는 상태’라 규정하고, 그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세네카는 ‘슬픔이 끝나길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보다는 당신의 슬픔을 스스로 끝내는 것이 세련된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그들의 절제는 철저히 자신의 이성적 능력에 의해서 제어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세 번째는 그리스의 사상가로 잘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그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그의 사상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중용의 미덕’을 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중간이 아닌 ‘평균적인 것도 아니고 보통인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음과 너무 적음의 중간이며, 그것은 올바른 중앙이 정확하게 위치하는 곳이며, 사람마다 다르다’고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생각의 도구’이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추구해야할 중요한 가치라고 논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 의지해야 하며, 각가 자유롭게 사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덧붙여 ‘범심론적 일원론’을 제창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인 ‘사르트르’,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형감옥의 중심에 있는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을 활용했던 사회학자 ‘미셀 푸코’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철학을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모두 ‘무력감을 종식시키고자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즉 저자는 이들의 사상을 통해서 그것에 ‘기대에 철학하기’를 배울 수 있다면,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좀 더 지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단순히 그들의 사상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시킬 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고 있다. 우선 철학자들의 사상에서 추출할 수 있는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윤리관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각각의 사상이 지닌 특징들을 소제목으로 하여 그 내용과 현실에서의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이들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이들의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를 권유하는 것이라 이해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속독을 통해서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한 항목씩 다시 정독하면서 내 나름의 ‘철학하기’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멀지 않은 곳에 꽂아두고 자주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우리의 인생은 철학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것이 철학입니다. 그런데 학창시절의 여파인지 아직까지 철학이라고 하면 추상적이고, 어려운 용어와 개념으로 가득한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정말... 철학만큼은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누가 무엇을 말하고 설파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중요한 것이 철학이 아닌가요?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의 저자는 알랭 드 보통이 만든 '인생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이 철학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되겠지요. 일단 550여 페이지가 되는 책의 두께부터 압권입니다.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부피까지 상당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흠짓 뒤로 물러서게 할 자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쉽고 재미있습니다. 에피쿠로스, 스토어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마지막에는 푸코까지 특정 계파만을 소개하지도 않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철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철학자, 학파에 대해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저자의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저자의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에피쿠로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쾌락주의'입니다. 물론, 내 생각이 아니라 교과서를 통해 배운 내용이지요. 그런데 저자는 에피쿠로스가 절대 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쾌락 추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놀라움과 호기심이 발동하게 만듭니다. 끝까지 읽어나가면서 결코 지루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철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시각을 보고 싶어집니다. 책을 보면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철학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보여주고 들려준 것을 가감없이 받아들였네요. 적어도 철학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이제서야 알게 되네요.
|
|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이 책은
이 책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철학책이다. 부제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원제는 <Denken Helpt>는 ‘생각이 돕는다'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저자는 얀 드로스트, 네델란드 출신으로,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예술과 문화 철학을 전공했다. 2005년부터 암스테르담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 Amsterdam]에서 철학 강의를 시작해온 그는 현재 암스테르담 응용과학대에 재직 중이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 소개를 읽어보다가 알랭 드 보통을 만났다. ‘알랭 드 보통’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생학교School of Life]을 세웠다는 것. 저자는 그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때, 외부의 도움을 찾아 나선다. 종교를 가진다거나, 여러 책을 읽어보면서 거기에서 가르침을 얻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본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바로 이러한 배경하에 설립된 암스테르담 인생학교, 거기에서 강의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주체적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해서 저자는 몇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 등 그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우리들의 자세를 정립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독자들은 우선 몇 명의 철학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에피쿠로스, 스토아 학파의 에픽테토스와 세네카,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푸코.
실제로, 그들의 이름은 주마간산격으로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들을 정리해서 읽어본 적이 없기에, 우선 그들의 생각부터 차분하게 읽어볼 수 있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그들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뜻밖에 쉽지가 않다. 분명 우리가 아는 글자, 문자로 쓰여진 글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건 비단 이 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철학책 거의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책이 어렵기에 철학자의 말을 설명해주는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이다.
나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이런 책을 통해 철학자를 만나고, 그들이 남긴 말을 전해듣기도 하고, 설명도 들으면서, 내가 거기에 ‘생각하는’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게 이런 책을 읽는 가장 큰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한다. “인생은 멋진 소풍이 아니다”(237쪽)
이런 말을 들으면, 천상병 시인이 남긴 유명한 말 - 인생은 소풍 - 에 익숙한 우리는 당연히 생각을 하게 된다. 천상병은 소풍이라고 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풍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인생은 나에게 소풍인가 아닌가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을 나름대로 끌어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말이 저절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생각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 시작됩니다. 당연시되던 것이 멈추는 순간 당연시되던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6쪽)
그간 나는 인생이 소풍이라고 하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마지 못해 따라가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런 말에 아무런 생각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그래서 남들은 다들 인생은 소풍이라고 쿨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으니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면서 살아오고 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를 인생은 소풍이 아니다, 라고 말하니, 내 모습이 그저 비정상은 아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삶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의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497쪽)
그렇게 해서 이 책에서 철학자의 어떤 말 한마디를 붙잡고 잠시 씨름해보는 것도, 내 삶의 모습을 살펴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그렇게 철학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읽으면, 그간 막연하게 두려움이란 걸 느꼈는데, 그래서 두려움 속에 살아왔는데, 과연 그 두려움이 합리적인 것이었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두려움을 더 이상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가졌던 두려움에 근거가 있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21쪽)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말을 만난다, <생각은 보고, 느끼고 실행하는 겁니다.> (498쪽)
그래서 이런 말이 이제 '나'에게 해당이 된다. <우리 자신을 대중과 동일화하지 않으면 하나의 객체가 됩니다. 저항을 함으로써 나는 하나의 개인이 됩니다. 저항은 ‘나’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514쪽)
서두에 철학책은 읽기 어렵다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 하게 된다.
철학자의 말이 어렵기에 그 어려운 말을 이해하려고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
얀 드로스트라는 저자의 이름이 나에게는 낯설었음에도 네덜란드의 '알랭드 보통'이라는 마케팅에 홀렸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영 아닌 말도 아닌 것이, 얀 드로스트는 영국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알랭드 보통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건립한 인생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문학과 철학이라는 공통 분모로 두 사람은 참 닮은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작가 얀 드로스트는 철학이 결코 일상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생각하며 삶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그러한 일련의 철학적 사고가, 바로 삶의 일환이란다. 지은이는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푸코와 같이 저명한 철학자들의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 등을 설명한다. 이러한 이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독자들이 참 된 삶을 찾게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희망하면서. 하지만 위대한 철학자라고 해서 그가 주창한 사상이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나 사르트르 학파의 철학을 읽으며 나는 그에 반발하고 싶은 괴리감이 스멀스멀 샘 솟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 이성과 쾌락에 대한 재조명, 우정의 가치 등은 나를 새롭게 자극하고 기존의 신념을 환기하였다. 책을 펴낸 저자의 의도대로 타성에 젖은 일상 속의 나를 돌아보고 사색하게 하는 가치 있는 독서 임에 틀림없었다.
|
|
첫장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다. "스스로 사고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우리는 철학이라 하면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나또한 그렇다 . 그러나 이 책을 접하고내가 생각하는 철학은 좀더 깊고 다양하게 생각하는것이라 생각하며, 본질찾기라 생각한다.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는 에피쿠로스와 함께 생각하기, 스토아학파와 함께 생각하기,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생각하기, 스피노자와 함께 생각하기, 사르트로와 생각하기, 푸코와 생각하기로 구분되어있다.
철학이란 분야속에 들어가니 나에게는 조금많이 어려웠다. 쉽게쉽게 생각하려해도 자꾸 어렵게 느껴지는건 어쩔수 없나보다라고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읽었다. 그중에 난 스토아학파와 함께 철학하기가 많이 와 닿았다. 사람마다 느끼는것이 다 다를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모든일이 '이성'에 의해 일어난다고 한다. 모든 반응이 매우 추상적으로 보이는데 우연보다는 필연에 생각하며, 사람이 갖는 욕심을 버려야 평온함이 온다고 이야기한다.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다스려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고 이야기하는것 처럼~
'이제 고통을 겪지말라, 감정의 주인이 되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려 합니다. (111~112쪽)
사물이 사람들을 직접혼란에 빠트리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사고가 그렇게 한다. 죽음도 그 자체만으로 끔찍한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크라테스도 죽음을 분명히 끔찍한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것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무엇인가 끔찍한것을 생각해서 끔찍한것이다. (123쪽)
사람들은 철학이라 생각하며 고리타분하다. 도인같다고 이야기하지만, 철학은 삶의 기초인것 같다. 생각해보면 모든현상이나 우연이든 필연이든 철학적 개념은 본질이다. 그 본질에 어떠한 생각을 덧붙이느냐에 따라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는것같다.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는 서양철학을 현대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놨다. 이 책을 읽으며 '무소유' 의 책이 더욱 생각났으며, 나 또한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한것 처럼 스스로 사고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철학은 내 삶을 잘 살기위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것 같다.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바래본다. |
|
철학이라는 말은 인간과 인생,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철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갖는 포괄성과 다의성 때문에 철학 앞에는 관념론적 철학· 경험론적 철학· 실존론적 철학· 과학철학 내지 언어철학 등 각 철학의 주제와 특징에 따른 수식어가 항상 붙어 있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초창기에 “지혜에 대한 사랑 내지 추구”로부터 시작해서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자기 비판을 통한 참다운 앎의 추구와 그 앎에 따른 실천적 행위로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각 시대마다 철학자들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전체적이고도 근원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철학의 방법과 대상을 새롭게 규정하며, 그 시대가 제기한 근원적 과제에 답하였다.
일반적으로 철학이라고 하면 지적이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학문하는 사람들만 연구하는 것쯤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철학은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뜬구름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의 소소한 질문을 철학에 비춰보는 순간, 비로소 진짜 ‘나’를 만나고 행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 자신과 나의 삶, 그리고 나의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나는 누구인지, 죽음과 슬픔과 운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자신의 존재가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사고하고 질문해야 한다.
철학은 바람직한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며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이유와 방법을 깨우치게 한다. 철학이 실용적이든 아니든 개인적인 사유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보다 앞서간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들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습득해 깊이 생각한다면 삶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나아가길 원하고 그것이 바로 철학의 한 방법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생각이나 그 생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집니다. 생각은 실재를 보여주며 우리의 코 위에 걸친 생각의 안경에 따라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들을 봅니다. 생각의 안경이 없다면 아무것도,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보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만 보고 있습니다. 숙고하지 않는 인생은 모호한 채로 머물게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공허함과 무의미함,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ㅡ p.9
저자 얀 드로스트는 ‘알랭 드 보통’에 의해 창립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생학교School of Life]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푸코 등 여러 철학가들과 함께 자신들의 삶 속에서 찾은 철학은 무엇이었는지 위대한 철학자의 세계관, 인생관, 윤리, 도덕, 감정, 희망, 자유와 지혜에 대해서 듣는다.
에피쿠로스는 이성주의자이며 철학을 개인의 쾌락, 즉 행복을 얻는 수단을 연구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들은 진정한 쾌락을 ‘마음의 평정’으로 보았고, 이 이상적 상태에 도달한 사람을 현자라고 하였다. 인간을 보편적인 세계 법칙으로서 고립적·자연적 존재로서 파악하였다.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쾌락과 고통을 모든 실천의 기준으로 보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하고 바람직한 삶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스토아학파는 엪,쿠로스와 동시대 그리스 철학의 한 파이다. 신적인 세계법칙인 로고스(logos)가 세계를 형성하고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이 우주적 이법인 로고스를 따라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생활을 하는 데 있으며, 이성에 따르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힘으로 모든 쾌락과 충동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금욕을 통한 충동으로부터 해방된 정신적 평정, 부동심의 상태를 무감동이라 부르고, 이 경지(아타락시아)를 인간이 목적하는 참다운 행복이라 하였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현자로 보았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라" 삶의 행복은 마음의 평정에서 온다. 그 평온함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이미 얻은 것을 원하라. -StoicismM, Zenon(기원전 336~262)』 ㅡp. 74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중용의 덕목을 강조했으며 그것이 곧 인간의 자기실현의 길이라고 여겼다. 그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정치적, 사회적 존재라는 데 주목했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 의지한다는 의미로 이 주장은 자유나 독립성 같은 주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는 『형이상학』에서 참다운 실재는 바로 개개의 특수한 사물이라고 보고 이것을 실체라고 하였다. 모든 사물의 본질은 그 본질의 현실적인 전개로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데서 ‘부동의 원동자’라고 불렀다. 이것은 모든 만물이 움직여가는 궁극의 목적인 동시에 모든 생성의 궁극 원인으로서의 완전자로 규정되는 순수정신 또는 신이다.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 행복은 쾌락과 도덕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는 데서 온다. -Aristoteles (기원전 384~321)』 ㅡp.186 네덜란드의 계몽주의자 스피노자의 철학사상은 범신론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 안에서만 존재하고 자연의 본질적 법칙에 따라 생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이성이며 정신이고 곧 신이라 생각했다. 세계가 곧 신인 이상,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신의 섭리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올바르고 도덕적인 삶을 산다면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본질' '부속물' '상태', 혹은 '많은 것은 하나로부터 이해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국가의 목적은 실제로는 자유라고 하면서, 국가는 교회의 지나친 간섭을 막고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인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행동하는 지성인이었다. 그는 인간이 하나의 실존임을 밝히고 도구와 달리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식인이란 자기 내부와 사회의 구체적 진실에 대한 탐구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사이에 대립이 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Jean Paul Sartre(1905~1980) ㅡp.366』
사르트르 사상의 전반적인 내용은 그의 주저 『존재와 무』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인간 의식의 현상학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게서 의식이란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다. 다시 말해 의식은 자기의 존립을 위해 항상 어떤 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대상에의 의식에 관한 의식을 위해서는 또 하나의 의식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이 '전 반성적 의식' 또는 '순수의식'이다.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인간은 행동에 있어서 무엇을 그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여기에서 책임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나 이미 외적인 상황에 의한 인간의 규정성 자체를 무시하고 인간의 자율적인 의지만을 강조한 기본 사상에 비추어 볼 때 책임 자체는 “스스로를 결정하는 자기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선택하는 입법자”라는 애매하고 관념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뿐이다. 그 기본 사상인 실존주의에 입각한 관념론적 사상은 그의 휴머니즘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결코 해소되지 못했다.
『행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평생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실존주의가 가르쳐준 행복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행동, 나의 집중력, 내가 취사선택한 가치에 충실하기, 이상, 사람 등을 통해 내 자신을 실현해야 합니다. 나중에 헛된 꿈만 꾸고 진짜가 되지 못한 가짜로 인생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ㅡ p.420
미셀 푸코는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역사가이다. 정신의학 이론과 임상연구를 통해 인간의 지식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변화하는지 탐구하였다. 각 시대마다 '앎'의 바탕에 무의식적 문화의 바탕에 체계가 있다는 사상에 도달했고 정신병의 원인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밝혀냈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소외된 비이성적 사고, 즉 광기의 진정한 의미와 역사적 관계를 파헤쳤다. 푸코는 고고학자들이 유적을 발굴하듯, 수많은 구체적인 문헌 자료들을 통해 각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틀, 곧 에피스테메의 모습을 밝히려 했다.
푸코는 부르주아 권력과 형벌제도에 대한 분석의 결과물인 《감시와 처벌》(1975)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 푸코는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용한 법률과 억압적 통치구조를 파헤쳤다. 인간의 알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억압하는 권력과의 관계를 주요 주제로 삼았다. 푸코는 지식은 권력과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광기를 배제한 우리의 문명은 이성 혼자서 독백하는 것과 같다" 언어와 지식은 인간의 신체를 통제하는 데 실제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Michel Foucault(1926~1984) ㅡp.492』
『푸코는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하라’고 외칩니다. 그 안에 우리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사람이 행동하는 것, 행동에서 벗어나는 움직임, 그리고 목적으로 확정 짓는 것과 관련된 자유다. 생각은 문제시되는 것을 심사숙고하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거리를 두고 그것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질문을 해서, 누구에게 이익이 생기고 누구에게 장점이 되는지를 다양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와 함께 자신을 동떨어진 자율적인 개인으로 보지 않고 전체 상품의 한 부분이자 권력 구조와 권력 게임이 지배하는 교차점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우리를 비판적으로 배울 수 있는 사고의 공간이 마련됩니다. ㅡ p.515』
|
|
학교에서의 철학 수업을 생각해보면 암기했던 기억 밖에 나지 않네요. 고대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시험 문제를 내기 좋도록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도 조금씩 달라 어떻게 하면 키워드 위주로 쉽게 외울 수 있을지 잔머리를 굴리기도 했습니다. 서양 철학자들이 만물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서로 다른 주장을 한 것이나 이기일원론, 이기이원론이 논쟁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이 나지만 상세 내용은 거의 잊었네요. 철학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지만 철학을 안다면 어떻게 하는게 잘 사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철학자들의 주장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나의 삶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시중에는 많은 철학책들이 나와있는데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는 철학과 실생활을 접목하면서 철학을 알아가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알랭 드 보통이 세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인생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의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철학을 통한 삶의 이해와 성찰을 더 중요시하고 있네요. 책 표지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라고 나와있는데 생각을 멈춘다면 이성이 아닌 본능에 따라 살면서 동물과 다를 바가 없어질 것입니다. 책은 크게 에피쿠로스, 스토아학파,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사르트르, 푸코와 함께 철학하기 등 6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어떤 철학책을 읽어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빠지지 않는데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함께 서양 철학의 기초를 닦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알기 위해 그의 저서를 읽는 것은 쉽지 않네요. 이 책에서는 세계관이나 윤리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일상 생활과 연계해서 읽으니 전보다는 와닿는 것 같습니다. 현대 철학으로 갈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데 책 마지막에는 사르트르와 푸코의 철학이 나오네요. 사르트르라고 하면 실존주의가 떠오르는데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를 통해 신이 존재하는지 철학적으로 성찰을 하였는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자연스럽게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르트르의 관점을 따른다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읽어볼 수 있었네요. 철학은 인간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괴리가 생긴다면 철학으로서의 가치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배웠던 철학 자체보다는 이러한 철학을 통해서 삶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니 그 기준점으로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가치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집없는 사람들이며 세상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 하지만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집을 지을 수 있으며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 안식처를 짓고 노여움 가득한 이 땅에 우호적인 소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하여 그는 빵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라는 말을 했는가 봅니다. 우리는 대게 에피쿠로스를 배부른 돼지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극단적인 욕망을 삶에서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족과 평정심이 아주 평화로운 집을 짓는 가장 중요한 뼈대였지요. 에피쿠로스를 알고 난 후 작은 기쁨에 눈을 뜨려 애쓰고 있어요. 쌩쌩 찬바람 부는 문 밖이 아니라 포근한 내 집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구요. 배부르게 먹고 즐거운 가르침을 주는 책을 읽고 월급을 주는 직장에 무사히 출근할 내일에 만족하게 되요. 에피쿠로스의 이야기로 오늘 하루를 되새기고 내일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단단한 벽돌집 한 채를 벌써 절반은 올린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에픽테토스와 세네카가 중심이 된 스토아 학파는 안분지족을 중요하게 생각한 조선의 선비님들 같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자연스러운 쾌락 추구(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쾌락과는 완전히 다른!) 상태에서 한층 나아가 이미 얻은 것 안에서 원하라거나 남에게 속하는 모든 것은 타인의 소유이며 우리가 보는 것만 소유하라거나 하여튼 좀 철절한 금욕주의를 주장하니까요. 에픽테토스는 여러 인상적인 인생 규칙을 남겼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철학적 경험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실패에 대해 다른 사람을 책망할 것이다."(p108)라는 거에요. 지식이란 혼자 서 있지 못한대요. 고립되어 떠돌수도 없구요. 때문에 모든 철학이 윤리학이며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잘 어울려 지내려는 소망과 연결되어 있다는군요. 철학이 나 혼자 잘 살거나 나 혼자 건강하거나 나 혼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공감과 이해로 더불어 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세네카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죠. "내일의 내가 하겠지!"와는 정반대되는 주장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친우 루킬리우스에게 모든 순간을 두 손으로 잡으라고 충고합니다. "네가 그렇게 현재를 붙잡고 있으면 결과는 네가 내일이라는 날에 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인생은 미뤄놓는 동안에 이미 휙 지나가버리는 것이다."(p126) 그간 내일의 나에게 죄책감 드는 하루들이 많았는데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대로 조금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밖으로도 여러 철학자들이 등장해 우리 삶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 의지한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그는 인간이 무엇으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를 궁리해요. 피천득 시인과는 달리 "인생은 멋진 소풍이 아니다."(p237)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언제나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라"(p357)고 말한 스피노자의 직업은 안경유리공이었는데요. 그는 잘 보인다고 생각할 때까지 그의 생각하는 안경을 갈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보고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요. '살아지고 있다'는 자유로운 필연에 대해서는 좀 더 궁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을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존재로 본 사르트르도 있습니다. 사르트르를 알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한 감정적인 학대를 확실히 덜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되도록 우리 스스로를 완벽하게 정의하려고 애쓰지 맙시다. 사르트르를 생각하면 작가가 저절로 떠올리는 노랫말이 하나 있는데 아마 많이들 공감할 것 같아 소개해요. "인생을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자책하지 말아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사람들도 22살 때 그들이 뭘 하면서 살고 싶었는지 몰랐어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어떤 40대들은 아직도 몰라요."(p487) 멋진 40대도 그렇다니 좀 위로가 되는데요?
철학책을 읽는 행위를 여태 지식을 쌓는 일로 보고 접근했는데요.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를 읽는 순간엔 지식이 아니라 마음 근육을 키우는 일의 한 가지로 느꼈습니다. 보고 느끼고 실행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생각하기에 닿아있는데 그 생각의 빈 구멍들이 너무 많죠. 대체로의 우리는 그리 깊게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고 폭넓게 사유하는 사람도 아니라 혼자 들여다보면 그 구멍이 뭔지 잘 파악이 안되요. 이 생각의 빈구멍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자들이 보여주고 찾아주고 조금씩 메워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힘들거나 외롭거나 우울하거나 무책임하고 싶거나 무기력하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왜 나만? 이라는 자기 중심적 사고로 구멍을 파고 들어가 잠수하기 보다 철학책 한 권 끼고 앉아 철학 속에서 자맥질 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동하듯 어푸어푸, 머리를 굴리고 말씀을 듣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개운해질 거에요.
아참, 작가 얀 드로스트는 <망설임>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좌우명이 될 문장을 발견해요. "여기가 어디든 여기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환상적이다."(p352)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에 맞춰 다시금 풀이해 저의 좌우명으로 삼기로 합니다. "이 책이 무슨 책이든 지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환상적이다." 세네카의 말도 있어요. 저는 그의 사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 말만큼은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수 많은 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때, 비록 전부를 읽을 수는 없어도 되도록 많이 읽으려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p126) 오늘도 많이 읽은 하루, 마음이 충만합니다.
|
|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지 마라 나는 누구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행복한가,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의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바꿀수 있을까... 이런 생각과 질문에 대해 고민할 가치가 있다. '철학은 학문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얀 드로스트는 의미 있는 삶, 생기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우리를 더 겸손하게 만들고, 또 덜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일상 속에서 성찰하는 삶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책 속에는 에피쿠로스와 함께 생각하기 스토아학파와 함께 생각하기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생각하기 스피노자와 함께 생각하기 샤르트르와 함께 생각하기 푸코와 함께 생각하기 각 철학자들의 세계관, 인간관, 윤리관 등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찾아간다. 이 책에 큰주제부터 시작하며 '어떻게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무의식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무력감을 종식시키고자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각자는 '생각이 도움이 된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을 알아가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지혜를 주고 있다. '사페레 아우데! 스스로 사고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첫번째로 만나본 철학자는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와 함께 생각을 해볼텐데 이 철학자에 대해 아는것이 많이 없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던 거 같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간소한 생활 속에서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적 이상은 육체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평정상태'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빵과 물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 에피쿠로스는 두려움이 인간적인 행복 추구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그럼 두려움을 갖는 이유와 벗어나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내가 두려워하는것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생각하다보니 너무 많고 내가 참 예민하다는 생각도 든다. 두려워 하는 것 중 하나는 나는 벌레가 너무 싫다. 길을 가다가도 벌레가 날아오기라도 하면 기겁을 한다. 밤에 바퀴벌레를 보기라도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실재의 성격을 간파해 인간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에피쿠로스가 설파하는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존재하면서도 괴롭히지 않는 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인 경우, 우리에게 근거 없는 걱정만 초래한다.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죽은 자들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대한 관점은 내가 생각하는 그의미와 다른거다.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 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쁨을 느끼는 것도 영점 기준선으로 생각한다면 모든것에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조금더. 조금더 누리고 싶고. 조금더 많이 가지고 싶고... 행복이 오는 기준을 놓쳐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에피쿠로스를 만나고 작은것에서 행복을 찾아보았다. 밖은 너무 추운데 따뜻한 방에 앉아 '생각에 기대어 철학하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가?' 행복은 쾌락과 도덕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는 데서 온다. ㅡ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간주했다. 목적론적 세계관. 살아있는 모든 것 또한 목적이 있다. 도토리의 내재적인 목적은 도토리나무이다. 그럼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성이 우선이다. 세 가지 영혼 식물적인 영혼, 감각적인 영혼(동물영혼), 이성적인 영혼(인간영혼)이 있다. 이성적인 영혼은 순수한 사상 인간의 지적능력. 생각이 말이 된다는 것을 경계하라. 말이 행동이 된다는 것을 경계하라. 행동이 습관이 된다는 것을 경계하라. 습관이 성격이 된다는 것을 경계하라. 성격이 운명이 된다는 것을 경계해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되는 것이다. 철학자들과 함께 생각해봄으로 그들의 철학이 내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철학적 사색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나 자신과 나의 삶, 그리고 나의 행복이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