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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공부하면 우선 떠 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우리는 자라면서 누구나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공부와 멀어져 간다. 요즘에야 평생공부니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공부하면 우선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또한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와 별로 친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이 공부라고 엄포도 놓는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공부가 중요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결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처럼 매달리는 공부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은 KBS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공부하는 인간 Homo Academicus]를 책으로 펴낸 것으로, 우리가 평상시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의문 즉,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제작진은 각 나라에서 행하고 있는 공부의 목적,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을 살펴보면서, 우리로 하여금 과연 최고의 공부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한 사회의 공부와 그곳의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은 서로 긴밀한 영향을 미치면서 학문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고유의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각 문화권 혹은 각 나라의 공부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크게는 동양과 서양의 공부법이 다르고, 같은 문화권이라 할지라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공부가 의미하는 것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공부한다’는 대치동 한 초등학생의 말에서 극명하게 들어난다. 새벽 늦도록 대치동 학원가, 노량진 고시촌 그리고 대학 도서관을 밝히는 불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한민국 청춘들의 불안이 밝히는 불이자, 교육으로 일로매진하는 이 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불이라고 한다. 중국 역시 한국 못지않게 공부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중국의 부모들은 공부가 미래의 삶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 체득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자식들의 공부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그러나 공부의 목적을 개인이 아니라 가족, 사회, 국가 등 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에 두고 있다는 칭화대 학생들의 말은 우리나라 대치동 초등학생들의 말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공부에 대한 열기는 동양권의 다른 나라인 일본이나 인도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다. 명문대 입학이 성공의 지름길인 일본, 공부가 가난과 신분의 굴레를 벗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인도, 모두가 죽기살기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동양인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난과 계급의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신분상승의 기회 인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에게 있어 공부는 신분상승보다는 진리탐구나 학문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지적유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학업성취율이 높다고 한다. 제작진은 그 이유를 동양의 문화에서 찾고 있다. 개인의 독립성보다는 집단과의 관계성을 중시하는 문화는 동양인들로 하여금 서양인과는 달리 개인을 넘어 가족, 사회, 국가를 위해 공부하게 만든다. 주위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동기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노력에 대한 신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회에 존재하는 표준 혹은 평균에 속하려는 열망이, 그들로 하여금 높은 성취를 이루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양인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의 지적성취는 가히 기적이라 이를만하다. 전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그들이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3%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공부에 매진했는지를 보여준다. 박해를 받으며 떠도는 유대인에게 있어 유형자산보다는 무형자산이 더 소중했기에, 지식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며 공부에 매진했고, 또한 유대교를 믿는 방식이 그들의 경전인 토라를 공부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어려서부터 공부에 익숙하다고 한다. 거기에 그들의 가족주의 문화도 한 몫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교육 열풍 같은 것이 없는 이유는, 가족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동양과는 달리 부모가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녀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공부에 대한 열기는 문화권에 따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공부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동양인들은 듣고서 스스로 공부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묻고 표현하면서 공부를 한다. 그것은 집단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은 자기표현이나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개인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이를 긍정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동양의 공부는 암기이고, 서양의 공부는 질문인 셈이다. 동서양이 이처럼 서로 다르게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진은 그것을 지식이나 진리에 대한 관점 및 문제해결 방식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먼저 지식에 대한 관점을 보면 동양은 지식이 세상밖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최대한 많이 습득함으로써 더 나은 자기자신의 변화를 꾀하는데 반해, 서양은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지식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여야 한다고 믿는다. 진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동양에서는 진리가 자기 마음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는 수행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지만, 서양은 진리가 토론 속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토론과 논쟁을 많이 할수록 진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문제해결 방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은 타협을 통한 해결을 추구하기에 암기의 공부를 하고,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서양은 논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하기에 질문의 공부를 한다고 제작진은 말한다. 이렇게 동서양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부해 왔으며, 각각의 방식은 문화권내에서 경쟁력과 가치를 지니기에 좋고, 나쁨을 따지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공부를 통해 배우는 보통의 존재라고 할 때, 모두가 꿈꾸는 즐거운 공부, 행복한 공부의 방식은 무엇일까? 제작진은 그것을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라고 말한다. 그들이 살펴본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나 MIT 미디어랩은 바로 소통을 공부의 핵심가치로 여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교육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만이 미래의 공부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작진이 던진 화두는 우리가 하는 공부의 가치와 목표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대치동 초등학생의 말에서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부의 목적이 분명하다. 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온 전통의 삶과도 분명히 다르다. 어쩌다 공부가 이러한 목적을 지니게 되었는지, 그렇기에 우리의 공부는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끝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평생을 해도 모자라는 것이 공부라 한 선조들의 지혜는 비록 서양과 공부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들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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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책을 보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진정한 공부에 대한 생각 없이 문제지를 풀고 답하는 형태로 고착화되는 나날이다. 가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사유하는 가운데 지금 자신이 펴놓고 있는 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는 공부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릴 것 같은 불안감으로 문제를 풀며 지내는 학생들이 많다. 고3 교실에서 EBS교재로 수업을 하며 학생들 등급을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한 문제라도 더 풀어야 과열된 입시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끝내는 승자의 얼굴로 웃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강요하며 지낸다. 나 역시 학교 다닐 때는 자식 뒷바라지로 힘들게 생활하는 어머니의 노력에 보답하려는 의무감이 앞서서 공부해왔다. 하지만 배우며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교사로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며 지적 완성도를 지향하고 드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길에 몸으로 부대끼며 체득하는 공부에 의미를 두고 있다.
<<공부하는 인간>>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하며 공부하는 인간으로 자존감을 높이며 스스로의 학습법을 찾아 주도형 학습에 능한 네 명의 학생들과 함께 여러 나라 학생들의 공부법을 찾아 취재에 나서서 현장 인터뷰와 학습 장면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배워서 남을 주기보다는 입신양명하여 수직적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목적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떠났던 조선 시대에나 명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현대에서나 공부를 통한 시험은 통과의례처럼 자리한다. 자식들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사교육 열풍을 몰고 왔고 교육에 모든 것을 걸어 가난한 노년을 맞게 되는 경우가 흔한 풍경이다. 다양한 길을 탐색하며 모색하기보다는 상위 1% 성적을 유지하는 길만이 살아날 길이라는 생각으로 학습에 매진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이 <<공부하는 인간>>은 한국을 출발점으로 삼아 동양과 서양의 문화권 아래 놓인 사회 문화적 맥락을 살피며 한 사회의 공부를 이끄는 정신적 토대는 무엇인지를 밝히며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추론해갔다.
세계적으로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이는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며 온갖 박해를 당할 때에도 유대교의 율법이 담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며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생존 전략으로 공부를 택함으로써 세계 속으로 나가 큰 힘을 발휘하며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하여 나라의 위상을 높여 갔다. 이들은 유형의 재산은 강탈달할 수 있지만 무형의 자산인 지식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최상의 가치임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명성 있는 랍비들의 토론과 논쟁을 담았지만 답은 내려주지 않는 <<탈무드>>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진실을 탐구하는 공부로 이끌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스라엘 국민은 18세~20세 사이에 남녀가 모두 군 복무 기간을 거친 뒤에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추정하였다. 기아와 내전 등으로 교육열이 낮은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는 우간다 유대인들이 진실을 향한 질문과 논쟁으로 배움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앎에 대한 욕구가 강렬함을 생각게 한다.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서양의 문화 아래 교육을 받은 서양인들은 개인의 행복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공부하며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논쟁하는 시간을 즐긴다. 반면에 동양인들은 집단과의 관계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 아래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지향하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 암기하는 공부로 단시간에 학업성취도를 높일 수 있지만 창의성을 높이는 공부에 한계가 있다. 수동적인 태도로 교사의 지시 일변도의 수업에 익숙한 이들이 전체적인 개념을 이해하기보다는 암기를 우선시하는 공부에 젖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일에 미숙한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크니스 테이블에 둘러 앉아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에서 지향하는 공부의 목적은 ‘각자의 지식을 나누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질문을 통해 타인과 의사를 교류하며 무엇인가를 배워 사고를 확장해 가는 공부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검증받는 가운데 해결력을 키워가는 공부로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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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을 듣는다. 우리 곁을 좀처럼 떠나려하지 않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전쟁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의 삶에서 공부를 떼놓을 수 없다면 공부에 대해 정확히 알아서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동족상잔이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앞선 세대의 교육열 덕분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자국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배워야한다는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뜨거운 교육열로 인해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무대에 세워졌다. 공부라는 말 앞에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아이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하나 뿐인 집이라도 팔아서 뒷바라지 하는 부모들의 교육열 덕분에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은 국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비교해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다는 노벨상 수상자는 왜 속 시원하게 배출되지 않을까. 유대인은 역대 노벨상의 23%를 휩쓸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는 이런 성취는 “왜 하필이면?”이라는 의문을 낳게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시도한 것이 바로 KBS의 다큐 프로그램인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의 제작 동기였다. 이 책은 제작진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 다큐에 뼈와 살을 붙인 거라고 한다. 제작진은 우선 진행자 4명을 선발했다. 한국계 유대인인 릴리와 하버드대에서 오디션으로 선발한 스캇, 스캇은 한국인 이민 2세로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같은 대학에서 통계학을 공부하는 브라이언은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고, 유럽계 미국인 제니는 하버드대에서도 눈에 띄는 학구파라고 한다.
제작진은 이렇게 선발된 4명의 학생과 더불어 세계를 돌아다녔다. 우선 우리나라에 들어온 4명의 진행자들은 수능 백일을 앞둔 우리나라의 입시 열기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팔공산 갓바위에서 자식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보면서 대학입시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에 씁쓸해했다. 중국 역시 입시 열기가 한국 못지않았다. 중국의 대표대학인 베이징대와 청화대 학생들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했다. 중국은 자신의 공부가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공부에 가정과 국가 사회와 연관 짓는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했다. 일본의 도쿄대학 역시 치열한 입시 경쟁을 통과해야한다. 명문을 향한 열정은 중국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개인의 직업에 대해서 그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교육열이 한국과 중국에 비해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는 JEE를 통과하기 위한 열기가 뜨거웠다. JEE는 인도공과대학 교수들이 최대한 독창적인 문제를 만드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은 문제가 출제된 적이 없을 만큼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인도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JEE를 통과해 인도공과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인도에서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신분차별과 가난을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제작진들이 진행자와 더불어 여러 나라를 돌아본 결과 공부전쟁은 세계 공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방식이나 공부에 대한 가치관은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확연히 다른 것을 발견했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훨씬 더 열심히 공부하고 그 성취도 눈에 띄는데 그 이유는 동양인들은 개인의 공부가 가족과 사회 국가까지 아우르고 있다는데 있었다.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공부의 목적을 개인을 넘어 가족과 사회로 확장 시키는 까닭을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답을 찾았다. 동양인들은 벼농사를 통해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가 주어진다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노력한 만큼 결과를 갖는다는 믿음에서 공부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사회의 기대감이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듯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학습에 대한 열의가 높은 이유는 그 동기를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성취는 개인의 것으로 간주한다. 서양인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밀농사를 주로 지으면서 노력보다는 작물의 특성이 성취의 결과를 다르게 한다는 것을 익혔다. 공부 역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에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는 그만큼 포기가 빠르다. 또한 서양인들은 학문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공부에 오래 몰두하지 않는다. 동양에서 주로 하고 있는 암기 위주의 공부 방식은 학습 성취를 단기간에 이루기는 쉬우나 창의성이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보고 있다. 서양의 질문을 통한 학습방식은 그 반대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울 수는 있으나 학습효과는 빠르지 않다. 또 혼자서 하는 공부는 확장되기 어려운 반면 서로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토론 방식은 하나의 생각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발전시킬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동서양이 서로의 환경에 맞춰 발전한 공부 방법을 크게는 암기와 토론으로 나눌 수 있었다. 현재 세계 명문대학에서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생각을 확장 발전시킬 수 있는 질문을 통한 학습방법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공부방법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의 두뇌에 쌓이는 개인적인 지식은 쉽게 휘발되지만, 여러 사람의 두뇌가 생산하는 사고 사상은 공유할수록 고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습 형태란 일정 부분 개인적으로 학습하면서 그런 개인이 모여 그들이 성취한 것을 토론하는 활동을 병행하는 것입니다.(355)- MIT미리어랩의 부책임자인히로시 이시 교수 책에서 제시된 여러 나라의 공부 방법 중에 아무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유대인들이다. 오랫동안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일찌감치 공부의 가치에 눈을 뜨고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유대인들은 동족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돕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가족의 이름으로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유대인들은 자기주도 학습에 능하고 자존감도 높은데 어릴 때부터 부모가 직접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고, 언제나 “왜”라는 질문을 하기를 원하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멘토와 교사라고 여긴다. “질문을 통한 토론과 논쟁”이 유대인공부의 핵심인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직접 탐구하면서 ‘왜?’라고 생각하고, 문제에 직접 맞닥뜨려 학습하라고 강조하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231쪽)
그러나 어른에 대한 예의와 겸손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대인들의 토론 방식이 어른을 몰라보는 예의 없는 난장판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학습하는 방법이 무조건 좋지 않고 버려야 할 산물이며, 서양의 것이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다.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나라의 공부법을 참고로 자신에게 혹은 자녀들에게 가장 적합한 공부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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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나는 부모님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았다. 그건 내가 공부를 잘 해서라기보다 지금 당장의 공부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다급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면 가방은 집에다 던져 놓고,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하루 종일 나가서 놀았던 나는 공부의 ‘공’자와 친하지 않았다. 우리 반 친구 중에 학원이란 곳을 다닌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그것도 좀 산다고 하는 아이들만 다녔던 학원이 그렇게도 부러웠지만 형제자매가 많았던 우리 집에선 꿈도 꿀 수 없던 호화스러움이었다.
그러던 내가 공부다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말. “엄마처럼 살기 싫어.” 엄마처럼 살기 싫었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공부였다. 삶에는 많은 방법들이 있고, 공부가 아니어도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 당시 나는 왜 공부를 택했던 것일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서? 아님 공부만이 보다 나은 인생을 만들 수 있어서? 모두 아니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를 업그레이드시킬 가장 좋은 방법과 빠른 방법은 역시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인종들은 공부에 매진하는 모양이다.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공부를 대하는 각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배경과 생각들의 차이가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공부 방식의 독특함이 참 좋았다. 이 책은 모두 6개의 파트로 나뉜다. 1) 세계는 지금 치열한 공부 전쟁 중 2) 동양인은 왜 죽도록 공부하는가? 3) 공부의 세계 최강자 유대인 4) 인류 문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문화 코드 공부 5) 암기하는 동양, 질문하는 서양 6) 교류와 협력의 공부가 미래의 공부다.
여러 나라의 공부 방법과 공부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는 나태해졌던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육 선진국들이 왜 선진국일 수밖에 없고, 그들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지, 이 책을 통해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공부가 지긋지긋하다고 말하지만 인간이 지구에 정착한 이래 공부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은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결코 줄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탐욕까지 함께 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공부는 뗄 수 없는 한 몸 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공부를 대하는 동서양의 시선차이다. 가족을 위한, 사회를 위한, 국가를 위한 공부를 하는 동양에 비해, 서양은 오로지 개인을 위한 공부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들보다 동양인들이 공부를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한다고 한다. 개인의 성취를 순전히 개인의 것으로 간주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가족, 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공부하는 동양인들은 나태해지거나 좌절에 빠졌을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다시 노력하게 되고, 그것들은 학업성취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동양 사람들의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무조건적 믿음에 서양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처럼 학생들을 수준별로 나누지 않고 모두 같은 교실에서 동등한 수업을 하는 것이 곧 동양인들이 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보다는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증거라고 말한다. 동양인들은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서양인들은 긍정적인 피드백에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 봐도 달라도 너무 다름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양인들은 학문 그 자체를 중시하고 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동양에서는 가난과 계급의 탈출구로 공부를 선택한다. 이것은 과거 동양에 있었던 과거제도가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1,300년의 시험지옥 과거제도. 과거제도 시행 이래 연속해서 한 번에 합격한 사람이 단 17명 뿐 이었다고 하니.. 과거제도는 당연히 신분 상승의 도구로 전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어 버리니 그 옛날에도 컨닝을 하는 선비들이 많을 수밖에...
이 책에선 유대인의 공부 방법도 간략하게 이야기 하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는데 그 군복무가 창의적인 교육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한다. 18세에서 20세 사이에 군 복무를 해야 하는 이스라엘은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 동안 군 복무하는데, 그동안 받는 월급이 높아, 이 돈을 모야 제대를 한 뒤 여행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급하게 선택한 내 인생이 아니니 보다 알차고 행복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와 많이 비교되는 부분이 있어 부럽기도 했다.
이 밖에 각 나라의 공부 스타일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끝으로 미래의 공부 방법을 제시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암기 중심의, 동양의 공부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부에도 소통이 필요하다. 즉 세계가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에 주목하는 것을 안다면 아이들에게 학원에서 주입식 교육을 시키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공부를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지식을 나누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사고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질문하고 분석하라!.” (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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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무엇인지 내가 생각해 본 적 있던가.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는 별 생각없이 공부했던 것 같다. 정말 공부한 거 맞나. 학교 다니는 게 공부하는 것이다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학교에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건 공부하기 싫다와 같은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다니면서는 학교에 가기 싫었느냐 하면, 학년이 바뀔 때 그랬다. 친구 사귀는 게 쉽지 않아서. 반이 바뀌고 담임선생님이 바뀌는 어색한 분위기가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안 다닐 수도 없고, 그때는 학교에 빠지면 안 되는지 알았다. 감기에 걸려서 아파도 갔다. 아주 많이 아팠을 때 쉰 적 있지만 그것은 1학년 때 한번뿐이다. 어떤 선생님은 학교에 안 빠지고 다니는 걸 아주 대단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순진한(다른 말로 바보 같은) 나는 그렇구나 하고 학교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 예전 나 참 대단하구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는 따로 공부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시험을 잘 보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달랐다. 나름 공부한다고 했지만 시험은 별로……. 이렇게 생각하니 나도 시험 잘 보려고 공부했나 싶다. 무엇이 하고 싶어서거나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 게 아니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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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김희정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한 가지 했다. 동양 문화권과 서양 문화권에서 성장한 학생들에게 동일한 문제를 주고 한 번은 말을 하면서 풀게 하고, 또 한 번은 침묵하며 풀게 했다.
▲하커니스 테이블(Harkness Table)
한편 옥스퍼드유니언은 옥스퍼드대학 내에서도 손꼽히는 토론 클럽이다. 옥스퍼드유니언은 1823년 창립 이래 과거의 토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주변의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다양한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을 벌인다. 매주 목요일마다 사회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열기도 한다. 한국 가수 싸이도 이곳에서 ‘도전과 결단’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바 있다. 동양은 암기의 공부요, 서양은 질문의 공부다. 동양은 관찰 대상과 자아가 합일 상태가 ‘되는 것’을 지양한다. 동양 문화는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갈고 닦는 수행을 통해 진리 탐구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중국과 인도, 한국과 일본의 공부법이 대체로 비슷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강의식 수업을 듣고, 고시원이나 독서실에 틀어박혀 혼자서 공부한다. 그것도 기출문제를 풀고 암기하고 또 암기하는 식이다. 이에 반해 서양은 관찰하는 사람, 즉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추구한다.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수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어떤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관찰하고 발견한 것을 자유롭게 말하고 반박하는 토론과정을 거쳐야 한다. 서양 문화가 토론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고, 토론과 논쟁을 많이 할수록 진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의 기획은 본래 공부의 세계 최강자 유대인의 교육방식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본토 780만 명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1,700만 명이다. 전 세계 인구 60억의 0.3%에 불과하지만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의 30%를 차지하고 역대 노벨상 중 23%를 휩쓸고 있다.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릴리가 어릴 때는 잠들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었고, 오랜 기간 릴리의 학습을 직접 지도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권장하고 아이가 질문할 때마다 열심히 응대를 해주었다. 또한 릴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었으며, 릴리와 함께 휴일을 보내고, 여행이나 현장학습을 갔다.” - 203쪽
▲릴리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생후 9개월 때 유대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한편 책은 우리의 수능, 중국의 까오카오, 일본의 대입시험, 인도의 JEE(공통입학시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등 여러 대학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탐방한다. 이 부분은 사실 파악을 위해 그냥 읽고 참고만 하자. “좋은 아이디어는 지성이 한데 모였을 때만 가능하고, 개개인의 독특한 사고가 한곳에 모이고 이를 수정해 나가면서 그 힘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창의적인 개인들이 모여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비판하고 정보를 주고받아야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됩니다.” MIT 미디어랩 부책임자인 히로시 이시 교수의 말이다. 히로시 교수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혁신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못처럼 눈에 띄어야 합니다. 동양 문화는 못처럼 튀어나오면 망치로 두드리죠. 하지만 자기 고집을 갖고 계속 못처럼 튀어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무도 망치로 두드리지 못하고, 미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창의성과 혁신을 기를 수 있는 겁니다.”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암기 중심의 공부에서 소통과 협력의 공부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아뿔사, 일제가 남긴 유산, 자본의 탐욕과 군사 문화의 잔재는 아직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요즘 빡세게 공부한다고 개천에서 용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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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이런 질문은 진작부터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교육이 자원의 대부분인 나라에서는 더욱 그래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할것 없이 지긋지긋한 고등학교 시절을 겪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모범생(?)이였고 매우 열심히 공부했다. 왜 공부하는지 이유도 모르게 그냥 공부했다. 단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목표였던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가면 연애도 할수 있고 지긋한 학교감옥(?)에서 해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좋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달콤한 유혹에 누구나 그 이유를 모르고 내달렸지 싶다. 나도 그중 한명이였다. 그런데 나는 학력고사 세대이기에 많은 과목을 공부했다. 그런데 분명 그 많은 과목중에서도 적성에 맞지 않고 관심가지 않는 과목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몰라고 그러한 것들이 용납되지 않았다. 선생이 싫어서 아님 과목자체가 싫어서 분명히 노력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과목을 앞에두고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마치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하지 못하면 죄인이 된건 마냥 이 과목은 왜 공부가 안될까하며 머리싸매고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공부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도 없이 단지 공부하면 나중에 하고싶은거 할수 있고 인생성공할수 있고 미팅도 할수 있고 지긋한 고교생활을 졸업할수 있다는 매우 사소한 기능적인 이유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런데 내가 공부에 대한 이유를 알게된 것은 순전히 인생의가장 어려운 시기에 내가 할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 독서였기 때문이였다. 나는 생존의 차원에서 독서를 했고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어야할 이유와 공부의 이유가 단지 성공을 위한 기능적인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게되었다. 그러면서 동양철학에서 공부론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 정말 주자가 말한 것 처럼 글공부와 마음공부 그리고 몸공부가 함께 되는 자기수양이 공부의 참된 뜻이라는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의 공부이유와 잘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공부는 자신을 세울수 있는 가장 휼륭하고도 쉬은 방법임을 알았다.
지금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밤이 맞도록 공부한다. 물론 내가 학생때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유와 선택권이 학생들에게 주어졌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직도 대학에 가기위해서 그러한 비천한 목적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 공부에 대한 올바른 목적을 알지 못하면 머리를 좋고 아는 것은 많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혼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이 책은 티비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했던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공부를 왜하는 가에 대한 나름의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먼저 공부의 신이라고 불리는 하버드 대학생 4명이 비슷한 또래의 전세계 학생들을 찾아다니면 그들만의 공부 방법과 이유, 그리고 진정한 공부의 목적을 찾아나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교육열이 높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강남, 대치동 거기에서 4명의 하버드생들은 대학에 가기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그들이 왜 공부하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함이였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사회상황상 어쩔수 없다는 답을 했다. 물론 그들의 문제풀이 능력은 하버드생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러나 창의성과 자유와 생기에 있어서는 뭔가 눌려있는 느낌이였다.
이어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등을 찾아다니면 그들이 왜 공부하는지를 물었다. 여러 가지 답이 있었다. 주로 동양의 학생들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리고 입신양명을 위해서 공부하는 이류가 컸다.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의 공부는 함께 소리내어서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는 대화식 공부가 특징이였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다니는 우리나라의 도서관과는 달리 시장을 방불케할 만큼 큰 소리로 공부하는 것이 인상적이였다. 이스라엘은 책의 민족, 공부의 민족답게 그들의 정체성은 토라의 공부가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공부를 했고 그것을 통해서 위대한 민족이 될수 있었다.
<공부하는 인간>은 각 문화권마다 공부하는 방식, 공부를 왜 하는지, 공부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므로 동서양의 공부의 차이와 그것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고 찾고 있다.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찾아 긴 여정을 통해서 인류는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부는 인류보편적인 자기 발견과 자기 발전의 과정이며, 곧 공부하는 것 자체가 참된 인간에 이르게 한다는 보편적인 결론을 보여준다. 문화권마다 공부의 방법과 이유는 다르지만 그것이 출세의 길이 됐던, 입신양명의 길이 되었던, 자기수양의 길이 되었던 인류의 괘적은 곧 공부하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또한 보여주었다.
인간의 왜 공부하는가? 나는 동양의 방법, 즉 유학을 통해서 훨씬더 깊은 공부의 이유와 총체적인 방법을 알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자기 수양의 길이다. 공부는 더 깊은 깨달음을 갖게 하므로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여 그들과 소통하고 받아들이는 '함께'의 나눔으로 가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공부하지 않는 인간은 왜골수적이고 독단적이고 단편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평생 책한권 읽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공부를 통해서 세상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관점을 얻고 그것을 통해서 함께 어우려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 공동체를 만들어 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느 대학에 가고 어느 직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닦고 주변을 닦는 동양 고전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 평천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공부의 올바른 목적이 아닌가 한다. 자기를 수양할 수 있는 사람, 즉 글공부, 마음공부, 몸공부를 통해서 세상과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기능적 공부가 아니라 인문적 공부의 참 목적이 아닐까 싶다. 공부는 즐겁다. 도서관에서 한권의 묵직한 책을 읽으면 나의 깨달음이 깊이가 깊어졌을때 밤하늘 별을 보며 가슴벅차고 나의 정신의 키가 한뼘 커진 것을 느끼는 희열을 맛보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공부의 이유이리라.
공부는 인류 보편의 테마이자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며,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을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코드다. 따라서 공부를 보면 과거의 우리가 보이고 현재의 우리, 미래의 우리가 보인다. 그러므로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어도 공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미래에도 인간이 가야할 길이다. p.3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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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이 내 얘기를 들으면 웃겠지만 내가 농구공을 처음 만져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농구를 해보기는커녕 농구공조차 만져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던 나는 형을 따라 도시로 전학을 했다. 형과 함께 자취를 했었는데 주인집에는 나와 동갑인 사내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손에 농구공을 들고 나타나 함께 농구를 하자고 했고, 농구가 처음이었던 나는 잔뜩 주눅이 든 채 학교 운동장의 농구 코트로 향했다.
농구공은 의외로 무거웠다. 남들에 비해 체격이 왜소했던 탓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농구가 처음인 나는 슛을 쏘는 자세도 엉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을 던질 때마다 공은 내가 의도했던 방향을 한참이나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쑤였다. 공을 주우러 이리저리 뚜어다녀야 했던 그 아이는 그마저도 힘들었는지 나와 골넣기 시합을 제안했다. 농구 골대를 중심으로 운동장에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놓고는 가장 끝쪽으로부터 자리를 옮겨가며 공을 던져 누가 더 많이 넣느냐 해보자는 것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 아이의 제안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억지춘향으로 시합을 하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참혹했다. 그 아이가 서너 골을 성공시킨데 반해 나는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그날 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반친구에게 한 달간만 농구공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농구를 그닥 즐기지 않았던 친구는 자신의 농구공을 선선히 내주었다. 그렇게 빌린 농구공으로 나는 꼬박 한 달간 슛을 쏘는 연습만 했다. 손에서 겉돌기만 했던 공은 서서히 손에 익어갔고, 그에 비례하여 내가 던진 공이 링을 통과하는 횟수도 점차 늘었다. 주인집 아이는 내가 절치부심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였던 나는 그 시간에 조깅대신 농구를 하였고 아침잠이 많았던 그 아이는 내가 농구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후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나는 표정을 깊이 감춘 채 심심하면 농구나 하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웬일이냐는 듯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고는 농구공을 들고 나왔다. 잠시 몸을 푼 후, 그전처럼 골대 주변에 동그라미를 여러 개 그리고는 이내 시함에 들어갔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내가 이겼다. 그 아이는 분을 못 참는 듯 보였다. 다시 하자며 몇 번을 맞붙었지만 그 아이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그 후에도 여러 번 농구를 같이 했지만 슛 대결에서는 번번이 내가 이겼고 나보다 키가 한 뼘이나 더 컸던 그 아이는 그때마다 일대일 반코트 경기를 제안하여 그 분을 삭이곤 했다.
<공부하는 인간>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 유난히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면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공부밖에 없다고 강하게 믿었었다. 언젠가 나는 다른 글에서도 썼었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3시간만 자며 버텼었다. 그 혹독한 과정을 가능케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고 기대에 부응하려는 동양의 체면문화는 동양인들이 공부를 열심히, 잘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부를 게을리해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족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고, 그것은 곧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제작진은 릴리, 스캇, 브라이언, 제니와 여러 아시아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동양의 체면문화가 동양인의 학습의욕, 교육열을 고취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p.143) 각 문화권의 공부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들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들고 싶어 제작되었다는 KBS 1TV 글로벌 대기획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하버드 대학에 재학중인 4명의 진행자는 공부라면 내로라 하는 나라들, 예컨대 이스라엘, 인도,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구, 한국, 우간다 등을 돌며 각 문화권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부의 정의, 목적, 방식 등을 질문하고 직접 목격함으로써 공부는 과연 문화적.역사적 산물인가? 하는 문제와 그렇다면 동양의 공부와 서양의 공부 중 어떤 방식이 옳은 것인지, 더 나아가서 진정한 공부는 무엇인지를 심도있게 파헤치고 있다.
"'집단, 관계성'을 중시하는 동양과 '개인, 독립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스스로를 인지하는 방식이 다르고, 이 차이는 두 사회의 지식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지식에 대한 상반된 시각은 공부방식의 차이를 가져왔으니, 결과적으로 동.서양의 공부방식은 '집단'중심의 동양 문화와 '나'중심의 서양 문화가 만들어낸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p.299)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역대 노벨상 중 23%를 휩쓴 기적적인 성취 이면에는 그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노력을 중시하는 동양과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서양은 부모의 교육관도 다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지식의 습득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한국의 학생들이 노벨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한 번쯤 되짚어 보아야 한다고 느낀다.
가족 중심의 공동체적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인과 우리는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그들은 토론과 논쟁을 통하여 진리에 도전하고자 하는 교육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오늘날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입식 교육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더구나 우리와 비슷한 병역제도를 갖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던 반면 우리는 군대에서의 시간이 '죽은 시간'처럼 느껴지도록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안타까운 현실이 한둘이 아니지만 경쟁을 통한 '줄 세우기식' 교육에서 우리는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공부는 인류 보편의 테마이자 인류 문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며, 그 자체가 인류 문명을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 코드다. 따라서 공부를 보면 과거의 우리가 보이고 현재의 우리, 미래의 우리가 보인다. 그러므로 아무리 험난하고 힘들어도 공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미래에도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p.359)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가깝게는 개인의 행복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의 교육에 목을 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초등 4학년이 된 아들 녀석을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날 때가 있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숙제를 다 못했을 때 선생님으로부터 지적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새벽에 일어나 숙제를 기어코 마저하는 것도 그렇고... 과연 공부란 무엇인가? 하고 되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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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 다양한 방법 중에서 지금까지 나는 주로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를 돌아보았다. 책의 앞부분에는 주로 동양인의 공부방법과 서양인의 공부방법을 비교하는 내용이 설명된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동양인은 가족을 위해서 공부하는 경향이 많고 서양인의 나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성향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하다못해 결혼을 할 때도 동양인은 상대방이 속한 가정을 주로 보는 반면 서양인은 그 개인의 됨됨이를 많이 본다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하는 방법도 차이가 많다. 동양 학생들은 나를 중심으로 가족들을 같이 소개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철저히 나 자신의 취미와 특기 등 개인적인 특성을 중심으로 자기 소개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의 앞부분은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치동의 어느 학원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이 어린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감 없이 이토록 현실적인 꿈을 꾸며 공부에만 몰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이든 간적접이든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세뇌시킨 어른들, 이 사회 때문이 아닐까? (p.22)" 이어서 중국, 일본, 인도 학생들의 공부모습을 그리고 있다. 대체로 동양의 공부 모습은 가족들의 안위를 위하여, 나 자신을 위해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하여 공부하는 경향이 많았다. 2장으로 넘어가면서 바로 이 동양사람들이 '왜 죽도록' 공부하는지를 살펴본다. 여러가지 이유를 살펴보고 있지만 가장 인상깊었더 부분은 '평균에 대한 열망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고 기대에 부응하려는 동양의 체면문화는 동양인들이 공부를 열심히, 잘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부를 게을리해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족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고, 그것은 곧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렇게 볼 때 동양인의 높은 학습욕구, 학업성취는 사회에 존재하는 표준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가져다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 pp.143~144
유대인의 공부방법에도 Part 3을 통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며 뒤를 이어 또다시 동양의 공부방법과 서양의 공부방법을 대비시킨다. 한마디로 동양의 공부방법은 '암기를 통한 공부'이고 서양의 공부방법은 '질문을 통한 공부'이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폭넓은 지식의 습득을 위해서는 서양의 공부방법이 상대적으로 우월하지 않겠나 생각이 든다. 물론 동양인들의 공부에 대한 동기, 그리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공부해야한다는 책임의식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의 암기를 통한 공부는 지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높은 학업성취를 이룰 수 있지만, 비판적 사고 없이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에 창의성이나 상상력 등이 결여되기 쉽다. 반면 서양의 질문을 통한 공부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기 때문에 창의성, 상상력 등을 향상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암기의 공부만큼 빠른 학습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 p.316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또다른 지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지식은 밖으로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나의 지식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점을 강조한다. "표현하는 것만이 나의 지식이다.(p.348)" 이것은 정말 나 스스로 느끼는 부분이다. 학교에서 몇년째 강의하면서 똑같은 내용이라도 충분히 이해한 뒤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으로 내 지식의 한계와 부족한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앞으로 보충해야 할 점과 나 스스로의 강점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은 KBS에서 2013년 2월에서 3월까지 방영했었던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묶은 것이다. 아직 그 다큐멘터리를 보지는 않았지만 책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조만간 시청할 예정이다. 참고로 KBS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책의 에필로그 내용 중에서 중국의 한 노교수가 했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리뷰를 마칠까 한다.
공부의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살다 보니 늙는 것이고, 공부하다 보니 또 늙는 것이지요. 공부는 죽기 전까지 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허락하는 한 공부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늘 새로운 지식이 존재하고 인간은 늘 새로운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결코 공부의 끝이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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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좀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초,중,고,대학 교육을 모두 마친 30대 초반으로 들어선 나에게는 뭔가 뒷통수가 띵~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한국,중국,일본,인도,프랑스,유대인등의 공부법, 크게 나눠 동양과 서양의 학습법의 차이와 세계 명문 대학교의 교육방식 등을 소개하고 그에 따른 장단점을 다뤄 놓았다. 내가 뒷골이 땡기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초등학교때부터 대학교때까지 근 16년의 세월동안 배워오고 학습했던 방식에 대한 회의때문이었다.
이 책은 초반에 위에서 나열한 동서양 여러 나라의 공부법에 대해 각 나라를 찾아다니며 구체적으로 소개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의 나라들은 대부분 많은 지식을 효율적이고 빠르게 습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면 학생들은 그 지식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암기하는데 뜻을 두었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해 유대인과 영국등의 서양 교육은 완전히 상반된 방법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주고 간혹 방향을 제시해줄 뿐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만 했다. 서양학생들은 이러한 토론을 통해 지식을 다른 학생들과 나누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잘못된 것을 스스로 깨닫고 서로를 도와가는 공부법을 택하고 있었다. 한국의 서울대, 중국의 베이징대, 일본의 도쿄대 등 우리가 알만한 동양권 대학들은 모두 지식들을 얼마나 방대하게 알고 있나를 위주로 시험을 보았고, 옥스퍼드, 하버드등 서양의 명문들은 지식을 아는 것 뿐 아니라 비판하고 분석하고, 또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였다.
책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동서양 각각의 문화차이에서 찾았다. 유교가 발달한 우리나라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단체에서 튀기보다 스승의 의견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단체에 융화되는 것을 중시해왔다. 그에 의해 저절로 우리의 학습법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것이다. 그에 반해 서양은 개인의 가치와 행복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100명이 있다면 100가지 의견이 있고 서로 그것을 토론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한국에서 받았던 수업을 생각해 보았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선생님들이 설명하고 학생들은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게길러져 왔다. 간혹 발표를 하긴 하지만 선생님의 의견에 반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닌 어떤 정답을 말하는 발표에 익숙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누구의 의견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능력은 부족함을 느낀다.
이미 정규교육을 마친 나이지만 인간을 끝없이 공부해야한다고 믿고 있고,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최선의 교육법은 무엇일까? 물론 어떤 교육법이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순 없다. 사실 둘의 장점을 절충하는 방식이 무엇보다 좋은 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동양 문화권에서 무조건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한국사람에게 조금은 토론 문화가 활성화 되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또 이제 글로벌 세상이 되고 있다. 단순히 지식을 받아들이는 공부법으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세계적 인재가 되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의 지식에 대해서 사고하고, 비판하며 토론하고 함께 공유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