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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혼자, 고요 이런 단어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언했던 시기가 있었다. 선호하지 않았던 휴먼명조라는 글자체를 다시 좋아하게 된 요즘, 혼자만의 장소에서 햇빛쬐기를 좋아했던 12살 레트로 감성이 감싸는 주말아침이면 모두 자는 집을 살금 빠져나와 멍한 시선으로 혼자 고요한 길을 걷는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돈 앞에 이기주의자, 선택의 합리주의자, 감정보다 이성이 지배하는, 약간은 꼬집어 주고 싶은 기지배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다 보면 불필요한 낭비와 넘치는 소모 없이도 목적지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뢰 가득한. 멍을 때리지도, 쓸데없는 감정도 단칼에 날려버리는 현실적인 이미지로 상대에게 데미지를 입히지만 결국 최단경로로 이끄는 한국 대표 어머니상의 젊은 날. 닮고 싶지만 될 수 없어 추구를 위해 가까이 하고자 만난 책에서 전혀 다른 최단경로를 만났다. 삼거리 신호등에 언제나 놓여있는 곰 인형. 축적된 데이터가 가장 빠르고 경제적인 노선을 만들어 내는 최단경로에 돌발 리퀘스트처럼 발생한 사고로 모든 것이라 일컬을 존재를 잃었지만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혼돈 속 현실에서 ‘최단경로가 항상 최적의 경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삶에서 사사분면의 그런 일이야 말로 보다 인간적인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는 필수요소는 아닐까.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무언가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일 때 삶의 기준도 조금씩 꺾이고 돌아가며 또 다른 기준을 찾게 되는 것 같다. ‘... 이게 모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위한 경험이라면 일상은 언제쯤 자유를 얻을까...’ ‘목적지는 늘 같았지만 그래도 늘 새로웠다. 매번 같은 곳을 매번 다른 경로로 찾아가는 게 즐거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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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처럼 그리 간단하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저자의 독특한 이력으로 인하여 궁금함을 일단 자아내게 만들었는데 글을 이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읽어가다가는 나도 모르게 길을 잃고 중심을 잃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실수를 반복하곤 하게 되었다. 최근 몇년간 문학상 소설 작품중에서 이런 느낌의 소설을 준 작품은 없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글을 선사해준 작가에게 놀라움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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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있는 문화초등학교를 다녔다. 당시에는 국민학교였고, 2학년에서 4학년까지였을 것이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돌멩이 하나를 골라 발로 차면서 동행했다. 육교가 하나 있었는데 돌멩이를 차면서 갈 수 없어 한동안 이용하지 못했다. 대신 우회하여 골목을 지나 기찻길 건널목을 통과하는 경로를 택하고는 했다. 돌멩이를 시선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땅바닥만 보다가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비껴갔던 기억이 난다. 근처에 서대전역이 있었다.
강희영 / 최단경로 / 문학동네 / 187쪽 / 2019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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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읽지는 못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그리고 주인공들의 심리를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상당히 어렵네요. 특별히 그런것들을 생각 안하고 쓴것인지 아니면 제가 훌륭한 독자가 아니라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흡입력이 있지는 않네요 초반에는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1/3 쯤 되어야ㅜ그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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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만큼 많은 것을 폰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가도 지도 붙잡고 씨름할 걱정 없고,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크게 두렵지 않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는 게 제일 무섭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하면 빨리, 잘,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넘쳐난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챗봇도 열심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감정과 생각들을 뭉텅이로 구분할 뿐, 개인적으로 접근해주지는 못한다. 마치 구글 스트릿뷰에 사람 얼굴을 블러 처리하라면 모든 얼굴 비슷한 것들에 블러 처리하는 기계처럼.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닐 터였다. 아이를 잃은 슬픔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내비게이션이 놓친 횡단보도 때문이라는 변명을 대는 운전자에 의해, 하필이면 그 빠진 하나의 횡단보도에서 아이와 엄마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더더욱. 그 슬픔을 견디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은, 어쩌면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블러 처리를 해가는 과정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소설은 음성파일 하나 남기고 떠난 선배 피디의 검색 내역을 쫓는 혜서와, 아이를 위해 사고 장소에 곰인형을 가져다주는 애영의 이야기다. 그리고 검색 목록의 주최자로 나타나는 진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설은 참 많이 돌아간다. 제목이 반전이랄까. 소설 초반에는 더군다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돌아 가야 목적지에 같은 마음으로 도달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 다른 길 말고, 이 길이어야 각자가 하는 이야기가 좀 더 잘 들렸겠다 싶었다.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니니까. * 밑줄 개인을 어떤 집단의 일부로 치부하는 것, 그리하여 그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차별이란 그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해야 당연한 걸로 알아먹게 할지 매번 피로했다. 그래서 대개는 그냥 무시했지만, 때때로 컨디션이 좋을 때면 공을 들여 설명해주기도 했다. 이거 인종차별이야. 왜?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네 맘대로 내가 누군지 가정했으니까. 여자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들 사회의 남성들이 동남아시아에 가서 저지르는 일들에 대해 따지고 싶었다. 누워서 침을 뱉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그들이 그렇게 누리고 있는 바로 그것을 자신 또한 탐하고 있단 사실에 번번이 목에 걸렸다. "부럽네." "뭐가" "우리는 여기 몰래 들어온 건데 이 사람들은 당당하잖아. 이런 유인물도 만들고." "그냥 불법인 거 아냐? 되게 뻔뻔한 사람들이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역시 나를 보고도 내가 나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외지인의 어떤 면모만을 발견하고 말지 모른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기계가 정작 기계적인 일은 못하네."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닐 터였다. "그쵸? 한국 라디오가 유독 토크가 많대요. 저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말도 많고." "어쩌면 자기 얘길 들어줄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맞아요. 전화 연결을 하면 그렇게 별의별 얘길 다 해요. 자기만 아는 얘기 있잖아요. 혼자 말하다 웃고 그러다 갑자기 울기도 하고. 그런데 듣다 보면 내 얘기 같을 때가 많아요. 그러고 보니 유행가 가사에 공감하는 거랑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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