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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갔던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미답의 공간을 찾아 사유하는 생활이 주는 여유는 일상에 매몰되어 사느라 숨 가쁘게 지낸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여행을 꼽는다. 갈망하던 공간을 찾아 나설 수 없을 때면 여행기를 들추며 책상 앞에 앉아 책 속 풍경이 이끄는 대로 빠져든다. 낯선 공간에서 일상적 삶을 잇는 일이 쉽지 않은 만큼 저자는 러시아와 인연이 있는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나선 길에서 그들의 내밀한 예술적 감성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였다. 러시아의 대표 시인 푸시킨에서부터 머리보다는 현장에서 발로 움직이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을 담은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철학적 삶의 발로로 귀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유를 향한 걸음에 속력을 내어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없다는 조르바의 유언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서글픔이 신성 모독죄로 그리스 정교로부터 내쳐진 카잔차키스의 묘에 꽂힌 간소한 십자가에서 그의 의지적 행동이 낳은 항거가 벽에 부딪혀 상처로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진실로 진실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엄숙한 표정을 한 도스토옙스키의 흉상 아래 쓰인 성경 구절에서 죽음은 또 다른 열매를 맺는 숭고한 가치를 새긴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에 잠들어 있는 예술가들의 혼령이 잠들어 있는 숲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다 간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듯 묘비와 표석에서 다양성을 읽는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며 건축, 연극, 심리학, 회화 등에 관심을 두었으나 최고의 혁명을 지향하는 최상의 미학적 표현으로 형상화한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옆얼굴을 담은 부조는 몽타주 기법으로 새로운 영화 장르를 개척한 그를 조명하고 있는 듯하다.
깊이 생각하여 말하고 말한 것은 반드시 행하려고 애쓴 톨스토이는 금욕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면에 자리한 주체하기 힘든 육체적 쾌락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던 만큼 내면에 자리하는 동물성과 싸워나갔다는 저자의 말에 대문호에 대한 궁금증은 더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작은 개선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를 스스로에게 주문하면서 육체노동· 정신노동· 수공 일을 할 것, 사람들과의 사귐을 일일 실천 덕목으로 삼아 깨어 있는 양심으로 살기를 지향하였다. 예술인들의 방문을 반겼던 그는 방문한 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하며 정서를 고양하는 일에도 관심을 보였다. 작가의 지난날을 밟아가는 성지로 떠오른 야스나야 폴랴나는 자신의 신념을 펼칠 이상적 공간으로 여긴 곳을 찾고 싶은 바람이 커진다.
두 자루 촛불 밑에서 독서하기를 즐긴 도스토엡스키는 고질병으로 위축되는 생활과 경제적 압박의 탈출구로 룰렛에 빠져들었고, 이에 따른 자신의 경험이 융해된 ‘도박꾼’을 창작했다. 작가가 도박에 빠져 여비를 전부 잃은 곳이 독일의 온천 휴양지 바덴바덴과 작가가 죽음을 맞은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바라며 리히텐탈러 거리를 거닐고 싶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시달릴 때 지혜로운 아내 안나는 작가를 북돋아주기 위해 돈을 쥐어주었다는 일화를 접하며 고통을 상쇄하였으리라 여기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독일연방 의회 건물인 라이히스탁 유리 돔은 밀실을 멀리하고 서로 말조심하는 독일 분위기를 투영하는 듯 의정 활동 전체를 감시받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는 듯하다. 무료로 개방하는 유리 돔을 자유롭게 걷는 이들을 보면서 민생을 생각하는 투명한 의정 활동에 부합하는 일로 비춰진다. 옛 나치의 게슈타포 친위대 본부가 있는 공포의 지형은 도처에 자리하는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의 일부에서 발견한다. 괴테하우스 뒤채 뒤로 뻗어 있는 정원에 심어놓은 다양한 식물을 보는 즐거움도 클 것이다. 왕성한 호기심을 충족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여 개조한 집에서 감성적 깊이를 더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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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이 많을수록 곧바로 자리에 앉아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음식도 글도, 심지어 쉬지 않고 늘 하는 말도 숙성의 기간이 필요한 셈이다. 한 뼘 더 성장한다는 건 모름지기 참고 기다려 뭉근하게 풀어질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걸 나는 글을 쓰면서 배웠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밤, 내내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짝사랑의 연인에게 기나긴 편지를 쓸 때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서 요동쳐 두서없고, 바람처럼 허황한 말만 편지지에 남았던 그 밤이 지나고 나면 밤새 내가 썼던 편지는 얼마나 유치했던가. 또는 이제 막 연인으로 발전한 풋사랑의 상대와 첫 데이트 약속이 있던 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앞뒤 재지 않고 횡설수설 하는 바람에 데이트는 엉망이 되고 가득한 후회만 안고 버스를 탔던 기억은 우리를 얼마나 주눅들게 했던가.
이런저런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욕심이 조금 과했구나, 싶은 책이 눈에 띌 때가 있다. 말하자면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그것을 갈무리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나처럼 소양이 한참이나 부족한 독자가 그런 책을 읽을라치면 호흡은 가쁘고, 머릿속은 멍멍하고, 읽기 어려우면 당장이라도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악마의 유혹은 계속되고, 급기야 두 손 두 발 다 드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저자에 대한 원망만 한아름 쌓이곤 한다.
서정 작가가 쓴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도 내게는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었다. 작가의 기획 의도나 방향이 나빴다거나 글의 내용이나 문체가 좋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다만 유럽의 문학이나 예술 또는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내가 나와는 지적 수준의 차이가 명백한 작가의 글을 읽으려니 내 딴에는 여간 힘에 겨웠던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일종의 여행기인 이 책에서 작가는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 작가와 샤갈, 니콜라이 박 등 화가와 쇼팽이나 괴테, 고흐와 토마스 만, 카잔차키스 등 유럽의 변경을 따라 산재한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민스크 아테네를 두루 옮겨다니며 살았다는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쫓아다니기도 했고, 반복하여 만나게 됨으로써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인물도 있었다고 말한다. 러시아 문학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푸시킨이나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작가와 관련된 내용이 너무 적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던 반면에 일리야 레핀 등 생소한 예술가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지루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샤갈에게는 비텝스크도 파리도, 생폴 드 방스도 고향이 되는 동시에 그 어느 곳도 고향이 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실감이란 잃어버린 대상 때문에 잃어버린 자에게 찾아오는 텅 빈 마음일 텐데 그에게는 잃어지지 않는 고향이 이미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듯하다. 또 그는 그 위로 다시 채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다. 벨라루스와 프랑스에서 마음속에서 반짝거렸던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에 불을 밝히고 있다." (p.182)
어떤 책이든 일단 손에 쥐면 다 읽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의 고집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발휘되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루하거나 따분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젊은 시절에 읽고 그 뒤로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토마스 만을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공간과 함께 낭만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저자로 인해 나는 토마스 만을 다루는 그 부분의 글을 토마스 만의 실제 작품보다도 더 재미있게 읽기도 했다.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읽는 것에만 급급했던 토마스 만의 작품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저자의 소개가 아니었더라면 내 기억에서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로코 열풍이 부는 가운데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한 채로 "밭에서 갓 딴 신선한 딸기"를 아주 맛있게 먹던 아셴바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니 삶에 생기를 잃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도시를 한 번쯤 탐할 만도 하다. 물론 주의를 요한다. 실제로 베네치아에서의 첫 식사는 상한 조개가 들어 있는 봉골레였으니까." (p.322)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국 그리스가 소개되고 있다.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그 부분을 읽는 내내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와 '우천염천'을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지역이나 공간을 소개하는 데에도 그곳과 궁합이 맞는 작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처럼 불량한 독자는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온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번번이 다른 작가를 기웃댔던 것이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집적대는 바람둥이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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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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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꽤 안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모르는 상태를 조금 낫게 해 보고 싶은 마음. 쓸쓸하게도 실패했다. 아직 나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곳에 가 닿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이, 내 마음결대로 읽히지 않았다. 책장의 질도 좋고 실린 칼라 사진들도 선명하고 사진에 붙은 설명도 친절한데 결정적으로 본문에서 술술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처음에는 이 책이 번역문이었나 했다. 아니었다.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런 인상을 받은 거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살펴보았다.
문장의 표현이 내게는 거슬렸던 게 이유였다. 번역문처럼 보였던 거다. 잦은 이중부정과 피동 형태, 게다가 한자어를 비롯한 각종 외래어 용어들까지. 한눈에 잡히지 않는 뜻과 이름들(고유명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점점 읽는 일이 성가시게 느껴지면서, 나중에는 사진 위주로 책장을 넘기고 말았다. 감히 내 방식으로 문장을 바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글이 안 읽히면 내용을 붙잡을 수 없는 것이고, 내용에 빠지지 못하면 아직 이 책에서소개하는 곳에 내가 매력을 못 느끼게 될 수밖에.(이 리뷰를 남기지 않으면 난 이 책을 들여다 본 것을 잊고 또 펼쳐 보게 되리라, 그 정도로 책 소개 내용에는 이끌린다.) 아쉽지만 러시아 문학 기행은 다른 길로 다시 시도해 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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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나 역시 그들을 따라 국내 여행지를 걸었던 적이 있다.
무더웠던 4년 전 여름, 친구와 함께 떠날 여행지로 부산을 고른 건 영화 ‘푸른 소금’ 때문이었다. 이래저래 아쉬운 영화로 평가받는다 해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상미가 남은 영화였고, 부산에 가고 싶게 만든 영화였다. 비현실적으로 예쁜 하늘을 배경 삼아, 광안대교 근처에 앉아있던 송강호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장면. 그 풍경을 내 눈에 담고 싶어 향한 부산이었지만, 때는 성수기 중의 성수기였다. 태양은 내리 쬐고, 사람 많은 광안리 근처 어딘가에 서 있던 나는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몇 년 뒤의 여름에는, 전주에 있었다. 드라마 ‘보통의 연애’를 보고 전주 여행을 예습했던 나는 이 곳 저 곳을 지나칠 때마다 드라마를 생각했다. 드라마 속의 계절과는 달랐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을 생각하며 걷는 전주 여행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국내를 여행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저 드라마가 좋아서, 영화가 좋아서 여행지로 삼고 여행했던 나와는 달리, 공부와 생업과 가족의 일로 상트페르트부르크와 모스크바, 민스크와 아테네를 두루 옮겨 다니며 살았던 작가에게 여행은 생활의 다른 일면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유럽의 중심과는 또 다른 축에서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를 더듬어갔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밟고 다녔던 그곳은 공교롭게도 유럽의 변경(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의 땅)에 위치한 도시들이 많았고, 당면한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을 따라 걸었던 책이다.
러시아어로 진짜 러시아를 기막히게 표현할 운명으로 태어난 ‘러시아가 사랑한 천재 시인’ 푸시킨으로, 시작해서 고대 신화의 세계를 빠져나온 현대 그리스를 과감하게 형상화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까지 열 명이 넘는 예술가 중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흐가 머물었던 남프랑스를 가장 먼저 찾았다.
고흐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자연스레 유럽의 변경으로 안내하는 작가의 안내 덕분인지 남프랑스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이름만 알고 있던 아를에서 노란색 돌이 박혀 들어간 자리를 찾아다니며 외로운 영혼을 추억하는 고흐 루트를 밟다가,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 한쪽을 잘라낸 고흐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병원 근처에도 서성거려본다.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마주한 한 문장 앞에서 멈춰선다.
큰 구름이 머리 위를 지나고 있을 때는 그저 진노랑의 바탕색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구름이 지나고 난 자리에 햇빛 광선이 노란 바탕색 위로 쐐기를 박자 그만 투명한 꽃잎을 저마다 바짝 세운 노란 형광빛 바다에 던져진 듯했다. (p.301)
이 문장이, 문장 위에 실린 ‘카마르그 평원을 달리다가 만난 아찔한 노란색의 해바라기 밭’ 사진을 실감하게 했다. 사진보다 생생한 글이라니. 이다지도 매력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있는 멋진 책이다.
낯설었던 러시아 예술가들을 비롯해, 생소한 몇몇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관심이 생긴 것도 이 책 덕분이다. 아니, 어디 예술가뿐인가. 유럽의 변경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리투아니아에서 만난 마르티나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가끔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나라에 대한 나의 인상을 궁금해하던 게 생각나서 말인데요, 내가 한국에 대해 꼽을 수 있는 건 세 가지예요. 올림픽,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그리고 김기덕과 박찬욱.”
리투아니아의 한 지방 숲 속에 사는 그의 서가에는 카프카와 나보코프 선집, 두세 권의 백과사전, 소비에트 클래식 영화 DVD 몇 개 사이로 박찬욱과 김기덕의 이름이 박힌 DVD가 꽂혀 있었다. 그는 이렇게라도 한국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리투아니아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지만 이것을 깨닫게 된 것 또한 이 책이 내게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넓고,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깊은 사유와 성찰로 문학과 예술을 더듬어간 여행. 유럽의 변경에는 지식인과 예술가의 발자취가 있었고, 그 발자취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늘 그렇듯, 글로 읽었지만 정말이지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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