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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의 뜻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난 어릴 적에 짧은 동화책으로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이제서야 다시 레미제라블이라는 길고 긴 장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단지 비참하게 감옥 생활을 하고, 궁핍에 못 이겨 성당에 있는 은촛대를 훔쳐간 장발장을 신부가 용서해준 그저 그런 선한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은 그저 개인의 삶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나라의 이야기, 또 한 인류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인물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소설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힘없는 사람들은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평등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난은 대물림된다'라는 말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람들은 혁명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
신부가 생판 모르는 이를 위해 한 선의의 거짓말은 이 책을 읽는 누구나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내가 입은 크고 작은 손해에 상처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편이 입은 심연 속에 숨겨진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항상 나는 레미제라블 속에 나오는 자비로운 이들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나의 이기심을 초월하는 것을 동경해왔다. 장발장이 신부의 깊은 뜻에 감명 받고 결심할 때 나는 가슴이 막막했다. 신부의 말이 사회의 폐단에 찌들고, 감옥에서 복역을 하고도 또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 그런 장발장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장발장은 이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 살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장발장은 물론이고 이 책을 읽는 나까지 깨달았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나를 위해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지금 한 땐 작은 손해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선행이 언젠가 내게 돌아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장발장도 그렇다. 그는 사실 사회를 미워하고 자기를 미워했던 것이다. 자신을 믿지 못해서 외롭고 추웠던 거다. 하지만 신부가 먼저 그를 믿어 주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장발장은 그 때서야 자신을 믿고 남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주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자베르였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악연은 굉장히 길다. 그런데 나는 자베르가 죽음을 택하는 장면에서 또 깨달았다. 아, 이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었구나. 자베르는 사실 아주 멋진 사람이었다. 스스로 우리에게 이 이야기의 악연을 내가 맡겠소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장발장에게 몰입되어 레미제라블을 읽었다. 그런데 사회의 굴레 속에서 피해를 받는 건 장발장과 팡틴느만이 아니라 자베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자신의 신념 속에서 탈옥한 죄수를 쫓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었고 끝까지 이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평등을 외치며 죽어가는 젊은이들을 보며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가 몸을 바치고 정신을 바쳐 일한 사회가,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깨어있는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계속 쫓아다니는데도 장발장은 항상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때가 되면 당신에게 가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자베르는 여기서 또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의문 하나 없던 자신의 삶에 장발장은 매번 돌을 던진다. 그 돌은 자베르의 깊은 심연에 물결을 만든다. 탈옥한 흉악범이 왜 남을 도우려고 저렇게 발버둥치는 것인지 왜 자신을 잡으려는 나까지 도와주는 건지. 자베르는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없었다. 장발장을 잡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도망친 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발장은 그저 이 사회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든 자베르는 결국 자신의 신념과 장발장을 지킨다. 그의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지킨다는 것이 멋지면서도 안타까웠다. 저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꼿꼿한 그를 누가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레미제라블의 가장 큰 키워드는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읽었던 부분에서 빠져 있었던 대목이 바로 이 프랑스 혁명이었다. 그래서 다시 보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기도 했다. 역사책에서 딱딱하게 다루는 부분이 바로 전 세계 나라의 혁명 운동 부분이다. 국기를 휘날리면서 평등을 부르짖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저 먼 나라 프랑스의 모습이라고만 생각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서울 한복판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경찰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혁명을 말하고 있지만 폭력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눈빛으로, 타오르는 불꽃으로 모두에게 외치고 있었다.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종이컵에 양초 하나 꽂은 초라한 시위였다. 하지만 그 아주 작은 불꽃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금세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그 시위하는 사람들은 프랑스 혁명보다는 작지만 정신은 같았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다. 사회는 바리게이트를 친다. 가두어두려고 한다. 하지만 모두 피에 젖은 국기를 흔들며 외친다. 혁명이라고 말이다. 혁명이라는 것이 프랑스의 혁명이라는 것도 있지만 개인의 마음 속에도 혁명은 항상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장발장이 마들레느 시장으로 변한 것도 나름의 혁명이 아니었을까. 격정의 혁명 속에서도 레미제라블은 개개인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장발장이 마음으로 낳은 딸인 코제트의 사랑도 그렇다. 그리고 마리우스를 사랑한 불쌍한 에포닌도. 커다란 틀 안에서도 어느 하나 빠지는 인물이 없었다. 정말 레미제라블은 그 시대 프랑스의 인생을 모두 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작품성 있고 꼼꼼한 소설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두 절절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는 빈민이 되고 혁명가가 되고 어느 누군가의 연인이 된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레미제라블은 사랑으로 끝이 난다. 그는 잠들었노라. 운수 비록 기구했어도, 그는 살았노라. 그의 천사 떠나자 죽었노라, 그 일 자연스럽게 스스로 닥쳤노라, 낮이 가면 밤이 오듯.
장발장은 불쌍한 사람이다. 팡틴느도 자베르도 불쌍하다. 그런데 그들이 진정 불쌍한가? 그들은 끝까지 사랑하며 죽어갔다. 나는 레미제라블이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어떻게 죽어 갔던 간에든 말이다. 딸을 사랑하고 법을 사랑하고, 결국 그들은 사랑하며 죽어간 것이다. 회오리치는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아름다운 물고기들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레미제라블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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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련한 자들을 구하려면 열정과 이성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도 인간에 대한 관용과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결실을 맺는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더하여 시대에 대한 사실적 묘사와 작가의 사상이 적혀있다. 장발장 이야기만으로도 좋은 소설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담겨있다. 완역본을 통해 빅토르 위고의 위대한 면모를 만난다.
가련한 삶. 작은 잘못에서 만들어지는 흉악범의 고통도 슬프지만, 기댈 곳 없이 구박받고 일해야 하는 어린 코제트가 더 애달프다. 그러나, 가장 애처로운 사람은 팡틴, 아이를 기르기 위해 한발한발 깊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몸도 머리카락도 팔아 이제 더 팔 것이 없을 듯한데 이빨까지 탐내는 인간이 있다. 또, 그녀에게 던져지는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세상 누구에게도 동정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다. 이 같은 삶은 없어야 한다. 한줄기 빛. 비앵브뉘 신부의 관용과 순박한 장발장의 사랑이 삶을 변화시킨다. 순박한 삶의 향기. 나폴레옹 휘하의 장교였던 마리우스의 아버지 퐁메르시 대령의 전원 가꾸기, 혁명에 참여했던 마뵈프 영감의 식물에 대한 연구, 거리의 부랑아 가브로슈의 쾌활함, 악당의 딸인 에포닌의 풋풋한 사랑, 무정하고 무자비하게 직무에 충실한 경관 자베르의 삶 등에 단순한 진솔함이 있다. 이들이 사는 세상. 구제도가 무너지고, 나폴레옹이 전쟁을 치루고, 금욕적 수도원은 사라져가고, 왕당파는 줄어들고 공화정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 아름다운 결실. 마리우스는 자신의 뜻을 위해 부귀를 박차고 가난 속에서 영혼을 단련시키며 운명의 여인 코제트와 사랑을 나눈다. 연인을 뒤로 하고 혁명을 위해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코제트는 장발장의 보호 아래 퐁메르시 대령의 따스한 손길이 키우는 한송이 꽃처럼 아름답게 성장하고 청년 마리우스와 사랑을 나눈다.
줄거리는 역자가 짧게 요약한 것이 1권 서문에, 길게 정리한 것이 5권 작품론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마치 하나의 소설이나 논고처럼 들어 있다 - 가난한 사람들의 목자인 비앵브뉘 신부의 삶 - 파리의 방황하는 젊은 지식인 부류와 팡틴의 교제 -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 수도원의 역사와 소명을 다한 自虐的인 수도원은 없어져야 한다는 작가의 생각 - 꼬마 부랑아 가브로슈가 버려진 두 아이를 돌보는 이야기 - 파리라는 도시가 가지는 특징에 대한 찬가 - 마리우스의 조부를 통해 보여주는 왕당파의 객실 - 공화파 젊은이들의 모임인 ABC의 벗 - 나폴레옹이 벌인 전투에 참전했던 마리우스의 아버지의 퐁메르시 대령의 전원 생활 - 몽파르나스를 비롯한 악당들의 어둠의 세계 - 식물연구가이며 혁명에 참여했던 마뵈프 영감의 삶과 죽음 - 1830년 혁명과 1831년 1832년 파리의 상황 - 왕정복고와 루이 필리프 공에 대한 소견 - 떼나르디에의 딸 에포닌의 마리우스에 대한 사랑과 질투, 그리고 희생 - 혁명의 일원이 된 부랑아, 떼나르디에의 아들 가브르슈 - 바리케이트의 역사 - 어둠의 언어인 은어의 세계 - 파리 하수도
장발장을 통해 깨달음과 진정한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장발장은 무자비한 제도 아래에서 고통받았다. 그 또한 인간에 대한 증오를 쌓아간다. 그런데 한 인간의 관용은 파문을 일으킨다. 갑자기 받은 호의가 당황스럽던 그는 길을 가던 중 굴뚝 청소부 아이의 돈을 발로 밟고 괴롭힌다. 특별한 생각없이 하는 몸에 익은 행동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도망가는 것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타락한 영혼, 그것이 자기였다. 타인의 선의가 빛을 보여줄 수 있지만, 빛으로 다가가는 용기를 주는 깨달음은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는 순간에 일어난다. 이후 장발장은 순박하고 진솔한 새로운 삶을 산다. 우연히 좋은 기술을 개발하여 부자가 되고 사람들의 신망을 얻어 시장이 되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한다. 행복이 자리잡아가는 순간 불행이 그를 시험한다.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했고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감옥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져야한다. 타인의 고통보다 자신의 삶을 우선시하고자 하는 간교한 목소리가 영혼을 괴롭힐 때, 머리를 때리는 한마디 절규 “간사한 자여, 비겁한 자여”. 자신의 불행한 운명에 순응하며 다시 감옥으로 간다.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이다. 내가 누리는 자유가 타인을 해치지 말아야 하니까. 탈옥하여 코제트를 돌본다. 수도원의 정원사로 꽃을 돌보고, 도시의 부유한 노인으로 선행을 베푼다. 혁명의 와중에 경관도 구하고 혁명가도 구한다. 코제트가 제 갈 길을 편안하게 가게 해주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 속에 쓸쓸한 여생을 보낸다. 회개한 이후에 그는 건강한 시민의 삶을 살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다하고, 나로 인한 타인의 불행에 눈감지 않고, 가련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삶이었다.
인간의 타락을 가져오는 사회제도를 타파해야 한다. 떼나르디에와 같이 본성이 악한 자들도 있지만, 많은 타락은 사회제도에서 온다. 밝고 아름답고 건강하던 팡틴은 미혼모라는 이유로 살 길을 찾을 수 없어 창녀가 되고 나락 속에 떨어진다. 다행히 잠시 장발장으로부터 영혼의 위안을 얻지만 병들어 죽는다. 어머니의 불행은 딸 코제트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미혼모와 고아는 사회가 돌보아야 한다. 비정한 제도 아래 평생을 그 수족으로 사는 자베르 또한 불행한 인물이다.
순박한 영혼들이 세상을 밝힌다. 가브로슈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 해맑은 영혼이다. 부랑아로 떠돌지만, 버려진 아이 둘을 돌본다. 에포닌은 가난한 집 딸로 아버지의 비행을 도와야 하는 가련한 처자지만 젊고 아름다운 마리우스에게 반하고 그를 위해 죽는다. 잠시 질투에 마리우스와 코제트 사이를 방해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보고 이기지 못해 둘을 다시 연결시켜준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했던 퐁메르시 대령, 나폴레옹이 내걸었던 기치 아래 용감하게 싸우고,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에는 정원일에 몰두하며 여생을 보낸다. 혁명기 의원으로 공화파로 활동했던 마뵈프는 식물 연구라는 천직을 끝까지 수행하는데 가난의 굴레에 떨어지고 공화정을 위한 바리케이트 속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혁명을 향한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 쿠르페락과 앙졸라는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다 죽는다.
언제 읽어도 감동을 주는 깊은 인간애를 지닌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