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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애쓰면 언제나 빛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어느 한때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빛나기도 한다. 나는 그때를 청소년에서 20대초·중반까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 빛을 내고 있는 청소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쉽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때 별로였다. 많은 사람과는 다른 것 때문이었던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청소년의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집과 학교에서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을 때이니까. 학교를 졸업하면 누가 관심 가져주지 않는다. 그때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지만. 처음에는 이것과 반대로 쓰려고 했는데, 관심을 많이 받는 것도 다르게 보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적당한 게 좋기는 하다. 하지만 아이한테 관심을 많이 갖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그냥 놔두는 부모도 있다. 그냥 놔두는 게 아이를 믿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도 살아가기 힘들어서 아이한테 마음을 써주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아이가 그것을 알면 좋겠지만 아마 모를 것이다. 이런 말을 한 것은 내가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잘 모른다. 몰락>우리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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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사춘기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왜냐하면 사춘기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인데, 이런 사춘기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어린 아이 취급 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의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춘기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 사이에는 갈등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 이야기라고 하면 항상 청소년이 주인공이었다. 헌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청소년만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엄마는 단순히 밥 해주고 빨래해주는 가사노동자로서의 모습만 담고 있지 않았다. 3~40년의 세월을 산 한 사람으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었다. 청소년만 사춘기를 겪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들에게도 사춘기가 온다. 청소년 시기의 사춘기와 다른 형태로.
이 대목을 보면서 나는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조금 허전해졌다. 아직은 세살, 네살인 우리 아이들. 아직은 자동차 한 대만 선물 받아도 좋아서 깡총깡총 뛰는 나이이다. 세상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만이 최고고 엄마가 제일 좋다는 시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 이런 우리 아이들도 조금만 더 자라면 이 책속에 나오는 청소년들처럼 엄마와는 대화조차 잘 하려하지 않는 사내아이가 된다니.
청소년들은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다 커서 엄마랑 무슨 대화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나만 그런가 다들 그럴 텐데. 이렇게 여길까? 엄마 밖에 없던 어린 시절을, 자식과 대화하고 싶은 엄마 마음을, 자식에게 존중받고 싶은 부모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할까?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엄마 곁을, 부모 곁을 떠난다고 생각할까?
청소년들의 사춘기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부모들의 사춘기는 자식을 품에 더 두고 싶지만, 이제는 품에 둘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힘든 만큼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 역시 참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도 분명 아이였던 때가 있었는데, 훌쩍 커버린 다음에는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예전 모습까지도 말이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 아빠도 자기들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책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자기 엄마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상상하다 흠칫 놀라는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도 자기들의 여자 친구처럼 예쁜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상상이나 해볼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오히려 내가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아리따운 아가씨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아가씨였던 때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도 그때 모습 그대로 일 줄 알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화장 안 하고는 집 앞에도 안 나가던 내가, 이제는 어쩌다 차타고 멀리 나갈 때만 화장 할 정도니 말이다. 옷은 또 어떻고, 아가씨 때는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고 다니던 내가, 이제는 매일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고 있다. 나도 이제는 그냥 동네 아줌마가 되어버린 걸까. 왠지 조금 서글퍼졌다. 나이가 들더라도, 책에서 아이가 상상했던 것처럼 세련되고 고운 모습이고 싶었는데. 적어도 20년 뒤에는 아줌마더라도 지금보다는 멋진 아줌마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 연필과 지우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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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어김없이 사춘기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왜냐하면 사춘기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인데, 이런 사춘기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어린 아이 취급 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의 엄마,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사춘기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 사이에는 갈등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청소년 이야기라고 하면 항상 청소년이 주인공이었다. 헌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청소년만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 않았다. 청소년 자녀를 둔 엄마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엄마는 단순히 밥 해주고 빨래해주는 가사노동자로서의 모습만 담고 있지 않았다. 3~40년의 세월을 산 한 사람으로서의 고뇌를 담고 있었다. 청소년만 사춘기를 겪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들에게도 사춘기가 온다. 청소년 시기의 사춘기와 다른 형태로.
이 대목을 보면서 나는 벌써부터 가슴 한 켠이 조금 허전해졌다. 아직은 세살, 네살인 우리 아이들. 아직은 자동차 한 대만 선물 받아도 좋아서 깡총깡총 뛰는 나이이다. 세상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만이 최고고 엄마가 제일 좋다는 시기에 있는 우리 아이들. 이런 우리 아이들도 조금만 더 자라면 이 책속에 나오는 청소년들처럼 엄마와는 대화조차 잘 하려하지 않는 사내아이가 된다니.
청소년들은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다 커서 엄마랑 무슨 대화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나만 그런가 다들 그럴 텐데. 이렇게 여길까? 엄마 밖에 없던 어린 시절을, 자식과 대화하고 싶은 엄마 마음을, 자식에게 존중받고 싶은 부모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생각할까?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엄마 곁을, 부모 곁을 떠난다고 생각할까?
청소년들의 사춘기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고 싶지만 아직은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부모들의 사춘기는 자식을 품에 더 두고 싶지만, 이제는 품에 둘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힘든 만큼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것 역시 참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나도 분명 아이였던 때가 있었는데, 훌쩍 커버린 다음에는 다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예전 모습까지도 말이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 아빠도 자기들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책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자기 엄마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상상하다 흠칫 놀라는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도 자기들의 여자 친구처럼 예쁜 소녀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상상이나 해볼까 하고 말이다.
그러다 오히려 내가 더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도 아리따운 아가씨였던 때가 있었다는 걸. 아가씨였던 때는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도 그때 모습 그대로 일 줄 알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참 많이 달라져 있었다. 화장 안 하고는 집 앞에도 안 나가던 내가, 이제는 어쩌다 차타고 멀리 나갈 때만 화장 할 정도니 말이다. 옷은 또 어떻고, 아가씨 때는 매일매일 다른 옷을 입고 다니던 내가, 이제는 매일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고 있다. 나도 이제는 그냥 동네 아줌마가 되어버린 걸까. 왠지 조금 서글퍼졌다. 나이가 들더라도, 책에서 아이가 상상했던 것처럼 세련되고 고운 모습이고 싶었는데. 적어도 20년 뒤에는 아줌마더라도 지금보다는 멋진 아줌마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 연필과 지우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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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저의 사춘기 역시 참으로 치열했던 것만 같은데 지나고 어른이 되고 되돌려 기억해보면 참으로 우습고 어이없기도 하더군요. 『우리들의 사춘기』란 책으로 엿본 요즘 아이들 또한 나중에 어른이 된 후 그리 기억할까요? 이 책은 각기 나름의 열병을 앓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의 사춘기에 대한 단편 여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 중 '몰락'은 사춘기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뤘다는 느낌이 더 강했어요. 단편을 다 읽고 난 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절로 눈물이 흐르더라구요. 치솟는 등록금,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처우... 얼마전 뉴스에서 안전사고로 폭발해 숨진 계약직 노동자 사고와 오버랩되어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이야기였답니다. 결말이 다소 드라마 설정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서두요. 여섯 편 중에서도 이 책의 표제가 되기도한 '우리들의 사춘기'가 그래도 여섯 편 중 제게 가장 와닿네요. 하나의 일상에서도 서로 다르게 느끼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모자의 모습이 마치 저와 제 아이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의 착하고 귀여웠던 아들은 사라지고 다른 외계에서 날아온 영혼이 들어앉은 듯한 중2짜리 우리 아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읽었던 책이건만 오히려 제게 더 위로를 건네는 책이네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행동들과 말에 나도 아들처럼 확 삐뚤어져버릴테다하는 어른답지못한 생각이 들곤했는데 승훈이 엄마 은희씨의 일탈을 통해 대리만족을 조금이나마 했달까요..ㅎ 그리고 어쩌면 아들의 눈에는 나름 인내심의 바닥까지 딸딸 끌어 아들을 봐주고 있다 생각한 내 착각을 깨닫게 해주기도 했구요. 아들의 눈에는 여느 사춘기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어른이라는 괴물이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그나저나 요즘 아이들 사춘기는 우리 때와 달리 더 어려운 거같아요. 아들 녀석을 이해해보려다가 더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느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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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성장하는 아이들은 그 성장하는 모습이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물론 친구와 엄마 아빠와 공부때문에 갈등하고 방황하는 모양새는 다 비슷비슷한듯 하지만 그 색깔이 참 다채롭다는 생각을 한다. 밝고 화사하고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희망해 보지만 어둡고 슬프고 괴롭고 칙칙한 성장의 고통을 겪어 낸다고 해서 나쁜것만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여기 친구가 방황하고 형이 죽는 순간에도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자신의 성적을 위해 시험을 치러야하는 아이와 단짝 친구의 배신으로 친구의 비밀을 폭로하고 주먹까지 휘두르게 되는 아이, 그리고 아빠의 담배를 몰래 훔쳐 피우며 사춘기의 답답함을 풀어내려하는 친구의 이야기와 카프카의 변신을 느끼듯 자신이 여자가 되는 꿈을 꾸는 아이등 여섯아이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솔직하고 생생하게 사춘기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은 건전하고 교훈적인 사춘기성장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약간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사춘기를 겪는 우리아이들의 모습을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절대 멋지고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 작가의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속에서 지금 사춘기의 절정에 이른 우리 아들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기도 한다.
특히 이 책의 대표 제목이 된 [우리들의 사춘기]이야기는 사춘기 아들을 둔 나와 같은 엄마의 성장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언제나 품안에 넣고 사랑해주고 싶은 아들 또한 사춘기를 거치지 않을 수 없으며 점점 엄마품을 벗어나려 하는 아들과 남편과 자식에게 버림받는것 같은 엄마의 교차되는 이야기는 두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어 참 좋았다. 둘 다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꿈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무척 현실감있게 느껴졌으며 아이가 자라듯 어른들 또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나의 사춘기를 떠올려 보면 왜 그렇게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늘 신경질을 부렸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기를 겪으며 이만큼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으며 이제 나의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 또한 그때의 엄마가 되어 성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자라듯 어른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우리들의 건강한 사춘기를 위해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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