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깔끔한 표지에 제목이 식상하지 않은 데다 배치한 위치며, 언뜻 보이는 사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빠지지 않았다. <이책은> 단, 5명의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다.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예스의 연재글 '질주하는 검은 혀'를 읽게 된 건 이벤트 때문이었다. 단순히 댓글이벤트였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터인데, 청소년들의 학교생활과 심리를 다룬 글이었으며 내가 평소 접하지 않는 폭력이 소재라서고, 또 은근 글 풀어내는게 묘한 마력이 있었다. 심기 언짢고 아이들이 그런 세계를 가졌다는걸 알아가는게 무섭기도 했고, 그럼에도 끌리는 글맛은 아이러니했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저자인데다 댓글에 답글까지 달아주시니 자연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고 주저없이 신간 이벤트에 당첨되는 운이 따랐다. 역시나, 안보윤 저자였다. 범상치 않은 소재에다 구성면에서의 독특함도 초반엔 어리둥절했으나 금방 따라 잡았다.
책을 펼치자 프롤로그가 나오는데 소제목이 결정적 순간이다. 더 깜놀한 건 살인사건의 검증현장이다.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이 죽었구나, 그게 여자 변계숙이구나...형사들과 사진기자들 등등.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서 프롤로그로 돌아와 다시 읽으니 결정적 순간이 딱 적당한 글귀였다. 살인은 살인이되 그걸 살인이라고 해야나. 남들 눈에는 분명 살인이지만 말이다. 그것도 근친살인 말이다. 피해자 가족이면서 가해자 가족이기도 한 인호의 말에 따르면 변계숙은 엄마였고, 놈은 나의 형이었다.
폭력=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넓은 뜻으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이르기도 한다.(네이버 국어사전 발췌) 이 책에서의 폭력은 무관심내지는 방관이다. 왜소한 체격에 행동거지도 늘 조그맣고 존재감 없는 아버지에 소리로 뭉친 듯 보여지는 어머니. 어머니의 주위는 늘 부산스런 소리가 먼저 차지했다. 이렇듯 대조되는 부부였지만 아버지를 극진히 위하는 어머니가 이상스레 큰 아들 인근에게는 무심했다. 둘째 아들이자 막내인 인호에게는 또 그럴 수 없이 잘하는 어머니.
소설은 인근의 내면 세계이자 독백처럼 들리는 '파고'에서 짜증을 유발시켰다. 도대체가 새로운 도입이다 보니 마침표가 없는거라. 파고1,파고2, 파고3.파...우스개 소리로 누가 글을 읽다가 죽었다지 않는가. 쉼표가 없어서 숨을 쉬지 못해서. 파고 부분에선 마침표가 없다. 쉼표는 수없이 등장하는데 마침표가 없다보니 자연 쉼표에서 쉬다보면 내용이 앞뒤가 연결이 안되고, 그러다 보면 독자 스스로 마침표를 만들어 가며 읽어내야 하는 상황. 몇 번의 파고를 거치다 보니 터득이 되면서 음울하다 못해 음습한 인근의 내면이 이해가 되기도, 이해 안가기도...
난독증으로 여겨지는 인호는 긴장하여 오줌을 내리 사흘 싸기도 한다. 읽기쓰기 등의 과목이 든 전날이면 유독 더하다. 꿈에서까지 오줌을 지리고...그날도 잠결에 부시시 나오니 아버지가 문앞에 쓰러져 계시기에 양말을 벗겨 드리며 왜 여기 있어 말 붙이니, 아버지는 '인근아' 라고 부른다. 그 날 아버지가 '인근아' 가 아닌 '인호야' 를 불렀다면 자신이 형이나 엄마를 죽기살기로라도 깨웠을까 훗날 곰곰이 되짚어보나 그건 알 수 없다. 잠결에 형이 귀에 대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아버지는 장남이라서도 그랬고 영재학교에 응시할만치 똘똘했던 형을 퍽이나 믿음직스러워 했나보다. 그게 어린 인호가 본능으로 감지한 것 같다. 아버지는 그렇게 표현을 하시는 분이 아니었건만.
아버지의 부검도 반대하고 서둘러 치룬 장례식이건만, 공금횡령 사건에 연루되어 재산도 없이 P시로 야반도주를 한다. 보험설계사인 이모가 주선한 것으로 그나마 다행으로 여길밖에. 어머니 변계숙 여사는 원미아파트에 온 후로 혼이 빠져나간 사람 모양으로 도무지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이다. 아이들이 어찌되든 정신줄을 놓은 사람마냥 누워만 있다. 충격을 먹을만도 하지 싶을때 변인숙 이모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은데, 이게 은인인지 악인인지는 저마다의 몫. 이모의 소개로 그나마 아이들이 정법사라는 절에 오가기라도 하는데...거기서 문정 이라는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어린 부부가 절에 다니며 잠시 맡긴 후 돌아오지 않았다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손발을 묶고 자살했단다. 그렇게 절집 아이가 되어버린 문정도 인근네와는 다르나 딱하긴 매한가지.
문제는 P시의 그 동네 자체가 못사는 사람들의 집합체였던 것. 계단서 내려오려던 문정이 넘어지면서 인근을 덮쳐 사고가 난다. 문정은 크게 다치고 인근은 경미한 상처였으나 그게 빌미가 되어 평생 발목을 잡는다. 그렇게 보험설계사인 인숙 이모가 들어둔 보험으로 인근은 보험금을 수령하고 그 보험금으로 몇 달치 생활비가 된다. 동생손을 꼭 잡으라던 아버지말이 머릿속을 뱅뱅 돌고, 엄마일 수 없고 늘 어머니인 변계숙 여사는 사리분별도 못하는 멍한 상태가 되어 있다. 애들 생각해 정신 바짝 차리라는 이모의 말을 듣고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나 이젠 어머니 주위의 소리는 사라졌다. 말도 단답형만 하고 행동반경이 집안에서 머문다. 아주 조금씩 이모와 시장을 다니러 갔다가 언성이 높아진후론 인근만 더욱 안절부절 못한다.
그 우연한 사고후 인근은 어른아닌 어른이 되어 버렸다. 무능력한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이 되어야한다는 강박에서(혹은 어머니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자유롭질 못했다. 어린아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독인줄 모르고 뼛속 깊이 흡수되었다. 적어도 어린 동생에게는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안보는것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즈음, 문정과 동네 사람들이 보험사기를 저지르러 가는 차에 막무가내로 인근 대신 올라탄 인호. 그렇게 안전밸트를 매라 일렀건만 인호는 매려다 끈이 닿지 않아 안 맸는데...그 사고로 귀 하나를 잃는다.
중략
깊은 슬픔이 가득한 이 책은 쉬이 읽어낼 수가 없었다. 290 페이지 책을 일주일은 가지고 있었나 보다. 인근이가 망가지는 모습, 영혼이 빠져나가는 모습,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보는 듯한 괴로움이 컸다. 독자를 괴롭게 하는 책은 가급적 멀리하는데, 이 책은 차마 그럴 수 없다는데 슬픔이 또 자리했다. 보험사기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기사를 심심찮게 대하면서 꼭 그런 방법으로 사나...이해할 수 없었는데 인근이 이하 문정이와 그 동네 사람들의 보험사기 수법을 조장하는(조장했는지는 모르나) 보험설계사 인숙 이모를 보며 세상사 밝고 희망찬 내일도 많은데 싶고, 어찌 사는 방식이 이리도 막다른 방법으로만 해결하나 싶기도...참으로 먹먹하게, 기막히게 읽은 책임에도 그 깊은 상처를 후벼파듯 아프게 혹은 아련하게 그려낼 재간이 없는 나로선 위의 글을 인용해 이 책이 얼마나 깊은 마력으로 끌려가게 하는지를 대신한다. |
|
자동차 보험 사기로 몇 억의 돈을 받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씩 뉴스에 나온다. 외제차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교통사고를 내거나, 접촉사고를 내는 사람들. 보험 사기에는 그런 사람들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도 어디에선가 걷다가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게 직업(?)인양, 그게 생활인양..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소설의 첫 장면은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부터 시작 된다. 큰 아들 조인근. 그가 어머니 변계숙의 머리를 15파운드짜리 볼링공으로 내려치면서.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던 평범한 네 식구.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 온 것은 세무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돌연사 했기 때문. 아버지가 죽고 회사 공금을 횡령한 사건에 휘말려 남은 가족은 재산을 날리고 P시로 야반도주 하듯 쫓겨 온다. 이곳은 이모이자 보험설계사 변인숙이 사는 곳. 두 형제는 이모의 소개로 정법사라는 법당을 찾아가고 이곳에서 형 조인근은 보험 사기의 늪에 발을 들인다. 늘 아픈 형. 그리고 늘 학교에 빠지는 형. 그 형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생과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형의 희생은 당연하게 생각되어지고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리듬은 깨지기 시작하는데... 가족이라는 이름. 따스하고 포근해야 할 이름이 누군가에게는 지옥이라는 말과 같은 뜻일 때가 있다. 아무도 자신을 품어주지 못하는 곳. 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곳. 그러면서도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곳. 그게 조인근에게는 가족이 아니었을까? 처음엔 아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깝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을 어머니. 하지만 그 어머니는 조인근이 뛰어내려 다친 몸으로 받은 보험료로 생활한다. 집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처음에는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그게 한 번이 세 번으로, 세 번에서 열 번으로 늘어나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돈이 떨어질 때쯤엔 넌지시 암시까지 준다. 모르는 척 받아들이는 것으로.. 책을 읽으면서 설마설마 했다. 엄마가 모르는 것이겠지 하면서... 하지만 뒤로 갈수록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침묵하고 모르는 척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나에게도 아들이 있다. 이 책에서처럼 두 명의 아들. 첫째이기 때문에 혹은 아버지를 너무 닮아서 그 아이가 삶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내가 더 움직이고 더 악착같이 생활해서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해주고 싶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첫째에게 떠맡긴 것 같다. 아들의 몸이 작살나는 것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요구하고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손가락 하나 없다고 사는 데 지장 없다 말하는 것이 제정신 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악함이 소름끼친다. 맨 앞에서 첫째 아들이 말한 “더 이상은 못하겠어요.”의 의미를 알아가면서 서글퍼지고 쓸쓸해졌다. 노래가사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 아니 가족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주어온 자식도 아니면서... 엄마의 이기적인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은 강요한적 없고, 아이 스스로 그런 일을 선택했을 뿐이라고. 누구 하나 희생해서 작은 아이가 대학엘 가고 졸업하면 그걸로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다고 그칠까? 취업할 때까지, 혹은 결혼할 때까지, 결혼하고 나서 힘들 때마다 손을 벌리면 그때 마다 형이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포 그리고 살기가 조용히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든다. 혼자서 아파했을 인근이가 불쌍해서.. 아무것도 모른 척 그 혜택을 받은 인호가 얄미워서. 사건만 놓고 보면 인근은 패륜아고 나쁜 놈이다.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죽이기 전에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차라리 놓았다면, 그 테두리 안에서 뛰어나왔다면 좋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죽이는 용기로,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뭐든 당연하기까지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내가 당연하게 받은 것 중 감사해야 할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혹 누군가의 희생으로 받은 눈물의 다이아몬드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
|
모르는 척..을 하려는 듯이.. 눈을 아래로 내리깐 소녀의 얼굴 일부가 보인다. 그녀가 외면하고픈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바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하는 맘에 표지를 잠시 들여다보며 선뜻 책장을 들추지 못하고 있었다.
강한 프롤로그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여름, 언덕에 빗살무늬처럼 나 있는 골목의 끝 허름한 원미아파트.. 그곳에서 자신의 엄마인 변계숙을 죽인 아들 조인근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일말의 부인도 없이 어찌보면 나름 능숙하게 .. 그렇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이 되었던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이 마무리 되고.. 두 달 후 그 자리에 다시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의 동생 조인호..그는 그 상황을, 그 흔적을 없애보려 노력하지만 그것은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아픔이었다. 세상에 범죄현장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피살자인 변계숙은 자신의 어머니였고 살인자인 조인근은 형이었기때문이다...
이야기는 형 조인근과 동생 조인호의 시점으로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해 나가는 교차서술 형식으로 되어있다. 같은 상황을 놓고도 서로가 바라보는 관점과 감정의 차이점을 느끼며, 그야말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형인 조인근의 이야기는 '파고'라는 부제를 달고 많은 쉼표와 끝나지 않는 문장, 띄어쓰기 없는 단어들의 배열 등으로 처음에는 읽기와 이해하기가 조금 난해했다. 하지만 다른 소제목을 달고 서술되는 동생 조인호의 이야기와 함께 대비하며 읽어 내려가면서 타인이 아닌 가족이었던 동생과 엄마가 외면해 버렸던 그의 마음을, 아픔을 그렇게 표현한 서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그리고 도망치듯이 집을 떠나 도착한 P시.. 그곳에서 발을 딛지 못한채 부유하듯이 살아가는 엄마와 두 형제.. 그들을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이모인 변인숙이 드나들고 결국 이모의 권유(?)에 의해 인근은 자신의 몸을 던져 보험사기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더이상 부러질 곳도, 찢어질 곳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부서져 점점 하나의 점이 되어가고 있는 인근.. 그의 부서짐으로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교복을 입고. 수학여행도 가는 동생 인호는 그러한 형을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정말 몰랐을까..
결국 동생 인호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까지 모셔오는 어머니.. 그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도 인근의 몫이 되 버린다. 그렇게 타지에서 대학생이 된 인호가 연달아 받게되는 부고 소식..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엄마의 죽음.. 할아버지는 집을 나가 실종이 된 상태에서 결국 시신으로 발견이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형인 인근의 손에 살해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형 인근은 더이상의 고통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가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정법사의 문정은 자신의 존재가, 인생이 더 이상 사라지기 전에 그만두라고 얘기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그만 두고 싶었다. 인호의 두번째 등록금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 하나 정도 잘라도 상관없다는 , 그래서 영구 장애 보험을 타야겠다는 엄마의 등에 대고 인근은 중얼거린다..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 그렇게 뒤에서 내리친 볼링공..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이 되어버렸다.
작가는 이 소설이 슬프고 무서운 꿈이라고 한다. 현관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가.. 인근아.. 라고 형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모르는 척했던 인호..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으며 모르는 척 했던 어머니.. 그리고 끝을 미루며 무한히 형을 파 먹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의 모른 척.. 이러한 것들이 섬뜩했던 무서운 꿈과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당장의 안락 그리고 지금의 궤도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눈을 감아버리거나 귀를 막고 모르는 척을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하니.. 섬뜩하다.. 보험사기, 자해, 그리고 살인 (의도하지 않았지만..)..그것도 남이 아닌 가족간의... 극단적인 사례들을 통한 이야기여서 어찌보면 비 현실적인 상황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간들이기에 보여질 수 있는 추한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고 못 이기는 척, 모르는 척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 그것이 당연시 되어버린 이 비극적인 상황이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 누군가 이런 방관의 그늘속에서 아픔을 겪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아프고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였다...
|
|
보험사기가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연간 3조원이 넘는 돈이 보험사기를 통해 지급된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그 피해는 정당하게 보험비를 납부하고 있는 수많은 일반인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신뢰성과 관련이 있다. 보험회사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망각하고(사실 보험회사 자체는 이미 돈 놀이하는 조직으로 전락했지만 서도) 고객을 믿지 못하고, 고객들 역시도 불필요한 의심받음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상대적 박탈감의 문제도 있다. 보험이란 근본적으로 내 몸이 문제가 생겼을 때에 돈이 지급되며,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몸이 아프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리란 것이 아프지 않으면서 돈을 내게 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고, 이런 사기행위들이 판을 치면 누군가는 보험을 이용해 쉽게 돈을 벌어가는 듯한 느낌에 허탈감은 가중된다. 여기에 또 하나 사기 성립을 위해서 병원이 가세한다. 사기행위는 보다 치밀해지고 조직적으로 변한다. 나일롱 환자들과 합심하여 보험회사의 돈을 뜯어내는 수많은 범죄행위를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사기의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실제 개개인의 몸 상태와 사고경위를 일일이 세밀하게 조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설사 발각되더라도 범죄를 통해 얻는 이익에 비해 형량이 너무 작으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깨친 유리창 법칙처럼 하나의 사기행위가 가져온 작은 균열에 너도나도 동참하면서 깨끗하던 평면은 방사선의 금들로 덮이고 만다. <모르는 척>이라는 제목의 소설의 시작은 살해사건의 현장검증 장면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의 살해 행위 재연.
친모 살인자 '조인근'. 그의 동생인 '조인호'가 소설의 화자이다. 얼핏 보면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패륜아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된다.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두 아들의 이야기. 부모의 편애가 만들어 낸 감정의 골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 시발점이 된다. '어머니'와 '엄마'의 차이를 되 내이며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형 인근과 아버지의 애정을 갈구하는 동생 인호. 겉으로 보기에 가까워 보이는 형제의 멀고 먼 속마음은 우리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질투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씨앗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생활 환경이 바뀌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환경이 되면서 무섭게 자라난다. 어머니인 '변계숙'이 형 인근을 보험사기로 끌어들이면서 인근의 삶은 망가져 간다. 형이니까...... 똑똑하니까......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되어야 하니까...... 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사기극은 파국을 향한다. 형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에 우연히 사기극에 동참하게 된 인호는 사고로 한쪽 귀를 쓰지 못하게 되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인호는 구역질 나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돈이 많이 필요할 수록 인근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커져만 가는데...... 왜 인근은 어머니를 죽이게 되었을까? 자식이 둘 이상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더 예쁜 자식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대다수였다고 한다. 사람이 사랑과 애정 얻기를 갈망하는 것은 근원적인 것이다. 형과 아우를 따지기 이전에 독립적인 하나의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채워져야 할 욕구가 결핍이 되고, 형이라는 이유로 혹은 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한다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고체계가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려야 하는 자해에 가까운 행동이라면 '왜 나만 이래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이득을 얻게 되는 대상에 대한 분노가 치미는 것도 자명하다. 쌓여가는 분노는 해소하지 못하면 어떠한 형태로든 터지게 마련인데, 소설 속 인근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해당 행위를 지시하는 대상이 어머니이고 이득을 얻게 되는 대상이 동생인 상황에서 아버지의 유언처럼 남아있던 '동생을 잘 돌봐줘라'라는 마지막 대화가 그를 지탱해 주었을까? 아니면 그는 여전히 어머니가 아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며 지시에 따랐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가진 내면의 혼란은 상해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더해지며 서서히 자아를 파괴한다. 겉은 보이지만 속은 비어 있는 유령처럼...... 그럼 그 반대 입장인 인호는 어떨까? 사람은 쉽게 자신의 현재 상황 기준으로만 판단을 하기에, 형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형제의 우애는 부끄러움, 혼란스러움, 공포로 변했을 것이다. 사건들의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고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던 그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었을 것 같다. 인호 기준의 비교 대상은 형과 자신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였을 테고 자신에게 잘해주는 엄마에 비해, 형과 닮았고 형만 챙겨주는 것 같은 아빠에 대한 동경을 표함은 이해할 만 하다. 부족함을 해소하기만을 갈구하는...... 실제로 내 동생이 저런 생각들을 해 왔었으니까 말이다. 집이 어려워진 상황을 두고 사회 생활을 하고 있었던 오빠인 나와, 학생인 동생이 보는 관점은 너무나도 달랐다. 금전적인 문제까지도 관련되어 부모님 말씀대로 해야 했던 나와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다하면서 지내던 동생. 부모님은 동생이 해달라는 것들은 웬만하면 다 지원해 주었다. 당시 난 철부지 같던 동생의 행동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놀랐던 것은 알고 보니 동생은 오빠인 내가 자신의 인생을 사사건건 참견하고 못하게 막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훗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많은 대화를 하고 나서야 감정의 골이 좁혀진 것을 보면 생각의 괴리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아마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소설 속 인근과 인호처럼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전락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설의 제목인 '모르는 척'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소설 속 어머니인 변계숙이 인근의 고통을 모르는 척 했듯, 인호가 현실에서 도망치 듯 남겨진 가족을 모르는 척 했듯 (남은 가족은 인호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사기행각을 반복해야 했다), 조직적으로 보험사기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서로의 범죄를 모르는 척 했듯, 그것을 받아준 병원이 또 자해사건을 모르는 척 간접 지원했던 절의 스님들이 그러했듯 세상은 '모르는 척'이 판을 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의 치부를 감춰주고 이익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모르는 척하며 속이는 그런 모습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어쩌면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사기행위에 환멸을 느끼고 떠났던 문정이라는 소녀가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인근을 어두움 밖으로 끌어내고자 했지만 실패했던 것이나, 인호가 다른 도시로 현실도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자와 피살자의의 가족이 되어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모습을 통해 '모르는 척'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변화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인근과 인호가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힘을 모았더라면, 어머니 계숙이 가족과 마음을 터놓고 같이 고민했더라면 비극은 없을 수 있지 않았을까? 동네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에 무관심하지 않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 올바른 방법으로 합심을 했더라면 조금 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모든 것이 돈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과 함께 소설 속 세계가 현 시대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모르는 척'. 수많은 비극을 잉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모르는 척'하며 홀로 살아남기에 급급해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 봐야 하지 않을까...... |
|
건축한지 이십년도 더 된 원미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놈은 엄마인 변계숙을 살해하고 현장 검증 중이라고 했다. 문제는 놈이 인호의 형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운이 나빠 살인자의 가족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욱 운이 나빠 피살자의 가족이 되기도 한다지만 살인자의 가족인 동시에 피살자의 가족이 되어버린 인호의 운은 얼마나 나쁜 것일까.
이 모든 시작의 발단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고 인호로부터 파생되었다. 가족의 비극은 그렇게 막이 올려졌다.
P.26 형은 어머니를 졸라 아버지와 똑같은 팔토시를 사서 꼈다
고 기억할 정도로 형은 아버지를 좋아했다. 그런 아버지인 조기준의 죽음이 자살로 몰아지고 오공무역측에서는 17년간이나 성실히 근무해온 그를 공금횡령자로 매도해 버렸다. 결국 생활무능력자였던 엄마는 아들 둘을 데리고 이모가 사는 곳으로 야반도주했으나 그곳 역시 가장을 잃은 그의 가족들이 살아간 삶의 터전은 아니었다. 결국 검고 축축한 아버지의 죽음 뒤로 남겨진 세 사람은 형 인근의 희생으로 겨우겨우 먹고 살게 되었다. 보험금 수령. 자식을 팔아 보험금을 수령하고 먹고 사는 기생부모의 삶이 이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 곳의 어른들은 그런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스님과 절집에 사는 석문정 역시 다르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 익숙한 그 아이가 억양없고 나직한 말투로 말하는 서늘한 표정의 그 아이가 그곳을 탈출하던 방법 역시 알고 있는 그 방법 뿐이었고 그나마 가장 성공적으로 탈출해나갔다.
P.227 한 명은, 한 명 쯤은 제대로 살아야 되지 않겠니
라는 어머니의 바램을 뒤로 하고 형을 반병신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등떠밀려 대학에 입학한 인호는 스스로 날지 못하는 새였다. 소설이 슬프고 무서워지는 순간은 이제부터다. 죄의식 없이 가족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며 청춘을 허비하는 동생, 인호. 그런 인호를 위해 형 인근을 보험수탁자로 만들어가는 엄마와 떠나자는 문정의 손을 차마 잡지 못했던 인호가 저지른 살인의 의미. 소설은 가족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상처를 터뜨려내면서 슬프고 무섭게 독자를 몰아가버렸다.
이 소설은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어리고 가여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라는 저자의 소개글처럼 운이 나쁜 사람들이 가난과 마주한다고 모두 이렇게 살지는 않을텐데. 세상에는 이런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어 슬프고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P233 너랑 네 엄마는 분명히 마귀야
마귀가 되고 악귀가 되어버린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이 너무나 구슬퍼 나는 소설을 읽고 나서 한동안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 식어버린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냥. 가슴 속에 너무나 허해져버려서-.
|
|
소설은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소설로 쓰기 위해 조금은 과장하기도 하고 조금은 축소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혼자 생각해 봤다. 사건을 조금 과장하고 담담하게 글을 이어가기 위해서 감정은 조금 축소하는 것이 소설이 될 것 같다. 안보윤 작가의 모르는 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다. 이기심 또는 편익이라는 인간의 욕심을 고려한다면 모르는 척은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고 이 소설을 더 씁쓸하게 읽게 만들었다. 소설을 현실에 대입했다. 1:1로 맞아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1.2:1 정도로 맞아 떨어진다. 조금 과장됐을지 모르지만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다.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라서 모르는 척 지나갔으면 좋았을 현실이 이야기에 담겨있다. 근친살해와 보험사기를 표면으로 노출했지만 '모르는 척'을 본질적인 문제로 바닥에 깔려있었다. 처음 모르는 척하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듯이 모르는 척하는 것이 점점 당연해져서 정말 모르는 것이 돼 버린다. 조인근은 엄마를 살해한 살인자다. 아버지가 죽고 남은 동생과 삶의 의욕을 잃은 어머니가 남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보험설계사 이모의 도움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보험사기로 살아가는 첫째 아들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병원을 전전하며 보험금을 타내기 때문에 학교와 동네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이다. 변계숙은 살해당한 피살자다. 눈치 빠른 영재인 큰 아들보다 평범한 작은 아들에게 신경이 더 쓰이는 어머니다. 남편이 죽고 P시로 이사하지만 변화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 동생의 도움으로 첫째 아들이 보험사기로 벌어오는 돈으로 삶을 이어가는 가족이다. 첫째 아들에겐 어머니지만 둘째 아들에게는 엄마인 감정이 다른 사람이고 큰 아들의 몸이, 정신이 망가져 가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인간이다. 조인호는 살인사건 피해자와 살인사건 가해자의 가족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불투명하고 더럽고 역겨운 모든 것을 얻은 살인자의 동생이자, 피살자의 아들이다. 구질구질한 P시로 이동해서 삶의 잃은 엄마와 끝없이 자해를 하는 유령 같은 형을 가진 가족원이다. 이상한 하는 형이 정상적으로 살기를 바라면서 보험사기를 일삼는 형을 놀리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한쪽 귀에 막혀 듣지 않으려는 동생이다.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모르는 척이 이어져 모르는 것이 돼 버린 인간이다. 한 가족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 두 명의 가족원이 한 가족원을 마귀처럼 뜯어 먹는 소설이 기분 좋게 읽히지는 않는다.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무서운 이야기지만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모르는 척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소설은 Fiction이라는 것을 내 모르는 척의 이유로 실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소재가 좋다.'라고 생각하며 쉽게 읽었고 책장을 덮었을 때는 씁쓸함이 남았다. 현실에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모르는 척하기에는 그 모르는 척으로 희생당한 소설 속 조인근의 마침표가 없는 쉼표들로 이루어진 문장이 강렬히 남았다. 마침표 없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조인근의 문장처럼 아직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현실 속에도 모르는 척이 익숙해져서 정말 모르는 것이 돼 버린 나와 같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안보윤 작가가 들고온 소설은 현실 속에서도 길게 쉼표처럼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
|
이 책은 리뷰어 클럽에서 여섯 번째 받은 책이다. 이 책을 받았을 때는 희비가 교차되는 묘한 마음이었다. 500쪽 내외의 책들을 읽으며 지쳤던 터라 300쪽 이내의 가벼운 책을 보며 일단 반가웠다. 그러나 무언가 무거운 분위기의 내용이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마지막 장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내 마음도 어두웠다.
"이 소설은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어리고 가여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289쪽 작가의 말)
지금의 나의 상황은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심정이다. 3월 1일자로 직장을 바꾼 뒤에 달라진 분위기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직장이 더 힘겨운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지쳤고, 어디론가 피하고 싶은 마음에 잠기다 보니 스스로 힘겹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런 상태인지라 좀 더 가볍고 밝은 내용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슬프고 무서운 꿈이라니…! 이 책을 넘기면서 지친 내 영혼이 함께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펼친 책에서 어떤 마음을 느꼈을까?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독서에도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르는 척』은 절대로 힘겨운 책이 아니다. 분량도 가볍고, 이야기 전개도 복잡하지 않다. 내용이 좀 무겁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이보다 더한 책도 무리 없이 읽은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짤막한 책을 4일에 걸쳐서 읽어야 했다.
3월초부터 20여일 간 독서의 리듬이 끊기다 보니 내게는 책장을 넘길 기력도 사라졌었나 보다. 그런 심신으로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짐작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저자와 책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둘째, 화자가 바뀌는 구성이 신선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조인근과 조인호다. 형제 사이인 둘이 번갈아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런 책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두 주인공이 번갈아 화자가 되어 내용을 이끌고 있다. 그 책에서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냉소적인 삶을 살아가며 여러 번 자살기도를 했던 서른 살의 대학교수 문유정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으로만 떠돌다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스물일곱의 정윤수가 화자였다.
그러나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비록 외형으로는 문유정과 정윤수가 말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작가이다. 누가 말하던 문체와 생각의 깊이는 공지영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글을 보는 듯했다. 인근과 인호 둘 다 불우한 처지의 형제로 같은 상황을 견디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사람의 수기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든 것이다. 인근의 서술을 볼 때는 나까지 미치는 듯했다.
계단 꼭대기에 선 여자아이, 가 나를 내려, 다보았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들썽대는 어깨와 가슴이 심상찮아서 싫어, 이상했고 나는, 계단을 도로 내려갈 작정이었다 여자아이가 고꾸라지지만 않았다면, (122쪽 7행~13행/ 파고 4)
인근의 서술이다. 처음에는 오타인 줄 알았다. 띄어쓰기, 문장 부호 등이 전혀 맞지 않다. 마침표가 있어야 할 곳에 생략된 경우가 많고, 쉼표로 끝나는 문장도 많다. 쉼표는 여기저기 생뚱맞게 삽입된다. 이건 뭐 이모티콘도 아니고, 그야말로 얼빠진 사람의 글을 읽는 듯했다.
미치지 않아서 미쳤고, 그러다 보니 정말 미쳐가는 인근의 심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너무도 자주 반복되는 저런 글들을 읽으면서 나까지 미칠 듯했다. 내가 그럴진대 당사자인 인근이야, 아니 글을 쓰는 작가야 오죽하겠는가?
형인 인근은 어린 시절 영재였다. 동생인 인호는 부진아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호는 지방의 전문대이기는 해도 대학에 갔다. 인호는 스스로를 부시면서 삶을 억지로 이어가고 있다.
셋째, 읽는 내내 답답했다. 부친의 돌연사로 무너지는 가족,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해를 반복하는 인호, 그것을 묵인하거나 조장하는 가족들…. 부모의 동반자살로 정법사 보현스님에게 맡겨진 문정, 그녀 역시 보험사기에 가담하고 있고…. 그러다가 인호는 어머니를 살해한다. 글쎄 그것을 살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내용의 소설이다. 정신과 치료 과정에는 역할극도 활용한다고 들었다. 서로의 문제를 나누고 공유된 문제 상황을 연극을 통해 배역으로 참가하면서 보여주고 느끼는 것이다. 그 것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학교폭력 사안 같은 경우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배역을 바꿔서 역할극을 하다 보면 상대의 고통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아픔에 몸부림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어 더욱 난폭해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 화해와 치유의 효과를 얻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했던가?
나는 때로는 인호나 인권이 되고, 어머니인 변계숙이나 이모인 변인숙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함께 신음을 통했다. 내가 배역을 맡은 당사자나 상대방이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유일한 위안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문정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녀의 캐릭터에서 묘한 매력이 느껴져서 일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이 책과 인연이 있어서 만나게 될 분들을 위해서 주요 등장인물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한다.
변계숙 : 인근과 인호의 어머니. 생활력이 없고, 남편 사후에는 더욱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 변인숙 : 변계숙의 동생으로 인근과 인호의 이모. 보험의 맹점을 악용하여 축재를 한다. 보현 스님 : 정법사의 주지인 비구니 스님. 문정을 양육해 주었다. 문정은 애증의 눈길로 그녀를 보고 있다. 석문정 : 부모의 동반자살로 정법사의 보현스님에게 맡겨져서 성장함. 인근과 비슷한 나이로 그들 형제에게 관심을 보인다. 가슴속에 한을 품고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조인근 : 이 책의 주인공으로 인호의 형. 인호와 번갈아 화자가 되어 서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영재 소리를 들었으나 부친의 사망으로 가정이 기울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죽이고 있다. 조인호 : 이 책의 주인공으로 인근의 동생. 인근과 번갈아 화자가 되어 서술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부진아에 가까울 정도로 발육이 늦었다. 그러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지방의 전문대일 망정 대학에는 입학한다.
대부분의 작품을 완독하고 책장을 덮으면서 느끼는 말을, 이 책에도 덧붙이면서 글을 마친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 다시 이 책을 펼치고 싶다."
|
|
p.284/ … 모르겠다고 말하고 보니 정말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모른다, 말을 하니 모르겠어, 가 되었다. 그립다 말을 하니 그리워, 가 되듯, 에필로그에서 할아버지 행방을 묻는 데 대한 인근의 이 독백으로 소설 속 '우주적 재난', 우주적 '모르는 척'은 완성된다. '아무도 모른다' = '모두 모르는 척 한다' 소설에서 '모르는 척'이 뜻하는 건 절반의 무지. '모르는 척'이 절반의 무지라면 '아는 척'은 어떠한가? p.233/ 너랑 네 엄마는 분명히 마귀야. p.265/ 네가 죽인 거야, 너를. 앞으로도 너는 계속 남 탓만 하면서, 나를 원망하면서 스스로를 죽이겠지. 한심해. 한심해 죽겠어. 내내 궁금했다. 문정의 이 당돌한 '아는 척'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동정심? 정의감? 애정? 아니면, 우월감? 정법사 시절의 그녀는 분명히, 물병 안에 사는 오리에게 물병 밖에도 세계가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으면 된다고, 물병 밖으로 꺼내라는 건 바깥에 사는 사람들의 이기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혹은 p.87/ -그럼말이다. 지금은 미워하고 ……줘라. -나중에 언제요? -나나 엄마가 죽으면. -그땐 왜 예뻐해야 하는데요? -공평해야 하니까. 이 표는…… 들어온 돈만큼 다시 돈을 써서 0을 만드는 표다. 사람도 그래야지. 미워한 만큼 다시 ……줘야 0이 되지 않겠냐. 이렇게 모르는 척, 한 만큼 다시 아는 척을 하면 0이 될 수 있다고, 그녀도 그렇게 믿었던 걸까? p.78/ 나는 흐리다, 그는 푸르고, 기름진 잎을 먹을 수 있는 누에처럼 그는, 윤이 나고, 장판 아래 깔린 노래기처럼 나는 말라간다, p.85/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캐러멜과 껍질째 씹다 뱉은 캐러멜이 한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동네였다 그곳은, p.228/ 놀랄 만큼 곧고 삐죽한 건물이 있는가 하면 밟아놓은 신발처럼 주저앉은 건물도 있었다. p.231/ 학교 정문으로 도로 내려가는 길은 움튼 싹과 마른 가지가 뒤섞여 절반만 푸르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모르는 것과 모르는 척하는 것, 모르는 척하는 것과 아는 것, 아는 것과 아는 척하는 것, 아는 척하는 것과 모르는 것, 아는 척하는 것과 모르는 척하는 것, 그 사이에 놓인 간극은 이처럼 넓고도 길어, '엿가락처럼 기이하게 늘어진 육교'나 도막 나지 않은 철로로도 둘을 이어줄 수는 없다. p.20/ … 살인자의 가족인 동시에 피살자의 가족. 이 구절에서 이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고 있었다. '클라인 씨의 병'처럼. 이곳은 안팎 없는 세상. 안은 밖으로, 밖은 안으로 이어지지만, 그어놓은 경계선은 3.8선만큼이나 공고하고, 당신은 결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결코 당신이 될 수 없으며- p.80/ 담요를 두르듯, 동생이 어머니를 덮고 있었다. 엄마 어머니 나는 볼 때마다 헷갈렸다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나에게는 어머니이고 동생에겐 엄마일까 p.271/ … 우리 한번 잘 살아보자, 그 우리, 에 나도 들어가나요? -당신의' 어머니'는 결코 나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지금 '우리의' 대통령님이 나에겐 영원히 '당신들의' 닭그네일 수 밖에 없듯. 또한 '우주적 재난'에 맞서는 우주적 아는 척이, 우주적 '모르는 척'만큼이나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p.289 작가의 말/ 이 소설은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어리고 가여운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 회복 당한 불안이 그들을 뒤쫓는, 슬프고 무서운 꿈이다. 그러나 최소한, 결국은 깨지고 부서져 피투성이로 생살을 드러낸 '우리'의 진실을 마주하고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눈 돌리지는 않겠노라고, 지금 막, 똑같은 꿈을 꾼 당신과 내가 약속할 수 있었으면 하고, 그녀의 소설은 이번에도 참 시끄럽군. |
처음부터 우리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종종 방송에서도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을 만날수 있다.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이기에 책에서 만나는 것이 그리 큰 일일까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인면수심의 사건이 일어났다. 비오는 날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조인근의 현장검증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우리는 처음 만난 사건을 보고 어찌 그런 일을 벌일수 있을지 조인근이라는 인물에게 사정없이 험한 말을 하게 된다. 아무리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인물이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무서운 일을 벌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보며 우리들은 그를 패륜아라고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을까한다.
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바라보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한다. 우리들은 이야기를 조인근과 그의 동생 조인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시점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며 우리들은 조인근이 될 수도 조인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늘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 하지만 횡령이라는 죄를 쓰고 가족들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게 된다. 이모 인숙의 권유로 오게 된 P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인호, 인근, 어머니 변계숙의 삶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무기력. 그것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인호의 가족. 아무것도 모르고 할줄 아는 것이 없던 이들에게 이모 인숙은 하나부터 열까지 이들에게 살아하가는데 힘이 되어주려 한다. 하지만 그 힘이 오히려 독이 되고 만 것은 아닐까? 방송에서도 사기보험 사건에 대해 많이 나오고 있다. 보험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사고를 당한는 사람들. 보험설계사인 이모의 권유로 인근은 어느 날부터 학교에 가는 날보다 병원에 있는 날이 많아진다.
- 형은, 미쳤어. - 미치게 만들었겠지. - 처음부터 미쳐 있었어, 구제불능이였다고. 누나는 형에 대해서 아무것도 물라. - 너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모르는 거고, 너는 모르는 척한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 본문 232쪽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읽으면서 우리네처럼 평범하고 힘없는 이들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어가는 조인근을 모르는척 살아갈수 밖에 없었던 가족들. 읽으면서 옥죄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할 정도였다. 처음에 패륜아라고 생각했던 인근의 삶을 보면서 그를 그렇게 몰고간 우리들을 원망하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 변계숙을 살해 한것은 그가 늘 해오던 방법을 선택했던 것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만큼은 자신이 아닌 어머니가 그 대상이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마저 용납되지 않았다. 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어머니, 아픈 건 잠깐이에요. 병원에 가서 붕대를 감고 약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돈이 나와요, 그걸로 우리는 쌀을 사고 바람 값을 내고 동생 등록금과 결혼 자금을 댈 수 있지요. 조금만 지나면, 하나도 안 아파져요 정말이에요, - 본문 273쪽
모르는 척. 우리들도 늘 모르는 척 살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못본척하고 강자의 눈치를 보며 약자를 모르는 척하고 있다. 그리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수 없는 글이기에 읽는 내내 어둡고 무거운 마음을 들었다. 당분간은 그 기분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지 않을까한다.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이런 현실을 아직도 모르는 척 하고픈 나의 마음 때문이 아니였을까? |
|
-너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모르는 거고, 너는 모르는 척한다는 게 다른 점이지만. -232
받아든 내 손의 책, 표지와 제목이 도대체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내 일이 아니니까 혹은 괜시리 복잡한 일에 연루될까싶어 애써 못 본척하며 지나치고 모르는 척하며 살고 있는 지금 우리네 모습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닐까 생각하며 책장을 열었다. 사건현장검증, 일순간 어안이 벙벙한 채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가끔씩 뉴스에서 보게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었다. 어둡고 심란했던 전개는 이내 시선을 돌려 아버지와 함께 따뜻하고 행복했던 단란하게 살았던 어린시절로 우리를 안내했다. 형과 나의 시선, 생각그리고 시간들이 번갈아 담겼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생계를 맡아야 했던 인근, 남편의 죽음으로 엄마의 모든 일상, 삶이 정지 되어버렸고 야반도주하듯 동생의 손에 이끌려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아직은 철없이 어리기만 했던 동생, 인호가 있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 대신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야했고, 이모가 끌어들인 끔찍한 진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말리지 않은채 외면하고 살아가는 엄마의 등을 보면서,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 채 커 가고 있는 어린 동생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 주고 결국 빈 껍데기로 남아 스스로 유령이 되어야 했던 인근의 고달프고 메마른 삶의 여정을 보고들어야 했다.
처음엔 알지 못했지만 황량한 들판에 버려진 기차역처럼 점차 변해가는 형의 모습을 지켜보아야했던 인호와 알면서 왜 그렇게 하는지 알면서도 비루한 삶이지만 살아남기위해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함께 살고 있는 주변 인물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근역시 자신의 인생과 몸이 마구 훼손되고 황폐해져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키워준 절집과 살고 있는 도시에서 끝끝내 벗어난 석문정처럼 차마 도망치지 못한 것은 어머니와 동생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한 번 빠져버린 절망이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은 외면한 채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분노, 절망이 끝내 인근을 유령 보다 더한 악마로 만든것 아니었을까. 실낱같은 희망조차 느껴지지 않아 답답했고 안타까웠고 숨이 막혀왔다. 나열된 글자들에서 조차도. 처음에는 띄어쓰기 오류일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작가의 치밀한 의도였음을 뒤늦게서야 겨우 알아차린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