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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나중에 정치하실거죠?" 아직도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답하기 참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묻는 사람도 조심스럽고 답하는 사람도 겸연쩍은 '정치'. 이 두 글자는 깨끗함하고는 거리가 멀고, 희망하고는 더더군다나 어울리지 않는 되게 '껄쩍지근한' 느낌이다. '정치한다'는 것은 진흙탕 싸움에 뛰어드는 것과 같고 '정치가'란 국민의 충복을 자처하지만 언제든 국민의 뒤통수를 칠 소지가 다분한 음흉한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다. 한국사회에서 정치는 연예인 안티는 저리가라 할 만큼 범국민적 '안티'가 들끓는 영역이다.
'정치'에 관한 '진보'의 오만과 편견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쓴 <정치의 발견>은 더 나은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정도 되겠다. 실제 강연 내용을 원고로 묶어 낸 것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정치'와 '진보'를 오버랩했을 때 겪는 편견과 시행착오를 분석하며 진정한 진보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에 대해 '제대로 알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 '그 동안 정치 쥐뿔도 모르면서... 잘난체했구나'라는 부끄러움이 확 밀려든다.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어떤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동안 '진보'라는 이름으로 정치에 관한 '무지함'을 속여왔던 과거부터 청산(?)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이성'에 대한 자각이다. 박상훈은 진보가 정치적 이성이 부재할 때 보수보다 더 파괴적인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치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았을 때부터 존재해왔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진보가 필요한 것이지, 진보라는 이름에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종속시켜서는 안된다. 흔히 진보가 보여주는 과도한 확신이나 비타협주의는 거의 '종교적 교리' 수준인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에 복잡한 정치적 현실을 너무나 단순화시켜버리는 편향에 빠지거나 자신만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오만에 젖기도 한다.
정치적 이성을 갖춘 사람은 자신의 무지에 대한 자각이 있기 때문에 겸손하고 정치적 선택이 신중해진다. 인간적 한계를 알아야 인간적 정치의 길을 모색할 방법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박상훈은 "진보적이되 좀 더 정치적이고 좀 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p24) "진보의 열정이 정치적 이성과 만나고 그것이 좀 더 넓고 풍부한 인간적 기초 위에서 성장해 갈 때, 진보정치는 매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p39)을 강조한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력도 높일 필요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인민의 직접 지배' 체제가 아니라 '인민의 동의에 의한 지배' 체제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중과 정치 엘리트가 협력하는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좋은 정당이라면 지지자와 정치가 사이의 좋은 협력의 체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p95) 촛불집회를 보면서 마치 직접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느니, 거리에서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 사고다. 운동 그 자체가 정치체제를 대신할 수는 없다. 분출하는 대중의 열망을 민주적인 정체제제 안에서 올바로 대표하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하층배제적이고 상층편향적인 민주주의(p115)는 개선되기 어렵다.
'제대로 된 정치가'가 필요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정치는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복무하면서 그 구성원들에게 복종과 의무를 부과하는 '강제력'을 사용한다. 막스베버는 '국가란 특정의 영토 내에서 폭력의 합법적 독점체이자 오늘날 강제력을 상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p27)으로 정의한다. 정치가는 정치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이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정치가 강제력을 잘못 동원했을 경우 파국적 상황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영역이라는 자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상훈은 선한 목적과 도덕적으로 의심될만한 수단을 결합해야 하는 정치의 운명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담대한 인물, 그러면서 목적과 수단의 불편한 조합을 통해 유익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만이 윤리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정치의 현실을 이끌 수 있다(p35)고 강조한다.
제대로 된 정치가가 대중과 올바로 협력했을 때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례가 아닌가 한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은 분명 실망스러운 구체제의 한 축으로 전락했지만, 민주당 소속 정치인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당 조직의 한계를 초월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정당구조, 그 자체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결국은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올바른 정치 리더십이 발현될 때만이 민주주의도 그 본연의 기능을 꽃피울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진보가 진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치가'의 탄생, 올바른 정치 리더십의 형성이 절실하다. 시간은 흐르고 선거는 또 돌아온다. 제대로 된 정치가의 출현, 정말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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