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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뭘까? 때론,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춘의 시기를 지날 때는 몰랐다. 모든 것이 이성의 잣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그 이성의 무한한 힘에 기대어 세상을 무서운지 모르고 지났다. 하지만, 하나 둘 나이가 들어가며 그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한계와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렇게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 아마도 시가 아닌가 싶다. 같은 것을 같은 시간에 함께 보았지만 시인의 가슴에 담긴 세상은 놀라우리만치 다른 세상을 담아내고 이를 시어로 옮겨 놓은 것이 시라는 생각에 시인을 보통의 사람들과는 한 참 거리를 두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성의 잣대로 보는 세상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세상을 보는 것으로 시인의 가슴을 정의한다면 공감하는 분들도 제법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 시인 중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선후배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 고은 시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독특한 그의 시에선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다 한 순간을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비로써 이해되는 시들이 많다. 시대의 아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던 시인의 시 중 ‘선시’를 모아 놓은 시집 ‘뭐냐’는 어떻게 보면 이성이 모든 기준이 된 세상에서 그 이성을 내려놓고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시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뭐냐’가 담고 있는 감성적 접근은 그리 만만치 않다. 가장 절친한 벗에게, 이웃에게, 세상에게 도대체 ‘뭐냐?’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에게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처절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자책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은 대개 몇줄 되지 않은 짧막한 시어들로 되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 머리와 가슴을 스치는 깨달음의 감정을 시로 승화시켜 낸 성찰의 진수가 아닌가 싶기도 한다. ‘선시’란 사전적 의미로 ‘모든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궁극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적(禪的) 사유(思惟)를 담고 있는 불교시’라고 한다. 굳이 종교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해될만한 대목이다.
“오직 선은 마음뿐이다. 이 마음속의 진면목으로만 기존의 세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선의 목적이다. 일체를 부정함으로써 일체의 진실을 획득하는 선은 그 부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유로운 선문답과 선시를 낳을수 있게 된다.”
스님들이 깨달음을 향한 정진의 과정에서 또한 깨달은 순간 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선시와 선문답이라면 일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도 그 삶 속에서 깨달음의 과정이 분명 잇을 것이다. 물론 이때 깨달음의 순간이 스님들의 그것과 일치한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시인이 시를 낳고 문학가가 작품을 낳는 과정도 이에 못지 않은 깨달음의 과정일 터 보통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얻는 한 순간의 감동도 그에 못지않은 깨달음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고은의 선시에는 서슬퍼런 칼날이 곳곳에 번뜻이고 있어 사뭇 이성의 그 무엇을 잘라내고 있다. ‘그렇지!’, ‘맞아~’또는 ‘어?’, ‘이럴수가!’와 같은 느낌으로 공감하는 순간 시인의 선시는 어느덧 보통 사람들의 깨달음의 순간과 만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 시인의 깊은 속내를 그렇게라도 느끼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작별
잘 있게 잘 가게
저 건너
어찌 살꼬 너 없이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삶의 무게에 억지로라도 마음의 여유를 누리는 순간에서야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시인의 시가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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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인 고은의 선시집이다.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은 처음에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조금 읽다가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다 읽고 나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되었다. 물론 처음의 산과 마지막의 산은 다르다. 무언가 깨달은 것 같기도 하고 원점인 것 같기도 한 애매함이 선문답을 대하는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알 듯 모를 듯 애매모호함, 그런 마음이 이 책을 다 읽은 내 마음이다.
선문답에 대해 조금씩 들어본 이야기와 잘 버무려져 고은의 선시집 <뭐냐>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이 책은 고은 시인이 그렇게 썼기에 느낌이 더 와닿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렇게 쓴다고 그런 의미로 와닿지는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고은 시인이기에 가능했다.
언어의 홍수와 미사여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언어의 가지치기는 오히려 신선했다. 깔끔하게 정제된 느낌, 정리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뭐냐?"라는 단어는 이 책의 제목. 그런 점을 잘 파악하고 지은 책 제목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페이지 중간중간 붓으로 그린 그림이 나온다. 그냥 아무렇게나 생긴 붓 자국에 제목을 붙여놓은 것인지,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으로 그린 것인지, 무엇인지는 모르나, 제목과 그림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해보겠다는 욕심이 덜어지고 그렇게 나온 책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창의적인 작품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느낌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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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집 '순간의 꽃'을 보고 왠지 모르게 따뜻해지는데가 있는 고은 시집을 찾다가 순간의 꽃 옆에 있길래 선시가 뭔지도 모르고 빌려 본 책.
전체적인 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으나 이 구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림같은게 있다. 느끼는 걸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건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으나.
육바라밀은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실천행이라는데. 한평생 이것이 도둑이라는 게 뭔지. 뭘 이실직고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달, 산꼭대기, 먼 불빛, 푸른 하늘, 물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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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 굉장히 유명하신 분인 건 난 모른다. 박웅현의 책을 보고 <순간의 꽃>을 사서 보았고, 쉽고,눈에 그려지는 듯한 애잔한 시와 때론 삶의 소소함과 소박함, 강렬함을 느끼는 시를 보고, 아. 이렇게 와닿는 시도 있음을 알게 해준 시인. 그런 구분의 신작 아닌 신작 <뭐냐> 제목부터 강렬했지만, 선시라는 음악장으로 치면 미니멀리즘사운드 를 구사하는 작품으로 초반에 적응을 못했다. 허나 읽으면 읽을 수록, 해석하려는 나의 무지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냥 흘러 가듯이 죽죽 읽어나가는 것이 Free하게 이 시집을 느끼는 방법임을 얼핏 알게 되었다. 그래도 몇몇 챕터에서는 고수의 맘을 와닿을 정도로 느끼지는 못했으니.. 아직 난 내공을 더 쌓아야만 할 듯 하다.. 의미는 있되 굳이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그 공간안에서 노는 고수,, 어렵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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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선시집 뭐냐 고은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많이 익숙하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굉장히 아름다운 시를 쓰시는 분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고은의 시는 한편도 읽어보지 못했었다. 시를 통해서 발음을 고쳐야지 하면서 읽다보니 고은 시집을 구매하게 되었다. 사실 제일 최근에 나온 신간이어서 구매한것이기도 하다 선시집 뭐냐 책을 구매하면 선시집이라는 뜻도 몰랐다. 고은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보고 구매했을 뿐이었다. 시집을 읽으면서는 이게 정말 시인가? 정말 이렇게 간단한게 맞는건가? 할정도로 짧은 시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 말속에 뜻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들이 상당했고, 선시이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 자체를 즐기는 묘미도 상당했다. 그렇게 하루에 세 개, 네 개를 읽어가면서 고은이라는 시인의 작품세계가 더욱 궁금해졌고, 나머지 시집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편안하게 시를 즐기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라 권해주고 싶다. - 선시 : 선시의 묘미는 의미 찾기라는 설왕설래를 폐기하고, 단어와 단어, 행과 행, 연과 연사이의 여백의 무의미의 놀음을 즐기는 데서 배가된다. [ 그리움] 물결이 다하는 곳까지가 바다이다 내가 속에서 그 사람의 숨결이 닿는 데까지가 그 사람이다 아니 그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까지가 그 사람이다 오 그리운 푸른 하늘 속의 두 사람이여 - 고은 선시집 ‘뭐냐’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