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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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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서평   나에게 완벽주의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기회를 놓치고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는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수십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완벽주의의 그물에 걸리면 선택을 미뤄둔 기회는 사라지고, 인간관계에도 금이 가서 인생이 적막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땐 정말 몰랐다. 어느 날 내게 드리워진 완벽주의의 계보를 찾아보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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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서평

 

 

나에게 완벽주의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건 기회를 놓치고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는지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수십 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완벽주의의 그물에 걸리면 선택을 미뤄둔 기회는 사라지고, 인간관계에도 금이 가서 인생이 적막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땐 정말 몰랐다.

어느 날 내게 드리워진 완벽주의의 계보를 찾아보니 엄마의 영향이 컸다. 어느 덧 팔순 넘은 노인이 되었지만 엄마의 내면엔 지금도 깨뜨려지지 않은 견고한 완벽주의가 있다. 그 때문에 자녀를 키우는 동안 엄마는 칭찬에 인색했다. 내 아버지의 불완전함과 평범을 감싸지 못하고 불만스러워하셨다. 엄마는 딸이 제 소질을 살려 하는 일 외에 대충 해내는 살림 솜씨를 못미더워하며 지금도 잔소리를 하신다.

그러다 어느 날 부턴가, 그 엄마를 닮은 딸은 지금까지 행해 온 엄마의 완벽주의의 역사를 들춰내며 빈틈없는 논리로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겨우 이름 석 자 익혀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이 우등생이 되어 졸업하는데도 칭찬은커녕 구박(?)을 했던 일로부터 시작해, 긴 세월 지속해온 자녀양육 태도의 허물과 상처들을 고스란히 들춰내 엄마의 잔소리보다 더 치열한 논리로 폭로했던 것이다. 엄마는 서러워하셨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엄마를 닮았다고 조상 탓하는 나의 완벽주의는 더 못나고 못된 것이다. 그래서 반성 겸 완벽주의를 버리기 위한 타협안을 제시했다.

-내가 미처 못한 일은 엄마가 하고, 엄마가 미처 못한 일은 내가 하면서 서로 비난하지 말기! 서로 불쌍히 여기고 봐주며 편안히 살기!

하지만 엄마의 완벽주의는 변화될 기미가 없어서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러다가 노모의 심신이 점점 허약해져 더 잦은 실수를 하시니 그제야 엄마는 딸 비난하기를 조금 멈추었다. 아니, 딸의 사소한 실수를 지적해보았자 엄마의 한 마디에 딸은 노모의 열두 가지 실수를 들춰내니 승산이 없어 멈춘 것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시작한 언쟁이 딸에게 밀려 본전도 못 찾는 형국이 되니 할 수 없이 손을 든 것 같다.

이제 함께 나이 들어가는 딸은 엄마만큼은 아니어도 곧잘 잊어버려 실수를 반복한다. 깜박깜박 망각으로 오는 딸의 사소한 실수를 지적하다가 딸보다 몇 배 더한 엄마의 실수담을 고발할라치면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여 모녀의 완벽주의 게임은 그나마 즐거운 상황으로 막을 내리곤 한다.

나의 완벽주의, 우리 가족의 완벽주의, 무엇일 문제이며 해법은 무엇일까? 그간의 경험으로 대강의 치유법은 터득했으나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완벽주의에 대한 해답이 궁금해 이 책을 들었다.

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는 성경에서 완벽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완벽의 덫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는 너와 나의 처세에 대하여 신학적 토대 위에 답을 마련하고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다. 이 책의 결론부터 보자면 저자는 불완전함으로 지나치게 애쓰는 우리를 향해 완벽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실 완벽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완벽을 지향하는 마음조차 없었다면 우리는 신에게 예배하지 않았을 테니까. 완벽은 신의 것, 우리는 신의 완벽함을 추앙하고 동경하다 예배에 이르렀으니 완벽을 지향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완벽을 위해 애쓰는 노력 또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완벽에 집중하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바로 그것이 문제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책,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의 낙심과 절망이 바로 그것이다. 낙심이나 절망은 주님이 원하시는 기쁨의 삶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넘어서서 타인의 완벽함을 기대하다보면 인간관계는 깨지고 내 안의 주님을 드러낼 기회도 사라진다. 완벽은 신의 몫, 인간의 완벽이란 자신의 열등감과 불완전함을 포장하는 빈껍데기에 불과할 뿐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해 인간 사이의 갈등은 언제 어디에서나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불완전하게 직조된 인간인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불완전함으로 일과 관계에서 대강대강, 봐주기 식으로 살아야한단 말인가? 아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붙잡아야할 것은 불완전함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저자는 불완전한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로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에 대하여 안심하게 한다.

소망교회 목사인 저자는 설교 강단에서 내려올 때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부족한 사람의 입술에서 나온 설교를 성령을 통해 온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다라고 고백한단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는 고백과 같이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축복된 조건임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오라비를 잃고 낙심에 빠졌던 마리아를 향해 주님은 희망과 위로의 음성으로 다가오셨다. 성경은 숱한 불완전한 인생들의 스토리이고 그런 사람들을 은혜의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불완전함이란 모자라고 쓸데없어 버려지는 나머지 조각이 아니라 온전한 주님의 은혜를 불러올 수 있는 충분한 한 조각인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우리의 불완전한 조각들을 잘 맞추어 주님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이 되어가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실수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까?

저자는 13장에서 노아 선지자를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6:9)” 칭찬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노아도 결국은 불완전한 존재요 실수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술에 취해 자녀들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때 성숙한 자녀는 아버지의 겉옷을 준비하여 덮어 드렸다. 이와 같이 실수와 허물 많은 인간에 대하여 우리는 겉옷을 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일러준다. 우리가 준비해야할 겉옷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어진 용서와 사랑의 겉옷이다.

우리는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열매 없는 나무, 가지런한 나의 농장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나무라고 생각하지만 나 자신이 그러한 무화과나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만은 다른 이들에 비해 완벽하다고 믿는 인간의 오만이요 착각이다. 질서정연한 포도 농장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심어 놓은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 속에 깃든 인간의 무질서를 내가 용납하겠다, 그러니 너희도 그리하라, 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인간의 불완전함은 용서 되어도 완벽한 하나님의 실수가 (물론, 인간의 얕은 생각으로 실수처럼 생각하는 것뿐이지만) 용서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엎질러진(?) 하나님의 뜻을 용납할 수 없을 때, 그때는 삶이 지옥이 된다. 그래서 죽은 오라비로 인해 상처받아 실망의 무덤에 스스로를 가둔 마리아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때 주님이 마리아를 부르셨다. 그리고 절망과 낙망, 고립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다.

그 주님이 이 책을 통해 내게도 스스로 만든 완벽의 사슬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불완전한 인간이 욕망하는 완벽이란 그 자체가 굴레이고 허상이라고. 사실 나는 이 책을 만나기 전, 조금 부담스러운 원고 청탁을 받아놓고 계속 거절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주님은 벌써 내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 이미 시작된 일이라고까지 말씀하셨으니 차마 거절은 못하고 다음 기회로 미뤄지기만을, 자연스럽게 이번 기회에서 미뤄질 어떤 상황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내가 이삼년 후에 그 원고를 쓰게 된다면 문학적으로 더 완성된 나를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나의 문학수업에 수반된 아픈 개인사는 되도록 피하고 견고하게 다듬어진 문학 세계만을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주님은 내 개인사에 깃든 부족함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원하심을 알려 주셨다. 이제 내 연약함 위에 채워질 주님의 은총을 기대할 일이 남았다.

이 책의 장점은 이렇게 우리 삶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답을 찾아 길을 제시해주는 데 있다. 우리가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가장하는 것은 불완전함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생에게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알아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불완전함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불완전함에 대한 긍정적 해석과 함께 완전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도와주는 참으로 좋은 책이다. * 20200122

 

----------------밑줄 긋기 --------------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자리, 그 빈자리를 내어놓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너무 완벽한 사람, 너무 의로운 사람을 찾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로움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들어서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빈 공간을 두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입니다. 너무 의롭게 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인간은 그저 그런 존재입니다. 불완전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간, 하나님이 계실 자리를 마련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갑시다. -1, 21

 

야곱은 태어나면서 한 번도 빈손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무언가를 잡으려고,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빈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은 한 분을 만났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그는 또다시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그러고는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때 하나님이 빙그레 웃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너 그럴 줄 알았다. 너는 무조건 잡지. 빈손이 되자마자 너는 또다시 잡는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나다. 이제 네가 나를 붙잡았구나.”

지금 야곱은 얼떨결에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의 빈손이 드디어 하나님을 붙잡은 것입니다. 늘 그래 온 것처럼, 그의 본성이 그런 것처럼 야곱은 한 번 잡으면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재물이 아니고, 권력이나 명예도 아니며, 자녀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붙잡은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2,34

 

누구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당대에 완전한 자요, 의인인 노아도 그러했듯이, 우리 모두는 어떤 상황에서’, ‘언젠가는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실수하는 인간, 허물 많은 인간, 죄 속에 빠져 있는 인간,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13, 210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이 땅에 세워야 하는 노아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겉옷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13, 210, 211, 212

 

이 땅에 수많은 사람이 죄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겉옷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덮고 아름답게 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겉옷 하나는 준비합시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가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들고 세상으로 향합시다. -13, 213

 

YES마니아 : 로얄 p***k 2020.01.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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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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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의 3대 목사로 부임하신 김경진 목사님께서 대중들을 위한 설교강해집을 출간하셨습니다.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강남의 대형 교회의 담임목회자로 부임한 후 목사님께서 전하신 메시지는 놀랍게도 불완전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첫 설교집을 통해 그 불완전함의 신학을 다른 성도들에게도 전해주시게 되었습니다. "롯이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불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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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의 3대 목사로 부임하신 김경진 목사님께서 대중들을 위한 설교강해집을 출간하셨습니다.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강남의 대형 교회의 담임목회자로 부임한 후 목사님께서 전하신 메시지는 놀랍게도 불완전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첫 설교집을 통해 그 불완전함의 신학을 다른 성도들에게도 전해주시게 되었습니다.

 

"롯이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며 마음이 상했을 뿐입니다. 무언가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공헌한 일도 없습니다. 그저 마음만 상할 뿐 시류에 휩쓸린 삶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를 의인이라 불러 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신앙의 유비가 있습니다." (p.51)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게 중요할까요? 당연히 중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행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임한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의 잘못된 편견이 개입됩니다. 우리가 부하사원이나 후배들을 칭찬할 때는 무언가는 완벽히 잘 해냈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은 우리가 무언가를 잘 해냈을 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그 자리에 하나님이 임하신 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 김경진 목사님은 신앙의 위인들을 그려내지 않습니다. 나병환자, 죽은 나사로, 야이로 등 불완전함에 머물러 있던 약한 영혼들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임하시고 우리가 어떻게 완전하여지는지를 조명합니다. 요셉이나 아브라함 같은 대단해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실 때도 그들의 고난과 절망이 어떻게 하나님의 관심을 끌었는가를 보여주십니다.

 

세상 대부분의 신화와 종교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무슨 나라 왕자, 어느나라 전사 등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하고 읽기만 해도 동기부여가 되는 강한 사람들의 영웅담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오직 성경만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에 주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부족한 인간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 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과 주변인을 통해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데 놀랍게도 그 이야기들의 끝엔 그들이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남습니다.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이 하셨다는 고백을 남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몸값을 올려서 값비싼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배웁니다. 세상의 원리, 세상의 원칙은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이 갖지 못한 삶의 원리를 자랑해야 합니다." (p.197-198)

 

세상이 세운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더 높은 곳을 향해 달음질했지만 결국 그 기준을 넘지 못하고 넘어져 울고 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 영혼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행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벽히 행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것으로 기꺼이 우리 삶을 내어드릴 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히 자신만을 드러내시는 방법으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방식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처럼 실패하고 낮아지고 깨어진 자들만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만을 내어보이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 97페이지에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주님, 비록 오늘 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혜가 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어떤 자들이 이런 엄청난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불완전한 자들입니다. 빈공간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만이 이런 고백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을 초청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조금 더 완전해지기위해 애쓰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책, 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를 추천드립니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유를 통해 우리 삶에 완전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 삶의 빈자리에, 여러분의 삶의 빈공간에 하나님의 향기가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완벽은우리몫이아닙니다 #김경진 #두란노 #삶이되는책 #이책어때

w********0 2020.01.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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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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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 Paul책의 표지는 마치 잔디로 이뤄진 넓은 들에 평안한 바람이 스치듯 디자인 되어 있다. 제목 오른쪽에는 ‘불완전한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내용만이 담백하게 제공된다. 책의 띠지는 “애쓰고 애쓰는 인생은 그만! 주님이 아니면 완벽은 불가능하다.”라는 문장과 함께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라고 독자들에게 저자의 마음을 전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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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 Paul


책의 표지는 마치 잔디로 이뤄진 넓은 들에 평안한 바람이 스치듯 디자인 되어 있다. 제목 오른쪽에는 ‘불완전한 삶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내용만이 담백하게 제공된다. 책의 띠지는 “애쓰고 애쓰는 인생은 그만! 주님이 아니면 완벽은 불가능하다.”라는 문장과 함께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합니다”라고 독자들에게 저자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책의 뒷면은 ‘불완전해서 너무 애쓰는 당신을 향한 주님의 한마디’라는 내용과 함께 한편의 시를 제공한다. 바로 "완벽은 네 몫이 아니란다"라는 시다. 


"완벽은 네 몫이 아니란다"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빈 공간을 두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간,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자리, 

그 빈자리를 내어놓기 바랍니다.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은혜에 눈을 뜨십시오.


이 책의 저자는 한국교회의 명설교자인 곽선희 목사님과 김지철 목사님을 이어 소망교회 3대 목사로 부임한 김경진 목사님이다. 저자는 소망교회를 부임 하고서 이 책의 말씀으로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고 삶에 적용했다. 모든 설교자의 고민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마음을 어떻게 성도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말 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대표적 지성들이 모여 있는 압구정 소망교회 성도들을 향해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은 인간의 완벽함이 아닌 하나님을 통해 채움 받는 인생 또는 하나님을 통해 완벽을 이뤄가는 삶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망교회가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어떤 사역을 감당했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역대 소망교회 담임목사님들께서 목회와 설교 사역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누구보다 저자 자신에게 적용하였던 설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연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가?”, “내가 혹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시나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p. 6)라는 것이다. 그 때 우리를 찾아오는 불안함은 결코 성도로 바른 마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게 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과연 내 안에 있는 완벽을 이루고자하는 강박관념과 주님 안에서 다뤄져야 하는 마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묵상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저자의 소망교회에서의 목회사역을 응원하며 한국교회에 귀한 모범이 되는 사역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본다. 

l****u 2020.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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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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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십니다. P137사람은 누구나 완벽을 추구한다. 입으로는 '너무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느정도 '완벽중독'에 빠져있다. 그런 우리에게 '불완전한 삶'을 이야기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를 전하는 전하는 저자의 글은 반갑다. 곽선희, 김지철 목사님의 뒤를 이은 소망교회 3대 목사라는 점보다 그가 예배설교학자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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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임하십니다. P137


사람은 누구나 완벽을 추구한다. 입으로는 '너무 딱딱하고 인간미가 없다'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느정도 '완벽중독' 빠져있다. 그런 우리에게 '불완전한 ' 이야기하며 '있는 모습 그대로'

전하는 전하는 저자의 글은 반갑다. 곽선희, 김지철 목사님의 뒤를 이은 소망교회 3 목사라는

점보다 그가 예배설교학자라는 점에서 그가 말하는 '불완전함' 의미가 기대된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께 실망할때가 있다. 이때 중요한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한 마리아와 마르다의 모습처럼 우리의 모습도 분명 갈릴것이다.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동일하게 실망하고 아쉽지만 그래도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마르다와 여전히 절망의 자리에서 낙담하며 머무르는 마리아. 둘의 모습에서 세상과

님과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방황하는 우리의 현실을 본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어려움은

자에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특별히 가족의 죽음은 상실감과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데

이때 우리의 시선이 중요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엇을 보며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혼자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래 역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르다는 절망의 순간 주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금

희망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필요하다. 바라보는 만큼 꿈꿀 있고 꿈꾸는 만큼 이룰수

있다.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에 집중하느냐는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저자는 우리의 무분별하고 무지한 '성령받기' 대해 경고하며 '성령 임재의 다양성' 대해 이야기 한다.

성령은 선물이다. 그런데 선물을 자신이 받고 싶은 것으로 받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성령의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려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만으로 제한하려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다른 육체로, 다른 속성으로 만드셨기에 어떤이는 극적이고 열광적인 체험을 통해

성령을 허락하시기도 하지만 어떤이에게는 조용하고 잔잔하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을 경험하게

하신다. 어느것이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성령을 받아 들일

있도록 인도하신다. 


성경은 성령 임재의 다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마가복음에서의 성령 임재는 예수님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한 음성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고(1:9-10),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며 소리치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으로 나타낸다.( 2-3) 곳에서는 '증언'으로 곳에서는

'들음'으로 성령 임재가 나타난다. 들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 사람들이 있다. 바울이 그러했고,

어거스틴이 그러했고, 마틴 루터가 그러했다. 그들에게 성령의 임재는 들음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광야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다. 광야에서 우리는 배고프고, 지치고, 힘이 빠져있다.

그리고 이상 자신의 능력을 의지할 없다고 선언하며 주를 바라 , 바로 그때 함께하시며 일하시는

성령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 성령이 계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강력한 능력이나, 강력한 소리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가의 다닥방에서만, 예배 현장에서만, 뜨거운 찬양 가운데만 임재하는 성령이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자리에, 사탄이 우리를

넘어 뜨리려고 하는 그곳에도 성령이 함께 계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일하시는

그리고 함께하시는 분을 보아야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완전 수는 없다. 당대 의인이었던 노아(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의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6:9) 역시 그랬다. 세상을 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모든 인류가 죽어도

살아 남아야 사람으로 하나님이 의해 선택 노아. 그는 당대에 하나님의 마음에 만큼 경건한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기대에 맞게 사람들이 조롱하는데도 불구하고 산에서 방주를 그것도 무려

120여년 동안 만들었을 만큼 신실한 인물이었다. 그런 노아가 홍수 이후 성경에 드러나는 모습은

'노아는 농사를 시작했고 어느날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는 하체를 드러낸채 잠이 들었다' 이야기 뿐이다.

성경은 노아와 같은 위대한 인물, 의인이며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자 당대의 완전한 자였던 노아에게도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인간은 여전히 완전할 없는 존재이고 실수하는 존재이다.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공동체도 없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언젠가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만다.

실수 하는 인간, 허물 많은 인간, 속에 빠져 있는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내탓이요'하면서 상대방을 가르키는 오만함이 아니라 눈물로 마음으로 무릎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만약 우리가 모두 완전한 사람들이라면 예수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의 추하고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덮는 구원의 역사를 감당하셨다. 분은 우리의 수치를 덮어 주시며 여전히 우리에게로 향하신다.

 

책은 '완벽'이라는 허상을 쫓느라 심신이 모두 지쳐있는 우리 청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향했던 시선이

주님에게로 집중되는 삶을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a*****y 2020.01.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