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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사회과학이 아닌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내가 왜 자연과학을 택했는지는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단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문과 과목에 더 흥미가 있었고 좋아했는데 왜 다른 선택을 했는지 가끔 생각이 나서 기억을 더듬어 볼 뿐이다. 대학 때는 당시 학교를 다닌 대부분의 학생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었다. 그렇게 형성된 나의 독서습관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업무와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딱히 독서습관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90년대 초반 중국관련 업무를 하면서 중국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나의 독서습관은 바뀌었다. 소위 인문학에 대한 책들, 그 중에서도 역사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여전히 한국사와 동양사 그리고 문명사에 머물러있다. 서구의 역사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읽어보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흥미에 따라 읽을 뿐이다. 요즘은 그들의 역사도 체계적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들 사고의 근원이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책들을 먼저 읽고 있다. 그러던 중 이 책 [역사의 역사]를 읽게 되었다. 저자인 유시민의 책은 대부분 읽었기에 그의 생각이나 글쓰기 방법 등은 이미 익숙했고, 그의 생각을 빌어 역사서에 대한 입문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읽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서양의 역사가 16명이 쓴 역사서 18권을 다루고 있는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동양의 역사서이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는 우리의 역사를 다루었고,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역사, 그리고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은 이슬람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우리의 역사서는 모두 식민지시대에 쓰여졌다. 박은식은 조선의 망국과 민족해방투쟁의 아프고 고단했던 과정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그는 망국의 역사가 아니라 광복의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당대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 반해 신채호는 조선의 정신을 살려내기 위해 집요하게 고대사를 파고 들었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조선상고사]는 단군왕검 건국에서 시작하여 백제의 패망에서 끝이 나는 미완의 역사서이다. 정통유물사관을 견지한 식민지 조선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원시시대부터 삼국통일 이전까지의 경제사를 다룬다. 그 시기를 노예제로 규정한 그는 아마 민족해방투쟁의 수단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 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두번째는 서구의 역사서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폰 랑케의 [근세사의 여러시기들에 관하여]와 [강대 세력들 정치,대담,자서전],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그리고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들 중에는 저자와 제목을 알고 있는 책도 있고, 여기서 처음 알게 된 책도 있으며, 이해 여부를 불문하고 읽어 본 책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록 저자의 시각을 빌려서 이지만, 이들 역사서가 어떤 책인지를 알게 되었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도 있지만 그냥 건너뛰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만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이론서이다. 예전에 읽은 책이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서들의 마지막 분류로는 문명사이다. 슈팽글러의 [서구의 몰락],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이에 해당되는 책들이다. 나에게는 서구의 역사서들보다는 이 책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고, 따라서 대부분 읽어본 책들이다. 20세기 들어서 개별민족이나 왕조, 국가가 아닌 문명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등장했고, 토인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으로 문명사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역사와 과학이 융합되어 우리에게 알려진 문명사가 아닌 인류, 그 자체의 역사를 다룬 문명사가 쓰여진다. [총,균,쇠]와 [사피엔스]에서 다이아몬드와 하라리는 문명 발전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낸 근본원인은 환경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기존의 서구학자들이 주장하는 문명의 해석을 반박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가 왜 역사서를 읽어야 하고, 또 역사서를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말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저자는 역사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이렇게 말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231쪽) ‘역사란 오늘을 사는 역사가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235쪽)
또한 저자는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데 있음’ (17쪽)을 절감했다며, 역사의 역사란 ‘인간과 사회의 과거에 대해 문자 텍스트로 서술하는 내용과 방법이 변화해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 (15쪽)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 [역사의 역사]에서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를, 역사이론서가 아니라 역사서를 다루었다고 한다. 나 역시 역사이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었기에 이 책을 읽었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를 이해하고 싶어서가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51쪽)
그러나 우리가 남의 역사서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는 사실을 쓴 이야기이고 언어로 재현한 과거인데, 남의 언어로 재현한 남의 과거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하고 흥미를 느끼려면 그 책이 담고 있는 기초정보를 알아야 한다.’ (51쪽)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역사나 동양고전은 쉽게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지만 서구의 역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가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서구의 역사서들을 읽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역사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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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행적이 문자로 기록된 이래로 현재까지 수많은 역사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역사로 다뤄지는 부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들이 실험과 분석을 통하여 발견되는 새로운 영역의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의 사실이라는 점에서 그토록 다양한 책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왜 동일한 사건과 시대, 인물이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기술되고 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역사서의 내용을 일차원적으로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담긴 다양한 함의(含意)를 짚어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는 바로 그러한 부분들을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부터 최근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저서를 통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역사를 공부하는 하나의 방법을 마주하게 된다. [역사의 역사]라는 제목을 접하면서 다소 광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이 [역사 서술의 역사]임을 알게 된다면 저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미 인문학의 고전에 반열에 올라 있는 역사서는 물론이고 현재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서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 서술의 시간적 흐름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시민 작가는 역사에 대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서와 그를 기록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몇 가지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헤로도토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투키디데스에 대한 내용은 역사 서사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마치 당시의 상황을 실제 옆에서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사실과 허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그의 묘사는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에 반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한 투키디데스의 기술 방법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원인 분석에 치중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연대에 따른 꼼꼼한 기록과 더불어 그리스 내전의 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언뜻 이 둘의 기술에 대한 차이는 사실과 상상이 역사에서 어느 정도 허용이 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결국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각각 페르시아와 그리스라는 세계 전쟁과 그리스 내전이라는 민족 전쟁에 대한 둘의 기록이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게 쓰여져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역사 기술을 통하여 역사 서술의 고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직접 경험한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다양한 사료를 통하여 기술을 하였으며, 투키디데스 역시 자신의 경험에 더하여 다양한 사료와 글들의 비교를 통하여 기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대중에게 역사의 극적인 부분들을 선사하고,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신화와 전설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러한 차이는 현재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큰 것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부분들은 제한된 자료로 인하여 당시 역사가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고충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과 사실의 잣대를 그 당시의 역사에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사마천의 [사기]는 축복을 받았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이내 공감하게 된다. 비운의 역사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관직에 있었다는 점과 고대 그리스와는 달리 풍부한 사료와 기록이 있었기에 그를 바탕으로 [사기]를 기술할 수 있었다는 점은 왜 [사기]가 역사서로서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기]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사마천이라는 인물의 관점과 생각이 반영된 서사라는 부분이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기반한 기록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대한 해석을 추가한 부분이라든지 [화식열전]과 같이 자신의 관점과 기준에 따른 인물들의 이야기의 분류는 역사 서적이 그저 사실에 대한 기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서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관점과 방향성에 따라 달리 기술되는 역사 서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인물과 책은 바로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이다. 이슬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이븐 할둔과 그의 저서에 대한 설명은 새로운 지식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가 1300년대에 활동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술 방법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인류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전의 기술 방법과는 달리 빅 히스토리의 개념으로서 인류사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보편적인 원칙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물론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편적인 원칙을 찾기 위한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그러한 보편적인 원칙을 찾아내기 위하여 다방면에 대한 그의 기술은 거꾸로 당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다양한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역사의 역사]는 첫 장에서도 잠깐 언급한 사실과 상상력의 경계에 대한 부분을 랑케와 에드워드 H. 카의 저서와 행적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랑케의 필법은 말 그대로 사실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기술 방법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역사가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통하는 부분이지만, 그의 역사 기술이 철저히 문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 서적이 단순히 사실의 나열 및 정리에 그친다는 부정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 또한 그가 각국을 방문하여 얻은 문헌 역시 승자의 기록과 같이 편향된 조건에 의하여 보존된 자료이기에 문헌이 반드시 객관적이라고도 볼 수 없다는 점은 랑케 필법의 한계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바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하여 비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에드워드 H. 카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면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기획한 의도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중략) 역사가와 사실은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다. 역사가는 끊임없이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 내며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 낸다. 어느 쪽도 우위를 가질 수 없다. 이 상호작용은 현재와 과거의 상호 관계도 포함된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중략)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 p. 235 中에서 :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 -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 부분의 인용을 통하여 다음의 사실을 도출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역사 서술에 대한 설명을 압축하여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 주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중략) 역사란 오늘을 사는 역사가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 p. 235 中에서 - 저자는 역사가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역사를 객관적인 사실, 분석된 사실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이야기'라는 표현은 역사를 서술하는 이의 개입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사마천 또는 투키디데스가 독립운동 시기의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기술한다면이라는 가정이 실제 박은식과 신채호의 역사 서술로 이어진다라는 부분은 역사 서술 당시의 상황이 서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시대에 그들과 달리 식민사관이 등장하였다는 점은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리 역사가 서술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헌팅턴이나 토인비와 같이 특정 국가나 시대가 아닌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이라든지 과거의 역사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하여 논하는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도 기술의 관점에 따라 역사에 대한 다양한 서술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역사의 역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와는 다르다. 보통 역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과 개선되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역사 서술이 시간에 따른 발전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른 다양한 형태로 기술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풍부한 자료가 존재하는 현대에 쓰여진 역사 서적이 [사기], [역사]와 같은 고대의 역사 서적보다 우수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그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의 역사]는 역사를 서술한 인물이나 관점, 방법에 대한 우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징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적 흐름이나 상황을 거꾸로 유추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책의 내용들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 표현되는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함의를 파악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역사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록하는 순간 쓰는 사람의 입장이 배제되고 정확히 사실만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다라는 '술이부작 [述而不作]'이 그 의미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겸양의 표현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인간이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역사]를 읽음으로써 역사 관련 서적을 달리 바라보게 된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의미와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찾는 과정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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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시민 책을 거의 모든 구입해서 읽은 사람이다. 이번 신간도 역사교양서라서 구입해서 읽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그가 출여한 썰전을 한주도 빠지지 않고 시청했고 알쓸신잡 시즌 1.2도 다 챙겨 봤던 팬이다. 그가 민주 진보 진영에서 최고의 논객이라고 생각하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한국 젊은이들과 민주진영에 적잖은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번 책에는 좀 쓴소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게 다 유시민이 좀더 좋은 책을 쓰기를 바라는 애독자에 입장에서 글을 남긴다. 유시민답게 이번 책도 간단 명료하게 역사서에 대한 나름의 배경지식과 본인 주장을 곁들여서 책을 완성한 느낌이고 일반인들이면 그저 이름만 듣고 지나쳤을 것 같은 유명 동서양 고전 역사서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어서 역사에 별 관심이 없거나 관심 있지만 뭔가 가이드와 배경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충분이 역사서를 읽고 싶을수 있게 만든 동기를 부여할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유시민 본인도 의도한 느낌이고 하지만 나름 애독자라서 이번 유시민 책에 아쉬운 점은 카 이후에 역사서와 역사이론서에 대한 소개가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현대 역사서에 지대한 영향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아날학파 역사서와 이론서에 대한 소개가 통째로 빠진점이 아쉽고 대표적으로 브로델 정도는 충분히 소개할만한데 읽지 않은건지 아니면 취향이 아니라서 뺸건지 몰라도 카 보다 더 서구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아날학파 거두인 브로델 언급을 한번도 안한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가 지금 브로델 대표작인 지중해 책도 3권이나 번역이 되있고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목에 책은 좌파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인데 언급조차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역사에 조금만 관심 있으면 지나치기 어려운 역사서인데 이부분을 통쨰로 스킵한 이유를 좀 듣고 싶다. 현대 역사철학에 또한 엄청난 영향을 미친 푸코의 역사철학적 방법이나 이론 광기의 역사같은 책은 서양 뿐만 아니라 한국 지식담론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이 담론이라는 단어 조차도 푸코의 계보학적인 역사철학과 사회철학에서 탄생한 단어인데 카 이후에 구조조의와 후기 구조주의 역사서와 이론서가 통쨰로 누락된게 너무나 아쉬웠다. 또한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도 언급 안된게 이상했고 이책은 현대 역사학계에 큰 영향력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인데 단 한줄도 언급이 없어서 이부분에 대한 유시민의 학습과 공부가 안된게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역사서술에 대한 발생사를 르포 형식으로 탐색하겠다는 유시민의 의도와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은 느낌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요한 역사서에 대한 서술을 논하고 싶었으면 카 이후에 프랑스 아날학파와 구조주의적 역사서와 이론서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 했고 미시사나 생활사 페미니즘과 생태학 그리고 민중사 같은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대한 논쟁과 개념도 양이 적다더라도 소개하고 넘어 갔어야 했다. 현대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서가 빠진 느낌 또 생활사의 거두인 필립 아리에스 책도 소개 조차 없는것도 너무나 이상했다. 카와 사마천 사기를 너무나 좋아하는것 알겠는데 이왕 이렇게 단행본까지 써서 동서양 역사서에 대한 역사서술을 시대적으로 고찰해 보고 싶었으면 양이 좀 늘어나더라도 꼼꼼하게 중요한 역사서와 이론서는 소개했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론 책이 빠진거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책이 현대 역사철학과 역사서에 끼친 영향은 카만큼이나 큰데 유시민 본인이 너무나 카에만 빠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카 이후에 역사 담론에 대한 설명이 통쨰로 빠진 느낌이다. 빅히스토리 소개도 너무나 적은 느낌이고. 다음에 개정 증보판이나 후속작으로 낼 기회가 있으면 카 이후에 20세기 역사서와 이론서에 대한 소개도 좀 넣어줬으면 한다. 토인비 랑케같은 자료도 많은 책들은 소개하면서 브로델과 월러스틴 아리에스를 그냥 지나친거는 너무나 이해가 안간다. 에릭 홉스봄 책도 소개할만 했고. 개정증보판 내서 좀더 내실을 다졌으면 좋겠다. 조금만 역사에 관심 있고 공부한 전공자들이 보면은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에 소개된 책들이 정말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서에 대한 변화의 전부라고 볼수도 있어서 자칫 편향되고 균형감을 상실한 선입견을 가질 우려도 있다. 카 이후에 민중사, 여성주의, 생태학,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던 담론 등등 이거 전부 지나치고 갑자기 총균쇠와 사피엔스로 마무리 짓는거 너무 문제가 많다고 느껴진다. 유시민을 아껴서 이런 글까지 쓰는데 다음에 개정증보판 내서 이런 부실함을 좀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개된 토인비 책이 10권이 넘는데 사기도 방대한 책이고 근데 그것보다 단행본이 적은 브로델과 월러스틴 푸코책은 그냥 넘어가는게 이해가 안간다. 본인 취향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역사서 위주로 소개하지 말고 정말 역사학계에 중요하고 영향을 많이준 책들 위주로 균형감 있게 소개 했어야 했다. 개정증보판 꼭 내주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나의 한국 현대사나 국가란 무엇인가는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역사의 역사는 뭔가 부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역사서술에 대한 역사라는 거창한 이름 떄문에 더더욱 그런 느낌. 유시민은 현재 제일 잘나가는 잘 팔리는 사회인문교양서 저자가 되었다. 이왕 이런 교양서를 쓸꺼면 한번 제대로 공부해서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좀 분량이 늘더라도 잘 써줬으면 좋겠다. 그냥 잠깐 책 많이 팔고 끝낼 생각 아니면 다음에 꼭 증보판을 내주길 바란다. 젊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이 역사교양서를 읽고 좀더 다양하고 균형잡힌 시각과 동기를 부여 받을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책을 써주기를 부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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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책 자주 구매하는 사람입니다 전에도 이런 상담과 건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딱 그때 뿐인거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번더 남깁니다 배송할 때 제발 모서리 찍힘없게 포장 좀 신경 써 주세요 사진 보면 아시겠지만 표지 좀 보세요 편 게 저겁니다 표지 뿐 아니라 책의 3분의 1 정도도 조금씩 다 구부러졌네요,, 일일이 펴다가 화딱지나서 리뷰 남깁니다 이게 대체 뭐냐구요???!! 양장도 아니고 따로 비닐포장 돼 있는 것도 아닌데 박스에 책 넣고 막대 에어캡? 그거 3개짜리 하나 넣고 끝.. 그렇게 포장하면 100프로 모서리 다 찌그러져서 옵니다 책 이런 상태로 배송 받으면 여기서 또 구매하고 싶겠습니까??? 내일 반품 접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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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의 역사는 자주 궁금해했지만 세계의 역사서는 제대로 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최근 인류의 역사를 다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큰 인기를 끌었고, 나 또한 읽어야 할 작품 목록에 올려두기도 했었다.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미루어 둔 상태이지만 말이다. 인류의 역사든 동양의 역사, 혹은 세계의 역사를 다룬 책들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유시민의 역사 르포르타주가 궁금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라면 좀더 쉽게 역사를 말할 것 같았으므로.
이 책은 역사를 말한 역사가들의 역사서를 말한 글이었다. 이름만 겨우 알고 있었던 역사가들의 작품과 그 면면을 살펴보는 일은 분명 의미있는 독서였다.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한 곳에만 치우친 나의 독서 이력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독서였달까.
유시민은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의 투키디데스부터 동양의 역사가 사마천, 그리고 최초의 인류사를 쓴 이븐 할둔, 타고난 역사가 랑케, 마르크스, 조선의 역사가인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에드워드 H. 카의 역사 이론과 문명의 역사를 말한 토인비, 슈펭글러, 헌팅턴 그리고 역사와 과학을 통합한 다이아몬드와 하라리에 대하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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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역사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름만 겨우 알고 있는 역사가들의 책과 그들이 논한 역사적인 사실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다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에 다가갈 수 있다. 읽지 않은 것 보다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알 수 있는 시점이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을 선택해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 직접 체험한 전쟁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사건이 달리 있겠는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서술 대상의 차이가 아니라 역사의 대사건을 서술하면서 취한 두 역사가의 태도다. (39페이지)
위 발췌글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를 비교하며 말한 문장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과 철학의 차이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바라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을 말했다.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헤로도토스는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했으며, 투키디데스는 그리스 세계의 일원으로서 세계사가 아닌 그리스 내전을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즉 믿을만한 사료를 적극 활용한 헤로도토스와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의 목격담과 전언을 비교 검토해 역사를 서술했따는 사실이 중요하다.
역사가는 사료를 통해 수집한 사실을 전부 기술하지 않으며, 아는 사실을 다 기술한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가는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중심으로 의미있다고 여기는 사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137페이지)
더불어 저자는 역사가는 저마다 다른 기준에 따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을 선택하며 같은 사실로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다. 결국 역사를 쓰는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이 역사 서술의 다양한 요인을 좌우한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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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다. 달리 말하면 역사는 문자 텍스트로 재구성한 과거 이야기다. 언어는 말과 글로 이루어지며,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먼저 말을 했다. 말에 담은 과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지 못하며 압축, 누락, 과장, 왜곡, 각색을 거쳐 입으로 전해진다. (139페이지)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사실을 가지지 못하면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존재가 된다. 역사가를 만나지 못하면 사실은 생명도 의미도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의 사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236페이지, 『역사란 무엇인가』 50쪽)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미래를 위해서이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숱한 역사학자들과 역사가들이 말하고자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서양의 역사가들의 저서 말고도 사마천의 『사기』를 가리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한 권만 뽑는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강력한 후보라고 평했다. 또한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당 태종 이세민을 물리친 안시성의 위치를 지금의 평안남도 안주 근처라고 서술한 것것과 달리, 민족주의자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에서 안시성이 압록강 너무 만리장성 바깥의 랴오허강 근처에 있었다고 보았다고 했다. 결국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역사 서술로 달라진다는 의미겠다.
역사가들이 왜 역사를 썼는지, 무엇의 역사를 서술했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했는지에 대한 유시민 만의 통찰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또한 유시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 다른 저자가 다른 방법으로 역사서들의 역사를 말했다면 우리 또한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이다. 역사란 결국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 저자의 마음이 읽히는 부분이다. 우리는 오늘도 역사를 쓰고 있다. 다만 역사서에 나올 만큼 중요한 인물이 아니기에 우리의 존재가 알려지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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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평화를 단박에 깨뜨린 '임진왜란'은 자칫 조선을 멸망시키고 일본의 지배를 받거나 엄청난 피해로 인해서 '망국의 지름길'을 열어버리는 일이 될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의 승리'로 끝맺긴 했으나, 조선이 다시 부흥하지 못하고 300여 년간 골골 대다가 끝내 일제에게 '망국'을 당하고 말았다.
여말선초 시절, '왜구'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을 때는 최영, 이성계, 최무선 등의 걸출한 인물이 있어서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았다. 비록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긴 하였으나 '역성혁명'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인 '교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다 조선 개국초기에는 '사대교린 정책'을 내세워서 여진과 왜는 쳐부수기보다는 잘 타일러서 교화시키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었다. 그러다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본때를 보여주며 북쪽으로 '4군6진'을 개척했으며, 남쪽으로는 '대마도 정벌'을 단행하여 조선의 국력을 만방에 떨쳤었다. 이렇게 강력했던 조선이 200년 뒤에는 '국방력'이 약해져서 왜구의 침략(삼포왜란 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끝내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에 의해 대대적인 침공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그리고 이 책 <징비록>은 그 악몽같았던 7년간의 기록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다시는 '그날'의 비극을 다시 맞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시작에는 '신숙주의 당부'로 글이 쓰여 있다. 신숙주는 세종 시절에는 '집현전 학사'로 이름을 날렸고 '계유정난' 이후에는 세조로부터 훈구공신 대우를 받았고, 성종 때 죽은 인물이다. 신숙주는 '외교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신하였으며, 특히 조선의 태평성대를 위해서는 '일본'을 잘 감시하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주변국의 정세를 잘 파악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런데도 조선은 일본에 대한 감시를 소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악수를 두고 만다.
왜 그랬을까? 조선초기에 조선을 둘러싼 주변국들이 약한 덕분이었다. 물론 세종 때까지는 '무력시위'를 벌이고 주변국을 상대로 승리할 정도로 국방력을 자랑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평화가 200년 간 이어지자 해이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절의 '군역'은 있으나마나할 정도로 해이해졌으며, 그나마도 '군포 1필'을 내면 1년 간 군역을 면제해주는 일까지 횡행하였던 것이다. 그나마 변방의 군역을 빼낼 수 없어서 반드시 군역을 치루도록 했지만, 그나마도 '군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이들만 차출되어 차디찬 북방으로 군역을 보내니 '군의 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어졌을 뿐이다.
이처럼 '국방력 약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삼포왜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벌어진 왜구들의 대대적인 습격이었는데, 이때 왜구들이 내륙 깊숙한 충청도까지 쳐들어올 때까지 이를 막아낼 '조선군'이 없었으니 정말 형편 없는 국방력이었던 셈이다. 이 당시에 '군사체제'가 '진관체제'였는데, 이는 '지역방어'에는 유리했으나 소규모로 각기 따로 움직였기에 '대병력'으로 쳐들어오는 왜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쳐들어오는 적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조선군'도 군대를 집결시켜 대규모로 막아내는 방어책을 쓰는데, 이것이 '제승방략제'다. 어찌어찌 이 군사제도로 '삼포왜란'을 막아내긴 했는데, 그 뒤에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아서 '제승방략제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지는 못했다. 왜냐면 '대규모 군사훈련'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해서 또다시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만 것이다. 이즈음에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했으니, 시행이 되었으면 '임진왜란'의 초기에 그토록 쉽사리 밀리지는 않았겠지만,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조선의 행정시스템이 먼저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암튼, 이처럼 해이해진 조선을 일본이 대대적으로 침공하게 된다. 명분은 '정명가도(명나라를 치러 가니 조선은 길을 열고 합세하여 같이 명을 치자)'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원인으로는 오랫동안 일본의 조공을 금지한 명나라 탓이 으뜸이다. 일본은 명나라와의 '조공무역'이 막혀버리자 경제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숨통을 틔운 나라가 '조선'이건만, 조선도 왜구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며 일본과의 무역에 빗장을 걸기 일쑤였다. 그러다 '포르투갈 상인'이 찾아오자 새로운 바닷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오랜 전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기'인 조총도 이때 들어오게 된다.
암튼, 일본은 전국을 통일하고 남아도는 '군사세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일을 계획하기 된다. '토사구팽'으로도 유명한 이 전략은 통일을 이루기까지 '무장의 힘'을 빌리지만, 통일을 이루고 평화가 찾아오면 '무장의 힘'은 새로운 위협이 되기 때문에 '없애야 할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한신'이 그랬고, 송나라 조광윤을 도와 송을 건국한 개국공신들은 칼을 버리고 '사대부'가 되어야만 했다. 풍신수길도 마땅히 자신을 도와 전국통일을 이룬 '사무라이들의 힘'을 분산시켜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이웃나라를 침공할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이때 만약 신숙주의 유언대로 '일본'과 관계개선을 끊임없이 하며, 감시도 철저히 했었더라면,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진작에 간파하고 대비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테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허나 조선은 관계개선도 하지 못했고, 감시도 하지 않았고, 대비도 하지 못했으며, 전쟁도 막지 못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통신사 파견'도 끝내 '동인과 서인의 갈등(당파)'으로 인해 아무런 소득도 없이 흐지부지 결론을 내지 못했던 셈이다. 그나마 서애 류성룡만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감지하고,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해 각각 바다와 육지를 맡게 되니 '조선'으로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임진년(1592년 4월)'에 전쟁은 발발했고,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한 달 남짓한 시간만에 한양을 점령해버리는 기염을 토하고 만다. 도대체 조선군은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류성룡의 지적을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일본군이 '조총'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와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하지만, 조선에는 더 강력한 '화포'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철저한 대비만 하고 있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의 모습에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의 강력함'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수비하는 처지'에서는 성을 쌓고 버티거나 길목을 지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그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많은 수의 공격을 받아도 결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그랬고, 양만춘의 안시성전투가 그랬으며, 김시민의 진주성전투가 잘 보여준다. 그러니 조선이 국방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대비를 철저히 했다면 어떤 공격이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임진왜란'의 실체였던 셈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대비'를 못한 결과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잔인했으며 끔찍했는지 처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병자호란'을 막아내는 결과를 낳지 못했다.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한 까닭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교훈'과 함께 '경고'의 의미로 써내려갔는데도, '임진왜란'의 책임을 지는 이들이 아무도 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선조의 행적'과 함께 '지배층의 무능'을 낱낱이 보여주는 책이라며 감추기 급급했다. 훗날 조선이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징비록>을 더 많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금지 목록'에 올려 다른 나라에 빼돌리지 못하게 막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이 책을 '교과서' 삼지 않고 끝내 조선이 멸망하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지도 한참 지난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이순신'이 새삼 주목받는 계기 덕분이었고, 얼토당토 않은 '원균'이 충신(?)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겨우 관심을 받게 된 셈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201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징비록>의 가치를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제라도 느끼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이 책이 <징비록>의 전부는 아니다. <징비록>에 대한 연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지라도 우리 독자들이 즐겨보는 책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는 이때가 바로 <징비록>을 읽고 '디딤돌'로 삼아야 할 때다.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허투루 날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저력은 바로 '실패'를 거울 삼아 '성공'을 다시 쓰는 역사를 통해서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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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류성룡의 「징비록」. 이렇게 얇은 책인데, 이 책을 읽기까지 참으로 오래도 걸렸다. 누가 썼는지도 알고 그 내용도 잘 알고, 동명의 드라마도 본방사수 할 정도로 봤던 나였다. 하지만 책 만큼은 못읽겠다 싶었다. 아니, 동명의 드라마를 보기 전 까지는 읽어볼까 싶기도 했는데, 동명의 드라마를 보고 나서 더욱 읽을 자신이 없었다. 화면으로 봐도 그렇게 답답하고 울분이 터지는데, 문자로, 책으로 읽으면 정말 더욱 답답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는 내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고, 왜 이럴 수 밖에 없었는지 참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읽는 내내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또 도망가고. 저 밑 말단 병사부터 시작해서 중간 장수들, 하다 못해 왕까지 도망간다. 전쟁 시작 전부터 정세파악 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전쟁 시작 후에도 그랬고, 끝날 때 까지도 그랬다. 정말 진짜로... 이순신 장군님 아니었으면 분노해서 책을 집어던질 뻔. 오죽하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참고 넘어 가다가 도저히 이런 이런건 안되겠다 싶어서 포스트잇을 붙인게 저 정도.
-1586년, 일본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자기 나라 임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다.
일설에 따르면 히데요시는 본래 중국인이라고 한다. 일본까지 흘러 들어간 그는 나무장수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중략) 큰 공을 세워 대관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권력을 잡은 그가 결국 겐지 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중략) 겐지 왕국이 망한 지 10년, 그동안 여러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드나들었지만 통제를 워낙 엄격히 한 까닭에 그들 사정은 전해지지 않았고, 당연히 우리 조정에서는 일본의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야스히로를 죽인 히데요시는 다시 소 요시토시를 사신으로 보내고 우리에게도 사신을 보낼 것을 요청했다.
1590년 3월, 드디어 우리 사신 일행이 요시토시와 함께 일본을 향해 떠났다. 요시토시는 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공작 두 마리와 조총, 창, 칼 등을 임금께 바쳤다. 임금께서는 공작새는 날려보내라 하시고, 조총은 군기시에 보관토록 하셨다. 우리나라에 조총이 들어오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임진왜란을 이야기 하면 보통 사람들은 당시 일본의 사신으로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김성일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허위보고 한게 문제다”라고. 조금 공부를 한 사람들이라면 김성일이 아닌 선조를 탓한다. “김성일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황윤길은 ‘전쟁은 일어날거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냐고. 선택은 선조가 한것이 아니냐고.” 솔직히 말하면 난 후자다. 다만 그 이유는 조금 더 있다.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부터, 이미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 같다는 이야기가 조선의 조정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꼈던 율곡 이이는 1583년에 대량의 군사를 키워야 한다(십만양병설)고 했고, 이 책의 저자 서애 류성룡은 환란을 대비해 능력있는 장수를 선발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대마도 조차도, 전쟁이 일어거라며 미리 알려주었으며,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류큐에서도 1591년에 사신을 보내서 일본이 침략할 것 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선택을 한 것이다.
자, 그리고 1590년, 징비록에서 언급한 대로 대마도에서 온 소 요시토시는 조선에 조총 두 자루를 건네주고 간다.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무기고에 처박고 끝냈다. 서애가 말하기로는 조총이 들어온게 이 때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그건 틀렸다. 징비록을 덮고, 잠시 조선왕조실록을 들쳐보자.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21일 갑인 1번째기사 / 왜인 평장친이 가지고 온 총통 화약이 뛰어나니 관직 제수를 비변사가 아뢰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22일 을묘 3번째기사 / 총통 주조에 버려진 종을 사용할 것을 간원이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23일 병진 2번째기사 / 총통 주조에 큰 종을 사용할 것을 비변사가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25일 무오 1번째기사 / 총통 주조에 큰 종을 사용할 것을 상차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6월 2일 을축 1번째기사 / 총통을 주조하기 위해 큰 종을 사용할 것을 정원이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6월 14일 정축 1번째기사 / 선전관 박세현이 전라도에서의 왜변의 상황을 아뢰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6월 17일 경진 1번째기사 / 전라좌도 방어사 남치근이 본도 사찰의 종으로 총통을 만들자고 청하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6월 17일 경진 2번째기사 / 오래 된 종은 신령스러우므로 총통 주조에 사용할 수 없다고 정원에 전교하다
선조 바로 위의 왕이 바로 명종이다. 명종은 후사가 없었기에 왕실의 왕자군들을 불러 모았고 그 유명한 ‘익선관’ 스토리의 주인공인 하성군이 왕이되니 그게 바로 선조다. 명종 10년 즉 1555년에 왜인 평창진이 총통을 들고왔다.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40년 전에 왜인 평창진이 매우 뛰어난 총통을 들고 조선에 온 것이다. 그가 들어곤 총통이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조총’이었다. 서애는 1590년에 소 요시토시가 들고온 조총이 조선에 들어온 처음이라고 하였지만, 이미 임진왜란 발발 약 40년 전에 조총은 조선에 있었다.
당시 비변사에서는 왜인 평창진이 들고 온 총통, 즉 조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버려진 큰 종이 있으니 그것을 녹여 총으로 만들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당시 왕 명종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남도지방은 잦은 왜변, 왜인들의 침략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조총 만드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유교의 나라였지만, 명종의 모친인 문정왕후가 불교에 심취해 있었기에, 절에 있었던 큰 종을 녹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나라였다. 조선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이런 함몰된 조선에서, 딱 이 시기에 정세파악에 뛰어난 인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인재들이 이 책의 저자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인거다. 선조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만, 서애를 비롯한 사람들은 일본을 경계하기 위해 여기저기 방비를 하고자 했다. 그런데.
-1591년 봄, 일본에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 일행이 야나가와 시게노부, 겐소 등과 함께 돌아왔다.
그때부터 우리 조정에서는 일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국경 사정에 밝은 인물을 뽑아 남부 지방 삼도와 방어를 맡도록 했는데 (중략) 무기를 준비하고 성과 해자를 축조하도록 했다. 그 가운데서도 경상도에는 특히 많은 성을 쌓고 영천·청도·삼가·대구·성주·부산·동래·진주·안동·상주 등지에는 병영까지 신축하거나 고치도록 했다.
당시 나라는 평화로웠다. 조정과 백성 모두가 편안하던 까닭에 노역에 동원된 백성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와 동년배인 전 전적 이로도 내게 글을 보내왔다.
‘이 태평한 시대에 성을 쌓다니 무슨 당치 않은 일이오? 삼가 지방만 보더라도 앞에 정진 나루터가 가로막고 이소. 어떻게 왜적이 그곳을 뛰어넘는단 말이오. 그런데도 무조건 성을 쌓는다고 백성을 괴롭히니 참으로 답답하오’
유래없는 200년 평화는 조선의 윗대가리만 좀먹은게 아니라 저 밑바닥까지 좀 먹고 있었던거다. 그래도 생각있는 관리들이 만약을 대비해 성도 쌓고, 해자도 만드려고 했더니, 전부 보이콧이었다.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한 거라고는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발탁한 정도였다.
1592년 4월 13일, 왜놈들이 부산으로 처들어왔다. 적에 대한 방비도 안되어 있었던,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첨사 정발, 동래부사 송상현은 맞서 싸우다 순절했다. 여기까지다. 그 뒤는 이렇다. 좌수사 박홍은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좌병사 이각은 자기 첩과 함께 도망갔다. 밀양부사 박진도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김해부사 서예원도 도망갔고 초계군수도 도망갔다. 순찰사 김수도 도망갔다. 용궁현감 우복룡이라는 사람은 방어사에 귀속되어 북쪽으로 올라가던 군사들을 붙잡고, 반란군이라고 칭하며 몰살시켰다. 도망간 순찰사 김수는 이 우복룡이야 말로 공을 세웠다며 조정에 보고하여, 우복룡은 정3품 자리에 올랐다. 왜놈들이 처들어왔는데 나라꼴이 이랬다. 도망가거나, 팀킬하거나.
-상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순변사 이일은 충주로 도망갔다.
이일은 상주에 하루를 머무르면서 창고의 곡식을 꺼내 백성들을 위로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백 명으로 불어났따. 순식간에 대오를 갖춘 군대가 조직되었다. 그렇지만 모두 전투 경험이 없는 초보자에 불과했다. 그때 적군은 이미 선산에 이르렀다. 저녁 무렵 개령 사람 하나가 와서 적들이 코 앞에 왔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지 못한 이일이 그를 목 베려 했다. 민심을 현혹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잠시 동안만 나를 가둬 두고 기다려 보십시오. 내일 아침에도 적이 이곳에 오지 않으면 그때 죽이십시오.”
당시 적들은 장천에 머무르고 있엇는데, 그곳은 상주에서 겨우 20리 떨어진 곳이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이일이 개령 사람을 옥에서 끌어내 목을 베고 말았다.
(중략) 잠시 후 몇 사람이 숲속에서 나와 서성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본 병사들은 적이 엿보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으나 아침 일이 머리에 떠올라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중략) 곧이어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따. 10여자루 조총에서 탄환이 불을 뿜는데 맞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미 늦었다고 깨달은 이일은 말머리를 급히 돌려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곧 적이 온다고 보고 한 백성을 민심을 동요 시킨다고 공개처형했다. 같은 날 오후에 왜놈이 엿보는 것을 본 병사들이 있었지만, 본인들도 처형당할까 보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 안되어 왜놈들이 처들어왔다. 적이 온다고 보고한 백성을 처형한 순변사 이일, 그는 꽁지를 내빼고 도망갔다. 심지어는 말도 버리고 의복도 벗어던진 채 알몸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진심으로.. 징비록을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했다. 계속 이런 이야기의 향연이었다. 계속 읽다가는 속병나서 미칠 것 같았다.
왜놈이 파죽지세로 올라오는 길목에는 산새가 험한 조령(문경새재)이 있다. 이 곳에서 진을 쳤더라면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선의 명장 신립 장군은 조령을 포기하고 너른 벌판인 탄금대에서 진을 쳤다. 그리고 앞서 도망간 순변사 이일 처럼 적의 동태를 보고한 병사를 공개처형 시킨다. 그리고 탄금대 전투에서 전멸. 징비록에 따르면 신립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다.
신립장군에 대해서 내 마음속 평가는 아직도 갈팡질팡이다. 몇 달 전 신립장군에 묘소도 갔다왔고, 몇 년 전에는 탄금대도 둘러보고 왔다. 근데 매번 마음이 변한다. 징비록을 읽은 현재는 이런 마음이다. 신립은 본인의 능력에 자만하다가 괴멸했다는 것.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신립이 매복을 포기한 문경새재를 왜놈들은 걱정하며 들어왔다는 점이다. 혹시나 매복이 있을까 정찰병도 보내고 여러번 확인 했는데, 매복한 조선군이 1도 없으니 왜놈들 입장에선 개꿀. 그 덕에 왜놈들은 춤을 추며 문경새재를 통과하고, 충추까지 와서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 장군 부대를 몰살시킨 것이다.
후후...여기까지 읽어도 답답히 미칠지경인데 다음 이야기는 더 답답하다.
4월 30일 새벽, 임금께서 서쪽을 향해 출발하셨다.
그 유명한 선조의 ‘몽진’이다. 그렇게 한양을 지킨다고 뻥카를 날리고서는 짐싸고, 종묘에 있는 지네 선조들 위패 모시고 위로 떠났다. 선조 떠나는 길에 백성들이 나와서 울며 간청했지만, 조선의 왕이라는 자는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다.
왜놈들 입장에서 선조의 도망은 황당하기 그지 없었을 거다. 당시 왜놈들의 전투 방법은 대빵을 사로잡으면 끝이었다. 근데 왠걸? 자기들 딴에는 쉬지도 않고 미친듯이 올라왔는데 조선의 대빵이 없다. 도망갔댄다. 얼마나 황당할지. 물론 도망간 왕을 지켜본 조선의 백성들만큼이었겠냐마는.
선조는 한양에서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개성에서 위로 쭉쭉 평양까지 당도했다. 이 즈음에 임진왜란 전투 사상 첫 조선의 승리가 있었으니, 부원수 신각이 양주에서 왜놈들을 물리친 것이다. 하지만 신각의 상사 김명원이, 신각이 명령에 불복종한다고 보고하였고, 선조는 신각을 죽이라 했다. 그렇게 첫 승리를 따낸 장수를 죽였다. 자신보다 유능한 부하장수를 시기한 김명원이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유능한 장수를 죽인 선조나 휴. 아오 빡이친다.
진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오르고 터질 때 쯤, 그 분노를 가라 앚혀줄 무언가 하나씩 나온다. 이순신과 의병이다.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이끌고 견내량에서 일본군을 대파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 의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전쟁터로 나섰다. 천한 취급을 받던 일개 천민부터 시작하서 글만 읽던 선비, 부처님을 모시던 승려들까지 의병의 계층도 다양했다.
전라도에서는 전 판결사 김천일, 첨지 고경명, 영해부사 최경회, 김덕령 등이 나섰다. 경상도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 전 좌랑 김면, 전 장령 정인홍, 전 한림 김해, 교서정자 유종개, 이대조, 장사진 등이 있다. 충청도에서는 승려 영규, 전 도독관 조헌, 전 청주 목사 김홍민, 이산겸, 박춘무, 조덕공, 조웅, 이봉 등이 있다. 경기도에서는 전 사간 우성전, 전정 정숙하, 최흘, 이노, 이산휘, 남언경, 김탁, 유대진, 이질, 홍계남, 왕옥 등이 있다. 북쪽에서는 금강산의 유정 대사, 묘향산의 서산대사, 평양의 임중량, 길주에 정문부 등이 있다.
여기서 함정이 있다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났던 의병들은 자기들이 지키려 했던 나라의 왕, 선조의 손에 모함받아 대체로 이괄의 난 때 일파로 몰려 사형당하거나 숨어 살았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의 시기질투와 원균의 모함으로 백의종군을 해야했다. 미친듯이 고구마만 먹다가 겨우 사이다 한잔 삼켰는데, 다시 고구마다.
하 ㅋㅋㅋㅋㅋㅋ 진짜 ㅠㅠㅠㅠㅠㅠ 분노가 가라앉다가도 다시 차오른다. 아.. 어떡해야하지? 이 책을 정말 덮어야 할까? 굳이 읽으며 계속 분노해야할까? 읽으면서도 고민했다. 분명히 이 뒤에 이어질 내용도 다 알고,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 지도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는게 망설여졌다. 정말 당대의 살아있는 기록을 읽는 건 너무나 생생해서, 그동안 공부하기 위해 읽은 역사서나 드라마로 접한 그 어떤 것도 「징비록」 만큼 생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목사 김시민에게 대패했던 왜놈들은 정유재란 때 칼을 갈고 왔다. 왜놈들은 애초에 전라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위해, 진주성을 학살하기 쳐들어왔다. 진주성에 있는 생명이란 생명은 다 죽이기 위해 왔고, 실제로 다 죽여버렸다. 그들은 남원성에서도 학살을 이어갔다. 이순신을 모함하고 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죽었다. 남도 땅도 왜군에 먹혔는데, 이순신 장군이 목숨걸고 지켰던 남도 앞 바다까지 왜군에 손에 뺏긴 것이다. 조선은 리더들을 잘 못만나 육군, 해군을 그냥 말아 먹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조선은 그때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이 진도에 돌아왔을 때, 남아있는 배는 10여척이었다. 앞서 말했듯 원균이 미친듯이 말아먹었기 때문에, 여기서 조선의 해군을 부활시킨 다는 건 거의 기적과 다름 없었다. 근데 그 기적을 행했으니 확실히 이순신 장군은 큽... 아 징비록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조선은 정말 휴. 명량에서 왜군을 대파하고, 노량에서 대파했다. 그리고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숨을 거두었다. 그가 죽으며 임진/정유년 7년 전쟁이 끝난 것이다.
조선의 백성 뿐만 아니라, 명나라 장수 진린, 명나라 병사들까지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통곡했다. 해서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을 건립해달라 하였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이순신 장군을 시기질투했던 조선의 왕은 나라를 지키다 죽은 충신의 사당 건립을 거부했다. 그리고 약 1백년이 되어서야 숙종의 명으로 이순신 장군의 사당 현충사가 건립된다.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끝으로 그 내용이 끝난다. 그리고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아닌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일본이나 청나라와는 달리, 조선에서 책이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기에. 징비를 하기 위해 집필한 책이었으나, 징비를 해야할 사람들은 이 책을 서가에 꽁꽁 숨겨두었던 거다.
개인적으로 임진왜란에 관련된 장소를 많이 찾아다녔다. 이순신 장군의 묘소나 사당, 원균의 묘, 신립장군의 묘, 탄금대, 문경새재, 진주성, 행주산성, 남원성, 의병장 김덕령 장군 묘소 등등 정말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도 찾아다녔다. 그 때마다 느낀거라곤 이 두 가지다. 못난 리더 한 명이 나라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그리고 반복되는 아픈 역 사속에서 우리는 징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게 맞는지.
우리는 정말 징비를 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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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역사의 역사
"앞으로 역사서를 읽는다면, 나는 무슨 색깔을 내며 살아왔는가, 라는 고민을 하며 읽어라"하고 방향을 가르쳐 주는 책.
세상에는 많은 역사서가 있다. 역사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역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등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역사서는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쓰여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나름의 기준을 만들어서 '히스토리오그라피'라는 명목으로 정리해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종의 '사학사史學史'인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또 분명하게 '사학사'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무조건 학술적인 의미로 접근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7월에 구입하고. 그때 여름방학에 읽었었다. 그런데 리뷰를 이제야 쓰다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이 방대한 '역사 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를 몇 개의 문단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너무 넘치면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하다고(過猶不及). 요점 정리를 하자면 오히려 이 책의 요약 보고서 형태가 될 것 같은 생각이다. 지레 겁이 나서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이 책은 2018년 올해의 책으로도 뽑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이고. 저자에 대한 신뢰, 인지도와 함께 책의 서술이 재미가 있다는 의미이다. '역사 르포르타주(르포)'에 가까운 보고 문학처럼 역사서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재미와 감동적인 측면에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역사와 역사가, 또는 역사 기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이 책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왜냐면 방대하게 많은 역사서를 마치 스토리를 엮듯이(소설의 구성을 연상시키듯이) '발단-전개-위기-절정'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부터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인류 사회의 변천,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에 대한 지금까지의 역사서 중에서 삼십 여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역사는 기록 문학으로서, 그리고 과학과 문학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창작문학의 범주에 놓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더더욱 인문학과 객관적 과학적인 접근이 곧 기록의 힘이 될 수 있겠다. 저자는 그런 맥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역사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 거리로 읽을 수 있다.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는 어떤 과거의 여정 속에서 오늘날의 모습을 이룩한 것일까." 또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읽을 수도 있다. "어떻게 살아 왔고, 이렇게 살다 보면, 앞으로 이런 저런 모습이 될 것이다?" 라는 예측을 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역사가도 마찬가지 이유로 그 서술 방향을 잡을 것이다. 흥미를 위한 이야기처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과학서처럼. 그 수많은 역사서는 나름의 서술 방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저자가 역사서, 역사가의 서술 방향과 그 이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짚어 준다.
고마운 책이다. 이미 읽었거나 앞으로 읽어야지 하는 역사서의 서술 방향을 설명해 주는 가이드 같은 책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좋은 가이드처럼. 이 책은 그런 가이드 역할을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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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양인이 되고 싶다면 동서양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고전을 읽어야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말에 끌려 『역사』와『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펼쳤다가는 크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두 권 모두 한국인이 읽기에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해력 부족을 자책하거나 어럽게 썼다고 저자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독해가 어려운 것은 낯선 정보가 너무 많아서다. 모르는 정보가 많으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고,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텍스트에 몰입하기어려워진다. - P.51
『역사의 역사』는 총 아홉장으로 성된 역사에 대한 역사 책이다. 그러니까, 역사책들을 읽고 느끼 점, 아쉬운 점, 개선할 점 등을 포함해서 써 놓은 역사책에 대한 요약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역사의 역사』라고 해서 아주 쉽게 써졌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낭패감이 들 수 있다. 쉬운 역사책도 있지만, 어렵기도 한 역사책 여러 권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니. 이렇게 여러 권의 역사책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책은 없을 것이다. 물론, 『역사의 역사』는 전통적인 역사책은 아니므로, 읽는 방식에도 다소의 변화가 필요하겠다. 역사책 읽듯이, 쭈욱 훑어보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역사의 연구』를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나의 방식은, 한 장을 읽고 조금 쉬었다가 또 그 다음 한 장을 보고 그랬다. 물론, 그래서 읽는 데에 며칠은 걸렸지만.
2. 지독해 재미없게 글을 썼던 랑케가 '역사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학문적 업적이지만 다른 하나는 치명적이고 중대한 인식의 오류다. 랑케의 업적은 오류덕분에 빛나며, 오류는 업적 때문에 돋보인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 역사학은 그가 이룬 업적의 토대 위에서 그가 저지를 오류를 극복하면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웠다. 이런 인물을 빠뜨리고 역사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P.127
이미 요약해 놓은 글을 또 다시 요약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 그것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하다는 생각 때문에. 『역사의 역사』에서 다루는 인물들과 그들의 사상, 그들의 역사적 관점은 아마도 현재의 인류에 어느 정도, 또는 대단히 큰, 가치가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역사』는 대단히 큰 가치를 가진다. 이 책을 어렵게 느끼든, 쉽게 느끼든 『역사의 역사』가 주는 가치는 대단히 클 것이다.
카는 역사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역사가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작업하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책을 썼다. 내용을 다 이해하면서도 즐기지는 못해도 저자가 말하고하 하는 바를 파악하기만 하면 된다. - P.222
모든 책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또 그럴 수도 없다. 적어도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 그 책이 주는 가치의 진성성만 느낌으로 알아도 충분하다. 진정성 있게 쓰여진 글이라면, 그 진성성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3. '자연 파괴'는 인간의 관점이 들어간 말이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될 뿐이다. 인간은 지구의 바이러스이며, 도시는 인간이라는 바이러스가 만든 피부병이라는 말이 있다. 지구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지구에 깃들어 산다고 볼 경우 지구에게 인류의 멸종은 다른 종의 멸종과 하등 다를 게 없다. 하라리는 인류 중심의 좁은 시각을 벗어던지고 자연과 다른 모든 생명에게 감정을 이입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존 방식과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보라고 권고하기 위해 다른 사피엔스에게 이처럼 냉담하게 말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토록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으며 어디로 가려하는가? 『사피엔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책이다. - PP.313~314
고백하건대, 나는 인격이 훌륭한 성자가 아니다. 욕심 많고, 조금은 게으르고, 때론 질투심도 생기고, 누군가의 섭섭한 말투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달리지 않는 댓글로 서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기적이까지도 한, 아주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이루어지면, 정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야말로 나를 감출 줄 모르는 인간이기도 하다. 어제 충혈된 한쪽 눈 때문에, 화면을 보기가, 책을 보기가 힘들어, 하루를 온전히 잠으로 날려버린 마음에 속상해하는, 그러면서도 또 아직도 낫지 않은 눈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주 나약한 인간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역사의 역사』를 읽으면서 통찰해낸 나의 본 모습이다.
역사의 역사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를 알면, 시간이 지배하는 망각의 왕국에서 흔적도 없이 사그라질 온갖 덧없는 것들에 예전보다 덜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자신만의 색깔을 살아가려고 격려했다. 내가 배우고 느낀 것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졌기를! - P.320
이런 나의 모습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 내가 느끼는 생각들 그대로 나의 모습이 되어가고, 나의 마음이 되어가고, 나의 인생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역사의 역사』는 그런 내 모습을 온전히 살아가라고, 그것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은연 중에 충고해 준다. 나의 인생이 온전히 역사가 되는 그날, 나는 비로소 나만의『역사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역사엔 무엇인가가 되어 있는 나가 아니라, 무엇인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발견된 나에게 끊임없이 『역사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나도 있을 것만 같다.
날씨가 정말 맑은 오늘 하늘처럼,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인생이, 아름다운 꽃 같이 피어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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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외에 역사책을 읽어본 적이 없고, 이 책에 거론된 역사가들을 이름만 들어만 본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한 권을 겨우 읽었을 뿐이다.)
"나는 역사가 문학이라거나 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훌륭한 역사는 문학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다룬 여사서들을 읽으면서 나는 흥미로운 역사의 사실을 아는 즐거움을 얻었고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귀하게 다가온 것은 저자들이 문장 갈피갈피에 담아 둔 감정이었다. 역사의 사실과 놀리적 해석에 덧입혀 둔 희망, 놀라움, 기쁨, 슬픔, 분노, 원망, 절망감 같은 인간적, 도덕적 감정이었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음을 거듭 절감했다.(16쪽~17쪽)
저자가 느끼는 기쁨을 함께 느낄 수는 없었지만, 저자가 애정하는 역사가와 그의 저서들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미움 받는 역사가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음을...'이라는 글은 이 <역사의 역사>를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하는 문장이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없지만 저자가 말하는 이 감정은 나도 나눠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활자화 된 것, 인쇄화 된 것, 그러니까 책은 모두 진리와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믿었다. 크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물며 역사를 담은 역사서는 모두 진실만을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실은 누가 아는 것일까? 김진명 작가의 소설 <고구려>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다. 고구려 왕들에 대한 지나친 미화에도 거부감을 갖지 않고 읽다가 촛불혁명이 일어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 년 쯤 지나서 대한민국 2000년 대의 시기를 소설 혹은 역사책으로 쓰며 무조건 대통령들을 미화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이 생각이 드는 순간 <고구려> 시리즈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소설도 그런데 역사를 쓰는 역사가의 어깨는 더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부르짖는 랑케라는 역사가도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그의 오류를 탓하며 너무도 미워하는 듯 보이지만 말이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인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 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든 아나키스트든 마르크스주의자든,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이 쓴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다. 그들이 살았던 사회적 환경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같지 않은 데도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212~213쪽)
우리가 역사를 읽든, 문학을 읽든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에 드는 감정말이다. 랑케가 더욱 저자에게 미움 받는 이유는 오류탓도 있지만, 감정을 나누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에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겨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18쪽)
교과서로만 역사를 접해서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언제나 역사는 외워서 시험쳐야 할 것들이었으니까. 다른 블로거분들의 역사 리뷰를 보며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방대한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이 <역사의 역사>는 역사를 더욱 알고 싶고 읽고 싶게 만들었다. 위대한 역사는 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저자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오늘 구입했다. 이 책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