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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은 질문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하면 포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까닭은 영화「변호인」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려「변호인」을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묵직하고 호소력이 묻은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즉,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계란은 바위를 넘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다운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운 삶.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사항’ 이니까요.
사회역학자 김승섭의『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회 곳곳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차별, 혐오, 질병, 가난, 재난, 성소수자라는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듣고 있으면 앞서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사항이었던 사람다운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계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당사항은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답으로 되돌아올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병들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바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수많은 데이터는 사회적 약자가 어렵지 않게 환자가 된다는 근거를 합리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합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적절한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몸이 계속해서 건강에 빨간불을 깜박이며 위험 신호를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멈추지 않고 달기만 하면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 당장의 건강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령,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몸이 아파도 일해야만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바커 가설(Baker's Hypothesis)’에 따르면, 비정규적 근로자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모순이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보통 그 대답으로 적절한 치료를 많이 듣게 됩니다. 가령, 금연을 하면 폐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처방입니다. 물론 이런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폐암의 원인을 오로지 담배에게만 책임을 따지면서 담뱃값을 올려버리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담뱃값을 걱정하면서 금연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연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더 망가질 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탐구합니다. ‘역학(Epidemiology)'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흡연은 폐암의 주요 원인입니다. 하지만 폐암의 원인을 찾아보면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여러 원인이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면, '원인 그물망'의 한가운데에 있는 '거미'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금연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흡연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연제도보다 현실적으로 스트레스가 없어야 금연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사회역학을 전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또한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사회역학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살다보니 더 많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료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 약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질병을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는 사회적으로 단절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라는『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어 나가면서 ‘정의로운 건강’을 생각했습니다. 정의로운 건강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으며 평등해야 합니다. 정의로운 건강은 정의로운 사회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건강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지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폭력 혹은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얼마든지 죽거나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존재가 되어 버리는 현실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만약에 아픔이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궂은비를 맞았습니다. 비록 아픔을 멈출 수 없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아픔이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변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 길이 될 때 정의로운 건강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한발자국 다가가며 공감하는 저자를 보면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변호인’이 우리 눈앞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픔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정의로운 건강을 몸소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함께 하는 세상은 이런저런 제도에서 벗어나 ‘사람이 먼저다’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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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주문할 때는 대강의 책 소개글만 보고 아동학대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잊을만하면 한번씩 튀어나오는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궁금했고, 이 책에서 그 대답을 찾고 싶었다. 내가 예상한 것은 대략 어떤 사회집단에서, 어떤 특성의 부모가, 어떠한 심리적 또는 경제적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논의를 보여준다. 학대를 일으키는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부모,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한 명의 독립된 인간이기 보다는 자신에게 종속된 소유물로 바라보고, 그렇기에 타인에게는 용납되지 않을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아이에게 행하는 것이 전혀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는 태도가 아동 학대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기저에는 가족이라는 폐쇄적인 집단이 타인이나 공권력이 관여할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지며 부모와 자식간 왜곡된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배타적 가족주의는 가족 내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피해자가 보호받기 어렵다는 문제뿐 아니라 정상적인 가족과는 다른 형태, 예를 들어 미혼모나 다문화가정, 입양가정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키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구체적으로는 부모 체벌금지법 제정, 미혼모 지원 확대, 입양제도 개선 등을 제시하고, 크게는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개인의 자율과 평등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 확대를 주장한다. 아이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신선하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아이를 독립된 인간으로 보고,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고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이지 친권이 권리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국가에서 가정에 주는 아동수당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수고에 대한 비용이 아니라 미성년자인 아이가 최소한의 경제적 독립성을 가지기 위한 지원이다. 신선하게 느껴진 이유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기 때문이고, 그러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진 것은 막연하게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화하지 못하고 어렴풋이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을 논리적이고 깔끔한 문장으로 읽으니 속이 후련해진다. 인상깊었던 구절을 몇 개만 남겨본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중략) 부모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듯 부모 혼자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체벌을 쉽게 생각하고 용인하는 태도, 폭력에 관대한 정서, 공적 개입의 부재 등으로 인해 자잘한 구멍이 사방에서 생겨나고 결국 어디에선가는 아이가 맞아서 목숨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쯤으로 여기고 부모의 체벌에 관대한 한 국 사회는 마을 전체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인의 상당수는 자동차 안전벨트가 없던 시절에 자랐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벨트가 없었던 덕분에 내가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안전벨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자랐다고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체벌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체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이 이론(스웨덴식 사랑 이론)은 진정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개인 사이에서만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심지어 부모와 자여 관계에서도 서로 의존적이고 굴욕을 강조하는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바라본다. 스웨덴의 이상적 가족이란 부부가 각자 일을 하며 서로에게 경제적으로도, 양육의 부담으로도 의존적이지 않은 성인들, 그리고 가능한 한 이른 나이에 독립하도록 고무되는 아이들, 서로가 서로의 신체적 온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 이는 '가족적 가치'를 갉아먹는다기보다 사회적 제도로서 가족이 현대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읽었던 몇 안되는 육아서적보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하는데 더 많이 도움이 됐다. 아이는 이미 한 명의 인간이다. 나는 다만 그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피고 도와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가 행복한 기억들을 많이 쌓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다만 부모가 모두 동일하게 그 역할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나만 사회생활을 몇 년동안 포기하고 독박육아를 하고 있고 남편에게 이러한 결혼제도 및 육아의 불평등에 대해 얘기해도 그래도 어쩌겠냐,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거다라는 이야기만해서 도돌이표처럼 투닥거림이 오간다는게 슬프긴 하지만. 그래,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회가 점점 더 나아지리라는, 나아지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보다 더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보다 올바르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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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가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 역학이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원래 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역학 연구는 인구집단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고 노동자가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시멘트 공장 지역 주민들이 단체로 폐렴에 걸렸을 때도 역학조사를 한다. 이 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들어가는 말에서 이야기 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살아간다.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이런 문제들을 네 개의 주제로 묶어서 설명한다. 1.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등이 그것이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같은 대답이지만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의 경우, 그 말이 사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p.20)”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에도 이렇게 아픔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만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되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전 사회가 남긴 상처가 인간의 몸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Me Too 운동’도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40여 년 전 레이온과 석면을 생산하는 일이 노동자들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잘 알면서도, 일본은 한국에 동양레이온의 기계를 넘기고 합작회사인 제일화학을 설립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한국 노동자들이 겪을 이황화탄소 중독과 악성 중피종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이 누군가에게 1964년의 동양레이온이나 1971년의 일본석면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p.119)” 그러나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암으로 죽어갈 때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해 오면서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지금도 중국, 인도네시 등 20여 곳에 생산거점 공장을 세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위험한 작업은 하청을 주어 해결하고, 하청 기업은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힘없는 근로자만 오롯이 그 피해를 떠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동남아 국가 등 열악한 환경의 나라에 그 위험을 지난날 일본이 우리에게 넘기듯 떠넘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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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호자들에 의한 아동학대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면서,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 관심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입양아나 양부모에 의해 학대를 당하는 아동들도 있지만, 친부모에 의해 학대를 당하고 심지어 그 결과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아동인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 사회의 기존 인식이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라는 표현은, 바로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가족을 ‘열린 공동체’로 만들어야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잇다고 여겨진다.
처음 <이상한 정상 가족>이라는 제목이 너무도 생소했고, 그 의미도 선뜻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아동 학대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과거 언론의 기사나 많은 글들에서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을 썼던 적이 있다. 부모와 자식을 중심으로 모든 성원들이 갖춰진 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하고, 특히 부모 가운데 하나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 가정을 '결손가정'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청소년 문제는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일으키는 것처럼 전제하고, 그러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선입견에 가득찬 눈으로 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아동학대를 다룬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오히려 친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하면서, 이처럼 부모들로부터 학대가 발생하는 <이상한 정상 가족>의 문제를 이 책을 통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미 우리의 인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임을 규정하고, 그밖이 모든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여기면서 '정상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가족이 억압과 차별의 공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가족의 형태가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가 얼마나 민주적이냐 혹은 억압적이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인간성과 도덕성, 질서,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결과 '모든 아이들이 자율적 개인, 공감하는 시민으로 자라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연에인 사유리의 비혼 임신을 둘러싼 비난도 이러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에서는 출산률 감소를 걱정하면서, 비혼 출산에 대해서는 비난을 가하는 일부의 그릇된 인식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가족은 정말 울타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들 상호간에 얼마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겠다. '가족'을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각 개인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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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수 언론에서 2017년 올해의 책으로 꼽은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단체에서 일하면서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그 사회의 영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는 넬슨 만델라의 문장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의 자식, 미혼모 및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 한국에서 가족의 중요성,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로 챕터를 나눠 통계자료와 데이터를 분석하고 외국사례와 비교하면서 진단과 처방을 내린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자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자기의 소유물로 여겨 체벌도 훈육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유치원,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행해지는 체벌은 잘못이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가하는 체벌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잘못을 했을 때는 때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동 학대가 계모 계부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는 친부모에게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고 난 뒤 작년 11월 군산에서도 실종 신고된 아이가 결국은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아동학대에 대해 관련기관에서는 개입하여 체벌을 금지하도록 요청하지만 훈육이라는 가족의 항변으로 더 이상 어쩌지 못하게 되며 개입해서 제대로 돌봐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됨에 따라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스웨덴처럼 체벌금지법을 시행하자고 주장한다. 아직도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가정 내 훈육을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한 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체벌이 학대로 발전하고 폭력행위에 관대한 우리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랑의 매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부분은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만 정상가족으로 보는 우리사회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다. 다문화가정, 한부모, 미혼모 가정 등 많은 가정들이 정상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대우를 당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런 가정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고착화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미혼모가 애를 낳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 여러가지 다른 형태의 가정을 존중해야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
저자의 생각이 급진적으로 볼 수 있는 면도 있으나 장점이 많은 책이다. 기자 출신이라 문장이 간결하여 읽기 편하고 통계 수치 및 사례 나열만으로도 강한 임팩트가 있어 가정폭력, 차별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저자가 얼마 전에 문체부 차관보로 임명되었다고 하는데 가정폭력, 학대에 대한 분노와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배려로 맡은 일들을 잘 헤쳐 나가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 실제 현장에서 보고 들을 것을 정책에 잘 반영해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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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동아시아/2018.1.10. sanbaram 메리스나 AI처럼 급격히 전염되는 질병이 휩쓸고 지나갈 때나, 가습기 살균제로 많은 생명이 스러질 때, 또는 세월호나 제천 목욕탕화재 같은 사건 사고 등이 발생하면 매스콤은 온통 그 소식으로 도배 된다. 그러나 몇 달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그 피해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주 여성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심하다고 한다. 이렇게 아픔을 간직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세상에 내 놓았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6년부터 2년 연속으로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수상했다. 재소자 인권, 결혼이주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한국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연구하고 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가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 역학이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원래 역학이란 질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다. 역학 연구는 인구집단의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고 노동자가 벤젠에 노출되면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시멘트 공장 지역 주민들이 단체로 폐렴에 걸렸을 때도 역학조사를 한다. 이 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들어가는 말에서 이야기 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 살아간다.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는다. 이런 문제들을 네 개의 주제로 묶어서 설명한다. 1.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등이 그것이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는 말이 전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같은 대답이지만 여학생과 달리 남학생의 경우, 그 말이 사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너무 괴로웠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조차 없었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p.20)”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에도 이렇게 아픔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간과하고 만다. 우리 모두는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공동체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의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 경험들은 태아기의 굶주림처럼 우리가 인지하고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몸에 새겨져, 때로는 당뇨병의 원인이 되고, 우울증의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전 사회가 남긴 상처가 인간의 몸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요즘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Me Too 운동’도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40여 년 전 레이온과 석면을 생산하는 일이 노동자들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잘 알면서도, 일본은 한국에 동양레이온의 기계를 넘기고 합작회사인 제일화학을 설립하면서 한국의 노동자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한국 노동자들이 겪을 이황화탄소 중독과 악성 중피종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그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이 누군가에게 1964년의 동양레이온이나 1971년의 일본석면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p.119)” 그러나 그동안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암으로 죽어갈 때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해 오면서 사회적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지금도 중국, 인도네시 등 20여 곳에 생산거점 공장을 세워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위험한 작업은 하청을 주어 해결하고, 하청 기업은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힘없는 근로자만 오롯이 그 피해를 떠안고 살아간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동남아 국가 등 열악한 환경의 나라에 그 위험을 지난날 일본이 우리에게 넘기듯 떠넘기고 있다. “소방관이 화재 진압 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암에 걸려도 공무 중 부상 처리를 받기 쉽지 않은 것과 같은 경험이다. 피해자 개인에게, 자원과 자본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인과관계 증명의 부담을 떠넘기는 한국사회의 취약함이 세월호 참사에서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p.185)”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담보로 근무하는 그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직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비정규직 고용이 전 사회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경제적 위기가 사회적 약자의 생존에 위험을 주기 시작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깊은 통찰과 연구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의 일과성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 지향이고 HIV감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p.215)” WHO는 동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지향을 인간 섹슈얼리티의 정상적인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WHO, 1992). 유엔 인권이사회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한다.(2012).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을 한국에서는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 한다. 그리고 2013년 출판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이나 캐나다에 거주하는 스무 살 젊은이가 HIV에 감염되었을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평균 51.4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 의학의 발달로 HIV/AIDS는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종교가 단일민족 신화에 기초한 민족주의이고, 그 종교의 교인이 될 수 없는 이들은 내내 한국 사람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람이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귀화한 지 20년이 넘는 한국 사람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그 말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현하는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지닌 의미를 알고 있을까요?(p.230)” 이와 같이 인종차별의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식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기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강조하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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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져서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의 인권도 존중해야 하느냐’는 동일한 질문을 독서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들을 수 없겠지만) 저자에게 던졌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답했다.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조심스럽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문장만으로 윤리교사인 나보다 사회역학자인 저자가 훨씬 더 윤리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예민한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조화로운 춤을 추는 듯하였다.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지 않고 사회와 공동체의 책임을 묻고,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어떤 생각을 갖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진심어린 고민이 페이지 한 장 한 장마다 배어있다. 그 고민은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 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던 그 때 나는 어디 있었냐고, 무얼하고 있었냐고 묻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학자이자 의사인 저자는 당연하게도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은 어딘가 상처를 입었음을 알려주며,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아픔이 어떤 식으로든 명징하게 기록되어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되어야 함을 일관되게 설득하고 있다. 이 책은 그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이 책을 독서하는 동안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 ‘감탄’하다가, 내 일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던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동반한 ‘고통’을 느끼다가, 책을 덮을 즈음엔 ‘희망’을 보았다. 자신의 지성을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진정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저자 같은 이가, 비록 눈에 띄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사회 곳곳 어디선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면, 아픔은 조금씩 치유될 것이다. 작은 힘이나마 이 책을 되도록 내가 아는 많은 사람에게 권함으로써, 치열한 경쟁의 입시문화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말자고 윤리교육의 본질을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저자의 진심과 노력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이 책은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중략)…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국에는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보도록 해요. 저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저자의 이 말에 덧붙일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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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기술 가운데 세계 최고로 치는 분야 중 하나가 장기이식수술이다. 간이식의 경우 '서울아산병원'에서 가장 많은 수술이 이뤄지는데, 몇 년 전 통계를 보니 두 번째 순위 병원의 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장기이식수술이 많이 시행되는 이유는 '가족간의 증여'가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간암에 걸리면, 아들이나 딸이 자신의 간을 기증하여 아버지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도 10여 년 전에 간을 기증한 '간 공여자'다. 나는 1남 2녀 중 둘째로 유일한 아들이다. 독립해서 따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고, 3남매 중 유일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기증자는 내가 되어야 했다. '아들이니까 니가 기증해야지'라고 누구도 말은 안 했지만,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안다. 수술 후 일상 복귀에 3개월이 걸리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나는 장남이었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내가 봉양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항상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이성적 사고에만 머물렀을 뿐 감정과 행동에서는 사회적 관습이 요구하는 역할에서 그렇게 멀리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간 기증 후에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모님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의무감에서 심적으로 완전히 탈출했다. 부모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도 당연히 자주 뵙고 잘 해 드리려고 노력하지만, 그전에 가졌던 관습적 족쇄를 걷어내고 내가 좋아서, 나의 의지로 부모님께 다가서게 된 것이다.
가족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유독 힘을 얻는 것은 가족 외에는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을 잃어 실업자가 되거나 큰 병에 걸려 생계가 어려워지는 일은 언제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사회보장이 잘 마련된 나라에서는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개인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때 공적 시스템으로 돌봐주고 재기할 기회를 준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져야 할 부담을 대부분 가족에게 짊어지도록 하고 있다. 믿을 건 가족뿐이 없게 되었다.
가족 중 누가 큰 병에라도 걸리면 모든 가족의 삶의 질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버지의 실직에 가족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수년째 차지하고 있고, 노인의 자살률이 특히나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가족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 가운데 가족이 붕괴하여 발생하는 비극이다. 병에 걸려 직장을 관두게 되어 생계가 막막해지자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이면서 옆 사람과 손잡고 느슨하게 연대할 때야만이 존엄하고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다. 가족이라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에게 의존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여 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두려운 개인들은 가족에 의지하게 되고, 가족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 '학연', '지연'과 같은 외부에는 배타적이고 자기가 속한 집단만 우선시하는 편향까지 만들어낸다.
중국 고사에 나온 이야기다. 곧 죽을 걸 알고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는 소를 보고 제나라 선왕이 신하에게 명령했다. 죄 없이 끌려가는 소를 차마 불쌍해 못 보겠으니, 당장 멈추고 소를 살려주라고 말이다. 그런 다음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명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소는 불쌍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양에는 불쌍한 마음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가족주의'도 이와 같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제의에 동물을 죽이도록 하는 제도를 금지하는 것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쓴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네 이웃과 적을 사랑하라' 보다 더 나은 이상은 '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라고 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가 가까이 관계 맺고 있는 가족은 더욱 그렇다. 그 마음을 제도화하여 공적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다.
(가족주의의 사전적 의미) 좁은 의미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가(家) 그 자체를 이상적 공동체로 삼는 가족 중심의 삶의 원리를 뜻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원리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확대 적용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족주의 [家族主義, familism] (선샤인 논술사전, 2007. 12. 17., 강준만)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개의 가족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 인간관계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의제적(擬制的)으로 확대 적용하려는 주의. [두산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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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공중보건의로 일했고, 지금은 사회역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김승섭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랍니다. 언론의 극찬을 받은 책이라하여 작년 말 사놓고는, 제법 되는 두께에 눌려 책장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더랬습니다. 언젠가부터 책 읽기가 힘겨워지고 밀도있는 글도 쓰지 못하는 터라,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평에 끌려 제게 오게 하였습니다.
인문교양서나 사회비평서로 분류되는 글인데 어쩜 이리 아름다운지요. 기저에 슬픔이 깔려서일까요? 이 책을 통해 아름다운 글은 문장 자체가 가진 고유의 힘에 의해서도 나오지만, 대상을 대하는 사람의 애정에도 크게 기인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처연한 느낌이 계속 저를 잡고 있습니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저이기에 어쩌면 저 자신에 대한 애처로움이 투사되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리뷰라는 이름의 글을 올리는 것이 이 책에는 맞지 않는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리뷰를 무용하게 하는 책이랄까요? 조금 과장되이 말하자면,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을 올려도 평균 수준의 리뷰보다 낫지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감상을 올리지 않는다면 선악을 분별하지만 침묵하는 자의 비겁함이 되지 싶어 책의 일부분을 올리는 것으로 면피코자 합니다. <건강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개개인으로만 바라볼 때 그런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거대한 혁신을 이뤄낸 현대의학으로도 알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개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병원의 임상진료 과정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몸에 새겨진 사회구조적 원인을, 현상 너머에서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중략... 그러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이들을 아프게 했던 '원인의 원인'이 보입니다. 그 원인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했던 일터가 금연율을 낮췄고, HIV 치료약 공급을 전적으로 민간보험에 맡겨둔 지역사회가 AIDS 사망률을 높였고, 경제 위기 속에서 공공보건의료 영역의 투자를 줄이기로한 국가의 결정이 결핵 사망률을 증가시켰습니다. 공동체는 그 구성원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지요.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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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읽은 일반서적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통계가 이렇게 가슴아플 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역학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어서 좋았어요 또 하나 큰 의미로 다가온 건 저자의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고 쓴 글은 정말 가슴 깊은 곳을 울렸습니다. 나도 이런 시선을 지닌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은 쉽습니다. 연민을 가지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진실로 한발자국 나아가서 약한자들의 편에 서는 것은 일반적인 용기로는 택도 없는 일이라는 걸 절실히 압니다. 겁쟁이인 저에게 큰 힘을 주셨습니다. 이런 책이야말로 정말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