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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로서의 역사 # 이념으로서의 역사 # 소통으로서의 역사 # 바깥으로서의 역사 작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을 맞아 행사를 하는데 칼 뵘이 생각났다. 1894년생인 지휘자를 2015년에 페스티벌 주최측에서 히틀러 시대, 아마 그가 40-50대였을 무렵의 일을 인정하는 것. 우리나라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해에 태어난 서방인에 대해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100년이 넘는 기간 누군가의 행위에 대해 제대로 살펴본 적이 있었을까? 이 글 제목은 저자의 글을 인용한 것이며, 해시태그 글은 이 책의 목차 일부분이다. 목차를 보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는 목차. 그리고 쓸데없는 위안이나 희망 대신, 제대로 생각하게 하는 지점을 짚어주는 힘이 있는 글이다. 지은이의 말에 '부정(Negation)'을 긍정의 반대어로 지칭하지 않으며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그래야 비로소 우리가 보는 이미 끝난 역사가 우리 안에서 다시 시작되는 역설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역사에서 희망을 볼 수 있지만 희망을 가져야 역사를 본다. 불행만이 아니라 행복도 너무 크면 희망은 무의미하거나 불필요하다(p.17)." 이러한 말은 이 책의 뒷부분에 있는 이 말과 닿아 있다. "한국의 역사적 희망이 동학농민전쟁과 5.18민중항쟁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폐허 속의 파편에 있는 것과 같다( p.425)." 이 책을 읽다보면 철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해서 철학서인 것을 알지 역사학자와 심리학자 그 어디 사이쯤에 있는 사람이 하는 강연같다. 칸트와 헤겔을 비교하며 서술할 때는 철학서이다가 그것을 현실에 불러올 때는 역사서와 심리학이다가 마지막에 우리나라가 왜 10년도 안 되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마지막 문장에서는 한참을 책을 손에 놓지 못한다. '우리가 이것을 놓치고 살았구나. 신문과 뉴스를 본다면서 활자를 보았을 뿐 그 너머를 보지 못하고 지났구나!' 한 번도 20년 넘게 한 사안을 들여다보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공소시효없는 범죄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누군가를 소환하고 그 사람의 2024년 12월 3일과 4일에 걸친 하루를 재구성하여 우리가 놓친 것들을 볼 수 있는 고통이자 희망이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