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Amor fata,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이상하게 내가 살아온 세월은 지나간 운명이니 앞으로 닥칠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면 되겠다는 생각과 지금 현재의 나를 사랑하고픈 생각도 들게 만드는 멋진 말입니다. 니체의 말인데 많은 분들이 이 말에 공감을 하고 많은 분들이 이 말을 하시는 듯하다. 역시나 우리 인생을 사랑하면서 운명을 사랑하라 라는 말에 명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문학’이라는 자체가 나에게는 항상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 인 것 같다. 아무 뜻도 모르는 나에게 화가 나면서 인문학을 알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인문학이라? 이런 정리를 하라고 하면 참 헷갈렸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인문학으로 사랑하라 』를 읽으면서 나에게 ‘인문학’에 대한 희망이 생기게 만들었다. 여러 권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도대체 인문학이 머지? 이런 의문이 나에게 남아 있었다. ‘키케로’가 로마왕정과 공화정의 위대한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인문학의 궁극적 목적을 이리 설명해 준단다. 인문학(studia)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저자인 김상근님은 인문학의 출발을 키케로로 이야기해주면서 인간을 위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키케로는 시련을 극복하고 불굴의 용기를 주는 힘이 인문학에 있음을 호소하고 있답니다. p19~20 인문학이란게 우리 일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책의 서두부터 인문학의 출발이 키케로부터 시작해 이탈리아 문학가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 호메로스등 우리가 들어본 그 분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인문학을 이어가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내가 인문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게 만드는 소중한 책이 랍니다.
인문학을 논하다 보면 진(眞), 선(善), 미(美)의 세계로 이야기를 합니다. 호메로스의 인문학에서 나타나는 진(眞)으로 개인의 성찰을 위한 것이었다면 키케로의 선(善)을 통해서 지혜로운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용기를 가진 사람, 적절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키케로가 주장하는 선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키케로의 <의무론>을 읽는 다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면서 역시나 대단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미(美)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라는 작품을 보면서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조각을 없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바티칸 천장에 그린 천장화는 대단한 작품이죠. 거기에 천장화중에 잘 보면 미켈란젤로의 자화상도 있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보게 되더라고요. 거기에 마지막 작품인 최후의 만찬도 아름다움에 한 몫을 하는군요. 이들을 토대로해서 인문학을 통한예술세계를 안해하고자 한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난 창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창조가 발전되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하는지도 나타나고 그것을 비즈니스 경제라는 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을 읽게 되는 순간 저는 역사의 한 현장에서 내가 알던 르네상스시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피란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 여러 나라의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 아니면 그들의 작품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사실 이 책의 최고의 매력이 처음에 인문학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이제부터 작품 속에 들어간 의미도 알게 되고 만든 이들의 정신과 그들을 본받을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작품 해설에서 저는 특히 저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작품을 그 현장에서 자세히 보는 것 같이 이해를 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서 자세히 보니 다비드상 손등에 실핏줄에서 붉은 피가 역류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보았습니다. 차디찬 대리석도 생명을 불어넣었던 미켈란젤로의 세계를 배웁시다. 이런 정신으로 앞날을 살아간다면 무슨 일을 하던지 그 일에 힘을 다해 할 것입니다. 피란체에서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의 경쟁당시의 작품 비교와 그들의 경쟁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정한 경쟁원칙, 경쟁에서 진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를 준다는 것으로 창조의 값어치를 높이는데 한 몫을 했답니다. 여러분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 경쟁에 이기십시오. 아니, 치열한 경쟁에서 패배했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마십시오.
(네이버 미술 검색에서 펌- 책에 사진이 흐릿해서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면서 “외설이냐 예술이냐,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이 <우르비노의 비너스> 이 명화 속에 숨어 있는 창조의 의미를 풀어보라!” 이 명화속의 그림을 풀어보는데 저 감명 받았습니다. 앞으로 함부로 저는 경계선상에서 함부로 말을 하지 않고 조심하기로 말입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시대의 포르노’라고 비웃기도 했다는 군요. 그렇지만 작품을 자세히 보면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매가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거기에 귀고리가 진주입니다. 비너스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장미부케를 손에 들고 있어서 그렇다는 군요. 장미는 ‘삶의 환희’인데 이 작품은 꽃이 떨어져있습니다. 이것은 삶의 환희가 끝났다는 것이고 누군가가 죽었다는 거라는군요. 삶과 죽음의 교차 말이죠. 그리고 은밀한 부분을 손으로 가린 것은 ‘푸티카’라는 정절을 지킨다는 뜻이라는 군요. 거기에 뒤에 하녀들도 보이고 가린 손에는 과부반지를 끼고 있네요. 하녀들이 들고 잇는 옷도 화려하고요. 그래서 이 여인은 방금 상(喪)을 당한 것으로 보이고 상을 당해서 옷을 입으려 한다거나, 아니면 벗어 넣으려는 것이라고 하네요.그리고 뒤에 문장과 기둥을 보니 비토리아 콜론나 가족 문장이 새겨 있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빅토리아 콜론나라네요. ..중간 생략....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의미와 무의미가 혼재된 가느다란 경계선 사이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습니까? 이쪽과 저쪽 경계선에서 창조의 진실이 숨어 있답니다. 앞으로 다가올 경계선상에서 잘 생각하고 마음껏 발견해 창조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명 작품이 한 순간 잘못 판단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가면서 창조란 것을 배운다는 자체만으로 저는 많이 행복한 책이네요.
피란체의 열정에서 밀라노의 냉정에서 창조를 배우게 됩니다. 특히나 냉정과 열정사이 영화도 생각나고 책도 생각나게 만드는 부분이었답니다. 어서 영화도 다시 보고 싶고,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책을 읽다가 책속의 진주를 발견하면 더 행복해 지는 것 같아요. 영화를 거기에 모방도 창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솔직히 자기 걸로 만든다는 것은 무리지만 대 작품인 ‘루첼라이 저택’ 같이 알베르티의 끈기와 열정으로 모방을 통한 창조를 만들어 낸 작품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티치아노, 로욜라, 표트로등 여러 인물들의 창조를 배웠답니다.
이 책 『인문학으로 사랑하라』를 읽으면서 저자님의 대단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지네요.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셔서 말입니다. 저는 많은 역사속의 작품들을 만나는 것 같아서 행복했고 그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창조를 배우서 좋습니다. 한분 한분 만날때마다 작품 하나 볼때마다 그 속에서 많은 가르침에 많이 행복했답니다. 그들이 노력과 열정 끈기로 그들만의 작품을 창조 했듯이 앞으로 저도 저만의 열정과 끈기와 노력으로 저의 앞날을 밝게 열어가고 싶네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한 창조의 문은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 그 분들의 인문학적 창조를 잘 본받아 인생 살아가는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정신이 내게도 온다면 나의 미래도 더 밝으리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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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Studia humanitatis)'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수사학, 문법, 수학, 음악, 철학, 지리학, 자연의 역사, 체육 등을 통해 인간됨의 본질에 도달한다고 믿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전인교육이지요. 너무 전문적인 연구에 치중하다보면 한 분야에서 학문의 깊이는 더해질지 모르지만 일반대중에게선 멀어지기 쉽습니다. 지은이 김상근은 연세대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국내 최초로 설립된 인문학 연구지원 공익단체인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의 창설을 도우며 삼성세리 CEO와 세계경영연구원(IGM), 주요 기업과 임원강좌와 최고위자 과정에서 창조성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을 현장에 적용하는 강의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프롤로그에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강연중 들었던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한국교육에서는 정답을 잘 고르는 학생은 많은데, 문제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사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대답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하는 존재가 됨을 뜻합니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 책이 철저히, 인문학(Studia humanitatis)과 르네상스(Renaissance)시대의 창조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4세기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 100년의 암흑시대를 종결시키고 아름다움에 대한 새 가치창조가 극에 이르는 문화혁명을 이룹니다. 지은이는 과거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문학 장소는 기원전 5세기 철학자 플라톤이 운영하던 아테네 근교에 위치한 '아카데미아'라고 합니다. 플라톤은 이곳에서 아테네 리더들에게 파이데이아(Paideia) 즉, 인간됨의 본질에 대해 교육을 실시합니다. 파이데이아(교육)를 통해 아레테(탁월함)의 삶을 사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됩니다. 인문학은(Studia)은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지켜주고, 나이 든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안내합니다. 또한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가 역경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_ 키케로 지은이는 문사철(文史哲)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탁월함의 추구를 통해 진선미(眞善美)의 삶을 사는 것! 다시 진선미는 그리스시대의 현자들이 추구하던 진리의 세계(眞), 키케로를 비롯한 로마시대의 리더들이 추구했던 윤리적이며 선한 삶(善), 그리고 옛 시대의 탁월함이 재탄생하던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美)를 뜻한다고 합니다. 진(眞)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 선(善)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 그리고 미(美)는 르네상스의 천재예술가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책에서 미켈란젤로 뿐 아니라 조각가 반디넬리, 레오나르드 다빈치, 브루넬르스키,기베르트 등의 조각가들 그리고 티치아노, 조르조네, 마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설명해주면서 독자들의 인문학적 사유를 돕고 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조율하는 창조자가 되어라' - 열정의 도시 피렌체, 냉정의 도시 밀라노! 벽돌 400만장을 쌓아올려 만든 돔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지은이는 이 돔을 바라보면서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의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 돔을 바라보면서 영화[냉정과 열정 사이]를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사랑을 나누었던 준세이와 아오이가 헤어졌다가, 성당 돔 꼭대기에서 다시 만나는 러브스토리. [냉정과 열정 사이] 얼마전 책을 구입해놓곤 아직 읽어볼 시간을 못 만들었지요. 이 글을 읽다보니 얼른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지은이는 이 영화를 30번 정도 보았다는군요.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인간 내면에 혼재되어 있는 냉정과 열정의 실타래를 풀어내고픈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 창조적 행동을 유발한다고 덧붙입니다.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숙제를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레테의 덕목을 갖고 있습니까? 르네상스 시대가 추구했던 아레테는 단순히 기술적 측면의 아레테, 즉 경영적 측면의 아레테가 아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웅의 눈에서 진정한 눈물을 흘리게 하는, 탁월한 인격을 뜻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새 출발을 다짐할 수 있도록 아레테가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것처럼, 여러분도 주위사람에게 아레테의 힘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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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읽기 싫어하고 어려워 하는 것은 [인문]이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인문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쉽게 읽고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좀더 한 권이라도 읽어보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 기회를 안겨준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답사기> 시리즈이지 않았나싶다. 여행과 역사 문화를 좋아하지만 역사에는 문외한이라 더 기회를 가져보려 하는데 그래도 역사는 힘들다. 이해하지 않고 암기만 하려는 주입식이 박혀 있어서일까.'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정말 역사나 문화는 아는만큼 보게 된다. 이 책 <인문학으로 창조하라>는 제목은 조금 어려운 듯 하지만 그 속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조각,건축과 관련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어 그림과 함께 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르네상스' 를 문예부흥의 시대라고 한다. '재생' 옛 것을 보고 배우며 그것을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탄생시키는 '재생'의 시대였지만 어느 시대보다 회화 조각 건축이 빛났고 지금까지도 그 시대를 능가하는 작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이탈리아를 정말 좋아하고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게 만든 것은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였다. 책을 읽기전에 영화로 먼저 만났는데 영화의 내용도 그렇지만 영화속 배경이 된 이탈리아에 쏙 빠져들고 말았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너무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였다. 이 책에서도 <냉정과 열정사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본 영화이고 더욱이 영화로 인해 더 이탈리아를 동경하게 되었으니 빠져들며 읽게 만든다.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 등 거장들을 빼 놓을 수 없다. 르네상스에서 '인문학'을 읽는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 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르네상스시대의 인문학자들은 인간이 되기 위한 덕목으로 역사,도덕,철학,문법,수사학,시를 공부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교육과정을 거치며 어른이 되어 그 사회나 조직의 리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회화와 조각 건축등에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경쟁]을 한다.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도 건축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지만 기베르티에게 [요한 세레당 동쪽 청동문]을 양보한 브루넬레스키는 다른 분야인 건축을 배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지었다. 얼마전 티비에서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보았던 기억이 있다. 기베르티는 청동문에 자신의 젊었을 때 얼굴과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되었을 때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신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브루넬레스키는 피오레 성당 돔 천장을 외벽과 내벽으로 나누어 벽돌로만 아름다운 돔을 완성했다. 현대의 건축공법으로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을 이루어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은 [조르조 바사리]의 말처럼 [더 이상의 조각은 없다. 조각이라는 예술 장르는 여기서 끝이 났다. 아무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능가할 수 없다] 라고 표현했다. 미켈란젤로는 아무도 손을 못 대고 있는 죽어 있는 대리석에서 새로운 '생명'을 끄집어내 '다비드상'을 완성했다.
"미켈란제로가 추구했던 궁극적인 미학은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는것에서 완성되었습니다.이것이 바로 미켈란젤로가 당대의 플라톤 철학자들에게서 배운 것입니다.완벽한 아름다움은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습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상대는 아직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아무도 손을 데지 못하고 죽어 있던 대리석,그 대리석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기키 위하여 그는 그 돌이 왔던 곳이 채석장에 가서 직접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 그 돌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내면서 다비트상을 탄생시킨다. 손에는 금방이라도 피가 돌처럼 핏줄이 불거져 있고 눈은 빛나고 있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원근감에 의해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고 있다고 하는데 완벽한 것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시체해부의 역겨움도 이겨내며 '인간'에 대하여 파고 들었던 그,그런 고통을 이겨냈기에 근육 하나 하나 살아 숨쉬는 듯한 생생함을 표현해 냈을 것이다.
'창조는 파괴로부터! 창조는 도나텔로처럼 망치를 들 때부터 시작됩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경쟁'을 부추기기도 했지만 일등이 아닌 이등이 다시 돌아와 활동할 수 있도록 그들을 수용해 주었다는 것.기베르티에게 져서 로마로 건축을 배우러 갔던 브루넬레스키를 받아 들여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피오레 돔 성당은 존재할까? 한 분야에서만 탁월했던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거장들을 보면 회화 건축 조각 그외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해 빛나는 업적을 이룩했다.재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배운 스승을 잊지 않고 어느 한 부분에 숨겨 놓듯 한 오부제,자신의 새로운 것을 창조했지만 그것을 과거로부터 왔다는 것을 남겨 놓았다. 그런가하면 회화 건축 조각에는 '아레테' 를 추구했다는 것. '르네상스시대의 예술가들은 모두 '아라테' 즉 탁월함을 추구했습니다. 아레테란 그리스어로 완벽에 가까운 탁월함이란 뜻입니다.'
일인자를 따라잡기 위하여 일인자 옆에 가게를 얻었던 '버거킹'의 '버거킹전략' 처럼 르네상스시대의 거장들은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자신과 같은 '경쟁자'가 있어 더욱 눈부시게 발전하고 누구보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맘껏 발산한 듯 하다. 그렇다고 아레테만 추구하여 우월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라 '아레테 덕목'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 '아레테 덕목이란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웅의 눈에서 진정한 눈물을 흘리게 하는,탁월한 인격을 뜻합니다.' 라고 한다. 창조는 파괴로부터 나오고 그 창조는 과거를 배제할 수 없으며 인문학적이라고 본다.인간을 떠나서는 창조가 이루어질까.내가 오늘 숨 쉬고 있는 것 모두가 그러고보니 인문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인간' 하면 나를 지칭하는 것이니 쉽지만 거기에 '학문'을 붙이면 뭔가 심오하고 어렵다고 느껴진다. <인문학으로 창조하라 >는 르네상스시대 회화나 건축을 그들의 이야기와 함께 풀어내면서 쉽게 재밌게 읽으며 인문학에 빠져들 수 있다. 요즘을 '통섭의 시대'라고 하는데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나기 보다는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그것이 어쩌면 르네상스시대의 '창조' 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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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 넘어서 인문학에 입문했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다. 인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학 탐구하는 학문이다. 르네상스시대와 고대 인문학 태동기를 잘설명했다.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는 위대한 모방이 있었기에 르네상스가 탄생했다. 시련을 겪으면서 영웅은 재탄생한다.♡○☆♤ 봄에 자미원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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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르네상스시대를 지나면서 펼쳐지는 천재들의 향연들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들의 나가가야 할 자세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기억에 남는 두가지 키워드는 <아모르파티>와 <모방을 통한 창조>였다. 작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태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모르파티(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작품 “오디세이아”에서는 언제 좌초당할지 모르는 배 위에서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리더로써 어떠한 희생도 감수 하겠다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란 자신의 내면과의 끊임없는 성찰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자신이 처해진 운명을 그대로 인정하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것이다. 너무 바쁜 생활에 나만 왜 이렇게 힘들까? 여유있어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는 비교로 인해 커지는 열등감은 오히려 내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그릇이 작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릇이라는 틀을 마음속에 가진다는 자체가 모순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 현대인이 잊고 사는 아모르파티가 아닌가 싶다. 중반부터 이어지는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 몇몇 등장한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등.. 마치 자로 잰 듯한 정확한 비율의 조각상들과 혼자 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천장 벽화들.. 그들이 아니면 누가 했단 말인가? 시도 자체부터 이미 새로운 창조를 야기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인간을 형상화 하여 탄생시켰고, 절대적인 인체비율을 탐구 했으며, 끊임없는 통찰력으로 철저하게 모방하여 결국엔 새로운 창조물을 탄생시켰다. “자연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연구를 위해서는 눈과 마음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중략)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늘 배우도록 하십시오” 알베르티가 말하는 창조의 비밀은 모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즉, 모방이라는 것은 남이 했던 것을 단순히 베끼는 것이 아닌 이미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기 위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한 수단이며, 이것은 창조의 밑거름인 것이다. “사실 모든 창조는 모방이라는 우물을 길어올리는 샘물입니다”.(중략) 인간은 모방을 통해 창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보았고 어디선가 들었던 모방의 아우라가 창조란 이름으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현대에서 창조라는 단어보다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많이 상용하는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있었던 것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고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쉽지 않은게 아닌가 싶다. 과거는 과거일뿐 현대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저 역사책의 한 줄에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적인 의미에서 과거의 지혜를 답습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비록 방법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나지만 현대에서도 조금씩 과거를 답습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젠 리메이크라는 말이 너무나 흔해 졌으며, 음반 시장엔 과거의 있었던 노래들이 끊임없이 재해석이라는 것으로 같은 노래가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쓰는 휴대폰도 이름이 바뀌어서 스마트폰이라고 하며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 “강남스타일”, “아이폰” 전 세계를 한동안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혁신이라고 가져 왔던 수많은 예술 작품들은 과거를 끊임없이 모방해서 만들어진 그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방이라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인 것이다. 결국 인문학으로 창조하라는 것은 “ 새로운 창조의 밑거름을 위해 옛것을 두루두루 답습하여 끊임없이 모방하라”는 뜻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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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의 접근을 시작한지 10여개월이 다되어갑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떻게 하면 바르게 키울것인가를 고민하는 엄마들 몇몇이 모여 시작한 독서토론모임. 인문학적 접근을 한발한발 시도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애정과 사랑을 갖게되었고 바로 그것, 내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요즘. 여러종류의 인문학관련 책을 읽었는데 무엇인가 한구석이 답답한 느낌이었다. 이 책을 그런 내 마음의 다을듯 다을듯 닿지않는 곳의 가려움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디서 시작되었고 ,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등대처럼 밝혀주는 듯 했다. 철학과 문학과 예술(그림)을 어떻게 연관지어 볼 것인지, 그리스 로마신화로 부터 르네상스까지....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왜 되돌아보려 하는 것인지.....머리속이 명쾌해지는 감동을 느끼게 한 책입니다. 그리고 또한 지금까지의 우리 모임의 인문학적 접근이 틀리지 않았다는 뿌듯함. 우연히 알게되어 읽게되었지만 이 책이 있어 지난 주말 내 마음은 충분히 가슴벅찼다. 인문학 하면 어렵고 멀다고만 느끼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싶은책이다. 작가 김상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