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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로맹 가리가 말하는 인생의 참교육.【유럽의 교육】
"절망에 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로맹 가리가 말하는 인생의 참교육.【유럽의 교육】" 내용보기
내가 사랑하는 작가. 그의 새(?) 책, 개정판이 출간됐다는 게 매우 반가웠다. 특히 『유럽의 교육』은 로맹 가리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기에 꼭 만나고 싶었는데 절판이라 아쉬움을 안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전작을 섭렵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작품에 한해서, 그는 항상 '남성'의 시각에서 삶을 웅변하길 즐겼던 것 같다. 『그로칼랭』이 그렇고 『솔로몬 왕의 고뇌』가 그
"절망에 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로맹 가리가 말하는 인생의 참교육.【유럽의 교육】" 내용보기

 

 

내가 사랑하는 작가. 그의 새(?) 책, 개정판이 출간됐다는 게 매우 반가웠다. 특히 『유럽의 교육』은 로맹 가리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이기에 꼭 만나고 싶었는데 절판이라 아쉬움을 안고 있던 참이었다. 그의 전작을 섭렵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작품에 한해서, 그는 항상 '남성'의 시각에서 삶을 웅변하길 즐겼던 것 같다. 『그로칼랭』이 그렇고 『솔로몬 왕의 고뇌』가 그렇고 소년의 눈으로 삶을 본질을 찾아가는『자기 앞의 생』이 그러하며 처녀작 『유럽의 교육』이 그랬다. 로맹 가리가 공군 중위 가리 드 카체브로서 체험한 전시 상황 속 인간의 나약한 모습 뒤, 굳건한 삶에 대한 애착의 모습을 담담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14살 폴란드 소년 야네크를 통해 전쟁으로 인간성이 말살되고 삶이 무너져내린 모습을 따라가면서 그래도 절망은 금물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 그의 책은 항상 읽는 도중이 아니라 다 읽은 후에 먹먹함을 감출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전쟁 소설이라서만은 아니다. 이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시종일관 희망을 품기를... 종용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게 나를 먹먹하게 했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고 희생자만 양산되는 싸움, 그것은 전쟁이다. 이 난장판 속에 내던져지는 건 시가지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장갑차도 아니고 상공에서 지상으로 무한폭격을 가하는 전투기도 아닌 힘없고 나약한 국민이다. '전쟁', '전시 상황' 같은 건 아득하기만 한 단어들이다. 그것의 참혹함을 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휩쓸고 가는 끔찍한 화마와 같은 그것의 참상과 남겨진 자들의 아픔은 두 눈으로 보아왔다. 누구를 위한 전쟁일 수 없는, 모두에게 상처와 잔혹한 기억으로만 남을 전쟁, 그 뒤에 통곡하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아픈 모습은 인간적 연민을 뛰어 넘는다. 그리고 그들은 총 대신 인간의 자유권과 존엄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투쟁한다. 장 폴 사르트르가 최고의 레지스탕스 소설이라 찬탄을 아끼지 않은 『유럽의 교육』에는 투쟁하는 소년이 있고 소녀가 있으며 어른들이 있다. 인간의 적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본적인 인권까지 존중받을 수 없는 지상 최대의 적은 전쟁이다. 이도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서 비롯하지만 말이다. 1942년 8월 21일~1943년 2월 2일...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스탈린그라드(現 볼고그라드) 전투에서는 인간의 존엄이라고는 공중분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대대적인 시가전으로 7초마다 군인 한 명이 죽어나갔고 소련군의 평균 생존 시간은 24시간, 하루였다.

 

소설의 배경은 1942~1943년 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빌노의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눈 덮인 숲이다. 그리고 이 숲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가려는 빨치산, 레지스탕스의 분투가 있고 14살 소년 야네크의 성장이 있다. 야네크는 독일군에게 두 명의 형을 잃고 아버지가 마련해준 은신처(땅굴)에서 생활하다 두려움이 엄습하거든 빨치산을 찾아가라는 당부에 따라 그들과 합류한다. 부모의 생존 여부를 모르는 소년은 그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과 함께 체념을 반복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불복종, 저항 뒤에는 소리소문없이 교수형에 처하는 실상을 보고 전쟁이 인간에게서 앗아가는 생존권을 목도하는 소년은 점차 회의적이 되어간다. 생명의 고귀함이나 가치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음에 더했으리라. 그런 소년과 대비되는 인물이 소설을 쓰는 대학생 도브란스키다. 그는 은신처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며 희망을 설파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완성되면 제목을 '유럽의 교육'으로 지을 것이라 말한다. 전쟁은 언젠가 종식될 것이고 유럽은 하나로 이어질 것이며 인간은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는 그의 역설에 반해 현실은 끔찍하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의 포로가 되어간다. 수없이 폭격이 이루어지고 대량 학살과 총살, 끝없는 포로가 양산되는 처참한 현실 말이다. 자신의 아내, 애인, 가족이 적군에게 처참하게 능멸당하는 현실적 상황 속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단발적인 기습공격이 유일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피폐하게 하는 건 숲, 자연이 인간의 오만함에 선사하는 날 선 칼날같은 추위와 배고픔이다. 그리고 희망을 갈무리하기 어려운, 절망에 잠식돼가는 영혼의 호소이다.

 

 

자유와 존엄을 향해 저항하라, 투쟁하라, 갈망하라...

 

전시는 암흑의 시절로 대변된다.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형벌이다. 대신 로맹 가리는 희망을 품지 못하면 절망조차도 마음속에 섣불리 들여놓지 말라 『유럽의 교육』을 통해 역설한다. 절망은 곧 소멸의 다른 말이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고 기어나오지 못하는 깜깜한 땅굴 속으로 계속해서 파고드는 것과 같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가장 큰 의미인 '사랑'을 근본 주제로 하는 건 처녀작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성의 로맨스로써 보여주기 이전에 소설 전반적으로 전해지는 메시지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을 14살 소년의 성장으로 투사한 것은 순수함과 현실의 차가움 즉, 이상과 현실의 접점지대에 있는 인간 본질의 모습을 더욱 내밀하게 묘사하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자기 앞의 생』의 모모가 로쟈 아줌마를 사랑으로 끌어안았듯(그들의 관계는 이성적 사랑은 아니지만) 야네크도 조시아라는 소녀를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독일군에게 몸을 파는 대가로 정보를 캐오는, 그 행위는 아무 느낌도 없다고 거듭 말하는 소녀. 그 모든 추잡한 현실 앞에서 조시아를 지켜주려 애쓰는 회의적인 소년 야네크에게도 자신을 치유해주는 단 하나의 희망은 있다. 바로 음악. 쇼팽의 '폴로네즈'를 듣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소년, 아아, 누가 이 소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누가 이 소녀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

 

『유럽의 교육』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을 부유한 질문이 하나 있다. 삶 안에서 고통이 먼저일까, 희망이 먼저일까. 같은 답 없는 질문이었다. 누구나 후자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서로에게 겨누는 무언의 총구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상처받는 또 다른 인간에게 『유럽의 교육』에서는 자연의 모습으로 깨우침을 준다. 눈으로 하얗게 덮인 숲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나치 점령하에서 해방되기를 염원하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희망의 빛을 보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잉걸불에 추위를 녹이고 감자 한 알에 곯은 배를 위로하며 땅 속 구덩이에서 내일을 기다린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희망이다. 얼핏 교육서의 느낌이 풍기는 제목의 책이 로맹 가리라는 이름 하에 인간의 저항, 자유를 갈망하는 희망의 빛으로 탄생했다는 데에 팬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그의 처녀작이라 꼭 만나고 싶었던 책이나 로맹 가리의 다른 자아, 에밀 아자르의 작품으로 먼저 그를 만난 나에게는 그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이념 뒤에 이 작품의 내용만으로는 새로운 작가를 만난듯한 느낌을 전해 받았다. 이즈음에서 야네크 아버지의 입을 빌려 그가 말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이 작품에서는 절망에 굴하지 않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 그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있음으로 인해 온몸으로 체화할 수 있는 생의 충만함, 생에 대한 기대, 생의 희로애락, 그 모든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야네크가 전쟁의 폐해를 목도하며 그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인간의 삶을 배워갔던 '교육'은 생의 찬란함보다는 암울함이 배로 거셌지만 절망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법을 배워갔으므로 소년의 삶은 지속할 수 있었으리라. 로맹 가리, 그의 언어를 따라가는 시간은 즐겁다. 비록 아픈 역사의 발자취를 훑고 있지만, 그 덕분에 생이 나에게 전하는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일까. 남는 건 피해자뿐임을 증언하는 야네크의 목소리는 냉소와 분노가 가득하다. 사실 이 지구상의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비롯되고 인간에게서 끝이 난다. 소설에서 인간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땅 위에 절망이란 없을 것(332쪽)이라고 한 것처럼... 더이상의 야네크가 없는 세상을 염원하며...

 

그때 문득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314~315쪽

 



w*****8 2013.03.31. 신고 공감 10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유럽의 교육』진실은 역사의 순간속에, 이 순간 속에 있다.
"『유럽의 교육』진실은 역사의 순간속에, 이 순간 속에 있다." 내용보기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읽었던 그 느낌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이 좋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마음을 울리는 책이란 걸 예상하지는 못했다. 자기를 키워주었던 로자 아줌마를 위해 애쓰던 모모를 보며 가슴 아파 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로맹 가리를 처음 만난 작품이 『자기 앞의 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서야 난 로맹 가리를 머릿속에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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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읽었던 그 느낌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이 좋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마음을 울리는 책이란 걸 예상하지는 못했다.

자기를 키워주었던 로자 아줌마를 위해 애쓰던 모모를 보며 가슴 아파 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로맹 가리를 처음 만난 작품이 『자기 앞의 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서야 난 로맹 가리를 머릿속에 깊이 새겼다.

 

 

출판사 책세상의 책은 내게 『일러스트 이방인』으로 처음 만난 것 같다.

책의 느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책세상에서 로맹 가리의 『유럽의 교육』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책의 출간이기도 했다.

 

 

책의 배경은 폴란드의 한 숲을 배경으로 1942년에서 1943년 사이의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곳이다. 형들을 독일군에게 잃은 아버지는 야네크를 숲속 지하에 숨을 곳을 마련해 숨게 한다. 의사인 아버지는 그에게 절대 나오지 말라며,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한다. 며칠째 아버지가 오지 않자, 야네크는 아버지가 죽었음을 깨닫는다. 전쟁은 그 어느 누구의 삶도 안전하지 못했다. 모두들 가족들을 잃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이 스러졌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다하려는 이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열네 살의 야네크의 숲속 깊은 곳 지하 은신처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깨닫고, 아버지가 일러주었던 대로 빨치산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사랑 조시아를 만나 사랑하고, 전쟁속의 삶, 절망과 희망이 숨쉬는 그곳에서 삶을 배워간다.

 

 

열네 살의 야네크는 빨치산이 머물고 있던 곳에서 대학생이었던 아담 도브란스키를 만난다.

도브란스키는 그곳에서 유럽 꼬마들을 위한 이야기, 동화를 쓰고 있다. 전쟁 때문에 인간들이 절망을 느끼고 있을때,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그 모든 것일 피난처가 될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는 그 책의 제목을 '유럽의 교육'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유럽 아이들의 산 교육이 될 그런 책을 쓰고 싶어 했다.

 

 

 

 

도브란스키와는 반대로 야네크는 전쟁에 대해 희망을 갖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럽, 모두의 희망일 것같은 유럽은 훌륭한 교육으로 치장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의 유럽은 추악한 진실이 있는 곳이라며 도브란스키의 희망론을 부정하는, 어쩌면 간절하게 믿고 싶은 야네크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이네,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225페이지)

 

 

전쟁 속, 배고픔과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때에, 우리는 절망만을 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자유를 위한 강한 희망으로 그 시간들을 버텨내고 있다. 그토록 절망만이 가득한 시간, 사람들에게 자유로울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글을 썼던 도브란스키를 이해했던 야네크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잃지 않게 애를 써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4.08. 신고 공감 9 댓글 21
리뷰 총점 종이책
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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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욱>을 처음 접한 것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이라는 책에서 였다. 그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삶과 사랑을 이야기했던 그 책의 첫 장 소제목이 바로 '유럽의 교육'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럽이라는 곳에서 그가 받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인가..생각을 하고 그 부분을 읽었는데 읽고 나니 그것이 바로 그의 첫 소설의 제목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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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욱>을 처음 접한 것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이라는 책에서 였다.

그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삶과 사랑을 이야기했던 그 책의 첫 장 소제목이 바로 '유럽의 교육'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유럽이라는 곳에서 그가 받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인가..생각을 하고 그 부분을 읽었는데 읽고 나니 그것이 바로 그의 첫 소설의 제목임을 알게 되었다.

서른 한 살에 처음으로 쓴 그의 첫 작품인 <유럽의 교육>..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중 가장 치열한 전투중의 하나인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한창인 1942년 산 속에서 독일군에게 저항하던 빨치산들과 함께 생활하며 성장하는 열 네살 소년 야네크의 이야기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근 마을인 빌노는 로맹가리가 유년기 초반을 보냈던 빌노를 묘사했고

산 속에 숨어 스탈린그라드에서 러시아가 독일군에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추위와 허기와 싸우며 배신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야네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듯 했다.

 

전쟁으로 두 형을 잃고 아버지가 마련해 준 산속의 은신처에 숨어서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야네크.. 아버지는 만약 자신이 찾아오지 않으면 인근 빨치산을 찾아 그들과 함께 하라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더 이상 찾아오지 못하게 되고 야네크는 추위와 어둠속에 홀로 남아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 사람은 죽을 준비가 되었을 때 죽고, 또 너무나 불행할 때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아니, 더는 할 일이 없을 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더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사람들이 찾아드는 길이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여전히 뛰고 있었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은 아니었다. (p27) 

결국 그는 은신처에서 나와 빨치산을 찾아 길을 나서고 각자 사연을 가지고 숲속에 들어와 독일군에 저항하며 언젠가는 찾아 올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있는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체르프와 그릴렌코를 만나 그들의 분대원들과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사령관인 빨치산의 '나데이다'에 대한 활약과 그 전설적 영웅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다른 분대를 만나게 되고 그 분대에서 도브란스키를 만나게 된다.

그는 어떤 절망속에서라도 희망의 끈을 놓치 말아야한다며 유럽의 꼬마들을 위해  더 나아가 유럽의 모든 이들을 위한 글을 써 나가고 그것을 묶어 유럽의 교육이라 이름짓는다.

소설속의 또 다른 이야기가 삽입되는 형식을 취하게 되는데 도브란스키가 분대원들에게 글을 읽어주는형식으로 <산들의 소박한 이야기> <파리의 부르주아><좋은 눈><스탈린그라드 근방>등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찾아 볼 수 없는 전쟁이라는 상황속에서 야네크를 성장시킨 것은 숲속의 무심한 눈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초록의 숲이었다.

가장 아름답고 좋은 대학들 그리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이념과, 훌륭한 업적에 영감을 주었던 이념들을 가르치는 문명의 요람이었던 유럽의 대학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암흑의 시대에 유럽의 교육은 총살집행반, 구속, 고문, 강간,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는 것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야네크는 지금은 막연한 동경의 이야기로 들리게 되는 자유, 존엄성. 형제애. 인간으로서의 명예등의 동화를 위해 이 숲에서 목숨을 내 놓고 있다고 역설하는 도브란스키의 말을 점점 이해하게 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임무를 띠고 마을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알게 된 파이노 치는 독일인 노인 아우구스투스 슈뢰더.

바이올린 신동 유대인 소년 모니에크...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속에 심취해 있는 그 순간은 절망과 혼돈, 증오에서 빠져나와 사랑과 온기를 느끼게 된다.

이렇듯 음악을 들을때, 도브란스키가 이야기를 읽어줄때. 사랑하는 조시아와 함께 있을 때 그리고 눈에 파묻힌 숲속에 새벽이 오는 것을 느낄 때.. 이제 야네크는 어떤 절대적인 확신을 느끼게 된다.

그는 이제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 폴 샤르트르는 <유럽의 교육>을 최고의 레지스탕스 소설이라고 말했다.

전쟁의 포화속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몸을 숨기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저항군들의 이야기들의 활약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여타 어느 전쟁소설과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로맹가리는 공군장교로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자신이 경험을 토대로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그 전쟁속에서 소멸되어가는 인간성과 그 전쟁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뼘 한 뼘씩 자라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 휴머니즘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절망을 무조건 적인 희망으로 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야네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쟁의 상황들.,, 아버지들이 죽임을 당하고, 내가 명분을 세워 누군가를 죽이고. 죽도록 굶주리고,마을을 파괴하고.. 이러한 상황들 속에 놓여있는 것이 훌륭한 학교에 있는 것이고 우리는 정말 교육되었다.. 고 말을 한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현실속에서 살아남는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희망 아니면 절망이라는 것이 아닌 그것들의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더 맘에 와 닿는 것 같다..

 

이제 폴란드의 육군 소위가 된 예나크 ..훌륭하게 교육되어진.. 얀 트바르도보스키..

그의 손에는 도브란스키의 작은 책이 들려있다.

그 책을 개미들이 지나가는 길 위에 놓으니 개미들은 자신보다 더 큰 잔가지들을 이끌고 그 책을 넘어 자신들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잔인하고 불가해한 이 세상.. 개미들이 잔가지 하나를 더 멀리까지 끌로가기 위한 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 우리들도 그저 더 멀리.. 왜 냐고 묻지 않고 길을 가고 있는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 개미들을 바라보는 예나크의 마지막 모습이 인상적이다.

 

로맹가리의 <자기앞의 생>을 통해 모모를 만났고 이렇게 <유럽의 교육>을 통해 예나크를 만나게 되었다. 로맹가리의 손끝에서 탄생된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듯 하다.

모모를 통해서는 인간이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그런 사랑을 보게 되었다면

예나크를 통해서는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보게 되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3.05.31.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유럽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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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교육론에 대한 경험담이 아닌 소설임을 밝혀드립니다. 저도 처음엔 오해했는데, 보다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네요.>이 책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유명한 소설가 로맹 가리(Romain Gary)의 데뷔작입니다.사실, 로맹 가리는 1900년대 중후반에 활동하던 소설가였습니다.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소설들을 집필한 사람입니다.이제 고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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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교육론에 대한 경험담이 아닌 소설임을 밝혀드립니다. 저도 처음엔 오해했는데, 보다보니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었네요.>


이 책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유명한 소설가 로맹 가리(Romain Gary)의 데뷔작입니다.

사실, 로맹 가리는 1900년대 중후반에 활동하던 소설가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소설들을 집필한 사람입니다.

이제 고전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그의 책들은 위의 책처럼 리뉴얼?되어 나오고 있는가 봅니다.

여러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기회가 생겼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가 1945년에 쓴 첫 소설인 "유럽의 교육"은 그가 군인생활을 하던 시절, 전쟁을 치르던 중에 썼던 소설이며 그에게 첫 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입니다.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들은 다소 차갑다 라는 인상이 많이 듭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전쟁을 치르던 시대, 폴란드의 어느 산속의 숲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야네크는 부모님이 독일군에게 목숨을 잃고 혼자가 된 어린 소년입니다. 홀로 숨어 지내던 야네크는 우여곡절 끝에 레지스탕스를 찾아가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 때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페이지들을 지나가며, 야네크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사랑과 자유같은 감정들을 알게 됩니다. 레지스탕스 생활을하며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동료가 죽는 모습까지 보게 되지만 소년은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네크는 전쟁을 통해 사람이란 복잡한 생물에 대해서 하나씩 배우게 됩니다. 전쟁에서 배운 다양한 경험들, 인간관계들, 그 속의 다양한 감정들. 책에서는 이런 것들이 진짜 교육이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작가는 이런 냉소적인 시선을 통해 '삶이란 단순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며, 수많은 잣대를 통해 삶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의 절망에 맞설 수 있는 희망을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건 아니었을지 생각해봅니다.

k*****7 2013.07.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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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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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때는 교육과 관련된 인문학 책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며, 러시아에서 출생한 로맹 가리의 작품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폴란드인데, 실제로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가 참전 중에 쓴 소설로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폴란드는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이며, 그곳의 레지스탕스와 점령군을 한 소년의 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절망적인 그 상황 속에서도 희망, 휴머니즘과 같은 가치를 품고 조금씩 성장해간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유럽의 교육, 즉 전쟁을 통해서 배우는 것들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는 의미이다.

 

소설은 주인공인 열네 살 소년인 야네크와 의사인 아버지가 숨어 있는 숲에서 시작한다. 아버지는 야네크에게 자신이 만약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인근의 빨치산을 찾아 그들과 함께하라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하고, 야네크는 그들과 합류하여 지내게 된다. 평범한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 야네크는 그 과정에서 친해진 독일 병사를 죽여야 하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장면을 작가는 묵묵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 대학생인 빨치산 대원 도브란스키의 영향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집필하던, 완성되지 못한 본 작품과 같은 제목의 유럽의 교육이란 책을 그가 죽은 후에 야네크가 완성한다. 이 소설은 독립을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작가가 묵묵히 비극과 해학을 적절히 섞어 그려낸다.

h******0 2013.07.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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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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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첫소설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는데 내 주관, 취향으론 단편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최고로 꼽는다. 이 책을 포함하여 새들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전반엔 허무와 냉소가 어려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 꺼풀만 들어내면 따스한 인간애와 희망의 메시지로 빼곡 들어차 있음을 금방 알게 된다. [유럽의 교육]은 일견 스산한 찬바람이 이는 냉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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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첫소설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읽어보았는데 내 주관, 취향으론 단편소설집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최고로 꼽는다. 이 책을 포함하여 새들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전반엔 허무와 냉소가 어려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 꺼풀만 들어내면 따스한 인간애와 희망의 메시지로 빼곡 들어차 있음을 금방 알게 된다. [유럽의 교육]은 일견 스산한 찬바람이 이는 냉혹한 얘기같지만 우리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인간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넌지시 일깨우고 있는 작품이다. 전쟁광을 탓하는 거창한 이념 같은 것은 접어두고, 어쩔 수 없이 휘말리게 된 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에, 그러면서 끝내 따스함을 잃지 않고 희망의 빛을 갈망하는 고결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야기는 엉겁결에 빨치산을 찾아간 소년 야네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를 둘러싼 뭇 인간 군상들, 연인을 그리워하는 야블론스키,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유럽의 교육]이라는 책을 쓰는 도브란스키, 독일군에게 몸을 팔아 군사 정보를 빼내는 조시아 등과의 인연이 아름답게 얽힌다. 특히 조시아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행동을 말리지 못하는 야네크의 모습이 너무 절절하게 다가온다. 겉으론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어린 속내는 어땠을까? 아마 까맣게 타들어가지 않았을까.

 

결국 야네크에게 교육이란 전쟁을 통해 체득하게된 인간의 비루함과 나약함, 그런 와중에서도 싹트는 결곡한 인간미를 느껴가는 과정이었다. '전쟁'이란 '학교'에서 빨치산 체험을 하면서 역사와 인류, 시대와 인간에 대해 깨우치게 되면서 성숙해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야네크, 아니 유럽인들은 그래도 인간미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역사가 자연스레 이어지게 만들었다. 로맹 가리는 이렇게 면면히 이어지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고 또 배우고, 다음을 준비하는 존재란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것이 2차대전을 겪으며 유럽인들이 시대로부터 받았던 교육이었다.

 

야네크의 아버지가 남긴 말처럼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그 믿음에 대해서 말이다.

a*****7 2013.07.0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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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끝나도 삶은 소멸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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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보고 소설 맞아?, 생각했다. 『유럽의 교육』은 소설보단 인문서 제목에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은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의 생’을 살았던 로맹 가리의 첫 소설로, 로맹가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 복무하면서 틈틈이 쓴 소설이다. 1944년 『분노의 숲』이란 제목으로 먼저 출간했고 1945년 『유럽의 교육』으로 다시 출간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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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보고 소설 맞아?, 생각했다. 『유럽의 교육』은 소설보단 인문서 제목에 더 잘 어울린다. 이 책은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의 생’을 살았던 로맹 가리의 첫 소설로, 로맹가리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군 복무하면서 틈틈이 쓴 소설이다. 1944년 『분노의 숲』이란 제목으로 먼저 출간했고 1945년 『유럽의 교육』으로 다시 출간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여름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러시아연방 스탈린그라드에서 벌어진 전투로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격렬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의 교육』은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일어났던 시대를 배경으로 숲 속에 숨어 빨치산으로 살며 독일군에 맞서 싸웠던 이들의 이야기를 열네 살 소년 야네크와 대학생 도브란스키의 ‘특별한 우정’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첫 번째 제목 『분노의 숲』이 상황에 충실한 제목이라면 두 번째 제목은 주제의식에 충실한 제목으로 보인다.

 

로맹 가리는 1914년생이니 이 책은 서른 즈음에 쓴 소설이다. 서른이란 나이 때문인지 전쟁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소년이 주인공을 등장하는 소설, 이른바 성장소설과 다른 점이 보인다. 소년 야네크는 ‘죽는 것이 사는 거보다 더 쉬운 것은 아니었다(27쪽)’란 것을 포함하여 몇 개월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아는 것이 많아졌다는 건 어른이 되었음을 뜻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희망을 기대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숲은 치유의 공간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에겐 생존의 공간이었다. 숲 속에 은둔해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는 이들에게 미래는 사치였다. 다행히 야네크는 ‘절망해선 안 된다.(10쪽)’는 아버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야네크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한 말은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66쪽)’였다. ‘그것’으로 인해 삶을 이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교육』은 소설 속 야네크가 만났던, 야네크보다 열 살 많은 대학생 아담 도브란스키가 쓰고 있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도브란스키는 절망의 시간을 살았음에도 삶에 관한 낭만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애어른인 야네크나 낭만주의자 도브란스키는 ‘가면의 생’을 살았던 로맹가리의 모습 중 일부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이어 그 이야기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지. 그들은 그로써 신화가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유, 존엄성, 형제애, 인간으로서의 명예. 우리 또한 이 숲에서 동화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있는 거야.”(85쪽)

 

우리가 교육(education)하고 교육을 받는 이유는 현재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꿈꾸던 삶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힘들지 않았던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삶은 언제나 불행이었다. 어쩌면 교육은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부, 혹은 전부일지 모른다. 생은 끝나도 삶이 소멸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교육하고 교육받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에는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그럼에도 중요한 것들이 존재한다. 현실의 절망 속에 그것들은 너무도 쉽게 잊힌다.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기억시키기 위해 도브란스키는 책을 써야 했다.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중략>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225쪽)

 

야네크에겐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314쪽)

 

어린 나이에 흔들리는 인간성을 너무 많은 본 야네크는 도브란스키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지만 그의 생각을 존중했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을 잇는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야네크는 도브란스키가 자신을 대신해 책을 끝내달라는 부탁을 수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땅 위에 절망이란 없을 것이다.(332쪽)

 

삶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라 부모조차 내 편이 아닌 잔혹 동화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절망은 거북이 등처럼 인간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삶에 지지 않으려면 인간은 절망과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야네크가 도브란스키를 만나지 않았다면 야네크는 불안한 희망조차 품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가 자살한 지 일 년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로맹가리에게 진 세버그는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꿈꾸게 한 ‘그것’이었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m****6 2013.05.23.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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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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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pp.314-315)   로맹 가리는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며 자신이 가는 날을 '결전의 날'로 쓰고 노년에 자살한다. 작품수도 적지 않은데다 저마다 뛰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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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pp.314-315)

 

로맹 가리는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며 자신이 가는 날을 '결전의 날'로 쓰고 노년에 자살한다. 작품수도 적지 않은데다 저마다 뛰어난 문학성을 획득해 이미 독보적 위치를 갖는데도 불구하고, 두 이름(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뒤에 감춰진 숨길 수 없는 재능과 스물네 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이뤄낸 영화배우 진 세버그와의 사랑, 1년 사이로 자살한 커플, 유대인 출신의 제정 러시아 태생이지만 파리에서 활동한 경력, 외교관 이력, 두 이름의 동일작가라는 사실이 사후 유서로 드러나는 등 특이한 이력의 전기(傳記)가 오히려 삶 뒤에 숨은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몇 안되는 작가다. <유럽의 교육>은 그의 데뷔장편으로 2차대전 중 폴란드를 배경으로 숲에 숨어 때를 기다리는 항독 빨치산들의 삶을 다양한 인간군상에 빗대어 서정적 필치로 그려냈다.

 

열네 살 소년 야네크는 은신처에서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돌아오지 않자, 빨치산의 무리로 흘러들어가 생활하면서 전쟁 중 타락과 참상을 몸소 체험해나간다. 고작 1년이라는 기간동안 놀랍도록 눈부신 변화를 감내하는 입체적 주인공이기도 하며, 순수와 타락의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꿈꿀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듯한 겨울, 흰 눈과 숲 사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평화, 어둠과 빛 사이의 결을 어루만지던 소설이 비로소 희망과 절망을 포갤 때 우리는 감동한다. 순수한 야네크의 희망에 서서히 때가 묻는 모습으로부터 아름다움의 극치로 뭉친 한 편의 동화를 써내려가거나 읽어주는 도브란스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믿음과 일부이자 전부인 상징. 도브란스키가 죽기 전 완성해줄 것을 부탁하며 야네크에게 건넨 소설은 세대와 세대를 잇고, 세대에서 세대를 건너 승리의 깃발을 펄럭이게 되는 먼 미래를 짐작하게 한다.

 

빨치산 대원들과 나치 대원들 사이에서 몸을 내주며 정보를 얻는 조시아를 좋아하게 되면서 암흑과 고난, 어둠과 절망이라는 터널을 건너가려는 야네크 역시 매번 이유없는 학살과 총탄소리, 배고픔과 투병 등의 악순환과 마주하면서 이 순간이 바로 현실이자 진실이라는 결론에 머문다. 자유라는 거대한 이념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고통, 죽음과 평온 사이의 앏은 간극이 야네크의 비범한 인생 속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것처럼 읽는 나 역시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꾼다. 더 나은 미래와 따뜻한 빛과 온기 그리고 사랑과 평온을 꿈꾸는 이들의 죄. 끔찍한 현실을 참상의 재현을 통해 실감시키려는 시도 대신 따스하게 스며드는 온기 어린 시선으로 엮어내는 묘사력과 문체는 로맹 가리의 문학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신념과 고집, 적과 동지, 선과 악, 희망과 절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이 세상의 복잡하고도 가변적인 인간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소설.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최대소원인 소녀와 조금씩 조금씩 이 순간에 체념하거나 적응해가며 어두워지는 소년의 행복이 <유럽의 교육>을 읽는 자세이자 '유럽의 교육'이 전달하는 정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존재하기에 절망도, 희망도 느낄 수 있는 것. 암흑이 빛을 갈구하는 것. 믿음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 차갑게 굳어진 이 세상에서 한톨의 믿음마저 없다면 살아있다는 사실의 존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로맹 가리는 특정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대신 특정 상황에 대한 묘사로서의 위트와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주로 써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은 채 꿋꿋이 그 길을 고수함으로서 얻어내는 값진 보석. 그것만이 믿음의 지도를 보여준다고, 언젠가 소망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는 확신으로 달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미소짓게 된다. 모든 인물이 참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여겨진다. 절망의 상황에서조차 꼭 쥔 그 열쇠, 상태를 상태로서 소중하게 만드는 그 희망의 티끌이 참 고맙다. 이제야 그가 모든 것을 썼다, 더 쓸 것이 없다고 했던 뜻을 이해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같다.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읽기는 계속 될 것이다.



s*****d 2013.06.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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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Éducation européenne (1945)] - 로맹 가리 저 / 한선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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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맹 가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 <유럽의 교육>.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2년 즈음을 담고 있다. 로맹 가리는 추위와 굶주림과 절망의 상징인 겨울을 배경으로 삼고서 독일의 식민지인 폴란드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다루고 있었다. 네이버 백과를 찾아보면 폴란드에서 벌어진 레지스탕스 운동을 가장 비참하다고 설명한다. <유럽의 교육>의 독립투사들이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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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맹 가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 <유럽의 교육>.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2년 즈음을 담고 있다. 로맹 가리는 추위와 굶주림과 절망의 상징인 겨울을 배경으로 삼고서 독일의 식민지인 폴란드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다루고 있었다. 네이버 백과를 찾아보면 폴란드에서 벌어진 레지스탕스 운동을 가장 비참하다고 설명한다. <유럽의 교육>의 독립투사들이 빨치산(partisan)으로 지칭되는 이유도 아래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33.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이 깊은 숲 속에 숨어 살고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그들을 '빨치산'이라고 불렀고, 시골 사람들은 '산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을 굶주림과 추위와 절망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었다. 그들은 땅을 파고 덤불로 가려 만든 은신처에서, 사냥꾼에게 쫓긴 짐승들처럼 예닐곱씩 무리를 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했다. 그 지방에 부모나 친구가 있는 사람들만이 먹을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아니면 차라리 죽어버리기 위해 숲 밖으로 나갔다.


가장 비참하였던 것은 폴란드의 경우이다. 폴란드에서는 런던의 망명정부 지도 하의 레지스탕스와 스탈린의 지지를 받은 폴란드 공산당이 서로 대립하였으며, 1944년 8월 1일 전자가 바르샤바에서 독일 점령군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스탈린이 이것을 방치하였기 때문에 수만 명의 시민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하였다. 이와 같은 저항운동도 오늘날에는 남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볼 수 있듯이 강력한 군사적 저항으로 변모하여 레지스탕스라기보다 빨치산이라 부르고 있다.   -두산백과 레지스탕스 -


2.


139. 나는 증오를 알고 있어. 독일이 나에게 증오를 가르쳐주었어. 부모님을 잃으면서, 추위와 배고픔을 겪으면서, 땅 밑에서 살면서, 그리고 만약 길에서 독일군이 나와 마주치더라도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나를 불 앞에 앉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이 나를 보며 오직 피부 속에 총알을 쑤셔박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증오를 배웠어. 독일군에게는 오직 총알뿐이니까. 가슴을 겨냥하는 총알, 희망을 겨냥하는 총알, 아름다움을 겨냥하는 총알, 사랑을 겨냥하는 총알... 나는 그들을 증오해


이토록 독일을 증오하는 인물은 나치 독일에 부모를 잃은 열네 살의 야네크다. <유럽의 교육>은 열네 살의 소년 야네크의 공간을 중심으로 전지적 화자의 서술과 인물의 심리묘사가 소설의 대부분을 이룬다. 야네크의 시점과 일련의 일화들을 통하여 우리는 나치 독일의 습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독일 군인. 이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산속에서 숨어 생활하는 빨치산의 대립을 읽을 수 있다.


<유럽의 교육>에서는 야네크의 시점이 닿지 않는 서사들도 포함하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소설은 더욱 풍성해진다. 특히, <유럽의 교육>안의 또 다른 소설. 즉흥적이고 영웅적인 성향의 빨치산 무리인 도브란스키가 쓴 <유럽의 교육>이 그런 기능을 한다. 도브란스키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독일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당신 혼자가 아님을 일러줌으로써 반독일 정서를 강화하고, 항독 운동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의 상징이 빨치산 나데이다라는 영웅이었다.


317. 우리의 용기를 다시 북돋우고 적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우리는 빨치산 나데이다를 만들어냈어. 불사, 무적의 대장, 절대로 적에게 붙잡히지 않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체포되지 않는 대장, 어둠 속에 있을 때 용기를 내기 위해 노래를 부르듯이,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낸 거야. 하지만 너무나 빨리 그는 실체를 가진 존재가 되어 우리 사이에 현실로 존재하게 되었어. 경찰도, 점령군도, 그 어떤 물리적 힘도 접근하여 흔들어댈 수 없는 대단한 인물, 그 불멸의 존재에게 모두가 정말로 복종하는 것 같았어.


3.


이들의 격렬한 대립으로 피해를 입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빠지지 않는다. <유럽의 교육>에서는 야네크가 아닌 또 하나의 시각으로 이를 표현한다. 야네크의 연인이 된 조시아의 심리 묘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교육>의 서사 중에서 가장 탁월했던 순간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225. ... 그녀는 기다렸다.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녀는 즈보로브스키 맏형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데 '마지막'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렸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고, 공기가 얼음처럼 혹독하게 차가웠고, 까마귀가 까깍댔고, 하늘은 창백했다. 그녀는 자문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지구는 둥글며 자전한다든가, 맞춤법이 어떻게 된다든가 하는 것 들 제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다 깨우치는 것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기다렸다. 그녀는 나무들을 보았고, 그들의 단단한 껍질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엄마를 생각했고, 야네크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더이상 전쟁이 없게 하기 위해서 스탈린그라드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어.' 하지만 이미 그녀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사람들은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 병사의 힘은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 그리고 문명의 발자취들은 폐허일 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문단을 통해 <유럽의 교육>의 모순을 조시아가 가장 먼저 깨달았음을 알 수 있었다. <유럽의 교육>이 말하는 유럽의 교육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유럽의 교육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제국주의로 향하게 했으며, 나치 독일은 그 교육의 가장 큰 효율을 위해 움직이는 이데올로기 집단이었다.


그에 맞서 저항하기 위해 탄생시킨 빨치산 나데이다 역시 또 다른 산물이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 위한 극단적인 저항 이데올로기. 이것 또한 유럽의 교육이 낳은 비극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조시아의 말처럼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4.


야네크는 독일의 장교가 아닌 어떤 독일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독일에 대한 분노를 품은 채 일반 군인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 때. 그 순간의 부조리한 경험을 통하여, 유럽의 교육이 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획된 것의 모순을 알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한 독일이 독일이라는 이름에 속한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결국, 조시아가 깨달은 것을 깨닫게 된다. 야네크는 여전히 분노에 머물러있던 도브란스키. 이것이 상징하는 전 세계의 항독 지식인 무리를 넘어선다.


327. 그는 얼어붙어 있는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시대가 저물 때까지 변화하지 못하고, 부화하지 못하고, 부활하지 못하고, 발아하지 못하고, 재생하지 못하도록 선고받은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일급 범죄를 저지르도록, 죽이고 죽도록 선고받은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지평선이란 영원히 되풀이되는 과거였다. 그곳에서 미래란 새로운 무기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승리란 새로운 전투를 의미할 뿐이었다. 그곳에서 사랑이란 눈에 들어온 티끌이었다. 그곳에서는, 얼음이 배를 가두어 힘없는 팔처럼 노를 축 늘어뜨리게 만들듯 증오가 마음을 옥죄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그의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조시아의 자그마한 손도 만연한 냉기가 낳은 작은 얼음조각에 불과했다. 조시아가 그의 목에 팔을 둘러 기대더니 따라 울기 시작했다. 세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그녀의 마음을 스쳐서가 아니었다. 그가 너무 슬퍼 보이고 너무 넋을 놓은 듯이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도울 방법을 알 수 없어서였다.


328. 추악한 짓을 벌이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해요. 타데크 흐무라가 옳았어요. 유럽에는 가장 오래된 성당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 가장 커다란 도서관들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지죠. 세계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유럽을 찾아와요. 공부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그 유명한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이에요. 얼음판 위에 스케이트를 신고 앉아서,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방아쇠가 당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요.


330. 야네크는 생각했다. 믿음을 품고 영감을 받은 인간 꾀꼬리들이 이 영원하고 경이로운 노래들을 부르며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 매혹적인 목소리에 담긴 약속이 실현되기도 전에, 추위와 고통과 경멸과 증오와 고독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죽어가게 될까? 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탄생이, 얼마나 많은 죽음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기도와 꿈이,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래가, 얼마나 많은 어둠의 노래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5.


야네크의 시간은 고작 일년이 흘렀다.  

그러나 일년의 시간동안 야네크는 성장했다.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유럽의 교육은 야네크(로맹 가리)의 손으로 새롭게 쓰일 것이다.

로맹 가리의 첫 소설이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편, 야네크의 성장은 어쩌면 인간의 가능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30. 야네크는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도브란스키보다살이나 어렸다. 하지만 그 대학생을 향한 거의 아버지와도 같은 보호 본능이 갑자기 뜨겁게 솟구쳤다. 그는 빈정거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우월하고 세상사에 통달한 듯이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깨를 으쓱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한 거냐고 신랄하게 묻지 않으려고 애썼다.   


k*******7 2016.06.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내용보기
나이든 변호사에게는 독일군에게 오빠를 잃은 이상주의자인 어린 아내가 있었다.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또 아내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변호사는 아내에게 자신의 결연한 행동을 전해달라 부탁하며 자살폭탄공격에 자원한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변호사의 집을 찾은 빨치산들은 독일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구역질을 참지 못한다.'유럽의 교육'에는 로맹
"유럽의 교육 - 로맹 가리" 내용보기

나이든 변호사에게는 독일군에게 오빠를 잃은 이상주의자인 어린 아내가 있었다.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또 아내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변호사는 아내에게 자신의 결연한 행동을 전해달라 부탁하며 자살폭탄공격에 자원한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변호사의 집을 찾은 빨치산들은 독일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구역질을 참지 못한다.


'유럽의 교육'에는 로맹 가리 특유의 직설적이고 불편한 방식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지배하에 놓인 폴란드인들의 저항과 순응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현재 진행형인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로맹 가리에 빠져 있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자기앞의 생', '흰개'에 이어 네번째로 선택한 책은 꽤나 역설적인 제목의 '유럽의 교육'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교육'이 '새들은..' 만큼이나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아우슈비츠 생존기를 먼저 봤기 때문인지, 폴란드인에 대해선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아우슈비츠가 폴란드에 위치했던 만큼 현실적으로 유태인을 괴롭히던 주체가 함께 수용되었던 폴란드 죄수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런 선입견은 아무 의미도 없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이다.


이 책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태백산맥'이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등에서 보던 우리의 경우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표현방식은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을만큼 직설적이다. 상황을 드라마화 하거나 독자의 감정선을 자극하기 일부러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해 무관심했던 그리고 한때는 중요한 가치였던 것들을 편한 이유를 대며 가볍게 뒤집어왔던 내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쯤되면 로맹 가리의 칼끝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런 면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함께 본다는 면에서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보다 더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9 2013.07.1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