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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낭만을 통해 혁명을 소비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181쪽 이 구절을 읽은 순간 책 내용이 모조리 엉켜버리는 것 같았다. 내 주머니엔 돈이 없지만 내 바깥엔 모든 것이 넘실넘실 풍요로운 이 '엿' 먹을 시대, 그 중에서도 가장 열 받는 것은 뚝뚝 흘러내리는 이미지들. 이런 시대에 그림을 붙잡고 끙끙댄다는 게 웃길 수도 있겠다. 잠시 잠깐 "우오어, 이거 끝내준다" 하는 기발한 이미지를 본 후에 망각..... 이미지를 대한다는 건 잠깐의 자극에 반응하는 소비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이 책을 읽으며 배운 건, 그림이라는 이미지에 담긴 피와 땀의 냄세를 맡는 법 아닐까. 모든 것이 그러하듯, 그림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 사람, 순간의 감성이 엉켜서 탄생한 그림. 그 모두를 읽고 느낄 수 있다면, 허겁지겁 주어삼키고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고 느끼고 대화하고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저 배만 채우는 것과는 다른 그림 읽기가 되겠지. 이미지를 소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 철철 넘치는 흔해 빠진 이미지들의 시대에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를 먹더라도 좀 제대로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떡볶이 한 접시도 친구랑 수다 떨며 먹으면 좋지 아니한가? '낭만' '신비' 등 뻔한 딱지 붙이고 끝내기엔 그림은 너무 영양가가 넘치는 '먹거리'인 것 같다. 철학자가 군침을 흘릴 만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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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참 당혹스러웠다. 11편의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의 의도에 대해 파악했다 싶으면 다음 글을 읽으면서는 헷갈려서 헤매야만 했다. 워낙에 서로 다른 11명의 철학자가 나름대로 썼으니 글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층도 다를 것이고, 또 쓰는 방식도 다를 것이고, 무엇을 의도하는지도 다를 것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종잡을 수 없었다는 것은 나의 능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이것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뭔가 문제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선 제목이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철학자’가 누굴 지칭하는 것인지 글마다 헷갈린다. 이 책에 글을 보탠 한국의 철학자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철학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유명한(!) 철학자들일까? 아마도 이 글을 쓴 저자들조차도 헷갈린 것이 아닐까? 철학자들이 철학자들에 대해 썼으니 그들이 쓴 한 문장의 글도 도대체 누구의 것인지 헷갈린다. 그 다음 ‘사랑’의 의미도 또 무엇일까? 사랑은 감정인데(부인할 수 있을까?), 철학자들이 그림을 사랑한 방식은 좀 다른 것 같다(이 책에 따르면). 철학자들은 그림을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거나 혹은 자신의 철학이 유도되는 어떤 지점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걸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 그림을 사랑하였다면 그들의 삶 속에 그 그림이 어떤 의미였는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철학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대한 것은 책 속의 철학자도, 여기 글을 쓴 철학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림은 보이지가 않고, 난해한 글만 보이고, 그마저도 투명하지가 않다. 그래서 그림이 어려운 것인지, 철학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철학자가 어려운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간다. 분명 그림은 재미가 있다. 어떻게 김정희 <세한도>를 보며 고절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베이컨의 <자화상>을 보면서 비뚤어진 자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를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볼 수가 있었다. 코로의 그림들은 정말 잘 그렸단 생각이 들면서 푸근했고, 쿠르베의 <생각의 근원>은 솔직히 충격적이다(처음 보았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미술관에 간 화학자』에 이어 다시 만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눈망울은 잔상이 오래 남았다. 고흐의 신발 그림은 어떤가? 나는 그의 정물화나, 이글거리는 밤이나 자화상보다 그가 그린 불쌍한 사람들 그림들이 더욱 좋고 감동스럽다. 그런데 이것들은 그림이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었다. 도판을 감상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글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거나 느꼈어야 하는데, 물론 중간중간 밑줄을 그어놓은 것은 있지만, 다 읽고 책을 덮은 순간 무엇을 얘기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래도 꼭 짚어서 무엇인가를 얘기하라면, 이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림은 재미있으나 철학은 재미없다? 화가는 흥미롭고 알고 싶지만, 철학자에 대해서 관심은 생기지 않는다? - 이 얼마나 끔찍한 감상문인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미술관에 간 화학자』에서의 감동과 호기심을 이 책에서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13.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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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나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상도 참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자식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또 나름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없는 살림에 아버지께서 세계의 명화책을 사다 주셨는데 그 책을 보면서 커서 나도 이 책속의 위대한 화가들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멋진 화가가 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했다. 하지만 중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화가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마는 않고 또한 미대를 진학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고 그림도 손에서 놓고만다.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들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직접 그림을 그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술 전시회를 가는 편이고 또한 그림관련 여러 책자들을 구매해서 읽는 편이다. 서점에서 여러 종류의 책을 구매하다 우연찮게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쥐어잡은 사나이의 모습이 보였는데 제목을 보니 특이하게도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이란 책이다.부제를 보니 기묘한 미술로 비딱한 철학 읽기란 것으로보아 교양 철학책이면 한편으로 교양 철학책인 것 같은데 책 목차를 봐도 그 정체가 다소 아리송하다. 제1부 철학자, 화가의 외침을 감각하다 -제1장 「세한도」를 읽는다는 것: 김정희와 사마천 그리고 공자?? -제2장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메를로퐁티, 세잔의 혹은 세잔으로의 길?? -제3장 삶을 완성하려는 자, 여백을 즐겨라: 팔대산인의 「묘석도」와 선불교?? 제4장 들뢰즈, 베이컨의 외침을 감각하다: 베이컨의 「자화상」와 기관 없는 신체 -제2부 철학, 예술의 기억을 재배치하다 -제5장 기억의 재배치가 필요한 시간: 코로의 「모르트퐁텐의 추억」과 베르그송의 변화의 지각 -제6장 서로 다른 두 혁명: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와 파리 코뮌 -제7장 그러나 정복은 불가능하다: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 제3부 철학과 예술, 관계를 사유하다 -제8장 운동과 시간, 그리고 인간: 르네상스 원근법과 수태고지 그리고 바로크 -제9장 철학이 말하는 구두, 예술이 보여주는 구두: 고흐의 구두와 하이데거 -제10장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과 정치: 벤야민의 매체 이론과 하트필드의 포토몽타주 -제11장 예술, 미적인 자율성과 사회적 사실 사이: 달리와 아도르노 책 제목만 봐서는 이 책은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다룬것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명화에서 영감을 얻은 철학에 관한 이야기 즉 철학을 낳은 미술 작품들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책이라고 할수 있다. 예를 들면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한켤레에서 사물의 본질을 푸코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자각의 문제를 깨닫게 됬다고 이 책은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조광제, 전호근, 이현재, 김성우 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소속 철학자 열한 명이 모여 철학과 미술에 대해 쓴 책이다 보니 그 기획의도는 알겠는데 뭐랄까 일관성이 없단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제 1장 세한도를 보면 추사 김정희에 대한 그림 설명이 나오는데 이 장에는 다른 장과는 달리 철학자가 안나온다고 생각된다.이 경우 철학자란 이 장을 쓴 한국 철학자를 의미하는지 좀 아리송하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철학자들이다.그러다보니 책의 내용도 미술보다는 철학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데 실제 책속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하나같이 멋진 그림들이지만 그 명화에 함께 설명되는 철학들은 그림도 다르고 그림에서 영감받은 철학자도 다르고 또한 각 장을 쓴 한국인 철학자도 다르다,또한 책을 읽는 나 역시 철학에 문외한이다 보니 솔직히 책의 흐름을 이해할 수가 없단 생각이 든다.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은 비록 명화가 책안에 들어가 있지만 본질은 철학책이란 생각이 든다.미술+철학의 퓨전으로 양 쪽의 독자들을 다 잡으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을 위해 좀더 쉽게 풀어썼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혹 미술사 관련 도서로 착각하고 이 책을 구매하려고 하는 분이 계신다면 이 책은 당연히 교양 철학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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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과는 좀 거리를 둔 나의 책장의 한 귀퉁이에 놓여있었다. 항상 서양, 동양 그림에 대한 지식을 좀 쌓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시기상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고 읽게 되었다.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 책 제목에서 책의 내용을 예측하기로는 철학자가 평소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소개를 해준다고 생각했다. 책에 그림이 많아서 그림에 무지한 나로써는 읽기로 결심했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보니 그림보다는 각각의 파트를 맡은 철학전공자가 고대(선대) 철학자들과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주로 고대 철학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각, 시대적 배경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가들은 철학전공자들에게는 당연하게 아는 사람들이겠지만 나에게는 다들 처음 들어볼 정도로 일반인한테는 생소한 철학자들 이었다. 그림에 무지한것 만큼 철학에도 기본적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몰라도 책의 내용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쭈욱 읽다가도 스토리를 놓치기 일수고 다시 돌아가서 읽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책의 중반부를 가서는 이마저도 포기 그냥 쭈욱 읽어갔다. 책의 파트에 따라 내용의 수준이 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몇번을 읽어도 모르는 파트가 있는가하면 쉽게 읽혀지는 파트도 있었다. 책을 엮을 때 내용의 수준의 정도를 비슷하게 유지했으면 좀 더 좋았을거라 생각이 되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파트별로 살짝 읽어보고 어렵다 싶으면 그냥 그 파트는 넘어가고 쉬운 파트만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