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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갈수록 몸을 사리게 된다. 전부일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부질없어 지는 순간들을 수 없이 겪어 내면서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때도 ‘전부’가 아닌, ‘일부분’으로 제한을 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사랑을 하는 거다. 그와 가진 시간들이 이별하고 나면 마치 죽을 것 같더라도 긴 시간의 장사는 없다고, 그가 어떤 머리카락 색을 가졌었는지 그 때 어떤 말을 했었는지 아련해져 버리고 마니까. 그걸 알아 버리고 말았으니까. “당신하고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많이 슬프고 쓸쓸하겠지만 또 남아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래서 사랑은 지나가는 봄볕인 거고, 세상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힘든 고통이니까 난 사절하고 싶거든요. 근데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가면서도 당신 만나면 금세 흔들리고, 잘 안되고 말아요.” (_146)
그녀가 맡은 ‘꽃마차’에 새로운 이 건PD가 자리를 잡으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른이고 어른이 아니고 그 기준도 모호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딱 선 긋고 나눌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이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재차 확인하려 드는 것 같다. ‘설마 이게 사랑일까? 이 마음을 가져도 되는 걸까?’ 하고 따지고 보면 한쪽만 전부 잃을 것도 없는데 내가 잃을 것이 많은 사람처럼 몸을 사리며 행동한다. 경험들의 축척은 무서운 것이리라. 두 번째 읽는 책이다. 로맨스 소설이라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간직해 온 마음이다. 2008년도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 건’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좋았다. 무뚝뚝한데 자상하고 상처가 있는데도 감싸주고 싶고 멋있고 그런데 말이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그런 남자는 딱 밥맛이 없다. 가질 수 없는 관계에 흔들리고, 그 나이 먹도록 그 마음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하니 말이지. 흥! 2015년에 나는 재미있게도 ‘공진솔’에 더 애착이 간다. 길게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그녀의 고백이 쉽지 않았을 텐데, 자신을 이겨내고 감정을 깨고 나와 그에게 담백하게 전하는 그녀의 숨결이 오히려 더 마음이 쓰였다. 어느덧 내가 그녀 편에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자랐나 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하는 연애의 순간들보다 그들이 나누는 이별의 장면들에서 더 많이 설레고 더 많이 마음이 아팠다. 부딪히려는 남자와 피하려는 여자, 사랑이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닐 거라고 다짐하고 이를 악물고 눈을 껌뻑 거리는 순간들. 그들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내 코 밑까지 닥쳐와서 번번히 숨을 참아야 했다. 그런데 왜 난, 공진솔과 할아버지의 데이트에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리 그들의 관계를 매듭짓고 말았나. “사람이 말이디…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지디 않아요.”
관계를 돌아보게, 아니 싫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책이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만나서 축적했던 내 마음과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조금 더 자라야지, 조금 더 나아가야지 하는 다짐도 하게 됐고.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일부러 2013년 개정판으로 빌려다 봤는데, 개정판에는 선우와 애리의 부록이 생겼다, 아쉽게도 잘 와 닿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 책을 7년 후에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떨까?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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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로맨스는 맞지만 십대처럼 무분별하지도 않고, 이십대처럼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하거나 격정적이지도 않다. 삼십대를 막 넘어선 그들은 적당히 계산할 줄 알고 절묘한 타협점을 알며 치명적인 내상에 미리 방어할 줄도 아는 사랑과 이별에 어느 정도 단련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사랑을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낯가림 심하고 소심한 성격에 편협한 인간관계를 지닌 9년차 라디오 방송 작가 공진솔. 가을 개편으로 인해 PD가 교체되면서 이건 PD와 호흡을 맞춰가고 둘은 일상속에 물처럼 스며들기 시작한다. 진솔은 건 PD의 탄력적인 융통성과 상대의 경계를 허무는 짖궂은 미소에 조금씩 화답하고 중독되어 가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스스로 예기치 못한 심장의 통증을 듣게 된다. 작가는 전반적인 인물들의 내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곤 하지만 대부분 진솔의 심리상태나 마음을 드러내는 데 할애하고 있어 제한적인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보인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랑의 빛깔이 있다.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진솔,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모른다고 답하는 건, 길지 않게 기다리겠다고 방어막을 치는 진솔. 뜬구름 같은 남자를 백 년처럼 기다리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애리, 십 년을 연애하고도 결혼에 골인 못하는 건의 대학 동기 선우와 애리는 영화 <그랑 블루>와 같은 사랑을 나눈다. 애리를 애타게 바라보는 건, 건을 바라보며 아픔을 삼키는 진솔의 사랑이 꼬리에 꼬리를 달고 물려 있다.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쿨한 여자 희연, 오로지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가람, 젊고 잘생긴 모습만 기억되고 싶은 이필관 할아버지까지.
사랑이라는 건 참으로 찰나적이고 우습다. 편지의 맞춤법이 틀려서 상대에게 퇴짜를 맞기도 하는 걸 보면. 사랑을 할 때, 별 뜻없이 툭툭 던지는 말에도 파도타기 하듯 올라갔다 내려왔다 심장은 미친 듯 하루에도 수십번씩 널뛰기를 한다. 감각이 섬세한 안테나처럼 상대를 의식하고 일거수일투족이 미묘하게 심기를 건드린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마음이란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곁에 있어도 쓸쓸함을 모두 구원할 수 없다.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이 전부는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 그 사람이 생각난다면 그게 결국 사랑 아닐까? 사랑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이기심은 더이상 사랑일 수 없게 만든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순식간에 바뀌는 게 또한 사랑이니 시작은 사랑이지만 이별은 추하기 이를 데 없다.
서울 도심 곳곳의 풍경과 추억을 비추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아내 프란체스카가 살았던 사택 이화장의 정취, 고즈넉한 어둠이 내린 창경궁, 허물어져가는 신촌역, 사라지는 통일호 열차, 새해 첫 타종을 울리는 보신각, 낙산공원, 마포, 남산 식물원 등 삭막한 서울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서울은 아니지만, 템플-터틀 혜성이 1866년에 뿌리고 간 잔해가 몇만 광년을 날아와 2003년 11월 13일 밤하늘에 무수히 떨어졌던 잊었던 소식도 반갑다. 지리멸렬했던 서울의 회색빛이 사라져버리고 서울 하늘의 결계가 비로소 진솔에게 해피엔딩으로 둘러쳐진다.
소박한 부록으로 딸린 단편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 역시 사랑이야기다. 죽어서도 불을 지피는 남포등 불빛과 파꽃 그리고 천주, 비 오는 날만 입구가 열리는 찻집은 마치 흔적을 조금씩 지워가는 인사동 거리의 풍경을 살풍경하게 스케치한 듯하다. 사람도 그게 가능하다면 한 번쯤 포맷되고 싶다는 생각 가끔 해요. 깨끗하게 가슴 탁 트이면서 숨쉴 수 있게. -P157
그렇지만 명심해. 사랑은 부등호가 되면 안 돼. 이퀄이 돼야 한다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마. 짝사랑 기간 길어서 좋을 것도 없고. 연애는 활력이지만, 짝사랑은 소모전이야. -P245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P395
위의 세번째 문장은 분명 모순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마음이 간절하고 애틋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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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읽는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인지! 오글거려서 읽다 덮을 뻔 했다. 수위가 높은 애정의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런 장면이 나왔으면 무덤덤하게 읽어 내려갔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읽은 하이틴 소설의 느낌이 난다. 오글거렸다는 것은 나도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사랑의 뜨거움과 긴장감을 지나버린 지금에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전형적인 수준이라고 본다. 연신 ‘그랬었지’ 하면서 사랑의 전율을 지나 평온함의 단계에 접어든 내 나이에선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인다.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떨림이 없다. 이 소설에서는 내내 사랑의 떨림이 깔려있는데. 건에 대한 진솔의 감정은 사랑의 시작과 절정을 향한 떨림의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이 소설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남성 작가가 로맨스 소설을 쓰다니, 신기하단 생각을 했다. 읽을수록 이건 남성 작가의 문체가 아니다. 진솔의 입장에서 표현되는 감정의 조각들은 이미 나도 경험했던 것들이다. 그래, 이도우 작가는 여성이구나. 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방송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살렸나보다. 라디오 방송 작가와 PD가 남녀 주인공의 직업으로 등장하는 것 보니. 제목이 마음에 든다. 잔잔한 사랑 이야기지만 봉숭아꽃이 지고 살짝 건드리면 씨앗주머니가 툭툭 터지듯 죽은 줄 알았던 사랑의 설렘이 여기 저기 봉숭아 씨앗처럼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자꾸만 스스로에게 ‘너도 나이가 들었구나’ 한다. 단순히 사랑 얘기만 하는 소설에 허전함을 느끼는 것 보니. 만화를 읽는 느낌도 나고 수줍은 로맨스 영화 한 편 본 것 같기도 하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살고픈 여자가 용기 내어 사랑 고백을 했지만 남자는 사랑에 뒷걸음친다. 그의 뒷걸음에 그녀도 사랑의 끈을 놓고 차갑게 돌아선다.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음을 감추기로 한다. 자기 보호를 위함이다. 일기처럼 써내려갔고 술기운에 주절거리기도 했던 나의 감정들이 들킨 기분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여자들이란 비슷하구나. “건의 마음이 마치 마른 땅처럼, 오랜, 가뭄에 갈라진 흙바닥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먼지가 일어나는 건조한 슬픔. 그를 적셔줄 샘물 같은 사랑이 그녀에게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샘솟는 사랑. 끝없이 흘려보내주는, 적셔주는 그 어려운 사랑.”(351p) 사랑과 연애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과 경험을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굳이 그렇게까진 아니지만 말갛게 웃고 있던 내 청춘의 한 자락의 싱싱함을 돌려받는 기분은 든다. 그래서 잠시 젊어진 기분이다. 내겐, 그 정도가 딱이다. 그 정도의 느낌과 회상을 던진 책. 딱 거기까지. 아마, 단순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이런 류의 로맨스가 또 당길 테지. 그때쯤 이도우의 [잠옷을 입으렴]도 도전해볼까 한다. 비록 성장소설이라 하지만, 이도우만의 달콤한 문체는 그대로 녹아 있을 테니. |
내게 있어서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숙제처럼 무언가를 다시 해야 할 때나 꼭 필요한 어떤 부분을 찾아내야 할 때 같은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는 한,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쳐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성격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몇 번씩이나 손길이 가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출간된 지 딱 10년,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나고 같이 흘러왔던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처음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던 이 책을 만났을 때는 로맨스소설인줄도 모르고 만났다. 읽다보니 점점 빠져든다. 말랑말랑한 감정 하나만을 주고 있던 게 아니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로맨스소설이되 로맨스소설만은 아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저절로 그 공감의 둘레 안으로 파고들어가게 했다. 몇 번을 도서관에서 이용하다가 결국은 구매하고야 말았다. 이 책은 나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던 운명인 것처럼 그렇게, 나와 같은 공간에서 그 긴 시간동안 이 책으로 울고 웃고, 위로 받고 보듬어주고, 공감과 이해를 같이 경험해왔다. 이 책의 어디쯤 펼치면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있어서 맞춤형으로 처방전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이쯤이면, 나의 모든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이 책에게 ‘절친’이라고 이름 붙여줘도 되지 않을까? ^^ 그리고 몇 년 동안 들어왔어도 질리지 않을 이 말이 어느 순간 이 책과 동의어가 되어가기도 했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서른 한 살의 라디오 작가 공진솔과 서른세 살의 라디오 피디 이건의 사랑이야기다. 프로그램 이름마저도 구수한 <노래 실은 꽃마차>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되면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다. 그런데 이 남자 건PD, 시집까지 냈던 시인의 경력을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소심한 진솔은 더 긴장한다. 글 좀 쓴다고 해서 혹시나 작가를 괴롭게 할까 싶어 마음의 경계를 세우지만, 시간과 마음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마음이 다가갈수록 서로를 더 알게 되고 동료 그 이상의 감정이 싹튼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겪게 되는 사랑이란 풍랑을 두 사람은 어떻게 건너갈지가 궁금해 내 마음도 동행한다.
라디오라는 단어가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여전할 수 없었던 걸까. 한때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것이 엽서나 편지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워드프로그램으로 타이핑한 것이 아닌 손으로 악필일지라도 손으로 꾹꾹 눌러서 쓰는 그 힘에 온 마음을 담아 적었더랬다. 마치 그 순간 그렇게 적어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마음을 그곳에 담아내야만 했었다. 그리고 운이 좋아 전파를 타고 나에게로 다시 날아오면 무언가를 털어내는 듯했다. 가슴 속 이야기들을 날려 보내고 듣고 싶은 음악 한곡과 함께, 그렇게 또 한 번 마음이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던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틀리지 않고 쓸까 하는 마음과 적어가는 동안 한 번 더 내뱉는 말들이 주는 개운함과 우표를 붙이고 날아가는 시간, 다시 또 돌고 돌아 나에게 들려오던 시간들이 지금은 사라진 듯하다. 문자 한통에 실시간으로 소개되는, 누군가의 사연이나 이야기가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만나는 이 책은 그래서 조금 더 느리게 흐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 역시나 그렇게 느리고 단단하게 흐를 수도 있다는 듯이……. 그런 방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깊어져가는 모습을 건과 진솔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두근거렸던 시작과 서툴게 차단했던 마음과 그래도 사랑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감정들이 풀어내는 것은 온기였다고,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른다고.
아주 어렸을 적에, 삼십대가 된 어른의 모습은 사랑이 아니라 삶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 그려지고는 했었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하고, 몇 살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이미 정해진 매뉴얼대로 진행되고 있는 삶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그렇게 정해진 것은 없다고 생각되더라. 그런 순간들 속에서 진솔과 건을 만났다. 서른이 넘은 사람들,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본, 가슴에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왔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듣고 싶어진다. 평범한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나도 같이 녹아드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번쯤 사랑에 실패해봤던 이들이 조심조심, 그러나 진심을 다해 또 다른 사랑에 다가가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마음이 사랑인 걸까 거듭 확인하고 싶어지고, 사랑이라 표현하고 다가가도 될는지 조심스럽고, 이 사랑이 무사히 앞으로 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고……. 그러면서도 계속 가고 싶은 이유, 사랑이란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이유를 버리지 못해서인 건 아닐까, 라고. 어쩌면 이리, 쉬운 일이 하나도 없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잊는 것도 죄다 어렵다. 만만한 일이 뭘까, 세상에서. 마음속에서 메아리가 윙윙 울리고 있었다. (352페이지)
이 책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은 건이 나쁜 남자라고 했다. 가만히 있는 진솔을 흔들어 마음을 고백하게 만들더니, 정작 고백을 듣고서는 그 마음을 자신의 마음대로 정의해버렸다.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라고. 진솔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여놓고 순간 진심을 말해버린 자신의 마음을 바보 같이 수습해버렸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런 건이 나쁜 남자일까? 몇 번을 읽었어도 나는 잘 모르겠다. 온전하게 진솔에게 가기 위해 망설이던 것도,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을 때 따라올 기다림도, 그가 주었던 아픔들에 대해서 그가 치유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남자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건을 나쁜 남자라 말할 때 속으로 웅얼웅얼 하고 싶은 말을 참고는 했다. ‘진짜 나쁜 남자를 못 봤구먼.’하고 말이지. ^^ 나라고 나쁜 남자를 알아봤자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다만 이 남자, 건이 진심을 말하고 다가가는 모습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이해해주고 싶은 아량이 발동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현실감이 느껴지게 했던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어서, 일상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시행착오를 하는 게 사람이라서 인정하고 싶은 남자라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우리의 모습이 많이 담겨 있어서 더 애틋한 소설이다. 바람 따라 떠도는 자유를 느끼고 싶은 선우, 그런 선우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애쓰는 연인 애리, 자신의 진짜 사랑이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인지 찾지 못해 우왕좌왕 고민했던 가람, 사랑으로 받은 상처에 다시 오는 사랑이 주춤거렸던 진솔과 건.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해주신 이필관 옹까지.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이들이 취하는 행동,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메시지들이었다. 언제 어느 때 다시 만나도 그때그때의 마음에 스며들어 치유해주는 힐링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책을 다시 찾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테지. 마음이 두 동강 났을 때, 나를 다독여주고 싶을 때, 봄의 시작에 찾아온 지금의 꽃샘추위를 혼내주고 싶게 따스함 전해 받고 싶을 때.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이 책을 만나야 할 이유가 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로, 더 이상 이 책을 로맨스소설이라 부르면 안 될 것 같다. 단맛 쓴맛, 살아가는 매 순간의 모든 맛을 경험하게 해주는 인생소설이라 명명하면 어울리려나. ^^ 여전히 사서함 110호의 <노래 실은 꽃마차>의 사연도 계속되고 있을 것만 같다. 아직도 진솔과 건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2013개정판에 부록처럼 수록된 단편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의 제목은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을 것이다. ^^ 그래서 내용도 연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 단편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내용이다. 오래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의 남자와 파꽃을 그리는 여자가 남포등이 켜지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안에 두 사람의 추억과 함께 한 이야기가 겹쳐져 하나로 이어진다. 내용이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도록~ ^^
Dear Diary 잘 자요. 좋은 꿈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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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
'사서함'이라는 말 참 오랜만이네요. 라디오와 결별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 말인 것 같아요. 한 때는, 그러니까 라디오를 한창 옆에 끼고 살았을 때는 '사서함'이라는 단어만큼 친근한 것도 없었죠. 그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이든 매일 같이 항상 나오던 것이 바로 '사서함'이었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이 소설의 제목을 보자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묻어나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개정판이더군요. 처음은 2007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나왔을 당시에도 꽤나 인기를 얻어서 이 작품을 아시는 분이 많더군요. 그 때는 우리나라 소설은 그다지 읽지 않을 때라 몰랐습니다. 과연 어떤 소설이길래 이렇게 6년이 지나 개정판이 나오게 된 것일까? 그 호기심에 이끌려 책을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주인공이 라디오 프로그램의 PD와 작가, 그렇게 모두 라디오와 관련된 인물들이어서 라디오를 한창 듣던 때를 향한 제 그리움도 한 몫 했지만요....
필력이 참 좋더군요.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마저 정확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탓에 페이지가 거침없이 넘어갔습니다. 모든 이야기 중에 남의 연애담이 가장 재밌다는 말마따나 그들이 빚어내는 사랑 이야기는 자꾸만 뒷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여 마치 24편 모두를 사흘만에 보게 만들었던, 중독성에 있어 대표적인 미드 '24시'를 보는 것 처럼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더군요. 저 사실 이런 로맨스물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뻑 빠져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도우 작가가 캐릭터와 상황을 재밌으면서도 설득력있게 연출한 까닭이겠죠. 또한 라디오 구성작가라는 그의 이력대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얽인 이러저러한 현실감 넘치는 풍경들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햇수로 9년째 라디오 구성작가로 일하고 있는 공진솔. 그녀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가을 개편을 맞아 새로운 PD와 일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이건. '이건 뭐야?' 할 때의 '이건'이 아닙니다. '성은 이(李), 이름은 건'인 것이죠. 하지만 솔직히 공진솔 그녀가 '시인'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PD 이건을 처음 만났을 때 든 기분은 바로 '이건 뭐야?'였습니다. 무턱대고 대화를 걸어와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을 말하게 하고, 은근히 감추고 싶은 속내도 자꾸만 드러내게 하고. '도대체 이 남자 나에게 왜 이러는거지?'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했으니까요.
공진솔. 이름은 진솔이지만 사실 그녀는 그리 솔직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파리의 연인'이란 드라마에서 박신양은 '사랑한다고 왜 말을 못해?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해!'라고 다그쳤는데 이 공진솔도 그러한 다그침이 좀 필요한 사람입니다. 이건은 그녀를 '범생이'라고 부릅니다. 공진솔이 누군가 규칙으로 정해졌다고 말하면 그것이 아무리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도 지키는 지라 그걸 비꼬아 부른 것이죠. 그렇게 공진솔은 타인을 많이 신경쓰는 타입입니다. 남들의 눈에 엇나가는 걸 내켜하지 않고 그리 어렵지 않다면 가급적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타인을 배려합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완전 '천사표'로 여기시면 곤란합니다. 아, 이건 공진솔이 나쁜 여자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녀의 그런 행동이 전혀 다른 목적에서 나왔다는 그 말이죠. 다시 말해 동기가 그리 순수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그러한 행동은 모두 사실 자기 보호 본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죠.
상처받는 것. 그것이 공진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녀는 이름 그대로 솔직해지지 못하는 것이죠. 타인이 아무리 그 마음의 진심을 담아 말해도 섣불리 믿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자기 내부에 '자기애'가 강하다는 말도 됩니다.
'가시나무새'란 노래를 아시나요? 바로 그 가사와 같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그 가사 말이죠.
공진솔도 그러합니다. 물론 이건도 별로 다를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에 이건의 내면은 공진솔의 내면만큼은 나오지 않기에 이건 추측이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그런데 이 공진솔과 똑같은 인물이 소설에 나오긴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건의 친구로 나오는 '선우'입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완전히 '가시나무새' 같은 존재입니다. 자기 속에 자기가 너무 꽉 차서 곁에 선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존재죠. 소설엔 두 개의 사랑이 나옵니다. 하나는 공진솔의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선우와 애리'간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결국 공진솔과 선우는 비슷한 사람입니다. 쉽게 자기를 열지 못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기를 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이 두 사랑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에서 우리는 이도우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사랑은 그 뭐냐? 결국은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요...
문득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무철이 자기 누나를 찾아가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오수는 그런 놈이야. 나는 죽어도 나를 못 버리겠는데 오수는 사랑을 위해 자기를 완전히 버려버리지..." 저는 이 무철의 대사에서 그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진심이 무엇인지 느꼈기 때문에 특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물론 지극히 저 개인적인 느낌입니다만,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도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에요.
소설의 후반에 공진솔은 10년간 라디오 구성작가로 죽어라 일하고 책으로 치면 수십권 분량의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모두 전파가 되어 흩어졌을 뿐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이건에게 토로합니다. 그런 공진솔에게 이건은 그 대답을 다음과 같은 시로써 들려줍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흩어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그러고보니 어린왕자에게 여우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즉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무가치한 것도 아니라고 말이죠.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을 버리라를 달리 말하면 그건 자기를 버리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그 빈 곳을 세상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세상을 껴안을 수 있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랑이 들어올 수 있게 나를 내려놓기' 제게 이도우의 소설은 바로 그것을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오수와 여우가 그리 자주 겹쳐보이기도 하더군요. 책을 덮었을 때 문득 기형도의 '빈집'이라는 시가 떠올랐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공진솔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가두다'라는 느낌이 불현듯 기형도의 '빈집'을 호출했던 게 아닐까 여겨져요. 사랑은 묘합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혹시나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우리 스스로를 더욱 더 가두게 만들거든요. 공진솔의 모습은 공진솔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쩌면 바로 우리의 보편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욱 한번쯤 벗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사랑을 하고 있든, 앞두고 있든간에 말이죠. 뭐, 워낙에 인기 있는 작품이라 이런 추천이 별 소용없을 것 같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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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기전까지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많고 사랑받는 책인지 전혀 몰랐다. 선물해준 지인의 말로는 로맨스로 분류되지만 일반소설같은, 장르로 가긴 아까운 책이라고 평을 했지만 사실 크게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었다.
아, 근데...이거. 할말을 잃게 만든다. 감정선이 해일처럼 몰아치거나 나를 압도할 만큼 스케일이 서사적으로 큰 건 아니고, 동시대 어느 곳에선 정말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법한 평범한 남녀의 이야기인데, 그 미세한 공감대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예를들면, 여주인공 진솔은 직업이 라디오작가인데 그건 내가 대학졸업반일때 하고 싶었던 진로였고, 그걸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미련때문에 실제 내가 진솔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들.
작가가 문창과를 졸업하고 실제 카피라이터와 작가 생활을 한 것에서 소스가 나와서 그런지 굉장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라디오방송국 풍경이 펼쳐지고 그 안에서 PD인 건과 진솔을 중심으로 주변인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덧대어지며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함을 유지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거기까지 가는 길이 좋의 그렇지." 건의 친구 선우의 말인데... 지금 내가 고민하고 아파하는 것 중에 하나를 보고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울렁거리기도 했고,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도, 아직은 방화이 덜 끝난듯한 그도, 그런 건을 사랑하는 자신도, 완벽하지 않아서 더 나아질수 있을 거라고..(268p)
누구나 완벽을 꿈꾸지만 그러지 못함에 좌절하지 말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로 받기도 했고,
다들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거지, 싸워가며 맞처가며 가능한 조금씩 더 행복하려고.(302p)
아,맞다. 다 그런거지...하면서 되새겨보기도 했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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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우연이 되어, 계속해서 그 우연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책을 읽으며 낙산공원과 이화장에 가보고 싶다..고 혼자 되내었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뮤지컬을 보러 공연장을 찾아 헤매다 발견한 이정표엔 낙산공원과 이화장이 표시되어 있었다. 두근. 어쩌면.. 옆에 있던 친구만 아니였다면 내 발걸음은 바로 그리로 향했을지도~^;;ㅋ
잔잔하게 30대의 사랑이야기를 써보고자 했다던 작가님의 말씀과는 달리, 내게는 진솔과 건, 그들의 이야기가 그리 잔잔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서른을 이젠 훌쩍 넘어 중반을 달려가는 뭔가 뚜렷한 듯 하면서도 뚜렷하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서 읽은 '사서함~'은.. 진솔과 건의 콩닥콩닥 사랑이야기에는 그저.. 그랬었지..하는 이미 지나간 이의 무심한 마음 상태를 느끼게 하며, 애리의 말마따나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듯한 나를 느끼게 했다. 그저 담담하고, 잔잔하며 조용하기만을 바라는..
희한했다. 자꾸만 가라앉는 것 같아 여기저기 다녀봐 볼까~하고 서울산과 관련된 에세이를 얼마 전에 샀었는데, '사서함~'을 읽으면서 낙산공원과 이화장도 가보고 싶어지고, 한때는 출근하다시피했던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 근처(ㅋ 작가님이 '사서함~'을 세상에 내놓았을 즈음에! ㅋ 또, 우연!!)도 다시 가보고 싶어지고, 종각역에 있는 보신각종을 보러도 가고 싶고.. 다~ 다녀보고 싶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서울을.. 구석구석, 어쩌면.. 비오는 날에만 열릴지도 모를 그 문을 찾아..^;;;ㅋ
p.39 "뭐 하러 사요, 나한테 달라 그러지. 사인까지 멋지게해서 줄텐데." 그녀는 시선을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감상이 어땠느냐고 안 물어봐요?" "그런 걸 왜 물어요. 작가 손 떠난 글은 읽는 사람 몫인데. 본인들이 알아서 느끼겠지."
p.67 "지하도만 건너면 바로 들어갈 수 있는데 발이 묶이다니." "다 그런 거예요. 경계 하나 넘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p.97 "난 종점이란 말이 좋아요. 몇 년 전에 버스 종점 동네에서 산 적도 있었는데, 누가 물어보면 '157번 종점에 살아요' 그렇게 대답했죠." "종점? 막다른 곳까지 가보자, 이런 거?" "아니, 그런 것보다는… 그냥 맘 편한 느낌. 막차 버스에서 졸아도 안심이 되고, 맘 놓고 있어도 정류장 놓칠 걱정 없이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다는… 그런 느낌이요."
p.215 아, 너무 열심히 깠나? 슬며시 졸렸다. 그와 같이 있으니 분명 설레는데, 그러면서도 아주 아늑하고 조금쯤 행복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글펐다. 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서글픈 이유 따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이 좋아서, 이대로 고요히 두고 싶은 기분. 진솔은 졸렸지만 몰래 눈을 부비면서도 맞은편 방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그와 같이 있고 싶었다.
p.290 어둠이 짙은 유리창 너머 카페촌의 불빛들을 응시하면서 진솔은 멍하니 생각했다. 웬일인지 올겨울엔 마지막인 것들이 많다고. 잘 봐둬야지. 낡은 역사도, 사라질 기차도. 그리고 올겨울 그 마지막 풍경을 그와 함께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추억이란, 사라지는 풍경이란, 그 자체로만 남는 것은 아니니까. 그때 함께한 사람으로 인해 남는 것이기도 하니까.
p.364 "사람이 말이디… 제 나이 서른을 넘으면, 고쳐서 쓸 수가 없는 거이다. 고쳐지디 않아요." 진솔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보태서 써야 한다. 내래, 저사람을 보태서 쓴다… 이렇게 생각하라우. 저눔이 못 갖고 있는 부분을 내래 보태줘서리 쓴다… 이렇게 말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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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있어>, <위험한 신입사원> 책을 읽다보니 달달한 로맨스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로맨스 소설을 검색해보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 눈에 띄게 많았다. 너무 많이 읽어 손떼가 가득한 책도 있었으며, 너무 읽고 싶었는데 단종? 되어 읽지 못했는데 새로 발행되어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 들이 가득했다. 난 베스트셀러 강력추천 이라는 글을 보고 몇번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책은 정말 강력추천할 만큼 몰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책은 .... 광고에 말려들어간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지? 라는 생각이 드는 책 들이 많아서 난 베스트 셀러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지 않는다는건 손해보는 일이라는. 이유 없는 구입욕구가 나왔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바로 .. 이야기가 나왔다. (서두가 긴 책보다는 난 이런 책이 너무 좋다.) 작가 진솔, 피디 이건 일이 손에 안 잡히거나 왠지 마음이 들뜨고 심란할 때면 연필 몇 자루를 까는 게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칼끝에서 밀려나가는 가느다란 나뭇결을 쳐다보는게 좋았고, 검은 흑연을 사각사각 갈아내는 감촉도 좋았다. (한때 나도 샤프보다는 연필로 쓰는 걸 너무 좋아했다 내 감성을 볼펜또는 샤프로 표현하는것보다는 연필로 글을쓸때마다 소리가 나면서 소리와 함께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서 지금도 난 연필로 쓰는걸 좋아한다. 진솔이 처럼 연필 깍을때 나오는 나무 냄새도 너무 좋았고, 연필을 깍을때 마다 나는 나무 냄새도 내 마음을 알아 주는 것 같았다) 진솔은 어느순간 건이를 보면 무슨조화인지 갑자기 가슴이 두근했다. 진솔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져 미소가 배어나왔다. 이건은 진솔이를 많이 생각하는지 친한친구들 선우 애리에게 진솔이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누구나 관심있는 사람이 생기면 주변사람들에게 그 사람 이야기를 묻지도 않았는데 늘어놓을때가 있을거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하는거 보면은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는 없다. 이건의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구절 진솔은 친구에게 약속을 바람받고 나오는길 비가오는 바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건에게 전화가 왔었고, 이건 재미있게 놀고 있냐면서 물어보다가 약속이 펑크난 사실을 안게 되었다. 지금 비가오고 있는데 우산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었다. 좋았다. 진솔의 마음도 이와 같을거라고 난 믿는다. 따뜻했다. 누군가 내가 궁금해서. 전화해 재미있냐고 물어보고, 비온다는소리에 어디가지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주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은 이 사실만으로도 행복한것 같았다. 포근했다. 난 이런 만남을 좋아한다. 나 사랑해라고 말을 하면 더더욱 좋은 만남이 되겠지만 이건처럼 난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하면서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이 난 좋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꼭 그렇진 않아요 갓 스무 살 넘긴 아가씨였다면서 그 나이에 꿈 많은 심정에 그런 쉬운 글자 틀리는 남자 싫어질 수도 있죠 뭐 아무 재능 없어도 편지 한장 멋있게 보내는 남자한테 끌릴수도 있지 않나? 그런 걸 탓하면 안 되지. 나에게도 20대의 사랑이 있었다. 진솔의 말 처럼 ... 20대의 사랑이라면.. 재능이 없어도 멋있게 보이는 .. 사람이 좋았다. 능력이 없어도... 그냥 그 사람이 좋았다. 내가 좋아 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하지만 지금 20대 후반에 접어 들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면. 속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정도.. 는.. 속물처럼..... 사랑을 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한다.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게 사랑이 아니면 또 뭐란 말이야. 그렇지만 명심해 사랑은 부등호가 되면 안돼 이퀄이 돼야한다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마 짝사랑 기간 길어서 좋을 것 도 없고 연애는 활력이지만 짝사랑은 소모전이야 알지? 난 사랑을 할때는 항상 부등호였다. 그것도 내가 더 많이.. 사랑하는 쪽으로...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지만.. 사랑이 부등호여도. 후회는 없다. 난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걸.. 해줬기 때문에. 사랑이 이퀄이 되면은 더 좋겠지만. 그런 만남은 흔치 않기때문에... 부등호가 된다고 해도... 그 사람은 사랑하는것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사랑하겠다고 말했으니 남아일언 지키라고 하는거… 흔들리지 말라고 하는 거.. 그것도 몰아 붙이는 거예요 마음이 시키는 일은 어쩌라는 거야 그때 당신 집 뒷산에서 내가 얘기했을 때 오래 기다리진 않겠다고 말했었죠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할 만큼 생각할 게 많다면 그렇게 오래 들여다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감정이라면, 번번이 그 사람이 아플 때 마다 당신 마음도 같이 아파서 미치겠는 거라면… 그건 아니거든요… 나 아니면 안되는 꼭 내가 필요한 . 그런 절박한 감정은 아니거든요 그냥 당신은 내가 좋겠죠 인간적으로 사랑한다면서 기껏 여기까지예요 내가 한번 흔들렸다고 그렇게 쉽게 도망치나? 고백을 하면 그저 사랑이란 게 무난히 찾아올 줄알았어? 파도 하나 없이 평탄할 줄알았냐고 사랑해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소설. 내가 20살때 사랑을 하면서 바보 같은 짓을 했던일들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서로 한 곳을 바라보며 행복할 수 만 있다면 너무나 좋을텐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거. 누군가는 상대방보다 더 ..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더. 아파해야하는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싫은건 아닌데.. 하며 고민하는 남자. 이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책 속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게 만든 책 사랑에 관하여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나 또한 경험했고 나또한 아파했던 내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던 그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며 기다리며 사랑하는 상대방을 지켜주는 이건과 진솔 이제는... 그 두 사람이 잡은 두 손을.. 절대 놓치 않았으면 한다. 지금와서 생각하는거지만.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감정을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게 사랑이 맞다면... 내 옆에 있는 내 심장을 뛰게 해주는 사람에게.. 나.. 당신이.. 좋아지려고하나봐요 라면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 알 수 있다. 나의 20대의 사랑은 진솔과 이건처럼.... 이해라는걸.. ... 못하고 사랑을 했다. 20대의 사랑이..... 좋은기억이 많이 남지 않았던 이유는.. 내 감정을 속이면서 만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아.. 그냥외로우니깐.. 헤어지면.. 슬프니깐.. 헤어지면... .. 에이 .. 모르겠다하면서 내 감정을 숨기고 나몰라라 했었다. 왜 그때 내 감정이 내 마음이 아니라고하는데... 맞을거야 하면서.. 계속해서 내 사랑을 유지했는지 아직까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내가 20대에 읽었더라면 조금더.. 이쁜 사랑을 조금더 아파했겠지만 기억에 오래남으며.. 지금와서 꺼내봐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누군가에겐 말 할 순 없지만.. 내 기억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기고 싶었던 추억들을 다시 진솔이와 이건을 통해 꺼내볼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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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능력자'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책은 첫 장부터 필력이 심상치 않았다고 할까.. 구미가 확 땡기는 문체였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이처럼 독특하지 않았다. 읽기 어려운 문체가 아니었으나 저 두 책이 처음부터 엄청나가지고 비교적 흥미가 덜갔다 ㅠㅠㅠㅠ 사실 읽다가 반납할 일자가 다가오자, '그냥 반납하고 다른 책 빌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이 평점이 높기도 하니까 그냥 읽기라도 하자 했는데!!! 몇 장 넘기고 나니까 이야기가 엄청 재밌다. 확 몰입된다고 해야하나.. 다음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하기도 하고.. 그래서 폭풍처럼 읽었다. 나도 연애할 때가 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서 여주와 남주의 마음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ㅠㅠ 이 책의 작가님은 어떻게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 둘 다 이렇게 잘 아실까? 두 사람의 마음을 표현도 잘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작가인 여주 공진솔과 피디인 남주 이 건이 주인공, 그리고 서브 주인공으로 이 건의 친구 선우와 애리. 선우와 애리는 연인 사이인데 이 건이 애리를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고 진솔은 이 건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이유는 이 건이 진솔을 동료로서 많이 좋아해서 진솔과 자꾸 같이 있으려고 하고 잘 챙겨줬기 때문에 진솔은 그런 이 건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선우와 애리는 서로 좋아하지만 선우의 엄청난 자유분방함 때문에 애리가 마음을 앓는다. 애리가 마음아파 하는 것을 보는 이 건은 마음이 아프고, 이건이 마음이 아프니까 진솔도 마음이 아프고.. 이건 뭐 사각관계도 아니고 ㅠㅠㅠㅠ 내 마음 아프게 시리.
책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은
- 남기고 간 그의 웃음이 부드러워서 진솔은 한순간 숨이 막혔지만, 곧 그런 감정을 지워버리려 애썼다.
누군가를 좋아해본 사람들은 아는 감정. 좋아해서는 안되는데 마음은 끌리는건 어쩔 수가 없다. ㅠ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이 사람을 좋아하면 안되는데 마음은 이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 진짜 슬프다 나는 이 나이에 이 감정을 엄청나게 잘 알고 있다. ㅠㅠㅠㅠㅠㅠ
- 마음 한구석 쿡쿡 아려오는 아픔이 있었지만 진솔은 그냥 외면해 버렸다.
이 감정을 또한 느껴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즐겁게 놀고 있을 때 .. 질투와 슬픔이 섞인 느낌. '마음 한구석 쿡쿡 아려오는 아픔' 이라니, 어떻게 제 마음을 그렇게 잘 아시는거죠 작가님 ㅠㅠㅠ!?
- 복도를 지나치는 동안 진솔의 이성이 스스로 설득했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내 마음이 이럴까. 무슨 세기의 비밀도 아니고, 낭만적인 맹세나 은밀한 약속도 아닌 것을. 나한테 그 말을 했을 땐, 그는 순간적으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처음 고백하는 것 처럼, 그때 그 마음은 그랬을거야. 그렇지만 왠지 서운한 건 무슨 까닭...? 이성은 그렇게 속삭였지만 감정은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 구절은 진솔이가 이 건에게 이 건이 애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솔은 이 건에게 '이 말은 처음하는 말이다' 라고 들었건만, 그 사실을 희연이도 알고 있어서 희연이가 진솔에게 '건이오빠가 애리 좋아하는거 아세요?' 라고 말해서 진솔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다시 희연이 '건이 오빠랑 저랑 엄청 친하거든요. 우리는 모르는 비밀이 없죠' 하고 싸가지없게 말하고 나서의 장면. 진솔의 생각과 느낌을 잘 나타내주었다. 이 때 진솔은 건이에게 끌리고 있던 때라 희연에게 그 사실을 듣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것이다. 나도 이 부분을 읽을 때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이 건에게 서운한 동시에 실망했다. 아니 남한테 처음 말하는거라며? 뭐지 이 배신감? 그리고 관심이 없으면 자꾸 마음주게 하지나 말라고 이 나쁜남자 이건아 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라지만 멱살 잡아주고 싶었다.
- 진솔의 감각이 섬세한 안테나처럼 건을 의식하고 있었다. (P.117) 건의 일거수일투족이 미묘하게 심기를 건드렸고, 무시하듯 찬바람부는 그의 태도에 무심할 수가 없었다. 상처받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마음이란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구절은 페이지 쪽수를 적어놨다! ㅎㅎㅎ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꾸 신경쓰이고, 자꾸 보게되는 마음을 '안테나 처럼 건을 의식하고 있었다' 라고 멋지게 표현되었다. 이 구절은 진솔이랑 건이가 냉전 사이일 때의 장면인데,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인줄 알았던 '애리를 향한 건이의 마음'을 희연이도 알고 있어서 ,혼자 마음 아파했던 진솔이 밀당을 시도하다가 너무 지나치게 당겨버려가지고 둘의 관계에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는 중이다. 진솔이 건이에게 '당신이 애리 좋아한다는 말, 나한테만 한게 아니었어요? 나한테만 이야기 한거라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면 건이가 왜 진솔이 화가 났는지 이유를 알아서 오해가 풀리겠다만, 그렇게 말하면 진솔의 마음을 들키는건 물론이오, 게다가 속좁아 보이잖아 ㅠㅠㅠ 그래서 아무말도 안하고 건이에게 차갑게 대하자 건이도 진솔에게 삐져버린다. 이래서 여자와 남자가 싸우는걸까. 여자는 마음에 뭐가 걸리면 말도 못하겠고 그 사람을 마음속에서 뿌리치려 냉정하게 대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가 왜그러는지 이해가 안되겠고 저 태도는 정말 짜증나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인걸까.. 생각이 들었다. 건이도 진솔에게 차갑게 대하자 진솔도 상처받는건 어쩔 수 없었나보다. 나도 여자라서 그런가. 남자가 살살 달래주고 왜 그러냐고 애교부려주면 좋았으련만. 자기를 내버려두라는 진솔의 말에 진짜로 내버려뒀다가 말을 안해주니까 자기도 짜증내는 이 건. 눈치 점수 30점이다. 땡 탈락
-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가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녀가 당긴다고 해서 무슨 소용일까 P. 234
좋아하니까. 나라도 도움을 된다면 어려운 일이라도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다. 근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다면, 내가 주려고 한 도움과 나의 마음이 무엇이 되는 걸까ㅠㅠㅠㅠㅠㅠㅠㅠ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또 마음이 아프다. 나는 지금 이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라서 아는걸까, 느껴본 적이 있어서 아는걸까 그것도 모르겠다.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어제부터 토익학원에 다니기 시작해서 숙제가 왕창 많아졌다. 로맨스 소설하면 인터넷에 떠다니는 것은 진짜.. 막장 연애아니면 맨날 연애만하고 앉아있는연애 것만 봐서 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진짜 재밌었다. 특히 진솔의 마음에 감정이 이입되어 나도 같이 슬프고 기쁘고 ㅠㅠㅠ 마지막에 다달았을 때 왠지 내가 연애 다한 것만 같았다! 음... 나는... 연애 하고 싶지만... 애인도 없고 썸도 없고 썸도 생길 기미도 없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때 내 미래에 대한 투자나 왕창 해놔야지... 너도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나중에 우리 둘 다 여유가 생기면 같이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 |
신간이 기다려지는 한국 작가들이 있다. 내겐 천명관, 김영하, 성석제, 박상륭, 이재익, 유광수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내 완소 작가, 이도우. <사서함110호의 우편물>의 초판이 2004년 5월에 출간되었고, 개정판이 2007년에 출간되었으니 무려 7년, 아니 8년 동안 작품 소식이 없다. 그녀의 작품은 2003년에 출간된 데뷔작 <사랑스런 별장지기>, 그리고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딱 두 편이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두번째 작품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한 라디오 방송국의 PD와 방송작가의 사랑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방송국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찾는 과정에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소설과 작가가 내 주변에서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책이 배달되고, 주말 내내 이 책이 주는 아름다움과 행복감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며칠 지나 다시 한 번 읽어봤다. 내가 미처 놓친 디테일이 다시 살아났다. 장면 장면이 너무 예뻤고, 대사에 설득력과 힘이 있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책의 표지에는 작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라디오 구성작가, 카피라이터로 일해 왔다는 두 줄의 정보가 고작이었고, 나머지는 이 책에 대한 에디터의 설명, 그리고 이메일뿐이었다. 첫번째로 이 책을 읽었을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작가의 성별이었다. 어느 순간, "이건 도저히 남자 작가가 쓸 수 없는 여성의 심리묘사"라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작가 이름은 이도우. 우리나라에 천재 소설가가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딸 많은 집의 막내 아들인가? 이런 표현과 묘사를 어떻게 남자가 할 수 있지? 내 궁금증은 검색으로 이어졌다. 지금이야 네이버 검색창에 그녀 이름을 치면, 인물정보와 함께 블로그도 나오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네이버를 시작으로 야후, 네이트, 구글 등의 자료를 뒤지고 뒤진 끝에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모자를 눌러쓴 단발머리 여자의 옆모습이 나타났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름만 보고 아무 생각없이 남자 작가라고 짐레짐작한 것이다.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 순간 이 소설의 모든 장면과 대사들이 내 뇌 속에서 리와인드되었다. 책상에 앉아 스탠드 불빛을 벗삼아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글을 쓰는 남자 대신, 가을 낙엽을 밟을까봐 조심스럽게 발길을 벤치로 옮겨 앉아 두툼한 수첩에 수성펜으로 글을 쓰는 여자가 그려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 대학로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는 친구 커플에서 8,90년의 정서를 짙하게 느꼈는데 작가는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88학번. 단순히 젊은 작가가 쓴 청춘 로맨스소설인줄만 알고 보다가 <진주난봉가>가 나와 깜짝 놀랐는데 그 의문도 풀리는 순간이었다. 왜 그때 다니엘 스틸과 노라 노버츠 같은 할머니 작가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묘사와 대사가 몇몇 있기는 하다. 노래로 따지자면 음이탈이거나 감정 과잉 같은 것인데, 작품이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서 그것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가장 놀라운 것은 3인칭 시점의 장점을 극대화시켰다는 것.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3인칭 시점을 잘 이용한 작가가 있었던가. 특히나 신호등 앞에 서 있다 민방위 공습이 울려 어쩔줄 몰라 하는 여주인공과 분주한 행인들의 모습,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방송국 유리창에 붙어 전화하는 남주인공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하일지가 <경마장 가는 길>에서 부엌과 찬장 묘사를 몇 페이지에 걸쳐 천천히 설명한 것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에서 미도리의 접혀진 주름을 따라 애무하는 모습과 겹쳐질 정도로 명장면이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주 눈가가 뜨거워진다. 마치 첫눈을 보고 눈물을 흘리듯이. 아름답다, 아름다워.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은 한 일본 독자가 이런 리뷰를 올린 적이 있다."이 소설을 새벽에 다 읽고 나서 여자친구가 있는 기숙사 담을 넘었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그녀를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 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기분이 그랬다. 너무 벅차고 감동적이었다. 마침 책에 작가의 이메일 주소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 인터넷 서점에서 최근에 읽은 소설 중 좋았던 작품과 두 줄의 느낌을 적어달라고 했을 때 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소설적 서사를 밀어낸 스토리라인의 서정성, 눈에 잡힐듯한 캐릭터, 펄떡이는 물고기 같은 문체 그리고 진한 여운과 감동이 담긴 소설.
이 소설의 시작은 여주인공이 하얀 이면지를 깔아놓고 커터칼로 연필을 깎는 장면이다. 이 작품 이후 8년 동안 신작 소식이 없는 이도우 작가. 그녀는 어쩌면 오늘도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다음 작품을 위해 연필을 깎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그녀의 손을 거쳐간 이야기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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