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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 이전의 어떤 철학자가 심리학자였던가? 오히려 그들은 심리학자의 반대인 ‘고등사기꾼’, ‘이상주의자’이지 않았던가? 나 이전에는 심리학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런 때에 최초의 심리학자라는 것은 하나의 저주일 수 있다.-
위에 문장은 니체의 자평으로 그는 스스로를 심리학자로 생각했으며 심리학이란 용어가 생긴 이래 최초의 심리학자는 그인 것도 분명하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프로이트보다 앞서 심리학적 관점과 체계로 자신의 철학을 세운 것이 니체였다고 한다.
그러나 심리학이나 심리치료로서 철학의 역할과 기능을 정의한 것은 생각보다 깊은 역사를 지니며 이어져 왔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고, 플라톤은 신체와 영혼의 연관성 위에서 의학적 철학적 교육적 관계를 논의하며 철학자가 ‘영혼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키케로는 ‘영혼의 훈련’ 혹은 ‘영혼의 의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인간의 정서적 내면적 능력과 방법으로 하느님의 교육학 혹은 종교적 의학에 대해 논의했고, 아퀴나스 역시 의학이 신체의 치유와 관계하듯이 철학은 영혼의 치유와 관계해야 한다고 보았다”고 한다.
본서는 이러한 철학의 심리학적 심리치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려주는 책으로 그 기능과 역할의 부분들을 배움으로써 얼마간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 같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감상을 갖게 되었다. 본서에서는 니체 철학을 근간으로 철학의 마음 치료의 기능을 돌아보고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의식과 충동의 관계를 문제시 했으며, ‘의식이란 무의식적 세계에 대한 하나의 주석적 체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분명히 제시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그리 보면 프로이트보다도 앞서서 무의식을 논한 최초의 심리학자였지 않은가 싶다.
이쯤에서 니체가 다른 심리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이나 다른 심리학자와의 차이점을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몇몇 심리학자와 연결지어 보자.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의 개념을 들어 이를 질병을 설명하는 중심으로 가져갔으나 니체는 허무주의의 문제를 주된 관심사로 보았고, 프로이트는 인간의 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과거(과거에 일어난 사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혹은 트라우마를 중시했으나 니체는 현재의 삶이나 미래를 향한 의지, 삶의 의미의 발견을 중시했다고 한다.
칼 융은 니체의 열렬한 탐독자였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분석심리학 이론의 근간인 개성화, 자기화, 자기실현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니체의 상징주의적 예시들에서 융이 이끌어낸 개념들은 그 외에도 적지 않았다.
아들러는 니체의 극복인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인간 행위의 동인을 열등감으로 보았으며, 니체가 개인 스스로의 완성을 중시한데 비해 아들러는 사회에 소속되는 것을 중시했다.
오토 랑크 또한 니체의 극복인을 통해 예술적 치료의 효과를 깨우쳤고,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통해 의지 심리학과 의지 치료의 개념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랑크의 심리학은 이후 로저스와 굿맨을 통해 인본주의 심리치료와 게슈탈트 치료로, 페촐트를 통해 게슈탈트 치료와 인본주의 통합치료로 발전해 갔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 역시 니체의 의지와 극복인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모르파티의 개념까지도 깃들어 있는 심리치료 체계로 생각된다.
니체 철학이 근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앞서 말했듯 철학을 치료의 여정으로 본 것은 고대 철학자들부터 이제까지 이어져 온 과정으로, 칸트 역시 ‘철학은 (치료적으로) 치료제로 작용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철학의 치유 효과를 직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철학 치료의 최초의 실제 사례를 보면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자신의 내담자인 중년의 심각한 정신분열 여성 환자에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 철저히 파고들라고 해서 그 여성이 그 처방을 따르자 거의 완치되었다는 실화가 있다. 이상심리의 치료 방식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각자에 따른 처방이 다르겠지만 이 책은 나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니체의 사상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니체에게 의식의 일깨움을 가져다주고 쇼펜하우어 사상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까지 일게 해 니체 철학이 성립되기 시작하는 효시로 작용했다고 한다.
나로서는 철학이 치료 효과를 갖는 이유는 심리학이든 철학이든 삶과 대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살아가면서 반응할지를 깨우쳐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감각하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수용과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자체가 이미 치유를 불러오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며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우르소스의 말이 떠올랐다. 다만 상처 입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 나아가기에 가능할 일이니 말이다.
"철인이 되어라. 지혜롭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리뷰 #철학과마음의치유 #김정현 #책세상 #니체 #심층심리학 #심리치료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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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박사님은 한국에서 니체 연구로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입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리에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잘 알려진 철학자이죠. 그는 매우 빼어난 지성과 천재적인 영감에 언제나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신병과 망상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병원에 수용된 채 세상을 떠난 불우한 인생을 보냈습니다. 아무리 정신의 밀도와 기능도가 일반의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 해도, 정신의 각 부분이 고른 균형을 가지지 않으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힘든 것은 숙명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천재에게는 어느 정도 그런 불행한 운명이 항상 따라다니는 지도 모릅니다. 니체보다 조금 뒤의 시대를 산 비트겐슈타인 같은 사람은, 비록 여러 철학자들이 그를 천재로 인정하였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나 넉넉한 자산을 보유한 덕에 특별히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으나, 유년 시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다소 고통을 겪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하긴 빌 게이츠도 학창 시절에 왕따였다고 하니, 비범한 것은 비범한 것대로 마냥 좋은 게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는 게 보통인가 봐요. 비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들 나름대로 이를 헤쳐 나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건 그리 크게 중요한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극히 그 비중과 수효가 적은 예외적인 경우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일상인들은 어떻습니까? 하루하루 힘든 경제 참여 활동을 마치고 매월 말이면 그 대가를 급여로 챙겨 귀가하는 보통 사람들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따르다 보니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학생 시절 지녔던 꿈과 이상, 소질, 정력이 다 고갈됨을 느낍니다. 이른바 힐링은 얄팍한 말 몇 마디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대증(對症) 요법이 아닌, 근본을 다스리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자연과 인간, 우주 삼라 만상의 근본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철학에의 깊은 천착은 바로 나와 타자 일체의 인식 그 기저를 관통하며, 역으로 궁극의 인식 노력은 어디에서 그 출발점을 잡건 철학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힐링을 철학으로부터 구함은 과연 인문학자다운 깊숙한 지혜, 경제적 실리를 초월한 근본 차원의 해법 제시가 아닐 수 없겠어요. 왜 니체인가? 니체의 시선은 언제나 불안으로부터의 탈출이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남을 구원하겠다는 자가 제 자신의 한 몸을 구하지 못 하고 저런 일을 당하는가." 같은 조롱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구원자는 거저 타인을 구원할 수 없죠. 자신을 희생 제물로 삼지 않고서는 일체의 초극과 대속을 행할 수 없습니다. 니체의 사상이 행여 정신에 든 병에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 바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일생을 두고 정신병에 시달린 사전 지불의 업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랑크인가? 오스트리아인 오토 랑크는 카를 융과 더불어,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가장 아꼈던 제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비록 유태인이었지만 넉넉한 부르조아지 가문 출신이었지만, 랑크는 본디 로젠펠트라는 성을 지닌 가난한 하층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이죠.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실현시켜 주지 못하는 집안과 출신에 대해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 했고, 자신의 앞날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에 대해 의지로 이를 돌파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의 유명한 불안심층심리에 대한 통찰이 나왔고, 의지를 강조하는 도덕 철학 역시 니체의 그것과 큰 맥이 닿아 있죠. 인생은 비루한 것이라 때때로 닥치는 역경을 어느 한 가지 일관된 방책으로 타개할 수 없고, 임기응변의 노력이 보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처방, 상처를 낫우는 길은 역시 자신의 영혼 기저에 숨은 동작 논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 유용한 방도가 철학이며, 그 중에서도 훌륭한 시사를 던져 주는 게 니체와 랑크의 여러 상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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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작년에 유독 많이 들려왔던 학교폭력, 성적비관으로 인한 자살사건들이 생각난다.이 문제들을 지켜보면서 ‘충분한 상담과 관심이 있었다면 조금은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그 시기를 지나온 성인으로써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내가 이정도인데 관련 분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중학교 사회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사고가 있고 난 뒤에도 별다른 조치는 없다고 한다. 이렇듯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에 대한 법적인 처벌만을 강화할 뿐,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개선해 나가고자하는 노력은 아직도 부족한 실정이다. 사회적 제도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서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상처가 끊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굳어진 표정과 싸늘한 시선부터 거두고 배려하는 말투와 따듯한 눈길로 대화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헤아리며 배려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배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마음 돌아보기이다. 지금 우리가 힘든 이유는 명확하게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결핍과 고통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게 되면 그 부분에 대해 채워나갈 수 있다. 물론 이 일련의 과정들을 대부분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생활하다보니 바빠서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노력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법. 믿을 수 있는 철학상담치료의 방법들을 따라 하다보면 어느덧 내 마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이 부족한 사회에서 더 이상의 삭막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여러 심층심리학 이론을 습득해 나부터 치유해보면 어떨까. 내 마음의 치유, 그리고 우리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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