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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모든 걸음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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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MUST GO ON....     삶이 비극이라면 그건 어쩌면 머물지 못하고 늘 나아가야 하는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뭐, 이것은 소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비로소 도달한 행복의 절정에서 꼭 듣게 되는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순간, 꼭 연인 중 하나는 마치 속삭이듯 이렇게 되뇌이죠. "이대로 시간이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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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HOW MUST GO ON....

 

  삶이 비극이라면 그건 어쩌면 머물지 못하고 늘 나아가야 하는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뭐, 이것은 소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이 비로소 도달한 행복의 절정에서 꼭 듣게 되는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 순간, 꼭 연인 중 하나는 마치 속삭이듯 이렇게 되뇌이죠. "이대로 시간이 멈춰지면 좋겠다..."고.

 

  사실 이것은 비단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만의 대사는 아니죠. 우리도 살면서 한껏 벅차오르는 행복감을 느끼며 삶이 딱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순간을 영원히 결빙시키고 싶죠. 왜 우리는 이런 말을 되뇌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진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삶이 저 시간의 비탈을 굴러가기 시작하면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뾰족한 자갈돌과 진창으로 지금 느끼는 행복감이 이내 썰물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렇게 우리는 알고 있죠. 이 삶이란 가파른 비탈 길은 부드러운 잔디밭 보다는 자갈밭과 진창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행복과 평안이란 것도 정말 잠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때문에 마주한 행복의 순간을 우리는 정말 '비로소' 도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정말 힘들게 찾은만큼 다시는 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 순간을 더욱 영원으로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그런 대사, 그런 생각은 그런 우리의 바람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행복한 순간 혹은 기념할만한 순간을 꼭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이러한 결빙의 욕망 때문이 아닐까요.

 

 

  COCOON UTOPIA...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우리는 자라나는 걸 싫어하는 거라고. 다시 말해 우리가 정말로 바라고 바라는 것은 태초에 내가 있었던 곳, 그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이라고 말이죠. 내가 태어(胎魚)가 되어 머물던 어머니의 자궁이야 말로 정말은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인 셈이죠. 아니나 다를까 이건 원래 유토피아의 원초적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고대 그리스인들은 유토피아를 '아르카디아'라고 불렀는데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초원이 그들이 그렸던 유토피아의 모습이었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는 것이야말로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태아의 모습이죠. 그런데 이러한 유토피아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말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은 태아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에 다름아니라고. 

 

 

  FIRST CRACK...

 

  그렇게 인간이 가진 욕망의 본질적 모습은 어쩌면 영원히 삶을 '모라토리엄'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우리가 이러한 욕망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에게 각인된 세상에 나온 그 최초의 기억이 바로 '추방'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써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거기에 머무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입니다. 뭔가가, 저 내부의 어디에선가로 부터 전해져 오는 힘에 억지로 떠밀렸거나 혹은 갑자기 천장이 열리면서 처음 보는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빛과 함께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격리되어 세상에 나왔죠. 우리의 자발적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전적인 추방이었고, 더 이상 양수의 보호를 받지 못한 우리의 연약한 피부가 처음으로 감지했던 건 차디찬 세상의 냉기였기에 또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완전한 유토피아로 부터 삶으로 나왔지만 그 첫 대면의 순간은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죠. 그리고 내내 갑작스런 추방으로 인한 두려움, 안에 있었을 때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감각과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성장이 삶의 다음 순간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라면 그렇게 우리가 받은 성장에 대한 첫 인상은 절대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울음은 당연했어요. 영원한 상실의 통감이었고 그만큼 사무치는 그리움의 절절한 표현으로써의 울음은...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힘들면 힘들수록,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더욱 막연히 떠올리게 되는 삶의 이상적인 형태는 본질적으로 태아적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그건 사실 우리 욕망이 아니라 우리 그리움의 표현인지도 모르겠어요. 태초에 내가 있었던 그 '코쿤'에 대한 그리움. 우리가 행복 절정의 순간 멈추고 싶어 하는 것도 비로소 그 '코쿤'에 도달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드디어 왔어. 이제 나를 내몰지 말아줘.' 사실은 이런 말이겠지요.

 

  성장이란 우리를 저 사르갓소로 내모는 밀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뭐라도 붙잡고 머무르고 싶어하지만 삶은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게 하고 가족을 가지게 하고 책임이란 짐을 두 어깨에 올려 놓습니다. 정말 바라는 것은 태아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그렇게 내가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곳에 결빙되는 것이지만 이미 그건 잠시의 꿈으로만 맛볼 수 있는 머나먼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움이 인간에게 본질적인 감정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는 그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한 번 누렸으나 이제 다시는 누려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사무칠 수 밖에 없는 그리움을...

 

 

 

 

 

  ONCE AGAIN, KNOCKING ON HEAVEN'S DOOR...

 

  이응준의 소설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위와 같은 문구가 될 것입니다. 네, 이 소설은 저도 모르게 앞에서 주절주절 말해버린 그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가지 중요한 공간이 나옵니다. 하나는 주인공의 과거에 관련된 '장미정원'이고 또 하나는 현재에 관련된 '가합동'입니다. 이야기는 이 두 공간을 중심으로 병행되어 전개됩니다. 그렇게 이응준은 주인공 문하가 어떻게 가합동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장미정원'을 통해 이야기하고 또 어떻게 가합동을 떠나게 되었는지 '가합동'을 통해 이야기 합니다. 이 두 공간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모두 주인공 문하에게 있어 앞서 말한 '코쿤'과 같은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거긴 태풍의 눈, 회전하는 팽이의 축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일종의 정점. '이대로 죽어도 좋아'를 외칠 수 있는 공간. 문하에게 있어 언제까지나 영원히 머무를 수 있는 곳. 즉 어머니의 자궁인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뿌리를 내립니다. 그를 단단히 받쳐줄 지지대가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장미정원에 있어서는 배다른 형인 인하가, 가합동에 있어서는 박학다식한 거구의 산타페가 존재합니다. 문하는 거기에 기생합니다. 그는 달이 되어 장미정원에서는 인하의 궤도를 돌고 가합동에서는 산타페의 궤도를 돕니다. 그렇게 문하는 세계를 보는 방법과 이해하는 방법을 인하를 통해 배우고 세계와 마주하는 방법을 산타페를 통해 배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궤도의 크기와 주기가 똑같은 건 아닙니다.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자신이 도는 항성 때문이 아니라 문하 자체가 이미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문하가 가합동으로 왔을 때 그는 최초의 균열을 겪은 태아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세상의 중심이었던 인하에 대한 상실감과 배신감으로 장미정원으로 부터 강제적으로 추방당한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창세기의 아담과도 비슷합니다. 그 때 금지된 선악과를 아담이 따먹듯 문하는 금기된 상황을 목격하고는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확 넓혀져버리니까요. 어쩌면 아담의 이야기 자체가 태아가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을 은유한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문하는 성장에 따르는 고통을 알아버렸습니다.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찾아온 곳이 바로 '가합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미정원'이 자연적 코쿤이라면 '가합동'은 인위적 코쿤입니다. 다시 한 번 장미정원을 만들고픈 그의 욕망이 다다르게 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궤도의 크기와 주기가 차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하에겐 이미 더 이상 그런 곳이 존재하지 않음을 압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이 구현된 장소 그 곳이 바로 가합동의 '하늘밥도둑'의 공간이며 그 구현된 인물이 '산타페' '물귀신' '미저리' '수인' 입니다.

 

 

   HAUNTED...

 

  이응준은 '하늘밥도둑'을 꿈결처럼 모호한 그래서 다소 비현실적은 공간으로 묘사합니다. 거기는 내내 음악이 흐르는데 그 소리의 간섭으로 인해 공간이 가진 물리력이 자주 지워집니다. 더구나 손님도 거의 없고 도대체 산타페가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는지 정확한 설명도 없습니다. 산타페는 별 이유도 없이 문하를 아끼고 문하 역시 그 애정을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합동에서 모든 설정과 인물들은 마치 유령의 느닷없는 출몰처럼 툭툭 던져집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미저리'를 만나게 되고 '물귀신'을 조우하게 되며 '수인'과 밥을 먹게 됩니다. '산타페'와의 첫 대면도 별 다를 게 없습니다. 모든 게 우연입니다. 이 상황을 이응준도 분명히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설에서 운명과 우연이 뭐가 다르겠느냐고 말하죠. 가합동은 그런 공간입니다. 모든 우연이 허용되는 꿈같은 공간. 분위기는 흡사 붉은 노을이 드리워진 적막한 공동 묘지를 보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존재들이 주인공 문하를 비롯하여 다들 유령같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미저리' '물귀신' '수인'은 툭 던져진 우연만큼이나 작위적인 존재들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이들은 마치 햄릿 앞에 나타난 아버지 유령과도 같습니다. 문하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거지요. 그들은 때로 침묵하고 때로 수다스럽지만 사실은 이렇게 쓰인 푯말을 목에 걸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길 떠나라. 또 하나의 장미정원은 더 이상 없으니....

 

  그러니까 이런 말이 가능합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문하의 분신들이었으며 사실은 더 이상 장미정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문하의 무의식이 자신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불러낸 유령들이라는 것을 말이죠. 때문에 '가합동'의 공간이, 특히 그 '하늘밥도둑'이 비현실성으로 넘쳐났던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 곳이 모두 마치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문하 의식 속에나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거기에 정말 영원히 머무르려 했습니다. 그건 가합동에서 매일 같이 지내게 되는 인물이 가진 '산타페'라는 이름 자체에서 드러납니다. '산타페'는 번역하면, HOLY FAITH. 즉 성스러운 믿음이란 뜻입니다. 산타페란 이름은 문하가 가진 욕망의 투영이었습니다. 그는 그 정도로 다시 한번 그 장미정원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습니다. 한 번 세상 밖으로 나온 태아가 다시 어머니 자궁 속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그렇게 삶이란 비탈을 굴려내려간 이상 다시 그 자리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 공과도 같은 존재인 우리들에게 불가능하니까요. 아담도 에덴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했듯이 말이죠.

 

 인하의 무의식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는 인하형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있는 것은 다만 작별뿐이라는 것을. 가합동의 공간과 인물은 모두 그것을 설득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는 죽음으로, 하나는 미스터리한 영상으로 또 하나는 고백으로 문하가 왜 그 곳을 떠나야 하는지 알려주고 사라집니다. 마치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같이 말이죠.

 

 

  LIKE GIRL IN THE RED SHOES...

  BUT, TRY TO HOLD ON...

 

  두 번의 추방, 두 번의 실패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결국 영원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우리는 한 발 한 발 억지로라도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억울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이야기인 것이죠. 어쩐지 긍정이라기 보다는 체념에 가깝다구요? 네, 맞습니다. 솔직히 제가 느낀 것도 체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것이 우리의 본질인 것을. 한 번 비탈길에 들어선 이상 한없이 굴러갈 수 밖에 없는 공과 같은 존재인 것을. 삶이 우리의 선택사항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삶은 비극이고 고통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 동화 속에 나오는 분홍신을 신은 존재와 같아요. 그 이야기가 그토록 슬펐던 이유도 바로 그녀가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들리면 무조건 춤을 출 수 밖에 없는 그녀처럼 우리도 한 번 어머니의 자궁 바깥으로 나온 이상 영원히 그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워하며 상실감과 외로움 속에서 삶이란 'SHOW'를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더구나 음악을 가릴 수 없는 그녀처럼 스스로 장르를 선택할 수도 없는 'SHOW'를 말이죠.

 

  제가 이 소설을 좋게 생각한다면 이 소설이 아무런 섣부른 희망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신의 충치를 낳게 만드는 달콤한 속삭임을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소설은 우리 삶의 본질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합니다. 우리가 체념 속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진실 말이죠. 그저 견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걸 정직하게 말해주는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게 제목인 '느릅나무 아래 숨은 천국'의 의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느릅나무는 땅 가까이 내려오는 가지들로 인해 왠지 축 저친 어깨를 연상시키고 그래서 얼른 하늘을 힘겹게 이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이는 나무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렇게 모습 자체로 견딤을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느릅나무가 아닐까 싶어요. 이응준은 바로 그 아래 천국이 숨어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이 소설을 읽고난 뒤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입가에 머금게 될 한숨에 대한 위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그 견딤 자체만으로도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소설에서 산타페가 문하를 위로하고 격려했듯 그렇게 우리의 어깨를 토닥이고자 함이겠죠. 작가 후기에 스스로도 이 작품을 앞으로의 문학 생애에 있어 벼리로 삼고 있는 걸 보면 그저 저만의 망상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 소설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문득 자신에게 신겨있는 분홍신을 보게 만들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 신으로 인해 아픈 발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과연 어떤 걸 보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한 상실과 그만큼 사무치는 그리움을 같이 안고 살아가는 동지로서 왠지 이 말만은 해드리고 싶네요.

 

 "당신의 모든 걸음에 건배를!...."

 

 

 

 

 

 

 

 

 

 

 

 

 



l****1 2013.03.2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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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아닌 고통을 선택한 시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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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건 쉽사리 망가진다. 모습과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라든가 신부처럼.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아름답다. 왜냐하면, 우리는 슬픔을 아름다움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94쪽    돌아보면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를 채웠던 모든 것들은 미흡하고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청춘이라서 세상을 부정할 수 있었고 타자를 이해하기에 앞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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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건 쉽사리 망가진다. 모습과 형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장미라든가 신부처럼.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아름답다. 왜냐하면, 우리는 슬픔을 아름다움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94쪽

 

 돌아보면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를 채웠던 모든 것들은 미흡하고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청춘이라서 세상을 부정할 수 있었고 타자를 이해하기에 앞서 이해받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면 다르게 살 거라 다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감정의 결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글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이응준의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는 청춘의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문하가 이삿짐을 싸면서 한 권의 노트를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글로 남겨진 건 그의 과거였다. 잊고 있었던, 잊기를 바랐던 기억이었다. 소설은 문하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현재가 아닌 과거로의 여행인 것이다.

 

 문하는 열 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형이 생긴다. 남들에게는 재혼 가정이었지만 문하와 형 인하는 이복 형제였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문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아버지는 낯설었지만 형 인하는 달랐다. 문하에게 형은 우주와 같은 존재였고 완벽한 사람이었다. 인하가 읽는 책, 인하가 들려주는 세상은 언제나 정의로웠고 빛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하는 인하에게서 더이상 빛을 볼 수 없었다. 인하는 문하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부정과 부패로 가득한 세상을 변화하는 게 아니라 그 세상과 타협하고 있었다.

 

 하나의 우주였던 형의 존재가 허물어지고 문하는 집을 나와 대학가인 가합동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산타 페를 만난다. 산타 페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예술가는 아니었다. 문하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카페 일을 돕거나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그러다 수인이라는 여대생을 알게 된다. 문하는 왜 이곳에 머무르는지 모른 채 그들과 어울린다. 산타 페와 수인이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산타 페와 수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소설은 끝까지 문하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후원했던 정치인에게 배신당하고 병들어 죽은 아버지, 형과 어머니의 묘한 관계가 언급되지만 문하의 감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족들에 대한 문하의 분노나 절망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말이다. 인하를 사랑한 만큼 그에게 듣고 싶은 변명이 많이 있었을 텐데, 문하는 철저하게 고통의 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다만 산타 페와의 일상을 통해 형 인하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짐작할 뿐이다.

 

 문하가 혼자서 보낸 그 시절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옳을까? 나를 찾는 시간이라 해야 할까. 가장 사랑했던 이를 용서하기 위해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간이라면 맞을까. 15년이 지난 후 문하가 다시 찾은 가합동의 카페는 여전하지만 산타 페의 소식은 없었다. 그 시절은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 일생을 두고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건, 과연 저마다의 인생 가운데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곰곰이 살피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중심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별자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이제는 서로를 덩그러니 수억 광년 밖에 두지 말자. 하여, 전속력으로 달려가 산산이 부서지는 밤하늘 별들의 섬광처럼 우리 지난날 아파했단 말도 쉽사리 하지 않도록, 그대는 내게로, 나는 그대의 인력 안으로 무모하게 손 내밀 순 없는지.’ 270~271쪽

 

 이응준이 스물여섯 살에 쓴 이 소설은 상처로 얼룩진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삶을 뒤흔들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상처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채우는 하나의 과정은 아니었을까. 열 살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말이다. 아름답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은 내가 청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청춘들을 위한 소설이다.

 

r*********s 2013.04.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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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갇힌 '나'를 만나는 여정 -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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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갇히 나를 만나는 여정 -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_ 스토리매니악   누구나 성장 하면서 겪는 아픔이 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때에는 너무 아프다. 간혹 지독한 아픔을 겪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인생이 뒤바뀔 만큼 지독한..   이 소설의 주인공이 그렇다. 이틀 후면 이사를 가는 서른 여섯의 '문하'. 짐 정리를 하다 잊고 있었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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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갇히 나를 만나는 여정 -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 _ 스토리매니악

 

누구나 성장 하면서 겪는 아픔이 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참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때에는 너무 아프다. 간혹 지독한 아픔을 겪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인생이 뒤바뀔 만큼 지독한..

 

이 소설의 주인공이 그렇다. 이틀 후면 이사를 가는 서른 여섯의 '문하'. 짐 정리를 하다 잊고 있었던 자신의 일기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기억들. 첩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와 살게 된 어린 시절, 무작정 뛰쳐나와 자리를 잡게 된 가합동에서의 20대의 기억들이 하나 둘 덮쳐 온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소설이었다. 축 가라 앉은 듯한 분위기와 뭔가 응어리를 갖고 있는 듯한 주인공. 그의 이야기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여지는 전개는 괜스레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초반의 뻑뻑함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감정의 과잉에서 오는 답답함이 크지 않았나 싶다.

 

기억의 사이에서 토해내는 슬픔과 상처의 표현이 조금 지나치다 싶은 느낌이 있었다. 내가 충분히 이야기에 적응하고 주인공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주인공의 슬픔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라는 고민을 동반했다. 분명 행간에 숨은 의미가 있을 터인데, 그것을 잡아내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는 것만 같은 갑갑증이 있었다고 할까.

 

주인공의 가합동 생활은 그나마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우연한 카페 주인 '산타 페'와의 만남. 그와의 일상과 겹쳐지는 중고등학생의 기억. 그 기억 속에 살아 숨쉬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냉담함, 그리고 배 다른 형에 대한 막연한 동경까지, 그 모든 감정들이 주인공을 겹겹이 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주인공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가합동의 생활이 주인공의 학생 시절과 동떨어진 감정을 갖게 하는 장면들이 있어 당혹스럽기도 하다.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 때문인지 그런 감정들이 끊어지는 경우엔 왜 이 장면에서 왜 시간을 겹쳤을까 하는 생각 등을 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가합동에서의 이야기는 지독한 상처와 슬픔을 안고 뛰쳐나온 주인공이 그 불덩이를 어르는 과정이다. 거기서 산타 페를 만나고 물귀신을 만나고 미저리를 만나고, '수인'이를 만나 감정을 나누며 조금씩 자신을 바로 잡아가는 것이다.

 

이야기 자체가 조금은 어렵다. 단순하게 보면 아주 단순한데도, 이상하게 어렵게 생각하게 된다. 마치 겉 껍질만 바스락 소리 나게 쥐고 있는 느낌이다. 알맹이는 느껴보지 못한 채 말이다.

 


지난 날들이 아름다웠노라 억지로 술회하지 말자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상당히 잘 읽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지는 않다. 시인이기도 한 작가답게 시적 언어도 풍부하고 문장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겉으로만 돈 느낌이 있어 그렇지 읽는 감 자체는 꽤 좋았던 소설이다.

 

정의 넘침이 있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그 흘러 넘치는 감정이 수습된다고 느껴질 때, 갑자기 주인공의 모든 것이 정리 되고 마무리 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남은 마지막 종이 한 장이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 여러 번 읽는다면 주인공의 감정 하나하나가 온전히 이해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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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아래 숨긴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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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작가님의 책을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많이 공감 되는 부분이 있었다. 현재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내가 나이가 들어버린거 같지만, 아직도 나는 청춘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안에서 방항하는 청춘 문하의 삶이 참~~ 그냥 공감이 되었고, 그의 외로움을 이해 할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난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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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작가님의 책을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많이 공감 되는 부분이 있었다. 현재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내가 나이가 들어버린거 같지만, 아직도 나는 청춘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안에서 방항하는 청춘 문하의 삶이 참~~ 그냥 공감이 되었고, 그의 외로움을 이해 할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난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을 할수 있지? 어쩜 이렇게 글을 쓸수 있지라는 감동을 받았다. 이책은 밝지 않다, 참 어둡다. 그런데 그냥 요새 나의 마음을 담아낸것같아 어두운 소설이었지만 재밌게 읽었던것 같다.

 

이책의 주인공 문하, 36살의 문하 그의 삶은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 어렸을때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하라는 형이 생기게 되고, 그런 형은 문하의 사람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그런 형 문하는 인하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것이 아닌, 문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다. 그런 문하가 가합동이라는 동네에 가게되고, 그곳에서 하늘밥 도둑카페안의 사장 산타페, 가합동에 사는 머저리, 물귀신, 수인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청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책안에는 내맘을 파고드는 이해되는 그런 문장들이 참많았다.

김승옥의 단편소설<무진기행>을 읽고 가합동에 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기서 제 폐부에 도사린 무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것이다. 어차피 무진은 우리 마음속의 무진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쓸쓸한 무진 하나 정도는 품고 사는것이 삶이라지만, 막상 제 가슴속의 무진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죽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p40

 

그리고 이소설안에서 소설에 대한 정의를 정말 너무나 작가님 답게 설명해 준것 같았다

나는 소설이란, 소설 이전에 하나의 인간학이라고 생각해,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이러이러 한 것이다라고 틀린 답일지언정 계속 떠들어 대는 것이지.왜, 고등학교 때 풀수 있었던 수학문제도 나이가 들어선 못 푸는 경우가 있지? 적어도 문학은 그런게 아니야, 한번 깨달으면 영원히 잊힐 수 없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주어야 하는거지. 아이가 어른이 되면 당연히 자전거와는 멀어지기 마련이라고. 그러나 자전거를 즐기거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사람이 자전거 타는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니잖아? 이미 독자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일종의 자전거 타는 법을 전수받은 거라고 -p98

 

염라대왕에게 소원을 비는 얘기에서 보통으로 남 하는것만큼 하며 산다는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그말~

그말을 요새 절실히 실감을 하고 있기때문이다. 전에는 난 평범해 평범해 그리고 그속에서 살아왔는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에 내가 속하는것이 어렵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이책안에 나오는 청춘들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고민하는 나와 닮아있는것만 같아서,그리고 요새 많이 보이는 힘든 청춘들 같아서, 이책이 참 나한테는 재미있었던거 같아.

 

 

YES마니아 : 로얄 r*******d 2013.03.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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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끝으로 찾아낸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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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았던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블로그의 낯익은 문장처럼 그 시절, 그 순간에 지금 알고 있는 깨달음이라면 조금 더 넓고, 깊게, 지혜롭게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도 반성도 다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만났을 때에도 이응준 작가의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을 만났을 때에도 사람에게 있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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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알았던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블로그의 낯익은 문장처럼 그 시절, 그 순간에 지금 알고 있는 깨달음이라면 조금 더 넓고, 깊게, 지혜롭게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후회도 반성도 다 무용지물이긴 하지만.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만났을 때에도 이응준 작가의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을 만났을 때에도 사람에게 있어 '유년기'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나무를 심을 때 좋은 흙을 깔아주는 것처럼 사람에게 있어 유년기는 어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자양분이기에 튼튼하고, 튼실하게 가꾸지 않으면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에서 결핍으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를테면 표면적으로 몸은 성장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방에 누워 엄마의 엄마, 즉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삼촌, 이모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엄마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엄마의 유년시절을 상상한다. 시절이 시절이었던 만큼 물자가 풍부하지 못했지만 형제들과 나누었던 먹거리와 밤늦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게임도 하고, 군것질 거리도 함께 먹었던 그 시절. 시간이 지나 그 시간이 가장 좋았다 라며 회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의 유년시절은 참 건강하고, 행복했구나 라고 느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의 유년시절도 다 행복하고, 다시금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었다고 느끼기도 했었다. 나또한 그랬기에.

 

그러나 누구나 다 유년시절의 애틋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이 가장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힘든 시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보게 된 한 작가의 이야기는 다시금 나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이 악몽이고 지옥이라는 것을.

 

아픔과 슬픔이 없다면 사랑은 아마도 고집이 되기 쉬울 것이다. - p.10

 

누군가 펜을 든 그 순간부터 이미 거짓말은 시작돼 있는 법이다. 인간의 고백이란 소설보다 훨씬 교활한 거짓말이니 만약 현실이 악이고 소설이 유희라면 일기는 위선인 것이다. - p.12

 

나는 파란색 볼펜을 왼손에 쥐고 굵은 대학노트에,"창밖에 부는 저 겨울바람 속에는 파란 눈의 들짐승들이 숨어 있다"라고 적었다. - p.20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이응준 작가의 첫 장편으로 올해 다시 개정판으로 나왔다. <국가의 사생활>을 통해 처음 접한 그의 작품은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면 이 책에서는 불안하고 불온한 소년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이면서도 그 끝을 잘 이겨내고 다시 중심을 잘 잡고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끝이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다른 형인 인하가 중심축으로 문하의 삶에 강하게 자리잡는다. 인하를 동경하는 동생 문하는 모든 것을 닮아가고 싶어 하지만 인하는 이따금 문하가 캐치하지 못한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그의 심중에 드러나는 문제들. 후에 문하는 그것을 깨닫게 되면서 인하의 '애증'을 깨닫는다. 죽은 인하의 엄마를 대신해 첩으로 들어온 문하의 엄마와 인하의 반감, 강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와의 반목, 자신이 모든 것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동생 문하와의 관계. 애정과 애증의 관계 속에서 주인공 문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 사이의 관계를 통해 두려움과 부끄러움, 사랑이라는 감정의 사이를 오가며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낸다.

 

훗날 자신을 동경했던 문하를 조종해 자신이 반목하던 것들을 파멸시켰을 때 비로소 문하는 자신의 형을 미워한다. 그 시절의 악몽과 지옥을. 다시 그 시절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집을 나와서 다른 이들과 만나 치유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유년시절을 비로소 치유한다. 많은 사유와 관념들을 집어 넣으며. 감정의 과잉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교묘하게 문하의 마음을 움직여 미워하는 이들에게 복수를 한 인하의 모습도, 그것을 감내했던 문하의 모습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느룹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어두운 그늘을 가진 소설이지만 그 사이에 햇볕이 반짝하고 빛나는 구원의 작품이기도 하다. 순간의 깨달음은 없었지만 욕망과 고통의 감내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문장들 사이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문장들이 많아 포스트잇을 가득 붙였던 책이다.

l****9 2013.09.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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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청춘의 터널을 빠져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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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내 나이 30대 후반. 나는 청춘을 되돌아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100세 시대라는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번쯤 과거와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프고 시리지만, 꾹꾹 담아둔 내 아픈 청춘을 다시 헤집고 싶지 않지만, 불편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부딪쳐 보련다. 짧은 내 언어 탓에 형상화 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했던 마음을, 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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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내 나이 30대 후반. 나는 청춘을 되돌아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100세 시대라는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번쯤 과거와 화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프고 시리지만, 꾹꾹 담아둔 내 아픈 청춘을 다시 헤집고 싶지 않지만, 불편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부딪쳐 보련다. 짧은 내 언어 탓에 형상화 되지 못하고 빙빙 돌기만 했던 마음을, 이응준이라는 천재적인 작가가 풀어놓은 청춘 이야기에 얹어 읽고서 흘려보내고 싶다. 마흔이 되기 전에 꼭 해야만 할 일.

 

 

읽은 후-

이렇게 스산한 청춘 소설을 스물여섯의 나이에 썼다니.

나도 묻어버리고 싶고 흘려버리고 싶은 청춘이 있었지만, 지금 되돌아 보니, 그러했구나. 하고 깨달을 뿐. 그 때는 청춘인지도 몰랐던 그 시절.

내 스물여섯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하루살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용서하지 않겠어, 영원히!”

이 말이 주문이 되어 내 과거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행복했던 날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단테<신곡>에서

라는 글이 소설 시작하기에 앞서 나타난다.

 

나는 이제 행복했던 날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행복했던 날은 아예 있지도 않았던 듯. 그저 지금과 앞으로의 날들만 생각하며 산다. 그렇지만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있었던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과거에 행복했던 날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저, 기억의 강에 흘려보내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다는 것일 뿐.

 

 

형은 나를 사랑했다. 나도 형을 사랑했다.-31

 

충격적인 울림을 주는 문장이다.

배다른 형제로 만난 주인공 서문하와 네 살 터울의 형 서인하. 둘의 관계가 어떻기에 이런 말이 나오지?  갸웃.

살짝 천박한 매력의 엄마 손을 붙잡고 장미정원의 성에 입성한 주인공 서문하. 지적인 외양의 형 서인하와 도무지 무서워 말도 못붙이겠는 근엄한 아버지를 만나 가족이 되었다.

그렇다.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것이 아니라, 싹둑 잘린 종이를 풀로 이어 붙이듯이 만들어진 가족.

그것도 반듯하게 붙여진 종이가 아니라 살짝 어긋나게 이어 붙여진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완벽하게 예의바르고 착한 아들이었던 형 인하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땐, 엄마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건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커튼이 내려지기 전까진 무대에 충실한 표정 없는 배우들.

형 인하는 어쩐 일인지 문하를 동생으로 받아들인 듯했고, 함께 별자리도 보고 정원도 누비며 멋지고 완벽한 형을 연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동생의 얼굴을 할퀴고 만 고양이를 정원의 사과나무에 목매달아 죽인 후 그 나무 밑에 파묻는다. “널 위해서”라고 말하며.

문하는 형의 두 얼굴을 목격한 그날부터 방문을 잠그고 잔다.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그 때 말해줄게.”라며 한사코 동물원의 파충류 우리에서 본 것을 말하지 않았던 형의 그 비밀스런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될 무렵. 그 때가 바로 인하가 어른이 된 시기이며, 고뇌하고 거부하며 한사코 즐기기를 거부하던 청춘의 시작점인 듯싶다.

“나는 사실은 파충류의 먹이로 키워진 흰쥐였다. 넓은 우리에 놓여 졌지만, 곧 시작될 파충류들의 식사 시간에 투입된 사냥감으로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 불안과 두려움에 눈만 굴릴 수밖에 없는 불쌍한 흰쥐. 눈은 더 이상 튀어나올 수 없을 만큼 튀어나와 있으며,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세차게 뛰어대고, 숨은... 가쁜...죽음을 눈앞에 둔 흰 쥐.”라는 고백을 인하는 문하에게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사업의 확장에 정치판 가세까지. 아버지는 승승장구 내달렸고, 그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국립대 법학부 입학 까지 한 형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었고 인하는 백에 가려진 흑의 세계를 지배하는 어둠의 마왕으로도 살아가고 있었다. 문하에게 잠깐 비춘 적이 있는 인하의 친엄마와 앓는 모습이 닮았던 여자친구-하얀 하여-가 죽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집안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때. 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들었던 형은, 문하 어머니와의 충격적인 정사씬을 선물로 남기고, 두 팔을 활짝 편채 멀리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로부터 시작된 방황의 나날들. 과거와 쉽사리 화해하지 못하던 문하는 가합동의 카페<하늘밥도둑>에서 산타 페를 만나고 산타 페의 미친 이모를 이야기 속에서 만나고, 수인을 만나고, 물귀신, 미저리 등등 평범함의 언저리를 맴돌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에는 이미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문하는 과거의 강을 건너 왔다.

 

하~아.

찌는 듯한 여름내내 태양에서 가장 가깝던 옥탑방에서 스물여섯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하게 된, <설국과 장미정원>으로부터 시작하는 청춘의 기억.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가족이라는 굴레는 문하의,그리고 우리의 생애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시금 행복한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려면 그 시커멓고 어두운 과거라는 터널에 억지로라도 걸어 들어갔다 빠져나와야 한다.

청춘, 혹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데 이 책은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내 과거와 만났고, 인사했고, 잘 돌려보내주었다.

 

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언어로, 하얗게 뱉어내는 숨이 눈앞에서 입김이 되어 사라질 듯 그 차갑고 청명한 겨울 공기까지 환상적으로 묘사된 설국.

그 설국을 거닐다 빠져나온 곳에서 만나게 된 느릅나무. 그 아래 천국이 숨어 있었다. 한동안 아무 나무라도 나무 그늘 아래 서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하얀 목련이 툭툭 잎을 떨구고, 이제 화안한 벚꽃이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계절이다.

봄바람이 날리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어느날 후두둑 떨어지고 말 일이다.

청춘도 계절처럼 , 봄날의 벚꽃처럼 왔다 가는 것.

혹독한 청춘을 보냈다고 우울해 할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도 내 느릅나무를 찾아 그 아래 천국을 숨겨놓아야지.

 

내 아이들의 유년 시절엔 더 이상 어두운 그림자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

 

YES마니아 : 골드 s*******e 2013.03.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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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그러나 나는," 내용보기
시를 쓰다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쓰고 또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몇 알아왔다. 그들의 작품, 혹은 문장은 때때로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일상의 면면을 상상하여 쓰는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더러 있었고, 때문에 소설 속의 어떤 문장들을 시의 한 구절 구절처럼 따로 떼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 이응준이 스물 여섯 살, 지금 내 또래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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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쓰다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쓰고 또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몇 알아왔다. 그들의 작품, 혹은 문장은 때때로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일상의 면면을 상상하여 쓰는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더러 있었고, 때문에 소설 속의 어떤 문장들을 시의 한 구절 구절처럼 따로 떼어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 이응준이 스물 여섯 살, 지금 내 또래일 때 창작했다는 이 소설은 내 나이를 비관하고 싶어질 정도로 몹시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앞서 느낀 바대로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낯선 비유들이 많다. 인물들간의 대화조차 시구의 연결처럼 난해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미지를 떠올리기에는 나무랄 데 없는 문장들이지만 오롯이 이해하고 마음에 와닿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문장들이 많았다. 때문에 나는 이 청춘의 기록을 오래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b******1 2013.04.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