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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은 니체 덕으로 살아 왔고, 여전히 니체 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니체가 원했던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20세기 니체의 영향력은 철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들을 의해 전유되었다. 영감에 의한 글쓰기를 본보인 니체의 책은 수많은 저자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것은 관습을 뒤흔들고, 새로운 가치를 도입하는 니체의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니체의 저작 중 <우상의 황혼> 부제가 '망치로 철학하기'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니체는 기존의 가치를 전도하여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기를 바랐다. 물론, 그가 사용한 '영원회귀', '위버멘쉬', '힘에의 의지'와 같은 사유의 언어는 손쉽게 잡히는 개념은 아니다. 니체에 대해 조금 더 말하면, 니체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다. 니체가 20대에 교수가 될 정도로 명석했지만 사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진정한 스승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의 스승은 헌책방에서 마주한다. 아주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에 꽂혀 평소의 습관과는 다르게 바로 구입을 했고 빠져들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내 이 책을 선택했고 배송 오자 마자 읽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져 들기도 했다. 부끄럽지만 말이다. 다시 니체의 이야기로 돌아가 니체는 그렇게 얼마 뒤 랑게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랑게의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를 탐독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랑게주의자가 된다. 기꺼이. 니체가 말 한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의 맥락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하여'라는 글에도 나온다. 니체의 말이 그만큼 많은 곳에서 다양하게 인용되고 해석된다는 뜻이다. 물론 누구나 알듯이(알고 있다고 주장하듯이) 완전히 중립적이고 완전한 투명성은 없다. 투명성, 객관성 이라는 부분은 어쩌면 착각 일테고 어쩌면 자신의 주장을 더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사일 뿐이다. 그런 뜻에서 니체의 사실은 없다라는 말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살펴 볼 점은 니체의 부지런함이다. 이 대목은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존경했다는 점에서 이미 짐작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니체는 숨 쉴 틈도 없이 집필에 몰두했다. 뿐만 아니라 생각에 그칠 수 있는 것들을 말로, 글로 명확히 표현했고, 모호한 관념을 남기는 것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근면과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아마,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니체와 동일시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면에서 니체와 슈테판 츠바이크는 닮은 꼴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창조물이 인정받기는 커녕 외면당할 때의 기분을 감히 공감한다는 말로 이해한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들이 느꼈을 허망함과 공허함은 아마 상상하기조차 힘든 것들이었을 것이다.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비극으로 끝냈음은 어쩌면 이런 것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하는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니체에 관한 책이기도 하지만,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 자신에 관한 책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슈테판 츠바이크가 쓰고자 했던 니체는 자신의 닮은 또다른 하나의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허망함과 외로움 그리고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니체를 통해, 니체에 관한 글을 쓰는 것으로 풀었을 지도 모른다.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쓰고자 하는 또는 써내려가는 인물에 대해 자신을 투영하고 또는 투영되기도 한다. 즉 이런한 동일성 형성은 어쩌면 글쓰기의 기본이며 필수적 요소 즉,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이 허구의 이야기이거나 혹은 실화를 최대한 사실 그대로 적는 것이건 양쪽다 공히 적용되는 것일 것이다. 오늘날 다시 쇼펜하우어가 주목받고, 니체가 주목받는 시간이 찾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또는 주목 받지 못하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여기서 느끼는 감정이 과거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느낀 공허함과 외로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을 다독이고 더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점 또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보여주었으니 그 점 또한 우리에게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향 제시일 거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로 지금 이 시간에 니체를 읽는 것은 의미 있고, 중요한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 니체를 접하기는 비교적 쉽다. 그에 관한 수많은 책이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니체를 다룬 흥미로운 책들로는 영국의 소설가로 잘 알려진 아이리스 머독이 쓴 <니체> 비롯하여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조르주 바타유가 쓴 <니체에 대하여>, 피에르 클로소프스키가 쓴 <니체와 악순환>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 '니체를 쓰다'를 읽고 난 후, 니체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책들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
| 츠바이크가 그려낸 니체는 철학적 사유와 고통이 뒤섞인 인물로, 당대의 관습과 도덕을 거부한 채 내면의 진실을 좇아 홀로 길을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으며, 니체의 자유를 향한 열망과 끝없는 자기변혁,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외로움이 내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졌으며, 한 시대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니체의 모습에서 삶의 용기와 치열함을 배울 수 있었다."니체를 쓰다"를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오로지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니체의 냉정한 시선과 고독이었다. 책을 통해 본 니체는 남들과 쉽게 어울리거나 당대와 화합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길을 걷는 고독한 영웅이었다. 츠바이크의 섬세하고 문학적인 해석 덕분에, 니체의 철학이 단순한 사유가 아니라 치열한 자기 변혁의 기록임을 깊이 느꼈다. 고독과 내면적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니체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