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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제 수업, 가정환경 조사서, 김일 레슬링, 김기수와 니노 벤베누티, 대한 뉴스, 공돌이와 공순이, 대학생, 남진 나훈아, 송창식, 윤형주 이 정도의 단어들이 나열되었을 때 우리 시대의 추억이라고 단번에 안다면 그는 베이비부머다. 버스가 없어서 청량리에서 종암동 고대까지 오징어 한 마리 씹으며 걸어 다녔던 초등학교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하게 했다. “TV가 있냐? 피아노가 있냐?” 왜 이런 것을 조사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이런 질문에 동그라미를 치던 아이들을 부러워했고, 김일 레슬링 경기가 있을 때는 만화방 주인아저씨가 특별석을 만들어 제공했을 때의 뿌듯함(만화를 너무 열심히 봐 매출에 현저한 공을 세운 VIP 고객에 대한 서비스)은 자랑스러움이었고, 남진보다 송창식을 좋아한 것은 우월의식의 증표였다. 이렇게 베이비부머들도 나름 환경이나 학력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세대로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현저한 공을 세웠다. 이 기적을 일으킨 주역 중 한명이었던 남덕우가 18일 타계한 것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베이비부머, 그들도 죽거나 잊혀지거나 아니면 어렵게 현실을 힘들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는 책의 제목처럼 읽은 후 암울하고 울적한 느낌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베이비부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기 위하여 미친 듯이 일했고, 그 결과 아파트 한 채 장만하고, 아이들 대학 보내고 부모를 봉양하는데 모든 것을 투자했기에 그들은 마치 깃털을 뽑힌 공작새처럼 볼품없고 초라하다. 이것이 슬픈 50대의 자화상이다. 이 책은 저자 송호근 교수가 작년 겨울 어느 날 밤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자신과 거의 동년배인 그는 중견기업 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사람이었다.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저녁 알바를 하고 있다는 그는 말이 알바지 대리기사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직업일 것이다. 이 현실을 알고 저자는 연구팀을 꾸렸고 10여명의 베이비부머를 인터뷰 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책이 탄생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베이비부머를 ‘농업 세대’와 ‘IT 세대’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았다고 그 의미를 말한다. 그들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스스로 짊어졌기에 어느 세대보다 많은 짐을 지고 살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베이비부머는 농촌 공동체의 문화적 유전자가 흐르는 마지막 세대이자 유교 전통을 계승한 막내 세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치관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부모를 모시고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덕목으로 여겼다. 또 하나의 의미는 근대와 현대 사이의 가교를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는 ‘근대’가 끝나는 절벽에서 ‘현대’로 나아갈 수 있는 교량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다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교량의 상판이다. 그 위로 사람과 차들이 부지런히 다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판이 소리를 지를 수 있다면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우리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베이비부머로 상징되는 50대는 말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묵묵히 그 역할을 감당했다.
그 역할의 핵심은 주택구입, 자식교육과 결혼, 부모봉양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두 번째 자식교육과 결혼에 대한 문제다.
세 번째 부모 봉양이다. 이렇게 베이비부머들은 저자가 분석한 것처럼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스스로 짊어졌기에 어느 세대보다 많은 짐을 지고 살고 있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남자 자식이 울긴 왜 울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남자는 울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 자신도 혼자 훌쩍거리기를 잘한다. 예쁜 손연재 선수가 월드컵 체조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면서도 가슴이 메이고, 하다못해 연속극 하나를 보면서도 남 몰래 눈물을 글썽인다. 그들은 행여 자식 놈이나 마누라가 볼까봐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울음을 삭힌다. 여기에 더 큰 아픔이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이 현실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제 3의 인생을 출발하는 베이비부머들은 소리내 울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어디선가 그들은 남몰래 울고 있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줄 사람은 역시 가족밖에 없다. 혹시 남편이 아빠가 TV를 보며 남몰래 울고 있다면 그 아픔을 이해하라, 자식이라면 “아빠 힘내세요!”격려 문자 하나 날려주고 아내라면 그날은 소주 한 병과 빈대떡 한 장 부쳐 말없이 한 잔 따라주라. 그것이 남편에게 새로운 힘이 될 것이다. 윤복희의 노래 ‘여러분’중 너무나 잘 알려진 가사 한 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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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입니다..읽는 내내 가슴이 너무 먹먹했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세대라 머리로만 아버지 세대를 이해 한다고 생각했으나 제 착각이였나 봅니다. 서른이 훨씬 넘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이제서야 아버지와 선배들 세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너무 크게 와 닿았고 부모로서 머지않아 곧 나에게 닥칠 미래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지금 그 무뚝뚝한 아버지를 여지것 왜 원망만 했을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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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선생(東岳先生)은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전기밥솥에 밥을 짓는다. 아내가 쌀은 씻어 놓지만 가끔씩은 잊고 그냥 잠들기도 하기 때문에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안치기도 한다. 그가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는 특별히 없지만 젊어서 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늦게 까지 잔다. 그도 그럴것이 아내와 아들들은 함께 모여 새벽1시까지 텔레비젼을 보며 깔깔 웃어대다가 새벽1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저녁 10시에 취침하는 동악선생과는 생활패턴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부부간에 다른 방을 사용하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부부간에 애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아내 곁에 있으면 포근하고 쇼핑하러 갈때는 손을 잡고, 키스까지는 못하더라도 뽀뽀는 자주 한다. 그러나 김치와 김만 달랑 차려 놓고 모두가 잠든 시간 혼자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은 아무리 쿨하게 생각하려 해도 처량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때는 그도 아침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였다. 그때는 아내가 일찍 일어나서 반찬도 여러가지로 균형있는 식단을 차려 놓고 늦잠 자려는 아이들을 깨워서 식사를 독려하였다. 덕분에 그도 호강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말 그대로 '찬밥신세'다. 동악선생은 1963년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으로 지내셨고 위로는 형이 둘 있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공무원 월급이 있었기에 똥구멍이 찢어지는 가난함은 경험하지 않았다. 어려서 부터 몸이 약했던 그는 공부만은 형제들보다 잘했었기에 고등학교 때부터는 대처로 유학을 떠났다. 22살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24살때 엄마를 닮은 아내와 결혼하여 25살에 큰아들을 낳으니 아들과 띠동갑이 되었다. 아내가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아도 동악선생은 할 말이 없다. 시집오자마자 암으로 투병하시는 시아버지수발을 들기 위해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남편 없는 시댁으로 내려가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1992년 둘째 시숙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1년 뒤에 동서가 따라 죽자 조카 남매가 졸지에 고아가 되었을 때에도 아내는 남편보다 먼저 조카들을 양육하겠다고 하였다. 남들은 동악선생에게 조카들 건사하느라 장하다고 하지만 그는 만약에 내가 먼저 죽었더라도 작은 형님은 내 아이들을 책임졌을거라고 생각하며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IMF때 사업에 실패한 후 이혼하고 혼자 지내시던 큰 형님이 뇌졸중에 걸리자 아내는 남편의 뜻에 따라 대전으로 모셔서 2달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드리면서 시숙봉양을 하였다. 그후에도 생활비를 보내드리며 자립할 때까지 보살펴 드렸다. 이러한 아내를 두고 아침밥 타령을 했다가는 아파트 부녀회원들에게 몰매맞기 십상이므로 오늘도 혼자서 아침밥을 먹었다. 동악선생은 자신이 형님들을 위하여(부모 두분은 일찍 돌아가셨으므로 효도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렇게 정성껏 받들면 내 자식들이 본 받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희망사항'이다. 대학에 재학 중인 작은 아들은 벌써부터 오피스텔에서 혼자 독립해서 살고 싶다고 한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고 집앞에서 지하철을 타면 학교 문앞에서 내리게 되는데 벌써부터 독립해서 살고 싶다고 하는 아들에게 나중에 4층 건물을 지어서 2층에 부모가 살고 너희들은 결혼해서 3층과 4층에 함께 살면 어떻겠냐고 은근슬쩍 말하면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두고 왔나?'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한다. 동악선생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은 설과 추석때 조상에게 차례를(종교적인 차이로 형식은 다를 수가 있지만) 올리지 않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아버님 어머님 기일에 아이들과 함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내가 죽으면 나는 과연 아버님 어머님 처럼 제삿밥을 얻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그래도 동악선생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혼자 자취할 때 살던 150만원 전셋방에서 신접살림을 차리고 아버님 돌아가실 때 물려받은 유산들을 형제들보다 많이 배웠다는 미안함 때문에 모두 형제들에게 양보하고 자수성가하여 지금까지 살아왔고 무엇보다도 어릴 때 데려와 키운 두 조카들이 이제는 모두 취업을 하여 각자의 삶을 살도록 뒷바라지 했으니 헛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눈치챘겠지만 동악선생은 바로 '나'다. 나는 베이비부머의 막내이다. 베이비붐이라는 말 자체가 나는 우스꽝스럽다. 지극히 사적인 부부간의 일에 '붐'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부터가 뭔가 이상하다. 어쨌든 베이비부머는 6.25가 끝난 1955년부터 내가 태어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신세를 가진 베이비부머들의 이야기(넋두리라고 해도 좋다)들을 전하고 있다. 젊은 시절 가족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였으나 50대가 되면서 가족으로 부터 소외당하고 국가로 부터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소리내 울지 못하는' 베이비부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도 밝혔듯이 '그래서 어쩌자는 대단한 결론'을 던져주지는 않는다. 그냥 너와 나의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자는 것이다.(동악선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듯이) 카타르시스라는 것이 별 것 아니다. 나만 이렇게 배신 당한 듯 괴로워했는데 서로 말만 하지 않았을 뿐 함께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세대가 모두 느꼈던 슬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용기를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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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은 취업이 안 된다 아우성이다. 버젓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단 한 군데도 없다니, 이해가 어렵다. 세상은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며 기대치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어느 누가 언제 해고당해도 하소연 할 길이 없는 비정규직을 좋은 일자리로 여기겠는가. 경험이 없어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입장에서 경험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이래저래 청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백수로 전락한다. 나이 든 이들의 삶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부양해야 하는 식구들이 있으므로 이제껏 눈 딱 감고 버틴 그들에게 일을 더 하기에는 늙었다며 나가라 종용한다. 몸값을 낮추어서라도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지만 한 때 높은 직위에 근무한 경력이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부모 세대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데, 고정적인 수입을 믿으며 구입한 제 집이 그들에겐 독처럼 작용한다. 좋은 날이 올 거라는 기대는커녕 당장 오늘을 어찌 살아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세대 간의 갈등이 극심한 요즘이다. 누가 더 어렵냐고 묻는 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자신의 연령대와 보다 가까운 이들의 입장에 좀 더 깊이 공감하는 게 보편적인 태도일 거다. 저자는 50대다. 직업만을 놓고 본다면 그의 처지는 남들보다 한결 낫다. 정년이 보장되는 서울대 교수. 한 해 동안 그가 벌어들이는 금액은 아마도 많은 봉급생활자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교수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공부를 했다. 남들보다 늦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무리를 둬서 서울에 입성했다고는 하나 우리 사회에서 자녀 교육은 만사를 제쳐야만 하는 당연한 이유 중 하나다. 현재 그는 사회가 보장하는 연금과 함께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꽤 많은 금액을 노후 자금으로 묶어두고 있다. 어쨌건 그의 노후는 다른 이들보다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50대들에게 적잖이 공감을 했다. 직장에서 밀려나 대리 운전 택시 운전기사로 뛰고 있는 이를 만났을 때 하루치 일당을 걸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건 사회학자 특유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듯 결코 다르지 않은 본질이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읽혔다.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축 쳐진 어깨의 소유자.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불안해 보였다. 오십 대 육십 대에 아직도 직장생활을 하면 도둑놈이라는 뜻의 “오륙도”란 신조어를 수시로 들을 수 있었듯이 그들의 연령대는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평을 들었다. 직장에서 만난 인연을 가족 이상으로 챙기며 살았던 이들이 직장을 잃으니 인간관계가 단절됐다. 이제껏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가족들이 세 끼 내리 집에서 먹겠다는 당신을 달가워 할 리도 없었다. 탈출구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고용돼 고정된 월급을 받고 살던 이들이 뒤늦게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귀농? 몇 달 살고 말 게 아니기에 무엇보다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일이다. 환상을 갖고 있어서 실패하고, 무엇보다도 농사일을 얕잡아 보았다가 큰코다치는 이들이 상당수다. 직급을 낮추고 받을 수 있는 돈에 대한 기대치를 접어도 일자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부 등에서 운영 중인 재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무너진 자존심 회복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당장에의 생계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길 바라지만 역시나 어렵다. 나의 아버지는 이 책이 저자보다 10살은 많다.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사회에서 밀려나는 건 순식간이라는 걸 난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통해 보고 배웠다. 모두가 직장을 잃었던 IMF 시절의 일이다. 하는 일마다 돈을 까먹었고, 결국 지금으로부터 10년 전부터 아무 일도 안 하고 계신데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삶이 얼마나 무료할지는 상상조차도 힘겹다. 한 때 잘 나갔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 분께서는 이따금 옛 이야기를 들먹이신다. 그래봤자 퇴직하기까지 당신께서 직장에 몸담은 시간은 18년이 채 되질 않는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뀌니 ‘고작 18년’이라고 말하기는 뭐하다. 그래도 연금은 물론 생활비도 없이 딸이 버는 약간의 돈만을 이용해 삶을 기적적으로 꾸리고 있는 현재를 고려할 때마다 난 생각한다. 당신들께는 그와 같은 선택이 최선이었겠지만 사회 단위로 시야를 넓히면 나의 부모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우리 사회 참 대책 없다. 모든 세대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50대 이상 세대는 거기에 서글픔까지 더해진다. 아, 무너지지 않고 계신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평범’ 뒤에 숨은 위대함이 비로소 보이는 듯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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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 울지는 못하더라도... 나이 50이면 인생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나면서 나이 50이면 마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몸도 사회적 지위도 마음과는 멀어지면서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20대를 두고 그들이 안고 있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시행되고 각계각층에서 한목소리를 내며 그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50대, 우리시대에 50대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어디에도 그들을 위한 시도를 목격하지 못한다. 일부 사회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대안이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당사자인 50대들에게 얼마나 희망적인 대안이 될지 의문이며 그나마 위안이라도 되 주었으면 싶은데 그마저 여의치 않다.
급격한 산업화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살아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밀려나기 시작하더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한꺼번에 수 천 명이 끈을 놓치고 사회로 밀려나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제 2인생은 삶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첫출발선인 샘인데도 대책 없이 타의에 의해 몰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가부장적 의식이 지배적인 부모세대와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성장했던 자식세대 사이에 끼어 이 두 세대의 가교 역할을 하지도 못하며 책임만 지고 있는 50대의 현실에 대한 직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문제제기가 아닌가 싶다. 사회학자인 저자 송호근은 자신도 이 문제의 50대 중반으로 대학교수라는 다른 50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호조건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자신의 실재고민을 노출하며 이 시대 50대가 안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우리시대 50대가 안고 있는 현실문제는 가정에선 외로운 아버지로, 후배들 눈치나 보는 선배, 사회에선 보수적인 사람으로 낙인 되어 어느 한곳 마땅히 설자리가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50대도 한때는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목청을 높였으며, 사회에선 산업역군으로 든든한 기둥이었고, 따스한 가정을 꿈꾸는 가장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순간 허물어지며 자신을 돌아볼 기회조차 상실하며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는 슬픈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하필 이런 때 찾아오는 것이 삶에 대한 성찰의 기회다. 잊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럴 때 찾아와 현실의 문제와 겹쳐 더 암울한 현실을 만들어 낸다.
이런 현실을 공감하며 저자가 내 놓은 처방은 독립하자는 것이다.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이제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남은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독립을 이야기 한다. 이 독립에는 다가올 죽음을 맞이할 준비이며 달라진 조건에 맞는 일에 대한 준비이며, 가족과 일 때문에 생각도 못했던 취미를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나 둘씩 이런 준비를 하면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길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놓고 속으로 울지라도 가슴에 한을 쌓아 두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소리 내 울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속내에서 스스로를 다독일 힘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50대가 안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역시 나의 현실이다. 남은 시간, 아니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다.
송호근 교수의 이 책이 현실에 버거운 걸음걸이를 하고 있는 50대를 비롯하여 아직은 팔팔한 3, 40대에게도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어 미래를 희망으로 안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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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를 구독하면서 송호근 교수의 칼럼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칼럼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접할 때마다 무릎을 탁치게 된다. 그의 통찰력은 '역시 서울대 교수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도 하지만, 나는 그의 사회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그의 사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라고 느꼈다. 사회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사회에 관심을 가진다기 보다는 사회에 관심을 갖다보니 사회학에 정통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책은 먼저 50대초반에 명퇴를 당하고 대리운전 기사를 하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 가장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한다. 인터뷰 등의 형식을 빌어 남의 이야기를 사회학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물론 인터뷰한 내용도 있다) 곧 송교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도 베이비부머 세대이며 위로는 부모를 봉양해야 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야 하는 가장이었다. 또한 서울대 교수라는 직업이 얼마나 허울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이 직업이 정년을 보장하기에 좋은 점도 있다는 등의 아주 실제적인 이야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 되면서 이것이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은퇴로 인해 젊은 세대들은 혜택도 받지 못할 국민연금을 더 많이 부어야 하고, 너무 많은 은퇴세대들의 재취업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일자리마저 줄어든다고 말하면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무슨 사회악인 것 처럼 말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만되면 은퇴시기를 늦춘다고 하지만 실제 효과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갈곳없는 이 세대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소리내서 우는 법을 알지 못한다. 회사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치고 올라오고, 기술은 너무 발전해서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없는 형편인데, 나이는 들어 몸이 따라주지 않고 머리는 예전 젊을 때와는 너무 다르다. 이런 와중에 회사 곳곳에서는 명예퇴직이니 희망퇴직이니 이런 것을 만들어 내서 이들을 구석으로 몰아 결국 회사를 나가게 한다. 젊고 능력있지 않으면 회사는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직원이 회사에서는 직원이지만 가정에서는 가장임을 잊은 채, 그저 하루종일 돌아가다가 고장나면 버려지는 기계처럼 대우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젊은 이들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텐데도 이 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존심이 있는대로 꺽였고, 가정과 사회 모두에서 환영받지 못한 세대가 되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깊은 한숨속에 한번 울어보지도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읽는 내내 참 마음이 아팠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쳐진 어깨를 보는 것만 같았다. 또한 40대 초반만 되어도 명예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 세대에게 이 세대는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는 예고편인 것 같아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2013년부터 매 5년마다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가 한살씩 많아지면서, 일흔전에는 연금을 손에 쥐어보지도 못하게 된 현실에 짜증까지 솟았다. 다시 다이나믹한 코리아가 우리에게 돌아올까? 88올림픽 시절의 그 영광이 다시 올까?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책에 나오는 Simon&Garfunkel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버림받고 길을 헤맬때 누군가는 그들에게 따뜻한 어깨를 내밀어야 한다. 그 어깨가 우리 젊은 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고,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나이 많다고 회사에서 버림받는 일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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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대표주자로서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베이비부머 대변인을 자처했다. 베이비부머세대들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들을 인터뷰를 바탕으로 숨김없이 드러내고,자신의 삶의 궤적과 고민들을 여과없이 낱낱이 적고 있다. 그리고 정교한 수치화된 데이타를 바탕으로 사회학자 답게 자녀 교육, 주택 문제 그리고 노모의 부양 문제 등 현실적 문제들을 분석하고 진단하고 있다.
6.25이후 태어나 한국의 근대화와 고속성장의 아픔과 희생을 감내해야 햇던 베이비 부머세대. 권위적이고,수구꼴통이라는 나쁜 이미지속에 늘 자식과 대화없고,휴일에는 잠만 자는 나쁜 아버지 하지만 그 이면에 가정의 가장으로써 감내해야만 했던 그들의 무거운 삶의 무게와 아픔과 희생과 눈물들을 가슴깊이 비로소 이해할수있었고,감사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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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대개의 독자들이 그랬겠지만 착잡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그들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소리내 우는 세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사례 중심으로 되어 있어 신세한탄 늘어놓는 책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려운 사회학 용어를 잔뜩 끌어다가 독자들을 주눅들게 하는 것보다 쉬운 사례를 통해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온 지금의 50대였을텐데...하는 생각과 함께 열심히 살아온 내 부모님의 노후는 과연 어떤가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며 나의 노후, 나의 부모님의 노후,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이제 겨우 마흔 줄에 들어선 나인데, 이렇게 대한민국 모든 이가 노후 걱정에 불안해하고들만 있으면 말 그대로 '밝고 활기찬 미래'는 누가 만들어가나 싶어서, 그래서 더 착잡해지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 꿈을 꾸는 아이들이라고 해 봐야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공무원'하고 싶다고 하고, 왜 공무원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연금'을 이야기한다. 물론 공무원이 나쁜 직업도 아니고 그게 꿈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중학생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연금' 때문에 하고많은 직업중에 공무원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어른들 때문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신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어려운 말들보다 그저, 노후에 대한 걱정이 조금 덜어지는 사회, 그리고 제대로 된, 가끔은 엉뚱한 꿈들이 허락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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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0대 절반이 이런 절망의 균열 상태에 내몰리게 된 이유는 결국 십시일반 자신들의 자산을 할애해 공적 안전망을 만들지 않은 탓이다."
사회학자라는 자가 사회적인 문제의 원인을 개인 자신들에게 돌리는가? 사회구조나 사회모순 탓이 아니고... 저자가 중앙일보에 쓴 글을 읽어보았다. 삼성이, 이재용이 박근혜 최순실에게 준 돈이 정경유착관계의 뇌물이 아니고 조공관계의 조공물이다, 라고 개소리를 썼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라는 자가 이 정도밖에 볼 줄 모르는가?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 서울대는 원래 일본제국이 일제에 충성하는 인간들 만들려고 만든 일본의 대학이었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는가?
이재용이가 계속 주장한다. 박근혜 깡패가 알아서 달라고 협박해서 마지못해 주었지 댓가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라고. 돈 10원이라도 댓가가 없는데 그냥 조폭두목이 독재자가 달라고 해서 주는가? 권력이 요구하는데 안 줄수 있느냐? 한국은 삼성공화국 아닌가? 김용철이 다 폭로했는데 한국사회를 보는 눈이, 사회학자라는 자가 눈이 없는가? 이재용이 회장자리 승계하게 만들려고, 박근혜는 그것을 미끼로 요구한 돈 수백억을 삼성이 주었다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뇌물이 아니라 조공이다? 이재용 승계시키려고 국민연금 5000억 을 날렸다. 토해내야 하고 처벌해야 한다.
한국의 50대가 이렇게 찌질하게 살고있는 것은 개인들이 자기 자산 관리 못해서가 아니라 재벌이 이 나라 경제를 개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재벌이 지들 돈 챙기려고 지들 입맛에 맛는 정권을 세운 것이다. 정권이 재벌을 협박한 게 아니라 정권을 돈으로 매수해서 지들 말에 순종하는 정권을 만들었다고. 이명막도 박근혜도. 한국은 보수언론, 그 언론을 쥐고 있는 재벌 대기업이 좌지우지하면서 자기 입맛에 맞는 국회의원 장관 세워놓고 다 해쳐먹었다고. 서울대 사회학자가 이런 기본도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신문에 그렇게 쓴 것인가? 왜? 저자도 그들에게 뇌물먹었는가? 아니면, 왜 이재용이가 조폭마누라 같은 박근혜 최순실에게 삥 뜻긴 피해자라고 변명을 해주고 있는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지금 나라가 이렇게 개판인데 아직도 이건희 일가한테 아부하고 싶은가? 재벌이 한국경제를 독식하여 중산층이 무너지고 청년실업자가 넘치고 나이 60도 안 된 사람들이 멀정한 몸뚱이 가지고 퇴직 아닌 퇴직자가 되어 그렇게들 살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자기 돈 관리 잘 하지 그랬냐고? 사회학자가 그게 할 소리냐?
하여간 서울대를 폭파해 버려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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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우리 시대 한국 사회의 영욕은 물론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노후에 기댈 언덕은 달랑 아파트 한 채이고, 주택 가격은 주택연금의 액수를 결정하는 유일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에게는 평생 부친 땅과 같은 의미다. 그래서 아파트에 미친다. 부모들이 땅에 미쳤듯이, 베이비부머는 아파트에 비칠 수밖에 없다.
조상 숭배는 지배 전략의 방편이었다. 한국만큼 명절이 제례, 특히 조상 제사로 일관되는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말 개화기 선교사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미몽의 백성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자의 나라'로 뭉뚱그려 묘사했는데, 세계에서 유례없는 조상 숭배의 열기만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유교 문명의 종주국인 중국은 물론, 주변국인 일본과 베트남에서도 조상 제사를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고 문화권, 아니 세계에서 한국이 조상 제사를 지내는 유일한 나라가 된 까닥,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위패 앞에 은덕을 비는 나라가 된 까닭을 정작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
1894년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는 500년 도읍지 한양에 종교 시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종교 없는 제국은 없다는 문명사적 시선으로 보면, 사찰은커녕 공자 사당 하나 없는 유교 국가의 수도가 이상했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무속과 민간신앙에 푹 빠져 있는 조선인들을 목격했다. 가는 곳마다 무당이 있었고, 이슥한 곳마다 귀신이 살았다. 귀신 종류도 다양해서 그녀는 서른여섯 가지 귀신 이름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이 과도한 무속과 민간신앙을 조상 제례로 전격 대치한 계기가 바로 조선 건국이다. 고려 말까지도 명절은 하늘과 자연을 경외하는 집단 축제였다. 미국 선교사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기》에서 "코레아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에, 사고방식은 불교에 속하며, 곤경에 빠지면 귀신을 믿는다."라고 썼다.
제상에 차릴 온갖 제물을 폐하는 대신 밥, 국, 북어포, 냉수에 술 한잔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는 제사 간소화를 주장해서 네 발 달린 짐승의 고기를 금하고, 국, 밥, 나물, 건어포 정도만 권했으며, 그의 제자인 최시형은 아예 청수淸水만 올리도록 했다는 점을, 그리고 제사에는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므로 경건한 의식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조금 뜸을 들인 뒤 그가 투항했다.
"나도 그렇게 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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