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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가이자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양선규 교수의 인문학 수프 시리즈 중 첫 권인 '소설'에 대한 이야기. 지은이는 독자가 이 글 전체를 한 편의 소설로 읽혀지기를 바라고 있다. 장졸우교(藏拙于巧)라는 말은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서 감추다'라는 뜻. 채근담에 나오는 장교어졸(臟巧於拙 : 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다)을 패러디한 말이라고 함. 지은이는 소설도 아니고, 소설론도 아닌 이 책의 글쓰기가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2. "킬링 필드, 고해(告解), 죄 많은 내 청춘, 그 순간 내게는 그런 단어들이 떠올랐다. 광주에서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글쓰기 공부에 나서면서도 나는 그 단어들을 내 연습장에서 종내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2년 뒤, 어렵게 작가가 된 수상 소감 말미에 "문학은 나의 종교다"라고 썼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글쓰는 사람들에게 문학이 종교가 되는 것은 '쓸 만한 이유'이다. 3. "헤밍웨이가 주는 감동은 무엇보다도, 그가 묘사하는 '행동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 부분은 언제나, 단연코 압도적이다. 소설은 묘사라는 것을 그는 확실히 보여준다. 묘사의 힘이 모든 관념을 압도한다." 묘사를 잘 한다는 것은 나의 일상에 배인 행동의 깊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치열한 관찰력과 함께 묘사에는 생명력이 부여되어야 한다. 대가는 공연히 대가가 아니다. 4. "책의 진정한 가치는 보통 재독(再讀) 때 발견된다. 사람 만나는 이치와 같다. 초대면만으로는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초독(初讀)은 그저 상대의 얼굴만 알아보는 정도다. 첫인상이 좋다고 꼭 좋은 반려자가 되라는 법은 없다. 살아 봐야 좋고 나쁘고를 알 수 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내용을 겪어봐야 제대로 책을 알 수 있다." 나도 가끔 재독을 한다. 리뷰를 쓰면서 한 귀절쯤 인용해보고 싶어서 다시 꺼내본다. 그런데 읽으면서 느낀다. 이런 대목도 있었나? 그래서 책을 방출할 때마다 심사숙고한다. 다시 볼 수도 있는 책. 다시 안 봐도 될 책을 구분한다. 5. "대학 1학년 때 차라투스트라를 처음 만났다. 우연히 만났다. 아직은 많이 어리고 미숙한 때였다. 정을 나눌 친구, 사랑을 주고 받은 연인, 가르침을 줄 스승이 필요한 때였다. 차라투스트라, 그가 어떤 자격으로 내게 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까지 책에서 무엇을 배운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스승다운 스승도 없었다.(....)차라투스트라를 만나긴 했지만, 그는 종내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아직 내게 니체는 먼 그대이다. 내게 차라투스트라는 스트라우스의 음악으로 만나는 것이 훨씬 편하다. 보통의 클래식은 처음엔 조용히 시작하다가 고조되다가 다시 잔잔해졌다가 치솟아 오르곤 한다. 그런데 스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으면 시작이 만만치 않다. 산에서 큰 바람을 일으키며 차라가 달려 내려오는 것 같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맨발로 나무를 징검다리 삼아 밟으며 날아오듯 내려 오는 것 같다. 6. "헨리 제임스의 소설 [정글 속의 짐승]은 한 남자의 불운과 불민(不敏)을 그린다. 그에게는 남모르는 고통이 있다. 그는 늘 자신의 모든 행동은 결국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예감과 불안에 시달린다. 그는 한 번 지나온 길이 아니면 발을 내디디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앞장을 서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야 안전하다." 이 증상을 요즘 병명으로 붙이면 '공황장애'쯤 되겠다. 의외로 주변에 이런 불안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다. 눈빛을 보면 안다. 시선이 한 군데 오래 고정되어 있지를 못한다. 그리고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꺼려한다. 치료의 50 퍼센트는 그 사람 몫이다. 그래서 치료가 쉽지 않기도 하다. 6. "대학 1학년 때,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었다. 그 소설의 주제처럼 그때는 사랑과 야망 그 두 가지 주제가 내 인생의 전부인 양 여겨졌다. 그것 이외의 삶은 잘 상상되지 않았다. 희생이니 구원이니, 아니면 몰입을 통한 구도적(求道的)자기 실현이니 하는 것들은 아직 인생 목록에 오를 때가 아니었다. 그런 것들의 존재를 전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랑과 야망을 제외한 것들이 내게 자리잡기 전에 팍팍한 일상이 먼저 들어온다. 나머지 것들은 안타깝게도 몸으로 때우던 시기를 지나서 이젠 몸을 좀 아껴야 할 때 슬금슬금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이젠 어쩌라고? 그냥 받아들이며 살란다. 크게 놀랄 일도 화날 일도 낙심할 일도 없이 그냥 받아주란다. 7. 지은이가 소설, 소설가, 시인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버무려 써 놓은 글에 그저 몇 자 얹는다. 문학이라는 매개체가 있으니 크게 부끄러울 일도 아니다. 시나 소설이나 모두 작가들이 영적,육적 에너지를 소진해가며 쓴 글들이다. 그들에게 힘을 주는 일(크게 기대도 안 하겠지만..)은 많이 읽어주고 느낌을 공유하면서 살아갈 이유를 찾는 일이다. 글쓰는 사람들에겐 글 쓰는 일이 그들의 '종교'이기도 한다기에 더욱..그러면 독자는 신자(信者)가 되는 것인가? 문학교(文學敎)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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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이단어를 떠올리면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즉, 국민할매로 <남격>에도 출연하는 등 숱한 예능프로들에 출연하셔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계시는 기타리스트 김태원씨가 이끌고있는 그룹 <부활>의 히트곡 소나기가 생각나는 분도 계시고 동남아시아에서 낮한때 쏟아지는 소나기인 <스콜>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역시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찡한 감동을 줬던 황순원작가의 명작단편 소나기를 생각할 것이다. 그때 그 소설을 읽으면서 맨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소녀가 자신이 입었던 옷도 같이 파묻어달라고 했다던데 그의미가 뭘까 골똘히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중에 그소년이 본인은 느꼈는진 못했지만 무의식적인 첫사랑의 애틋함을 그린 소설이라느니 많은 평가와 평론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근데,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또 차태현, 전지현주연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영화속 패러디로도 차용되기도 했던 그소설의 힘은 무엇이었는지 그소설속 소녀가 한국민들이 특히 한국남자들의 영원한 첫사랑의 로망으로 어떻게 남아있었는지 지금도 연구되고 회자되고있는 소설이다.
이렇게 양선규 대구교육대학교국어과교수께서 저술하시고 <작가와비평출판사>에서 펴낸 이책 <장졸우교>에서 소개된 소설중 <소나기>편을 읽으면서 내어릴 적 아득했던 중학교 3학년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소나기>를 다시 회고해보게한 좋은 기회였다.
이책은 저자가 인상깊게 읽은 소설 20편을 엄선해서 저자가 받은 느낌과 감동은 물론 저자가 그책과 연관되서 겪었던 경험담이나 타인들의 이야기들까지 결부시켜 담담히 서술해나가는 책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영원한 로망 소나기라는 작품에서 모성 콤플렉스의 소산, 내안의 작은 인간, 아들연인의 사모곡이었다는 느낌은 또 신선하게 다가왔다(p144).
이책은 또 햄릿, 적과 흙, 달과 6펜스, 모비 딕 같은 고전작품들뿐만 아니라 금시조, 자전거도둑, 풍금이 있던 자리, 만다라같은 한국소설 글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같은 영국현대소설까지 다뤄 저자의 독서의 다양함과 이를 통한 다양한 시각들도 볼 수 있어 넘 좋았다.
그리하여 이책은 문학작품을 좋아하고 특히 소설을 사랑하는 분들이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들을 담담히 회고해보고싶기 위해서라면 읽어볼만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비 딕... 흰고래 모비 딕과 처절히 싸우며 끝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준 선장 에이협... 그리하여 모비 딕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다가 물속의 끝없는 심연으로 사라진 에이협선장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소설 모비 딕... 뮤지컬로도 봤을때 크나큰 감동을 받았던 명작 모비 딕...
이책 장졸우교를 읽음으로서 나는 허먼 멜빌의 명작 모비 딕을 다시 내손에 쥐고 읽고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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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수프 시리즈 첫 편인, 장졸우교(藏拙于巧)라는 생소한 제목이 눈에 띄는 책이다. 글쎄 처음 듣는 이 단어의 정체가 뭐지 싶었는데 장졸우교라는 말은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써 감추다’라는 뜻으로, 채근담에 나오는 장교어졸(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다)을 패러디한 말이란다. 게다가 분명 이 책은 소설에 관한 이야기지만 저자가 골라뽑은 20편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그 속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와 더불어 자칭 졸작이라 평한 자신의 작품들을 군데군데 끼워 넣고 작품평을 보탰다. 에세이 형식의 이 글을 한 편의 소설로 읽혀지기를 바라며 섰다는 저자의 말을 읽고서야 비로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국어시간에 문학은 우리에게 언어의 아름다움과 감동,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임을 깨닫기 전에 형식과 비판을 먼저 가르쳤다. 시험위주의 교육이 그렇듯 우리에게도 문학 읽기의 중요성은 무시된 채 형식과 구조의 뼈대를 먼저 배워야 했기에 국어 교육이 오히려 문학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지 않았나 싶다. 웬만한 인내심을 갖지 않고서는 고전을 비롯한 문학 작품을 읽어 내기란 쉽지 않았었다.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안에서라도 다른 이의 삶과 생각들을 접해 볼 수 있는 게 문학의 매력이란 걸 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비로서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소설도 아니고 소설론도 아닌 이 책의 형식을 어떤 틀에 놓고 봐야 할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저자가 추려 뽑은 몰개월의 새, 노인과 바다, 옛우물, 통도사 가는 길, 줄, 유자약전, 달과 6펜스, 자전거 도둑, 금시조, 풍금이 있던 자리, 소나기,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만다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 20편의 국내외 소설들을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과 그가 살아 온 삶의 굴곡들이 고스란히 녹아 든 저자의 글쓰기의 맨낯과 만주하게 된다. 저절로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 읽혀진다. 저자의 문학읽기는 그가 여태껏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되었으며 그런 개인적인 경험과 읽기를 바탕으로 그의 글쓰기가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싶다.
책은 저자가 읽은 책들과 그를 통해 느낀 감동이 어떻게 실생활에 스며들었으며 어덯게 글로 표출되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토록 오랜세월 동안 암암리에 문학이 인류에게 끼친영향과 문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잘라 말한다. " 말의 성찬, 문학은 그저 문학일 뿐 현실의 유추나 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형식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가 과연 독서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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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아! 소설도 이렇게 지을 수도 있는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 장졸우교라는 말은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써 감추다'라는 뜻입니다. 채근담의 장교어졸(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다)를 패러디한 말이라네요. 사자성어처럼 들리는데 제목도 이리 패러디를 하니 재밌다는 생각도 듭니다. 국내외 유명한 작품 을 소설적인 틀을 지닌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조금씩 보태었다니 기존의 작품과 어떻게 매끄럽게 이어질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몰개월의 새, 노인과 바다, 옛우물, 통도사 가는 길, 줄, 유자약전, 달과 6펜스, 자전거 도둑, 금시조, 풍금이 있던 자리,달밤, 소나기, 미망, 황혼,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만다라, 적과 흑,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모비딕, 햄릿 등 20편의 국내외 소설이 나옵니다. 제목만 보면 익히 들었던 고전들이 많은데요. 우리가 읽었던 내용을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면 오산이고요. 전혀 다른 느낌의 책으로 다가옵니다. 어찌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낸 에세이 같기도 한데요. 자신의 일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설과 연결시켰는데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내가 읽었던 작품의 내용이 새삼 궁금해 지기도 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처음 읽던 시절 저 또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어야 한다는 마음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고, 교과서에서 만난 소나기를 제대로 된 원작을 읽으며 가슴 콩닥콩닥 뛰었던 기억도 납니다. 아이들은 다르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면서 저 또한 공감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도 어릴적은 엄마가 권해주는 책을 많이 보던 우리 딸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기가 원하는 책만 보고 그렇지 않으면 인소나 웹툰에만 빠져있어 힘들었던 시기도 있습니다. 저자의 사족 "백동이 불여일소" 동화 백면이 소설 한 편보다 못하다고 하는데요. 얼마전 제가 딸아이에게 소설이라도 좋으니 제발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글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뚫린 기분이더라구요.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은 듯 했으나 읽을 수록 깊은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다양한 시각으로 접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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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양선규
책 읽기를 시작한지 약 4년이 되었다. 그전까지 나에게 있어서 책은 여성잡지와 자녀교육서 그리고, 아이들 그림책과 동화책 수준이었다. 그래도 난 초등학교때는 책을 제법 읽었고, 글을 꽤 써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때는 거의 책과는 인연을 맺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적과흑>, <데미안>, <전쟁과 평화>이 세 권이 고등학교시절 유일한 독서목록 이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책은 나도 모르게 읽기전부터 주눅이 든다. 읽어 가면서도 점점 머리가 새하예짐도 그 과정중 하나이다.
<장졸우교> 장졸우교라는 말은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써 감추다.'라는 뜻입니다. 채근담에 나오는 장교어졸(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다)을 패러디한 말입니다. 소설도 아니고 소설론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이 책의 글쓰기가 결국은 그런것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평이 글쓰기의 선한 노력까지 면제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읽은 소설과 제가 쓰는 소설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저자의 말 중)
조금만 어려워 지면 머리가 백지가 되는 아직 독서 쌩초보가 그래도 인문학에 발을 들여놓아보고자 선택한 책이다. 그것도 소설로서 시작하니 조금은 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론은 조금 어려웠다. 그래도 받아들일만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책 첫 말미에는 저자의 글 숨결과 속도에 나를 밎추느라 항상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그것이 맞아 떨어지기 시작하면 읽기에 속도가 붙는다. 이 책은 그 시간이 조금 길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긴 문장의 주술 상관관계가 너무 멀어 연결이 자꾸 끊길 때도 있었다. 그리고 논리의 넘어감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때도 있었고, 표현을 많이 어렵게 해 놓은 것도 있었다. (아마도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그렇게 산을 뛰어 넘듯이 논리가 마구 뛰어넘나 보다. 난 한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데, 작가는 벌써 저 봉우리로 옮겨가곤 하는 바람에 난 내 나름의 구름다리를 찾아 연결해줘야 했다. 몰론 작가가 넘어간 구름다리는 찾을 길이 없고 그나마 나의 구름다리도 내 수준으로 걸쳐놓을 만 하면 만들어 가지만 그마저도 되지 않을때는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그냥 다음 봉우리로 공간이동을 해버린다. 물론 그 사이의 논리의 연결은 무시한 채 말이다.^^)
그래도 읽으면 읽을 수록 머리속 뇌가 청소가 되는 기분이랄까? 어쩌다 너무나도 잘 연주된 음악을 듣고 나면 내 귓속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마사지까지 받은 기분이 나듯이 이 책도 진행될수록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읽었던 소설에 대한 느낌, 생각, 거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일 때도 있고, 생각나는 이야기를 연결할 때도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변이 나올 때도 있고. 한 편 씩 읽어 갈때마다 새록새록 재미있었다. 그중 재독에 관한 저자의 글은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재독은 보통 '특별한 내면의 요구'에 부응할때가 많다. 의식은 포착하지 못하지만 무의식이 무엇인가를 조회할 필요가 있을 때 등장한다. 무의식이 취하는 고전적인 자기표현 방법중의 하나다. 무의식은 늘 그런 식이다. 자기가 원하면 뜬금없이 여행이나 독서나 가무의 충동을 일으킨다. 교양 욕구나 심신의 재충전 같은 '무목적의 목적'을 내세워 자신의 '삶'을 슬그머니 의식계에 투입한다. 재독은 그러므로 '무의식으로의 여행'이다. 스스로 재독 리스트를 작성해보면 자신의 내면에 그려진, 마치 심해 지도와 같은 음영 짙은, 트라우마의 초상과 대면할 수 있다. (p43)
어떤 장은 저자도 인정했듯이 소제로 내세운 소설과 그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것인가 황망할때도 있었지만, 생각의 연결고리가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지는 것이 내 뇌세포의 탄력성을 훈련시켜 탱탱한 상태로 만들어준듯한 기쁨도 있었다. 글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다. 저자 또한 중간중간 자신의 작품들을 발췌해 올려 놓았는데 그의 삶의 질곡을 볼 수 있었다. 그가 겪은 삶을 책읽기와 글쓰기로 완곡하게 표현하였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이 책을 재독할 필요성을 느낀다. 나의 무의식이 언젠가 이 책으로 나를 이끄는 날이 있겠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내 안의 책을 읽는다는 말이다. 내 주제가 책의 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내가 가진 그릇이 작으면 책에서 퍼 올 것도 적고, 내 그릇이 커지면 책에서 퍼 올 것도많다. 그러니,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것이 책이다.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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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새롭게 읽기 문학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오랜 시간동안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문학 작품들에는 그 작품만의 독자를 끄는 힘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고전을 비롯한 문학이 살아남은 이유가 될 것이지만 아직 그 힘이 무엇이라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못한다. 한때 소설은 그저 심심풀이로 시간이 날 때나 관심분야의 책에 지쳐 다른 읽을거리를 찾을 때나 만나던 것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고전읽기 모임에 참여하며 힘들게 읽어가던 소설 속에서 사람의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찾아내고 나서부터 주된 관심사 중에 하나로 등장한 것이다.
이것일까? 문학이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아 든든하게 독자들 편에 서있을 수 있는 힘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문학작품을 만나는 시간은 어렵다. 고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을 대할 때면 한편으론 고역이나 마찬가지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품들이 많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오랜 숙제 앞에 한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책을 만난다. 작가와비평사에서 발간한 인문학 수프 시리즈 첫 번째 책 바로 양선규의 ‘장졸우교’다. 저자 양선규는 소설가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저자는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인문학의 보고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소설읽기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의 졸렬함을 기교로써 감추다’는 뜻의 ‘장졸우교’는 졸렬함이나 기교보다는 마음으로 읽어가는 소설이야기로 읽힌다.
‘장졸우교’에는 몰개월의 새, 노인과 바다, 옛우물, 통도사 가는 길, 줄, 유자약전, 달과 6펜스, 자전거 도둑, 금시조, 풍금이 있던 자리, 소나기,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만다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 20편의 국내외 소설을 저자 자신의 눈으로 읽는다. 그저 소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삶과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소설과 접목시켜 인간 삶의 본질로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의 소설읽기가 힘을 가지는 것은 솔직한 개인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속에 내재해 있는 인간의 삶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개인의 문제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것 같은 한편의 에세이를 보는 듯도 하다. 그래서 장졸우교에서 만나는 소설들은 낯선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하며 때론 이 작품이 이런 내용이었나 싶은 의아심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만큼 저자의 소설읽은 시각이 독특하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좋은 작품 20편을 골라, 소설적인 틀을 지닌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때그때 조금씩 보탰었다. 그 두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서로를 간섭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고 했다. 독자들은 두 이야기가 서로 간섭하여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을 읽게 될 것이다. 소설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 저자의 눈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작가와비평이 이런 기획의도로 발간하는 인문학 수프 시리즈라면 독자들의 기대감을 충족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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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사자성어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어서, 무슨 뜻인가 찾아보니 책의 맨 앞 '저자의 말'에서 저자가 설명해 줍니다. 원래 없던 말을 패러디한, 즉 저자가 만들어 낸 신조어 입니다. 채근담에 나오는 '장교어졸'이라는 말을 패러디해서 '장졸우교'라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20편의 소설을 골라,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버물여 놓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서 이미 독후감 비슷한 책들을 몇 권 읽었기 때문에 그런거 비슷한 내용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기존에 읽었던 서평모음집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중요한 주제는 20편의 소설이고, 그에 따라 이 책의 구성도 20여가지의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 가지씩 이야기를 읽다 보면, 훨씬 더 많은 다른 작품들과, 작가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첫 장의 주제인 소설은 황석영 작가의 '몰개월의 새'이지만 첫 장안에 처음 등장하는 인용문은 이청준 작가의 '말없음표의 속말들'입니다. 단순히 정해진 20편만을 딱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것들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어서, 인용된 문구와 작품들을 확인해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저 자신이 글을 잘 쓰거나 문학적인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관계로 소개된 작품중에는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잘 연결되는 모습들이 희한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저자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장 소나기 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도 잘 아는 작품이 나온것에 책장을 빨리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에서 어떤 부분을 인용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가 아는 부분일까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소나기'가 아닌 다른 작품의 인용으로 슬며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도 모르는 새 다른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권의 소설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모습을 통해 똑같은 책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새삼느꼈습니다. 저자의 눈을 통해 바라본 이야기는 역시 저의 시야와는 다르면서도 더 넓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관점과는 다르게, 더 넓게 보도록 시도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쉽지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책에 나온 다양한 소설, 시 등에 대한 제목이나 내용이 주석이나 참고도서와 같은 형식으로 정리되어서 한 눈에 보기좋게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른 관점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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