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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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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1899년에 태어나 195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회 활동은 1919년 3.1운동에서 시작되었다. 3.1운동으로 체포돼 1년 정도 투옥 생활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된 후 근대적 민족의식, 애국심, 국가 의식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늘어났다. 조봉암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온 직후 다시 체포돼어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수십 차례 유치장 살이를 해봤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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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1899년에 태어나 195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회 활동은 19193.1운동에서 시작되었다. 3.1운동으로 체포돼 1년 정도 투옥 생활을 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된 후 근대적 민족의식, 애국심, 국가 의식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늘어났다. 조봉암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온 직후 다시 체포돼어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 수십 차례 유치장 살이를 해봤지만 이때보다 더 힘든 일은 없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듬해 일본 중앙대학전문부 정경과에 입학하면서 박열 등과 함께 흑도회를 조직했다고 자료상에 나온다. 조봉암은 귀국 후 1923년부터 청년 운동을 많이 했다. ‘내가 사회주의자다라고 자처라는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회주의자들이 노동 운동의 현장으로 직접 뛰어드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함께 활동하는 모습이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조봉암은 33세이던 1932년 상해에서 체포된다. 그 후 7년간 옥살이를 하며 감옥에서 40대를 맞는다. 윤봉길의 거사가 일어난 대단한 폭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안창호 등도 체포된다.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사회주의자들에겐 유명한 애인들이 있었다. 박헌영에겐 주세죽이라고 서양인처럼 생긴 여성이 있었다. 조봉암은 김이옥이라고 강화도의 부잣집 딸이 있었다. 감옥소에 갔을 때 옥바라지를 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됐는데 김이옥 집에서는 용납을 안 했다고 한다. 상해로 와서 재회했고 큰딸 호정 씨가 태어나게 된다. 김이옥이 죽고 김조이와 재결합했지만 한국전쟁이 나자마자 헤어지게 된다. 여성 문제, 김이옥과 같이 산 것이 동지 김조이가 있는데 그럴 수 있느냐는 식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내각을 발표할 때 조봉암은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해 또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승만 초대 내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있다면 조봉암이 농림부 장관이 된 것이었다. 농림부 장관에서 물러난 조봉암은 한민당의 후신인 민국당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건이 생겼다. 민국당의 내각제 개헌안을 공격한 내용을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조봉암이 이승만 쪽을 지키기 위해 내각제를 그렇게 강하게 비판했다고 보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조봉암은 대중 정치뿐만 아니라 정당 정치, 의회 정치를 중시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19615.16쿠데타가 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혁신 정당 중에는 농민, 노동자를 기반으로 한 당이 없었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진보당의 경우 이승만 정권이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던 것을 들 수 있다. 조봉암과 신익희는 1956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 두 사람은 못 나오게 해야 한다고 봤다. 19603.15 부정 선거를 지휘한 내무부 장관 바로 그 사람이다. 신익희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임무가 최인규한테 주어졌다고 최인규 글에 나온다.

 

1956년 대선에서는 그 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구호가 탄생했다. 민주당에서 내건 못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봤자 별 수 없다”, “구관이 명관이다같은 것들을 비롯한 여러 구호를 정하고, 나름대로 묘안이라고 여겨 각지에 포스터 같은 걸 덕지덕지 붙였다. 하지만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 구호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한 신문은 이렇게 표현했다. “벽보전을 가지고 비유한다면 자유당은 비행기, 민주당은 버스로 하고 다니고 진보당은 지게일지 모른다.” 세 당이 당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표현한 것이다.

 

북진 통일 운동이 이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와 동시에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공, 방일, 북진 통일및 중립국 감시 위원단에서 적성국철퇴 요구, 재일 교포 북송 반대 같은 것들은 모두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1958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그해 1월에 진보당 간부들 검거가 시작되면서 진보당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조봉암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1심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이 구형되었고 2심에서 사형선고를 내렸다. 대법원 판결 후 조봉암은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다음 날인 731일 사형이 돌연히 집행된다. 처형 당시 60세였던 조봉암은 형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억울하게 사형에 처해진 조봉암은 52년이 흐른 2011년에야 명예를 회복한다. 20111월 대법원은 전원 합의 판결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진보 정치인 조봉암은 어떤 정치를 펼쳤는가? 진보당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이승만은 극우 반공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왜 조봉암은 사형되어야 했는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려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던 시기에 조봉암은 활약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이 책은 진보 정치인 조봉암을 재조명하는 책이며, 동시에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g****n 2021.04.0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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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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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권입니다. 주제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현대사의 환희와 분노의 교차로 입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어 여타 다른 책과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하고, 보수 세력의 역사 왜곡을 인지하고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구체적인 현실에 깊이 뿌리내려야만 이 어두운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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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권입니다. 주제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현대사의 환희와 분노의 교차로 입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어 여타 다른 책과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하고, 보수 세력의 역사 왜곡을 인지하고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와 구체적인 현실에 깊이 뿌리내려야만 이 어두운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입식 교육에서 배울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여 감명깊게 볼 수 있었습니다.

o***a 2019.05.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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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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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가.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20권은 1987년 '6.29선언', '7-8-9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그해 12월 대선에 이르기까지 6월항쟁의 결과와 한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987년 12월 대선은 6월항쟁의 의의를 변질시켰다. 그러나 6월항쟁과 민주화를 통해 한국사회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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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가.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20권은 1987년 '6.29선언', '7-8-9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그해 12월 대선에 이르기까지 6월항쟁의 결과와 한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987년 12월 대선은 6월항쟁의 의의를 변질시켰다. 그러나 6월항쟁과 민주화를 통해 한국사회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a 2026.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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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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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이른바 '87년 체제' 속에서 지내왔다. 이 책을 통해 그 6월항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때껏 상상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로 진입할 수 있게 했던 '세 번째 해방'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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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 이후 한국사회는 이른바 '87년 체제' 속에서 지내왔다. 이 책을 통해 그 6월항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때껏 상상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로 진입할 수 있게 했던 '세 번째 해방'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a 2026.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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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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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의 배경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6월항쟁을 추동한 힘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발생한 정치 사회적 구조는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 6월항쟁을 빚은 1985~1986년 기간 한국사회의 역동을 탐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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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의 배경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6월항쟁을 추동한 힘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발생한 정치 사회적 구조는 어떠했는지를 살펴본다. 6월항쟁을 빚은 1985~1986년 기간 한국사회의 역동을 탐험할 수 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a 2026.06.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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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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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권의 주제는 4월혁명이다. 서중석 교수는 4월혁명을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며, ‘제2의 해방’으로 부르고 있다. 1950년대는 이승만 정권의 비리, 부정부패, 선거 부정, 악정, 폭정 등으로 숨이 턱턱 막히던 시기였다.   4월혁명이 일어나게 한 1960년 3.15 부정 선거 과정을 보면, 이승만 정권의 전체 상이라고 할까, 그 성격을 총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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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권의 주제는 4월혁명이다. 서중석 교수는 4월혁명을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며, ‘2의 해방으로 부르고 있다. 1950년대는 이승만 정권의 비리, 부정부패, 선거 부정, 악정, 폭정 등으로 숨이 턱턱 막히던 시기였다.

 

4월혁명이 일어나게 한 19603.15 부정 선거 과정을 보면, 이승만 정권의 전체 상이라고 할까, 그 성격을 총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4.19혁명과 4월혁명 가운데에는 4.19혁명보다 4월혁명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피의 화요일로 불린 1960419일 당일에만 123명이 사망했다. 의분에 찬 굉장히 큰 시위, 그리고 학살, 젊은 사람들이 죽어간 그날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건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부정 선거 유형을 3.15 부정 선거처럼 많이 보여준 선거도 드물 것이다. 야당이 선거 운동을 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구타 사건, 야당 사람들이 두들겨 맞고 도망 다니고 하는 건 부지기수다. 19545.20선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특히 19603.15 부정 선거 때는 아주 심했다.

 

3.15 부정 선거와 피의 화요일’ 4.19 시위, 승리의 화요일 4.26 시위 같은 각종 시위에는 이승만 정권의 전반적인 성격이 집약돼 있다. 단순한 부정 선거에 대한 항의라고 볼 수 없는 면이 그 시기에 너무나도 강하게 드러난다. 2차 마산의거에서 여성들이 한 역할은 특별히 중시해서 볼 필요가 있다. 부녀자 또는 여성, 여학생이 한 역할은 민주화 운동사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당시 남존여비 사고가 강했던 것을 고려하면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4.19 그날, 서울 거리를 가득 메운 20만 시위대 무차별 발포로 맞선 이승만 정권이었다. 무장 경찰은 민간 집을 샅샅이 뒤져, 숨어 있던 학생들을 개 끌어내듯 끌고 나와 마구 구타했다. 이곳에 있던 시위대에는 동국대, 연세대, 서울대, 동성고 학생들이 많았다.

 

5.18 때와 달리 4월혁명에서는 총을 가진 시위대와 군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계엄군은 출동할 때부터 신중을 기했다. 명령이 있을 때 외에는 총기 발사를 금지했고, 시위대건 시민이건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했다. 계엄군 장교들 상당수는 시위대에 대해 동정적이었고, 3.15 부정 선거에 대해 비판적이었다는 글도 있다. 425일과 26일의 시위에서 시민들은 대체로 계엄군에 호의적이었고, 계엄군을 적대시하지 않았다. 4월혁명 당시 계엄군의 그러한 태도는 20년 후 5.18 때 전두환 신군부가 투입한 공수 부대가 화려한 휴가라는 이름 아래 광주 시민들에게 자행한 무차별 폭력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미국이 이승만 하야에 얼마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느냐 하는 것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이 물러나게 된 데, 다시 말해 자신이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 있고 측근조차 물러나라고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 군이다.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428일 새벽 이기붕 일가가 자살한 것이다. 권력 2인자의 죽음은 너무도 쓸쓸했다. 조사도 읽지 않은 채 15분도 안 돼 영결식이 끝났고, 그러고서 값싼 목관에 허술한 수위를 입은 채 조봉암 등이 묻힌 망우리로 갔다.

 

10.26 이후 김재규가 재판을 받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는데 박 대통령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른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할 것은 틀림없다그래서 자신이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진술했다. 4월혁명으로 정말 꿈에도 그리던,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가 찾아오자 그것을 특히 문화인, 지식인, 학생들이 앞질러 만끽한다고 할까, 누리는 걸 볼 수 있다. 4월혁명은 민족 자주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갖게 했다. 그러면서 통일 운동이 강력히 전개되는 걸 볼 수 있다. ‘생활이 나아져야 하고 우리 경제가 자립해야 한다’(p240) 이런 것도 4월혁명이 열어놓은 분위기 속에서 그야말로 열화와 같다고 할까, 굉장히 강렬했다.

 

법치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4월혁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신호로 해서, 제주 4·3 학살을 포함해 한국전쟁 전후 자행된 수많은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이었다. 이처럼 4월혁명과 같은 민주화 운동은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고, 우리 사회를 변모시키고 사회에 신선한 바람, 역동적인 힘을 부여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새 출발을 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읽고 리뷰 쓴 날짜가 419일어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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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 2021.04.19.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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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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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를 보면 현대사 최대 사건으로 한국전쟁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해방’을 최대 사건으로 보고 있다. 한국전쟁이 기성세대에 자리잡은 까닭은 수십 년 동안 반복 교육을 받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주민 모두에게 반세기 넘게 이데올로기 교육의 최대 현장이었다.   2권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 편은 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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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를 보면 현대사 최대 사건으로 한국전쟁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해방을 최대 사건으로 보고 있다. 한국전쟁이 기성세대에 자리잡은 까닭은 수십 년 동안 반복 교육을 받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주민 모두에게 반세기 넘게 이데올로기 교육의 최대 현장이었다.

 

2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편은 참으로 내용이 어둡다. 민간인 집단 학살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된 뒤 분단으로 치달은 한반도에는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이 한국전쟁은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6.25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과 함께 세계 전쟁의 모습을 띠고 있다. ‘16개 참전국이란 말이 예전에 많이 사용됐는데, 자유 진영에서 대표적인 나라가 모두 참전했다. 일본도 개입했다. 공산 진영의 중국뿐만 아니라, 최근 자료가 말해주듯이 소련도 공군 중심으로 명백히 참여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물자로 이 전쟁에서 북측을 지원했다.

 

전통주의는 모든 책임을 소련 등 공산권에 묻는데, 수정주의는 38선 획정에서 남북 대결에 이르기까지 미국에 많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외부에서 찾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단 문제를 중시했다. 커밍스는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대단한 개척자였지만, 이 점에서도 획기적이었다.p29

 

대통령이란 건 굉장히 소중한 자리다. 전쟁이 발발했으면 즉각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해서 대책을 세우고, 국무회의도 열고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전황이 어떻다고 알리는 방송이라도 했어야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진주만 기습 사건이 나니까, 미국 사람들을 단결하게 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마찬가지로 전쟁이 일어났으면 이 대통령도 국가 원수로서 국민한테 어떻게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어떻게 해나가겠다하는 연설을 바로 했어야 하는 건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627일 새벽 2~3시경 서울역에 비상 열차를 세워놓고 거기 타버렸다. 장관들에게도, 군 수뇌부한테도, 국회에도 일체 안 하고 혼자 서울을 떠나버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에 가서 비상 국무회의를 주재하다가 또 피신했다. 대구 쪽으로 가면 게릴라 같은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호남선을 타고 목포로 갔다 목포에서 또 배로 부산까지 갔다. 노인네로서 무척이나 길고 힘든 여행이었다. 이렇게 대통령은 전쟁 났을 때 피신만 하고 다녔다. 한국전쟁은 1951년에 끝냈어야 했다. 그랬으면 2년 더 계속된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나 북폭으로 인한 파괴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오래 걸린 이유는 이 전쟁이 강대국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었고 이데올로기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는 물론이고 1950년대엔 군대에 서로 안 가려고 손가락을 자르는 경우가 많았다. 먹을 것도 제대로 안 주고, 이른바 빠따치고 막 기합을 주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당시 촌사람들이 군에 많이 갔다. ‘이 없으니, ‘군대에 와라하면 자해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여성 중에서 식모살이라도 해서 집안에서 밥 한 끼라도 줄이려는 생각으로 보따리 싸가지고 도시로 나가는 이들이 늘었다. 그 결과 산업화 없는 도시화가 이뤄졌다. 도시는 인구 과잉이 되었고 판자촌이니 달동네가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이 문제는 평준화 현상의 확산과도 관련돼 있다.

 

한국전쟁의 큰 교훈은, 한편으로는 학살이라든가 부역자 문제 등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새겨보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한반도 평화처럼 소중한 건 없다. 그게 한국전쟁의 최대 교훈이다. 4.3에 대한 연구도 많지만, 보도연맹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보호해준다하여 가입한 경우도 있다. 가입하면 완전하게 자백서를 쓰게 했는데, 중요하게 써야 할 사항이 같이 활동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입하는 것이었다. 고문을 하면서 이름을 대라고 해 결과적으로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뉴라이트나 극우들이 얘기하는 걸 저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극우 반공 세력이야말로 철저하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 아닌가. 뉴라이트는 바로 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을 합리화하는 측면이 상당히 있지 않나. 극우 반공 세력은 부정부패가 심했다. 특히 선거 부정이 아주 심했다, 19603.15 부정 선거만이 아니다. 유신 헌법과 전두환 신군부 헌법 같은 건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자유민주주의를 뿌리째 뽑는 행위 아닌가.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에 자행된 그 엄청난 학살에 대한 진상 조사라든가 책임 규명 같은 게 있었다면, 베트남이나 광주에서 그런 일이 안 일어났을 거라 본다. 너무나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살 사건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할 수 있는 한까지는 책임 추궁을 해야 하는 것이다. 6월항쟁 이후에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g****n 2021.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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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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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와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가 함께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다. 1권에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김덕련이 묻고 서중석이 답하고 정리하였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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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와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가 함께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다. 1권에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김덕련이 묻고 서중석이 답하고 정리하였다.

 

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거기 포함된다. 이들은 이승만을 살리고 나아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만들어놓을 수만 있으면 역사의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아가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기득권을 계속 움켜쥘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p8 책머리에

 

우리가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았다는 것이다. 해방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게 아니다. 끊임없이 항일 투쟁을 해온 분들이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맞았다. 해외 독립 운동 세력의 귀국이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거리다. 중경은 지금도 비행기로만 3시간 넘게 걸리는데 연안은 서안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궁벽한 곳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미국과 소련은 해외 독립 운동 단체가 들어오면 한국 문제를 두 나라가 중심이 돼 풀어가는 데 문제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감격스럽게 해방을 맞이하여 꽹과리를 치면서 각지에서 풍악을 울리고 현수막 같은 걸 갖고 나오는 사진들이 다음날 816, 17일 찍었다. 한국인들은 꿈같이 해방을 맞았지만 해방이 되면 바로 독립이 이뤄지는 줄 알았다. 경제 상황이 아주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제 말에 지독한 통제 경제였는데, 미군정이 그런 한국 실정을 잘 모르고 미국식으로 자유 경제를 실시해버렸다. 미군정은 한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을 실시하게 된다.

 

극좌는 미소공위 지지 성명을 연달아 냈다.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다. 극우는 더 문제가 되는 행동을 취했다. 미소공위에 아주 직접적으로 거리를 뒀다. 미소공위가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극좌와 극우가 미소공위에 과연 현명한 태도를 취한 건가.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단 말인가. 제주 4.3사건, 여순사건의 발생은 누가 보더라도 남로당과 관련이 있다. 중앙당의 지령에 따라 조직적 움직인 것이 아니라 현지에 있는 남로당이 일으킨 것이다. 중앙당의 어떤 지시도 받지 않고 지방 하부에서 자기들끼리 상의해서 일으켜버렸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단적으로 독재자라고 하고 있고,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얼마나 심한 부정 선거가 자행됐나.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기본이다. 이런 부정 선거의 노하우가 쌓이고 이승만의 권력 의지가 작동해 3.15 부정 선거가 일어나고 결국 이승만이 물러나지 않았나. 이런 분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나. 초대 대통령이었다고 말하면 된다.

 

2015년은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대표적인 경우는 나치 협력자나 친일파다. 친일파가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 자꾸 부각되기 때문 아니겠나. 뉴라이트나 수구 언론에서 친일파를 계속 옹호하는 걸 보더라도, 그만큼 그 사람들에겐 중요한 문제, 현재의 문제란 생각이 든다. 일제 때 기술직에 종사했던 하급 관리들은 해방이 되자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나라를 세우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악질 친일파만 다시 권력에 빌붙어 자기들 세상을 찾으려 혈안이 된 것이지, 반민족 행위를 했던 이들 중 다수는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서중석 교수는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위해 뭔가 한 게 있다는 식의 논리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도 친일파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산 대상이어야 할 친일파가 오히려 권력을 잡았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으니 한국 사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뎌온 역사의 흐름을 뒤집고 왜곡하는 것을 바로잡자는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20권까지 방대한 역사 이야기를 읽어 볼 생각이다.

 
g****n 2021.03.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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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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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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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2019.05.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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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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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3권입니다. 주제는  조봉암과 이승만, 평화 통일 대 극우 반공 독재 입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에서 배울 수 없었던 우리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여 감명깊게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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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2019.05.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