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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그 중에서도 서독이모는 마음에 남는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들어있지만 가장 머리를 탕 치는 것 같았던 것은 누군가의 삶이, 생존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전시품이며 구경거리라고 표현된 장면이다. 나는 누군가의 일상을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았나? 소비되는 누군가는 나의 호기심에 상처받지 않았나? 그저 다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안되는 걸까? 짧은 장면에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그런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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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작가는 내가 잘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들을 한꺼번에 여러 개를 던진다. 그래서 나는 그 얘기를 입 다물고 초조히 들어줄 수밖에 없다. <서독 이모>는 백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어느 문제에 초점을 두어야 하나 혼란도 있었지만, 코가 막히고 목이 칼칼한 와중에 코로나 외의 것을 생각하고 찾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준 책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학원을 다니던 정우정(화자)은 우연히 독일 통일 20주년 세미나에 참석하여 동독 출신이었던 이모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동독에서 혁명을 꿈꾸다 서독에서 이모와 결혼한 뒤 2년 후 이모 곁을 떠난 이모부와 '서독' 이모를 고집하며 여전히 독일에 머물고 있는 이모에 관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늦게 오는 자는 삶이 벌한다? 책에서는 이모가 좋아하던 문장이면서 이모부의 신념에 가까운 문장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을 이해는 못 하면서도 낯설지가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 읽었던 독일 관련 책을 뒤져보니 이 문장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동독의 시위대는 심지어 고르바초프가 묵고 있는 호텔 앞까지 따라가서 그의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그들의 외침에는 “동독 공산당도 이제 민주적 개혁을 해야 하는데 스탈린주의자가 앉아 있다. 우리 편을 들어달라”라는 뜻이 들어 있었지요. 이때 고르바초프가 유명한 말을 던졌습니다. “늦게 오는 자는 삶이 벌한다.” 뉘앙스가 매우 풍부한 말이긴 하지만, ‘지금 개혁을 하지 않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만은 분명했지요. 이 말에 고르바초프가 자신들의 편임을 확신한 동독 시위대는 더욱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p205 - 김누리 정우정(화자)의 소설 속에서 K(화자의 이모를 상징)가 동독의 혁명에 대한 극을 쓰고 있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클라우스(이모부)는 화를 내며 말한다. 당신이 동독 혁명에 대해 아시오? 난 그것을 경험했소. 이 질문은 동독 혁명을 직접 겪은 클라우스가 K(이모)에게 하는 말이고, 그 시대를 겪어보지도 못했음에도 그들의 소설을 쓰려고 하는 정우정(화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동시에 이 소설을 쓰는 박민정 작가를 향한 질문일 수도 있다. 그 사건을 겪어보지 않은 후대의 사람이 그 역사를 언급한다는 게 과연 건방진 일이기만 할 것인가. 이런 시선에 대해 자신의 산문집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셨던 박민정 작가의 발언이 떠올랐다. ‘네가 1980년대를 아냐’고 꾸짖었던 교수에게 지금도 돌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1980년대 초반엔 존재하지 않았고, 중후반에도 그저 생존하는 생물일 뿐이었으나, 그러므로 나는 1980년대를 몸으로 겪어내지 않았으나 그 시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싸우고 있다고. 내 일생의 쟁투는 전부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았던 일들에 닿아 있고, 그것에 부끄러움도 부채 의식도 느끼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당신이 살았고 감각했던 1980년대는 당신에게는 지나가버린 한 시절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탐구해야 할 대상이므로. 지금 탐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당시의 당신에게보다 더 많은 자료가 주어져 있고, 조사와 검수를 통해 숨겨진 사실들이 밝혀진 바 있으며, 그러므로 나의 산문과 역사적 연대기로서의 산문이 일치하는 순간들이 더 많아졌다고. 개인사는 희미한 기억일지언정 나의 산문으로 재의미화되었다고. <잊지 않음> p75 - 박민정 탐구하는 자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조금만 아는 것보다는 하나도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고, 어설프게 경험한 사람보다는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 2년간 미지의 영역이었던 코로나 확진자의 생활에 대해 당사자로서 몇 가지 지식과 경험들이 쌓이고 있다. 이런 거였구나, 하고 이쯤에서 탐구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수도 있었겠으나 동거인의 검사 절차를 묻는 질문에 응대했던 사람의 충격적인 행정 자세를 접하고는, 날이 밝을 때마다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시 리셋하리라 다짐하며 탐구의 자세를 놓지 않으려 한다. <서독 이모>를 얘기하다가 코로나 얘기를 해버렸는데 어차피 마찬가지다.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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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통해 알게 된, 박민정 작가의 소설이다. 한국 문학에서 보기 힘든 소재인 독일 통일 이후 서독과 동독의 지식인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 끌려서 골랐는데, 읽어보니 독일 문제 외에도 주인공 우정의 대학원 생활, 교수와의 관계, 창작의 어려움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 우정은 학부 졸업 후 잠깐 취업했다가 도망치듯 퇴사하고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논문을 쓰는 중이다. 우정에게는 독일 통일 전 서독으로 유학해 현재는 독일 대학의 교수가 된 경희라는 이모가 있다. 어릴 때 이모를 만나러 독일에 갔던 기억과 그때 만난 독일인 이모부 클라우스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우정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한편, 우정은 논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독문과 최 교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알고 보니 최 교수는 이모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독일 이야기도, 대학원 이야기도, 창작 이야기도 하나같이 흥미롭고 매력적인데 120여 쪽의 소설로 담아내기에는 너무 버거운 소재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 이모와 클라우스, 그리고 클라우스의 또 다른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장편소설 감이 아닌지. 망망대해에 발만 적시고 나온 느낌이다. 언젠가 머리끝까지 푹 담그고 나온 듯한 느낌의 소설로 재탄생 되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