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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장래희망의 단골메뉴에 과학자가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학창생활이 거듭될수록 과학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과학시간에 과학실로 이동하여 나름 실험을 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과학수업은 오로지 시험에서 점수를 따기 위한 교육으로 전락한 느낌마저 들었다. 국영수에 비하여 그리 많은 시간이 배정되지는 않으면서도 다루는 범위는 넓었으니 대부분의 과학교육이 과학의 원리를 이해시키는 것보다는 단기간에 점수를 딸 수 있도록 암기과목처럼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쨌든 그 여파로 인하여 한동안 과학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과학에 대한 다양한 책들, 이를테면 인문학과의 통섭으로서의 과학이라든지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조금씩 접하면서 과학에 대하여 조금씩 흥미가 생겨났는데, [통통한 과학책]도 그래서 읽게 되었던 것 같다.
'통합하고 통찰하는'의 뜻을 지닌 '통통'은 이 책이 마냥 딱딱하게 보이는 과학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최근 과학이 인문학과의 통섭을 시도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즉, 과학이 소수의 전공자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됨을 통찰하면서 인문학처럼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탐구와도 관련이 있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의 역사를 통하여 과학의 본질을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과학사를 단순히 시대순으로 서술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탈피하여 1권에서는 '질문, 물질, 에너지, 진화'라는 키워드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키워드에 따른 과학사가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사를 키워드 중심으로 주제를 압축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통합하고 통찰하는'이라는 제목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이들 키워드 중에서 1권의 시작을 '질문'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하고 있는 부분은 과학사를 다루는 책으로서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물론 기존의 과학사에 관련된 책들에서도 세상의 근본 물질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롭다고 말하는 '무지(無知)의 지(知)'와 탈레스의 "만물의 근본 물질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그 시작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 발견이나 결과물보다 과학자들이 했던 질문의 위대함에 주목해야 하며,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중요성과 '질문을 품고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탈레스를 비롯한 자연철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무신론적인 입장과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뉴턴이나 다윈, 아인슈타인은 그러한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를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과학자는 진정 소크라테스의 후예이요, 과학의 탄생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음으로 확장하여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이는 철학자로 유명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하여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플라톤은 진리를 발견하는 단계를 '과학->수학->철학'으로 구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 즉 이데아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관찰과 추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학적 방법의 기초를 세웠으니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로 세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철학, 즉 소크라테스가 추구했던 정의, 도덕, 선,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지. 결국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의 목표도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었어. - p. 61 中에서 -
탈레스의 위대한 질문에 의하여 진정한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탄생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서는 것 역시 바로 질문이었다.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17세기 과학 혁명에 이르는 과정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고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였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과 추론을 통하여 결론을 내는 방식이었기에 이는 인간이 믿고 싶은 상식과의 싸움을 의미했다. 이는 '왜?'가 아닌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촉발되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 대문에 물체가 그 중심을 향하여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에 갈릴레오는 실험을 통하여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느냐를 설명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과 목적을 물으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지극히 보여지는 것으로부터 찾으려고 하였지만, 과학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운동을 측정하여 그로부터 원리를 하나하나 밝혀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는 철학과 과학의 분기점이 되었는데, 이후 등장한 뉴턴은 신이 창조한 우주마저도 계산이 가능한 공간으로 바꾸면서 우주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수학 법칙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과학을 배우면서 어렵게 느껴졌던 다수의 수학적인 공식들로 인하여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어려운 것을 쉽게 표현함으로써 우주의 운동을 수학적 계산으로 예측이 가능하도록 만들게 되었다. 철학은 주장이라서 거짓일수 있지만 과학은 사실이라서 진짜라는 거야. 과학은 수학이나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지식이니까. 망원경으로 직접 관찰하고, 수학으로 게산해서 그 이론이 옳고 틀린지를 확인할 수 있잖아. - p. 125 中에서 - 이로 인하여 과학은 점점 검증 가능하고 믿을 만한 지식으로 자리하면서 계몽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누구든지 진리를 알수 있으며, 계몽 사상가들은 과학의 발견에 경의를 표하며 오히려 과학을 통하여 그들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여준다. 1772년 완성된 디드로의 [백과전서]가 프랑스의 계몽사상과 이후 프랑스의 대혁명에서 영향을 끼쳤음은 그러한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결국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그 물질의 운동 법칙을 이해하면서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 투쟁하던 시기가 바로 과학 혁명이라 불리우는 17~18세기였던 것이다.
'에너지'라는 키워드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1866년 7월 13일에 역사적인 대서양 해저 케이블 설치가 완성된다. 이로써 유럽과 미국은 전신을 이용하여 연락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어쓴데, 사실 이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애초 이 계획을 추진했던 사이러스 필드는 해저 케이블을 구리선에 얇은 절연용 고무를 감고, 다시 전체를 철로 감는 3중 구조로 제작하였다. 그런데, 첫번째로 대서양 해저 케이블의 설치가 완성된 이후에 이내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당시(심지어 이 글을 읽는 현재에도) 사람들은 전류가 전선 속에서 흐르는 물질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구조로 해저 케이블을 제작하였는데, 사실 전류는 패러데이의 전자기장 이론처럼 전선 속에서 스스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고, 촘촘히 짜여진 힘의 선을 진동하면서 옮겨지는 것이었다. 즉, 전기는 입자가 아닌 파동이기 때문에 고무 절연부를 두껍게 만들어야 했는데, 애초부터 절연용 고부를 얇게 만들거나 전압을 높이는 바람에 해저 케이블에 손상이 발생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이처럼 전자기파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언급한 뉴턴과 같이 과학이란 눈으로 관찰 및 측정이 이루어지고,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뉴턴의 역학에서 나오는 운동량이나 힘의 개념으로는 전기와 자기를 설명할 수 없었고, 심지어 전자기를 입자로 보았기 때문에 전기의 '흐름'이 전달되는 과정을 증명할 수 없었다. 따라서 뉴턴의 역학으로는 전자기장과 같은 '힘의 장'에 대한 실체를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에너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탄생한 것이었다. 애초 페러데이는 그러한 전기장을 일찍부터 발견하였지만, 도저히 그를 수식으로 표현할 수 없어서 애를 먹었으며 훗날 맥스웰은 그 유명한 1864년의 '맥스웰의 방정식'을 통하여 수식으로 증명되었다. 전류가 흐르면 전하가 움직이면서주변에 전기장이 변하게 되고, 전기장이 변하면 자기장이 생기고, 또 그 자기장이 변화할 때마다 전기장이 생기는데, 맥스웰 방정식을 연립하여 풀면 바로 전자기장에 대한 파동 방정식이 나오게 된다. 결국 전기장과 자기장의 물리적 실체가 파동이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학계에서는 수식으로는 가능하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기에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훗날 헤르츠의 실험 장치를 통하여 전자기파의 파동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동시에 빛의 성질을 띠고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에너지가 위와 같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과학의 새로운 개척을 뜻한다면 장엄한 생명의 역사를 의미하는 '진화'는 종교와 과학의 구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다윈의 삶을 통하여 그러한 과학의 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다윈의 삶과 연구 성과를 보다 집중하여 다루고 있다. 즉, 비글호를 타기 전에는 독실한 신자이자 평범한 박물학자였으나,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합리적인 의심과 꼬리를 무는 질문, 논리적인 추론을 거듭하면서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지리학자, 생태학자, 진화론자로 성장하는 그의 모습은 '진화'라는 키워드를 대표하기에 충분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표본 수집가나 관찰자, 자연사학자에서 독창적인 사고를 하는 과학자로 변모함에 따라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과 진화론을 통한 창조론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은 과학이 인문학으로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보통 과학의 발달 과정과 업적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적인 과학사와는 달리 [통통한 과학책]은 그 취지에 걸맞게 과학의 기원을 질문으로 설정하면서 과학이 추구하는 바가 인문학과 같이 인류의 삶의 가치에 대한 천착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통합을, 또 과학의 발전이 어느 순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찰과 측정을 통하여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통찰로서의 과학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면 기존에 과학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는 불식시키면서 스스로 흥미와 관심을 가져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인용한 1860년 런던 킹스 칼리지의 자연철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맥스웰이 취임 강연에서 한 말은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수업에서 여러분이 단순히 결과물만 배우거나, 나중에 만나게 될 연습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공식만 배우지 않고, 이 공식들이 의거하는 원리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원리가 없는 공식은 정신 속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 p. 165 中에서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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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는 과학의 힘
학생 때는 과학이랑 수학이 그렇게도 싫었다. 그나마 배운 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홀랑 잊은 지 오래이며,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있으나 다시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돌이켜보면 대뜸 등장한 수와 문자들을 왜 배워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외워야 한다는 게 불만이었던거 같다. 요즘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걸 배워서 어디다 써요?’ ‘이걸 왜 외우라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특히나 수학, 과학 과목에서 이런 불만이 많이 나온다. 배워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지식이 어떻게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겠는가.
‘통통한 과학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이다. 전체적인 주제는 과학사라고 할 수 있지만 단순히 개념들을 시간 순에 따라 나열하고, 무작정 암기하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철학, 과학, 수학을 연계한 인문학으로서, 이러한 지식들이 ‘왜’ 필요한 지와 ‘어떻게’ 등장했는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제목에 나타난 과학적 ‘통찰’과 ‘통합’을 꾀하고, 공부에 대한 의지를 심어준다. 공부를 넘어서 삶을 고민하게끔 하는. 과학책인척 하는 철학책이다.
책은 300쪽 정도의 분량으로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과학을 존재하게 한 질문, 물질, 에너지, 진화를, 2권에서는 원자, 우주, 유전자, 지능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한 개념에 대해 이를 탐구하게 된 최초의 질문, 그로부터 시작된 수십 년의 발전 과정, 기반이 된 이론, 연계된 다양한 분야들과 미처 몰랐던 수많은 과학자들, 큰 공헌을 했음에도 묻힐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등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자연스러운 이해를 돕는다. ‘~했지, 그랬단다.’와 같은 대화체로 서술되어 마치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아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때문에 교과서의 보조로 활용하기에 좋다. 단, 성적 때문이 아니라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끔 하기 때문이다. 일단 교육과정과 흐름이 같고, 지면의 한계로 교과서에서는 누락된 부분들을 꼼꼼히 다루어 참고하며 보기 좋다.
앞에 나왔던 과학자가 다른 분야에서 또 등장하기도 하고,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준다. 어느 것 하나 혼자 완성한 일이 없고,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까지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한다. 물리학, 천문학, 양자역학, 진화학 등 모두가 깊게 탐구하는 주제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라는 학문 내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책인 척 하는 철학책’이라고 했는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유전자 편집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와 같은 철학적, 윤리적, 사회적 질문과의 범교과적 연계를 통해 기계적인 답 찾기에서 그치지 않는 과학적 사고를 갖게끔 한다. 학문의 연계성을 파악하고 진정한 의미의 통합과학을 이해하기에 좋다.
과학의 탐구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을 관철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분석으로 나를 알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학문이 바로 과학인 것이다. 무지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왜’와 ‘어떻게’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짐으로서 앎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삶을 다르게 보게끔 하는, 과학적 눈을 길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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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하고 통찰하는' 이라는 관제가 붙어 있다. 요즘의 대세인 과학 인문학, 통섭을 잘 따른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이다. 과학은 생활과 밀접한 것임에도 골치 아픈 것으로 인식하는 아이들이 많다. 한때 하리하라의 과학에세이나 노빈손 시리즈가 인기 있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과학서가 많이 출판되는 중에 퍽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저서라 생각된다. 저자 정인경 교수는 청소년이 이렇게 과학을 배웠더라면 좋았을 바램을 담았다.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눠져 사고하는 기형적인 교육 문화에서 그를 통합하는 가치를 말한다. 크게 챕터는 질문, 물질, 에너지, 진화로 나뉘고, 더 읽어볼 책과 참고 문헌이 친절하게 수록된 점이 눈에 띈다. 서술 방식이 옆에서 선생님이 직접 설명해 주는 듯한 구어체로 이루어진다. 1장의 시작이 질문이라는 것이 좋은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내용은 쉽지 않다. 적절한 삽화와 인물의 사진, 색이 들어가 있어 읽기 지루하지 않다. 다만 제목의 '통통'이라는 단어와 함께 페이지 수가 좀 많다. 일반적인 중학생을 대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끝까지 읽기가 좀 부담스러워 보인다. 끝까지 읽는다면 과학의 인문적 교양을 꽉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예스고딕으로 작성해 보니 글자체가 딱 떨어지는 듯 아주 마음에 든다. 예전의 작은 고딕체가 정말 싫었는데. 글쓰는 즐거움이 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