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부대끼며 배우고 살아가는 아이들과 선생님, 그런 학교. 는 이제 먼 이야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학생이 교과서, 준비물, 책가방,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촐랑촐랑 걸어가는 광경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 중의 하나다. 나 어린 시절에도 단어 그대로 '맨손'으로 학교에 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 안에 정말 맨손으로 학교 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다 해서 허구한 날 그런 것은 아니다. 주입, 세뇌식 교육에 반기를 들며 보다 아이들과 소통하고 자연 안에서 깨우치는 수업방식을 추구하는 몇몇 선생님들의 뜻에 따라 신 나게 배워가는 아이들의 교감 현장은 '이렇게 배우고 알아간다면 공부가 정말 재미있겠구나!'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사실 이 책 안에 등장하는 교실 풍경은 수도권이나 시내 중심지의 모습은 아니다. 지방, 시골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그래서 자연과 더 가깝게 교감할 수 있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배움의 현장 모습이다. 1983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 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펴낸 회보에서 가려뽑은 글들로 구성된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간다』는 앞서 읽었던 『우리반 일용이』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전작이 아이와 어른의 소통 단절에서 오는 아픔을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고 함께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점철된 데 반해 이번 작품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욱 아이답게 자연 친화적인 이들로 자라날 수 있는지를 몸소 실천하는 선생님들의 모습과 글쓰기를 통해 아픔을 토로하고 성숙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우리반 일용이』를 읽으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모습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책에도 아픈 환경의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의 가슴 아픈 사연 일색은 아니라서 조금 더 편하게 읽었던 것 같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배우는 공부만 공부가 아니다. 자연과 교감하고 온몸으로 느끼며 체화하는 공부야말로 살아가는 방식의 기본이 되는 인생공부다. 자연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삶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글쓰기회 선생님들의 교육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게 자리하는 것이리라. 우리가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지식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교두보가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교과서나 문제집에 삶을 살아가는 방법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 보고 듣고 터득해가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경쟁과 그에 따른 무조건적인 배움의 강요밖에 없다. 사회의 모습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자연은 보게 해준다.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 조금 더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자연과 가까이 한 아이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영악하지 못하고 느리게 걷는 걸음을 걸을지도 모르나 작은 것에서 오는 행복과 만족을 알며 단절이 아닌 공생 하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자연을 통해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순리를 깨닫게 된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하나같이 어울림의 미학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작은 것도 나눌 줄 알며 타인의 상처를 후벼 파기보다는 감싸 안고 다독일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연과 함께 뛰어놀고 자유롭게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선생님들의 글엔 골목으로, 산으로 들로, 강으로 아이들과 함께 열매를 따고 꽃을 보고 멱을 감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도심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다. 네모난 교실에서 네모난 책상에 앉아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공부만 해야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실 내 학창 시절에도 이런 현장학습을 실행하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다. 학생은 교실 의자 위에 앉아있어야지만 가장 학생다운 모습이라는 건 암묵적인 동의가 형성돼있는 모습이지 않던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놀잇거리, 돈만 내면 단숨에 손에 쥘 수 있는 눈을 현혹하는 물건들 앞에서 아이들은 영원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어린 시절에 문방구 진열대 위, 눈을 즐겁게 하는 인형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구경한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에는 혼자 노는 것보다는 여럿이 어울려서 놀 시간과 공간이 충분했다. 비석 치기, 고무줄 뛰기, 공기놀이, 오징어 땅콩, 땅 따먹기, 말뚝 박기 등, 동네 아이들을 죄다 불러모아 매일같이 놀았던 기억, 지겹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이런 추억이 현재에도 현실화되는 곳이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계신 학교, 그곳의 아이들을 통해서이다. 게임이나 텔레비전에 유혹당한 아이들에게 돈 들이지 않고 놀잇거리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며 함께하는 선생님, 강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이들을 해맑게 자라게 하는 구심점이 되어준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유년시절의 추억이 어디 있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텔레비전과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의 눈을 현혹하는 외적인 즐거움이 아닌 자연과 더불어 뛰어놀게 하는 공동체적 즐거움에 자율적으로 빠지게 만드는 스스로 학습이야말로 지금, 교실에서 선행되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히 가져본다. 그리고 가르침이 아닌 능동적인 배움이 있는 교실, 이런 교실 밖 풍경이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도 더불어 품는다. 우리 아이들이 더 신나게 뛰어놀고, 더 활기차게 자랄 수 있는 그런 세상, 배움이 꼭 교과서나 문제집, 참고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어른인 우리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알 수있을까.
봄이다. 논두렁이나 길가, 하다못해 시멘트 틈새까지 흙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디든 풀이 송긋송긋 얼굴을 내미는 때, 저 가슴 뭉큼한 생명들을 지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저 작은 힘에 감복하지 못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때만큼은 저 풀꽃 동무들 이름과 모습을 아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공부고, 꼭 필요한 공부 아닐까? -29쪽(봄나물 만나러 가자!)
|
|
교사들의 글쓰기 모임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1983~2011년까지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에 실린 글들을 가려 뽑아서 책으로 엮었다. 이 모임의 성격은 아이들이 영악스레 글재주를 뽐내기보다는 좀 서툴지만 정직하게 자신의 생활을 표현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데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교사들 스스로 정직한 글쓰기를 통해 바른 삶을 살아가려고 자신을 되돌아본 내용들이다. 1부는 아이들과 교실과 거리에서 혹은 자연에서 수업을 한 이야기들이고, 2부에는 아이들과 조금 더 진지하게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나눈 내용이 들어있다. 처음엔 책의 내용이 교사의 글인지 아이들의 글인지 한참동안 헤매었다. 아래의 글과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면서 초등학생 일기 같은 이런 내용을 회지에 실어서 도대체 무슨 결론을 얻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4교시 때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스크림을 각자 하나씩 먹으면서 들어왔다. 난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아이들이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못가고 그리고 아이들 집에도 구경하고 싶었는데 못 보고 아이스크림도 아이들이랑 같이 먹고 싶었는데. 난 나도 모르게 코가 찡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내 몸이 정말 나쁘다.(68쪽) 그러다가 이 글을 읽는 대상이 같은 글쓰기모임 회원들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이 모임에서는 그 어떤 수식보다는 마음을 정확하고 정직하게 전달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글을 쓰는 걸 느꼈다. 교사들이 이렇게 교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초심으로 다잡고, 다른 교사들과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 더 좋은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취지인 것을 이해했을 때 글이 유치하다는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아이들과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예전에는 가정방문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개는 선생님이 아이들 집을 방문하면 아이들 집에서는 형편껏 선생님을 대접하고 교사와 부모가 아이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주중식 선생님은 가정방문을 통해 자신이 미처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아이들을 초대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려는 선생님의 마음을 봤을 때 이런 선생님과 한 교실에서 수업하는 아이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통영의 이기주 선생님의 개학식 날 모습도 보기 좋았다. 개학을 하는 날부터 아이들에게 대청소를 시키는 것이 마음 불편했던 이기주 선생님은 개학하기 며칠 전부터 혼자 교실에 와서 정성껏 청소를 해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쾌적한 교실에서 방학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렇게 교사라는 직분에 어떤 권위의식을 갖기보다 아이들에게 먼저 한 발짝 다가가려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초등학생 일기장 같았던 글들이 책을 덮을 때쯤에는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말하지 않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잘 표현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아이들의 아픔에 함께 안타까워하면서 어느새 선생님들의 마음도 어린아이가 된 듯하다. 두껍게 화장을 한 모습에 익숙해져서인지 처음엔 맨얼굴 같은 글들이 유치하게 느껴졌는데 읽다가보니 말하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다가와서 오히려 더 좋은 느낌을 받았다. *편집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아쉽다. 48~49쪽 사이에 53~56쪽이 들어와 있고, 64~65쪽 사이에 57~60쪽이 들어와 있다. |
|
맨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예닐곱 살 아이와 마주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 때나 골목에서 엉켜 놀던 무리 중 가장 어린 축에 속했던 한 아이가 화장실을 갔다왔는데, 뒤처리를 못한 채 엉금엉금 걸어나와 몸짓으로 내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나는 열 살쯤의 소년.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던 차에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능숙하게 밑을 닦아 주었다. 더럽다는 생각에 괴성이 튀어나올 판에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자연스레 일을 처리한 그 아이의 행동이 놀라워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발행한 글쓰기 회보에서 가려서 출간된 <우리반 일용이>에 이어 펴낸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를 읽으며 잠시 옛 기억을 더듬었다. 강상문 선생의 ‘고천분교 일기’에서 일용이가 갑자기 변소로 뛰어가며 똥 나올라고 한다고, 똥 닦아 달라고 부탁한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니, 좀 가르쳐달라는 투로. 두 교사와 여섯 아이가 어우려져 생활하는 분교가 얼마나 살가운 곳인지 짐작케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박장대소했다. 이처럼 아이들의 생활 영역이 모두 교실임을 알려주고 그 안에서 아이들과 글로 소통하는 교사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감없이 담긴 이 책은 크게 1부 ‘교실에서,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함께’와 2부 ‘글쓰기 하며 마음을 나누고’로 구성되었다. 의당 메야 하는 가방조차 필요치 않은 등굣길. 맨손으로 오되, 예쁜 것을 발견하면 가져오기가 숙제라면 숙제인 발걸음 가벼운 등굣길을 걸어본 아이들은 거대한 박스와 다르지 않는 교실보다 교실 밖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수업에 참여하며 아이들은 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글쓰기야말로 아이와 소통하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시를 읽고 시를 쓰며,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드러내며 보다 당당하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얻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맑다. 나는 오늘 집에서 늦게 일어낫다. 그래서 학교로 뛰어 가는데 나무에 조금 있던 잎이 더 이상 못 참아 엄마 품에서 떨어졌다. 나뭇잎이 불쌍하다. 그레서 그 떨어진 잎을 쭈어서 엄마나무 옆에 나뚜어 주었다.(12월 4일) 지각생이 쓴 시와 같은 일기를 읽고 참 태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육의 잣대랍시고 재단하려고 드는 교사가 많아지는 오늘날, 머리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가르쳐야 함을 강조하는 책 한 권으로 아이들의 가슴 온도가 1도씨쯤 올라갔으면 좋겠다.
|
|
한 일간지 신문에 어느 중학교 선생님의 고백을 실은 기사가 실렸다. 학교 폭력을 다룬 이 기사에는 학교폭력의 문제가 교내에서 근절될 수 없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이를 덮는 데 급급한 학교도 문제지만 교사들의 실태도 심각했다. 학생들을 건드리지 말자는 것이 요즘 교사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자신이 담임인 동안에만 큰 문제 없이 넘어가기를 바라는 교사들의 태도와 주위 분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아무리 정의에 불타는 교사라도 주위의 협조없이 학교 폭력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힘들 수 밖에 없다.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 학생들과 상담을 자주 하면 주변 교사들로부터 '유난 떨지 말라'는 힐난을 듣는다고 한다. 최근 읽었던 기사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 기사의 내용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인터뷰를 했던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 때문이다. 이미 자신도 학교 폭력에 눈을 감고 있었다며 "지금 내 모습은 대학시절 가장 닮고 싶지 않았던 교사상"이라 했다. 꿈과 현실의 극명한 차이로 좌절한 한 교사의 모습을 보게 됐고 그 순간 교사들의 태도에 분노하던 마음에 순간 혼란이 왔음은 물론이다.
사회가 병들어가고 사람들이 병들어가다보니 이제 학교도 교사들도 힘들어 아파하는 시대를 산다. 아프면 그 속을 진단하고 치유해야하는데 그러지 않으니 상황은 날로 악화되어간다. 교사는 학생이 아프면 그 속을 들여다보려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조차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모든 학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요즘 학교 폭력에 대한 기사들을 자주 접하면서 이런 현상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일반화되어 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학교가 그리고 교사들이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아이들의 문제에 눈을 감아버리면 누가 그들을 대신해서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학교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단 말인가. 아이가 학교에서 맞았다고 하면 기껏해야 학교로 연락해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부모 입장은 답답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단지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선생님은 그렇지 않기만을 기도만하고 앉아있어야 하니 말이다.
끊임없이 아이들 소리에 아픔에 가슴을 여는 선생이 됩시다._(P.225)
학교 폭력을 일삼는 문제아이들뿐 아이라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겐 다 이유가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가정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런 문제는 들여다보고 살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걸 알고 있더라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쉽게 실천하기 힘들다. 부모도 교사도 아이들 겉모습이나 행동만 보고 판단해버리게 되는 이유다. 사랑하지 않으면 마음을 열 수 없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아이들의 아픔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이 책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를 읽으며 아이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자 하는 선생님들, 사랑으로 아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하는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이라고 해서 아이들 모두를 제대로 보살필 수 없고 아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사가 될 순 없다. 단지 아이들이 가진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노력하기만 해도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정작 아이들이 원하는 것도 그런 관심일 것이다.
책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조각글들을 군데군데에서 만났다. 글쓰기가 아이들과 선생님을 이어주고 서로 소통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말보다는 글을 통해 서로의 진심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 문득 더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글쓰기를 배우고 글로써 마음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그런데 마침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이런 활동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두 권의 책으로 그 결과물을 접하게 되었고, 덕분에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세계를 잠시나마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만난 선생님들처럼 우리 아이들 선생님들도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선생님들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학교 폭력 문제는 교사와 학생들의 단절의 수준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고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학교에서 이런 활동들이 지원되어 우리 아이들의 학교이야기를 글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
|
양철북 출판사의 <우리 반 일용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나 학생들에게 읽어나는 일 선생님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게 되었다. 집에 아이들이 두 명이다. 한 아이는 아침마다 늦잠 자서 지각을 하고 동생은 부지런해서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간다. 어릴 적에 엄마가 아침마다 나를 깨우며 학교가라고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 아이가 나를 닮아서 부모님이 나를 깨우던 것이 나에게도 겪게 되는 일이 되니 아 사람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구나하고 깨달음을 하게 만든다. 내가 부모에게 그렇게 한 것이 나에게도 똑 같이 오는 것을 느끼면서 내 아이에게 너는 엄마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부지런을 떨어보렴. 너는 멋진 아이이니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이야기를 많이 해주게 된다. 참 인생이란 게 별거 아닌 일이 반복되면서 사는 것을 보고 어릴 적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큰 가를 세삼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한국 글쓰기 교육연구회에서 펴낸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이 웃음을 짓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특히 아이들의 글에서 막 웃음이 나온다. 너무나 천진난만한 이야기들 천국이다.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던가? 그런 시절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고 어릴 적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괜시리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들이 많이 그립고 주위친구들이 참 그리웠다. 며칠 전에 친척할머님께서 돌아가셔서 거기 갔다가 20~30년 만에 동참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시기에 만난 친구들이라 그런지 더욱 좋았다. 이상하게 다른 때 같으면 친구들을 보아도 주저하고 멀리 했을 건데 그날은 친구들 옆에 앉아서 상가 집 인 것도 잃어버리고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어릴 적 이야기를 하니 기분이 참 좋아졌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 남자 친구들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참 작았던 아이들이 이제 많이 크고 아버지들이 되어서 보니 참 세상 빨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렇게 빨리 가는 세월 잡을 수는 없고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의 처음을 읽으면서 학교에 처음 입학한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역시 첫 만남은 떨리고 긴장되는 것 같다. 나도 첫 만남은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 학교 보내면서 첫 만남도 그랬다. 담임이 누구인지? 어느 분일지? 짝은 누굴까? 긴장되고 설레던 추억이 생각난다. 전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 웃음 대박 터진 부분이 있어 적어본다. 종현이 시험지라는 대목인데 종현이와 아이들이 시험으로 긴장을 하니 선생님께서 긴장하시지 말라고 이리 말씀하셨다. “학교에서는 오늘 시험을 이렇게 말해. 이거는 너그들 등수 매기는 시험이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 진찰하는 거하고 같아.” 이리 편안하게 시험을 보라는 것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 와서 선생님이 내주시는 질문에 의사선생님이 질문하는 것에 답을 하라는 말씀이셨다. -부르는 말을 바르게 써 주세요. “발걸음도 가볍게” 나는 안 가볍습니다. -보기 문장에서 밑줄 그은 말을 높임말로 바르게 바꾸어 쓰세요. <보기> “아버지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빨리 오면 좋켔습니다. -다음에서 클리게 쓴 말을 고쳐 쓰세요. “놉고 푸른 하늘” 지금은 하늘이 꺼머습니다. 시험지는 더 나온다. 많이 웃음을 자아낸 부분이다. 종현이라는 아이 참 천진스럽고 귀엽게 느껴진다. 물론 지금은 똑똑한 아이로 잘 자랐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이 책은 이야기들이 참 천진스럽고 아이들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서로 존중해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나타나는 그런 책이었다. 책을 읽다가 편집이라고 해야 하나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참 읽다가 맥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48페이지를 다 읽고 내용이 새로운 내용인데 나도 모르는 내용이 이어졌다. 알고 보니 48에서 49가 아닌 53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렇게 책이 틀리게 나오니 읽다가 맥이 끊어져 버렸다. 이 책은 <우리 반 일용이>를 서평한 분들에게 먼저 읽어서 서평해달라고 이야기 한 걸로 안다. 그런데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책이 이렇게 내용의 페이지가 바뀌면 어떻게 평가해 주어야할지 모르겠다. 57페이지가 나와야하는데 또 61페이지가 나온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런 실수는 책을 읽을 만든 분들에게 실수도 있다고 하지만 한번은 그냥 넘어간다지만 두 번이나 이러니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두 번이나 내용이 뒤죽박죽 되다보니 읽다가 맥이 끊어져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었다. 앞으로 이런 실수가 없으시길 바래본다. 가정 방문하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가 가슴 뭉클하게 만들었다. *가정 방문 때 부모님이 준비해야 할 것 1. 아이의 칭찬할 점과 고칠 점이 무엇인지 들려주실 말씀. 2. 담임선생한테 부탁하거나 물어보실 말씀. 3. 그 밖에 담임선생이 알아두면 참고가 될 말씀. 그리고 찬물 한잔(대접이 이것으로 서운하다 싶으면 사과 반쪽쯤) 다 이유가 있다. 온종일 부모님들이 커피 대접으로 선생님 건강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고, 금방 점심 드시고 가는 건데 부모님들이 준비한 것 안 먹기도 그렇고 먹자니 배부르고 하시니 말이다. 거기에 바쁘신 시골 부모님들이 특별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해야하는 부담도 덜어주시는 센스쟁이 선생님이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마음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참 기분이 좋았다. 아직도 이런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믿을 만한 세상, 살아볼 만한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리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 수업하고 가르침을 받으리라 생각이 든다. 아이의 시지만 참 좋은 시가 있어 올려본다. 물론 재미나고 웃긴 시가 참 많이 나온다. 빗소리(부산 강동초등 4학년 전하은) 오늘 빗소리를 들었다. 빗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풀잎에 맞아서 땅에 튕겨서 흙 속을 파고 들어가면서 빗물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였다.
비들이 누가 더 멀리 뻗나 내기하는 것 같다. 어떤 비들은 다른 비와 부딪혀서 없어지거나 먹힌다. “하이야 하이야”하며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뒤엉켰던 내 마음이 줄을 맞추는 것 같다.(10월 9일)
아이의 시지만 참 좋다. 어떻게 이런 멋진 시를 하면서 감동하게 만든다. 이 책은 아이들이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물론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글이다 보니 틀린 글씨나 사투리가 그대로 전해져서 참 읽는데 편하고 재미나고 슬픔, 기쁨, 감동이 전해져 온다. 물론 나는 이 책보다는 <우리 반 일용이>가 나에게 더 감동 적인 것 같다. 둘 중에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물어본다면 일단 <우리 반 일용이>를 추천해 주고 싶다. 왜 그러냐고 물으신다면 일단은 이 책은 페이지 작업에서 실수를 해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참 좋은 책이다. |
|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학생들은 새로운 선생님과 새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곧 학생들은 적응을 하게 되고, 교실은 왁자지껄 생동감이 넘쳐 흐르게 된다. 그러나, 이전의 학교나 교실에서 왕따였던 학생은 또다시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갇히게 되고, 그것을 견디다 못해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얼마 전에도 그런 학생의 죽음을 매스컴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학교에서, 가정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보살펴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에 읽은 <우리반 일용이>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가족처럼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은 교실일기였는데,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글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진솔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선생님의 함박웃음과 미소, 눈물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런 선생님들만 있다면 학교 폭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의 사랑으로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교실이기에. 이 책과 함께 '한국글쓰기 교육연구회'에서는 또 한 권의 책을 펴냈는데, 그 책이 바로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이다. ![]() 이오덕 선생님을 중심으로 전국 초, 중, 고 선생님들이 모여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하는데, 이 글들은 1983년부터 2011년까지 약 30년에 걸쳐서 다달이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에 실렸었다. 그중에서 뽑은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책이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간다>이다.
그러니, <우리반 일용이>와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간다>는 같은 맥락에서 쓴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제 1부는 교실에서, 골목길에서, 들로 나가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를 담은 글이고, 제 2부는 아이들과 글쓰기하면서 서로 마음 나눈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글과 초등학생들의 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잘 쓰려고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거나 미사여구를 늘어 놓지도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게 글로 썼다. 선생님에게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면서 아이들은 가슴 속에 담고 있었던 돌덩이들을 꺼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좀처럼 내색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은 자신의 글에 이혼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그 글을 읽는 선생님은 지각을 잘 하던 아이가 왜 지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던 아이가 왜 그랬는가 등등의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아이들의 글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아이에 관한 상황들을 알게 되면서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선생님과 아이들은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엄마 ( 반송초등 4학년 김나영) 어제 저녁 여섯 시에 /아름다운 용서를 봤다. / 거기선 엄마가 딸을 찾는다. 나는 속으로 / '버리고 간 애들 왜 이제야 찾노?'/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난다. 생각 안 할라고 해도 난다./ 엄마는 나를 두고 갔다. / 그것도 아기 때 엄마 얼굴도 모르는데 /이학년 때 찾아와서 /내가 니 엄마다 했다. 나는 왜 용서 못해줄까? / 속이 좁아서일까? 엄마라는 단어가 나오면 / 자동적으로 눈물이 흐른다. ( p.p. 269~270) 초등학교 1학년을 담임하게 된 선생님이 입학식날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모습, 그리고 입학식날 학부모와 아이들에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하는 이야기는 아마도 이런 경우에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마음일 것이다. 봄날, 들로 나가서 아이들과 쑥을 캐서 쑥떡을 해 먹는 아이들과 선생님. 어느날은 아이들에게 '내일은 맨손으로 올 것' 그리고 '오는 길에 예쁜 것이 있으면 하나만 가져 오기'라는 과제를 내주는 선생님. 그 다음날은 교실이 한가득 예쁜 꽃과 자연물로 가득하게 되고. 거기에서 아이들은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니,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은 우리들의 미술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셨다.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날, 선생님이 내준 미술 준비물이 바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가져와서 만들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예쁜 것을 만들기 위해서 집에서 30 분 이상이나 떨어진 효창공원으로 갔다. 거기에서 솔방울을 따기 위해서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많이 올라가지는 않아서 엉덩방아 정도를 찧었지만, 그래도 예쁜 나뭇잎과 솔방울, 나무껍질 등을 준비물로 가지고 갈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그 선생님의 예쁜 얼굴이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쓴 선생님들은 어떤 날의 이야기나, 어떤 상활에 대한 이야기, 어떤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님 자신이 쓰고, 그 속에 그와 관련된 아이들의 글을 함께 담아 놓기도 했다. 같은 일, 같은 상황, 같은 인물에 대해서 각자가 쓴 글들은 같은 이야기로 표현되기도 하고, 또다른 이야기로 각자의 관점에 따라 쓰여지기도 했다. 이런 글쓰기가 바로 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랄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숲 속 교실에서 읽은 <비오는 날>이란 글은 참으로 아이들의 정서적인 면을 고려한 학습이야기이다. 시원스럽다 못해 아름답게 비내리는 날에 창가에 모여서 빗소리를 듣는 선생님과 아이들. 빗소리를 듣기도 하고 비 오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그것이 바로 정서교육이 아닐까. 예전에 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에 나는 학생들에게 자율학습시간의 자투리 시간이나 종례시간에 책을 읽어준 적이 있다. 학생들 수준에 맞는 소설책을 매일 10분에서 20분 정도 읽어 주었다. 처음에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했던 학생들도 어느 정도 책의 내용이 전개되면 쥐 죽은듯이 조용히 이야기에 몰두했었다. 옆반 학생들은 그런 우리반을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 권의 짧은 이야기가 끝나면 어떤 학생들은 책을 빌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다시 읽어 보고 싶다고. 이렇게 내 추억 속의 이야기는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데, 그때의 아이들도 살면서 한 번 쯤은 그때를 기억하겠지..... 이 책 속의 이야기 중에 정말로 가족같은 고천분교 이야기가 있다. 1학년에서 4학년까지 모두 여섯 명의 학생과 두 명의 선생님이 계신 학교이다. 이 학교의 선생님은 목욕탕과 같이 가고, 때론 화장실에 간 아이를 따라가서 똥도 닦아 준다. 그리고 학교 주변에 있는 감을 아이들과 함께 따먹기도 한다. 스승의 날에는 선생님이 학생들과 시내 나들이를 가서 짜장면을 사 주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반 일용이>와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두 권의 책이지만, 내용은 한 권의 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슷한 내용들의 글이 담겨 있고, 책의 구성도 같다. 선생님들의 글에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고, 아이들의 글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표현하는 솔직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에도 이런 선생님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대도시의 학교가 아닌 작은 마을의 학교에서는 가족과 같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들이 존재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학교 생활을 되돌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는 천직(天職)이라는 말을 상기해 본다. 선생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전달이 아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들 ! 힘내세요. 그리고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세요.
|
|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아마도 아이들은 가기 싫은데 가야 하는 곳이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학년이 높을수록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가 제일 좋은 때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보면 정말 힘들어 보인다. 수행평가와 체험학습은 물론이고 봉사활동까지 해야 하니 말이다. 주 5일 수업이 시행되었지만 아이들은 주말에도 바쁘다. 그러니까 놀 시간도 없는 거다. 아니 놀 시간이 주어져도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 컴퓨터와 휴대폰에 중독될 정도로 빠져 있기에 몸으로 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 속 아이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은 1983년부터 2011년까지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30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느낀 일기들이다. 1부 <교실에서,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함께?는 말 그대로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놀면서 야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보내며 관찰한 것들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도시가 아닌 시골이라 자연과 벗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교실 밖으로 나와 들에 피는 꽃들을 직접 만지고 골목을 거닐고 혼자 사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착한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선생님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순수한 행동들이 글 속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토요일 수업과 가정방문에 대한 글들은 잊고 있었던 아련한 추억을 불러온다. 선생님이 집에 오신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좀 더 선생님이 오래 머물기를 바랐고 무언가를 대접하고 싶었던 마음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글(일기)을 읽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일주일에 하루 텔레비전을 안 보는 날을 정하고 아이들이 어떻게 그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한 2002년의 글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텔레비전 안 보는 날’이란 제목의 아이의 솔직한 일기를 옮겨본다. ‘텔레비전을 안 보니 참 답답하고 보고 싶다. 오자마자 줄넘기하고 신문지 가져다 꾸기는 놀이도 하고 집에 와 물과 얼음도 먹어 보고 그 다음 음악 감상을 하고 방바닥도 쓸고 공부도 하고 밖에 나가 놀고 엄마 따라 미용실이 있는 곳에 내려가 보고 참 별일을 다 했다. 틈나면 슈퍼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다시 눈을 돌린다. 참 어렵다. 텔레비전을 안 보는 건 말이다.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한 번만 더 하면 답답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다.’ (151쪽) 놀이의 중요성을 알지만 아이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란 어렵다. 지금이라면 휴대폰 사용 하지 않는 날로 해야 할 것이다. 과연 아이들은 이런 숙제를 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책엔 빼빼로데이를 없애기 위해 아이들이 직접 홍보 문구를 작성하고 만든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모습도 있었다. 이런 교육이야 말로 참 교육일 것이다.
2부 <글쓰기 하며 마음을 나누고>는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우리 반 일용이>에서 만난 것처럼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들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속상한 마음을 풀어내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생님의 글이 함께 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을 대하는 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연구실에 쌓인 교과서를 주고,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준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았으면 그 까닭을 묻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다음 날까지 해오라고 말한다. 컴퓨터가 없어서 숙제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은 학교 마친 뒤 남겨서 함께 숙제를 한다. 지각을 했다고 겁을 먹고 울면서 들어오는 아이에게는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지각한 이야기를 해 준다. 내가 늘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니다. 화부터 낼 때가 많지만 되도록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224쪽) 일기란 하루의 일과를 기록하는 동시에 그 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 노력하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일기는 잘 쓴 글만 모아놓은 건 아니다. 솔직하고 진솔한 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아져 학교가 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될 것이라 믿는다. |
|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내 개근상을 받아 표면적으로는 근면·성실한 학생이었지만 학교에 가고 싶었던 날은 많지 않았다. 12년 내내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체력이나 근면함, 학업에 대한 열정이 아닌 어머니의 공이었다. 어머니는 아픈 나를 업어 교실에 내려놓곤 하셨다. 나에게 학교는 가끔 가고 싶긴 하지만 보통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던 것에 비해 어머니에게 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공부 외에 있다는 걸 알지만 우울했던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과 학교 폭력으로 희생당하는 아이들을 보면 반드시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건엔 회의적이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는 초·중·고 선생님들이 만든 모임으로 글쓰기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바른 생각과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단체다. 1983년 처음 설립할 때부터 2011년까지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화보를 냈다. 얼마 전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엮은 『우리 반 일용이』을 읽었다.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우리 반 일용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서 가려 뽑은 교실일기들이 실려 있는 책이다. 다행히도 내가 겪었던, 내 친구들이 겪었던, 뉴스에서 본 내용이 아닌 선생님과 아이들의 행복한 이야기, 눈물 나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1학년 아이들이 6학년 언니들과 손을 잡고 입학식을 위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 벅참과 뿌듯함을 느꼈다는 선생님도 계셨고, 훌륭한 선생은 포기하고 행복한 선생이 되기로 한 선생님도 계셨다.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반성하는 선생님도 계셨고, 청소가 끝나면 고생한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보는 선생님도 계셨다. 아이들을 자신에 집에 초대해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즐거운 학교는 선생님과 아이들, 부모, 사회의 힘이 필요하지만 우선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에 인색하다. 잘못했다면 어른이라도 사과해야 한다. 이 책의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들을 오해했을 때 회피하지 않고 바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기쁨에 함께 웃었고 아이들의 슬픔에 함께 울었다. 아이들의 겉모습에 실망하기보단 보이지 않는 모습을 찾아 아이들의 진심을 들여다봤다. 이 책에 나온 학교들은 도심의 학교가 아닌 지방의 초등학교이거나 분교이기 때문인지 수업은 교실 외에 뒷산이나 학교 둘레, 마을에서도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탁한 공기 속에서 경쟁하느라 지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어울리며 시를 썼고 우정을 배웠다. 선생님이라면 시를 읽고 시를 쓰는 것,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는 것, 학급 재판 등 책 속의 선생님들이 행한 방법들을 실행해보는 것도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순수한 아이들과 멋진 선생님들을 만나니 꽃향기가 마음에 번지는 것처럼 행복했다. 이런 학교에 다녔더라면, 이런 선생님들을 만났더라면 학교생활이 덜 지겨웠을 거라는, 아니 즐거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도심의 학교에 다녀 특별한 추억이 없는 나와는 달리 풍성한 유년의 추억을 갖게 될 것이다. “……6학년 그 속에서 나는 ‘함께 커 가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는 지금 나에게 희망을 준다.”(172쪽) 「9년 만에 다시 만든 문집 이야기」에서 성규의 글 한 토막이다. 나는 ‘함께 커 가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배운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의 아이들이 만들어 갈 세상이 궁금해졌다. 『우리 반 일용이』를 읽는 동안 아직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운 학교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읽으면서는 즐거운 학교에 대한 가능성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
|
얼마 전 1983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다달이 펴낸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씨기> 회보에서 가려 뽑은 교실 일기를 수록한 작품으로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30년 동안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했던 이야기 <우리 반 일용이>를 읽어보았다. 그 이야기 속에는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동심으로 그릇된 어른들의 행동을 기꺼이 용서하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의 등짝을 내리친 후에 마음 아파하는 선생님이 있고, 학생에게 욕설을 듣고도 스스로를 자책하는 선생님이 있고,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가진 아이들이 있어 읽는내내 행복했다. 그 행복함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생각에 그와 같은 맥락을 지닌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회보에서 가려 뽑은 교실 일기들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기의 삶을 바로 보고 정직하게 글을 쓰면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깊게 하고,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고 있는 글쓰기회(머리글 中)의 의미를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1부는 '교실에서,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이야기를 담았으며, 2부에서는 '글쓰기 하며 마음을 나누고'를 통해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 마음을 나눈 이야기를 담아냈다. 학창시절 나는, 굉장히 조용한 성격탓에 존재감이 없었기에 선생님과의 좋은 기억이 없다. 그런 나에게 중3시절 선생님은 나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던 유일무이한 분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동안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 지금은 어디에 계실런지. 무척이나 그립다. 이 이야기들은 시골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유대관계가 참으로 부러웠다. 생각해보니, 큰 아이의 초등5학년 담임선생님께서도 주말이면 아이들을 초대해 같이 시간을 보내시곤 했는데, 다른 선생님과는 차별화된 그 분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좋았던 것은 아마 아이들의 면면들에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탓일게다. 그 마음을 아이도 아는지, 선생님이 되면 꼭 그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선생님이 주신 사랑은 아이를 성장하게 하고 자라게 함을 나는 그 선생님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매화꽃 향기와 매화차를 마시며 아침을 시작하는 교실,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맨손으로 학교에 등교하도록 해주는 선생님, 아이의 마음을 만져 주지 못하고 아이한테 자신의 얘기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하는 선생님, 아이들이 짱이라고 외쳐주는 소리에 밥 안 먹어도 좋은 선생님의 행복함, 아이들이 준 상장을 일기장에 붙여 두고 영원히 간직하는 선생님 등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의 마음을 교감하는 이야기들이 나를 참 행복하게 해주었다.
1. 어른들이 시원하고 아이가 답답하게 자라는 것 2. 어른들이 답답하게 살고 아이가 시원하게 자라는 것 위 둘 가운데서 딱 한 가지만 고른다면? (본문 238p)
누구나 2번으로 고르지 않을까?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 자신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면서 스스로만 속 시원해지려 한다. 이 책 속에는 졸렬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이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있어 아이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오늘도 난 아이들을 나에게 끌어다가 맞추려는 잘못을 다시 반복했다. 무엇보다 아이들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또 잊고 지냈다. 끝까지 가르쳐 보겠다고 그런 것이 아니냐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그냥 내 욕심에 아이들을 다그친 것뿐이다. 내 양심이 그걸 안다. (본문 128p)
아침자습, 빠른 진도에 숨막히는 교실, 숙제, 준비물....학교는 빠르게 흘러간다. 잘 가르쳐주려는 선생님, 그런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뛰어가는 아이들...자유, 여유가 없는 교실의 모습에 가끔은 숨이 막힌다. 맨손으로 학교에 갈 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교실에 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짠하다.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좋지만, 마음이 따뜻하여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어주고 기다려줄 줄 아는 따뜻한 선생님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경쟁사회 속에서 1등이 되기위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왕따, 선생님과 학생들의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종종 들려온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관심 그리고 기다림은 아닐까? <<우리는 맨손으로 학교 간다>>는 교실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사랑과 관심을 통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따뜻한 온기가 우리 사회에 희망이 되어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6학년 그 속에서 나는 '함께 커 가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는 지금 나에게 희망을 준다." (본문 17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