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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소년 칼리드가 부활정 방학 동안 아버지의 고향인 파키스탄 카라치에 가게 되는데 어이 없는 일을 당하게 된다. 9.11 테러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부활절날, 아랍계인 칼리드 가족에게는 위험한 시기. 조금은 생소한 9.11 테러 사건.
하지만 칼리드 가족이 9.11 테러의 배후가 탈레반이라는 것으로 인해 의심 받을 것이라는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못한 채 책을 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휴식을 즐기고 있던 참 미국 CIA 요원에게 테러 용의자로 잡혀 수용소로 가게 된다.
이게 무슨 봉변인 것일까.
가족들과 부활절 방학을 지내러 왔다가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애꿎게 용의자로 지목받아 수용소에 갇히게 된 칼리드. 나와는 세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평범한 소년 칼리드. 전혀 나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수용소 생활이다. 정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곳. 범죄자들이 갇혀있는 수용소이다 하지만 어린 학생에게는 정말 가혹한 공간.
자신은 테러범이 아닌 15살 학생이라는 외침은 그 누구도 받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억울함을 넘어서서 정말 내 인생이 무너지는 듯 한 느낌일 것이다. 또래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고 나는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는 수용소. 보는 나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잔인하다. 그것을 몸소 겪고, 전혀 금시초문인 사건에 휩쓸리게 된 칼리드에게는 얼마나 가혹할까.
요즘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인종간, 문명간, 종교간 갈등 문제. 그 문제에 휩쓸린 학생 칼리드, 이 칼리드는 어떤 학생이나 사람을 지칭하는 것 뿐만 아니라 갈등 사이에 무고하게 희생하고 그 가혹함을 겪게 된 모든 사람들과 나라를 표현하는걸꺼다.
칼리드를 통하여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인권 존중 따위 찾아 볼수 없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칼리드는 살고 있는 영국에서는 조금은 무시받고 눈치보면서 살게되는 무슬림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모든 인종들이 살고 있지만 다문화 가정 사람들이나 동아시아 사람들은 조금 눈에 띄게 다르게 생각한다. 칼리드가 마지막에 모교 연설에서 읽는 편지 같은 연설 내용에는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에게는 매우 수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칼리드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도 이런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을지 모른다. 모두 똑같은 사람이고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칼리드는 문명 사회에서 그 반대쪽의 어두운 전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끔찍한 2년을 보내게 된다. 악몽만 같았을 2년. 지금 모든 것이 발전되었다고 믿는 우리, 하지만 모든게 발전 된것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발전되기는 커녕 잔혹해져만 간다. 그 단적인 모습을 솔직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가의 관타나모 수용소 이야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에는 조금 오래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사실을 모두 알고 받아들이게 되니 벅차면서도 안심하고 있는 내가 반성되었다.
문명사회의 숨겨져 있는 잔혹함을 겪었을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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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관타나모는 911테러를 배경으로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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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관타나모
겉표지는 검정색에 철조망이 지나가면서 거기에는 초점을 잃고 힘이 없고 그저 사람의 몰골을 가지고 있어서 강렬한 이미지를 나에게 먼저 사로잡았다...... 관타나모라는 것은 나에게 관점없는 세상넘어 소재이기에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먼저 궁금증이 생겼다.무엇일까....미드에서 간혹나온 그곳인가...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비명소리가 나는 장소로 미국법도 국제법도 적용받지 않는 무법천지 '관타나모' 수감자 780명중 220명만 테러범… 나머진 불법 감금 관타나모는 미국과 세계 인권단체들로부터 끊임없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곳으로 인권유린, 강제구금, 기본권 침해 등은 기본으로 침해받고 있는 장소였다는것이 놀랄뿐더러 주인공으로 보이는 소년은 어렸다.
영국에서 태어난 아랍계 소년 칼리드는 그냥 소년이었다. 나와 같은 청소년.....놀기 좋아하고 게임좋아하고 아무생각없이 몸을 쓰는 청소년.... 하지만 부모님 모국인 파키스탄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러 간 시간부터 문제가 생겨버린다. 아버지 실종으로 찾아다니다가 테러범으로 오인 받고 관타나모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가 테러범 수용소에 납치되어 겪은 2년의 시간에 그 소년이 격는 악몽과 고통 그리고 말할수 없는 가족의 그리고 또한 보이지 않는 원망. 수용소라면 나치시대의 유태인, 대한민국 일제시대의 수용소라는 생각만 했지 현재 동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입에서 피라도 도는 기분이 들면서 한줄한줄 읽어가면서 칼리드의 괴로움과 억울함을 동시에 느낄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오면서 실제 사건들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라고하니 아직도 그곳에 나와 같은 친구들인 청소년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법적 절차도 없이 감금되어 학대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구역질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CIA에 고용된 현지인에게 9.11 테러 용의자로 납치되어 2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겪은 역경은 끝없이 이어지는 심문과 고문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철저한 사실에 점점 빠젿르수밖에 없고 또한 칼리드의 고문당한 머릿속을 어찌도 글로 표현을 했는지가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장 한 장은 분노로 다가오다가도 내가 그런한 지역게 가지 아니 살질 않아서 당행이라는 안도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속에서 머릿속으로 아빠, 도와줘요. 저들이 나를 죽이지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필사적으로 말로 끄내지못할 정도로 괴로운 그아이.
관타나모에서 영국에 있는 선생님에게 쓴 편지에서 칼리드는 말한다. "...내가 여기서 배운게 있다면, 미움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움 받은 사람은 그 미움을 무시할 선택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 격한 감정에 압도될 뿐입니다. 그러니 누가 진 사람일까요? 매번 상처주고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렵니다." 폭력과 고문에 대한 분노와 저항속에서 살아나가야한다는 목적속에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용소 밖에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2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된 칼리드는 사람들 앞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고, 힘겹게 일상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도 한동안 인권이라는 것이 유린이 되어서 고문은 기본이요 죽임이라는 것도 아무러치 않게 자행하던 시절이 문제가 되어 계속해서 뉴스가 되어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15살이 되는 시점에서 읽다보니 많은 생각을 한다. 탄압을 통한 시각의 발전도 보았고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문제도 보았고 학교폭력이라는 매스컴에서 좀 더 커진 폭력을 보았다.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나의 억울함이 넘어서 그런 곳을 어서 폐쇄하여야하지만 강자국과 약자국의 힘의 싸움들을 보여지기까지 하니 답답하였다. 나의 국가가 작은 국가였음을 늘 비판하면서도 강대국을 부러워했고 나만 아니면되다는 생각이 만연한 나의 정신을 한번쯤 흔들어 깨워주는 소설이있다. 우리에게 한동안 청소년 소설은 학교 폭력,자살,학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뿐이었는데 굿바이 관타나모를 읽으면서 나에서 우리 그리고 다른 이들을 볼수 있는 큰 시야를 가지게 된 기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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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굿바이 관타나모]라는 책은 나와 맞지 않았다. 어줍잖게 없는 말 해가며 이 책에 장황한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책장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책에서 풍기는 그 고유의 느낌들이, 그 문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너무나 낯설었다. 외국소설을 좋아하지 않고 잘 읽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책에서 느끼는 유희라는 한 부분이 맞지 않았다는 것 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떠한 것들 그 메시지는 분명 나에게 와 닿았다. 그것은 책이라는 것이 그 이질적인 문화와 낯선 분위기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뛰어넘은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삶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테러범으로 몰리고 고문을 당하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히게 되면서 칼리드는 분명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느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잃게 된 자신과 자신의 삶 극한의 고통 속에서 느낀 공포를 뛰어넘은 그 무언가. 갇혀버린 삶 속에서 느낀 좌절감. 평범했던 그 일상들을 갈구하며 부질없는 돌맹이를 던지는 스스로에 향한 울분을 2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견딘 것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지옥임이 분명했다. 그곳에선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다 어둡고 무서운 절망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선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몸을 구기고 마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나라면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칼리드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희망이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고 그를 볼 수 있게 들을 수 있게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희망을 갈구하면 느릴지 몰라도 끝내는 찾아온다는 것. 되찾은 일상과 삶, 가족들 그리고 자신 그것이 말해주고 있다. ------------------------------------------------------------------- 글이 성의없이 짧고 맥락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 알고 있다. 이것이 최선을 다한 것인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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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음부분에는 축구와 컴퓨터게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소년 칼리드의 평범한 일상들을 보여준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라던데, 그 이야기가 언제 나올지 궁금해졌고 이 평범한 아이가 어쩌다가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었을까. 호기심이 마구마구 생겼다. 호기심이 없어진 지 오래, 나는 칼리드가 겪은 상황에 분노, 안타까움은 물론이거니와 불안감까지 들었다. 칼리드는 아빠가 없어지고 걱정이 되어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테러범으로 몰리게 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칼리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좌절과 아픔을 겪게 된다. 이유도 영문도 없이 끌려간 칼리드는 많은 고문을 받고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지만, 나는 그가 ‘혼자’ 라는 정신적 고통을 더욱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리드에게는 가정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선 아무도 없었다. 칼리드는 가족들의 무한한 노력으로 2년 뒤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 온 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잔혹한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주는 칼리드에게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나 또한 행복했고, 감사했다. 칼리드를 보면서 내가 살아가는 삶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살 줄 알아야겠다고 깨닫게 되었다.
어떠한 법도 적용받지 않는 잔인한 수용소 ‘관타나모. 법적 절차도 없고, 불법 감금된 사람들도 많고, 게다가 어린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 수용소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채 끌려간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잔인한 수용소라고 생각한다. 이게 진짜 현실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기 조차 두렵고 안타까웠다. 정말 영원히 굿바이하고 싶다. 영원히 굿바이, 관타나모.
13. 전등불빛 페이지를 보고 처음에는 인쇄상태가 잘못된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칼리드의 심리상태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해 인쇄방법을 특이하게 했다고 듣고 나서는 그 표현 방식이 나에게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고 더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상처는 상처를 낳고 해악은 해악을 낳고 고문은 고문을 낳을 뿐입니다. 바람은 누구나 똑같아요 - 친절. 내가 여기서 나간다면 더욱 많은 친절을 보고 싶습니다. … 나는 그저 평범한 청소년일 뿐입니다.
이미 다민족 다문화 국가시대로 접어든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다름 사이의 공존’이라는 생명 평화 사상을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소설이다. 아울러 ‘고통’을 통해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주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성장 과정에서 ‘나’만 있고 ‘우리’가 빠져있는 자폐적 성장통을 앓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 박경장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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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44개국 490명이 재판도 없이 수감 중에 있다. 테러-9ㆍ11테러-범으로 의심 가는 사람들을 족족 잡아들여 그들의 손발을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죄인이 아님에도 죄인 취급을 받고 심지어는 고문까지 있었다는 말이 있어, 인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위키리스크에서 미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 유린 실상 등을 폭로하는 미 국방부 기밀문건을 공개한 바 있다. 생명 존중, 종교 평등이 대두되는 21세기 사회에서 ‘부조리함’은 버젓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칼리드는 지극히 평범한 10대 청소년이다. 그는 할머니의 부고 소식에 카라치로 가 가족들과 만남을 가지던 도중, 급작스럽게 쳐들어온 군인들에 의해 관타나모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고국 땅을 밟고, 종교가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온갖 고초를 겪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배운 게 있다면 미움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미움은 이미 있는 미움에 또 다른 미움을 덧붙일 뿐입니다. 미움 받은 사람은 그 미움을 무시할 선택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 격한 감정에 압도될 뿐입니다. 그러니 누가 진 사람일까요? 매번 상처 주고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렵니다.’ 본문 410 페이지에는 위와 같은 내용이 있다. 반 라덴 일당이 미국에게, 미국이 무슬림들에게 돌려주는 고통.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질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소설 <굿바이 관타나모>는 2년동안 수용소에 끌려간 칼리드를 중심으로 내세워,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깨달음을 주고,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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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15살 소년이 갑자기 납치되어 수용소에 2년 동안 감금되었다? 처음에는 소설이라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사건들에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 "작가의 말 소설 [굿바이 관타나모]는 실제 사건들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입니다. 아직도 관타나모 수용소와 세계 도처의 은밀한 감옥에는 납치된 십대 청소년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법적 절차도 없이 감금되어 학대받고 있습니다." 앞부분에 주인공인 칼리드의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 나온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지 궁금했다. 칼리드는 어느 15살 소년 답게 축구를 좋아하고 학교 성적을 걱정하고 컴퓨터 게임을 좋아한다. 엄마는 터키 출신이고 아빠는 파키스탄 출신이고 자신은 영국인인 15세 칼리드는 어느 날, 집안의 일로 처음으로 파키스탄에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유도 모른체 집에서 납치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다. 비인간적이고 모욕적인 고문과 폭행을 당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그러다 가족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석방되어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온다. 칼리드는 수용소에서, 너무 평범해서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나쳤던 일상들을 그리워 했다. 그리고 칼리드가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을 받을 때, 책에서 글자를 뭉게고 겹치고 찌그리게 만들어 그냥 활자를 읽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졌고 신선했다. 이걸 어떻게 인쇄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게 한다. 또 맞는 장면이라든가 물고문 등의 장면을 바로 눈 앞에서 보듯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게 만든다. 생생한 활자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칼리드와 같이 고통스럽고 절망하고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을 보다가 [라이프 오브 파이] 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겹치는 부분이 있어 자꾸 기억났다. 평범하게 살다가 우연한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는 큰 줄거리가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