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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 밖에 모르던 나에게 청년 김수영, 남자 김수영, 아버지 김수영, 남편 김수영을 알게 해 주신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님께 감사합니다.
이 책을 내 주셔서 정말 진짜로 감사드립니다.
책과 함께 온 김수영 사진(구겨지거나 손 때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맨 뒤에 끼워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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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영 씨가 김수영에게 준 초상과 메모. 김수영은 상업 간판을 그리던 박일영 씨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샀다.(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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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생전에 쓰던 만년필과 T.S.엘리엇 강의록 노트, 그외 스크랩 자료들.(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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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용에게
수입收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매일반이디 모이 한 가마니에 사백삼십원四百三拾圓이니 한달에 십이十二, 삼만三萬원이 소리없이 들어가고 알은 하루 육십六十개밖에 안 나오니 묵은 닭까지 합한 닭모이값이 일주일一週日에 육일六日을 먹고 사람은 하루를 먹는 편이다
모르는 사람은 봄에 알을 많이 받을 것이니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봄에는 알값이 떨어진다 여편네의 계산에 의하면 칠할七割을 낳아도 만용이(닭 시중하는 놈)의 학비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한다
나는 점등點燈을 하고 새벽모이를 주자고 주장하지만 여편네는 지금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아니 사백삼십원四百三拾圓짜리 한 가마니면 이틀은 먹을 터인데 어떻게 된 셈이냐고 오늘 아침에도 뇌까렸다
이렇게 주기적週期的인 수입소동收入騷動이 날 때만은 네가 부리는 독살에도 나는 지지 않는다
무능한 내가 지지 않는 것은 이때만이다 너의 독기毒氣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 너와 내가 반반半半ㅡ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 <1962.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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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를 시작하고 얼마 후 수영과 나는 만용이라는 이름의 사내아이를 집에 들였다. 담양에서 올라온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우리는 만용에게 낮이면 양게일을 거들게 하고 밤이면 야간 중학교를 보냈다. 병아리는 번번이 우리의 기대를 배신했지만 만용이만큼은 누구보다 잘 자라주었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당시 야간 과정이 있었던 국민대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입학식이 있던 날에는 수영과 나 그리고 수명과 시어머니까지 찾아가 어엿한 청년이 된 만용을 축하해주기도 했다. 만용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양계일을 도왔다. 만용은 양계장에 든 도둑을 잡기도 했고, 또 어느 날에는 닭 모이를 사러 장에 나섰다가 모이 두 가마니를 잃어버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수영과 나는 양계장의 계란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을 눈치챘다. 설마 만용이 그랬을까? 며칠을 지켜보니 만요잉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살림을 돕는 다른 식모아이가 몰래 알을 훔치고 있었따. 화가 나서 방 안 곳곳을 홰를 치듯 돌아다니던 내게 수영은 점잖은 목소리로 남의 집 일하는 사람이 그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일을 하냐며 그냥 모른 척하라고 했다. 수영의 그 태연함에 나는 화가 더 치밀어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수영의 말이 그럴듯하게도 느껴졌다. 만용을 잘 기른 것은 양계일의 유일한 보람이었다. 10년을 꼬박 채워 양계를 했지만 이렇다 할 재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양계를 그만두면서 나는 수영과 닭을 10년 키울 바에는 사람을 10년 키우는 게 낫다는 말을 흐믓하게 나누었다.(95~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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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시인이라는 수식만으로는 왠지 아쉬워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모더니즘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우기에는 더욱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김수영이 그렇다. 김수영 앞에 어떤 말을 앞세워야 가장 그럴 듯하고 마음에 맞을까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번번이 포기하고 만다. 김수영은 단지 김수영이고, 그저 김수영이고, 결국 김수영인 이유에서이다.
그와 그의 부인과의 로맨스는 문단 내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내막을 알 수 없는 이야기. 소문이 무성한 만큼 제대로 알고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그의 부인이 에세이집을 엮었다는 말을 듣고 내심 반가워했다. 심지어 제목이 ‘김수영의 연인’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는가. 책에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있었고, 미리 읽어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볼 만한 작품 관련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새롭게 보게되었다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알고 있었던 것을 좀더 명확하고 다채롭게, 그리고 진지하게 알게되었을 뿐이다. 이는 김수영이 상징하는 일관성과 관련이 있다. 김수영은 스펙트럼이 넓은 시인이다. 하지만 수많은 빛깔은 결국 ‘김수영’으로 모인다. 그의 어떤 행적도 그가 아닌 것이 없다. 김수영이 단지 김수영이고, 그저 김수영이고, 결국 김수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 그는 어쩌면 현실적이지 못하고 불만이 가득한, 때론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살아내야만 하는 세상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치열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랑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끊임없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눠야만 할 것이다.이런 결벽에 가까운 진지함을 중시하는 내가 김수영을 아끼는 것은 필연적이고도 운명적이다. 개인적으로 김수영의 작품 중에 아끼는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김수영의 연인’의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이 시에는 김수영의 가장 투철하고 치열한 ‘삶’이 있다. 처절하게 생존하고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겨우 이야기할 수 있는 멋내지 않은 넉넉함이 있다.
나의 가족 - 김수영
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
어느덧 물결과 바람이
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
저녁에 들어올 때마다
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
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
파도처럼 옆으로
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
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
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
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
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전령을 맡긴 탓인가
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
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
그렇지만
구차한 나의 머리에
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함을
담아주는 삽시간의 자극을
나의 가족들의 기미 많은 얼굴에
비하여 보아서는 아니될 것이다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냐
차라리 위대한 것을 바라지 말았으면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없는 말을 주고 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안에서
나의 위대한 소재를 생각하고 더듬어보고 짚어보지 않았으면
거칠기 짝이없는 우리 집안의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이것이 사랑이냐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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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처럼 다가와 불 탔고 바람마냥 사라졌다. 구입한 책에 들어있는 시인 김수영의 사진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고독이 느껴졌다.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시를 써내려간 시인으로서 그의 이름은 길이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일러도 너무 이른 그의 죽음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을 것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제 죽음을 정확히 알 순 없다고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참으로 아쉬움이 컸다. 우리 문학계에서 그와 같은 이가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철저히 현실과 담을 쌓고 오로지 예술만을 위해 인생을 불태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적어도 부당함에의 부역만은 말아야 할 터인데, 이는 말처럼 쉽지가 않은 바다. 헌데 시인은 적극적으로 아니다 싶은 것에 반기를 들었다. 자유를 빼앗긴 결과가 무엇인지 스스로 경험을 통해 뼛속 깊이 체득한 탓이었다. 한 평생을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온 이가 뒤늦게 기지개를 폈다. 늦었다는 말이 옳지 않다는 비판도 가능은 하겠지만, 1927년에 태어난 저자의 나이는 벌써 86세다. 길다면 길수도 있는 생의 절반을 그리움으로 채워가며 살았으니 대체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궁금증을 품어봄직하다. 시인 김수영은 스스로의 부당함을 꾸짖으면서 이따금 제 삶을 시의 소재로 삼기도 했다. 이토록 팍팍한 윤리의식을 자랑하는 이의 배우자로 살려면 적잖이 피곤하겠다는 생각, 지긋지긋했을 것이고 차라리 속 시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그러나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산산이 부서지고야 말았다. 여전히 시인과 동거중이라고 김현경은 새로이 출판한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었다. 시인을 빼면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1장에서부터 그녀는 “나는 시인의 아내”라는 선언을 과감히 내던지고야 만다. 어린 시절 무언가 큰 잘못을 저지르곤 다락방에 갇힌 순간에서부터 그녀의 기억은 출발했다. 어둠속에 혼자된 그 시간을 오히려 그녀는 즐겼다고 하는데, 생물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빛 못지않게 어둠도 필요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인 김수영이 타고난 시인이었듯 그녀 역시 문학적으로 많은 재능을 타고 났다. 내조라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삶은 전통적인 여인네들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지만, 적어도 문학에 대한 욕심만큼은 남편 앞에서 버렸던 듯. 시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이후에 그녀가 세상에 쏟아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는 예술성을 발견하고야 만다. 참고 사느라 힘이 들었을 것이다. 글이 쓰고파 하루에도 몇 번씩 손가락이 근질거리는 내 경험상 그녀가 침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이 들었을지 난 짐작이 갔다. 하지만 고통조차도 침묵 앞에선 잠들었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사랑과 애정이 두 인물 사이에는 있었다. 시대가 암울했기에 그들의 사랑은 쉽지가 않았다. 요즘에도 결혼 아니 하고 남녀가 결합하는 일에 대한 손가락질이 적지 않건만, 그들은 형식의 노예가 되길 그 옛날(?)에 이미 거부했다.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은 우리 모두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서졌다. 인민군이 되어 죽음[死]일 수도 있는 길을 걸어야 했던 김수영과 국가에 남편을 빼앗긴 채 살기 위해 아등바등 굴어야만 했던 김현경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비극이었으며 민족 차원에서도 비극이었다. 이 부분은 강신주 님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와 함께 읽어보면 서로 다른 관점이 혼재되는 묘한 느낌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깨어져 함께여도 이전처럼 친밀치 못했다는 고백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음에 무한히 행복했다는 고백 중 어느 쪽에 가까운 관점을 취하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녀는 시인의 아내이면서 동시에 팬이었다. 김수영의 글을 가장 먼저 접하고 평을 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인물이었던 그녀는, 이번 책을 통해 김수영의 대표적인 작품들에 대해 늘어놓기도 했다. 이제는 하도 읽어 외우고도 남았을 시들. 육체는 떠났지만 시가 남아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술을 곧잘 마셨으며, 때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병약했던 시인. 그의 말끔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병명 치질 그리고 틀니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하니 기억나고 또 그립다는 그녀를 위해 시인 고은의 말을 빌려본다. “멋진 김현경 여사의 여생이 더욱 난만한 저녁 뜨락의 모란꽃이기를 도봉 영기를 머금은 아침 이슬의 산유화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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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며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기대했다. 시인과 그 아내의 이야기이니 당연히 사람의 얘기겠지 했다. 그렇다 사람 얘기였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 그들의 시대도 더불어 만났다. 딱딱한 연도나 도표가 아니었다. 그들이 살고 거닐었던 시대가 살아난 듯 내 앞에 펼쳐졌다. 노량진에서 인천까지 걸어갈 수 있는 익숙치 않은 물리적 거리감이 신선했다. 아이를 씻기는데 몰두한 어머니 마음은 추운 겨울에 목욕물을 길어 나르느라 터져나가는 언년이들의 손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곳에 시인도 있었는데 그는 운명 교향곡을 휘파람으로 부르며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그때 자신이 다른 사람의 운명을 거세게 두드리는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랬던 것일까. 선악과 호오를 떠나서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무력하지 않았고, 지식과 열정이 부족하지 않았다. 치열하게 살았었고 그들 몫의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었다. 김수영과 그의 아내,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시대의 과제를 공유하고 있었다. 해방과 그 직후의 혼란, 6.25 전쟁, 군사독재를 포함하여 당시는 폭력과 억압의 시대였다. 무엇 하나 바로서지 못했던 시절에 김수영은 시대의 우울에 휩싸여 괴로워했다. 시대가 던지는 질문은 항상 어렵다. 그 질문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던져지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도 가까스로 풀어낼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가장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가장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시대정신을 파악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공유할 수 없음은 그들을 외롭게 만든다. 시인은 잘 견뎌내지 못했다. 자신 안의 작은 속됨도 그를 숨막히게 했다.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함을 자각한 밤에 작가는 괴로워 울부짖었다. “이 땅에서는 거지도 마음대로 될 수가 없지. 자유, 자유, 자유 없이는 예술도 없어! 사랑도 없어! 평화도 없어!” 하고 말이다. 그러면 작은 아이는 곁에서 거지가 싫다고 울었다. 개인과 시대는 연결되어 있다. 사람은 부모보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닮는다. 이름마저 거창한 저 시대의 불안이란 것이 한 가정의 평안을 깨뜨린다는 사실은 얼마나 당황스런 진실인가. 그렇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 피는 사랑이 더 귀한 법이다. 부부는 겁 많은 사람들은 감히 저지르지 못할 다양할 도전을 했다. 때로 삶의 궁핍함에 처하면서도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맡기며 사랑을 일구었다.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거창한 수사가 어울릴 법한 순간에도 쉽사리 과장하는 법이 없다. 그저 문장 곁에 문장 하나를 더 두어 자연스레 의미를 더한다. 책 말미에 덧붙여진 고은 시인의 말 그대로 옥고다. 팔순이 넘은 작가의 글은 수십 년 세월의 차이를 보이는 젊은이가 받아들이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아니, 그 생생한 감수성은 여느 젊은 이의 것보다 더욱 짙은 것이었다. 읽은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시인과 아내의 삶이 살아 훨훨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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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에서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 김현경 여사(1927 - )가 이화여대 영문과 시절 정지용 교수로부터 시경(詩經)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중입니다"란 말을 하는 김수영 시인의 첫 독자, 아내, 한 여인이었던 김현경 여사의 에세이 '김수영의 연인'은 이렇게 책 날개서부터 관심을 놓지 못하게 한다. 정지용 시인은 영어, 라틴어, 한문, 고전 등에 능통한 르네상스 지식인이었다. 김순남, 김현경의 5촌 오빠이자 성우 김세원의 아버지인 이 분은 쇼스타코비치로부터 천재라는 칭호를 받은 작곡가이다. 스승인 하차투리안이 오히려 김순남에게서 새로운 음악을 배웠을 정도이다. 김순남의 집에는 임화, 오장환, 김남천, 안회남, 함세덕 등의 카프(KAPF) 시인들이 자주 모였다. 진명여고 2년 여름 김수영 시인을 처음 만난 김현경 여사는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이종구란 이름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이자 일본 유학 내내 함께 기거한 막역지우이다. 이종구가 김수영 시인과 김현경 여사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당시 김현경 여사는 배인철을 만나고 있었다. 임화의 집에서 알게 된 배인철은 ‘흑인시‘라는 장르를 개척한 영문학자였다. 남로당 주요 멤버였던 배인철은 김현경 여사와 데이트 중 괴한의 총에 맞고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김현경 여사는 연애 금지 학칙을 어긴 죄로 이화여대에서 제적을 당했다. 모두 꺼렸지만 김수영 시인은 가택 연금 중인 김현경 여사를 찾아왔다. 김수영 시인은 알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게 모른다고 말을 한 사람이었다. 김수영 시인은 My soul is dark란 말로 프로포즈를 했다. 김현경 여사는 문학은 모든 각질화된 제도에 저항하는 양식이 아니던가란 말을 한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한 운명이 형식이 되고 제도가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32 페이지) 1950년 8월 25일 서울에 남아 있던 김수영 시인은 인민군에 징집되었다. 시인은 그 체험을 일체 말하지 않았다. 김현경 여사에게 두어 번 말했을 뿐이다. 시인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소련군을 만났다가 미군을 만나 서울로 돌아왔지만 지서로 끌려가 악몽 같은 고문을 당했다.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시인은 결국 살아 돌아왔다.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허락을 얻어 고교 영어 교사를 하던 이종구에게 취직 자리를 부탁하러 갔다. 그곳에서 일년이 훌쩍 지났다. 이종구는 광적으로 집착했다. 세 사람, 아니 김현경 여사가 김수영 시인과 이종구 사이에서 한 처신은 애매했다. 더 이상은 내가 논할 바가 아니다. 김수영 시인은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이란 시에서 "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 우둔한 일인줄 알면서/ 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 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마지막 설움마저 보낸 뒤/ 빈 방안에 나는 홀로이 머물러앉아/ 어떠한 내용의 책을 열어보려 하는가"란 말을 했다. 김수영 시인은 생계를 위해 김현경 여사에게 외설 소설을 쓰게도 했다. 그렇게 받게 된 원고료를 김수영 시인은 괴롭고 부끄러운 마음에 모두 술을 마시는 데 쓰고 말았다. 김수영 시인은 매문(賣文)이란 말도 했다. 속물이란 말도 했다. 진짜 속물이 되는 것은 속물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고도 했다. 진짜 속물이란 어엿한 글쟁이를 것을 말하는 듯 하다. 김현경 여사는 '도취의 피안'을 김수영 시인의 시 중 제일로 꼽는다. 서정의 가락이 유창하게 늘어서 있는 문장들이 특히 좋은데 명확한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아 직접 물으니 김수영 시인은 사회주의에 대한 노스탤지어라고 말했다.(73 페이지) 김현경 여사는 황무지 같았던 서강 언덕에 삶의 자리를 잡았을 무렵 "농사라고 할 것은 없지만 500평의 채소밭을 가꾸"었다고 한다. "그는 농부요 나는 알뜰한 농부의 아내를 자처했다. 그는 또한 매일 같이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했다. 농부와 시인이 하나였던 시절이었다."(77 페이지)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이 삶의 여유를 반기면서도 끊임 없이 경계하는 의식을 드러냈다고 말한다.(132 페이지) '풀은 김수영 시인이 작고하던 해 5월 29일 쓴,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작품이다. 김현경 여사는 '풀' 역시 수식 없이 수영의 온몸에서 울려 나온 듯한 소리로 꽉 차 있다고 말한다. 김수영 시인은 새로운 시를 쓰느라 꼭 몸부림 같은 진통을 겪었다.(135 페이지) 김수영 시인은 개인으로서 시인의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안일(安逸)과 무위(無爲)를 극도로 거부했다. 오직 존재의 참되고 아름다운 정신의 지표를 바랐다. 김수영 시인은 작고(作故) 무렵 단호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와 에세이에 자기만의 시론을 멋지게 정리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143 페이지) 김수영 시인은 예술가는 끝까지 고독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과 자신의 자랑이라면 가끔 대화로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열정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이라 말한다.(145 페이지)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의 죽음을 "48년 생애를 마치고 조각처럼 희고 단정한 얼굴로 무(無)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라 표현한다.(149 페이지) 김수영 시인이 운명(殞命)의 날 마지막으로 집을 나선 것은 번역 원고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김수영 시인은 술이라도 한잔 한 날이면 "부끄러움도 없이"(김현경 여사의 표현) "시를 쓰는 일은 바로 인류를 위한 일이야. 나는 인류를 위해 시를 쓴다"는 말을 했다.(152 페이지)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과 함께 박인환 시인의 서점 '마리서사'에 드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한 일본인 시인의 시를 박인환 시인이 일본어로 낭송했는데 음독이 너무 틀려 그 후로 그를 철저하게 무시했다고 말한다. 김수영 시인은 초현실주의 예술이나 전위예술에 무서운 비평을 가했고 거기에 취해 있는 시인들을 뒤떨어진 시인이라며 경멸했다. 김수영 시인은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갑자기 자유의 몸이 되어 길 한복판에 서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한참이나 망설였다고 한다.(166 페이지) 그것은 어머니한테 먼저 가야 하나, 아내와 아들한테 먼저 가야 하나의 문제였다. 김수영 시인이 택한 곳은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곳이었다. 김수영 시인은 포로수용소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매순간 다짐했다. 김수영 시인은 포로수용소의 답답한 시간을 이를 흔들어 빼는 것으로 달랬다. 김수영 시인에게 그 고통은 살아 있음의 징표였다. 김수영 시인은 소리에 극히 민감했다. 특히 글을 쓸 때 그랬다. 그래서 소음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황무지 같은 서강(西江) 언덕에 자리하게 되었고 호구지책으로 양계를 했다.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이 늘 그늘과 비애를 삼킨 위대한 서정을 깔고 시를 썼다고 표현한다. 김수영 시인은 일 년에 평균 10편에서 13편 정도 시를 썼다. 김현경 여사가 한 일은 초고(草稿) 정서(淨書)였다. 김수영 시인은 비위에 거슬린 술을 마신 날 김현경 여사에게 심한 주사를 부려 여사로 하여금 이혼을 생각하고 별거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 안일과 무위를 싫어한 김수영 시인은 무위도식하는 사람의 술은 마시지 않은 염결(廉潔)성을 보였다. 김수영 시인은 집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집과 서재를 엄숙한 일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인은 앞서 가는 시 정신을 갖기 위해 철학서는 물론 새로운 문학 책을 숙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김현경 여사는 김수영 시인이 문명과 서울과 인간정신과 인류의 온갖 오염을 시와 행동으로 구체적으로 밀어붙이고 살다 간, 끈질긴 의지의 시인이었다고 말한다. 김수영 시인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자발적 또는 적극적 감금생활로 정의했다. 김수영 시인은 사람은 죽을 곳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시에 적용해 시인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죽어야 한다는 말로 정리했다. 김수영 시인은 고독이나 절망이 용납되지 않는 생활도 그것이 자신의 현실이라면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순수하고 남자다운 일이라 생각했다. 김수영 시인은 시는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나가는 것이라 말했다. 김수영 시인은 시는 문화와 민족과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지만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한다는 말을 했다. 김수영 시인은 그것을 형식이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되는 것이라 표현했다. 김수영 시인은 새로움은 자유고 자유는 새로움이란 말도 했다. 김수영 시인은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고 시인에게는 현실에 정직할 수 있는 과단과 결의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김수영 시인은 진정한 시의 테두리 속에서 살아 있는 낱말들이 진정 아름다운 우리 말이라는 말을 했다. 김현경 여사는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면서 번역도 쉴 사이 없이 부지런히 한 수영의 정진하는 자세를 정말 좋아했다고 말한다. 김수영 시인은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그 중 하나가 기관지염이다. 김현경 여사는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던 '눈'을 읽으면 수영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김수영 시인은 술에 취하면 애교가 대단해질 때도 있었지만 울분과 불만의 분화구로 변할 때도 있었다. 울분과 불만 이후에 새로운 시들이 태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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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떠난지 몇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당신과 동거하고 있습니다. "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이 에세이의 주제는,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천재 시인의 아내이자, 자신 또한 한 명의 문학인으로서 김수영 시인과 동행했던 오랜 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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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김수영 시인은 내가 항상 상상했던 '시인'의 모습에 가장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예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 예민함과 괴팍함을 그의 부인의 시선으로 함께 보니 그 괴팍함이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모습인 것만 같아 천진난만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특히나 이 부분 '수영에게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는 아내인 나보다 더 자주 거울을 봤다. ..... 그러다 가끔씩 내 시선과 마주치면 무슨 부끄러운 비밀이라도 들킨 아이처럼 계면쩍어하며 딴전을 부렸다. ..... ' 수업시간에 좋아하는 여선생님을 거울로 훔쳐보다 걸린 소년 같지 않은가. 시를 쓸 때도, 번역일을 할 때도 아마도 그의 부인을 자신의 시선에 있길 바랐기때문이리라. 김현경 여사가 그의 시의 가장 첫 독자로서, 어떤 의미인가요. 라고 물을 수 있었던 사람이란 게 참 부러웠다. 시인에게서 듣는 시는, 우리가 문학시간에 마주했던 그 시와는 분명 다른 것들이라 몹시 새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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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여사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김수영 시인을 만나는 과정을 읽는 동안 나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김수영 시인만큼, 김현경 여사의 글은 책에 빠져들게 해주었다. 둘의 사랑이야기는 에세이인 것을 잊게 만들만큼, 소설 같은 면이 많았다. 순탄하지만 않은 사랑이었기에,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처음 제목이 『김수영의 연인』이라고 해서, 조금 진부한 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보니, 김현경 여사가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라는 이 구절이 마음에 짠하게 다가왔다. 교통사고로 인해 갑자기 떠나보낸 김수영 시인이 얼마나 그리울지, 글 전체에서 절절하게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고 난 기분이 한 편의 영화를 본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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