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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해지는 책이다. 실려 있는 흑백 사진이 우리의 현실을 더욱 어둡게 비추고 있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너무 많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의 삶, 과연 그건 가치로운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는 개인을 추모하는 일은 정당한가. 국가와 정부와 정부의 관리자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는가. 그들은 어찌하여 그리 해도 된다고 생각해 왔을까.
막막하고 무서웠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공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무시되고 희생되어 온 개인의 존재들. 지금 내가 나서지 않으면 장차 내 아들과 딸이 거듭 고통당할 것을 알기에 나의 목숨과 삶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해도, 애달프다.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도 힘겹고 절절하다.
일본이나 우리나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일본의 후쿠시마와 같은 상황에 놓인 곳이 우리나라에도 겉모습만 다를 뿐, 내면의 속성은 비슷한 채로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모르면 몰라서 당하고, 알아도 힘이 없어서 당하고, 한 발 나서면 내가 먼저 죽을까봐 숨고, 한 발 앞서 나선 사람들에게 더 미안해서 한 발 더 뒤로 숨는 약하고 순한 사람들, 보통의 국민들.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들을 주목해야 하겠다. 누가 왜 필요하다고 말하는지 이면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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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의 대지진이 있었던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아니, 아직 2년밖에 안지났는데 벌써 사람들은 그 일을 잊어가고 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인해 대참사가 있었고 단지 자연재해만의 피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전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가 있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그것을 잊어가고 있다. 물론 나 역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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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체르노빌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우리는 비를 맞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들을 수 있었다. 방사능물질이 비구름에 섞여 내리기 때문에 맞으면 안된다 말했던 것인데, 어릴적의 기억에도 핵에 대한 경계심은 딱 그 정도였다. 어른들은 더이상 핵에 대한 걱정이나 우려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후의 성장과정에 있어 핵은 '핵'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되지 않았다. '청정에너지 원자력'으로 회자되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핵과 원자력을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2년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붕괴된 이후를 생각해보면 어릴적의 '적당한 걱정과 우려'수준에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SNS가 유행하다보니 우려와 걱정의 이야기는 많아졌지만, 공식적으로 그런 현상은 루머와 편견으로 치부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약간의 걱정을 마음에 담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후쿠시마는 바로 이웃나라에 존재하는 곳이고, 우리는 수많은 핵발전소를 보유한 국가라는 현실속에서 말이다. 후쿠시마는 소수자의 영역이 되어버렸고 버려진 땅이 되었다. 예전의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섬이 그렇듯 말이다. 공통적인 특징은 핵발전소를 통해 희생의 영역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첫째로는 다수의 삶이 존재하는 거대한 도시의 전력을 위한 희생이었고, 두번째는 핵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국가와 핵마피아 집단들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다. 처음부터 낙인찍힌 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낙인이 찍혀 지금까지 이어온 자신들의 삶을 더이상 이어나갈 수 없는 희생자이자 버려지는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핵의 문제는 단지 과학으로 말하는 핵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권력과 그것이 비호하거나 그 자체인 핵마피아집단의 이익문제, 국가간의 알력의 문제, 그리고 파괴적인 현상과 존재인식에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소수자의 문제까지, 그리고 방사능은 시간을 거쳐 서서히 문제를 만들어내는 특징도 있기에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도 고찰해볼 수 있는 인간의 삶의 문제이다. 거기에 핵물질의 집적과 분산에 따른 먹거리와 환경에 대한 실질적 문제까지 고려해본다면 우리는 지금 후쿠시마의 문제를 이렇게 '가벼운 걱정거리'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또 한가지 더, 고리원전이나 영광원전등의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수많은 핵발전소의 현재운영상태나 설비의 안전성문제등등을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핵전문가가 아닌 비핵전문가들이 핵에 대해 문화 역사 예술적인 부분에서 폭넓은 고민을 나눈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비과학적이니 너무 앞서나간 걱정이라 폄하할 수 있을까? 문제는 핵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들에서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데에 있다. 녹색평론에 여러차례 실려왔던 여러 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생체에 있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방사선량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핵발전소 기술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설비의 비효율성과 편법, 그리고 임시방편적 관리에 대한 증언을 고려해보면 핵발전소는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느낌이다. 그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핵에 대한 일반적인 걱정이나 우려는 어느 경우에서나 과하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으며, 이제까지 보여진 현상론에 근거하여 저자들의 좌담과 같은 폭넓은 고민과 반성, 그리고 제안은 객관적 힘을 가질 수가 있다. 거기에 핵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보여왔던 국가권력의 은폐노력은 이러한 생각들에 무게감을 더해왔다. 개인적으로 핵에 대한 걱정이 존재한다 해서 삶의 모습이 극적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에 관련된 모든 현상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든 현실이다. 직시해야 할 것은 여전히 핵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 하고 국가간 폭력적 긴장을 증가시키려는 국가권력과 핵마피아에 대한 직시와 경계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세대를 넘어 이후의 세대들을 위한 의무가 아닐까? 현실은 수명을 다한 고장난 원전을 억지로 가동시키고, 신규원전 유치에 지역정치꾼들과 그에 선동된 주민들이 유치찬성을 해대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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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의 고리 원전 1호기가 처음 설계된 30년의 수명을 다 마쳤다.이에 정부와 한전은 고리 원전 1호기를 재 점검후 이상이 없으면 지속적으로 가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대해 고리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내구성이 다된 고리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를 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 국내 원전 6기가 불량 부품 공급등 기타 문제로 가동이 중지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원전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지속적으로 커가는 실정이다.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독일처럼 원전가동 중지와 친환경 에너지를 공급할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같은 우라륨을 사용하는 원자폭탄과 달리 원자력 발전소를 여러 가지 안전 장치로 사고 위험이 없다는 장점외에도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화력 발전소에 비해 전기를 만드는 단가가 낮은 편이어서 우리처럼 지하 자원이 없는 국가에선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추세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커다란 사고를 일으켜 폐쇄된 사건은 벌써 3번째이다. 고리 원전의 기술을 제공했던 미국의 1979년 스리일리 섬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일어나서 이후 미국에선 원자력 발전소가 추가적으로 건설되지 못했고 1986년 구 소련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가 과열되면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사고 당시 30명이 죽고 그 후 방사능 피폭영향으로 91년까지 7천명이 죽고 약 70만명이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 사상 최고의 원전사고가 발생한다.당시 소련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방사능 먼지가 유럽과 아시아로 흘러가면서 숨길래야 숨길수 없었고 소련의 엉성한 방재에 전 세계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이 멈추면서 노심에 문제가 생겨 방사능이 유출되자 당시 일본은 주민들을 대피시켰는데 정부가 안전하다고 주장한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는 원전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을 근본적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안전하다는 원전의 사고와 더불어 국내 원전들의 각종 사고를 보면서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바뀌는 편이다.하지만 일반인들은 원전이 위험하는데 환경론자의 주장과 원전은 안전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사에서 무엇이 오른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운데 역사, 철학, 예술을 대표하는 한일 지식인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가 핵 발전소에서 발생한 심각한 사고이든 간에 일단 문제가 터지면 그 피해를 입는 것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광범위한 일반 대중이기에 핵 문제의 해결을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년여의 기간에 걸쳐 후쿠시마, 합천, 서울, 도쿄, 제주, 오키나와를 오가며 좌담을 나눈 것을 책으로 간행하게 되는데 바로 후쿠시마 이후의 삶이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사실 원자력에는 모두 문외한들이다.이들은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현지, 스리마일 섬을 방문하고 히로시마 등의 피폭자들의 증언 대회가 열린 합천비핵평화대회을 다니면서 후쿠시마 원전의 사고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원전에 과한 한일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원전과 윤리외에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하미일 동맹관계,원전과 제주 강정마을등 원전과 그다지 상관없어 보이는 문제까지도 폭 넓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원전은 대한민국에서 없어서는 완될 존재다.비록 많은 환경론자들의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지만 블랙 아웃까지 경험한 한국에서 원전을 없에버리면 마땅히 대처할 만한 전력 생산 수단이 없다.화력 발전소의 경우 연료 비용의 증가와 환경 문제가 수력 발전소의 경우 이미 물 부족 국가로 들어선 한국에선 더 이상 유용한 발전수단이 아니다.뭐 기타 풍력,조력,태양열등 여러 친황경 대체수단이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앞길이 요원한 편이다. 이 책을 읽고서 느낀점은 원자력 발전소를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위험한 존재이기에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단 점이다. 하지만 지난 후쿠시마 원전사고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사태의 심각성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해 지역 주민들을 방치해 두었고, 심지어 피난민들에게 물자가 부족한 상황조차 외부에 알리지 않은 것처럼 우리 정부도 노후화된 원전들이 잇따라 사고를 내고 불량 부품을 사용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이런 사실들을 감추기에 급급한 편이다. 이처럼 원전에 대해 일부 지배계층의 폐쇄적 정책과 이익 추구가 결국은 원전 사고시 많은 일반인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꼭 필요한 존재다.우리가 지금 저렴하게 사용하는 전기료는 결국 원자력 발전소에서 기인한 것이다.만일 우리 삶에서 원전이 위협적이라고 판단된다면 우리 모두 원전을 없앨시 생기는 고통에 대해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될 각오기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후쿠시마 이후의 삶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에게 원전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좀더 진지하게 원전에 대해 생각했으면 바란다.그리고 원전의 존재 유무에 대해 일부 전문가와 정부에게만 맡기지 말고 온 국민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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