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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면 의식적으로 감사할 것을 찾아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기도의 내용 중 하나가 ‘몸 누일 곳이 있음과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이다. 욕망의 단계에서도 의식주에 대한 것이 1단계인 것처럼 이 의식주는 안전에 대한 욕망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것을 잃을지도 모를 절대절명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1921년 미국 텍사스 주 프리덤타운의 주민들이 그랬다. 백인들이 자신들의 훌륭한 주거환경을 위해 새로이 계획한 곳 그곳이 바로 프리덤타운이었던 것이다. 텍사스주 흑인집단주거지역인 프리덤타운에 사는 로즈 리는 백인인 벨씨의 집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 할아버지와 흑인들에게 이발을 해주는 아버지, 그리고 백인들의 빨래를 해 주는 어머니와 오빠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벨씨네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모의 조수로 일하기 위해 벨씨의 식사보조를 하게 된 로즈 리는 벨부인의 모임을 통해 프리덤타운의 존재자체가 위협받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흑인들을 편들던 퍼스 리 선생님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프리덤타운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오빠는 KKK단에게 테러를 당하고 결국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마을을 이전하게 된 몇 안되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그들은 플래츠로 이전하게 된다. 그나마 집 자체는 옮겨갈 수 있으니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비록 이웃들과는 떨어졌지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아님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일까? 로즈 리는 퍼스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제 곧 떠나야 할 마을을 그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스케치북을 피신하는 오빠에게 전달한다. 오빠가 훗날 스케치북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 띠지에 있던 용산참사 운운하던 말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편견으로 먼저 대했다. 용산참사의 잔재인 그 건물은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 있고,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뉴스를 통해 보던 사건은 정말 참담했었다. 그런데 그런 용산참사에 대해 언급했으니 과격한 맞섬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우려되기도 했고, 책 표지 그림만 보고서는 ‘어린이 성추행과 관련한 내용인가’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성장소설이었기에 시종일관 어린 소녀의 시선에서 큰 출렁임 없이 전개되었다. 책의 여운을 오래 담는 나로써는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도시계획을 놓고 보았을 때 우리의 질 높은 주거환경을 위해 공원을 만들고 공공기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그 곳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것은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대책으로 강제이주로 결정이 나게 마련이다. 어느 지역에 고물상 또는 공장이 터를 잡고 있다가도,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고 학교가 지어지면 먼저 자리잡고 있었던 고물상이나 공장은 지역주민들로부터 유해한 환경으로 분류되어 어쩔 수 없이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거나 작가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마을을 떠나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마을의 아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치는 사람들을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학교를 다시 열고자 하는 교장선생님과 수재너 이모, 그리고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에드워드 오빠를 피신시키는데 협조하는 벨씨의 딸 캐서린 제인. 또 이제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 풍성한 꽃을 피울 할아버지가 심은 '하얀 라일락'... 흑인이 대통령인 나라, 하지만 그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 흑인들은 그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왔고 성과를 거두어 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또 그들을 반대하는 단체들도 버젓이 집단행동을 취하고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듯 무자비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남의 역사를 볼 것도 없이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히 지키고 싶어하는 게 마련이고, 그것의 우선순위는 내 아이들, 내 가족이다. 그러니 어느 날 누군가에게 위협의 대상이 된다면 누구든 발벗고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폭력이라는 방법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어야 했다. 내가 엄마라는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인지 아이의 시선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모든 고민을 안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른의 입장에서 쓴 책이었다면 내용이 이렇듯 잔잔히 흐르지는 못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지켜내기 위해 행동해야 하는 것은 어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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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져가는 벽돌담.. 찢겨져 나간 사진의 일부분.. 그 안에 한 소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다소곳하게 서 있다. 그리고 하얀 라일락 (White Lilacs) 어린시절 우리집 마당에는 큰 라일락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의 가지와 꽃들이 안방의 창문을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라일락이 한창인 계절에 안방 창문을 열고 누워있으면 그 향기가 온 방안을 흔들어 놓았다. 그때의 라일락은 연한 보랏빛의 라일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볕 좋은 날 열어 놓은 창문을 타고 들어와 내 맘을 흔들어 놓았던 라일락은..
이 소설의 하얀 라일락은 주인공인 로즈 리의 할아버지 윌리엄스가 가꾸는 정원, 에덴의 동산에서 자라고 있는 귀한 나무였다. 프리덤 타운.. 그곳은 1920년대 미국 남부.. 노예해방 직후에 흑인들이 모여 살고 있던 마을의 이름이었다. 근처 백인들의 집에서 일을 해 주며 삶을 살아가던 그들의 삶의 터전.. 비록 그곳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비가 오면 빗물이 넘쳐 진흙탕이 되고 남루한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가족들이 모여 함께 삶을 공유하는 귀한 터전이었다. 그러한 그곳에서 갑자기 쫒겨나야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로즈 리의 가족..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삶을 꿈군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것을 기반으로 한 보다 나은 삶.. 희망.. 등을 내포하는 새로운 삶이다. 이 이야기의 로즈 리네 가족처럼 하루 아침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삶의 터전에서 쫒겨나게 되는 상황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프리덤 타운은 남다른 마을이었다. 그저 단순한 이웃이 아닌 대가족과도 같은.. 그래서 영영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설사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백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멋진 공원이 필요했고 흑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 혹여라도 우범지역이 될까 우려하는 맘에 흑인들을 마을에서 쫒아내고 그곳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의 결정은 바로 실행으로 이어지고 프리덤타운에 살고 있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삶을 터전을 잃어버리게 된다.
1921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모여 살던 퀘이커타운을 채권을 발행해 사들인 후 공원을 조성한다. 당시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강제 이주 통보를 받고 뿔뿔히 흩어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당시 암암리에 금기시 되고 있던 과거의 이야기를 작가는 용기있게 해 보기로 맘을 먹는다. 흑인들에게는 한 번 일어난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기에 쉬쉬했고 백인들은 선조들의 무자비함에 놀라 쉬쉬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전쟁이후 경제개발이라는 것을 거쳐왔던 우리나라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일들이고 가장 최근 용산참사라는 슬픈 역사를 떠 올리게 만드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아픈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 사실 두려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로즈 리라는 12세의 소녀의 시각으로 바라본 당시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과격한 물리적인 현상으로 비쳐질 수 있었던 사실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각각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야하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제 이주를 받아들이는 프리덤 타운의 주민들의 반응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프랑스에 참전을 하고 귀국한 로즈리의 오빠 헨리는 그들에게 우리들이 없을때의 아쉬움을 뼈저리게 느깨게 해주어야한다며 백인의 집에서 일하지 말고 모두 그들의 모국인 아프리카로 돌아갈 것을 선동한다. 반면 마을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다른 곳을 먼저 찾아보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이주를 먼저 시작한다. 그리고 절대로 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며 끝까지 남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이러한 이 상황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선들이 있다. 프리덤 타운 주민들의 반발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 그래서 과격하게 그들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KKK단이 있고 노예해방이 된 후 흑인들도 국민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미술교사 에멀리 퍼스와 같은 사람도 있었으며 인간적으로 그들을 도와주는 백인주인집 딸인 캐서린이 있다.
이렇듯 강제이주라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다양한 모습들.. 어찌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기에 나타날 수 있는 모습들을 대표적인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담담히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다. 많은 것을 갖은 자들이 더욱 더 갖기 위해 적은 것을 갖은 자들의 그 적은 것 마저도 앗아가버리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분노하고 격해질 수 있는 소재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소녀의 시선을 통해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 사람들을 과하지 않게 그리고 그리 격하지 않게 차분하게 바라보는 로즈 리의 시선덕분에 차분히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이주가 결정되고 그들의 집은 지금보다 더 한적하고 외진 곳으로 옮겨지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이사 방법이 아닌 집이 통 채로 움직이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삶을 터전을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희망이라는 다시 심는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얀라일락은 로즈리의 할아버지가 그 뿌리를 옮겨 자신의 정원에서 가꾼 나무이다. 그리고 그 라일락은 그들이 이주할 때 같이 옮겨져 새로운 주거지에서 다시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유산을 남겨주시고 세상을 떠난다. 책을 읽으며 제목과 내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하얀 라일락.. 귀한 라일락이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향기를 전하는 것 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도 그들의 새로운 터전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그렇게 살아갈 것임을... 약속하는 희망의 메세지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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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몰랐다. 우리가 쫓겨나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줄은. 그때 프리덤타운에 살았을 적, 이렇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참 의미가 큰 소설이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꼭 이렇게 약자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편하자고 자기 살기 좋게 하려고 이렇게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다. 이 책 <하얀 라일락>은 청소년소설이다. 그렇기에 청소년 소설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매우 기본 좋게 읽게 되는 책이다. 그런데 책을 받고 가슴이 아파온다. 읽기도 전에 걱정이 되었다.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용산철거 때 아픈 일이 있다. 사실 내용은 자세히 모르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많이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들의 아픔을 머라고 적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그들 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파졌다. 이 책의 주인공인 로즈 리 제퍼슨 가족과 친구들, 벨 씨네 가족, 에밀리 퍼스 선생, 가공의 도시 프리덤타운 주민들은 모두 저자가 지어낸 인물이다. 그러나 이 등장인물들이 겪은 숱한 비극도 프리덤타운과 딜런에 얽힌 이야기도 70년 전 텍사스 주 텐턴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썼음을 밝혀 둔다. 1992년 7월, 텍사스 주 덴턴에서- 케서린 마이어 로즈 리 가족은 백인들이 사는 공간의 가운데에 프리덤타운에 살고 있다. 그들은 백인들 집에 일을 한다 던지? 자기 마을에서 일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로즈 리가 이모 딸 대신에 벨씨 집에서 시중을 들으면서 백인 여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게 된다. 이 시기에 흑인들은 백인들을 두려워하고 거의 노예수준에 가깝게 지내던 시기라서 주눅이 들어있고 눈도 못 마주칠 정도다. “그 딱한 검둥이들이야 프리덤타운을 뜰 기회라고 좋아하지 않겠어요? 큰비만 내렸다 하면 셋강이 넘쳐 진창이 되니 지긋지긋할 만도 하잖아요! 우린 그저 거기보다 살기 편한 데로 옮겨 살게 해 주는 것뿐이죠. 하긴 검둥이가 워낙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코흘리개 같으니, 이주하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구슬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p21 이렇게 이 사람들 말투에서 검둥이라고 무시하고 자기들 편한 쪽으로 이주시켜 그곳에 공원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로즈 리는 충격을 받게 되고 부모님께 알리게 되면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내 보내려는 자와 거기에 남아 살려는 자들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이 프리덤타운을 할아버지는 에덴동산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불리게 만들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심은 하얀 라일락은 제목에서 나오고 상상 만해도 아름다운 공원일 것 같다. 로즈리는 12살 소녀이다. 꿈도 있고 희망도 있는 소녀인데 그 소녀의 미래가 걱정이 되긴 했다. 특히 오빠는 군대 갔다 와서 백인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못마땅했고 여기서 싸워야하고 떠나게 된다면 다 같이 아프리카로 가자고 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고모가 도시에서 오는데 아주 멋진 고모가 오게 되고 소녀인 로즈 리가 바라보는 모습들이 세세하게 잘 설명이 된다. 특히 오빠가 백인들에게 잡혀가 다쳐온 상황은 아주 무서운 상황이다. Em거운 물을 붙고 거기에 털을 부친 것이다. 에고 이 나쁜 사람들아 자기 살겠다고 다른 이들을 이리 해 한단 말인가? “우리가 속한 곳은 이곳이고 우린 여기서 계속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식 저항이다. 아프리카로 가겠다는 생각일랑 버려라. 우리 보금자리는 여기다. 바로 이 집. 이 땅.” p52 아버지가 이리 주장을 했지만 주종 관계에 속했던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의 투표에 꺾이고 뿔뿔이 흩어진다. 서로 살겠다고 떠나는 이들을 누가 말리랴 특히 이주민들이 새로이 이주한 곳은 말도 못하게 지저분한 곳이다. 그래도 살아야지? 이 책에서 그래도 흑인을 도와준 퍼시 선생님과 캐서린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퍼시 선생님은 백인 선생님이지만 백인들에 의해 쫓겨나는 데 로즈 리의 소질을 알고 로즈리에게 이 프리덤타운을 스케치해서 남기라는 말을 해줘서 로즈 리는 그림을 그려 남긴다. 그리고 캐서린은 벨씨 딸인데 그래도 살짝 로즈 리를 도와준다. 책을 읽으면서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당하는 모습에서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그들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줘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이 이사하는 모습들도 참 신기했다. 집이 들려서 이사를 하는 모습은 슬프지만 장관일 것 같다. 거기에 백인들이 저지른 만행 중에 학교 불태운 것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참 자기네 편히 살겠다고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말이다. 지금도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총기 사건도 그렇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저자가 바라보는 이곳을 잘 설명해주고 여러 세세한 묘사가 참 좋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편의 슬픈 이야기? 다큐멘터리 같다. 다시는 이렇게 약자가 힘없이 당하는 일이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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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기본 생활권을 의식주(衣食住)로 표현합니다. 물론 이 단어가 그 중요도 순서로 붙인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순서가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식의(住食衣).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방 막힌 공간이 없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아니 생활 자체가 힘든 상황이지요)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땐 몰랐다. 우리가 쫒겨나 삶이 송두리째 뽑히고, 정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줄은, 그때 프리덤 타운에 살았을 적, 우리 외할아버지 짐 윌리엄스는 일분 일초라도 짬만 나면 아름다운 꽃밭을 손질했다. 할아버지는 그 꽃밭을 좋아했고,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좋았다. 할아버지네 꽃밭은 내가 가장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화자 역할을 하는 주인공은 '로즈 리'라고 불리우는 흑인 소녀입니다. 로즈 리에겐 할아버지네 꽃밭이 에덴 동산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것은 그럴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치고, 로즈 리와 마을 사람들이 그 터전에서 쫒겨나는 것은 매우 상황이 다릅니다. 그 에덴 동산에서 할아버지가 특히 아끼는 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얀 라일락'입니다. "이건 아주 귀한 나무야. 자줏빛 라일락은 흔해도 이렇게 하얀 라일락은 평생 가야 한번 볼까 말까 하거든." 로즈 리는 정원사인 할아버지의 일터이기도 한 백인 가정 벨씨네 집에 할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가 느닷없이 식사시중을 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백인 여인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안 들었어야 하는 말이지요.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여사님. 프리덤타운을 어떻게든 해야 해요. 그러면 해결된다니까요." 프리덤 타운은 그 지역의 흑인 집단 거주지역입니다. 전혀 프리덤하지 못한 프리덤타운. 도미니크 라피에르의 '시티 오브 조이'가 오버랩 됩니다. '환희의 도시'라 불리는 지옥 같은 곳, 캘커타가 생각납니다. 여인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딱한 검둥이들이야 프리덤타운을 뜰 기회라고 좋아하지 않겠어요? 큰비만 내렸다 하면 샛강이 넘쳐 진창이 되니 지긋지긋할 만도 하잖아요! 우린 그저 거기보다 살기 편한 데로 옮겨 살게 해주는 것뿐이죠. 하긴 검둥이가 워낙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코흘리개 같으니, 이주하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구슬려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먹고 살만한 백인들은 흑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공원, 도서관 등을 세울 꿈에 부풀어있군요. 그 동안 프리덤타운을 밀어버리겠다는 소문과 분위기가 있었지만, 로즈 리가 백인 가정에서 들은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했고, 로즈 리는 아빠의 일터에 모인 흑인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해줘야 하는 중책을 맡습니다. 들은대로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전하자 흑인들은 흥분하면서 대책 회의에 들어갑니다. 백인들은 백인들대로 시장을 등에 업고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심한 말도 내뱉는군요. "딜런에서 삭막한 것을 제거하고 너저분한 것을 싹 없애자." 자, 그렇다면 프리덤타운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죽어도 여기 남겠다는 그룹,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저항하겠다는 그룹, 또 다른 도시, 아예 먼 곳으로 이주하겠다는 마음들이 스몰스몰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잠시 고향에 들른 로즈 리의 고모 수재나는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국 시인 윌리엄 쿠퍼가 쓴 시 중에서 한 귀절을 읽어줍니다. 겁먹은 성도들이여 새로이 마음을 다지라 그대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저 구름은 자비를 잔뜩 머금었으니 언젠가는 흩어져 그대들 머리에 축복을 뿌릴지니 이 와중에 KKK단(큐 클렉스 클랜) 수백 명이 프리덤타운을 행진하며 교회 앞에서 십자가를 불에 태우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잘 아시는바와 같이 kkk단은 백인 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반 로마 가톨릭교회, 기독교 근본주의, 동성애 반대 등을 표방하는 살벌한 미국의 극우 비밀 결사 단체이지요. 사태는 점점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로즈 리에게 할 일이 생겼습니다. 흑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강압적으로 몰고가는 분위기에 역행하는 백인 여성 퍼스 선생이 로즈 리에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챙겨주면서 프리덤타운의 구석구석을 모두 그림으로 남기라고 지시합니다. 로즈 리가 그림을 곧 잘 그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권력과 결탁한 무리가 그 뜻을 행하는 방법. 화재가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조차도 짐작할 수있는 방화로 추정되는 화마가 학교 건물을 덮칩니다. 한편 로즈 리는 스케치북을 들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군요. 아직 어린 아이이건만 본인이 안하면 안 되는 크나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구석 저 구석 열심히 그리고 다닙니다. 사람들이 로즈 리가 그린 그림을 보고 누구네 집인지 단박에 알 수 있도록 충실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시선과 마음과 손을 통해 그 참담한 상황을 그리게 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상황이기 때문에 그나마 세심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요. 어른들의 시선은 좌아니면 우로 치우치게 되지요. 감성보다 감정이 앞서지요. 흑인 해방 운동을 주제로 한 "어느 뜨거웠던 날들"(리타 윌리엄스-가르시아 / 돌베개)에서도 세 자매가 아이들의 얼굴에 잘 새겨지지 않은 채로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 나섰지요. 그 엄마는 흑인 인권 운동 단체인 '흑표범당' 당원이었지요. 결국 프리덤타운은 지도상에서 사라집니다. 거주하고 있던 흑인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맙니다. 흑인들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던 1920년대 상황입니다. 이 책의 저자 캐럴린 마이어 이야기를 해볼까요? 1935년 펜실베이니아에서 피아니스트 어머니와 아마추어 배우 아버지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여덟살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답니다. 지금까지 50권이 넘는 책을 내놓았다는군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로 명성을 얻었고,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1991년 2월 28일, 텍사스 주 덴턴 도시공원에서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을 때 초대받아 간 후, 기념비에 새겨진 글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 그 마을 이름은 '퀘이커타운'이었고, 책에선 '프리덤타운'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 당시 기록과 자료를 열심히 뒤져서 나온 작품입니다. 1992년도에 이 책을 첫 출간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군요. "이 책에 실린 등장인물들이 겪은 숱한 비극도 프리덤타운과 딜런에 얽힌 이야기도 70년 전 텍사스 주 넨턴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썼음을 밝혀둔다." 흑인 대통령이 연임하는 미국이란 나라지만, 흑인들의 인권은 아직도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더 크지요. 빈부의 격차와 더욱 공교해지는 공권력 앞에 무력감만 느끼고 살아야 하는 우리네 서민들 역시 같은 입장인 듯 합니다. 새로운 도시 건설과 계획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내려야하는 민중들의 인권은 어디서 찾아내야 할런지요. 이 땅에도 여전히 부와 권력만이 지배하는 '폭력사회'가 만연해있으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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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작별했다. 작별할 수 밖에 없었다.
소녀는 작별했다. 그녀가 좋아하던 하얀라일락이 피던 에덴동산과 온 가족이 모여 살던 집, 그리고 친구들과 작별했다. 작별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192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일어난 강제 철거 사건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이다. 주인공 로즈리는 텍사스 주의 작은 흑인 마을 프리덤타운에 살고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소녀이다. 가난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직은 어린 12살 소녀이다. 하지만 로즈리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녀의 안락한 터전은 백인들에게는 진흙투성이 낡는 흉물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들에 품격에 맞는 공원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흑인들의 강제이주를 결정했다. 흑인 노예가 해방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사고는 편협한 이기주의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로즈리의 에덴동산은 눈물과 고통으로 물들어 갔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보는 프리덤 마을의 해체 과정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명확하게 다가온다. 잔잔하지만 더 서글퍼 지기도 했다.
하얀라일락을 읽으며 더 서글퍼졌던 이유는 바로 2009년 일어난 용산참사가 떠올라서 일 것이다. 4년 전의 일이지만 그들이 불길 속에서 삶을 향해 와쳤던 처절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들의 처절한 외침은 로즈리의 하얀 라일락과 처럼 마지막 희망과도 같았을 것이다. 로즈리의 할아버지가 죽을 뻔한 가지를 살려내 꽃을 피우고 로즈리가 지키고 키워낸 '하얀 라일락’은 끈질긴 생명과 엄숙한 아름다운 희망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책의 띠지에서 밝힌 것 처럼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하얀라일락을 키워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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