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0)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기억과 불안
"기억과 불안" 내용보기
기억이 늘 옳았던 건 아니다. 제복을 입은 어느 경찰관 앞에서 했던 어눌한 진술처럼 기억은 언제나 자신이 없었고,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으며,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어떤 이에게 내보였을 때 내게 올지도 모를 불확실한 미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불안은 내 기억의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물방울처럼 맺혔는지도 모른다. 땅을 향해 금
"기억과 불안" 내용보기

기억이 늘 옳았던 건 아니다. 제복을 입은 어느 경찰관 앞에서 했던 어눌한 진술처럼 기억은 언제나 자신이 없었고,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으며,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어떤 이에게 내보였을 때 내게 올지도 모를 불확실한 미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불안은 내 기억의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물방울처럼 맺혔는지도 모른다. 땅을 향해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한 작은 물방울. 그런 불안. 적어도 나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은...

 

"빛이 잘 들던 어느 오후, 해가 다 저물도록 불 켜지 않은 방에 누워, 그 방 작은 창으로 들어온 태양빛이 사위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한 남자. 매해 봄꽃이 필 때면 코끝에 와닿는 그 향기, 눈부신 색채의 찬란함을 견디지 못해 빛이 다 사라질 때까지, 베란다에 있는 모든 화분에 불을 지르고는 타오르는 꽃의 혼을 킬킬거리며 바라보던 한 남자. 꽃이 재가 되어 흩날릴 때에야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웅크린 채 고통스러워하던 한 남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 문을 잠그고 그곳에 남아 있던 한 남자를, 나는 오래 기억하고 또 기억했습니다." (p.151)

 

어떤 소설은 이야기의 윤곽보다 시간에 따른 느낌의 변이만 선명하게 남는다. 온화한 갈색이었다가 새벽녘의 푸른빛이었다가 투명한 흰색이 되기도 하는... 장혜령의 소설 <진주>는 그런 책이었다. 학년 초,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한 뒤 교실에서 그 내용을 발표할 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대학 시절부터 이십 년 남짓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매진했던 아버지를 둔 딸의 자전적 기록이기도 한 이 소설은 작가의 혼란스러움을 반영하듯 일인칭과 이인칭·삼인칭이 혼재되었고, 사건의 기록들이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등장하며, 삽화와 사진·그림 등 시각적 자료들이 텍스트의 중요한 일부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작가가 쓴 시가 묘사의 일부를 대체하기도 하고 그에 덧붙여진 날짜가 수감번호처럼 뜬금없게 만들기도 한다.

 

가정환경조사서 사건이 있은 후 작가는 엄마와 함께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진주로 가서 감옥에 있던 아버지를 면회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2015년 2월, 어른이 된 작가는 다시 비행기에 올라 진주로 향했다. 그렇게 탄생된 소설 <진주>는 작가 자신에 대해서 쓴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의 아버지에 대해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며, 듣고 싶었던 대답이다. 감옥에 있어 부재했던 상태의 아버지가 그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면, 딸이 중학생이 되어 나타난 아버지는 '개인적인 삶'에 충실한 평범한 가장이 아니었다. 작가가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버지의 존재가 건넌방에 상주하면서부터 완전히 사라진 셈이었다. 아버지의 동지였던 엄마가 "이제 그만 불의를 참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그 순간에도 딸은 아버지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누구냐고.

 

안산의 노동자 상담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소식지를 만들던 아버지와 노동 교회가 운영하는 탁아소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엄마. 노동자 자녀들과 함께 컸던 딸은 동요 대신 투쟁가와 민중가요를 불렀고, 경찰을 '짭새'라 부르기도 했다. 추리닝과 슬리퍼 차림으로 딸의 과제물을 들고 학교에 나타났던 아버지를 고개를 돌려 회피했던 딸은, 남편과 떨어져 옷 수선집을 하며 키운 딸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버지에게 가 닿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삶은 그런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려 했다. 그때까지 나는 틈만 나면 내 방 불을 끈 채 죽은듯 잠을 청했고, 화장실 가는 소리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유령처럼 걸어다녔으며, 아버지 어머니가 완전히 잠든 시각에 집에 들어오고서도 또다시 새벽까지 집밖을 배회했고, 아침이면 관성처럼 입속에 밥을 떠넣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안의 누군가가 그러한 삶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그 사람은 내게 진주로 가자고 했다." (p.279)

 

하냥 걸어온 저 시간들이 기억의 끄트머리에 달린 물방울처럼 문득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 물방울이 햇빛에 말라 공기 중으로 스러지거나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기억의 줄기를 타고 아득히 먼 과거를 향해 불안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원시를 향한 아득히 먼 여정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우주처럼 여겨질지라도 우리가 불안을 딛고 나아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결국 그곳에 닿을 수 있다. 작가가 진주로 향했던 것처럼.

 

장혜령의 <진주>를 읽고 나는 군더더기처럼 나의 기억을 덧대려 한다.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술에 의지하여 세상을 살았고, 술에 취하지 않은 시간보다 취한 시간이 더 많았던 사람이다. 세상에 대한 불안을 술을 매개로 하여 잊어보려 한 셈인데, 당신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그것에 대한 울분은 가족을 향한 폭력으로 풀었다. 당신의 습관적인 폭력과 중독 증세는 길게 이어졌던 병원 생활과 함께 끝났지만 가족 모두에게 심어준 그 암담했던 기억들을 다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기억의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불안의 물방울을 보고 있다. 당신이 세상에 없는 지금도.

s*****l 2020.02.07.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진주, 장혜령, 소설 그리고 시
"진주, 장혜령, 소설 그리고 시" 내용보기
진주『진주』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책 표지에는 '진주, 장혜령, 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원고를 한강에게 보냈더니 전화를 걸어와 에세이보다는 소설로 이름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진주』는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될 수 있었다. 책에는 실제 장혜령이 썼던 일기, 글짓기 원고가 실려 있다. 과거를 과거이게 두고 싶지 않았
"진주, 장혜령, 소설 그리고 시" 내용보기

진주

『진주』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책 표지에는 '진주, 장혜령, 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원고를 한강에게 보냈더니 전화를 걸어와 에세이보다는 소설로 이름 붙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진주』는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될 수 있었다. 책에는 실제 장혜령이 썼던 일기, 글짓기 원고가 실려 있다. 과거를 과거이게 두고 싶지 않았던 힘으로 글은 쓰였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아버지를 둔 딸의 시선으로 과거를 현재로 가지고 온다.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진주교도소에 갇혀 있던 아버지. 처음 비행기를 탔던 날은 아버지를 면회하러 간 날이었다. 진주. 긴 여름 방학 동안 무더위를 잊기 위해 생각난 듯이 가본적 있었다. 한때 살았던 서향의 그 집은 해가 늦도록 머물렀다. 여름이 가장 힘들고 겨울은 더욱 힘들었다.

간이 정류소에서 표를 사고 버스에 올랐다. 진교에 들렀다가 진주에 도착했다. 도시 한가운데를 흘러가는 기나긴 강을 보며 땀을 식혔다. 기차를 타고 수목원에 가기도 했다. 심심한 맛의 비빔밥과 사골 국물로 끓인 만둣국을 먹었다. 강변 근처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 신중한 얼굴이 되어 책을 골랐다. 다시 가보면 헌책방은 사라져 있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시 여당 대표의 도지사가 의료원을 폐쇄했고 근처 가게들은 영업이 힘들어졌다.

그런 도시. 무언가 생겨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도시. 예감도 없이 떠난 허수경의 도시. 진주.

장혜령

장혜령은 『진주』를 쓰려 했으나 진주에 다시 가기 전에는 쓸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때처럼 비행기를 타고 진주에 갔다. 낡아가는 도시를 일별하고 돌아와 카페와 작업실을 전전하며 『진주』를 쓸 수 있었다. 도저히 아버지,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는 쓸 수 없었다. 세상이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외쳤던 당신에게 어린 딸은 소실되었으나 기억이라는 힘으로 붙들어 맨 편지 한 통을 기어이 써 보낸다.

아버지가 민주화운동을 하며 경찰에게 쫓기는 동안 어머니는 옷 수선집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일을 했다. 딸은 부재한 아버지의 안위를 일기장에 표현한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직접적인 위로는 피하고 어린 학생에게 필요 하리라 예상되는 무심한 내일의 다짐을 적어 놓는다. 지금까지 후일담 문학은 당사자의 시선과 묘사에 의해 쓰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임무. 손에 든 계란이 남아 있지 않을 때의 참담함. 실패한 혁명의 기록으로 말이다.

정의를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자책하는 이야기는 1인칭인 '나'에 의한 개인의 서사였다. 『진주』는 다르다. 세상의 변화를 갈망했고 민주주의 실현에 투사했던 고투기가 아니다. '나'를 '당신'이라는 2인칭으로 바꿔 부름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었던 서사였다. 경험의 당사자인 '나'를 '당신'의 자리에 옮겨 놓아야 말해질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나'는 동네에서 버림받은 개를 돌보고 경시대회 준비를 하고 학급임원으로 수학 문제 풀이를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성실한 아이 장혜령이다.

광주에서 무고한 사람이 죽어가고 다시 군인이 대통령이 되고 학생들이 거리에서 쓰러질 때, '당신'은 노동을 연구하고 '나'는 생활을 산다. 아버지의 직업, 학력, 나이를 묻는 가정 환경 조사서를 반 아이들 앞에 낭독할 때, 너희 아버지는 무엇에 봉사하니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이야기부터 쓰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작고 느린 목소리로 말하는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오래 방치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소설

소설이라는 갈래로 묶어 둘 수 없는 『진주』는 읽는 당신이 누구이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결코 끝나지 않는 산문시로. 부정할 수 없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에세이로. 색다른 구성을 시도한 실험적 소설로.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지만 미래는 봉인해 놓은 어린 소녀의 일기장으로. 사랑을 말하기 위해 사랑이 아닌 것들을 쓰면서 사랑을 찾아가는 기행문으로, 나는 읽었다.

『진주』는 소설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과거를 품고 있는 소녀는 쓸 수 있는 일 이외에는 없었다.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누가 보든 일기장에는 자신의 생활을 숨기지 않았다. 어떤 일기에는 선생님이 아무런 코멘트도 적어놓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하다는 글씨체로 아버지의 오늘을 불안한 시기를 지나는 한국이라는 현실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일기를 쓰던 어린아이는 글을 쓰고 싶어 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만난 어둠보다 더 어두운 사람들. 가장 가까운 이야기부터 시작하라는 선생의 말을 잊지 않았다. 숨겨 두고 밀어두었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면회가 끝나고 혼자 남았을 차가운 감방에서의 아버지의 하루를 추측하며, 『진주』는 시작된다. '나'를 말하기 위해 '당신'이라는 객관적인 인칭이 필요했다. 비밀이 많던 '나'는 끊임없이 말하기 충동에 시달린다. 비로소 아버지를 '당신'으로 부르기로 결정하자 비밀의 상자가 열린다.




그리고 시

『진주』는 장혜령의 등단 시들에 의해 발화된다. 출소한 아버지와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으로 돌아간다. 문학은 회귀와 번복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돌아가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 자책과 후회를 하며 과거를 번복하려 애쓰다가도 진실을 마주 보게 한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이상하지,
세입자가 관리인에게, 그리고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

불 꺼진 독방의 내부는
누군가 두고 간
볼펜 잉크처럼 캄캄하다는 거,
의도 없이도 흐른다는 거

처음 타본 비행기와
어깨가 기울어진 한 남자의 뒷모습

그의 휘파람을
존경한다고 교도소장은 말했다
크고 두터운 손으로, 아버지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 바람은 불어옵니까

진주식당의 여자는 국수 대신
빨래를 솥에 넣었고
...

(장혜령, 2017년 문학동네신인상 시 「이방인」中에서)

역사는 개인의 개별 서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후일담 문학 안에서는 당사자의 증언과 서술이 중요했고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와 그녀들에게는 가족이 있었을 텐데. 딸과 아들이 부인과 남편이. 누구도 당사자가 아닌 가족의 일상을 문학 안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장혜령은 『진주』를 통해 후일담 안에서도 주인공이 아닌 조연의 서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동료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작게 만들어 숨기고 여차하면 삼킬 준비를 하는 그에게는 가족이 있었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딸은 우습게도 공집합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빛은 잘 들어옵니까. 아버지를 만나 건넸던 질문은 우습게도 빛과 바람의 안부였다. 『진주』는 그러므로 시가 된다. 한때의 청춘과 신념을 배신한 채 사장과 정치인, 공무원이 된 동료들의 부정과 불의를 봐야 했던 아버지에게 딸이 보내는 시다. 용서와 화해라는 돼도 앉는 위로가 아니다. 투쟁했으나 이제는 손에 아무것도 쥘 수 없는 허약한 자신의 오늘을 감내해야 하는 한 인간의 시간을 관측한 기록이다.

세계가/ 조금 전진한 것 같았습니다(장혜령, 「폴림니아 성시」中에서)라고 장혜령은 시의 마지막 연을 마무리한다. 불안이 희망으로 부정이 낙관으로 바뀌는 장면을 연출하며 한 세계의 문을 닫고 탈출한다. 문을 열면 다른 문이 계속해서 나오던 끔찍한 과거를 가진 '당신'에게 문을 열면 빛과 바람, 흰 새가 존재하는 세계를 '딸'은 만들어준다. 폐인이 되지 않아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동료 밑에서 일을 배우고 부정을 눈 감지 않을 수 있는 아버지여서 장혜령은 '문학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진주』는 모든 것의 문학이다. 



s*****m 2020.01.19.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진주
"진주" 내용보기
1년 전에 구매해서 다 읽기는 했으나, 내가 소화하기에는 마냥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만 한가득인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만나고 좋아서 출간작을 눈여겨 보던 차에 만난 작품이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갔던 장소가 진주였다고, 한때 아버지가 수감되었던 그곳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을 어린 주인공. 운동가
"진주" 내용보기

 

1년 전에 구매해서 다 읽기는 했으나,

내가 소화하기에는 마냥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이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만 한가득인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만나고 좋아서 출간작을 눈여겨 보던 차에 만난 작품이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갔던 장소가 진주였다고,

한때 아버지가 수감되었던 그곳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을 어린 주인공.

운동가 아버지의 딸이 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이라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쓰는 사람이 되어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하는 딸의 마음을 감히 읽고 싶었으나,

아직 나에게는 잘 읽히지 않은 마음이었다. 애써 노력하고 거듭 다시 읽어야 그 마음 언저리에 닿을까 싶기도 하다.

어린 딸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바느질 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한곳에 모여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된다.

 

솔직히 지금 소화하기에는 어렵지만 언제나 다시 만나고 다시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싶은 소설이다.

 

n******i 2021.01.2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내용보기
어떤 아버지를 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그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진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진주를 읽는 도중에도, 다 읽은 뒤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기분이 들었다.그런데 책을 덮고 말들이 다 어딘가로 숨어 자신을 찾아달라고 숨박꼭질을 시작했다.인덱싱 한 곳들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읽는 도중에는 선명하던 책의 소리가 희미했다.알 것 같던 마음이 숨어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내용보기

 

 

어떤 아버지를 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그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

진주는 그런 이야기였다.

진주를 읽는 도중에도, 다 읽은 뒤에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말들이 다 어딘가로 숨어 자신을 찾아달라고 숨박꼭질을 시작했다.

인덱싱 한 곳들로 다시 돌아가 보았다. 읽는 도중에는 선명하던 책의 소리가 희미했다.

알 것 같던 마음이 숨어버린 마음이 되었다. 다시 찾아달라는 마음이 되었다.

되풀이되는 악몽 속에서도 기어이 살아가고야 마는 사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오직 그것을 잊으려 애쓰는 사람. 거듭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럴수록 그것을 선명히 되새길 수밖에 없는 사람. 그에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없지 않습니다. 도처에 있습니다.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나는 여기 살아 있습니다. 나는 여기 있습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있습니다. 그는 시간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공집합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수의 세계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p17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알았는데, 읽으니 여러 사람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책 속을 걸어다니며, 화자의 목소리 그리고 또 다른 화자의 목소리,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들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들려왔고 목소리들을 따라가며 시대의 많은 것들을 보았다.

알 수 없는 것, 알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 그러나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읽는 것,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는 것, 그로부터 바로 사유가 확장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p21

마음에 질문이 떠오르면, 그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그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답이 될 때까지, 충분히 풀려 나올 때까지 마음에 자리를 잡고 공간을 만든다.

산다는 건 뭘까. 이 삶이 주어진 이유와 내가 사는 이유를 생각한다.

오랫동안 원인과 이유에 매달리는 삶이었다.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해 생각하고 원인을 따져 제거하면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 나아가지 못했다. 과거에 매달리는 삶이었다.

이미 내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했던 나날들이었다. 오랜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며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진주에서도 과거의 나와 만났다. 나를 만나고, 내가 몰랐던 시대의 모습과

내가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삶과 사람을 만났다.

민주화운동과 그 시대, 운동가 사람들, 그리고 그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내 시야 밖으로 확장되어 시대를 넓게 바라볼 수 있었다.

칠판에 판서하는 선생님의 분필 소리를 듣다가,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창문 너머를 바라볼 때면, 나무와 나는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연한 흙색의 몸을 바라보아습니다. 그러곤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속으로 발음해보았습니다. 그것은 나무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p79

책이나 영화를 통해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면, 마치 원래는 없었던 것이 생겨난 것 같은, 생소한 기분에 사로 잡힌다.

어떻게 잊고 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아주 사소한 기억들이 잠에서 깨어나 지금의 나와 눈을 맞춘다.

나무에 말을 거는 아이였다. 체육시간이면 운동장 가운데 크게 아름드리 서있는 나무를 꼭 껴안았다.

한아름에 안을 수 없는 나무를 안고 속으로 조용히 말을 걸곤 했다. 나무는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애는 도둑질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일은 자신만의 비밀을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비밀은 어른들도 친구들도 경찰들도 결코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p144

많은 부분에 인덱싱을 했지만 개인적 경험으로 맞닿은 부분을 발췌했다.

이야기는 이어져서 살아나는 것 같다. 읽지 않았다면, 그저 한 줄로 지나갈 굴곡의 시대를 알게 되었다.

-

개별자인 사람과 보편의 시대와 사회는 무엇인가.

시대의 거대한 흐름 안에 개별자는 휩쓸려 매몰되기도 한다.

우리로 살아가며, 개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로 존재하던 사람이 홀로 자신이 되었을 때, 그 마음을 가늠해 보면 아득해진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 오래동안 맘에 품게 될 것 같다.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개인적인 삶 속에 버려진 채 더는 우리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했던 어느 날부터, 서서히 사라져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떠나갔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도저히 이곳에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p172

안다는것은 뭘까. 가족은 모든 것을 서로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서로를 모르는 존재인 것 같다.

나이가 먹어, 부모님이 어린 나를 키우던 그 때의 나이만큼 먹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알고 싶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과거와 기억은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아니, 그 때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지금의 자신이 보고 알게 되는 것일까?

아니다. 그 때 내게 미쳤던 그 일들이 그 때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고,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나를 만든다.

그 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 돌아보며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과거와 기억과 지금의 나는 게속해서 연결되어있다.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질 때, 마치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과 같을 때, 세계는 확장되는 것 같다.

-

진주는 '쓰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 기록해보라고 말을 걸어왔다.

쓰는 것은 여러 색의 실들이 뭉쳐져 있는 어떤 뭉텅이를 풀어내는 일이라고

그러니 쓰면서 풀어지고 해체되며 각자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진주를 읽고 무언가 쓰자 했지만, 그저 뭉텅이 실들 속 한 끄트머리만 겨우 잡은 느낌이다.

이렇게 잡은 실 끝을 놓지 않고 계속 따라가보자.

-

김혜순 시인님의 추천평처럼

진주는 소설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하고, 르포이기도 하며, 누군가의 목소리인 책이다.

 

그 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많은 것들과 만날 수 있다.

어렵지 않다. 읽는 즐거움이 충분한 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길 바란다. :)

 

k****r 2020.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진주
"진주" 내용보기
운동가 아버지의 딸이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말하는 여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어떤 항쟁들과 텍스트들과 인물들이 얽혀서 상호텍스트성을 얻어야, 그것들이 말하는 여자의 배아가 되는가? 그 여자가 되어버린 텍스트들은 어떻게 다중 주체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치는가?’를 증거한다.민주화운동은 ‘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학적 사건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이전의 ‘운동’
"진주" 내용보기

운동가 아버지의 딸이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말하는 여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어떤 항쟁들과 텍스트들과 인물들이 얽혀서 상호텍스트성을 얻어야, 그것들이 말하는 여자의 배아가 되는가? 그 여자가 되어버린 텍스트들은 어떻게 다중 주체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치는가?’를 증거한다.
민주화운동은 ‘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문학적 사건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이전의 ‘운동’ 소재 소설에서 보였던 작가 자신의 알리바이 찾기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응시와 해체가 있을 뿐. 『진주』는 차학경의 『딕테』처럼 받아쓰기다. 아버지는 감옥의 빛 아래서 그들의 조서를 받아써야만 했고, 딸은 여자의 말을 다시 받아써야만 해서 스스로 말하는 여자가 되었다. 이 소설은 혁명이 문학에 도착하려면, ‘딸’이라는 여성적 존재의 글쓰기가 필수적으로 요청되었음을 너무나 아름답게 증거한다. 딸의 글은 몽타주와 신택스syntax, 삽입텍스트, 서사의 탈영토화로 혁명한다.
아름답고, 담백하며, 다층적인 서사다. 허구가 아니다. 후일담 문학이 아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의 르포이고, 지금의 시이고, 지금의 신화다. 이들의 다장르, 다매체, 혼합 언어 텍스트다. 이 소설은 작고, 개인적인 나와 엄마의 바느질 이야기가 제일 크고 광대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나는 이제까지 우리나라 질곡의 시간을 이렇게 아름답게, 천진하게, 여성스럽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응전의 방식이 되도록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m*******o 2020.0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