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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자본시리즈 여덟 번째 책 [자본의 꿈 기계의 꿈]은 마르크스 [자본] 1권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중 마지막 장인 제13장 ‘기계와 대공업’ 읽기이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의 증대로 생겨난다. 노동생산력이 증대하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노동일 중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바꾼다. 노동생산력을 증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작업방식의 변화와 기계의 변화가 그것이다. 7권에서 작업방식의 변화로 매뉴팩처 공업에 대해 알아본 저자는, 이번 권에서는 기계의 도입으로 기계를 통한 자본의 증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매뉴팩처가 작업방식의 변화를 통한 생산형태라면 기계제대공업은 노동수단이 도구에서 기계로 바뀐 혁신의 결과이다. 자본의 목표는 자본증식에 있다. 매뉴팩처에서 개별노동자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자본가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인노동자의 출현은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기계괴물의 출현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기계를 도입하는 이유는 생산성 향상으로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려 특별잉여가치를, 노동력의 가치하락으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처럼 기계는 이윤 때문에 도입된다. 만약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노동을 크게 절약해주는 획기적인 기계라 할지라도 생산에 투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기계제로의 전환은 인간의 부품화로 인간이 다른 인간이나 혹은 사물과 하나의 메커니즘을 구성함을 의미한다. 도구가 인간의 도구에서 기계의 도구로 변화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매뉴팩처에서 개별노동자들 전체가 결합된 노동력으로써 하나의 메커니즘을 이룰 때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고 한다.
매뉴팩처의 기술적 토대는 노동의 숙련이었다. 그러나 기계제에서의 숙련은 별 의미가 없으며, 이는 곧 노동의 균등화 혹은 수평화의 경향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매뉴팩처 시스템 안에서의 노동자들도 부분노동을 했지만 기계제대공업에서는 기계의 조수로 전락하여 그런 부분적 의미마저도 사라졌다. 즉 기계시스템의 편제 안에서 노동자는 의식을 가진 부분기계로 전락한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매뉴팩처의 노동자들을 부분노동자라 불렀듯, 기계제대공업의 노동자들을 기계노동자라 불렀다. ‘기계는 노동자를 노동에서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노동의 내용에서 해방’시켰다.
기계제대공업의 메커니즘에서 고려되는 것은 기계적 한계이다. 인간의 한계는 고려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로 인해 사회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노동자에게 미친 일반적인 영향을 마르크스는 세 가지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노동인구의 확대, 노동일 연장, 노동 강도의 강화가 그것이다. 생산성 높은 기계의 도입은 흔히 고용의 감소로 이어지지만 저임금의 아동과 여성을 새로운 노동인구로 편입하면서 자본관계가 개별노동자 자신을 넘어 가정으로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동인구의 확대는 기계의 가동시간을 늘렸고, 이는 부분기계가 된 노동자의 노동일 연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기계의 속도를 높인다는 것은 기계의 움직임에 적절하게 반응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작업강도가 높아짐을 의미했고, 이에 따라 각각의 기계노동에 따른 고유한 질병과 과로사가 생겨 낳다. 이처럼 기계제대공업에서 노동자는 가치착취의 대상 혹은 가치착취의 재료로 작동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계제대공업에서 생산성 높은 기계의 도입은 성인노동자들의 고용감소로 이어졌다. 즉 일자리를 놓고 기계와 노동자가 경쟁함으로써 산업예비군이 양산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나 러다이트(기계파괴)운동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자본관계 그 자체의 발생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러다이트운동은 투쟁의 대상이 노동수단이었다. 마르크스는 러다이트운동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물적 토대인 생산수단의 특정 형태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기계제 공장이 산업전반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는 생산성이 아닌 원료의 구입과 생산물의 판매가 중요해졌고, 이는 식민지 개척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식민주의를 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기계제대공업이 지배적 생산형태로 자리를 잡더라도 매뉴팩처와 가내공업 모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작업장과 기능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구성인원은 여성과 아동, 미숙련노동자로 이루어지고 공장이나 선대상인 등의 주문을 받고 수공업형태로 생산, 납품하는 하청관계로 이어진 것이다. 당연히 노동력의 착취는 보다 강해지지만 저항은 더욱 약해진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즉 대공장의 자본가는 보이는 않는 실을 통해 이들을 지휘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기계화가 생산력을 높인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값싼 노동력에 대한 무한정 착취가 가능한 곳에서는 기계화의 유인이 크지 않다.’ 따라서 법적 규제가 없다면 노동력에 대한 착취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공장법규제가 시작될 당시에도 자본가들은 법을 지키기 어렵다고 했다. 법이 규정한 노동시간으로는 필요한 생산량을 얻을 수 없고, 제품의 특성 혹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극렬하게 저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공장법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자 그 순간부터 가능해지고, 오히려 자본의 집적이 가속화되었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들이다. 오늘날 법을 통한 사회적 규제에 대해 자본가들 혹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의 목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자본 안에는 가치증식의 내적충동을 제어할 아무런 장치가 없기 때문에 외부규제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 이해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계제시대에 제정된 공장법은 사회가 생산과정의 자연발생적 형태에 가한 최초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반작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공장법에서 읽어낸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보건조항에서 잔혹한 자본의 정신을 읽었다면, 교육조항에서는 아동 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인 의무교육에서 미래를 향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자본의 꿈이 곧 기계의 꿈은 아니며 기계를 앞세워 자본가가 하려던 혁명을 아주 다른 방법, 즉 기계와 노동자의 연대를 통해 뒤집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에 대해 살펴본 저자는 다음 권에서 잉여가치생산의 의미와 임금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마르크스 [자본] 1-1권(강신준 역/도서출판 길)이 끝나고, [자본] 1-2권이 시작된다. 그런데 [자본] 1-2권은 절판이 아니라 품절이다. 그것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언제 다시 출간되려는지 아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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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이 어렵다는 이유는 직접 읽어보니 정말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참 재밌는 책이라는 사실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책을 섭렵해나가다 보면 종종 느끼는 일이긴 하지만, <자본론>만큼 안목을 확 넓혀주는 책은 이제껏 읽지 못했다. '경제'란 학문에 아둔했던 내가 경제뉴스와 경제이슈에 관심으리 쏟고 어줍잖게나마 이해하며 보고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자본론>을 사알짝 들여다본 덕분이었다. 아무튼 '고병권의 <자본론>'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여타의 마르크스 관련 책들을 섭렵해나갈 것을 다짐한다. 마르크스만큼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참 많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이곳 예스에서는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지만 '페이스북'에서는 꽤나 다양한 반응들이 나와서 참 즐겁다.
어쨌든 벌써 8권이다. 12권이 전부라고 저자가 밝혔고, 현재 10권까지 출간이 되었으니 완독도 멀지 않았다. 이번 8권에서는 '기계제 생산'이 자본가에게 얼마만큼의 이윤을 남겨 주었는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기계에게 내몰려 거리로 떠밀린 노동자의 설움까지 살펴 볼 수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도 바로 이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읽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바로 '인공지능'에 의한 노동자들의 대량실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산업혁명 초기에 '대량실직'된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종에서 더 많은 구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도 초기에는 큰 혼란을 겪게 되겠지만 더 다양한 직종이 생겨서 훨씬 더 많은 구직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2차 산업혁명'에서 기계가 대거 도입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 벌어진 노동자의 대량실직 사태가 수습되고 새로운 직종인 '서비스업'으로 대체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동안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종이 나오기도 전에 굶어죽었다는 사실 말이다. 한편, 제조업 분야를 '기계'가 차지하니 '사람'은 서비스업 분야에 종사하게 된 것과 현재의 서비스업을 '인공지능'이 차지하고 나면 '사람'은 어느 분야에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벌 수 있겠느냔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이 '노동의 종말'인데, 노동을 할 수 없는 노동자의 소득은 누가 보장할 것이며,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상품'을 소비할 사람이 없어진 마당에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냔 말이다.
그 때문에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것과 같은 대안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이조차 어느 한 나라가 시행을 한다고 해서 잘 될 턱이 없고, 초기에 도입한 나라일수록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해야만 서로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인 까닭에 혀내 여러 나라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관망하고 있는 시점이다. 허나 절대 오해해선 안 될 것이 '기본 소득 지급'과 같은 일이 과거 '공산주의 국가체제'로 회귀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망한 가장 큰 이유는 '독재'가 성행하고, '감시'가 횡행하는 등 정치적인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물론 공산주의 경제이론도 무능하긴 마찬가지였다. 계획적으로 통제되어 '개인의 의욕'을 말살해버린 경제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자 그대로 주저 앉았으며, 냉전시대의 폐쇄성이 공산주의의 파멸을 더욱 앞당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산주의의 망령을 우리가 다실 불러올 까닭은 절대로 없다. 그 때문에 '기본 소득 지급'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모든 이들의 경제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체 소득의 일부'를 보충해주어 '소비'를 촉진시키는 정책이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 때문에 전세계적으로도 기본소득의 금액은 20~3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민이 그 정도 금액을 일률적으로 꾸준히 소비해준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한 오해는 다음에도 이야기할 기회가 많은테니, 이쯤에서 끝내고, 이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련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기계 도입'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자본론>에서도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기계제 생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기계제 생산'속에서 노동자들의 희망도 엿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계는 등장과 함께 노동자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말았다. 물론 '기계'가 노동자를 죽인 것은 아니다. 한낱 도구(수단)에 불과한 기계가 노동자를 학살한다는 상상은 쉽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기계'속에 자본가의 속성이 담기게 되자 '자본가로 변신한 기계'는 노동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자본가의 속성'이란 다름 아닌 '이윤 추구'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자본을 구분하며, 막대한 이윤은 '불변자본(도구)'가 아닌 '가변자본(노동자)'에서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엄청난 생산량을 뿜어내는 기계가 등장하자 '불변자본'인 기계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이라는 점을 자본가들이 알아챈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자본가도 '초기 비용'이 엄청나게 드는 기계를 함부로 들여오기 힘든 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초기에는 '기계'를 도입하기보다는 노동자의 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계'는 느리지만 아주 확실하게 '노동자의 몫'을 대신하며 노동자를 공장에서 쫓아내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는 '숙련공'들이 설자리를 빼앗아버린 셈이다.
스미스의 '분업'은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 비록 '노동의 가치'를 하락시키기는 했지만, 노동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고, 늘어난 생산량만큼 숙달된 '반복작업'으로 노동의 가치가 변신을 하면서 수많은 '숙련공'들이 배출된 것이다. 하나의 상품이 완성되기까지 노동자의 영혼이라도 담을 것 같았던 '수공업'에서 영혼을 빼앗겨버리고 단순반복 작업만 남아 '노동의 가치'를 찾아볼 수 없게 만든 기괴한 괴물 노동자(외형이 변해버린, 이를 테면 '망치질'만 전문적으로 하다보면 '망치질의 달인'이 되는 것처럼 특정 공정에만 특화된 노동자)를 만들어버렸지만, 우리는 그들을 '숙련공'이라고 부르며 대단한 능력자로 대접해주었다. 허나 '기계'의 등장으로 숙련공은 설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작업은 모두 '기계의 몫'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남은 일자리는 그런 기계를 조작할 여성이나 아동 노동자 한 명이면 족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더욱더 단순한 반복작업만 수행하는 노동자만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미숙련공'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숙련공이 미숙련공보다 못한 대접을 받게 되자 '러다이트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다가 대유행이 되고 말았다. 허나 부서진 기계를 대신해서 숙련공들이 공장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된 '최신 기계'가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며 망가진 기계를 대신하곤 하였다. 이렇게 일자리를 일어버린 노동자들은 더욱더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허나 자본가는 더욱더 많은 '이윤'을 챙길 뿐이었다. 이미 밝혔지만 자본가들은 결코 '자선사업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노동자들의 복지와 같은 일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마치 '양계장 주인'이 암탉들의 건강을 위해서 달걀생산량을 줄여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밤에도 LED 조명을 비추며 암탉들에게 달걀을 생산하라고 독려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렇게 혹사를 당하다 '평균수명'도 채우지 못한 암탉이 죽으면 '배터리(구멍이 숭숭 뚫린 3층짜리 양계 닭장)' 문을 열고 죽은 암탉을 대신할 새 암탉을 넣어주는 것이 전부다. 평생 달걀만 생산하다 숨을 거둔 영웅적인 암탉의 희생에 대한 묵념 따윈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이윤 추구'만 가득한 현장이다. 기계제 생산을 고집하는 자본가들의 속성이 이렇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기계'가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해방시켜줄 혁명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밤낮없이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를 대신해서 일을 해줄 기계가 '노동 해방'의 희망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노동에서 해방된 노동자들은 안락한 삶을 살며 얻게 된 '여유'로 수준 높은 삶을 위해 교육도 받고 즐거운 삶을 위해 여가생활도 즐기며 온가족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기계'의 잘못일까? 아니다. 아무런 의식도 없는 '기계'가 무슨 잘못이란 말이냐. 기계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자본가'들이 못된 탓이다. 이들의 '이윤 추구' 욕구가 기계에 투영되는 순간 기계는 노동자를 학살시키듯 대량해고와 척박한 노동환경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행동'으로 무엇을 해야만 할까? 결국 마르크스는 "모든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공산주의 선언>을 하고 말았지만, 글쎄..그보다는 더 효과적인 방법도 있었겠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가재는 게편'인 정책담당자들의 자본가 편들기가 극에 달하면서 다른 방도를 모색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정치경제학자라는 사람들도 허무맹랑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노동자가 설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했으니...딴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을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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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자본 시리즈 여덟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자본을 읽고야 말리라, 시간이 더 난다면 하이예크와 케인즈를 나란히 놓고, 일단은 아담스미스와 리카도부터 공부하고야 말리라 라고 생각해왔지만, 너무나 기약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병권 선생님의 이 책으로 인해 비로소 자본을 출퇴근길에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항상 야근에 시달리는 저같은 사람에겐 눈물겹도록 감사한 일입니다 ㅠㅠ 한번에 정주행 하려고 아직 읽고있진 않지만, 언제 한번 휴가와 연차 모아서 몰아서 공부해볼 계획입니다. 좋은 기회 주시는 고병권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