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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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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장소가 되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점점 더 이 길을 걷기로 했다는, 걷고 있다는, 그리고 걸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다녀온 사람도 있고 다녀 온 이후 몇 차례 더 다녀왔고 또 가기 위해서 계획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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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장소가 되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점점 더 이 길을 걷기로 했다는, 걷고 있다는, 그리고 걸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다녀온 사람도 있고 다녀 온 이후 몇 차례 더 다녀왔고 또 가기 위해서 계획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려 800여 km를 걷게 만드는 것일까? 게다가 이들 중에는 최초 이 길이 생겨난 의미인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일반인들의 걷기가 더 많을텐데 아마도 이 점이 가장 궁금했던것 같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깨닫게 될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선택했던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라는 책을 말이다.

 

 

사실 이 길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본 여행채널에서 재방송되고 있었던 <세계테마기행>에서였다. 마지막 편에서 소개된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여러 차례 국내외 여러 사람들이 펴낸 책을 통해서 더욱 궁금해졌고 개인적으로도 걷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랬기에 도보 여행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이 책의 저자가 펼쳐내는 산티아고 순레자의 길이 궁금했다. 저자는 많은 순례자들의 기록이 그러하듯, 자신이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 어떤 경로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고 또 거기에서 좀더 나아가 순례자들이 자신이 가져 온 물건들을 태운다는 '세상의 끝'이라는 상징적인 표지석이 있는 피니스테레 곶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모습, 때로는 나에게 등을 보이며 먼저 걷고 있는 순레자의 뒷모습, 아직은 조용한 순례길의 풍경,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에 대한 이야기 등을 풀어낸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끌었던것은 순례길에서 만나게 되는 평화롭다 못해 고요해 보이는 시골 풍경(전경)과 아직 하늘에 별이 떠있을것 같은 새벽 시간의 순례길 풍경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건 아니지만 밤을 새면서 걷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새벽에 일찍 출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새벽이 주는 묘한 분위기는 이국적인 풍경과 합쳐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인적이 드문 시간 길 위를 걷는 것이 무섭거나 하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이, 이 정작 이 길을 걸은 사람보다 책 밖에서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내가 더 생기는 건 왜일까? 그러면서 동시에 나 역시도 걸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던 책이며 어느 때에 이 마음을 꼭 실행에 옮겨보고 싶다는 내 생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싶은 그런 이야기를 만났던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g*****s 2020.01.1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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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 Routes of Santiago de Compostela in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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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어진 틈새로 어쩌면 추락했을 것이다." p14하여 추락하지 않기 위해 걷는 것을 선택한 저자의 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롯이 걷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 그것도 홀로. 묵묵히 버텨내는 삶. 나는 걸을 수 없다는(뭐, 휠체어를 탄다는 것 역시 나름 걷는 것이지만) 그러한 고행의 짜릿함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굳이 길 위에서만 걷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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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어진 틈새로 어쩌면 추락했을 것이다." p14


하여 추락하지 않기 위해 걷는 것을 선택한 저자의 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오롯이 걷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 그것도 홀로. 묵묵히 버텨내는 삶. 나는 걸을 수 없다는(뭐, 휠체어를 탄다는 것 역시 나름 걷는 것이지만) 그러한 고행의 짜릿함을 알 수 없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굳이 길 위에서만 걷는 것은 아니기에, 저자가 말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것', 그리고 '내 걸음걸이 속도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 인생이란 길 위에서도 같을 것이다.


분명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므로.




"모험이라면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걷고 싶은 곳을 걷고 싶었다. 망설여서 후회하느니, 결정했다면 바로 떠나야 한다고 내 속의 내가 외쳤다.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다행히 내게 그만한 용기가 남아 있었다." p28


하지만 저자와는 다르게 내게는 그만한 용기는 애초에 탑재되지 않았던 듯하다. 제기랄스럽게도. 비단 순례가 아니더라도 갈망하는 일이 있다 해도 이후의 일들이 염려스러워 줄곧 다른 이유를 찾아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사표는 여전히 가슴에만 있다.


순례란 무엇일까? 걸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묻다가도 생각을 위해 걷는 것은 아니라는 대답에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할까?' 아니면 '해야 할까?' 발바닥은 고사하고 사이사이 물집이 터지고 무릎이 시큰거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걸어야 하는 이유가,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걷는다는 행위를 잃은 지금의 나는 가늠하기 더 힘겹다.




"호리호리한 키에 괴나리봇짐처럼 짐이 가볍다. 훌쩍 날아가는 것만 같다. 사는 데에 그리 많은 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짐들. 최소의 것들. 그래야 저렇게 훌훌 날 듯 걸을 수 있을 테니깐." p160


산다는 건 가벼워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막을 수 없기도 하다. 굳이 날 듯 빠르게 걸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묵직하게 눌리듯 천천히 걸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대답과 함께 인생은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데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만든다. 그러는 한편 순례자의 길에 동행하지 못하는 질투가 일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도 골고타를 오를 땐 가볍진 않았을 테니까라는 치기 어린 변명이 불쑥 솟았다.


순례를 시작할 때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최대의 무게로 시작하지만 걷는 동안 버릴 수 있는 것들과 생각들을 조금씩 버리는 일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될 때가 돼서야 가볍게 된다는 깨달음 얻는다. 그건 살면서 처음부터 무겁지 않게 시작하는 게 필요함을 깨닫는 일일지도 모른다.


"When can I meet ‘me’? Is this possible? 나는 언제 '나'를 만나게 될까? 그게 가능하긴 해?”라는 자신과의 조우를 바라지만 끊임없는 잡념과 상념은 점점 지치게 되고 결국 그 또한 순례가 된다.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졌고 그 시간들이 나를 과묵하게 만들었다." p290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왜?'라는 질문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처럼 책장을 따라 넘나들었다.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이 터져도 그들은 왜 꾸역꾸역 다시 신발 속으로 고통스러운 발을 욱여넣고 걷는 것일까? 왜? 길 위에 짙게 늘어지는 외로움에도 덜어낼 친구를 만들지 않으려는 걸까? 도대체 왜?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에 답답증을 느끼면서도 왜 읽고 있을까? 그렇게 우린 그저 순례길을 함께 걷는다.




이 책은 단순히 '길'을 걷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외로움, 스치는 인연, 스스로부터의 고독, 결국 타인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닫는다. 900km의 순례길을 내 일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걷고 있다.




c********u 2020.01.1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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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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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자의 로망, 산티아고 순례길.나 또한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겠노라 하는 생각에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용을 그냥 지나치지못하고이번에도 열어보게 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인생이란 저 멀리 저 지평선 너머 더 먼 곳까지 나아가려는 욕망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욕망을 실현시키면 시킬수록 또 다른 욕망이 생기니,인생이란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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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자의 로망, 산티아고 순례길.

나 또한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겠노라 하는 생각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용을 그냥 지나치지못하고

이번에도 열어보게 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인생이란 저 멀리 저 지평선 너머 더 먼 곳까지 나아가려는 욕망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욕망을 실현시키면 시킬수록 또 다른 욕망이 생기니,

인생이란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위의 여정이 아닐까.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위의 여정일지라도 괜찮다.

하루라는 시간이 있고 그곳에 내가 걸을 거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

특별한 나날을 원하지만 당장 오늘하루를 그냥 보내는 일이 흔해지곤한다.

아마 나이가 들 수록 세상이 주는 무기력감이 쌓여 그러지않나싶다.

행복은 생각보다 멀리있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마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선택하다보면 언젠간 하고싶은 일을 하고있지 않을까.

우리모두 각자의 비밀스러운 목적지를 하나씩 가지고 태어나니까.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슬픔을 일부러 모른 척해서 살아가는 방법과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애도하는 방법.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선택의 갈림길을 꾸준히 마주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중 슬픔에있어서 나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다.

어느 것이 정답이라곤 말할 수 없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선택이든 주변보다는 본인에게 더 신경써주길.

그러한 선택을 해주길.

혼자 걸으면 혼자 쉬고 싶을 때 쉬고 내 발걸음 속도에 맞춰서 갈 수 있잖아.

시간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목적지에는 도착하기 마련이야.

그래서 나는 혼자걷기로 했어.

각자의 삶이 다르듯, 각자의 시간도 타이밍도 다르다.

누군가는 남들보다 이른 시점에 무언가를 이뤄낼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남들보다 늦은 시점에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는것이다.

각자의 시간이 다르니 너무 조급해하지말았으면.

올레, 부엔 카미노!

안녕, 즐거운 순례길이 되길!

g*****y 2020.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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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나 :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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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적당히 이루었고, 적당히 포기한 채 살아갈 나이에 저자는 34일간의 순례길 여정을 떠납니다.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인 그녀는 일상을 지내다가 작은 '틈'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틈이 그녀를 간지럽히면서 훌쩍, 떠나야 했다고 그녀는 밝히고 있습니다.마흔. 적당히 이루었고, 적당히 포기한 채 살아갈 나이. 책임져야 할 것과 책임에서 벗어나고픈 것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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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적당히 이루었고, 적당히 포기한 채 살아갈 나이에 저자는 34일간의 순례길 여정을 떠납니다.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인 그녀는 일상을 지내다가 작은 '틈'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틈이 그녀를 간지럽히면서 훌쩍, 떠나야 했다고 그녀는 밝히고 있습니다.


마흔. 적당히 이루었고, 적당히 포기한 채 살아갈 나이. 책임져야 할 것과 책임에서 벗어나고픈 것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칠 나이. 불혹이란 말은 틀렸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억지로 무엇인가를 움켜쥔 채 흔들리지 않기를 갈망했다. 때로는 이를 악물고, 밀려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며 적당한 자리를 잡기 위해 체제에 순응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틈'을 발견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그 틈이 나를 간지럽히면서 뭔가를 터트리기 위해 점점 커져갔다. 훌쩍, 떠나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어진 틈새로 어쩌면 추락했을 것이다. ... 결론적으로는 무척 잘한 일이었다. 그 틈에서 느꼈던 폭발직전의 간지러움은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나의 순례길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길이었으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p. 13-14)


그렇게 그녀는 길을 나섭니다. 이 여정의 이전에 그녀는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였고, 평소에도 걷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도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이 길위에 오른 이유에 대해서 그녀는 극적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저 걷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작은 틈의 발견으로부터 이어진 이 여정에서 뭔가 인생의 큰 것을 바라는 마음이 그녀 안에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우선은 그저 걷고 싶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걷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손에 잡힐지는 모르겠으나, 그 막연함 그 자체가 그녀를 길위에 세웠습니다.


카미노를 걷다 보면 으레 왜 걷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도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묻곤 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데에는 극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걷고 싶었을 뿐이다. 뭔가를 더 바라는 솔직한 마음도 있을 수 있다. 나를 추동하는 그 힘이, 내가 내보이기 싫은 그 무엇이 무의식에 있을 거라고. 걷다 보면, 그러니까 걸으면서 내가 '나'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윤곽이 잡히겠지 싶었다. 그 막연함이 좋았다. (p. 45)


누구나 그렇듯 여행의 길 위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만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익숙한 길, 익숙한 풍경,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스스로 고립시켜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땅을 걷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혼자를 추구하고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기를 기대하였던 그 여정의 시작에서 시간이 흐를 수록 그녀는 아이러니 하게도 혼자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외로움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에 끊임없이 사람을 갈구한다. 결코 사람이 빈 가슴을 다 채워 줄 수 없기에 허전할 뿐이다. 반면 고독은 '나'와의 대화 속에서 발생한다. 나를 향한 성찰이 길수록 내면은 윤택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 혼자 있어서 고통스러운가, 아니면 즐거운가. (p. 53)


길 위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을 찾고자, 혹은 다른 여타의 이유들로 같은 땅을 내딛는 동료 순례자들과의 필연적인 만남을 합니다. 같은 땅을 공유하고 걸어가면서 물 한잔을 나눠마시고, 밥 한끼를 함께 하면서 서로의 인생과 영혼을 나눕니다.


그것은 한 끼 식사 때문이었다. '밥'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다. 과장되게 말하면 밥을 위해 살고 죽을 수도 있다. 그것을 나눈다는 것은 친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더군다가 순례자들의 밥의 의미는 더 심오하다. 사랑(영혼)의 밥이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사랑(영혼)을 나눈다는 것이다.

나는 좀 더 진중하게 밥을 많이 먹어야 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위해서, 건강한 걸음을 위해서, 몸과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서.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식욕이 돌지 않았다. 이러다가 주저 앉는 거 아니야? 불안이 슬금슬금 기어 왔다. 에이, 그럴 수는 없어! 당분간 '밥'에 '무조건' 집중하자. 밥을 많이 먹어야(건강해야) 밥(사랑)을 더 자주 나눌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잡념을 마무리했다. (p. 86)


그 가운데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친절을 받고 친절을 베풀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서 혼자 시작한 여정에 누군가의 작은 도움과 친절들로 그 틈을 메워 갑니다.


"산티아고까지 완주하게 된다면 혼자만의 힘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내가 내 발로 걷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잖아. 맥스와 걸으면서도 너는 도움을 받았을 거야. 맥스도 마찬가지야. 너와 동행해서 외롭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길 위에서는 만남도 이별도 아무 대가 없이 다가오니까. 또한 아무 대가 없이 베푼 인정과 여러 응원이 있으니까. 이런 힘들이 모여서 완주를 해낼 수 있는 거야.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이지. 그러나 나는 대가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첫 번째 완주를 했을 때 프랑스 노부부가 나를 도와줬어. 그때 지갑을 분실했거든. 내게 50유로를 선뜻 내주었어. 며칠간 알베르게를 사용하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어. 네가 내가 고마움을 느낀다면 노부부의 도움을 이제야 갚을 수 있어서야. 그래서 나도 네가 고마워."


"길을 걸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을 때 도와줄 수 있어. 그게 가장 기본이야. 이미 너는 깨달았지?" (p. 150-151)


길위의 여정들을 써내려감에 있어서 저는 이 책이 다른 여행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행의 시작 부터 끝까지 저자가 길 위에서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을 채워나가는 것은 여타 여행에세이와 비슷할 수 있겠으나, 저자의 원래 배경인 소설가와 문학전공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몰라도 저자가 보는 풍경을 묘사하고 길위에서 만난 친구들의 만남들을 묘사하는 글 들이 마치 소설속에서 풍경과 주인공들을 묘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소설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소설가가 사소하게는 나무의 나이테, 주인공의 방 풍경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 처럼 소설의 풍경을 묘사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여행에세이를 읽었을 때는 친구가 여행기를 이야기 해주듯이 잘 듣는 느낌들을 받았는데, 저자의 글은 마치 내가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주인공인 1인칭 시점에서 주변 풍경과 주변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내가 저자의 눈을 통해 주인공이 되어 순례길을 걷고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친구들을 만난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의 여행의 일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삶이 된 듯한 그 느낌이 퍽 좋습니다.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퍽 좋습니다.


인생이란 저 멀리 저 지평선 너머 더 먼 곳까지 나아가려는 욕망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욕망을 실현시키면 시킬수록 또 다른 욕망이 생기니, 인생이란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위의 여정이 아닐까. 신기루만 보다가 끝나는 길 위의 여정일지라도 괜찮다. 하루라는 시간이 있고 그곳에 내가 걸을 거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 어느새 걷는 그 자체를 나는 즐기고 있었다. 늘 현재진행형으로 말이다. (p. 119)


그래서 길위를 걸으면서 계속 되었던 저자의 발과 몸의 고통을 보고 있자면 저도 제 발이 아픈듯 마음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계속 걸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계속 걷게 하였을까요? 그녀는 쌩쌩한 삶을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고통일지라도, 나는 나이기 때문에 말이죠.


올라오면 반드시 내려가야 할 이치. 아프면 언젠가는 나을 이치. 떠나면 다시 돌아가야 할 이치. 요요처럼 생각들을 먼 곳에 던졌다가 다시 끌어왔다가 또 던졌다. 솜씨가 좋지 않아 이마를 치기도 했지만 그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p. 261)


그리고 혼자 시작된 여정에서 길 위를 걸으면서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여정이 다시 혼자 여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저자는 많이 성장하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를 찾을거야! 혼자 해낼거야!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을것이야! 라고 외치는 듯 혼자 꿋꿋이 걸어가다가 저자는 길 위의 친구들을 만나 예기치 못한 배려, 친절, 영혼의 만남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스스로를 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다시 혼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꿋꿋하게 자신의 고독과 다시 마주하며 걸어갑니다. 혼자에서 함께로, 그리고 다시 혼자로 돌아오며 끝난 그녀의 여정에서 그녀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그런데, 저는 기적의 길 위에 있는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거죠?"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걷는 기적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아닐까요? 그 기적을 더 이상 체험할 수 없는... 하지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 바로 느낄 수 없지만 그 기적이 시간이 지나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서 알 수 있을 테니까. 기적이라는 것은 아주 평범한 것이니까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 일을, 실은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용기를 이 길에서 당신이 얻은 것이니까." (p. 297-298)


이제는 바깥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대신 마음의 풍경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말하는 듯했다. ... 사는데에 그리 많은 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짐들. 최소의 것들. 그래야 저렇게 훌훌 날 듯 걸을 수 있을 테니깐. (p. 160)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읽는 저는, 저자의 여행기에 너무 빠져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책을 덮고 라면이 땡겼습니다. 책에는 라면을 먹고 싶다 던지 이런 말이 나오지는 않는데 만약 제가 저 길 위에 있었다면 라면이 제일 먹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했나봅니다. 저자와 함께 진하게 여행했나봅니다.


(걷기 동료 유리의 말 중에서)

"나는 저 언덕에서 나를 용서하고 싶어. 용기가 없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한 나, 때로는 비열하고 나약하고 게으른 나, 결정을 했으면서도 자꾸 망설이는 나를 말이야. 허약한 나를 버리고 싶어." (p. 72)


https://blog.naver.com/sak0815/221772878887

















5****5 2020.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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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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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그들은 왜 그 길을 걸을까요.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떠오르네요.작은 애벌레 한 마리가 삶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한 사람의 기록이에요.아직 걸어본 적 없는 길이라서 궁금했어요. 다들 왜 그 길을 걷는 건지... 그 길에는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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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 길을 걸을까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떠오르네요.

작은 애벌레 한 마리가 삶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한 사람의 기록이에요.

아직 걸어본 적 없는 길이라서 궁금했어요. 다들 왜 그 길을 걷는 건지... 그 길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건지.


"사람들은 묻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곳에 다녀와서 어떤 것이 변했는지.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해 대는 질문이지만

나는 발바닥 피부가 벗겨져서 걷는 고통 속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단지 걷는 한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12p)


솔직한 답변인 것 같아요.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거쳐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에 이르는 900여 킬로미터의 기나긴 길이에요.

배낭을 짊어지고 묵묵히 길을 걷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No pain, no gain!

고통을 스스로 자청했기에 순례자들은 고통까지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232p)

저한테는 이 문장이 가장 와닿았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 사진보다 저자의 발 사진에 눈길이 갔어요. 물집이 터져 빨간 살이 드러난 발바닥.

보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지는 저 발로 어떻게 참고 걸었을까요.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심한 통증은 모든 걸 잊게 만들죠. 오로지 이 통증만 사라지길 바라게 돼요. 굳은 의지가 없다면 통증을 핑계로 언제라도 포기할 것 같아요.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이 있다면 차라리 통증을 감내하며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신기한 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방식인 것 같아요. 당연히 배낭을 짊어지고 끝까지 걷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어떤 이들은 일부 구간을 버스로 이동하기도 하고, 무거운 배낭은 다음에 머물 알베르게에 보내놓고 가볍게 걷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걷다가 몸에 무리가 왔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죠. 그런데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경우는 자동차를 타고 와서 순례자들을 위한 도장만 받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도장은 알베르게(스페인 말로 순례자들이 묵는 저렴한 숙소)뿐 아니라 성당이나 바(간이식당) 등에서 찍을 수 있고, 이러한 흔적이 목적지에서 완주 증서를 받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고 해요. 

직접 걷지도 않은 순례길의 완주 증서라니!

이래서 세상은 넓고 사는 방식은 다양한 것 같아요. 무엇이 중요한지는 저마다 다른 거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아요. 누구든지 진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남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스스로 속일 수는 없잖아요. 자신마저 속이는 삶은 빈 껍데기일 뿐이죠.

누가 뭐래도 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삶이라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걸어보지 못했지만 고통까지 기꺼이 즐길 준비가 된 순례자의 마음은 배우고 싶어요. 


"부엔 카미노 Buen Camino : 즐거운 순례길 되세요! "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a*****7 2020.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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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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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크게 오해할 뻔 했다. 제목이나 책표지에서 풍겨지는 분위기가 여행자의 이야기임이 분명해보였다. 표지 주인공을 보고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저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저자소개를 보고 '헉!'했다. 나는 어쩜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을 이런 저런 핑계로 스스로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1년 전 <같이 걸을까>라는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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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크게 오해할 뻔 했다. 제목이나 책표지에서 풍겨지는 분위기가 여행자의 이야기임이 분명해보였다. 표지 주인공을 보고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저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텐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저자소개를 보고 '헉!'했다. 나는 어쩜 스스로 갈 수 있는 길을 이런 저런 핑계로 스스로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1년 전 <같이 걸을까>라는 예능프로그램이 떠올랐다. GOD 멤버 모두가 출연한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순례길을 티비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척 컸다. 매주 빠지지 않고 챙겨보면서 그 시간만큼은 나도 한 명의 자유로운 순례자가 되어 그 길을 함께하는 기분을 느꼈다. 저자의 뛰어난 글솜씨 덕분인지, 이미 <같이 걸을까> 시청을 통해 순례길을 봤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글을 읽으면서 그 장면과 분위기를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재미있고 더욱 생동감있게 느껴졌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은 한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차곡 차곡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때로는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진을 보며 '와~~~'하는 탄성이 터지기도 하고, 물집 잡힌 저자의 발을 보며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신음하며 읽은 책이다.

 

나조차도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랄까. 나는 언제부터 낯선 사람을 적대시하게 되었을까. 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 유독 한국인은 무표정으로 낯선 사람을 눈에 띄게 경계하곤 한단다. 저자는 그런 이들을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이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개방적으로 변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그와 같은 믿음이 생겼다. 혼자있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지만, 한 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혼자 오롯이 그 길을 완주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안다. 저자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동행자들이 단지 운이 좋아서 만나게 되었다기보다는 내가 가도 언제든 그들과 비슷한 동행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함께 어울려사는 우리 인생인데 여지껏 난 그 방법을 온 몸으로 거부해왔다.

 

니콜라, 스펜서, 맥스, 데이비드, 프란체스코, 연석, 소리 등등... 내가 기억하는 동행자만 해도 10명이 족히 넘는다. 이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함께 걷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헤어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예상치못한 만남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내겐 예상하지 못한 아는 이의 만남이 더없이 즐겁고 반가웠다. 초창기 걷기 시작하면서 만났던 익숙한 얼굴들을 점점 하반기로 가면서 더이상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것 또한 순례길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아쉬움이었다.

 

내가 아직 많이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의미로 어리다는 게 아니라 미성숙하다는 사실을 어렵게 인정한다. 나는 허리도 아프고 손발 다한증도 무척 심하고 내성적이라 순례길은 절대 걷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내가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순례길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이제는 혼자 있고 싶다고, 제발 날 좀 내버려두라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을 내치지는 말아야겠다.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이정도인데 실제로 순례길을 걸으면 얼마나 대단한 것을 배우게 될까?

20대에 <연금술사>라는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순례길.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순례길이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덕분에 점점 나의 길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h****1 2020.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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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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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면서부터 순례자의 길을 꼭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실상은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시간보다는 나와의 싸움이 필요하고 체력이 필요한 길인것을 알기에..?마흔이 넘어 그것도 중순에 접어들수록 더이상 늦어지기 전에 출발하고 싶은마음이 있어서일까..?이 책을 읽으면서 가고 싶다, 부럽다, 멋지다 라는 감탄을 하면서 한장 한장을 넘기며 하루 하루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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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면서부터 순례자의 길을 꼭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실상은 아직 엄두를 못내고 있다..

?

시간보다는 나와의 싸움이 필요하고 체력이 필요한 길인것을 알기에..

?

마흔이 넘어 그것도 중순에 접어들수록 더이상 늦어지기 전에 출발하고 싶은마음이 있어서일까..

?

이 책을 읽으면서 가고 싶다, 부럽다, 멋지다 라는 감탄을 하면서 한장 한장을 넘기며 하루 하루를

함께 지내다 온듯하다..

?

내가 가야할 길 이기에 누구나 해외에 나가게 되면 어리둥절 헤매게될까 노심초사 걱정에 싸여 출발을 겁내 하는데 작가님의 체험으로 쌓여 있는 책 덕분에 아주 많은 도움을 받은것 같다

?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작년 암과의 싸움에서도 이겨냈듯 오롯이 나혼자만의 시간으로 채워보고 싶다

?

제2의 삶을 더 멋지게 자신있게 살아 낼 수 있도록 큰 힘을 얻어 올 것 같다

?

차노휘 작가님의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용기라고.

그 용기는 돈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중에서 -
w*******7 2020.01.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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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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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열풍이 불었다. 몸의 건강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이내 마음을 보듬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껄이기 시작했다. 말처럼 실천이 쉬우면 참 좋을 텐데, 언제나 난무하는 말에 취하기 바빴을 뿐이다.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에 이끌렸던 것도 같은 일환이었다. 도처에 널린 게 길인데 굳이 저 먼 곳까지 가야 하나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곳이어야만 한다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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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열풍이 불었다. 몸의 건강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이내 마음을 보듬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껄이기 시작했다. 말처럼 실천이 쉬우면 참 좋을 텐데, 언제나 난무하는 말에 취하기 바빴을 뿐이다.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에 이끌렸던 것도 같은 일환이었다. 도처에 널린 게 길인데 굳이 저 먼 곳까지 가야 하나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곳이어야만 한다는 고집도 일었다.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또 한 권의 책이 나왔으므로 기꺼이 읽었다. 

나이가 들수록 도전이 두려워진다.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의 확보가 가능하듯 도전을 위해서는 지금껏 이룬 일부를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흔 즈음이면 안정적인 직장, 단란한 가족, 어느 것도 쉬이 내려놓을 수 없는 나이다. 상대적으로 떠남이 수월한 직업을 가진 저자이므로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앞서 그는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번에 걷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은 모든 게 낯설다는 점에서 앞선 장소들과 달랐다. 한국인이 유독 많이 찾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순간에 저자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모두 난생 처음 듣는 외계어와도 같았고, 하루 이틀 즈음은 괜찮을지 모를 음식 또한 어느 순간부터는 걸림돌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꼬박 한 달을 걸었다. 최대한 짐을 줄인다 하여도 더는 덜어낼 수 없는 필수품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루 종일 어꺠를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를 견디며 걷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메기가 무섭게 앞이나 뒤로 고꾸라질 것만 같은 아찔함이 절로 상상됐다. 책에서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그토록 긴 거리를 끊임없이 걷다 보면 자연스레 발은 혹사당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살짝 박혀도 욱신거린다. 물집이 잡혔다 터지는 일은 일상이요, 아예 벌건 속살이 드러났는데도 멈추지는 못하는 상황은 어느 누구도 달갑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아파트 천지인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경의 연속이었다. 순례길 인근에도 도시는 존재할 터이나 일단 숨막히는 우리의 도시와는 분위기가 다른 듯했다. 이왕이면 한적한 곳에 위치한 알베르게를 택하는 저자의 취향 덕에 그마저도 빗겨간 경우가 많았다. 바람 부는 대로 일렁이는 밀밭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길을 걷게 된 이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상념에 젖어들었다. 이제껏 살아온 삶의 궤적이 그러하듯, 길 위에 선 사람들은 너무도 다양한 태도를 보였다. 순식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제 모든 걸 내어줄 것마냥 친근감을 과시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화라도 난 건 아닌지 싶을 정도로 앙다문 입을 하고 제 갈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도 있었다. 같이 그리고 따로. 우연히 마주한 인연은 정이 채 들기도 전에 헤어짐을 경험했다. 내 걸음이 빨라서 혹은 느려서, 상대에게 보폭을 맞추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상대를 외면했다. 절반은 함께였으나 절반은 혼자였다. 어느 쪽이 더 힘들었을까. 몸의 고됨과 마음의 고됨의 무게를 겨루는 게 어리석음을 잘 알면서도 난 저자가 오롯이 견디어 냈을 시간들을 상상하며 묻고 또 물었다.

나에게 이제껏 도전이라 부를 만한 일은 없었다. 모르는 걸 두려워했으며 어떤 땐 경멸하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익숙한 것들 사이에 안주하는 내 자신을 정당하다 여기고자 안간힘을 썼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메말랐으나 유독 빛나는 눈을 한 산티아고 길 위의 순례자들은 나로서는 결코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 그들이 누린 것은 자유였고, 난 실체 모를 고통을 느꼈다. 표피 어디에도 상처는 나지 않았건만 그랬다.

이달의 사락 q*****2 2020.01.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