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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모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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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겨울의 알프스산맥을 넘었다는 고대의 명장 '한니발'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전쟁이었고 정확한 전략전술은 모를 수도 있다. 한니발이 어느 나라 사람이었는지도 모를 수도 있다. 나만 해도 한때는 그가 로마인인줄 알았었다. 어차피 우리 나라의 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의 학식이 없거나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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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겨울의 알프스산맥을 넘었다는 고대의 명장 '한니발'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전쟁이었고 정확한 전략전술은 모를 수도 있다. 한니발이 어느 나라 사람이었는지도 모를 수도 있다. 나만 해도 한때는 그가 로마인인줄 알았었다. 어차피 우리 나라의 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의 학식이 없거나 독서에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니발'의 이름은 누구나 안다. 최근 영화[양들의 침묵] 후속작 [한니발]이 개봉했을 때도 나는 그 '한니발'이 고대 명장 '한니발'인 줄 알았다. 즉, 한니발은 너무도 유명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기록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반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아는 사람은 한니발의 팬들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이다. 그것은 왜일까? 스키피오의 행적이 한니발만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극적인 연출력이 부족해서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있었던 것일까? 한니발보다 못생겼을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인이었던 것일까? 이 엉뚱한 의문점에 대해 리델 하트는 명확하게 답을 전해준다. 기본적으로 타이틀 방어전을 보더라도, 도전자에게 더 구미가 당기는 법이다. 한니발은 로마를 침략했고 스키피오는 그것을 막았다. 만약 스키피오의 정치적 야심이 좀더 이기적이고 무모하고 탐욕스러웠다면, 그래서 그가 한참 전선을 날리고 국민들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고 있을 그 즈음, 아예 쿠데타를 일으켜 로마를 한입에 먹으려 했다면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로 돌아가든 상관없이 오늘날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한니발이나 시저보다 더 유명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에게도 물론 욕심은 있었다. 다만 그것이 '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의 조국의 안정이었을 뿐이다.-물론 정부가 그에게 비협조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나는 고대 영웅들 중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가장 좋아한다. 젊은 날의 멋진 에피소드 영향도 있겠지만 그것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의 일생 전부를 들여다보면 아마 마찬가지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사람은 어디 한 군데 부족하거나 모난 모습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물론 스키피오라고 부족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특출나지 않기 때문에 후대의 역사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다 잘났지만 이거 하나는 되게 못났어.....바로 이 부분이야 말로 실제적으로 아무 관련도 없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어필될 수 있는 영웅의 요소인지도 모른다. 한니발이 스키피오보다 더 사랑받는 이유는 역사가들의 입김도 좌우하겠거니와, 종래에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전쟁에서 패한 영웅에게는 무한한 동정이 몰린다. 반면 스키피오가 전쟁에서는 모두 이기고 뛰어난 외교술 척척 발휘하고도 기억의 음지로 밀려난 이유는 아마도 추저분한 정치판의 암투에서 밀려났기 때문은 아닐까? 그의 말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판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더럽고 치사해서(뭐, 현재 정치판을 내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차라리 당시의 고참병들 모으고 모아 로마를 확 쳐버리고 딴 나라로 망명하지.....싶은 생각이 든다. 스키피오가 전술가로서는 한니발에게 양보했으나 정치가로서는 한니발을 능가했다고 말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의견을 나는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다. 정치가로서의 그는 언제나 위태로워 보인다. 다 외부의 적들 때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위태로왔고 밀려났다. 같은 민족이지만 그를 괄시하고 모함하던 이들에게 복수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말했던 스키피오의 정치적 역량이란 아마도 전시에 발휘되었던 외교능력과 위기대처방안이었던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어느 각도에서 조명해 보아도 그가 고대의 위대한 장군이었다는 사실과 그와 같은 캐릭터는 역사상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만일 내게 단 한 번의 역사속의 여행이 허락된다면 그가 살던 기원전의 세계로 가보고 싶다. 말은 전혀 안 통하겠지만.....

[인상깊은구절]
스키피오가 지리적으로 로마제국의 창시자라면, 정치적인 그의 목표는 지중해 민족의 흡수가 아니라 통제였다. 그는 전통적인 로마의 정책을 확장시켰다. 그의 목표는 중앙집권적이고 전제적인 제국이 아니라 지도국과 함께 하는 연방이었다. 이 안에서 로마는 정치적,상업적 우세를 차지할 것이고, 이를 통해 군림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현대에 스키피오에 대한 연구가 각별하고 중요한 관심을 끌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시저의 성취는 로마의 내리막과 멸망의 길을 닦았다. 스키피오의 성취는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하면서도 독립적인 자치권을 유지하는 활기찬 국가들이 세계 공동체가 되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후임자들이 조금이라도 스키피오의 통찰력과 지혜를 가졌다면, 로마제국은 근대 대영제국과 유사한 길을 갔을 것이고, 로마의 주변에 그들의 심장부를 보호하는 반독립적이고 건강한 완충적인 국가들의 원을 형성하여 야만족들의 침략은 격퇴되고, 역사의 방향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며, 역사의 진보는 1천 년 동안의 기나긴 잠으로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t****y 2001.03.0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