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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는 1860년에 태어나 1904년에 생을 마친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그는 애드거 알렌 포우,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카멜레온], [우수], [키스], [사랑에 대하여], [귀여운 여인], [약혼녀], [적],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 [도망꾼], [왕진중에 생긴 일]이 실려있다. 나는 그 중에 5편을 읽었고 그 내용과 감상을 1차로 여기에 남긴다.
[카멜레온]은 권력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알아서 복종하는 카멜레온 같은 권력의 하수인인 경감 오추멜로프의 에피소드다. 광장을 지나다가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과 날카로운 개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 속으로 간 경감 오추멜로프는 진위를 파악하고자 한다. 한 남자가 개에게 물려 손가락에 피가 흐른다. 미친 개일 거라고 판단한 경감은 당장 그 개의 주인을 찾아내 조서를 꾸미라고 명한다. 그런데 군중 속에서 그 개는 인근에 사는 지갈로프 장군댁의 개라는 말이 들린다. 그러자 경감은 개에게 손가락을 물린 남자가 잘못이라며 앞의 판단을 물린다. 그런데 다시 그 개는 장군의 개가 아니라는 말이 들리고 경감은 자신의 판단을 번복한다. 대중의 다양한 외침 속에서 권력자를 의식한 경감이 과연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우수]는 '누구에게 내 슬픔을 이야기하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눈송이가 날리는 어스름한 저녁, 1주일 전에 아들이 죽은 이오나는 말이 끄는 썰매를 모는 늙은 마부다. 손님을 썰매에 태우고 가는 중에 그는 자기 아들이 1주일 전에 얼마나 괴로워하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이 없다. 일을 마치고 잠을 청하다가 마구간에 있는 말에게로 간 그는 귀리값도 벌지 못해 건초를 먹여야 하는 자기 말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된 가난한 생계형 노인의 이야기가 대한민국 노인의 빈곤과 고독사라는 현실과 연결되며 애처롭게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키스]는 포병 장교 여섯 명이 하룻밤 머물던 마을에서 지주인 폰 라베크의 저택에 초대받아 갔다가 포병 장교 리아보비치에게 일어난 이야기다. 그는 저택에서 알지 못하는 여인에게서 우연히 키스를 받은 후 그 여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만나고 싶은 욕망으로 괴로워한다. 몇 달이 지나고 다시 인근 마을에 머물게 된 리아보비치는 얼굴도 모르는 그 여인을 만나고 싶은 바람으로 저택 가까이에 갔다가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달그림자를 바라보며 문득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키가 작고 등이 굽은 소심한 청년의 내적 콤플렉스가 빚어내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에 공감할 수 있다.
[귀여운 여인]은 퇴직한 말단 공무원의 딸인 올렌카가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번번이 남편을 잃고 불행해지는 애틋한 여인의 이야기다. 올렌카가 처음 결혼 한 남편 쿠킨은 야외 극장 치볼리의 경영자이자 연출자다. 남편을 도와 티켓을 파는 등 마음을 다해 남편을 사랑한 올렌카지만 경영난으로 허덕이던 남편이 도시에 일을 보러 갔다가 죽고 만다. 석달이 지나 아직도 상복을 입은 그녀는 미사에서 돌아오던 길에 목재상 푸스토발로프의 위로를 받고 가까워진다. 얼마 후 목재상의 부인이 된 올렌카는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며 남편을 닮아간다. 하지만 6년간 그렇게 사이좋던 남편이 감기에 걸려 앓다가 결국 죽고만다. 다시 상복을 입게 된 그녀는 수녀 같은 생활을 하는데 6개월쯤 흐른 뒤 건너방에 혼자 사는 수의관 볼로치카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혼자가 된 올렌카에게 다시 찾아온 그에게는 헤어졌다 결합한 아내와 아들 사샤가 있다. 그들 가족에게 자기 집의 넓은 안쪽을 내준 올렌카는 사춘기 소년 사샤를 돌보며 그럭저럭 행복하게 산다. 이 작품은 여성의 사회적 한계로 인하여 남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여인 올렌카를 통해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변신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약자인 카멜레온 같은 여성의 위치를 애틋하게 그렸다.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은 흔히 말하는 불륜이란 이름의 사랑 이야기다. 휴양지 얄타에서 만난 구로프와 안나는 각자의 가정과 괜찮은 집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남다른 사랑과 인생을 꿈꾸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구로프는 대학시절 결혼한 아내와의 사이에 세 남매를 둔 중년이다. 삶에 지쳐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아 보이는 거만한 아내가 싫증난 그는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인생의 재미를 찾는 바람둥이다. 스므살에 결혼한 안나는 결혼과 남편에 대한 환상이 깨진 20초반의 우울한 유부녀다. 하인처럼 굽신거리는 남편에게 핑계를 대고 혼자 얄타에 와 머무는 그녀는 구로프를 만나며 위로와 새로운 사랑을 느낀다. 얼마 후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은 그녀를 잊지 못하고 찾아온 구로프로 인해 다시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며 두 사람만의 사랑을 완성해보려고 하지만 현실 앞에서 망설이며 괴로워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떠오르는 이야기다. 체호프의 실제 연애 경험이 녹아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남녀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무력하게 하는 두 사람의 진지한 사랑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번에 만난 로맹 가리의 <마지막 숨결>을 통해 단편 소설이 지닌 진실하고 내밀한 매력을 알게 됐다. 하지만 로맹 가리의 작품에서는 공감대가 적어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반면에 이번에 독서 모임을 통해 읽게 된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은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백 년 정도의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뛰어난 관찰력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담은 고전의 힘이 아닌가 한다. 이제라도 체호프를 알게 된 나는 좋은 책에 관한 한 행운의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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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현대소설을 아우르는 남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안에 그려진 여성관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최근 만난 체호프(1860-1904)의 단편 소설에는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연민의 시선이 담겨 있다. 모든 남성들이 선망하는 여성상을 그린 [귀여운 여인]에 이어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여행하다가 불륜에 빠지는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을 만나고 출구가 없는 당혹감을 느낀다. 결혼을 앞둔 여성의 초조한 심리를 통해 여성의 자기발견으로 안내하는 [약혼녀]를 읽으면 여성에 대한 우호적인 체호프의 시선이 결국 여성해방에 대한 열망과 암시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혼식이 한 달 남짓 남은 요즈음, 나자는 무슨 까닭인지 무엇인가 막연하고 답답한 어떤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 나자의 마음을 묘사한 부분은 이 소설이 던지는 화두이자 독자의 궁금증을 잡아당기며 원인은 물론 나처럼 성급한 독자로 하여금 결말까지 추측해보게 한다. 사랑이 없는 결혼인가? 사람은 좋은데 여건이 안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자가 너무 소심하고 예민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의식의 신호인 '공포와 불안'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자가 느끼는 막연한 불안의 정체가 뭔지 주의를 기울이며 읽게 된다.
알고 보니 나자에겐 약혼자 외에 뜻밖의 남성이 있다. 열흘 전 모스크바에서 온 사샤라는 남성인데 나자가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의지해 사는 할머니댁에 머무는 낯익은 손님이다. 그는 결혼을 앞둔 나자에게, "... 난 당신의 젊음이 가엾습니다."라고 하거나 "만약 당신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만약에!"라고 말하는 좀 유별난 남자다. 사샤의 그러한 말들이 결국 나자의 마음속 무언가를 흔들어놓았던 거다. 마음의 법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안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남이 뭐라고 말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당신과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신들 대신 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착복하는 겁니다. 과연 이것이 깨끗한 일이고 더럽지 않다는 겁니까?
나자에게 웅변하는 사샤의 말 속엔 노동의 필요성과 계급철폐, 그리고 여성의 주체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약혼자 안드레이가 '나자를 껴안고 그녀의 얼굴, 어깨와 손에 열렬하게 입을 맞추'며, "나의 사랑, 당신은 정녕 아름답습니다."라고 하는 말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열여섯 살부터 스물셋에 이르기까지 결혼을 생각해온 나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샤의 말은 결혼이 자기 인생의 유일한 선택지라고 알고 살아온 시골 아가씨 나자에게 또 다른 인생이 있음을 암시하며 마침내 그녀의 무의식을 건드린다.
... 갑자기 그녀는 어머니가 죽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고,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나자는 지금까지 어머니를 특별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을 뿐, 그저 단순하고 평범하며 불행한 여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나자는 자기 안의 열정을 확신하고 사샤에게 자기를 데리고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나자의 결심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긴 사샤는 다음날 아침 나자와 함께 폭우 속에 마차를 타고 떠난다. 그러면 나자가 사샤를 사랑했던 걸까? 이 부분에서 잠시 나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헷갈렸다. 얼마 후 마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헤어져서 사샤는 자기가 머무는 모스크바로 향하고 나자는 페쩨르부르크로 공부하러 간다.
가서 공부하세요. 그 다음은 운명에 맡기십시오. 당신이 생활을 뒤엎으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중요한 것은 생활을 뒤엎는 일이고 나머지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일 떠나는 거죠?
나자의 대답을 촉구하는 사샤의 말은 작가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나 길들여져온 삶을 모두 버리고 막연한 운명을 향해 떠난다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이고를 막론하고 대단한 각오를 요구한다. 더구나 전통적인 여성상에 사로잡혀있는 여성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는 믿고 의지하는 남편이 정들고 살 만하면 죽자 새로운 남편을 만나 또 다시 새남편의 삶에 적응해야 했고, [개를 데리고 있는 부인]의 안나는 자신을 이해하는 듯한 중년 남성 구로프를 만나고 숨죽이며 울어야했다. [약혼녀]의 나자에 와서야 여성은 자신의 삶을 남성한테 의지하지 않고 가꿀 수 있게 된다. 물론 나자의 새로운 인생에 다리가 되어 준 남성 사샤가 있다. 부디 사샤 같은 남성들이 한국 사회에 많아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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