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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발 디딜 틈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과 신체적 접촉을 피할 수 없다. 이럴 때 최선의 방어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되도록 이면 온 힘을 다해 몸을 움츠려야 한다. 그래야만 밀접한 공간에서 지혜롭게 나를 방어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다보면 가슴이 마구 뛸 만큼 엉망이 되고 만다. 때로는 지옥이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낯선 사람과 밀접한 공간에서 긴장감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단순한 생각으로 스트레스에 따른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사려 깊은 해석을 찾아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숨겨진 차원』에서 ‘공간의 인류학’을 다루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공간은 인간이 자기 외부의 연장물(延長物)을 진화시킨 것이며 이것이 곧 문화라는 것이다. 그는 동물행동학의 연구를 하면서 동물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바다코끼리처럼 서로 몸을 포개며 생활하는 접촉동물이다. 다른 하나는 말처럼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공간이 생겨나는 비접촉동물이다. 비접촉동물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각인된다. 우리 또한 비접촉동물이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경계 사이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곧 ‘프록세믹스(proxemics)’이다. 프록세믹스는 인간이 공간을 구조하고 사용하는 방식에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이 책에서 우리의 관심 사항은 인간관계의 다양한 거리에 있다.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면서도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상대방과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 정도에 따라 4가지 차원의 관계의 거리가 생겨난다. 바로 밀접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그리고 공적인 거리다. 그리고 각 거리마다 가까운 단계와 먼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밀접한 거리(0~46㎝)의 가까운 단계는 서로간의 신체적 접촉의 가능성이 최대한으로 높다. 먼 단계는 손을 뻗어 상대방의 손발을 잡을 수 있는 거리로 신체적 불편함을 느낀다. 가족이나 연인처럼 서로의 친밀도가 가장 높은 관계에서의 거리다. 따라서 가까운 관계가 아닌 이상 이정도 거리로 들어오면 움츠려들고, 긴장하며, 불안해하면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즉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거리이므로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개인적 거리(46㎝~1.2m)는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리다. 가까운 단계는 서로가 상대방의 손발에 닿을 수 있다. 먼 단계는 팔길이 만큼 떨어져 있는 거리다. 친한 친구나 잘 아는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 대화의 간격으로 공식과 비공식의 경계지점이로다. 세 번째, 사회적 거리(1.2m~3.6m)는 지배의 한계로 표시되는 거리다. 가까운 단계는 비개인적인 업무가 행해지며 일상적인 사교모임의 일반적인 거리다. 먼 단계는 “당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좀 물러서시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물러나는 거리다. 사적인 질문이나 스킨십이 허용되지 않아 대화에도 좀 더 형식적인 성격을 띤다. 네 번째, 공적인 거리(3.6m~7.5m)는 개인과 대중의 형식적 접촉하는 거리다. 목소리 외에도 몸짓이나 자세 등 비언어적 의사전달수단이 과장되거나 증폭된다. 가까운 단계는 다른 사람의 존재가 들어오지만 먼 단계는 그들과의 접촉이 급격히 사라진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소스의 “사람을 대할 때에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고 했다. 인간관계의 다양한 거리를 생각하면서 출근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에 접근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문화는 시각적이거나 언어적이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공간적이면서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숨겨진 차원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출근길에서 지옥을 피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문화다. 프록세믹스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과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경계가 아니라 관계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