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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아돼 형님이 책을 또 쓰셨습니다. 세상은 가끔 저자를 언론인으로, 실패한 정치 후보자로만 기억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연히 목사의 아들이고 안수 받은 전도사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활동에 가려져 있지만 저자의 글을 읽어보면 종교인으로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 혐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혐오가 심각한게 종교적 배경에서 튀어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간단한 문제도 종교가 배경이 되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심각한 문제도 종교가 있으면 넘어갑니다. 예수님은 원죄에 대한 구원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이 박히셨지만 지금 세상에는 그 십자가에 약자를 못 박으려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자는 그들이 근거로 드는 성경 구절을 다시 성경구절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보통 이런 경우는 대부분 구약입니다. 잘 들어보면 예수를 믿으라 하지만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 구약 이야기만 잔뜩 늘여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신약. 새로운 약속으로 구약을 무효화 했습니다. 원죄를 날려버리고 새로운 죄에 대해서 속죄하라고 하는데.. 왜 자꾸 구약을 들고와 옥죄려는 것일까요? 기독교인은 예수를 닮으려하고 신약을 믿으면 될 일인데 말이지요. 이런 종교의 기본은 선민 의식입니다. 자기들은 선택 받은 자이고 오직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과연 세상을 창조한 전지전능한 조물주가 그들만을 이뻐하리라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직 믿는 것만을 기준으로 선택받은 자라는 것은 넌센스라고 봅니다.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십자가형을 받고도 자신을 박해한 이들을 미워하지 않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종교의 외피를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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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리, 성경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렸다. 하지만 그 말씀은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나병환자를 고치고, 과부에게 치유를 주신 예수님이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자고 따르는 것이 교인의 모습이어야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노와 혐오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언론과 미디어의 발달로 더 자주, 더 자극적인 형태로 분노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우리의 편향으로 인해 그 분노는 더 단단해지고 커진다. 그리고 그 분노를 불붙이는 하나의 주체가 목사라는 것이 굉장히 슬프다. 물론 모든 목사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뉴스를 장식하는 목사들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던 목사의 모습,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은 목사의 모든 말을 하나님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지지한다. 어느 자리를 막론하고 가장 무서운 것은 무비판적 수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인들은 성경을 더 여러 각도로 보려고 노력하고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며, 사회 현상들을 주의 깊게 파악해서 예수님의 선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 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생각이 없는 것은 무생물이고 기계와 같다. 그러니 더 공부하고 더 반성해서 한 인간으로서, 또 교인으로서 이 사회를 성장시키는 기독교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