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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가위남이 워낙 강렬해서...
"(스포!) 가위남이 워낙 강렬해서..." 내용보기
(<가위남> 스포도 있음) 프롤로그 격인 치매 환자의 기나긴 독백(70페이지가 넘는다), 이후 본장에서는 현재와 14년 전 과거의 기록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 때문인지 밀도가 조금 떨어지게 읽힌다. <가위남>의 구성 역시 범인과 경찰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 형식이긴 하지만 각각이 워낙 흥미진진하고 같은 시간대와 같은 사건을 다루기에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스포!) 가위남이 워낙 강렬해서..." 내용보기

(<가위남> 스포도 있음)

프롤로그 격인 치매 환자의 기나긴 독백(70페이지가 넘는다), 이후 본장에서는 현재와 14년 전 과거의 기록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 때문인지 밀도가 조금 떨어지게 읽힌다. <가위남>의 구성 역시 범인과 경찰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 형식이긴 하지만 각각이 워낙 흥미진진하고 같은 시간대와 같은 사건을 다루기에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불만부터 얘기하자면, 일단 과거 사건에 영 흥미가 일지 않았다. 미스터리한 복선이나 암시 같은 거 없는 평이한 장면들을 지나 겨우 사건이 벌어지더니 무슨 프랑스어로 된 상징 연출 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트릭 설명으로 사건 해결이라니, 감탄도 카타르시스도 전혀 없었다. 아울러 현재 사건을 재조사하는 탐정의 캐릭터나 활약도 눈여겨볼 만한 게 없었고. 과거의 사건 트릭에 대한 불만도 한몫해 현재의 탐정이 암시한 바대로 그 사건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 제대로 해결해주리라 기대한 게 무색하게도, 결국 이 주인공 탐정은 별 활약 없는 화자에 그치고 만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가위남>에서와 비슷한 이 소설의 주된 트릭을 처음부터 눈치챘다는 점이었다.

(<가위남> 때 나는 서술트릭을 바로 알아차렸다. 오쓰이치 등등으로 훈련된 덕이기도 하지만 성별을 노출하지 않는 문장들에서 가위남이 여자구나, 는 일찌감치 눈치챘고 오히려 경찰의 단정이 못마땅해 그에 대한 불만이 초중반까지 꽤 강했던 편이었다. 경찰들, 프로파일러까지 살인범이 남자라고 생각할 근거라곤 무엇 하나 없는 상태에서 마치 그건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한 서술은 반전을 위한 억지 눈가리기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소설 속 배경은 2000년대 초반이지만 출간 시기는 1999년이라는 데서 좀 누그러지기로 했다. 막연한 짐작이지만 이 시절의 프로파일링 수준을 감안했다는 걸로 넘어가기로.)

아마 일본 독자 그리고 일본어를 잘 아는 외국 독자들에게는 극중에서 미즈키 본인도 말하듯 '마사오미'라는 이름이 불공정한 트릭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나는 마사오미가 남자 이름이란 걸 모르고, 미즈키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에서 다른 인물들과 달리 '또' 성별을 밝히지 않는 서술이 이어지는 걸 보며 이 '날씬한 장발의 골초'가 여자겠구나 생각했더랬다. 모르는 게 독이 됐달까ㅜㅜ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속는 맛'을 또 놓치고 말긴 했는데...... 

그러나 이렇게 불평만 가득 늘어놓은 주제에도 다 읽고 난 뒷맛이나 여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데 이 소설의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잘 표현할 자신은 없지만). 예컨대 조수 아유이의 수기를 읽으며 앞쪽에 배치된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는 동안이라든가, 마지막에 다시 훑어본 치매 환자의 독백이 철저하게 류시로와는 아무 관계 없는 내용이었음을 확인했을 때는 마치 소설 자체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변환되듯 유기적인 변화라도 일으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소설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구체적으로 뭔가 아련하게 떠올리게 된달까. 즉 탐정이 치매에 걸린 류시로를 방문하는 장면들과, 아유이가 치매에 걸린 그 아들이 있는 미즈키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들이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그림이, 내 경우엔 실제 영화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물론 치매에 걸린 부자라는 설정은 작위적인 우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극중 다지마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동의하며 밀어내버리련다.

"일상이라는 단어와 리얼리티라는 단어는 의미가 다르다. 허구여야만 그려낼 수 있는 리얼리티가 있는 법이다. 다지마는 그러한 허구의 리얼리티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쭉 읽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허구의 리얼리티는 훌륭할지라도 <가위남>에서 범인과 의사의 대화라든가 자살 시도법 묘사들처럼 사람을 완전히 빨아들이는 문장들이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점이 개인적인 취향상 아쉽게 느껴지긴 한다. 이 작가에게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했기에. 아마 <가위남>이 한 덩어리의 꽉 찬 '이야기'였다면, <거울 속은 일요일>은 절묘한 균형이 눈을 사로잡는 '오브제' 같은 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적 소양이 부족해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ㅜㅜ 

c******q 2021.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