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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그리기의 즐거운 공모 우리를 둘러싼 수없이 많은 종류의 시간에 대하여 “기억의 수명에 비하면 어떤 생도 기이할 만큼 짧다”
존 버거와 셀축 데미렐이 손을 잡았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는 이들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비평가와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이 사랑한 터키의 삽화가는 과연 어떤 공모를 벌인 걸까요. 2016년 이 두 사람은 각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시간’을 말하기로 합니다. 글이 그림을 이끌거나 그림이 글을 뒤따라가지 않고 ‘시간’이라는 평행선을 함께 걸어간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지켜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한 가지 구분법으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바라보지만, 시간에는 사실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를 갑갑한 사무실 안에 가두어두는 자본의 시간과 순간을 잡아채어 영원을 선사하는 서사의 시간이 같지 않은 것처럼요. 이를 일찍이 알아챈 존 버거는 ‘우리’라는 핵심을 겹겹이 둘러싼 시간을 낱낱이 베어냅니다. 한편 셀축 데미렐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시계 인간 앞에 놓인 갖가지 상황을 만화와 같은 필치로 따라갑니다.
원고에서 “어떤 생도 기이할 만큼 짧다”라던 존 버거는 2017년 책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숨을 곳을 찾는 토끼처럼”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시간을 탐구하던 그의 글쓰기가 우리의 시간 속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마리아 나도티와 셀축 데미렐이 두 번째 공모를 벌입니다. 두 사람은 이내 존 버거가 남긴 글 더미를 파헤치며 셀축의 그림과 어울리는 구절을 하나하나 가려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시작했던 탐구는 어느새 세 사람의 모험이 되어 또 하나의 시간을 만듭니다. 바로 이 책 “몇 시인가요?”를 가로지르는 시간입니다. 책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도 이 책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채 끊임없이 순환하는 수많은 시간을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