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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그의 작품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를 스크린으로 옮긴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회를 보러 갔었다. 나중에 그의 단편 모음집 중에 원작을 찾아 읽어 보고 생각보다 너무 짧은 분량에 놀라움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오히려 감독의 상상력과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했더랬다. 피츠 제럴드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기 전까지 말이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한 기발한 유머와 책의 곳곳에 넘처나는 은유와 상징,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반전이야말로 그를 헤밍웨이와 더불어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꼽는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풀어 낸 미국의 황금기인 1920년대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중, 단편소설집<말괄량이와 철학자들>는 여덟편의 그의 초기작품을 실었다. 제목처럼 그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말괄량이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당당하고 거침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않고 의도적으로 파격을 즐겼다. 춤과 파티는 물론이고 당시 여성에게는 금기시 되었던 술과 담배, 몸매를 드러낸 과감한 옷차림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여성들이다. 자신의 매력을 뽐내며 결혼과 동시에 가정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여성들의 위치와 강요된 현모양처의 역할을 벗어던진 용감한 신여성들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에 이런 말괄량이 신여성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정한 남성들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산업화와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경제성장으로 인해 거리에는 부와 자유가 넘쳐났지만 동시에 상대적인 박탈감과 고독,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전쟁을 겪은 젊은이들은 장래에 대한 불안에 방황하게 되고 피츠 제럴드는 그의 글에 그런 남성들의 심리를 지치있게 녹여냈다. 위트와 풍자를 숨긴 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슬퍼보인다. 인생에 대해 관조적이고 비관적이다.
<델리림플 잘못되다>의 주인공 델리림플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후 고향에서 환영 받는 영웅이 되었지만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채 일자리를 구걸하는 처지가 된다. 전쟁에선 그에게 수많은 훈장을 안겨 준 지성, 상황 파악 능력과 위기 대처 능력은 현실에선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는 이제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린다. 혼란스런 그가 할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지식한 신동 호레이스를 유혹한 댄서 마샤와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돈벌이에 나서지만 부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불운한 한 천재의 이야기<머리와 어깨>는 왠지모를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세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떠올리게 하는 <앞바다의 해적>은 자신을 납치한 거만하고 이기적인 시쳇말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발랄하고 거침없는 아름다운 아가씨 아디타의 이야기다. 그녀야말로 두려움을 모르고 자신감 넘치는 상류계급의 대표적인 신여성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녀에게 돈이 없다면 그래도 그녀는 당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기 아집에 갇혔던 남자가 네 번의 주먹세례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게 되었다는 <주먹 네개>는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한방의 주먹을 통해 순간적으로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을듯 싶지만,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바꿈으로 인해 만족한 삶을 살게 된다. 이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피츠 제럴드의 회의와 성공과 야망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겠다.
현실과 이상, 꿈과 야망, 욕심 그리고 환상이 어우러진 1920년대를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라고 일컬는다. 그 역시 재즈 세대이기에 성장하며 그 모든 좌절과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신세대 여성인 부인과의 이혼과 술과 마약에 빠지기도 했으며 그 시대를 살았던 당사자로서 동시대의 젊음이들과 같은 아픔을 몸소 경험 했다. 그래서인 재즈 선율에 몸을 맡긴채 졸린 듯 휭한 눈을 한 흥청망청 술에 취한 젊은 이들의 모습이 어렵사리 그려진다. 경망스러울 정도로 가볍지만 그 당시 사회풍조와 생활상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를 이해하게 되고, 그의 글을 가슴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들의 모습이 물질문명에 대한 동경과 성공을 향해 줄달음치는 현대인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피츠제럴드의 글이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사랑 받는 게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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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F.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중, 고등학교 필독서로 정해질만큼 널리 알려져있고 많은 사람들이 읽은 작품이지만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은 그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로맨스, 판타지, 희곡 등 여러 장르의 160여 편의 중,단편 소설 중 8편의 이야기가 있는 단편집인 <말괄량이와 철학자들>를 만나보려 합니다.
말이나 행동이 얌전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여자를 의미하는 말괄량이. 의미는 그리 좋지 않지만 우리들은 말괄량이의 이미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목에서 '말괄량이'로 번역한 '플래처'는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날개를 파닥거리는 어린새를 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영국에서 사회에 진출하지 않은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 숨은 의미를 알고 이 책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단순한 말괄량이가 아니라 생기발랄하고 톡톡튀는 인물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여성의 존재는 강자보다는 약자에 속한 경우가 많습니다. 드러내기 보다는 숨어서 지내는 경우가 많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하고 남자들과 동등한 행동을 하는 여자들에게는 그리 곱지 않은 말을 하고 시선을 보냅니다. 그래서인지 책속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지금보다 오래전이지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앞바다의 해적>에서 만나는 아디타의 당당함에 조금은 놀라운 마음입니다. 보수적인 사람의 눈에는 기가 세고 버릇이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고 파남 삼촌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나 칼라일과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더 이상 뒤에 숨어 있는 여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정하는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끝까지 밀고 나갑니다.
"그리고 나에게 용기란 삶에 내려앉는 흐릿한 회색 안개를 헤쳐 나간다는 뜻이에요…… 사람들이나 환경뿐 아니라 삶 자체의 황량함까지도 뛰어넘는 거죠. 삶의 소중함과 덧없는 것들의 가치를 역설한다고나 할까." - 본문 45쪽
시대나 나라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현재의 시간도 아니지만 과거의 다른 나라 젊은들도 그들만의 찬란한 시간속에서 고뇌하며 순수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정이 넘치는 그들을 보며 조금은 당돌하지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에게서 강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살아숨쉬는 많은 인물들을 만나며 우리들도 잠시나마 젊음을 느끼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순수와 열정을 꺼내어 말괄량이의 모습을 하고 철학자를 마주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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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얼마전에만 해도 난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단편을 모아놓은 두권의 책을 통해 그를 만났다.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 여러 단편중의 하나의 제목일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그런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의 이야기속 배경은 1920년대를 주로 나타내고 있어 생소할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젊은사람들의 사랑이야기도 들어있고, 당시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도 들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콧 피츠제럴드 하면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리는 듯 하다. 아쉽게도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다. 곧 만나게 될것이다.
"말괄량이와 철학자들" 속에는 8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한편 한편이 다 재미있고 새로웠다. 그중에서도 인생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한 '머리와 어깨' 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움의 길을 걷던 남자와 여배우와의 만남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삶 속에서 둘의 인생은 서로 바뀌게 된다. 머리 역할을 할것 같던 남자는 곡예사가 되어 공연을 하고, 여배우였던 여자는 글을 쓰게 되어 작가로 성공하게 되는 설정이 우리의 인생도 그럴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 젊은 부부는 자신들을 머리와 어깨라는 별명으로 불렀지만 어느순간 둘의 위치가 바뀌어 있더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 컷글라스 그릇' 이야기 역시 인상적이다. 결혼선물로 받았던 그릇이 야금야금 그녀의 인생을 아프게 만들어가는 개연성이 흥미롭다. 그릇에 베인 딸아이는 패혈증으로 한쪽 손을 잃고 의수를 한채 살아가야 했고, 아들의 사망소식이 적힌 편지를 그릇위에서 찾았을때 마치 그릇이 저주를 주었다는 생각에 그릇을 들고 나가다 넘어져 그릇과 함께 깨어져 버린 한 여자의 인생...
책속의 내용들은 진지하면서도 오랜만에 읽는 단편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양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인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속의 여성들이 모습들이 더할나위 없이 당당하고 주체적이기에 읽으면서도 기분좋아지는 느낌이었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아가씨 말괄량이 (플래퍼로 불리는 1920년대 자유분방하고 젊은 여성을 지칭) 와 철학자로 불리우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지금과도 많이 닮아있는 모습을 느낄수 있고 어느정도 그들의 고뇌와 방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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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라.... 이처럼 안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 말괄량이라 하면 유쾌한 이미지지만 제멋대로이고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여자아이를 뜻하며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이 "삐삐"다. 그런 반명 철학자라고 하면 고뇌와 사색의 대가들이면서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에게는 인생의 고비고비가 화두이며 학문일텐데...이런 단어의 조합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소설을 읽기 전에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소설은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그 스콧 피츠제럴드가 아닌가. 난감했다. 대략-.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읽으면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으므로 다음에 찾게 된 작품은 좀 쉽게 읽혀질 것들을 골라봤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8편의 단편이 수록된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이었다.
일제시대에서 해방기 사이. 자유연애와 신여성이 등장하고 많은 사상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마구마구 쏟아져 나와 혼돈을 주었던 우리네 그 시기처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속에는 그래서 득도 있고 실도 있다. 말괄량이로 대두되는 신여성 플래퍼의 당돌함이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까닭도 그 배경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래서 사색과 고뇌가 한층 더 우울함의 색채를 풍기는 것도 그 이유 속에 담겨져 있다.
재즈의 선율이 클래식과 다르고 팝과 다르지만 그 질척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이 작품 속 이야기나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는 이 시대로, 인물은 인물대로 그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짧은 길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떤 장편 속 인물들보다 애정을 담뿍 쏟으며 읽어낼 수 있었다.
비록 탐한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잠시 그 시간을 살아본 듯, 그들 속에 어우려져 그 배경 속에 녹아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던 소설이 바로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내야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플래퍼처럼?마샤처럼?버니스처럼? 아마 살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지만 상상해보고 싶어질만큼 매력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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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위대한 개츠비』가 극장가에서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계기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방한하기도 했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 영화화 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더이상 놀랍지도 않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까지 관심을 받는 것도 동반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기에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은 의미가 있는 책읽기가 되었다. 솔직히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라고 하면 내 기억으로는 『위대한 개츠비』가 전무후무한 것 같다. 그토록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단 한 작품만 읽다보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작품도 영화로 먼저 알았고, 이 작품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라말도 최근에서야 알았으니 그동안 나는 F. 스콧 피츠제럴드를 너무 등한시하고 살았나 보다.
게다가 이 책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하니 이래저래 나에겐 많은 의미를 선사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시대를 표현한 책은 공감하기에 쉽지가 않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그들의 삶의 토대가 되는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F.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의 미국, 일명 자신이 '재즈 시대'라고 말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감있게 그리고 있다.
총 8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이 책에서는 어떻게 보면 당차지만 세상이 보기엔 너무나 앞서가는 말 그대로 말괄량이 아가씨들이 나온다. 변화하는 시대에 사회가 바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가진 여성이 아닌 진보와 향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그런 모습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말괄량이 아가씨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녀들에 상응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도 그렇지만 부와 자유가 넘쳐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그 부와 자유로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읽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1920년의 '재즈 시대'와 맞물려서 나타나는 달라지고 변화하는 신여성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의 불안과 고민, 방황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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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은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는 평생 동안 로맨스, 판타지, 희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160여편의 중·단편 소설을 발표했는데, 그는 작품을 통해 미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던 '재즈 시대'를 조명했고, '길 잃은 세대'로 일컬어지는 당시 젊은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세심하게 그렸다.
<말괄량이와 철학자들>는 제목에서 보여지는대로 발랄한 말괄량이가 등장하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8개의 단편이 들어있는 책이었다. 처음엔 책 제목 중에 하나가 소설 제목으로 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책 제목에 있는 소설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8개의 단편 속 주인공 아가씨로 등장하면 말괄량이로 그리고 총각들이 등장하면 철학자들로 지칭해 쓰여진 소설이었다.
'앞바다의 해적'에서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대단한 말괄량이 아가씨가 등장하는데, 남자와 함께 당당히 담배를 피우며 남자들 앞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을 즐기고 버릇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 주는 장점이 담력 하나는 끝낸준다는 것이었는데, 땅이나 하늘 어디에 있는 것이든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스무살의 아가씨이다. 그런 아가씨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걸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사랑이다. 여가를 즐기고 있던 그녀의 배에 해적이 올라타게 되고, 처음 만난 남자였지만, 인도의 국왕이 되고 싶다는 그를 따라 갈 생각을 한다. 잘 가다가 배는 세관 감시정에 포획되고 마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디타를 잡기 위한 삼촌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아디타는 귀찮은 삼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마침 해적은 아디타에게 구세주나 다름없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적의 우두머리인 칼라일 역시도 삼촌이 보낸 사람이었다는 사실...
'컷클라스의 그릇'에서는 특별한 사연이 담긴 그릇이 등장한다. 에벌린이 결혼한다고 말한 날 칼튼 캔비라는 젊은이는 에벌린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다. 에벌린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고 텅 비어 있고 속이 쉽게 들여다보이는 그런 선물... 이런 표현을 빌린 선물이 궁금한데 의외로 이 선물은 둘레가 75센티미터가 되어 그릇장에 들어갈 수 없는 커다란 그릇이다. 그 그릇에 에벌린의 딸은 손이 비어 덧난 상처 때문에 패혈증에 걸리게 되고, 결국엔 의수를 달고 살아가게 된다. 그 커다란 그릇은 집에 손님이 왔을 때 남편이 펀치를 만들 그릇으로 쓰기도 한다. 한참이 지난 후 가정부는 자기도 모르게 그 그릇에 편지를 놓아두게 되고, 결국 그녀는 그 그릇을 버리게 된다. 그 남자가 무슨 이유로 그 그릇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여인을 뺏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복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그릇으로 인해 에벌린은 많은 걸 잃어버린다. 여자에게 그릇이란 보관하기 힘들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물건인데, 그 그릇으로 이렇게까지나 큰 일이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진작에 버렸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은 지금과 다른 시대, 다른 배경의 인물들이어서 향수와 동질감을 불러 일으킨다. 작품으로 영원히 포착된 젊음의 모습에서 향수를, 반항하고 방황하는 젊음의 고뇌에서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젊음과 그 젊음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은 피츠제럴드가 탐구한 주제였는데, 그의 작품에는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돈에 대한 갈망과 환상과 환멸이 느껴지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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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작가 피츠제럴드가 그 시대의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해내고 있다. 제목의 말괄량이는 영어 flapper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플래퍼는 1920년대에 주로 나타난 여성상을 의미한다. 전쟁이 끝난 후 불안감으로 ‘현재를 즐기자’라는 토대로 자유연애와 전통 가치관을 거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자유분방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의사표현을 솔직하게 하는 도발적인 여성상을 플래퍼라는 단어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여자주인공들은 실제로 당당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매혹적인 여성들이다. 그 시대상에 나타난 여성상을 소설에 옮겨담아 매력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다. 그 이전의 전통주의 관습에서 탈피하려 애쓰고 남성과 동등해지려 애쓰며 욕구를 발산했던 그 시대의 ‘딸’들은 어머니 세대에게 무책임하고 방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인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보려 했던 그 여인들 덕분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인식이 조금 달라진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미니스커트 열풍이 불 때 치마길이를 재고 남자의 장발을 단속하던 때가 있었다. 1920년대에 개방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이 등장한 것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이런 매력적인 여인상을 소설에 담아낸 것 또한 인상적이다. 소설은 총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바다의 해적’은 앞에서 설명한 플래퍼 여성상을 참 잘 대변하는 여인이다. 그녀는 해적을 만나서도 거리낌이 없고 그를 따라 무인도에 가기도 하고 그곳 절벽에서 거침없이 다이빙을 하며 그 순간을 즐기는 아가씨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높은 바위위로 올라가 다이빙을 즐기는 아가씨라니. 너무 매력적이다. 약간의 팁을 주자면...이 해적은.. 사실 그녀의 삼촌과 짜고 그녀와 연애를 하기 위해 해적인 척 접근한 상류층의 자제분 되시겠다! 로맨틱코미디로 끝나버린 이 단편이 조금 아쉽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그녀가 섹시한 해적을 만나 세계를 무대로 배를 타고 다니길 바랐으니까. 마지막 단편은 ‘주먹네개’이다. 주먹 네 개라니....궁금하지 않는가? 자기세계와 자기 아집에 갇혔던 남자가 네 번의 주먹세례를 받으면서 생각을 일깨운다는 이야기다. 의식이 깨어있고 그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 것은 참 멋지지만... 주먹 한방에 바로 생각이 바뀌는 건...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을수도 있지않나 싶다. 하긴 제목은 flappers and philosophers 이니까. 철학자 남자들을 접한 것인지 모르겠다. ‘위대한 유산’을 재미있게 읽었던 나로서는 작가 피츠제럴드를 만날 기회여서 기대를 했었다. 이 단편들이 작가의 초기 습작들이고 그것을 다듬어서 출간한 것이 아닌가싶다.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고 조금 산만한 느낌을 받았으며 문장 역시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1920년대의 플래퍼..라 불리었던 아가씨와 철학자들로 대변된 남자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