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돌보심을 상세하게 배우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무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요. 누군가의 질문과 전도생활에 자신감을 가지고 행할 수 있게 해 주는 책 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몇번이고 다시 읽어 습득해야할 내용 입니다. 값없이 주셔서 너무 값없이 생각하는 나의 죄악된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며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소그룹을 준비하며 읽었던 책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이라고 하면 듣기만해도 어려울 것 같아 어디서부터 손 대야할지 막막했는데, 이 책은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작정의 범위가 대체 어디까지 인가요?" 와 같이 궁금해 할법한 질문들을 나열하고, 그에 대한 답도 친절하게 달려있어서 정말 유익했다. ![]() 또한 작정과 섭리, 타락 등 어려운 교리들도 쉽게 잘 설명해두어서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의문점이 해결될 수 있었다.
![]()
![]()
![]()
![]()
책의 앞 부분에서 축약된 로드맵 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큰 흐름을 보며 챕터마다 작은 도표를 그려보았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도표를 보며 다시 정리해보고 다음 챕터를 공부하기 전에 복습을 하면서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고, 함께 공부한 친구들도 자신의 방법으로 이러한 표를 다시 정리하며 책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상, 하권을 함께 사면 별책부록으로 로드맵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책의 171쪽 '보충자료'에서는 한 수필을 소개한다. 그 부분은 인간의 타락과 신의 사랑이 어떻게 상충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 "어떤 사람들은 왜 신께서는 우리들을 범죄치 못하도록 붙들어 매지 않는가하고 말한다. 그러나 신의 사랑이 우리들을 목석으로 만들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께서는 백번 우시더라도 우리의 자유를 꺽지는 않으신다. 당신이 채찍을 받고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실지언정 우리들의 자유를 속박하시지는 않는다." 이 부분을 읽고서, 그 전까지는 이해한 듯 하지 못하고 계속 의구심이 들었던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사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피조물을 자신에게 <거역할 수도 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이해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인지를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공부하는 입문용 도서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
|
교회에서 소요리문답반 모임을 진행하기위해 구매했습니다~ 소요리문답 내용이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공동체에서 함께 공부하기에 유익합니다. 특히 '도마의 질문'이 크리스천이라면 한번쯤 궁금해했을법한 내용들로 담겨 함께 보며 나누기에도 좋았습니다~ |
|
교회 공동체 모임 필독서로 구매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궁금한 점들을 짧게 작은 회차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서를 하고 나눔을 통해 서로의 다양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교제함이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
|
개혁주의자들은 신조는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다른 신학활동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경 과 교회 역사가 신조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선언하기를 {마 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증거한다(마 12:34). 이는 곧 사람이 믿 는 것을 고백한다(Credo ergo confiteor)는 말이다. 신앙의 상징으로서의 신 앙고백은 이미 신약교회가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 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 님의 아들}(마 16:15-18 참고)이라고 베드로는 신앙을 고백하였다. 도마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 러한 고백을 기초로 하여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주인이시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성도로 간주하였다. 그 단적인 예로 빌립은 이디오피아의 내시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을 할 때 세례를 베풀어 신자로 인정하였다. 이와같이 성경은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의 규칙화] 또는 [신앙의 상징화]를 하였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세례의 형식(Baptismal formula)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교리화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교훈의 교리화 작업은 성경에 기인하는 것이다.
신앙은 교리화 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교리가 무시되 는 곳에는 언제나 이단 사상이 일어난다. 기독교 교리가 체계화되지 않았던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 마르시온(Marcion), 그리고 몬타누스파 (Montanists)와 같은 이단들이 나타나 교회를 혼동케 하였다. 따라서 교부들 은 이단으로부터 성경적인 신앙을 구별하기 위하여 그들이 믿는 신앙을 교리 화하였다. 예를들면 이레니우스(Irenaeus)는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을 주장 하는 이단들에 대하여 신약과 구약을 강조하였고 이단과 성경적인 신앙을띵 구별하기 위하여 [신앙의 규칙]을 만들었다. 이와같은 과정을 통하여 340년 경에 나타난 신앙고백서가 바로 [사도신경]이다. 신조들은 이와같이 바른 신 앙과 그릇된 신앙을 구별하여 성도들의 신앙 교육, 곧 학습 교육과 세례 교육 에 이정표가 되어왔다.
따라서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서는 곳에서 서 며, 성경이 침묵하는 곳에서 침묵한다}는 신학 원리 아래 교리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만](Sola Scriptura)이 신학의 시초가 되지 만 교리적인 도움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소요리 문답은 중요하다. |
|
신앙고백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고백이 지니고 있는 의미 1) 신앙의 고백은 내가 먼저 주도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 사실은 신앙고백이 혼자 하는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사랑의 고백이며, 찬양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말입니다.
2)신앙고백은 앎을 전제로 합니다. 신앙고백은 맹목적인 고백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고 자신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이 맹목적인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힘써야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영적인 체험을 통해 경험과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노력해야합니다.
3)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셔서 생긴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한 고백이 “혈육을 통해 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은 공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보여 주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계시라고 합니다.
외에도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과 같은 다른 신앙의 고백들도 있습니다. 사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신경은 니케아 신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 때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개신교가 서방교회의 전통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신경에도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들이 빠져 있습니다. 원죄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내용이 없습니다. 또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성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아주 간단하고 대부분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합니다. 그것은 당시 예수님의 신격과 인격에 대한 논쟁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고백은 그 시대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고, 그 시대의 언어로 표현 되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는 내용의 핵심을 아주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는 내용을 쉽게 알려주는 이 소요리 문답은 꼭 필요합니다. |
|
어떤 사람들은 신앙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각자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자신의 언어로 신앙을 고백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교회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는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세 가지 목적을 위해 공동의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1)신앙을 정의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앙은 내용이 없고 막연하고 모호한 종교적 감정이나 만족감으로 변모해 버릴 것입니다.
2)신앙의 규범과 표준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만일 신앙이 경험과 감정 그리고 각자의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게 되면 주관주의의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모호해지고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에 스며들어도 그것을 분별해 낼 수 없게 됩니다. 신앙고백은 각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앙이 올바른지를 검토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어떤 주장이든지 신앙고백에 비추어 검토되어야 합니다.
3)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위한 교육과 가르침을 위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가지거나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신앙고백의 내용을 설명해 줌으로서 그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도록 할 수 있습니다. |
|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 방법에 대해서 혼자 고민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내가 그저 생각없이 읽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성경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배경지식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교회선배를 통해 특강-소요리문답을 추천받았다. 귀여운 그림들과 알기 쉽게 구성된 마인드맵 형태의 내용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