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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나마 제가 읽은 글쓰기 창작 책 중에서는 다소 정직한 편에 속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미로는 물론 스티븐 킹 선생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따라갈 수 없지만 다른 여타의 창작 책처럼 무슨 자기만 아는 법칙이라도 되는 양 늘어놓는 뻔뻔함이 없어서 그나마 나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상당 부분 저자의 에세이 같은 책이었습니다. 내가 소설가를 하다보니까 이런 일들이 있었고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그건 나도 그랬고 저건 잘 모르겠고 뭐 그런 식이에요. 그러니까 본인의 경험담을 쓴 부분은 나름 재미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이런 책들이 얘기하고 있는 똑같은 특징에서 한치의 벗어남도 없어요. 가령 첫 문장이 중요하다, 뭐 그런 거죠. 슬직히 그런 내용은 있죠, 저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지나가는 개로 비유하자면 지나가는 개도 쓸 수 있는 책이니 그다지 상품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책은 아니에요. 만약 하루키가 이런 내용으로 책을 낸다고 해봅시다. 그래도 내용 자체로 상품 가치가 있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 책이 가치가 있는 것은 하루키라는 개인 브랜드 때문에 값을 지불하는 거지, 내용이 별 달라서 지불하는 거는 아니라고 봐요. 그러니 하루키의 글이라면 발로 쓴 글이라도 돈을 주고 사야하는 실정이 된 사태에 관해, 그가 그만큼 자신의 브랜드 네임을 가졌다는 것에 관한 비용이고 그 공든 탑에 대한 지불이지, 그가 쓴 글이라고 해서 전부 책 값에 해당하는 내용을 지니지는 않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아무리 하루키의 팬이라고는 해도 정말 쓰레기 같은 책도 있었으니까요. 단지 하루키이기에 그런 책의 출간이 가능할 수 있었던 수준의 것들. 그러니 하물며 하루키 같은 고가의 개인 브랜드가 아니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책을 낸다는 건 쫌, 개인적으로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도 한 번 말씀드렸지만 저도 한 때 이 블로그의 내용으로 책을 내자는 권유를 꽤 받았습니다. 출판사로만 쳐도 4군데가 넘는 곳에서 제의를 했으니까 적지 않았죠. 그런데 왜 안 냈냐. 뻥 안치고 귀찮아서가 한 90% 정도이고, 나머지 10%가 이제 어떤 개똥 철학 때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지나가는 개도 쓸 수 있는 내용을 가격표를 찍어 파는 건 -소위, 펄프가 아깝느니 하는 느물느물한 비유는 하지 않는다고 해도- 좀 아니라는 생각이 저는 있거든요. 책을 읽은 소감 혹은 리뷰 따위 그게 아무리 재미있어봐야 그게 그거지 지까짓 게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러니 개인 취향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 읽는 분들이야 그러시면 되는 거고 짜증나면 안 읽으면 되는 민주 국가에 존재하는 블로그로써, 날아가는 까마귀도 맘만 내키는 들어와 읽을 수 있는 그 정도가 딱 좋지, 이게 좀 뭔가 남다르다는 유혹에 넘어가서 -가령 좀 웃기게 쓸 줄 안다라든가, 쉽게 쓸 줄 안다라든가, 남다른 시각이나 감수성을 가지고 쓸 줄 안다는 잔재주로- 이따위 걸 책으로 묶어 돈을 받고 판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물론 같은 내용의 리뷰라도 장정일 씨가 쓰고 돈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소설가라는 개인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당연히 그가 쓴 리뷰의 질이 더 낫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도 작정하고 쓰면 제대로 된 리뷰 같은 리뷰 쓸 수 있기 때문에 만약 저도 제대로 쓴다고 하면 장정일의 리뷰보다 품질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다만 그는 소설가, 나는 지나가는 개이기 때문에 책의 출판에 관한 둘의 가치가 다를 뿐인 것이지요. 지식 또한 그가 나보다 많이 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거고, 누가 더 지혜로운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므로 제 생각은 말이죠. 너무 많은 것들이 유료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무슨 소설을 읽고 그 리뷰에 제가 좀 최선을 다해 씁시다, 라고 했더니 그 소설가가 비덧으로 최선을 다해 쓰지 않는 소설가는 없다, 라고 항의하셨습니다. 저는 얌전빼고 아,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라고 마음에도 없는 양보를 하는 타입이 또 아니라서 최선의 기준이 다 다른 거니까요, 하고 밉상 답글을 달았었는데, 여하튼 그러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습니까. 길가 돌맹이에서부터 풀 한포기까지 소중하지 않은 게 없지요.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에 가격을 다 매겨 판다고 하면 오호, 역시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은 소중하니까, 하면서 돈을 지불하시겠습니까? 무가치한 것은 아니나 과도한 가치가 매겨져 세상에 나온 물건들 때문에 진정 가치가 있는 상품들까지 그 속에 묻혀 매몰되는 부분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슨 연애 방법 같은 쓰레기 책들을 가격을 매겨 파는데, 안 사보면 되잖아? 라고 한다면 당연히, 저는 그런 쓰레기 책들 안 사봅니다. 사 볼 사람만 사보면 되지요. 그러나 문제는 몇몇에게만 성경이 되는 그런 이상한 바이블이 서점의 가판대를 차지함으로써 정작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더 가치있는 책들이 뒤로 밀려나는 현상에 대해 저는 지금 말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런 책들은 그냥 니들이 니들 바운더리에서 사고 팔고 하라고, 형 말은 그 말인 거거든. 좋은 자리는 더 좋은 가치가 있는 거에 양보하고 말이지, 응?
얘길 하다보니 어쩌다가 이 책이 참 무가치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다시 정정하자면 이 책은 최근에 읽은 창작 관련 책 중에서는 개중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익하다고는 말씀드릴 수가 없는 게 유익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이런 책이라면 어떤 책이라도 다 담고 있는 내용일 뿐이었다는 거죠. 그러므로 만약 이 책이 가격을 매겨 파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라든가 페이스북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는 게시물이었다면 10만 조회수, 종아효, 엄지 손가락 폭발하며 감사합니다 퍼가요를 아낌없이 남발하는 것에 대찬성이지만 그게 돈을 지불할 만큼의 이 책만의 노하우라든가 가치가 있는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이 책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스티븐 킹의 책을 빼곤 창작을 다룬 책들 대부분이 그렇다는 말이죠.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킹 선생의 책 또한 내용이 특별해서 가치가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킹 선생의 개인 브랜드가 고가이니 그런 가치가 억울하지 않은 거고 실제로 엄청 재미있으니까 책 값이 아깝지 않을 뿐. 한가지 궁금한 건 말이죠. 킹 선생을 빼곤 이상하게, 창작을 가르치는 책의 저자 중에 베스트셀러 작가라든가 -그러니까 책의 내용에 왈왈왈, 멍멍멍, 만 가득 채워도 오빠 멋있어요, 라며 그 이름 하나만으로 구입하게 되는 브랜드 네임을 가진 사람- 혹은 작가라면 누구라도 존경하는 문장가라든가 하는 사람이 낸 책은 드문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물론 스포츠나 뭐나 스스로는 잘 못해도 가르치는 것에는 유독 탁월한 능력을 보이시는 분들도 있긴 합니다만, 제가 이제까지 읽어본 창작 책들 가운데 가르치는 능력이 탁월해서 그런 책을 낸 것처럼 보이는 분들도 딱히 없었거든요. 만약 비슷한 게 표절이라면 이런 류의 도서는 전부 다 표절입니다. 다만 원저작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게 함정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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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소 글을 쓰는 작가,저자에 대한 느낌은 한마디로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수많은 시간,세월 속을 거치면서 내공을 쌓아 나가고 날숨과 들숨도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과 집중을 통해서 순간 순간 떠오르는 단상과 주제,소재를 밑그림을 찾아 내어 목욕재계의 정결한 감정과 이성으로 단어라는 주무기를 통해 문장으로 확장해 나가는 거대한 작업이 글쓰기를 하는 분들이 겪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그래서일까 글을 쓰는 사람을 어쩌다 직접 뵌다든지 매체를 통해 훔쳐보기라도 하면 그들은 생활 속에서 책이 밥이고 무기이며 사유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을 절로 느끼게 된다.
특히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가공하여 밖으로 나오는 작은 이야기라는 소설은 허구와 사실의 중간쯤에 있는 것도 있고 완전히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엮어 나가는 작품들도 있는데 허구이든 사실이든 글은 역사적 신화,전설,구전 등과 같은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든지 사료,증거물,기록물 등과 같은 객관적이고 다수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를 작가의 뇌와 생각,감정을 반죽하고 숙성시켜 잉태시킨 것은 날 것이 아닌 정성과 손길,세심한 가감작용이 있기에 하나의 멋진 상품으로 등극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글쓰기에 대한 단상을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의 문예반,중학교 시절 창작대회가 전부였다.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반추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 입시,수험준비로 인해 교과서와 참고서,몇 권의 문고본이 전부였던게 학창시절 책에 대한 너무도 단촐하고 궁색한 구석만 남아 있다.지금과 같이 논술이 중요하고 책읽기가 보편적인 시대의 흐름이었고 부모님,학교 교사들도 책을 읽고 독서감상문 등을 반강제적이라도 시켰다면 마지 못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다만 내 경우에는 남보다는 더 많이 읽고 독후감 경쟁에 빨려 들면서 생각과 사유를 오래도록 이어나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해본다.
결혼하고 대학시절 읽었던 소설,고시준비하려고 준비했던 묵직한 법전들이 방 한 칸 차지했던 적이 있다.역시나 집안이 세간살이,생활용품 위주가 되다 보니 정신적인 소양을 길러 줄 이렇다 할 도서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의 빈약한 책꽂이를 바라보면서 나도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 나가고 타인과의 원활한 소통,문제해결 능력 등을 생각하면서 '자기계발서' 등을 한 두권씩 손에 넣게 되었다.그런데 자기계발서라고 해도 신문이나 매체에서 선전하는 도서위주이다 보니 내가 정작 원하는 도서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한 도서들이 때로는 내 생리에 맞지 않은 것도 있었다.
서울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아파트를 분양받아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데 나이가 사십이 넘어가면서 뭔가 정신적으로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그 책이 김주영작가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꺽지 않는다>라는 도서였다.읽으려 하면 어휘력과 독서력이 약해 한 두 페이지 읽다 말기를 반복했는데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너무 졸려서 보다 말다 했던 기억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아내가 하는 말이 "읽지 않으려면 뭐하러 사 놓고 먼지만 풀풀 날리냐,끈기가 없다" 등 핀잔과 지청구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그러한 말이 오가고 내 심경에도 책을 서서히 읽어 아이들에게 문화적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네이버의 지식인서재를 통해 본격적으로 읽으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특히 신경숙작가의 집은 온통 책꽃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그 정신적 충격과 자극은 오늘까지도 쉼없이 책을 읽는 책벌레(?)로 나를 사로잡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로 변하면서 많이 읽어 좋은 점도 있지만 알찬 내실은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처음에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읽기 위주로만 진행했다.읽는 장소는 가리지 않고 시간의 틈새를 최대한 놓치지 않으면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고 읽다 보니 읽어야 할 부분과 불필요한 부분,중요사항,속독 아닌 속독의 경지까지 스스로 체득해 나가게 되면서 마음 한 켠 이것도 육체적 노동 못지 않게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그렇게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과 줄거리가 퇴색되어 간다는 것을 알고,우연히 인터넷 온라인 서적,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서평 쓰기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미숙하고 어색하지만 '절차탁마'라는 것을 되새기면서 하나씩 서평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때로는 우수블로거들의 서평도 훔쳐 보면서 그들은 서평은 어떠한 식으로 쓰고 편집은 어떻게 하고 글의 구성 등도 꼼꼼히 챙겨가기 시작했다.
책읽기를 한 지가 어느덧 5년이 훌쩍 넘었다.내가 주로 활용하는 작은방은 온통 책으로 쌓여 있다.사고 빌리고 선물받아 읽은 도서들이 어느덧 작은방의 반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가끔은 애물단지로 보이고 언젠가는 솎아내야 할 것들도 있다.지인에게도 주기도 하고 명절에 온 친척들에게도 선심을 쓰기도 한다.그러나 아직까지는 내 머리 속의 관념은 책은 나의 분신이고 나의 생각과 사유의 원천이라도 생각한다.책은 돌고 돌아야 한다는 것도 동감하지만 전적으로는 공감하지 않는다.혹여 지난 삶을 되새겨 보는 차원에서 한 권의 수필을 쓸 수도 있고 옛 것에 대해 좋아하니 지난 시절의 앙상하고 불편했지만 초가지붕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매개로 영감과 추억을 되살려 글을 써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기는 하다.그러한 날이 오려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고 아무도 없는 깊은 산사에 파묻혀 잡스러운 생각거리를 모두 걸러 내고 맑은 기억과 책을 쓸 연장도구,사료,기록물 등을 옆에 끼고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창작 메뉴얼인 이 도서는 말그대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예비작가를 위한 길라잡이로 생각된다.글을 쓸려면 기본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고 반추하는 능력과 타인과의 소통,시대의 흐름과 변화 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아무리 잘 쓰여진 글이라도 읽어 주는 독자가 소수라면 작가는 수많은 시간과 세월을 짜내어 쓴 글인데 어떻게 먹고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밥벌이로 생각하면서 글을 쓰려면 백팔번뇌가 아닌 천사번뇌의 인고의 노력과 의지를 품어야 할 것이다.
주제,소재를 염두에 두고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작가들은 고심을 할 것이다.첫 문장은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바로미터이고 독자들의 호기심,추리력을 돋구는 위력한 무기이고 상징이기에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또한 작가의 세상이라고 할 정도로 글을 쓰는 글쟁이가 넘치는 세상에서 자신이 과연 글을 써서 세상과 교유하고 공감해 나가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이왕 붓을 들었으면 한 권의 글이 탈고될 때까지 몰입과 집중으로 엉덩이에 물집이 생기고 손가락엔 굉이가 박혀도 해 나가야 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참된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1. 다른 모든 직업을 제쳐놓은 만큼 절실하게 작가가 되고 싶은가? 2.내가 꼭 쓰고 싶은 글이 있는가? 또는 글쓰기가 미치도록 좋은가? 3.글쓰기에 1만 시간(아웃라이어가 연상됨)을 투자할 의지와 의욕이 나에게 있는가? 4.작가로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겪어야 하는 고독과 가난을 견딜 수 있는가?
내가 본 작가들은 가난하고 영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전업작가이지만 가끔은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어 생활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작가의 길을 꾸준히 이어가려면 경제적인 불편함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하고 집안 식구들의 암묵적인 협조와 지지가 선결조건이라고 생각한다.글을 직접 써보지 않은 나는 그러한 어려운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든 최고봉에 오르려면 '절차탁마'의 험준한 과정과 냉혹한 인생이라는 레슨비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글을 잘쓰는 사람은 부모님의 문화적으로 양호한 DNA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가시밭길과도 같은 글쓰기의 길을 묵묵히 때로는 회의심에 찌들기도 하면서 딛고 일어나야만 글쓰기가 마음 편하게 마음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지 않을까 한다.
'아,네가 거기 그렇게 오래 서 있었구나,내가 몰라봤다,미안하다.'
작가는 이러한 생각이 들고 그런 말이 절로 들었을 때 좋은 영감,글감이 제대로 찾아왔다고 마음에 파문이 유장하게 퍼진다고 한다.이렇게 좋은 영감과 소재가 마음을 홀리게 하고 떨리게 하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자신만의 글쓰기로 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글이라는 것은 진부한 것보다는 참신하면서도 감동과 감흥,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글을 쓰면서 어휘와 문장의 세련미를 발휘하기 위해 표준어,공통어,은어,속어,외래어 등도 잘 조합하고 비유적으로는 은유와 직유,대구,인용 등을 넣어 글이 꿈틀거리며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고 이를 독자간에 다양한 토론의 장으로 삼는 시사성 있는 글이라면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헨리 밀러의 창작 십계명을 인용해 본다."한 번에 하나씩 붙잡아서 끝까지 쓰라,쓰고 싶던 책들을 잊으라,지금 쓰고 있는 책만 생각하다,안달복달하지 마라,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계획에 따라 일하라.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만 쓰라,그러고 싶다면 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좋다.하지만 다음 날은 다시 계획으로 돌아와야만 하낟.몰입하라.점점 좁혀라.거부하라"이다.
소설은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돈과 물질,명예와 권력이 있는 자들이 편이 아닌 소외되고 상처받고 세상의 시름을 외롭게 안고 살아 가는 음지에 있는 이들을 밖으로 끌어 내어 이들의 존재를 내심 무시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강한 붓의 힘으로 알리고 독자들과는 치열하게 토론의 장과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도록 글쓰는 사람은 한껏 스토리텔링을 펼쳐 나가야만 할 것이다.문화인에 대한 대우가 빈약한 한국사회가 보다 인문학적 소양과 정신적 근육을 보편화 시키려면 문화인,문화정책에 대한 개선과 예우 등이 실질적으로 바뀌어 나가야 할 것이다.글을 쓰는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문명의 발전을 꾀해 왔던 보배로운 존재인 만큼 그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이루어져야 한국의 문화는 진일보해 나갈 것이고 문화인으로 먹고 살기를 잘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일에 대한 자긍심,열정,에너지를 한껏 고조시킬 수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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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소설을 써 보겠다고 몇 년, 아니 몇 십 년째 벼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년 또는 청소년 시절, 문학 소년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며, 문학 소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문학 소녀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소설을. 문학도 여러 장르가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역시 문학의 최고봉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나는 한때 소설가의 꿈을 접었다. 어렸을 때 가진 꿈을 성인이 되어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나도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일까? 하지만 나에겐 버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는 한창 민주화 물결이 거세었던 시절이었다. 지면을 장식하는 소설이란 건 전부 다 민주화 또는 현실 참여적 작품들 일색이었다. 나는 그 시절 우리나라 소설의 경향이 이런 거라면 차라리 꿈을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왜 그런지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하는 어떤 의지도 없이, 단 한 권도 재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말이다. 문학은 더 이상 꿈 꿀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실적이기만 하는데 거기에 무슨 꿈이 있겠는가.
왜 그 시절엔 그렇게 현실 참여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만큼 작가들 중엔 깨어 있는 작가도 있겠지만, 워낙에 또 그런 것이 아니면 쓸 수 없고, 먹혀 들어가지 않았던 시절이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된다. 민주화나 현실 참여가 언제까지 계속 될 거라고 보는가? 새로운 시류가 시작되면 이제까지 민주화나 현실 참여의 소설을 썼던 작가들은 또 무슨 소설을 쓸 거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가 이렇게 없어서야 이게 무슨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밥벌이 수단일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문학이 하찮아 보였다.
또 꼭 그런 게 아니어도, 소설은 일회용이다. 한 번 읽고 다시 읽게 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 일회용을 위해 나의 지갑을 연다는 게 웬지 독자의 입장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고전은 어렵고, 요즘 쏟아져 나오는 소설은 너무 경박하지 않는가? 너무 어렵거나, 경박한 소설을 내 돈 내고 사서 본다는 게 아까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냉정히 돌아서게 될 줄만 알았던 내가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떤 계기에 짧은 대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다시 소설에 대한 꿈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작가도 참 여러 가지다. 어떤 이는 시를, 어떤 이는 희곡을, 어떤 이는 수필을, 시나리오를 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장르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희곡을 쓰는 사람이 시를 쓰지 말라는 법 없고, 시나리오 쓰는 사람이 소설을 쓰지 말라는 법 없다. 그렇게 시작은 짧은 대본 쓰기부터 시작하지만, 꿈은 이루어 진다고 나도 언젠간 그렇게도 쓰고 싶어하던 소설을 쓰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태 제대로된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습작 삼아 단편 소설 초고를 몇 편 쓰긴 했지만, 작심하고 중편 내지는 장편에 도전했다가 중도에 엎은 게 또 몇 된다. 왜 그럴까? 게을러서일까? 의지가 박약한 걸까? 열정이 부족해설까? 그럴 때마다 이렇게 나는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면 한심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 책 열 권 읽느니 한 번 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소설 한 번 써 보겠다고 뭐는 안 해 봤겠는가? 당연 학원에도 등록해서 다녀 보았다. 가장 좋은 건, 역시 학원이나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며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당장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건 왠지 간접적으로나마 글쓰기를 부추김 받고 있는 것 같아 좋다.
또 좋은 건, 예전에는 전문화와 그에 따른 권위 의식 때문이어서인지 몰라도, 이런 작법서는 문예 창작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교수나 전문가만의 전위물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상당히 이론적이고, 딱딱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자리를 소설 쓰기의 최전방에 있는 작가의 몫이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국내 작가로는, 한승원 씨, 김탁환 씨, 이승우 씨 등이 쓴 책을 읽어 보았고, 외국 작가로는, 스티븐 킹, 제임스 스콧 벨 같은 작가의 책을 읽었다. 나는 그런 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글이 좋다. 그들은 작법에 관해서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마치 천기라도 누설하듯 글쓰기 비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건 확실히 나에게 자극이 된다. 그리고 작가에겐 작풍이라는 게 있는 것처럼 그런 책에도 역시 작가의 작풍 또는 성격이 느껴진다. 물론 그들이 글쓰기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이제 한다하는 작가라면,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는 책 한 권쯤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여기에 이책을 더 한다. 이 책 역시 작가이면서 소설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분명 이 책은 내가 읽어 왔던 앞서 열거했던 작가들의 책과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놓기도 했다. 특히 '개요를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130p~)'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했다. 가르치기 나름이고, 써 놓기 나름이겠지만 내가 아는 글 선생들의 대부분은 개요를 잡고 쓰라고 권고 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익숙치 않아서인지, 또는 그게 원래부터 안 되는 건지 어쨌든 이 책의 저자처럼 영감에 의해서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쓰고 있다. 하나 다른 건, 저자는 그렇게 써서 끝까지 쓰지만, 나는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던가,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개요를 잡지 않고 써서 그런가 나 자신을 책망하곤 했는데, 이책을 읽으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긴, 글 쓰는데 정도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거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 왜 이것을 얘기하고자 하는지는 분명 알고 가야할 것이다.
내가 소설 쓰기를 실패하는 것 중 또 다른 이유는, 나는 정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내가 아는 사람들인데 좋은 뜻에서 하는 얘기면 모를까, 안 좋게 나오면 상처 받거나 분노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또는 역반응을 초래할 수도 있고. 이것은 역시 저자의 말대로 이 다음에 그 이야기가 좀 더 객관적이고, 성숙해졌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또한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작가는 얼마나 부지런한 존재가 돼야하며, 상당한 호기심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를 절감한다. 생각을 갈고 닦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세인 것이다.
조목조목 따지 듯이 쓴 저자의 필체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책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막 소설 쓰기에 마음을 정한 사람이나 이 방면의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좋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이 방면의 책을 읽어 온 사람들은 살짝 지루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그래도 유익하다. 한번쯤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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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결론이 내려진다. ‘써라, 일단 써라. 시작하라.’ 생각과 고민만이 앞서는 사람에게 부지런해지라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 앞에서 나를 반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냥 쉽게 시작할 수도 없는 것이 소설. ≪소설 수업≫은 소설을 편안하게 시작하도록 도와준다. 어떤 소재를 선택해야 나의 글이 원활하게 써지는지, 그만큼 소재를 풍부하게 저장하기 위해서 메모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읽은 부분 중 하나가 ‘플롯’에 관한 이야기다. 같은 소재와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가 그 이야기의 완성이다. 이 책에선 플롯에는 독자를 긴장시키는 역동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저 무의미하게 나열하듯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소설이 있을 때 플롯이 제대로 짜여 있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부분이었다.
나를 비롯해 글을 쓰고자 하지만 숙련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아마 ‘상징’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는데 상징까지 요구받으면 시작부터 막막해진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상징을 갖다 붙이는 일이 소설의 완성도에 결정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상징의 중요성은 확실하다. 작가는 상징을 위해서는 관찰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이면 휴대폰, 책이면 책, 인형이면 인형, 그저 사물의 단순한 이름과 속성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확인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또 상징이 사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책에서 설명하듯 말투, 걸음걸이, 손짓 등 상징을 껴안을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명확해지면 그것을 담을 적절한 상징의 그릇을 찾는 일은 평소 관찰력 있게 주변을 살폈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가끔 어떤 책들은 다음에 다시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소설 수업≫은 그런 면에서 마음이 가볍다. 자신 없는 점이나 현재 충족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면 그 부분만 찾아서 보기가 쉽다. 소재에 대해 막막하다면 소재에 관련된 부분을, 첫 머리나 플롯, 상징, 또는 파일 관리를 하는 법이나 다른 작품 리뷰를 하는 것, 그리고 조울증까지 해당 부분에 골치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애타게 찾던 물건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무척 반가운 매뉴얼일 것이다.
《소설수업》을 읽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돌아보게 되고, 움직이게 된다. 엄살 피울 변명거리가 사라졌다. 나는 그런 변화부터가 이 책의 힘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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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오래 공부한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꼭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혹시 소설을 써보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들 이전에 써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녹록치 않더라는 답변을 한다. 들을 때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소설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차원이 높은 세상에서 호흡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너무 멀리 떨어진 존재만은 아니라고 생각이 전환된 것은 아마 소설가의 일상을 소재로 한 일본드라마였지 않나 싶다. 그리고 소설을 쓰시는 분을 한 분 알게 된 것에서도 영향을 받았지 싶다.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글이 되었든, 말, 미술, 사진, 음악, 요리, 미용, 화장, 패션, 동영상 등 무엇이 되었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유쾌한 일이다. 그 중에 소설. 소설을 한번 써보았으면 한 적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잊혀져가는 기억을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고 싶어서, 표현하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분출하고 싶어서. 그런데 뭘 알아야지. 몇 글자 끄적거리다 끝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형태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나 보다. 소설을 쓰기를 원하지만 마땅한 스승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면 이 책이 제격이지 싶다. 소설 창작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딱딱한 강의식이 아니라 저자의 인생과 경험까지 녹아 있어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선은 일기도 좋으니 써보라는 것. 그리고 쓰다가 슬럼프에 빠질 때는 가상이라도 좋으니 수상소감 등 또 다른 형태의 글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 어찌되었든 많이 읽고 쓰고 그것을 반복하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보다 효과적인 저자의 팁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을 쓰기 전부터 인물구성, 개요, 첫 문장 쓰기, 상징, 제목 붙이기, 마무리, 퇴고, 파일 관리 등 각 과정을 구체적으로 이미지하고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목 그대로 소설 수업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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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SF소설 한 편을 재미삼아 쓰다가 만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재미삼아 썼기에 내용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때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 그때는 개인적인 공상에서 끝났지만, 몇 년 동안 독서와 서평쓰기를 취미로 유지하다보니 생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다소 불가능해보여도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이니 자유겠지만, 독서량과 글쓰기 양이 늘어나고 틈틈이 노력한다면 언젠가 가능한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무조건 써라!
이 책은 ‘소설수업’이라는 제목과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창작 매뉴얼’이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가 지망생이나 작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일독해본 느낌상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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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의 삶을 그냥 묻어 두기 보단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엄마 이야기를 한번 써 볼까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소설수업>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나만 알고 있었던 엄마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쉽진 않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리면 엄마의 이야기와 창작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엄마 이야기이면서 엄마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소설이라는 것을 써 본 적도 없다. 전엔 소설책을 많이 보긴 했지만, 최근엔 소설책보단 실용서들을 더 많이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고, 동화책을 보고 있으면서 나도 아이들을 위한 책을 써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 정도는 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글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더욱 소설을 쓴 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수업>이라는 책을 보면서 소설쓰기의 이론을 조금씩 내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이라는 것은 상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등장인물에 숨을 불어 넣고, 사건을 만들고, 해결해 가면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시작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끝을 맺는 다는 것은 더 어렵다. 지금껏 난 시도는 했었는데 끝맺음이 없었던 것 같다. 시작도 중요한 만큼 끝맺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엔 엄마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젊은 시절의 엄마 모습부터 돌아가시기 전의 엄마 모습까지.. 어찌보면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사셨을 것만 같은 엄마.. 그 짧은 삶속에 엄마는 행복했을까?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니 엄마가 언제 행복해 하셨는지, 정말 하고 싶으셨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엄마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녀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고 해야할까? 어쩌면 엄마 자신도 자신의 이름보다는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다 생을 마감하신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힘겹기만 했던 짧은 삶... 난 절대 그리 살지 못했을 삶을 살다 가신 엄마를 위해.. 짧더라도 글을 시작하고 끝을 맺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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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어렸을 적 꿈이 작가였었다. 비록 크진 않았지만 작은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대상 같은 건 아니었지만 장려상이나 우수상 정도는 받았었고,그 이후에 3년 여 동안 쓴 동시집을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애착이 컸다. 그러나 이후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감을 잃어버렸다. 시를 쓰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소설이나 긴 잡문 같은 것들은 아이디어나 구성방식 등 갖가지 복잡한 것 때문에 점점 쓰기가 싫어지게 되었다. 요즘 들어서야 독서에 흥미를 느끼고 책에 관심을 두는 단계로 다시 돌아왔지만,지금도 글쓰기는 나에게 두려운 일 중 하나다. 그런 나에게 이런 글쓰기 책은 반드시 필요한 책이 되어버렸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창작 매뉴얼'이라는 부제가 달린 최옥정의 <소설수업>은 한마디로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소설의 기본적인 것들과 함께 우리가 소설을 대하는 자세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그리고 소설을 쓰기까지의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현직 소설가이자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의 첫 접근부터 마무리까지 하나의 완벽한 글을 보는 듯 했다. 흔히들 소설가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고난이 많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 직업이라고 말하는데,저자의 자신감을 드러낸 부분을 본다면 나도 이러한 자신감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게 소설,작가에 대한 정의와 소설을 쓰기 위한 단계들에서 소설을 쓰기 전과 후에 해야 할 일들,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소설가로 살게 될 때를 가정한 소설과 독자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소설작법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그리고 소설을 쓴 이후에 해야 할 일이라든지 독자로서의 역할 등 소설의 외적인 면에도 주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왠지 한 권의 문학교재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여러 작품의 문구에서 인용하여 되도록 쉬운 설명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고 저자의 경험과 함께 비교적 상세한 내용은 우리 같은 소설에 초보적인 사람들이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동안 소설을 쓸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잘 하지 않은 것이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에는 자료조사와 수 많은 퇴고,각종 캐릭터 설정,독서 모임과 가장 중요한 무조건 써보려는 노력이 포함된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이 중에는 내가 지금도 하고 있는 몰아서 읽는 거라든가 리스트 작성,허구의 인물이나 유명스타와의 가상 인터뷰 만들기 등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이 일들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이 책을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나에게 소설은 첫문장을 어떻게 시작할까,제목을 어떻게 붙일까,마무리는 어떻게 할까와 같은 이전에 포기했던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어느 정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고민이 해결된 것 같다. 소설을 좋아하거나 소설을 쓰고 싶어하거나,또는 소설을 쓰려다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이 있다면,이 책을 읽어본다면 어느 정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음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2013/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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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까지 글을 쓴다는 것에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일기를 쓰는 것 조차도 싫어했으니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즉 삶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인 것 같다.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뒤늦게 시작된 이유도 있고, 사회에 대한 눈을 뜨면서 책을 보기 시작한 이유도 있었다. 그러면서 글, 즉 소설이나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었다. 나름 시는 어설프지만 끄적거려 봤지만 소설은 머릿속에서 구상만 했지 실제 적어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먹고 살기에 바빠 잊고 살았었다. 다만 책에 대한 욕심만을 잊지 않고 있었다. 책을 많이 읽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책을 많이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소설 수업>은 제목 그대로 정말 작가가,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소설과 소설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소설 창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개념들과 소설가로서의 자세를 저자의 경험에 비추어 상세히 이야기해 주는 책이다. 총 3부 1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소설을 직업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기본서이다. 제 1부는 소설과 작가의 의미에 대해서, 제 2부는 소설 창작에 있어서 알아야할 기본적인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제 3부는 소설가로서의 삶의 자세와 실제 출판시에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소설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창작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 반대로 인생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책이랄까. 글을, 특히 소설을 쓰려는 사람, 소설을 통해 발언할게 있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싶은 욕망에 쓰게 된 책이다.” - P. 5. 저자는 소설은 작가의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마음 깊숙이 감춰두었었던 상처나 슬픔, 분노를 글로써 풀어내고 해소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상황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고 상상하고 글로 옮기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글로 옮겨진 내면의 이야기들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공감하고 지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과 사건과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발견해서 쓰는 순간 소설이 된다. 내가 발견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없다고 답을 정하지 말고 어떻게 발견해야 할까를 고민해라.” - P. 100. “신문기사라면 “누가 그랬니?”가 중요하겠지만, 소설은 “그 사람이 왜 그랬대?”가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과 결론보다 그 사건의 인과관계와 이면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니 이야기의 흐름이 복잡하고 다양하고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소설 쓰기를 배우는 것은 인문학에 접근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사전적인 정의만 보더라도 ‘소설은 인간학이다’라는 말과 상통한다.” - P. 349. “작가는 보통 사람보다는 앞선 생각을 해야 하는 직업이다. 멀리 보고 넓게 보고 달리 본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따라잡고 현상이나 변화에 대해 비판의 시선을 견지해야 한다.” - P. 346. 저자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관찰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보라고 말한다. 즉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많은 책과 글을 읽고, 사회문제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보고 이를 글로 옮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짧게는 몇 년에서 10년 이상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지 않은 글은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글은 독자들로 하여금 무언가 2% 부족한 글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롭게’, ‘남다르게’ 다. 내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잘 알고 더 아는 분야를 개척하려는 노력은 작가로서의 기본자세다.” - P. 86. “많이 관찰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그중에서 불이 붙을 만큼 나에게 절실한 문제를 붙들고 늘어져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일을 매일 빼먹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해나가라.” - P. 105~106. “달라야 한다. 죽었다 깨나도 달라야 하고 새로워야 한다. 다르지 않다면 고생해서 소설을 쓸 이유가 없다. 문체가 다르든, 소재가 다르든, 사유가 다르든 무조건 달라야 한다.” - P. 332. 글을 쓴다는 것은 험난한 길이라 생각한다. 세상 어떤 일이 쉬운 일이 있겠냐만은 제자리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손으로 글을 써가야 하는 작가의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작가에게 주어지는 적은 경제적인 소득은 작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를 안겨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을 하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무한한 매력이 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서평을 써 가면서 헝클어져 있던 생각을 하나하나 정리해가고 있으니까. 비록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전문적인 작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매일매일 사회적 이슈나 읽은 책들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쓰고자 한다. 나를 더 알고 싶고, 나를 더 정리하고 싶으니까.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첫 생각을 문장으로 옮겨보는 것, 그것이 창작의 첫걸음이다.” - P.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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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가장 큰 충격은 나 자신이었다. 소질이 없다는 핑계로 높은 꿈으로 미뤄두었던 글쓰기가 단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었음으로 제대로 알아버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소설을 쓰고 작가가 되기 위한 매뉴얼이다. 처음 소설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소설을 구상하고 창작하는 단계와 소설을 쓰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해야하고, 소설을 완성한 후에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행동이나 마음가짐들을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창작의 단계에서 오는 감정의 변화들에 대해서나 소설을 쓰기 위해서 파일 정리나 블로그 활동 등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현재 숭실사이버대학교에서 ‘소설창작’을 가르치는 작가의 직업적인 부분이 많이 가미되어, 읽는 내내 멘토에게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침을 받는 기분이었다. 『무조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한 문장을 쳐라. 그것이 창작의 첫 단계, 가장 결정적 순간이다. P.18』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꾸준히 독서를 해야 한다. 깊고 넓은 눈으로 주변을 관찰한다. P.63』 우선 매일 일정한 시간에 무조건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가지고, 늘 주변의 모든 인물이나 상황들을 쉬이 넘기지 말 것을 강조한다. 어떤 사건에서 “누가”가 아닌 “왜”를 바탕으로 늘 의심을 품고 이면을 세계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늘 작가가 품어야할 의심이다. 『쓰는 힘, 필력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정확하게 쓰는 능력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감동을 주는 문체를 찾는 솜씨가 필요하다. P.144』 많이 읽고, 늘 쓰기를 생활화하고, 또한 필사도 빼 놓지 않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좋은 문장력을 지닌 글들을 필사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훌쩍 자란 자신의 문장력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필사를 하면 좋은 작품들도 소개가 되어 있어서 필사를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런 필사의 교본으로 통한다. 아주 오랜 시간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책을 더 늦지 않게 펴 들어야겠다. 이 외에도 소설의 첫머리에 대한 중요성, 플롯 짜기의 방법이나, 묘사와 설명의 구분선, 상징의 필수요소, 퇴고의 제대로 된 마무리 등 이 한 권만 있으면 소설이 벌써 완성된 듯하다. 읽는 내내 책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른다면 나도 소설 한 편 창작할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근래 읽었던 자기 계발서나 감동적인 소설보다도 내게는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독서라기보다는 연필을 들고 페이지 마다 중요한 부분에 줄을 그어가며, 읽은 부분을 다시 한 번 읽고, 포스트잍으로 중요한 페이지를 체크해가면서 읽어 내려갔다. 또한, 잊고 지냈었던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고 대입시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허밍웨이의 명언만을 남긴 마지막 페이지는 비오는 날씨와 맞물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삶’이라는 핑계 앞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잊고 살아왔다.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일이 밀려 있다는 등의 핑계들로 아주 오랜 시간동안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버려두고 살았왔음을 제대로 깨달았다. 이 깊은 울림이 곧바로 실천이 되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난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하고 싶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깨달은 시간이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를 찾아준 김옥정 작가님께 감사드리고, 이 책이 오랜 시간동안 나의 멘토가 되어 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잘 쓰는 이야기를 찾아 그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확실해야만 잡념 없이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다. 인생은 짧다. 절실한 주데, 꼭 하고 싶어서 가슴속에서 들끓는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P.291』 『헨리 밀러의 창작 십계명 중 한 번에 하나씩 붙잡아서 끝까지 쓰라. 쓰고 싶던 책들을 잊으라. 지금 쓰고 있는 책만 생각하라. 안달복달하지 마라. 기분에 좌우되지 말고 계획에 따라 일하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만 쓰라. 그러고 싶다면 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다음 날은 다시 계획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몰입하라. 점점 좁혀라. 거부하라. P.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