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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통섭의 개념은 ‘줄기’란 뜻의 한자 統(통)과 ‘잡다’라는 뜻의 攝(섭)이 합쳐진 말로 ‘전체를 도맡아 다스리다’ 라는 뜻이다. 최재천 교수하면 언제나 ‘통섭’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어지곤 하였는데 이 책으로 통섭에 대한 의미를 확실히 배운 듯 하다. 점차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 지식의 융합’이라는 의미로 통섭이라는 뜻이 통용되고 있지만, 최재천 교수가 말하는 통섭의 의미는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와 일맥상통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공자는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하나로 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최재천 교수 또한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통섭적 인생, 모든 것을 하나로 궤는 인생을 살라고 권한다. 대부분의 인문학자와 경제학자나 과학자들이 최근 들어서 이러한 통섭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데 세상이 이제는 획일적이거나 일률적이기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현대,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듯 우리는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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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날 수 있는 새 중 세상에서 가장 큰 날개를 가진 새 알바트로스가 떼죽음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북태평양 미드웨이 섬의 알바트로스가 무더기로 죽어 산을 이룬 사진을 환경운동가가 찍어 올린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 화제가 되었는데 처음에 사진을 보았을 때, 조류병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떼죽음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새들의 죽은 이유는 뱃 속의 쓰레기때문이였다. 배속에 들어있는 라이터와 플라스틱병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어 숙연해졌었는데 이후 지구의 환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다. 물건을 살 때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게 되었고 친환경제품을 선호하는 보잘 것 없는 실천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계속 살아갈 지구를 위해서 환경문제는 우리 세대의 공동담론으로 떠올라야 한다. 새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자연과 살아가는 우리는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통섭적 인생의 권유》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번쩍이는 순간들로 인해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저자의 통섭적 인생은 프롤로그 편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참고로 프롤로그 부문을 그대로 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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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적 인생이 대체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삶의 태도입니다.
첫째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태도입니다. 인간도 지구 위의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다른 동물도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이다.
두 번째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입니다. 공이 날아올 때마다 너무 재지 않고 방망이를 휘두르다 보면 단타도 치고 때로는만루 홈런도 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했던 제 삶의 궤적은 여러분에게 권유하는 통섭적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이 책은 그동안 최재천 교수가 주장하던 인간의 이해, 생물다양성, 환경살리기,뱐려동물,그린 비지니스, 의생학, 21세기 교육, 미래형 인재, 기획독서,여성시대, 제2의 인생,경계를 허무는 삶 등 다채로운 12개 어젠다로 분류해 제시하고 있다. 특히 최재천 교수는 기후 변화의 문제와 생태계의 파괴, 지구 온난화등의 문제에 대해서 21세기에는 진정으로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과 함께 살겠다는 마음을 지닌 공생인, 즉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그 변화는 아주 작은 것, 우리의 밥상에서 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수직 농법’을 최재천 교수에게도 들을 수 있었는데, ‘3차 산업혁명’에서 제러미 러프킨의 주장과 ‘행복의 경제학’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주장하는 지역화와 같은 연장선이다. (설명은 최재천 교수의 설명이 확실히 가장 쉬웠다.)
자연과 공생하는 부분외에도 인상적인 부분은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었는데 반려 동물은 소유물이 아니라 가족과도 같은 인생 동반자이다. 대부분이 애완동물로 생각하지만, 나는 애완용이라는 말 자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은 때론 인간보다도 교감능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인간의 희로애락에 공감해주는 반려동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 또한 통섭적인 인생의 한 부분이다.
최재천 교수의 독서에 대해서도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최재천 교수가 주장하는 독서법은 ‘기획독서’인데 몇 가지 분야를 정해 놓고 계획성 있게 공략하는 독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치열하게 탐닉해야 한다. 대부분이 자신이 관심가는 분야만을 파고들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세상을 통섭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세상을 하나로 궨다는 것은 독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독서는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며 편협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는 '기획독서'가 필요하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적 인생이란,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말한다. 그러나, 세상을 다양하게 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이 될 수 있고, 다양한 독서가 될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이 불가능하다면 다양한 독서로 가능하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세상을 다양성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생활은 하늘과 땅차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다양성의 시각을 가지고 통섭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긴다. 세상을 하나로 궤는 인생, 당신에게도 통섭적 인생을 권한다.
“독서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기가 막힌 전략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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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통섭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를 매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통섭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은 그 두께때문에-핑계지만- 아직 못읽어봤다.) 그런데 통섭적 인생의 권유라는 제목의 책이라니. 주저없이 읽어봤다. 이제보니 여러 매체에 기고하셨던 글을 하나로 엮어놓은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주제별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 술술 읽혀졌다. 직간접적으로 강의를 통해 접했던 부분도 여기저기 녹아있었다.
우리 시대는 왜 통섭을 원하는가. 더이상 우리시대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레오나르드 다빈치 같은 천재를 만날 수 는 없다. 각 분야의 학문의 깊이가 깊어질 수 록 그만큼 학문간의 벽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학문과 학문을 이어주는 사람들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두개의 우물을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통로, 그래서 하나만 알아왔던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가치들을 발견하고 끄집어 내주는 사람들이 요즘 인기인 것이다.
경영학 쪽에서도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 대응을 하는, 그러니까 리액티브가 아닌 프로액티브한 액션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망가진 환경을 복구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먼저 환경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말이다. 이는 복지제도에도 똑같이 적용 가능하다. 시니어세대의 질병치료에 관한 의료보장보다는 조기발견 쪽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의 확장판이라 볼수있는 구성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집단지성이 촉발되는 것처럼 생태계에서의 다양성은 매우 중요하며 종(種)의 사라짐은 전체 생태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이를 보드게임의 일종인 젠가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대로 환경훼손을, 종의 멸종을 방치하다가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에코과학연구소를 세우고 우리의 환경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학문의 융합을 도모하는 것도 크게 보면 자연을 모방하고 학습과정을 거쳐 우리네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자 함에 있다.
'통섭(統攝)'은 원효대사의 말에서 인용한 단어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최재천 교수의 연구실을 통섭원(苑)이라 부르며 여러학문에 관해 대화하는 사랑방이라고 말한다. 엘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룸메이트가 유명한 배우인 토미 리 존스였기에 폭넓은 소통이 가능했고 불편한 진실이라는 걸작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처럼 우리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통섭적 정신을, 인생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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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은 흔히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경쟁, 약육강식을 정당화 하는 논리로 쓰인다. 하지만 실제 다윈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고 한다. 다윈은 무차별 경쟁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라고 하지 않았다. 경쟁끝에 '최'적자만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경쟁보다는 공생을 강조했다. 꼭 1등을 할 필요는 없다. 5등쯤 되면 10등의 손을 잡아주어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최재천 교수의 설명이다.
자연 생태계의 이 원리를 우리 인간사회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현대는 불필요한 갈등이 넘치는 사회이다. 공감과 소통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다윈의 지혜가 필요하다. 최재천 교수는 내가 남과 함께 사는, 마음과 소통을 강조하는 공생하는 인간이란 의미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에서 배워야 할 가장 큰 원리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소통하는 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그간 이야기한 내용들을 12개의 주제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바람직한 삶의 방향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통섭적 인생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가자는 것이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피카소적인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다.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한 피카소처럼 전공분야를 기본으로 다른 분야와도 폭넓게 소통하고 협력하는 그런 삶을 강조한다.
자연과학자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올바른 삶의 방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모든 것을 다스린다'라는 통섭이라는 말이 다소 어렵게 다가오지만 자연과학적 지식위에 인문학적 통찰이 함께 하고 있어 쉽게 이해가 된다. 결국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자연생태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이다. 성선택이론이란 짝짓기 과정에서 칼자루를 쥔 것이 암컷이라면서 인간사회에서도 향후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고 남녀간 진정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낸 부분도 재미있게 다가온다.
최근 몇년 사이의 경제위기를 진화론적 입장에서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다. 현재 경제학 분야에서는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보고 이야기를 전개해온 전통 경제학을 대신해 행동경제학, 신경경제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과 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에서 기초하고 있다. 이는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의 새로운 흐름, 타 학문과 융합하는 새로운 경제학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갖추어야 할 자질은 융합형 인재, 즉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재가 되길 원한다면 먼저 통섭적 인생을 살기 위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자기계발서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책이다. 많은 것들을 꾸준히 배우고 남들과 나누는 그런 삶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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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은 '줄기'란 뜻의 한자 '통統'과 '잡다'는 뜻의 한자 '섭攝'이 합쳐진 말로 '전체를 도맡아 다스리기'라는 뜻으로 정의할 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진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다. 한 사람의 힘으로 풀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에 접근하려면 결국엔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129~130
1. 공생의 메시지가 뚜렷하게 들어있는 <통섭적 인생의 권유>라는 책은 2006년 말부터 2012년까지 최재천 교수가 언론에 기고한 글과 인터뷰한 글을 주제에 맞게 엮은 책이었다.
기고문의 형식에서 알 수 있듯이 간략하게 주제만을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지난번에 읽은 <최재천 스타일>에 비해서 훨씬 쉬운 독서가 가능했으며, 어찌 보면 나중에 나온 이 책이 최재천 교수의 저작물을 읽기 전. 가장 훌륭한 에피타이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내용적인 면에서도 생물학자 특유의 진화론적 관점으로 사회적 변화를 바라보는 방식이 돋보였다. 특히, 남성을 바라보는 시점. 간략히 말하자면, 노동 집약적 사회에서 지식 집약적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로 인류 역사 가운데 대략 만 년 정도 이어졌던 남성 중심 사회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따라서 여성이 사회의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는 조건이 완성되었다(호주제 폐지)는 소견. 이러한 과정에서 남성의 고정화된 역할(평생 담당해야 했던 경제적 역할)에서 오히려 해방됨으로써, 조금 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3.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서 10년째 제자리걸음 하는 이유를 분석하는 글도 재미있었다. 책의 묘사를 빌어서 이야기하자면 그 원인은 지식기반 사업이 아닌 하청업에 만족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공부하는 인간>에서 읽은 창의적 리더형 인재가 아닌 관계 중심의 팔로어형 인재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모순과도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숙제'만 잘하는 데서 만족하지 말고 '출제'도 잘하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교육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그의 주장하는 교육 사업이란 한 우물만 깊이 파는 전공 위주의 형태가 아니라 다시금 통섭형 인재에 함의가 맞추어지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4. 교수가 주장하는 통섭형 인재의 핵심 개념인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는 진화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결코 우월하다고 볼 수 없는 인간이라는 종의 착각(창세기 1장 28절. 9장1)을 잘못 해석한 결과)에서 빚어지는 오만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신의 계시와는 다르게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인간에 관하여 연구했던 수많은 학자의 사유가 담긴 책을 통해 통합적으로 공부하고 되돌아봄으로써 공생에 해가 되는 실책을 줄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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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이란 말은 두 가지 한자어로 쓰이는데, 하나는 '사물에 널리 통함(通涉)'을 말하고, 또 하나는 '전체를 도맡아 다스림(統攝)'이란 뜻이 있다. 둘 다 비슷한 뜻이 되기도 하지만, 통섭이란 단어의 일반적 통용에 큰 공헌을 한 최재천 교수의 정의는 후자를 따른다. 단어의 뜻풀이만 보고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되는 것, 즉 다방면의 지식과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주로 저자와 같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적 소양을 동시에 갖추는 경우가 많으며, 고등학교 때의 분류에 따르면 문과와 이과를 넘나들며 지식을 섭렵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두번째로는 '피카소처럼 사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에는 '아인슈타인 방식'과 '피카소 방식'이 있다.두 사람 모두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였지만,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결정적 한 방으로 이름을 남긴 반면, 피카소는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한 경우다. 통섭적 삶이란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하면서 이루어나가는 피카소의 삶과 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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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최재천 교수님의 '통섭'이라는 개념이 한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이기종을 합하여 보다 새롭고, 편한 그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듯 했다.
한때 엄청난 바람이 불었던 '창의력'과 관련되어 이 또한 바람몰이를 하였다.
그런 저자가 이 통섭을 들고 '인생'에 대해 말한 책이 나왔다.
과연 인생에 있어서 '통섭'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통섭을 논하기 이전에 그는 학자였다.
전공은 자연, 생물.
어느 한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면 타 분야에서도 도가 틔인다고 했던가..
자연분야에서 탁월한 성공을 이룬 그가 자연의 한 부분인 '인간'에 대해서도 촌철과 같은 말들을 던진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지능'이 있기에 타생물과는 차별화된, 그리고 우월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분명 우리 인간도 포유류이다.
지구에서 가장 막내격인 동물이 지금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통섭에 대한 다소 애매했던 부분들이 이 책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는 듯 하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지금보다 나은, 그리고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그 누군가를, 무언가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다시 재고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의 편리를 위한 마구잡이식 개발이 결국 우리 인간을 해치고 있다.
한때 지구 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로 대량의 방목이 꼽힌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그 방목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 왜 애꿎은, 그리고 불쌍한 소,양을 탓하는지...
이 책은 그간 최재천 교수가 말한, 혹은 쓴 것들에 대해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그렇기에 조금은 다양한 그의 모습과 주관을 볼 수 있다.
그 전반적인 기조는 자연의 생태를 근간으로 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말하고 있다.
물론, '잘살고'의 기준이 '나만'이라면 해당되지 않겠지만,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 수 있을지언정 모두가 오랫동안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일단 '내'가, '인간'이 다른 사람보다,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분명 더 나은 것이 있긴 하겠지만, 부족한 것도 많다.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것이 세상이고, 자연이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인식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통섭적 인생'은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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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으로 받은 만큼 반드시 자연으로 되돌려 줘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간과하는 진리를 일깨워 주는 책. 이미 생명 과학 분야의 선두주자로서 널리 알려진 최재천 교수는 '사회 참여형' 교수라는 수식어까지 따라 다니는 멀티플레이어 학자이다. 최재천 교수가 말씀하시는 통섭적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또다시 느끼게 되었다.
자연 환경을 생각하고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얻어 쓴 것들은 반드시 자연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훼손을 해선 안 되고, 보다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함을 일깨워 주면서 책 속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동물들에게 보다 삶의 근원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다.
[통섭적 인생의 권유]는 그동안 최재천 교수 사회를 향해 발언한 것들을 12개 주제로 정리한 책이다. 환경이라는 문제를 바탕으로 21세기 교육, 기획 독서, 여성 시대, 통섭적인 경계를 허무는 삶등이 무엇인지 저자의 생각을 차분히 들려주고 있다. 최재천 교수의 책을 접할 때면 자신이 추구하는 전문 분야 이외에 다방면에 걸쳐, 특히 인문 분야에 박식함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을 늘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한 우물을 파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다방면에 걸쳐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만 100세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학문에서도 어느 한 분야만 고집해서 연구하기보다는 서로 학문의 벽을 낮추어 아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세가 바로 학문에 대한 통섭이다. 또한, 저자는 학문에만 통섭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러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주 흥미로는 삶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그 예로 들고 있다. 첫 번째가 '아인슈타인 형' 으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아주 결정적인 한 방으로 과학 분야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한 반면, '피카소 형' 은 한 방에 무언가를 이루기보다는 많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한 경우로 나눈다. 21세기는 아인슈타인 형 보다는 피카소 형이 더 맞아 두려워말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고 권유한다. 한 방에 큰 것을 치려고 하지말고, 하나하나 공을 받아서 치다보면 짧은 것, 긴 것, 큰 것도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흥미롭고 내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전공이 자연과 생명이다보니 이 책의 내용도 대부분 자연 환경에 대한 것으로 채워져 있지만, 특히 인간이 동물다운 삶을 살아갈 때가 가장 자연을 위하고 자신을 위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그래서 자연에서 배워라는 지론을 펼치고 있다. 정말 맞는 얘기고 옳은 얘기지만 왜 그러한 사실들을 망각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자연 파괴를 일삼는 삶을 살아가는지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게 된다.
최재천 교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독서다. 이 책에서도 독서에 대한 부분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그 중에서 '기획 독서' 라는 부분에선 지금까지 내가 해 온, 하고 있는 독서에 빨간 불이 켜지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이것저것 읽다보니 때론 머릿속에 복잡하고, 지칠 때도 많은데, 최재천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 이외에도 한 분야를 정해서 좀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하라고 권유한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되면서 이제는 한 가지 직업만을 갖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독서로 깊이 있게 관심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해 놓으면 얻게 되는 것도 많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이제는 독서를 취미가 아닌 기획 독서를 하자고 한다. 결국, 모든 것의 끝은 글쓰기에 있는 것으로 다양한 독서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고 끝을 맺고 있다. 맞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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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21세기는 융합형 인재,즉 통섭형 인재를 원한다.그러한 인재가 되길 원한다면 먼저 통섭적 인생을 살기 위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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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재천 저 <통섭적 인생의 권유 : 최재천 교수가 제안하는 희망 아젠다>를 읽고 / 2013. 03., 236쪽, 명진출판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통섭(統攝,Consilience)’의 개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를 ‘통섭의 대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통섭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만, 대체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학문적인 노력쯤으로 이해하며 우리 삶과는 별 상관없는 개념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이번 책을 통해 삶의 방식과 태도의 개념을 담은 ‘통섭적 인생’을 우리에게 권유한다. 그는 통섭적 인생을 "자연의 일부가 되어 더불어 사는 삶, 사물을 달리 볼 줄 아는 능력, 깨어 있는 마음으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라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주장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오랜 관찰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의 '통섭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발언을 12개의 항목으로 분류해 제시한다.
생물 다양성, 그린 비즈니스, 의생학(자연을 표절하는 학문), 미래형 인재, 기획 독서, 여성 시대, 경계를 허무는 삶 등 최재천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통섭적 인생’이란 과연 어떻게 사는 삶인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통섭적으로 산다는 것"의 첫 번째 의미는 자연의 법칙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도 결국엔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삶이라고 그는 말한다.
두 번째 의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피카소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피카소는 엄청난 다작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다. 최재천 교수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시도했던 피카소의 삶을 실천해 왔다. 한 우물만 파지 말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다양한 분야에 몸을 담그다 보면 어느새 통섭적 인생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21세기는 융합형 인재, 즉 통섭형 인재를 원하며, 그러한 인재가 되길 원한다면 먼저 통섭적 인생을 살기 위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사회적 발언은 자연과학의 내용과 과학적 방식을 적용하지 못하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와 출신자들에게 많은 시사점과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실사구시 없는 학문이나 정치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가 한 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표현한다"이다.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사랑하게된다는 것이며, 특히 보통은 무신경하게 흘려보내는 자연과 동식물, 어떤 사람이나 집단, 직업이나 활동을 구체적으로 잘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표현하고 행동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본 최재천 교수의 '통섭적 인생'의 긍정적인 면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가 자연과학자로서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이 아직 일정 수준에 오르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그런 평가를 내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사용하는 몇 가지 단어와 논리 때문이다.
그는 지구 생태계 전체가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으로 개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함을 역설하면서도 '21세기 성공학'을 내세운다. 그리고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궁극적인 원인으로 이미 이론적으로 폐기된 맬서스의 '인구론'을 제시한다.
나는 남보다 앞서 나가거나 더 많이 소유하거나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을 '성공'이라 부르는 논리가, 인간 사회에서 '근대적인 성공과 패배'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생각하는 근대적인 세계관이라 감히 말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생물학적 세계관, 통섭적 세계관은 다양성과 상호의존성이 적용되는 인간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즉 다양성과 상호의존성(공생)에 기여하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자 성공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잘못된 전제와 논리적 허점이 가득하다. 인구가 많아서 제3세계 10억 인구가 굶어죽는 것이 아니고 생물 다양성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식량생산이 잘못된 사회경제구조로 인하여 일부 계층에게 독점되기 때문이고 사람이 아닌 사육용 동물의 먹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생물 다양성은 '값싸고 다량의 동식물'을 기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다국적 금융자본 때문인 것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 갈등의 징후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해법에도 무언가 미진하다. "눈앞에 놓인 모든 것을 일단 거머쥐었다가 슬며시 조금씩 내놓는 50~60세대와는 달리, 20~30세대는 자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따지지 않고 달려가는 공감의 세대다. 20~30세대여, 앞 세대가 아닌 세계와 상대하라."
50~60 세대 중에서도 '모든 것을 거머쥔' 계층이 있고 단칸방에서, 지하에서, 실업자로, 국민연금도 없이 고통받는 계층이 있다.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20~30 세대는 앞 세대를 상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앞 세대와 공감하고 상생하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해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계층간에 화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서 세계에 나가 다른 국가의 20~30 세대와 경쟁하라는 것이 과연 통섭적 인생관인지 잘 모르겠다. [ 2013년 5월 0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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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문명은 한결같이 자연환경을 파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p.55) 자기환경을 파괴한 문명을 결국 붕괴한다는 것이다.(p.96) 다윈과 환경과 통섭 미국 학생들은 전과(轉科)를 밥먹듯이 한다... 그렇게 전공을 바꾸면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p.135) 왜 그럴까? 우리가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에 집중하고 답을 넣으면 계산기마냥 결과값을 내놓는 기술을 배우는 동안 미국의 학생들은 원리를 배운다. 이는 수학의 영역이면서 인문의 영역이기도 하다. 미국의 학생들의 공통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들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학문과 학문을 넘나든다. 다윈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굳이 미국의 학생들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통섭'이라는 개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통섭형 인재는 바로 이러한 공통 분모를 가진 데서 출발한다. 책은 기고문이나 에세이를 모았는데 읽다보면 다윈과 환경과 통섭이 묘하게 얽혀들어온다.
아바타 제작진에 우리나라 사람도 많다는데...
![]() [EBS 기획특강, 공감의 시대, 왜 다윈인가 中] 아바타 제작진의 90%가 우리였다 한들 사람들은 제임스 카메론을 기억하지 우리 나라 제작진은 기억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것을 환상적으로 조합 했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요한 것은 '통섭'이라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만 잘 하고, 과학기술만 뛰어나다고 '아바타'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물론 기술적인 우수성은 기본으로 갖추고 말이다. 그 두가지가 서로 통섭되어 과학기술 위에 인문학적 소양이 얹어져야 하는 것이다.
국민소득 이만달러를 왜 넘지 못하는가
대한민국 국민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도 없고, 대한민국 사람보다 머리 좋은 민족도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만달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국민 모두가 하청만 해서는 이만달러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없다. 우리 중에서 스티브 잡스나 제임스 카메룬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저자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이다. 이점이 우리에게 지금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이유이다. 21세기는 전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분야와의 소통이 가능한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이 말은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님이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야만 진정 깊은 우물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장한나 양은 하버드 대학교 음악 전공이 아닌, 철학 전공을 선택했다. 한 우물을 확실하게 파면서 옆에서 다른 우물을 파는 사람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p.124)
통섭형 인재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대통령 선거에서 아깝게 패배한 엘고어는 어떻게 노벨상을 받았을까? 엘고어는 환경에 대한 유명한 책을 상원의원 시절에 썼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딱딱한 사람이 어떻게 영화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엘고어의 대학 룸메이트는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토미리 존스 였다. 하버드의 방식은 이런 식이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이 공부 잘 하는 애들끼리만 모여 있다면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애들과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엘고어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저자는 보는 것이다.
비록 이 사례는 상징적이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바로 통섭이라는 화두는 지나가는 유행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교육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학문과 인문이 통섭하면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통섭과 공생은 다른 말 처럼 들리지만 결국은 하나의 귀결점을 향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 동안 사람들에게 해왔던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통섭'이고, 그 바탕에서는 '호모 심비우스'라는 공생하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알면 사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