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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달콤하다고? 누가 그래?! 지금 내 기억에 남은 연애는, 찌질했다. 바람피우다 걸린 애인은 삼자대면하고서는 던져버렸다. 헤어지는 마당에 자동차 기름값이 없다고 말한 남자에게는 선심이라도 쓰듯 돈 3만원을 면상에 날려준 적도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먼저 고백했던 남자에게는 미안하다는 소리를 끝으로 뒤돌아서게 만들었었다. 헤어지면서,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래.” 따위는 없었다. 그 행복은 나 자신에게 빌어주어야 하는 주문이 아니었던가? ‘너 따위’에게 쏟아 부은 내 열정과 시간이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으니까. 악~! 억울해!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누군가와 헤어지고 화를 내고 불행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행복해지고 싶다며 다시 또 연애를 하더라. (이런 아이러니라니!) 그렇게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쓴맛 단맛 다 보면서 다시 또 헤어지기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하고. 아직까지 내가 결혼을 안했으니, 나 같은 경우 그 연애의 끝은 이별이었고 또 다른 연애로 이어져왔을 뿐이다. 이십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애를 하면 꼭 결혼을 하는 줄 알았다. (이런 철부지!) 연애는 영화나 드라마의 법칙처럼 나에게도 당연히 와주는 줄 알았다니까! (아저씨는 원빈 같아야 하는 거 아니었어?!) 남자들은 열심히 스펙을 키우듯이 이벤트의 제왕이라는 모 배우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잠시 잊었었구나.) 여자와 남자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평생 ‘당신만을 사랑해’를 속삭이며 사는 줄 알았단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도 너무 어렸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어.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이 연애와 결혼에 목숨 걸듯 매달리는 이유를 잠깐이나마 이해하고 싶기도 했다. 한때 나의 연애를 보는 듯 하기도 하면서, 안타까움에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연애를 위해, 이성을 만나기 위해 그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이 사뭇 전투적으로 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서른 초반의 주인공들이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연애를 갈구하는 모습들은 처절하고 아프기까지 했다. 연애가 그리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덤비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에, 나한테까지 우울함이 전염되는 듯했다. 그렇게도 연애를 바라던 그녀들에게는 로맨스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운명 같은 판타지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는, 그녀들에게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하늘에서 남자가 비처럼 내려와 줘야 되는 거 아냐?!(노래:버블시스터즈) It's raining~ men~ Amen!!! 하다못해 하루카와씨(「위로해줄까?」)라도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런 치사빤쓰~!
그래서일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렇게까지 연애를 해야 해? 결혼 못하면 죽어?’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또 다른 그녀들의 이야기에 태클을 걸고 싶기도 했다. 노민영(드라마 <내 연애의 모든 것>)의 말처럼, 배란기에 가끔 난자가 요동치는 생리적 현상으로 야한 꿈을 꾼다고 할지라도! 연애 잡지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접근법으로 “저어... 지금 몇 시예요?”라고 구질구질하게 작업하는 히사코(「지금 몇 시예요?」)나 기둥서방이라 불리는 남편을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취미생활을 이어주는 야스에(「그래도 좋아해」)를, 내 마음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들이 떨쳐내고 싶어 안달하는 외로움이나 생리현상 보다는, 바보 같이 남자 따위나 찾아 헤매는 것 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아니었어? 그녀들에 대한 그런 반감으로, “연애(결혼)가 달콤하다고 누가 그래?!”하고 반항하듯 외치던 나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힘들었다. 주인공들은 그저, 서로가 서로를 찾아 해맬 뿐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필요할 때 시간을 맞추고 몸을 맞추듯 그렇게... 마음이 동하여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남자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갈구하는 것만 같아서, 도대체 어떤 상황이 그녀들을 저렇게도 찌질하게 만들었나 싶어서 말이다. 아,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고 지독하게 슬프기만 하다. 그런데다가,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렇게까지 죽어라 갈망하는데 왜 그 끝은 로맨틱한 해피엔딩으로 다다르지 못했던 것이냐고!
서른 중반에 다다라서야 달라지는 마음이었다. 연애에 쿨하게 마음먹으면서도,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항상 내 연애의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니, 마지막이길 바랬었다. 내가 생각하고 믿어 의심치 않는 연애의 단맛만을 남겨주기를 그렇게도 바랐건만, 나의 연애는 또 다시 올 마지막 연애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녀들에게 오지 않았던 해피엔딩은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던 것이었다. (아, 내 연애도 정말 찌질했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서른 넘어서 내가 몇 명이나 만났지? (막차를 벌써 몇 대나 보낸 거야?) 내리는 함박눈에 ‘서른 넘어 내리는 함박눈은 차분했다.’라고 느끼는 사이조(「서른 넘어 함박눈」)의 건조함에 수긍의 의미를 담아보다가도, 서른 초입의 그녀들이 남자에 목을 매고 연애에 안달하는 것을 공감할 수밖에 없던 부분은 여기서 드러났다. 앞으로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보장할 수 없는 인연에 겁나고, 겹겹이 쌓여올 외로움이 두렵고, 남들과 조금 다르게 가는 모양새가 하자품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여겨질 때마다, 씨가 말랐던 연애유전자도 봄바람 타고 날아오는 것이다. 그 씨를 품고 어서 싹을 틔워! 하고 말이다.
자존심도 없다고 그녀들을 한껏 나무랐다가, ‘아, 그래도 연애는 하면서 살아야 해.’라고 생각을 전환시키는, 낼 모레 마흔을 바라보는 이 늙은 여자 사람의 마음을 어쩔까나. 바로 조금 전까지, “돈만 있으면 혼자 살아도 괜찮아.”라고 쿵짝이며 나와 말을 맞추던 엄마가 나의 이런 변덕스러운 마음을 듣는다면 등짝을 후려칠 것 같지만, 뭐 어쩌겠나... 쩝~ 이들이 보여주는 연애는 하나같이 달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륜이 묻어나는 그녀들의 현실적인 삶과 궁색한 연애 속에서도, ‘그래도 사랑은 달콤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던가, ‘연애라도 하면서 살아야 재미나지.’라는 한줄기 말랑말랑함은 피어오른다. 가출한 엄마가 딸에게 남자를 보내준 것처럼, 세숫대야 같은 넓은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우동을 먹던 미카코에게는 새롭게 연애가 시작될 것 같다(「깜짝 우동」). 뭔가 대단한 이상을 찾아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보험 같은 상대의 고양이를 대신하고자 마음먹은 노부코(「바람구멍」)는 무의미한 ‘빨간 셔츠’를 버렸다. 무료해도, 재미없어도, 이 사람이 최선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다시 시작하고 부딪히는 것이 지금 그녀들의 선택이었다. 그녀들의 이런 방향 전환이 지극히 현실적인 연애라 하더라도, 다시 찌질해지더라도, 연애 그것, 그래도 할 만 하다는 거 아닐까? 인생은 그런 것이니까, 인생의 일부분인 연애도 그런 것일 테니까.
판타지라도 펼쳐져주길 바라던 이십대의 연애가 끝나고, 자존심 세우고 밀당하다가 놓쳐버린 인연들과의 삼십대의 시간은 지나갔고, 연애의 쓴맛만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서글픈 내일 모레 사십대...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김동률의 노래에 뻑이 가는, 나는 감성이 충만한, 아직은 삼십대, 여자다. 그래서! 매번 마지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열정을 불사르는 그녀들이 갈구하는 연애에 나도 편승해보련다. 삼십대의 마지막인 올해, 연애도 사랑도 마지막이라 부를 수 있는 남자 만나야겠다. 만날 수 있겠지? 아직 나에게 올 해피엔딩은 남아있으니까!
결코 낭만적이지 못했던 그녀들의 연애가 가슴 속에 파고드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그녀들과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그녀들에게는 공감을, 그녀들의 그런 행동을 이해 못할 남자들에게는 여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우울하고 찌질한 연애마저도 웃으면서 즐기게 해주는 다나베 세이코의 연륜 있는 연애지침서. 모두 정독할지어니다!
그나저나, 괜히 이 책 때문에 오늘밤 야한 꿈을 꾸는 건 아니야?! 아! 나 오늘, 난자가 요동칠 때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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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어린 시절 내 장래희망 중 하나는 아내 혹은 주부였다. 쉽게 말해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흔히 원하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꿈은 당연히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서른이 되는 시점에서부터 그 꿈은 흔적을 감췄다. 이 정도 나이가 되고 보니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걸까 같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지인, 가족, 친척들은 여전히 결혼 안 하느냐 성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너 시집 안가냐?"이니 요즘에는 누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싫어진다. 남의 속도 모르고 말이다. 얼마 전 오래 만났던 친구와 이별을 했다. 긴 연애 시간이 주는 익숙함에 서로에게 소홀해졌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지니 소홀해졌고 소홀해지니 처음의 불타오르던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한겨울에 내리는 폭설보다도 차갑게 식어버린 심장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나의 그럴듯한 변명이며 사랑에 대한 예의를 져버린 처사일는지도 모른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사랑과 이별의 상관관계라는 억지를 부리며 "다 그런 거지 뭐." 뱉어내는 지금 내 마음에는 서른 넘어 내리는 함박눈 같은 현실이 소복소복 잘도 쌓이고 있다. 이별 직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연애는 30대 초반이 되어 끝났고 결혼에 대한 환상은 버린 지 오래였다. 만성적 익숙함이 주는 무덤덤함에서 헤어나오고 한동안은 홀가분한 자유를 마음껏 즐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를 짓누르는 생각은 '내가 정말 사랑했을까'이다. 내가 만났던, 사랑했다고 믿었던, 그들을 난 정말 사랑했을까? 사랑받는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사랑한다고 믿었던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들이 드문드문 고개를 든다.
이제 나는 연애(사랑)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자꾸만 드러나는 로맨스와 현실의 간극에서 연애의 재미, 능동적 자세를 잃어가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서른 넘은 여자들의 연애란 과연 무엇이길래?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사랑 그 자체, 내가 했던 행위가 사랑이 맞긴 한 걸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나에게는 그 어떤 단서도 없다. 단지 내 나이를 사랑하고 어떤 시기에 어떠한 상대를 만나든지 열중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다나베 세이코식 연애지침이 남았을 뿐이다.『서른 넘어 함박눈』은 제목처럼 서른 넘은 여자들의 연애관과 삶에 임하는 가치관 등을 9편의 단편을 통해 다루고 있다. 읽기 전에는 알콩달콩한 러브스토리는 아닐지라도 남녀의 연애가 주가 되는 스토리일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한 각 단편은 남녀보다는 서른 넘은 여자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30대 여자들의 은밀한 마음속까지 훔쳐보는 기분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다가도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단편도 있었다. 후반 작품들이 주로 그랬는데 <쉬운 남자가 좋은 남자>와 <그래도 좋아해>, <위로해줄까> 같은 작품이었다. <쉬운 남자가 좋은 남자>와 <그래도 좋아해>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여자의 상대, 남자들이 모두 바람기가 다분하다는 거다. 그렇지만 그 남자의 장점, 쉽고 편한 상대였기에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여자들, 그리고 자신의 딸도 그런 부담 없는 상대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결혼 생활, 이런 쉬운 남자는 이야기로써 보는 것만으로 만족 하고 싶다. 만약 내 상황이 된다면, 상상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푸념을 하는 자체가 나는 아직 세상을 더 살아야 하는, 연륜이 부족한 나이라서인지도 모른다. 다만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로맨스와 현실적 연.애.의 간극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젊은 여자라고 해두자. 가슴이 두근거릴 연애 소설을 기대한다면 이 책의 분홍색 표지가 전해주는 살랑거림으로 만족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만났던 이성들을 사랑했던 게 맞을까 같은 낭만적 상상에서 기인하는 여인들의 신파 같은 것도 전무하다. 대신 삶과 사랑에 달관한, 사회에 치이고 사랑에 치인 서른 넘은 여자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다. 방식 안에는 사랑에 임하는 자세, 이성을 보는 눈, 결혼에 대한 가치관 등이 어떤 포장도 없이 날 것 그대로 조금은 쌉싸래하게 그려져 있다.
나도 어떤 때는 히사코(<지금 몇시에요?>)처럼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을 꿈꾼다. 그녀처럼 '저어, 지금 몇 시에요?' 할, 낯짝에 열꽃 필 행동은 할 수 없지만 길을 걷다가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출퇴근 길 혼잡한 대중교통 안에서 내릴 때 언젠가 유행했던 광고 속 대사처럼 "저 이번에 내려요." 와 함께 자신의 휴대폰을 내 가방 속으로 점프시키는 이성이 아직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같은 것 말이다. 또 다케우치(<점프의 맛>)처럼 관음증까지는 아니지만 이성과 스스럼없이 수위가 있는 야한 농담을 주고받는 넉넉한 모습도 가끔은 보이는 것 같다. 그럴 때면 다케우치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그런 연령대가 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아직도, 룸메이트인 루미코(<루미코의 방>)의 이성 친구가 벗어놓고 간 특대 팬티를 보고 설렘과 야릇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나'처럼 이성에 대해 특정한 환상을 품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의 속옷을 보고 그런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모습은 모르지만 목소리, 글,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 등을 통해서다. 대부분 그런 것들을 통해 촉발되는 환상은 환상으로 남는 게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그래서 노부코(<바람구멍>) 같은 인물에게 큰 공감을 하는 것일 테다. 점점 레이더망에 걸려드는 물고기는 줄어들고 현재 만나는 상대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더 괜찮은 이성이 있지는 않을까 조바심내는 반면 외롭지만 자유로운 솔로 인생으로 쭉 나아갈 것이냐 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는 30대 여자의 현실적 마음 말이다.
나는 정말로 내 나이를 잊고 산다. 그래서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서른이 막 넘었을 때는 나이가 주는 무게가 참 싫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난 서른 넘은 여자지만 서른이라는 고개를 무사히 넘은 서른 '너머'의 여자일 뿐이라고. 지나온 내 사랑이 이제는 점점 흐릿해져 가고 정말 사랑했던 것일까 같은 의문이 가끔 꼬리를 내밀지만 아무렴 어떠하랴 싶다. 세상에 남자는 많고(아직은), 나는 아직 창창한 나이고(아직은...), 나는 아직 동안의 외모를 자랑하는(믿거나 말거나...) 서른 '너머'의 사랑하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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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면 봄이라고 할 만한 날씨에 꽃샘추위로 눈발이 휘날리는 날씨다. '4월의 눈'이라니. 남쪽 지방엔 벚꽃이 벌써 피어 비로 인해 꽃비로 다 흩어져 버리고, 윗 지방엔 꽃망울 위에 눈이 내려앉은 정경이 보인다. 사랑은 이처럼 4월의 눈처럼 따스하면서도 춥고 시린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이십 대의 사랑은 열정만으로 가득찼지만, 삼십 대에 하는 사랑은 사랑의 쓴맛, 단맛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무턱대고 다가가기도 겁나고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엔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짝을 이루고싶은 열망으로 외롭고 쓸쓸한 나날을 보내기도 할것이다. 물론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해서, 서른 넘어 홀로 인 상태를 100%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공감하지도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일거라는 생각은 한다.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로 깊은 감동을 받았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저자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연애소설이다. 그것도 서른이 넘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들의 이야기인 아홉 편의 연애소설들을 묶은 책이다. 책에서 서른 넘은 여자 주인공들은 모두 누군가와 사랑하고 싶은, 결혼하고 싶은, 그러나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그들의 외로움 짙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연하게 누군가를 만나게 되길 기다리는 모습들. 먼 나라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들의 모습들이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며 남자들에게 '지금 몇시에요?'라고 말걸으며, 여행의 쓸쓸함, 새로운 상대와의 대화를 하고 싶은 서른 넘은 여자의 이야기인 「지금 몇시예요?」의 같은 경우, 오히려 전혀 생각지 못한 상대를 우연히 만나 동행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혼자 밥 먹어야 하고, 여러 명이서 여행 온 사람들을 흐뭇한 모습으로, 약간은 부러운 모습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인게 너무 외로울 때 우리는 여행지에서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곤 한다. 오래 전 혼자 여행할 때 여행지에서 생소한 이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묵었던 일이 떠오르기도 했고, 여행지에서 동향의 동갑내기들을 만나 여름 여행을 함께 했던 일이 생각나기도 했던 내용이었다.
「루미코의 방」에서는 결벽증에 걸린 여자 주인공이 우연히 루미코의 방을 청소하면서 발견하게 된 아주 덩치가 큰 남자의 팬티를 발견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를 잠시 동경했던 이야기이다. 보자기처럼 커다란 팬티, 아버지의 팬티처럼 보이는 그것을 그녀는 마치 자신의 아버지 팬티인양 그렇게 동경했던 것이다.
남녀간의 연애이야기만 다룬게 아닌 모녀관계를 다시 짚어볼 수 있는 「깜짝 우동」란 제목의 이야기도 있다. 서른 넘어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결혼을 못하고 있는 이유가 꼭 엄마때문인 것만 같다. 결혼할 뻔했던 옛남자가 다른데로 발령이 나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사내아이까지 낳았다는 소식에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 엄마가 가출해버렸다. 처음엔 저녁이면 들어오겠지 했지만 엄마가 어디 간 줄도 모르겠고, 무작정 엄마 찾아간 곳에서 한 남자를 만나 엄마를 찾아 다니고, 엄마는 곧 집에 들어온다. 그때 남자와 함께 먹었던 우동집 이름이 '깜짝 우동'이다. 우동을 먹으며 도쿄의 우동이야기를 했던 엄마를 생각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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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코 세이코의 연애소설 들의 주인공은 다들 평범한 보통의 여자들이다. 빼어난 미모를 간직한 여자도 아니고, 허리도 둥그렇고 약간은 통통하게 보이는 서른 넘은 여자들인 것이다. 남자들이 외모에 혹할 여자도 아닌, 나이도 싱그럽기한 한 나이가 아닌 보통의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런 여자 주인공들을 보며 우리는 바로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다나코 세이코가 들려주는 연애 이야기들은 우울하거나 하지 않고, 시종일관 위트가 있고 유쾌하다.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도 심각하게 그리지 않고 가볍게 퉁~ 하고 치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옮긴이는 책의 말미에 이 책은 연애의 환상이 아니라 연애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연애의 온도'가 현실적인 연애를 그렸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서른 넘어 함박눈』도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 일어남직한 이야기들이었다. 만약 내가 서른 즈음의 미혼 여자라면,,,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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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3년쯤 지났을 때,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사랑 말고, 연애를 하고 싶어.” 그때 내 나이 서른하나. 그리고 친구의 나이도 서른하나. 그 당시 나는 충격을 받았었다. 사랑과 연애는 같은 말 아닐까? 그리고 결혼한 사람이 무슨 연애?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연애만 가능한 것인지 내 고지식한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연애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는 뭐랄까? 사랑을 시작하기 전 서로의 마음을 떠보고, 나와 마음이 맞을지, 나와 취미나 특기가 맞을지, 나의 성격을 받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상대의 투정이나 성격을 맞출 수 있는지, 간도 보고 뜸도 들이는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연애는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살벌하다.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기까지 오로지 그 사람만 생각하는 시간이 바로 연애 아닐까?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집착이 되고, 늘어지지만, 연애는 깔끔하고 담백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아직도 나는 연애라는 말에 가슴이 뛴다. 왠지 상큼하고 발랄하고, 신선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모든 연애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톡톡 튀는 건 아닌 것 같다. 서른하나, 그리고 서른 즈음의 연애는 내가 상상하는 것만큼 달달하지 않다. 뭐랄까? 생활 밀착형 연애라고나 할까? 모르는 남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여자, 친구의 방에서 나온 무지 큰(?) 흰색 팬티를 보며 환상을 품는 여자, 몇 명의 남자를 두고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인지 재는 여자, 지금 현재 연애도 못하고 혼자인 것이 모두 엄마 탓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어린 남자를 좋아하는 듯 하지만 실제는 다른 남자에게 연심을 품어 석 달 동안 시를 쓴 여자 선배의 이야기, 결혼했지만 여전히 지지고 볶는 부부의 이야기 등 어느 하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연애는 없다.
어쩜 서른 이란 나이가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랑 하나만 바라보기엔 좀 나이가 먹은 듯하고, 그렇다고 이런 저런 배경을 따지자니 좋은 환경(?)의 남자들은 모두 유부남이 되어버린 쓸쓸함... 환상을 품고 연애를 하기엔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기만 하다. 그래서 서른의 사랑은, 연애는 20대의 사랑과는 좀 다른 빛깔을 선사하게 되는 것 같다. 현실적이면서 냉정하고, 냉정하면서 점점 차가워지는 연애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서른의 연애가 무조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른 이란 나이는 여자에겐 사회적 지위나 환경이 견고해지기 때문에, 보다 성숙하고 보다 농밀한 연애를 누릴 수 있는 나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할 것 같은 20대와 다르게 30대의 연애는 보다 당당해 보인다고 나 할까?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서른 즈음 여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표현하고 있다. 연애에 실패하고, 남자에게 바람 맞고, 상처 입어도 또 새롭게 연애를 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잘 그려낸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고 서른을 보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 역시 그녀들과 똑같이 연애에 실패하고 또 다시 연애를 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지 않았을까? 지금도 연애라는 말이 참 좋다. 누군가와 다시 연애를 할 수 없지만, 연애를 시작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여전히 두근거리고 싶은 서른의 그녀들. 나는 서른의 연애를 꿈꾸는 그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많이 사랑하고, 많은 연애를 하면서 보내라고. 사랑할 때, 연애할 때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그녀가 되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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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언니를 통해 연애, 그고통을 먼저 알게 되었다.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달고도 맵고, 행복하면서 불행한것인지를 난 몰랐다. 물밖에 있으면 물인것은 알지만 그물이 얼마나 깊은지, 차가운지, 깨끗한지를 모르는 것처럼 내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첨벙첨벙 들어가기까지는 판단을 할수 없는것 처럼 말이다. 내바로위의 언니는 처음 직장을 들어가서 남자를 사귀게 되면서 갑자기 생기있어지고 보통때 말도 잘 안하고 집과 회사밖에 몰랐는데 어느날 부터 밤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외출을 했다. 그것이 연애라는 것을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 알게되었지만 그때는 나랑 놀아주지 않는 언니가 미웠다. 사실 우리 자매는 친밀도가 사귀는 사이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각별했다. 초등학교때 부터 중학교를 가서도 다른 학교였지만 꼭 만나서 하교할 정도로 말이다. 나밖에 몰랐고 나랑 모든것을 공유하던 언니가 비밀이 생기고 나보다 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서 나는 사랑은 넓은 것이 아니라 한사람을 온통 채우기위해서 그자리에 다른 사람의 자리는 없는 지독한 감정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또한 언니의 사랑이 슬픈 연애사로 끝나버려 그아픔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는 언니를 보면서 통쾌함과 함께 바보 같다고 " 그깟 남자하나에 저렇게 목을 매나" 싶었다. 사랑의 감정을 알기전에 언니와의 사랑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언니의 지독한 사랑을 보면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손해를 보는 장사라는 개념부터 자리를 잡아 버렸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한창 연애를 할때도,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을때도 어색하고 싫었고 버려질까 두려움에 때문에 쉬운 상대만 고르는 단기간의 사랑으로 끝내버렸다 .
이책에서 여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나이 서른의 고개를 통해서 즉 때를 놓친 여인들 사랑이야기라 더욱 호감이 갔으며 더군다나 평범한 지지고 뽁는 사랑이야기가 아닌 상처를 지녔거나 특이한 사랑을 하거나 등등의 특이한 소재가 맘에 들었다. 4월 봄이 시작하는 연인들의 계절에 핑크빛 표지와 함께 예사롭지 않은 사랑이야기들은 그렇게 내가슴을 두들겼다. 9편의 사랑이야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표지와는 다른 반전의 이야기들이 가득한데 이작가의 특징이 그런하가 싶다. 연애이야기의 달달함은 " 깜짝우동에서 나오는 남녀관계 정도에서 잠깐 보여주고 그나머지는 남자들에게 항상 돌아다니면서 " 몇시예요" 하면서 들이대는 여성, 혼자살면서 옆집벾에 귀를 밖고 열심히 남의 애정사에 귀를 기울이는 변태적인 여성, 바람기 많고 게으른 남편이지만 못난 자신을 안아줄 사람은 이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그냥 사는 여자 등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짝짓기는 의자게임과 같이 누군가 빨리 앉지 않으면 그자리에 못 앉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는 슬픈 연애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랑은 왜? 연애는 왜? 라는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모든 남녀들에게 사랑에 대한 환상보다는 사랑따위는 그냥 누가 누군가를 보듬고 보살피는 감정의 결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바람구멍에 나오는 그녀는 가끔 자기도 하고 서로에게 결혼이야기도 농담처럼 하지만 서로를 미친듯이 불타오르게 하는 열정도 없고 남에게 서로 내어주는 것은 또한 용납되지 않는 어색한 관계를 이어간다. 그래서 그남자의 집에 갔다 내방에 들어오면 사랑으로 충만해 잠이 드는것이 아닌 어디추운 곳에서 바람을 너무 맞고 있다가 뼈속 깊이 바람구멍만 만들고 온것 같은 느낌을 받는 대목을 이야기 한다.
" 거릴낄 것이 없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그의 집에 가서 잘 수도 있고 함께 밖을 돌아다닐 수 도 있고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이런 특별한 위치의 남자가 있어서 내 숨통이 좀 트인달까, 그런정도의 사이인 것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것도 없이 사랑은 아닌데 그사람은 편하고 그런 애매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슬프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죽네 사네 하는 심각함이 없어서 편하게 읽으면서도 깊은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랑이야기중 " 깜짝우동"의 사랑이야기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만 아니라 모녀간의 사랑이야기도 다루는 형식이 깜찍하고 귀여워서 읽으면서 내내 웃음지게 만들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미카코는 자신이 결혼을 못한것을 엄마때문이라고 여기는 불만을 품고 살다가 어느날 저녁 사소한 말다툼이 커져 결국 엄마가 가출해버리고 만다. 엄마를 찾으러 다니는 길에 우연히 만난 남자와 같이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속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깜짝우동집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남자가 말하는 깜짝우동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뿐만아니라 사람관계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 같아서 이 대목이 맘에 든다 .
우왕 엄청 큰 그릇이네 하고 우선 깜짝 놀라죠. 먹어보고 맛있어서 또 깜짝 놀라요. 다 먹으면 바닥이 얕아서 깜짝 놀라죠 그러고 나면 맨 밑바닥에 " 깜짝" 이라는 글씨가 보여요.
사랑 또한 어느날 순간 다가와서 깜짝 놀라고 사랑을 하게 되면 너무나 달콤하고 짜릿해서 놀라고 , 사랑이 끝나면 아파서 놀라고 또는 결혼을 하면 사랑이 평범한 감정이라는 것에 놀라고 오랜기간이 지난후 어느날 내가 한게 사랑이었나? 라는 지금의 상태에 놀라는것을 깜짝우동이라는 그릇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 같다 .
이같이 여러가지 사랑이야기, 실생활에서 서른넘은 여자들이 겪게 되는 연애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사랑은 말이야, 이런거야"라고 정의 내릴수 없는 순간의 감정들이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인생이라는 깜짝우동같이 큰그릇을 받아들인 순간 우리는 계속 그그릇을 내려 놓을 날까지 끊임없이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것을 잊지말라는 당부같다.
" 자 여러분 깜짝우동 한그릇들 하실 준비되셨나요? " 라고 말이다 . |
#. 서른에 대한 환상 어릴 적 꿈꾸었던 '서른'은 참으로 멋진 모습이었다. 삶에 여유가 있고, 커리어가 어느 정도 완성되고, 남 부럽지 않은 성취를 이루며 그렇게 시간을 누리는 삶. 그게 나의 어릴 적 서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십대가 지나면서 서른에 대한 환상이 점차 깨지고 있다. (또한 이 책도 환상을 와장창 깨주는 데 한 몫 하고 있다!)
‘서른’은 바쁘다. 갓 대학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업무에 시달리며, 영어학원과 야근과 눈치와 사바사바로 연명하며, 지지부진한 연애를 이어가고, 연애와 결혼의 긴장을 조율하며, 그 와중에 어장관리(!)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하며, 취미 문화 여가 생활을 즐기고, 유머와 트렌드까지 재빠르게 파악하려면 참으로 바쁘다.
이 시대의 ‘서른들’이 무엇 하나라도 잊을까봐 서점에 가면 친절하게도 ‘서른에 해야 할 일들’을 빼곡이 적어놓은 책들, 서른살에게 묻고 답한 책들이 수두룩벅적이다.
#. ‘설운’ 서른 하지만 서른은 서럽다. (서러워서 서른 살인가?)
해야할 일은 많은데 되지 않는 일들이 투성이라 늘 좌절한다. 공부도, 직장생활도, 연애도, 결혼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번번이 안되고, 판판이 깨지는 서른, 그래서 서른은 외롭다. 특별히 혼자인 게 좋아서 혼자 지내는 건 아니다. 부득이하게 혼자인 것이다. 뭘 하든 혼자다. 혼잣말, 홀로 잠, 홀로 웃기, 홀로 울기, 홀로 먹기, 홀로 텔레비전(그런 말이 있다면), 홀로 끄덕이기, 홀로 신음하기(이상한 걸 상상하면 곤란하지만). - 「바람 구멍」p.63 - 소설집 『서른 넘어 함박눈』에는 이렇게 외로운 서른 너머의 삶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러 외로움을 선택한 것이 아닌 ‘부득이하게’ 외로운, 그렇게 구멍이 뻥뻥 뚫린 사람들 말이다. 아홉 개의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부득이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혼자 여행하며 시간을 묻고 또 묻는 히사코(「지금 몇시예요 」), 너무 깨끗하게 치우면 외로워져 울고싶은 노부코(「바람 구멍」), 자신의 만담이 낡았음을 직시하며 세월을 느끼는 하나얏코(「쉬운 남자가 좋은 남자」), 옆집 미즈노 군을 사생활을 엿듣는 나(「점프의 맛」), 점이 아닌 선으로 만나며 과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하루카와(「위로해줄까 」) 등 이러한 주인공들의 외로움은 이상하리만큼 우리 일상의 외로움과도 퍽 맞닿아있다. 각 사람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거나 초현실적이지 않고, 그저 현실을 잘 살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 그래도 함박눈이 펑펑! 하지만 다나베 세이코 소설의 저력은 서러움을 서러움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연민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잘 수용하고 있다. 우리네 일상처럼 서럽고 외로운 서른 너머의 삶들을 주인공들은 잘 살아내 주고 있다. (어쩌면 내 몫까지) 혼자인 현실을 수용하고, 느껴지는 감정들을 수용하고, 바람 피는 남편까지(!) 수용한다. 그 뒤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즐거워졌다. “저어…… 지금 몇시예요?” “몇시입니다!” “고마워요!” 이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인간 간의 따스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 「지금 몇 시예요?」 p.19 - 고독을 느껴야 하는 대목에서 연대감을 느끼는 모순이라니!
주인공들은 현실을 수용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서러움 대신 유머와 명랑함까지도 발산하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활력까지 얻고 있는 주인공들. 긍정과 유머의 저력을 지닌 명랑한 주인공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애정이 간다. 그런데 왜 하필 함박눈일까 곰곰이 작가의 의도를 셈하여 본다.
이것이 바로 낭만과 현실의 차이가 아닐까? 함박눈은 바로 '낭만'의 상징! 하지만, 낭만이 아닌 '실제'의 함박눈은 전혀 낭만스럽지가 않다. 외로워도 펑펑, 슬퍼도 펑펑, 아파도 펑펑, 나랑 상관없이 펑펑펑 내리는 것이 바로 이 함박눈이기 때문이다. 마치 ‘서른 너머의 삶’을 핑크빛, 혹은 푸른빛(‘청사진’의 의미로)의 낭만으로 기대하지만, 정작 우리가 꿈꿔왔던 낭만적인 그 삶은 ‘그저 외롭고 슬프고 아픈 현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발 딛고, 현실을 끌어 안아 명랑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다시 ‘낭만의 삶’이라고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세이코 소설에서의 주인공들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낭만의 세계(실제로는 현실을)를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제각각’ 함박눈 이렇게 세 사람 위에 제각각 함박눈이 내리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 「서른 너머 함박눈」p.156 - 그런데, 이러한 함박눈이 제각각 머리 위에 내리고 있다. (상상해 보니 참 귀여운 장면이다!) 그러고보면 자신의 삶도 제각각이고, 외로움도 제각각인데 말이다. 세 사람 위에 제각각 내리는 함박눈. 이 대목에서는 왠지... 작가가 서른 너머의 사람들을 ‘제각각’ 응원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이코 이 사람 정말 따뜻한 사람이구나! 나 또한 작가처럼 서른 너머의 각 사람을 응원하며 ‘제각각’ 끌어 안아주고 싶은 느낌이 드는 건 봄날의 기분 탓일까 :) 훈훈한 마음으로 핑크빛 책장을 덮는다. #. 나의 서른 이제 ‘나의 서른’을 예상해본다.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백마 탄, 아니 벤츠 탄 왕자님, 이런 왕자님과의 딴~딴~따단 웨딩마치. 퍽이나! 꿈 깨자. 서른 살 따위에 낭만은 없다. 그저 나는 나의 외로움을 즐기면서, 외로워하는 찌질한 친구들을 만나 커피 마시고, 수다 떨고, 쇼핑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함박눈을 펑펑 맞기를 기대해본다. 아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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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글쎄, 밝혀도 된다니까
읽고 바로 재독에 들어갔다. 노처녀가 결코 루저가 아닌 기회가 열린 탐색의 자유이용권을 가진 자임을 새롭게 알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3학년 9반. 이미 ‘서른한 살’ 일 때 쌍춘년이라고 해서 임자있는 웬만한 사람은 제다 시집 장가간 돌풍의 시절도 홀로 버틴 올드미스이다. 소설집의 여자주인공들이 입을 모아 자기와는 다른 처지라고 선을 긋는 마흔을 내다보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서른의 노처녀 선생님이 할 때면 마치 히스테리에 쩔은 마녀를 보듯 웅성거리며 끔찍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신입시절 서른넷의 회사 언니가 흥분된 어조로 가진 것 없는 연하남을 향한 감정을 고백했을 때의 섬뜩함도 떠오른다. 그때는 노처녀는 감정도 없고, 나에게 없는 시절이거나 계절인줄 알았다. 지금은 깊이 반성한다.
어찌 이리도 노처녀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암컷 호르몬과 본능이 극에 치닫는 상황을 대놓고 밝히고 있는지... 대담하면서도 담백한 상징들로 끈적거리지 않게 사실적으로 파헤치고 있어 읽는 내내 시원했다. 잘못 건드리면 되려 덧날 수 있는 부위와 노처녀의 빨간 센서등을 섬세하게 다루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손길이 고마웠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노처녀인 게 특권처럼 당당하고 자유롭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말 그대로, 노처녀 프리덤! 서늘함과 습습함을 거둬내고 햇살 좋은 날 옥상에 올라 머리를 털어 말리는 개운함이 있다. 더 이상 음지에서 우울하게 몸 비틀고 있지 말라며 양지의 정자를 마련해준다. 억지스럽게 꿰맞추어 살라는 말 대신 부부의 정과 ‘한 이불 아래서’가 주는 안정감과 온기를 전해 ‘아, 사람 좋으면 사귀어보고, 또 가능하면 같이 살 수도 있겠구나.’라는 괜한 용기와 긍정을 심어준다. 이 봄날, 다나베 세이코 할머니의 내공과 진솔한 터치에 그만 노처녀의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소설집을 읽으면서 여러 번 공감했고 밑줄을 수없이 그었다. <지금 몇시예요?>에서 히사코가 혼자하는 여행에서 낯선 남자에게 ‘저어... 실례지만 지금 몇시예요?’라고 수줍지만 인간적인 언사를 할 때 무척 사랑스러웠다. 길에서 만난 남자에게 호기심을 갖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열린 자세도 본받고 싶었다. 또 <루미코의 방>에서 룸메이트의 남자가 두고 간 하얀 특대 팬티에서 강렬한 남자 느낌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도 귀여웠다. 변태 아니고 솔직히 좀 밝힐 뿐이다. 전 남친에게 “청소 아줌마”라고 불리었던 주인공이 상상 속의 남자 곁에 머물며 세탁한 보람을 맛보고(존재감으로 빛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해됐다.
<바람구멍>에서 노부코의 바쁘고 힘겨운 어장관리와 의자놀이도 공감가는 부분이다. 매일 밤 돌아오는 남편이 있는 여자들과 임산부들을 보며 왠지 바람이 몸을 파고드는 것 같은 한기를 느껴하는 부분도 동감했다. 이상은 불타오르는 밀도 높은 사랑을 하고 싶지만 현실의 남자는 함께 밥을 먹거나 곁에 있을 때 불쾌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에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가하면 <깜짝 우동>에서 미카코와 엄마의 관계를 보며 ‘완전 내 얘기’라며 무릎을 쳤다. “엄마, 어디 시집갈 데 없어?”라는 막말에 깔린 저의도 이해한다. 엄마의 가출 후 찾아드는 대자연의 정적과 “엄마가 만든 요리, 엄마의 배려, 엄마의 수다, 엄마의 냄새로부터 아직 멀리 벗어나지 못한 의지가지없는 아이 같은 존재(110)”라는 깨달음도. 노처녀들이 처한 특별하면서도 특이한 모녀관계를 비추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별 남자 없고, 얘기가 통하는 남자라면 일단 알고 지낼 것.
<쉬운 남자가 좋은 남자>에서도 쵸타로와 기쿠에의 짝 탄생을 통해 마음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남자(사위)가 최고라고 재차 강조한다. 부부의 살아온 정과 세월이 만담 파트너라는 설정으로 듬뿍 배어난다. “마지막에 기댈 곳은 결국 부부”라는 <그래도 좋아해>를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남편 유지의 게으름과 어리광과 여자 문제에 대해 같이 울컥하고 “그러고도 사내야?”(275)라며 폭발해야 하는데, 남자와 함께 있는 즐거움을 알아버려 남편을 놓칠 수 없다는 말에 그만 ‘낚시 용품 사준 거 정말 잘했어요, 야스에.’라고 속엣말을 해버렸다.
<점프의 맛>에서도 ‘그래, 가는 거야!’라며 온몸을 내던질 만남을 내심 바라지만 현실의 남자는 성실 충직하고 큰마음을 지녔다면 오케이다. “아아... 아앙... 어쩌지, 호호호” 하긴 글렀어도 말이다. <위로해줄까?>의 자칭 전선 위문단인 하루카와의 성(sex)에 관한 철학이 흥미롭다. 점이 아닌 선의 만남 추구와 “안 닳고 안 줄어”로 여심을 잡다니! 칠순 오이토 할머니의 산초나무껍질 전리품은 다시 봐도 정말 대박.
<서른 넘어 함박눈>, 제목이 참 근사하다. 서른 넘어 사랑이 어렵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솔로들의 삶을 그대로 삽으로 퍼 담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서른 넘어 내리는 함박눈은, (사랑은, 이별도) 차분했다.”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다. 서른 넘어 제마다 머리에 함박눈을 맞은 솔로들은 분명 쉽게 사랑하거나 결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외로우면서도 바쁘고 또 어려운 얼얼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함박눈이라는 펑펑 내림, 덮어줌, 백색의 정서 때문인지 춥거나 고립된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 함박눈을 얹은 채로 우리는 가장 우리다운 온도와 방식으로 뒤늦게라도 서로의 눈을 털어주거나 아니면 눈이 스스로 녹기를 기다릴 것이다. 꼭 달콤하지 않더라도 그런 넉넉한 마음 정도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존 슬롯 - 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헤픈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헤픈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닫혀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펼쳐진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꼼짝 않고 닫아두는 것... 크고 작은 관계의 경험들이 쌓여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내가 누군지, 나와 진짜로 어울리는 남자가 누군지, 그래서 최종적인 순간에 우리는 좀 더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소연 <지금 저지르지 않으면 후회할 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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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 이십 년 전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가. 배우자를 일찍 만났다는 것은 사회생활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중 가장 좋은 점은 적어도 배우자를 찾기 위해 시간을 낭비할 새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난 가끔 연애세포가 궁금할 때가 있다. 이성을 만날 때 느끼는 흥분이나 열정과도 같은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잊은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남편을 만날 때도 이십대에는 집까지 찾아오는 남자들도 있었는데 삼십대가 되니 쫓아오기는커녕 아줌마 소리 안들으면 다행이다. 지금은 애엄마라고 하면 놀라는 시늉해주는 사람이 가장 반갑다.
솔직히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사실 일본 작가들에 대해서는 편견이 심한 편이다. 《서른 넘어 함박눈》도 지나치게 통속적이라는 생각에 머물게 한다. 읽으면서 역시 일본의 여자들을 자유분방한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나는 고지식한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지금 몇 시예요?> 에 나오는 여자도 그렇다. 처음 만나는 남자에게 항상 ‘지금 몇 시예요’ 라며 시간을 묻는 그녀, 그리고는 그 남자와 공상의 순간을 즐기는 여자, 그러면서 ‘공상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고 하는 서른의 여자를 만났을 때, 나는 순간 이 여자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게 화가 나서 미쳤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웃겨서의 미쳤구나이다. 엉뚱하고 발랄한 그래서 용서가 되는 여자? 이긴 하지만, 서른이란 나이는 이렇게 외로운 나이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야기다. 두 번째 여자 이야기는 더 쌩뚱맞다. 청결에 집착하는 서른 여자의 지저분한 룸메이트 루미코의 이야기. 어느 날 루미코의 방을 청소하다가 집안 구석에 쳐 박혀 있는 하얀 특대 면 팬티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이 여자도 사실 정상이 아니다. 주인공이 여전히 싱글로 게다가 인기 없는 싱글로 남아 있는 이유는 지나치게 청결에 집착한다는 이유라나, 그래서인지 하얀 면 팬티를 본 순간 하양과 청결이 자신의 이상형을 만난 듯 했나보다. 하얀 특대 면 팬티의 주인공에 대해서 물어보자 루미코는 ‘고릴라같이 생긴 다정한 사람이 웃으면 어린애 같다’ 라고 한다. 주인공은 사랑이란 고릴라도 다정하게 느끼게 한다며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하며 청소를 한다. 대체 이 여자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사랑의 주인공은 <바람구멍>의 서른 한 살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나쁘진 않지만 불타오르지도 않는 , 서로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오가지 않지만 없으면 외롭고 허전하기에 찾게 되는 사랑이다. 아마도 그것이 서른의 사랑? 그래도 낭만이 영 없지만은 않다. <깜짝 우동>의 서른의 주인공은 엄마와 결혼문제로 싸우던 중 대부분의 딸들이 그러하듯 엄마 가슴에 대 못 여러 번 박다가 결국은 엄마가 가출하게 된다. 엄마가 자주 가던 곳을 둘러보던 중 ‘깜짝 우동’집에서 마주친 한 남자와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된다. 집나간 엄마가 매개체가 되어서 만나게 된 이 남자와의 시작은 그래도 나름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아해>의 주인공 야스에와 유지의 이야기는 아마도 여자들이 가장 피해야 할 결혼이 아닐까 한다. 유부남인지 모르고 좋아했던 남자의 아내가 출산하던 중 죽게 되자 결혼 한 야스에. 유지가 사고가 나서 허리를 다치자 집에 쉬게 되고 이후 직장을 혼자 다니면서 살뜰히 돌보는 매우 가정적인 여자이다. 유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찾아 온 젊은 여자를 보고도 유지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야스에의 수동적인 자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돌이켜보니 서른이라는 나이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파릇파릇함이 남아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로울 틈 없이 지내왔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서른의 여자들이 펼치는 삶이라는 향연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마치 봄날에 갑자기 내리는 함박눈에 당혹감이 드는 것처럼 서른 여자들의 이야기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다시 웃음이 나게 되는 것은 서른까지 미혼이었다면 아마 나도 그랬을지도 몰라하는 연대감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주인공들이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통속적이더라도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라 공감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서른 여자의 다이어리를 몰래 훔쳐 본 기분처럼, 매우 은밀한 감정을 공유한 기분이 들기도 한, 알쏭달쏭, 알 듯 모를 듯한 서른 여자들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결혼관이 아닐까한다.
서른 여자의 생각 , 궁금해요? 궁금하면 ~~~ 오 백 원...이 아닌 함박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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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함박눈 제목만으로도 기대가 된 작품이다.
근데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지금 몇시예요 와 깜짝우동이었다.
지금 몇시예요? 의 히사코는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외롭기 때문에 시간을 물어보고 시간을 물어본 것을 통해, 상상을 한다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음~ 나만 그러는게 아니구나!!! 그러나 히사코보다 용기는 없는 것 같다.
히사코는 요시미네의 동행을 수락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이야기대로 풀려가는 게 좋았던 거 같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온종일 입 한번 열지 않을 때도 많다. 역의 매표소나 버스 승무원에게 고작 몇 마디 할까, 그걸 빼면 숙소로 들어갈 때 한마디도 안 하는 날도 있다.]
여행은 침묵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다.
히사코를 통해 배운 거는 몇시예요 라는 말, 그리고 뭔가의 발전에 대한 노력, 히사코는 요시미네와 산베에 머물었을까? 확정짓는 것처럼 끝나지 않은 여운이 내 맘을 더 설레이게 했다.
몇시예요는 설레는 맘을 보여주며 서른 넘어 함박눈의 포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의 아방튀르], 항상 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꿈꾸게 된다.
깜짝우동 미카코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요즘 나와 엄마의 관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가출, 여기서는 미카코와 엄마의 다툼으로 엄마가 가출을 하여, 미카코의 엄마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곳으로 온천여행을 갔지만
울 엄마는 나와 관련된 문제로 아버지와 의견을 나누시다가 언성이 높아져 갑자기 집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몇 시간동안 엄마와 연락이 전혀 되지 않았다.
단 3시간~ 4시간 정도였지만 그 때의 그 기분은 미카코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콘크리트 공중화장실 옆 협죽도가 우거진 곳에 벤치가 하나 있는 걸 보고 그리로 가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자리에 걸터앉아 미카코는 눈물을 닦았다. 자신을 탓하는 마음, 엄마에 대한 걱정,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 날 엄마를 찾으면서 사실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 벤치에 앉아 울었었다. 미카코에게 마나부가 나나탄 것처럼 내게도 그런 만남이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리고 그 자리에 나타난 분은 엄마였다.
집 밖을 나가 세 네시간 동안 동네 산을 돌고, 어디를 가야할지 막막해 하고 있는데 길엣서 딸내미가 울고 있었으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며 어쩌면, 딸내미가 고마웠을 수도 있다. 그 덕분이었을까 엄마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날의 이야기는 아빠에게는 말하지 않지만 엄마와 나는 가끔 그날의 기분과 기억에 대해 말을 한다.
아마 미카코도 엄마와 함께 마나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감정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은 색다른 느낌이다. 수필집이나 에세이를 읽고 그런 것들이 떠오르면 그런가보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가 내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마 나랑 비슷한 감성을 갖고 있지만 상황이 전혀 다른 친구에게 전해지게 될 것이다. 그 친구에게 책을 전해주면서 내가 갖고 있던 기억과 이야기의 감성에 대해 말하면 친구는 웃어버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진지하게, 읽고 감성을 전해줄지도 모른다. 그게 기대가 된다.
서른 넘어 함박눈은 글과 글 사이에서 내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이 시기가 아니라 좀 더 어릴 때 이 글을 읽었다면 그냥 한 번 읽고 넘어갈지도 모르는 그냥 그런 일본소설 중 하나가 되겠지만,
지금 딱 맞게 내 시기에 읽어 좀 더 많이 남아지는 글이 된 것 같다. 책을 읽는 시기라는 게 있다는 말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서른 넘어 함박눈은 딱 정확하게 시기에 맞춰 읽었기에 참 좋은 책으로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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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때는 몸이 어른이었지만 아직 진정으로 어른은 아니었다. 생애 처음의 진짜 사랑을 만나 사랑을 했고 황홀해했고 그 사랑의 소멸을 바라보며 비로소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겪었다. 이상은의 노래처럼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던 20대를 간신히 통과하여 30대가 되어 자립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던 때에도 불안함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작품집 <서른 넘어 함박눈>에는 서른을 이제 막 지난 30대 여성들의 다채로운 이야기 모음이 실려 있다. 누구나에게 서른을 맞이한다는 것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기에, 우리들에게 국민 서른 가요인 ‘서른 즈음에’가 여전히 애창이 되고 있는 것 아닐까
스무살 무렵에는 서른 이상의 연장자는 무조건 ‘어른들’의 범주에 넣었던 내게 30살의 나는 완연히 다른 존재일 줄만 알았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 여전히 미숙한 것 투성이에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초라한 어른아이가 거울 앞에 있었다. 작년에 큰 히트를 친 <건축학 개론>은 기억의 습작을 사랑했던 시절을 경유한, 현재 서른중후반인 모든 이들의 이야기였다. 낭만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현실에는 그밖에도 눈물나게 짠하고, 애타고, 허망하거나 비루한 일상들이 여기 저기 숨어 있었다. 굳이 그런 시시콜콜한 사실적인 스토리를 작품을 통해 또 한번 접하고 기억에서 꺼내어 봐서 뭐 좋을 게 있겠냐고?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을 읽으며 상상해 보고, 키득거리고, 뜨끔해하는 동안 꼭 그렇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30대에 대해서 대중매체의 주목받는 명언들이 몇가지 있다. ‘파니 핑크’에서 여주인공이 ‘여자가 서른살이 넘어 결혼하려는 건 원자폭탄을 맞는 것보다 어렵다’던지, ‘30대의 우리는 9회말 2아웃에 놓여 있다’라는 드라마 속 대사가 그것들이다. 웃자고 하는 말 혹은 과장처럼 여길수도 있지만 <서른 넘어 함박눈>속 등장인물과 상황들은 절대 이에 못지 않게 통렬하고 자조적이며 때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서른살들의 자의식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위선, 가식 따위는 다나베 세이코의 관심 영역이 아닌 듯 소설적 장치, 주인공의 독백, 시츄에이션의 흐름이 자극적이며, 내밀하고, 세태를 거침없이 풍자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와 같은 스타일이 처음에는 생소했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왜였나면, 그동안 일본 여성 소설가들의 문장과 문체에서 조곤조곤하고 담백하며 간혹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성을 펼쳐놓던 경향에 내가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심리묘사와 의표를 찌르는 감각적인 대사들에는 감정을 예쁘게 포장하려 하거나 고상하고 젊잖으려 하는 태도가 없었다. 내용과 배경이 다양하면서도 그 속에 지나치게 심각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은 없어 부담스럽지 않다. 가볍고 신변잡기적인 소재를 풀어낸 단편들은 한 편의 코미디같은 재미를 주지만 뼈 있는 농담으로 다가와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한마디로, 작품 하나 하나가 참으로 독특했다. 홀로 각지를 여행하며 마음에 이끌리는 남성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방법을 고안한 여성의 이야기 『지금 몇시에요 』, 고교 동창이면서 룸메이트인 루미코가 집안을 치우지 않는 것에 격분하면서도 상남자들은 그러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묘한 진실을 깨친 주인공을 그린 『루미코의 방』은 신랄하면서 경쾌하다. 내게 세이코 세계의 묘미를 물씬 느끼게 한 단편은 『바람구멍』이었다. ‘적당히들 해줬으면 좋겠다. 노처녀 눈앞에서 보란 듯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미워할 수도 있을 만큼 깊이 얽혀 있는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서른살 넘은 싱글 여자의 이중적인 심리를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독자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이 여기저기 있다. 『점프의 맛』의 서른셋 다케우치씨는 이십대를 지나와 이제 새로운 뜨거운 연애를 꿈꾸는데, 사랑을 해봤으나 여전히 점프하는 듯 남자의 가슴팍에 뛰어드는 격정을 기대한다. 직장에서 오래 알고 지낸 남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마음을 저울질하는 그녀의 속내가 응큼하다 싶다가도 솔직하게 여겨져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히 신기한 게 스물아홉과 서른 중반은 단지 몇 년이 흘렀을뿐이지만 미혼 여성으로서 이전보다 훨씬 자신과 주변에서 모두 자유로운 시선으로 변화된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안했으면 주기적으로 지인과 친지로부터 은근하거나 노골적으로 채근을 받는 게 아직은 한국의 현실인데, <서른 넘어 함박눈> 속 일본 사회에서는 다른 면모를 발견하며 소소하게 신선한 충격도 받았다. 『그래도 좋아해』의 주부 야스에의 남편에 대한 애증은 ‘예쁘고 섹시하지 않은’ 여성의 결혼에 대한 집착을 우화처럼 보여주는데 남자의 행태가 엽기적일만큼 무책임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평범하지 않은 기상천외한 남녀관계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세이코의 스토리텔링에 깜짝 놀라면서도 그녀의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있는 필체에 반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쇼킹한 소재와 주제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한 『깜짝 우동』에서는, 엄마의 행방불명 사건 때문에 길을 헤매다 호감가는 남자를 운명처럼 만난 서른다섯 미카코의 달달한 연애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표제작 『서른 넘어 함박눈』은 깜짝 우동의 훈훈함을 품고 읽어서인지 그보다 더 설레이고 애틋한 작품일 줄 알았는데 예상밖이었다. 세이코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단편들이 장편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거나 종속되는 장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선입견을 확 깨게 됐다. 『서른 넘어 함박눈』의 서른한살 노처녀 사이조가 바라보는 회사 동료들의 러브스토리들은 실제 누군가 겪었을 것만 같았고 인물들의 묘사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화려한 솔로의 대명사같은 데쓰카 선배의 종횡무진하는 연애들, 젊은 나이에 아내를 사별한 싱글대디 다카하타씨의 매혹적인 다정함을 곁에서 덤덤하지만 예리하게 관찰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한 줄 한 줄 주옥같았다. 대표작으로 손색없는 『서른 넘어 함박눈』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며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쓸쓸한 서른살들의 초상을 처연하게 형상화한 수작(秀作)이다. 오사카 출신 작가가 쓴 <서른 넘어 함박눈>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하여 내게 ‘태평스런 오사카인의 해학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제대로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압축적인 미학을 발휘하며 다나베 세이코가 펼쳐놓은 아홉 빛깔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머리 속을 휘젓고 마음을 쥐락 펴락했다. 서른살이어서 겪는 사랑의 방황, 결혼에 대한 치열한 고민, 가족과 얽힌 복잡한 사연을 같이 따라가면서, 고달픈 인생을 꿋꿋하고 씩씩하게 극복해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 뼘쯤 더 넓어졌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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