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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아닌 평온을 추구하라. 스토아 철학자와 불교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이다. 평온에 이르는 길은 부정적인 것과의 대면에서 출발한다. 불교에서는 집착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다. 모든 명상 지도자들이 명상이야말로 집착을 내려놓는 상태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제 명상은 개인의 행복을 얻기 위한 기술이 되었다. 선불교 수행자이자 정신과의사인 배리 매지드는 행복추구를 끊어야 한다며 명상이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에 반대한다.
행복, 로망, 꿈 등은 파랑새와 같다. 잡으려고 떠나면 언제나 놓치게 되는 역설이 존재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도 바로 이런 '행복의 역설'에 대한 우화로 읽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프로이트식의 콤플렉스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를 괴롭히는 요소로부터 달아나려고 기를 쓰면 쓸수록 그만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행법칙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이들에게 목표는 세이렌의 노래와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목표 세우기, 성공한 사람 따라 하기, 동기 부여하기,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등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수많은 호언장담이 그들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 못했다.
"핵심은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려 하면 그것이 쫓아와 당신을 물어버린다는 겁니다. 자신이 피하는 바로 그것이 말이죠. 그 달아남이 문제를 일으키는 거지요. 프로이트는 인간 심리 전체가 이 회피를 중심으로 구조화한다고 봅니다. 무의식은 우리가 회피하는 모든 것의 저장소입니다."(87쪽)
목표 성취에도 역행법칙이 존재한다. 목표를 지나치게 추구하면 그것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힐 수 있다. 목표 설정과 성취를 강조하는 이들은 'SMART'를 강조한다. 구체적인, 측정 가능한, 성취 가능한, 현실적인, 시간제한을 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행동은 파괴적인 결과나 치명적인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15명의 참사를 부른 1996년 에베레스트 등반 사고가 그러하다. 목표에 대한 열정이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나친 동기부여는 기이한 자기강화적 순환으로 빠져 참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마흔 살에 백만장자가 되어 은퇴하는 목표를 세워본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실험실의 단순화한 조건은 실생활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확실성 추구는 의미추구를 가로막는다. 불확실성이야말로 사람이 자기가 지닌 힘을 다해 무언가를 추진하게 하는 조건이다"라고 주장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노력이 끔찍한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목표주의자가 되지 말고 실행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실행주의자는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단 및 재료를 검토한 다음, 그 수단으로 실현 가능한 목적 혹은 잠정적인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내는 사람이다. 가령 냉장고를 뒤져 남은 재료로 요리하는 요리사, 자기가 개발한 풀이 점착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용해 포스트잇을 만들어낸 화학자가 실행주의자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버크먼은 [합리적 행복](생각연구소, 2013)에서 긍정심리학의 낙관주의 행복 공식을 뒤집는 '부정의 행복론'을 제시한다.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존감을 버리고, 불안정을 포용하고, 실수를 곱씹고, 절대 안전을 포기하고, 늘 죽음을 생각하는 부정적인 경로를 따라가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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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간절하게 원하다고 하여도 세상은 결코 내 뜻대로 굴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애써 긍정하려고 하기보단 사실 그 자체로 왜곡없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나간 일 또는 다가올 일에 집착하기 보단 현재에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을 행복한 상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